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어떤 책을 내 손에 쥐든,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읽는다. 어떤 책을 내 손에 잡든, 내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인다. 꼭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않다. 꼭 어떤 책으로 배워야 하지 않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기에, 이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여서 내 삶을 새롭게 가꾸는 힘, 바로 슬기를 북돋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책을 손에 쥐어서 읽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서 기쁘게 생각을 살찌우지 않는다면, 책읽기가 아름다운 길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힘들다.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책이 곁에 있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이 훌륭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한다. 생각을 슬기롭게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스러운 책이 둘레에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사랑스러운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올바로 헤아리지 못한다. 꿈을 기쁘게 키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놀랍고 멋지며 알찬 책이 코앞에 있더라도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거나 번거로워 할 뿐이다.


  마음이 고운 사람이 모든 책을 고운 숨결로 어루만진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 모든 책을 착한 눈빛으로 밝힌다. 마음이 너른 사람이 모든 책을 너른 넋으로 어깨동무한다. 마음이 환한 사람이 모든 책을 즐거운 노래로 북돋운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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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실



  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오면, 두 팔 가득 책을 짊어진다. 한 권을 골라도 두 팔 가득 책을 품고, 열 권을 골라도 두 팔 한가득 책을 안는다. 가벼운 책이든 무거운 책이든, 적든 많든, 언제나 가슴으로 따사롭게 책을 품는다.


  즐겁게 장만한 책은 즐겁게 읽는다. 사랑스레 장만한 책은 사랑스레 읽는다. 고맙게 장만한 책은 고맙게 읽는다. 이리하여, 얄궂게 훔친 책은 얄궂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은 채 읽어야 하고, 우악스레 빼앗은 책은 우악스러운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읽어야 한다.


  책을 마주할 때뿐 아니라 책을 장만할 때에도 가장 너그러우면서 넓고 넉넉한 마음이 되도록 다스린다. 아이를 돌보거나 밥을 지을 때뿐 아니라 말을 섞거나 글을 쓸 때에도 가장 따스하면서 고운 마음이 되도록 추스른다.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 아름답게 꿈꾸는 삶을 짓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집안에 갖춘 뒤 틈틈이 읽고 또 읽는다. 책마실을 하는 사람은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찾으려는’ 마실을 누린다. 책마실을 아이와 함께 즐기는 사람은 ‘사랑을 짓는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밝힌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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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읽을 뿐인 책



  문학책을 읽거나 철학책을 읽거나 인문책을 읽거나 늘 한 가지 마음입니다. 문학책에서 문학이론을 뽑아낼 마음이 없고, 문학책을 문학비평으로 바라볼 마음이 없습니다. 철학책이나 인문책을 읽으면서도 이 같은 마음입니다. 이론을 뽑아내려고 책을 읽을 까닭이 없고, 비평을 하려고 책을 손에 쥘 일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책을 읽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책을 장만합니다.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숨결이기에 내 하루를 새롭게 열도록 북돋우는 책을 장만합니다.


  사랑으로 읽을 뿐인 책입니다. 책을 쓴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랑하고, 책을 손에 쥔 내 하루를 사랑합니다. 책을 펴낸 곳에서 베풀려는 꿈을 사랑하고, 책을 읽으면서 아침을 새롭게 열려는 내 몸짓을 사랑합니다.


  책 하나는 오롯이 사랑입니다. 글쓴이도 읽는이도 한결같이 사랑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도 사랑이고, 지구별을 골고루 보듬는 해님도 사랑이며, 새봄에 새로운 꽃내음을 베푸는 풀과 나무도 사랑입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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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슈아 2015-05-21 21:09   좋아요 0 | URL
그러내요^^~
사랑으로 읽을 뿐~~

숲노래 2015-05-22 00:29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바닷가에서 책을 읽다



  시골버스를 타려고 아이들과 35분을 걸어서 큰길로 나갔고, 시골버스를 탔으며, 버스에서 내려 다시 40분을 아이들과 걸어서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서 아이들이랑 놀다가 아이들이 스스로 놀도록 한 뒤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바닷가 모래밭을 밟고 바닷물에 발을 적시면서 논다. 이러고 나서 아까 걸은 길을 거슬러 40분을 걸어서 시골버스 타는 곳으로 왔고, 시골버스를 탔으며, 면소재지에서 버스를 내리고는 우리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새로 갈아타서 들어온다.


  버스를 탄 이야기와 걸은 이야기만 적은 듯한데,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듬뿍 쐬면서 책을 읽었다. 바닷바람을 쐬면서 책을 읽자니, 두 손과 책에 짠내가 배더라.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바닷가에서 책을 읽지 말아야겠다. 소금기 물씬 나는 바람을 맞다가 책을 다 버리겠더라. 4348.5.16.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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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책, 있는 책



  우리 집에 없는 책이 있고, 우리 집에 있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즐길 만한 책이 우리 집에 있고, 우리 집에서 즐길 만하지 않은 책이 우리 집에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집에 있는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우리 집에 없는 책은 읽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책에 손을 뻗고, 언제나 내 둘레에 있는 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어떤 책을 우리 집에 둘까요? 우리 집을 가꾸는 고운 사람들이 기쁘게 웃도록 이끌 아름다운 책을 우리 집에 둡니다. 우리 집을 보듬는 착한 사람들이 맑게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멋진 책을 우리 집에 둡니다. 4348.5.5.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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