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상’을 참말 왜 주어야 하는가



  사회를 보면, ‘많이 팔린 책’이 마치 ‘사랑 받은 책’이라도 되는 듯 잘못 다루곤 한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노릇이다. 많이 팔린 책은 그저 ‘많이 팔린 책’이다. 사랑 받은 책은 ‘사랑 받은 책’이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었대서 이런 책을 ‘사랑 받은 책’이라고 한다면, 이를테면 ㅈㅈㄷ 같은 신문을 놓고 ‘사랑 받는 신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사랑 받는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소주’를 ‘서민이 마시는 술’이라거나 ‘사랑 받는 술’인 듯 다루지만, 소주값보다 맥주값이 더 싸다든지, 양주나 포도술이 소주값보다 더 싸다면 어떻게 될까? 맥주값이 소주값보다 쌀 적에도 사람들은 맥주 아닌 소주를 마실까? 양주가 소주보다 값이 쌀 적에도 소주가 ‘서민이 마시는 술’이 될까? 다시 말하자면 ‘서민’이라는 사람을 마치 ‘값싼 것만 사다 먹는 사람’처럼 엉터리로 바라보는 셈이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도서관이라든지 책마을에서 ‘독서상’이라든지 무슨무슨 ‘책과 얽힌 상’을 곧잘 준다. 상을 줄 만하니 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상은 왜 줄까? 이런 상은 어떻게 줄까? 무슨 잣대를 내세워서 누구한테 상을 줄 수 있는가?


  내가 느끼기로는 ‘독서상’뿐 아니라 ‘문학상’도 말이 안 된다고 느낀다. 문학 작품 하나를 놓고 어떻게 1등이니 2등이니 3등이니 하고 금을 그을 수 있을까? 문학을 1등과 2등과 3등으로 갈라서 ‘감동’할 수 있는가?


  문학상 따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독서상도 사라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다 다른 사람들이 이루는 삶을 이야기로 담는 문학인 터라, 높고 낮음이 없어야 할 텐데, 문학을 놓고 ‘높고 낮음’으로 등수를 매기니, 아이들이 학교나 도서관에서 ‘책 읽은 권수’를 놓고 ‘독서상’ 따위로 엉터리짓을 하고야 만다.


  문학상을 굳이 주려 한다면, ‘크게 마음을 울리는구나 싶은 작품’을 놓고 두 작품이건 네 작품이건 ‘작품 숫자’를 따지지 말고, ‘모두 똑같은 자리’에 놓으면서 ‘모두 똑같은 상금’을 주어야지 싶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그러면서, 학교와 도서관에서 어설프고 엉뚱한 ‘독서상’은 없애야지. 앞으로는 ‘상’이란 상은 죄다 없애야지.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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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1-28 13:0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독서상이랑 문학상은 좀 다른 것 같네요. ㅎㅎ
물론 우리나라 문학상처럼 비리만 없다면.

숲노래 2015-01-28 13:36   좋아요 0 | URL
다르게 느끼시면 다르게 느끼실 뿐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으니까요.
문학상에 비리가 있듯이
독서상에는 끔찍한 슬픔이 있어요...
 

도서관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사람들 스스로 책을 제대로 모르기에, 책방이나 도서관을 제대로 모른다. 왜냐하면, 스스로 삶을 짓지 않으면서 책만 붙잡으면 책을 모르기 때문이요,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만 다루려 하면 책을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책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학교 졸업장이 꼭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배워야 할 이야기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자, 그럼 생각해 보자. 도서관에 책이 많아야 하는가? 아니다.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갖추면 된다. 도서관 ‘장서 숫자’는 그야말로 껍데기요 겉치레일 뿐이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많이 찾아와서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곳에 와서 책을 한 권조차 펴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쉬고 생각을 다스리면서 꿈을 새롭게 키울 수 있으면 된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쉬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조용하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노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왁자지껄하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꿈꾸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공책을 펴서 연필로 이녁 꿈을 가만히 적는다.


  ‘더 많은 책’이라든지 ‘더 넓은 터’라든지 ‘더 많은 대출실적’이라든지 ‘더 많은 방문자 숫자’처럼 껍데기와 겉치레에 사로잡힌다면, 이 나라 도서관은 그예 제자리걸음도 아닌 뒷걸음을 칠밖에 없다. 도서관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도서관은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는 넋을 가꾸는 곳이어야 한다.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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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7 13:56   좋아요 0 | URL
딸아이 학교에서 학교도서관 대출실적을 갖고 독서상을 주더군요.
저는 딸아이에게 책을 제대로 읽고 알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책을 많이 빌리는 것만으로 받는 독서상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어요.

