[말이랑 놀자 97] 연필주머니



  “연필을 방바닥에 굴리지 말고, 다 쓴 연필은 연필주머니에 넣어야지.” 일곱 살 아이와 글쓰기 놀이를 하면서 연필을 잘 간수하라고 말하다가 문득 내 입에서 ‘연필주머니’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마침 ‘필통’이라는 낱말이 안 떠올랐습니다. 연필을 담는 주머니이기에 ‘연필주머니’일 텐데, 쇠붙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연필을 담도록 하면 ‘필통’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수 있으나, 천으로 짠 주머니라면 ‘연필주머니’라는 이름이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연필을 담은 주머니에서 연필 한 자루를 꺼냅니다. 나는 쪽종이에 짤막하게 글을 써서 아이한테 건넵니다. 아이는 글종이를 건네받은 뒤 깍뚜기공책을 폅니다. 아이는 아이가 쓸 연필 한 자루를 주머니에서 꺼냅니다. 돈을 담거나 꺼내는 주머니라면 돈주머니가 되고, 생각을 담거나 꺼내는 주머니라면 생각주머니가 됩니다. 사랑과 꿈을 담거나 꺼내는 주머니라면 사랑주머니나 꿈주머니가 됩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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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6] 돌사람



  구리를 녹여 사람 모습으로 만든 것을 본 일곱 살 아이가 ‘돌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쇠와 돌이 어떻게 다른가를 잘 모르고, 구리가 무엇인지 모르니 ‘돌사람’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아이가 가리키는 ‘돌사람’을 ‘쇠사람’이나 ‘구리사람’으로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동상(銅像)’이든 ‘석상(石像)’이든 모두 ‘돌사람’이라 할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쇠붙이라 하더라도 크게 뭉뚱그려서 헤아리면 ‘돌’이기 때문입니다. 예부터 돌로 지은 무덤은 돌무덤이라 하고, 돌을 쌓아서 집을 지으면 돌집이라 합니다. 돌로 깎은 구슬은 돌구슬이요, 돌을 갈아서 쓰는 칼은 돌칼이에요. 돌다리, 돌피리, 돌도끼 같은 낱말과 함께 돌사람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어 가만히 굴립니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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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5] 좋아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좋다’라는 한국말을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로 풀이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쩐지 아쉽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쓰는 낱말이요, 우리 마음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나타내는 낱말인데 이렇게 멋없이 말풀이를 달아도 되나 궁금합니다. 한영사전을 보면 ‘좋다’를 “good, fine, nice, better, superior”처럼 풀이합니다. 그러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영어로 이 낱말과 저 낱말을 헤아리니 ‘좋다’라는 한국말은 여러모로 즐거우면서 사랑스럽기까지 하구나 싶습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오늘날, 이곳저곳에서 ‘추천(推薦)’이나 ‘공감(共感)’을 눌러서 어떤 글이나 사진이 널리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말뜻을 헤아리면, 한자말 ‘추천’은 ‘밀어주기’를 가리키고, ‘공감’은 ‘한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좋아요’라는 한국말을 씁니다. 어느 글이 마음에 들어 ‘밀어주기’를 해도 나쁘지 않으나, 이보다는 ‘한마음’이 되어 읽을 적이 괜찮구나 싶고, ‘좋다’고 느끼면서 기쁜 마음을 드러낼 때에 사랑스럽구나 싶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란 서로 아끼는 숨결입니다. 좋아하기에 부르는 노래는 서로 보살피는 손길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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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4] 감풀



  감을 얇게 썹니다. 동글배추를 얇게 썹니다. 케챱과 마요네즈를 뿌려 둘을 섞습니다. 이른바 ‘샐러드(salad)’입니다.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감과 동글배추 섞어서 놓은 접시’를 보더니 “‘감풀’이네.” 하고 말합니다. “그래, 감풀이로구나.” 아이들한테는 감과 풀이 함께 있는 먹을거리입니다. 아이들한테 ‘샐러드’라는 이름을 알려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처음 붙인 이름대로 ‘감풀’이라 하기로 합니다. 우리 감풀 맛나게 먹자. 밥도 맛나게 먹고, 국도 맛나게 먹자.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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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3] 긴네모 배추



  배춧잎을 작게 썹니다. 아이들이 한입에 먹을 만하도록 작게 썹니다. 작게 썬 배추를 작은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된장을 젓가락으로 살짝 떼어 작은 배춧잎에 얹어 작은아이와 큰아이한테 하나씩 건넵니다. 작게 썬 배춧잎을 받은 큰아이가 문득 “긴네모네.” 하고 한 마디를 합니다. “그렇구나. 배추가 긴네모 모양이로구나.” 가만히 보니, 배춧잎을 길쭉한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았군요. 큰아이 말을 들은 뒤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음에 배추를 반듯한 네모 모양으로 썰어서 접시에 담으면 어떤 모양이라고 말할까요? 일곱 살 아이는 그때에 ‘바른네모’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오늘날 여느 어른들은 길쭉한 네모 모양으로 썰거나 자른 것을 보면 어떤 이름을 맨 먼저 떠올릴까요? 4347.11.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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