숲노래 2015-01-27 14:47   좋아요 0 | URL
에궁, 대출실적으로 독서상이라니... ㅠ.ㅜ
참으로 슬픈 현실이네요 ㅠ.ㅜ

그래도, 하양물감 님이 슬기롭게 딸아이한테 말씀을 해 주셨으니
딸아이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배웠겠구나 싶어요..
 

일본사람한테 책을 팔다



  일본사람한테 책을 판다. 한국말로 된 책을 일본사람한테 한국말로 “이 책 사셔요. 그러면 제가 아름다운 글을 한 줄 적어서 드릴게요.” 하고 여쭈면서 판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나는 일본말을 아직 모른다고 할 테지만, 나는 ‘말’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에 대고 말을 걸었기에, 일본사람은 일본말 아닌 한국말로 이녁한테 건 말을 알아차렸다. 이러면서 아주 기쁘게 웃음짓을 짓더니 환한 목소리로 “유 기브 미 사인?” 하고 영어로 묻는다. 나는 빙긋 웃으면서 “예스, 마이 사인. 굿.” 하고 대꾸한다.


  일본사람은 내가 쓴 ‘한국말’을 다룬 책 세 가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과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기쁘게 장만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영어로 이녁한테 “위 캔 런 올 랭귀지.”라고 말씀을 올렸다. 우리는 서로 일본말과 한국말과 영어를 마음껏 섞어서 ‘마음’을 주고받았고, 나는 이제껏 쓴 적이 없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글을 지어 이녁한테, ‘일본 이웃’한테 바쳤다.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나는 내 책을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한테 팔아서 읽힐 수 있다. 4348.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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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한테는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따로 없다. 내가 ‘하려는 일’이라면, 모두 할 수 있고, 내가 ‘안 하려고 하는 일’이면 모두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쉬워서’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우리 스스로 ‘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을’ 때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쉽다고 해서 할 수 있지 않고, 어렵다고 해서 할 수 없지 않다. 어려워서 못 하는 일이 아니라 ‘하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지 않’기에 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쉬운 책을 읽어야 할까,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가? 두 가지 책 모두 읽을 까닭이 없다.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이 있으면 두 가지 모두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을 마음에 심어서 삶을 가꾸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기운을 내게끔 이끄는 책이 바로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이다.


  우리는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없다. 다만,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려고 읽는 책이 있을는지 모르고,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라서 읽을는지 모르며,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서 읽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이런 책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책들은 모두 ‘머리에 지식을 쌓아서 다시 지식을 쌓는 일’이나 머릿속에 철학과 사상과 관념과 가치판단을 심는 일이다. ‘머리에 지식 쌓기’는 ‘책읽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책읽기는 언제나 삶읽기이고, 삶읽기는 삶짓기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남이 읽는 대서 읽을 까닭이 없다. 남이 읽으라고 하니까 읽을 까닭이 없다. 남이 많이 읽으니 나도 읽어야 하지 않는다. 남이 안 읽으니까 오히려 읽겠다고 할 까닭이 없다.


  나는 오직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고르고, 제대로 읽은 뒤, 제대로 마음으로 삭이고 나면, 제대로 느끼셔,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슬기를 갈고닦아서, 제대로 삶을 짓는 길을 걸으면 된다. 어려운 책이나 쉬운 책을 읽을 까닭이 없고, 이름나거나 이름 안 난 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 4348.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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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 한 권



  나는, 내 꿈을 내 말로 외쳐서 내 삶으로 짓는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뜻은 오직 이 하나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는다. 나는, 내가 쓴 책을 읽는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과 책은, 모두 내가 이루려는 꿈을 담은 글이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지으려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책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은 안 읽었는가? ‘사회의식’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을 어마어마하게 읽는다. 그런데, ‘다룬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은 알고 보면, 모두 내 마음속에서 흐르던 이야기이다. 내 마음속에 흐르던 이야기를 내 이웃과 동무인 다른 사람들이 이녁 목소리로 엮어서 글과 책으로 지었다. 너와 나는 언제나 한몸이면서 한마음이기에, 나는 내 책을 읽고, 내 넋을 가꾸어, 내 삶을 짓는다. 내 하루를 누린다. 4348.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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