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줄을 읽어도



  하루에 책 한 권 읽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책만 읽으려고 한다면, 다섯 권도 읽고 열 권도 읽으며, 스무 권이나 서른 권도 읽습니다. 그야말로 책읽기만 하려고 들면 못 읽을 책은 없습니다.


  하루를 책만 읽으면서 보내지 않으니,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는 일이 만만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하러 나가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면, 일하는 틈틈이 책을 꺼내어 펼치기 어렵습니다. 출퇴근 길에 책을 손에 쥐기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도맡는 사람도 책을 읽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하루 내내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늘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아침저녁 밥차림이 똑같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생각을 기울이면서 밥을 짓고 살림을 건사하는 사람한테 ‘책을 왜 안 읽느냐?’ 하고 묻거나 따질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모로 바쁜 사람들한테 ‘책 좀 읽으셔요’ 하고 이르는 말은 뜬금없거나 엉뚱할 수 있습니다. 안 바쁜 사람이 읽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할 일이 없는 사람이어야 읽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갓진 사람이라고 해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할 일이 없이 노닥거린다고 해서 책을 손에 쥐지 않아요. 일이 바쁘더라도 마음이 있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을 보살피고 집안일을 하느라 숨을 돌릴 겨를이 없는 사람이, 외려 틈을 내고 쪼개어 책 몇 쪽을 훑습니다.


  삶을 가꾸고 싶으니 책을 읽습니다. 하루에 한 줄을 읽어도, 내가 손에 쥔 책을 고운 눈길로 따사롭게 읽으면, 내 마음속에는 사랑 씨앗이 살포시 깃듭니다. 하루에 한 줄을 읽어도, 언제나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됩니다. 4348.7.2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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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있어



  책 한 권이 있어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 한 권이 있어 문득 걸음을 멈춘다. 책 한 권이 있어 가만히 생각에 젖는다. 책 한 권이 있어 바람결을 살며시 잊으면서 한 쪽씩 넘긴다. 책 한 권이 있어 온마음을 쏟아서 이야기에 사로잡힌다.


  더 많은 책이 아니라도 된다. 수많은 책이 아니어도 된다. 오직 한 권이어도 넉넉하다.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책 한 권이 이곳에 있으면 된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마음자리에 집 한 채를 짓는다. 4348.7.1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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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예쁜 책들



  내 눈에 예쁘게 보이는 책을 장만한다. 내 눈에 사랑스레 보이는 책을 읽는다. 내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책을 아이한테도 보여준다. 내 눈에 즐거워 보이는 책을 가슴에 포옥 안는다. 내 눈에 넉넉하게 보이는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넉넉한 마음이 되는구나 하고 느낀다.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 내가 쓰거나 엮는 책도 내 둘레 이웃한테 예쁘게 보이는 책이 될 수 있기를. 4348.7.1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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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과 거짓말 (표절)



  무엇이고 거짓말이고 무엇이 참말일까요. 누가 속이고, 누가 속았을까요. 문학이란, 삶을 밝히는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낍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아름다운 말로 밝히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문학을 누리거나 즐긴다고 느낍니다. 요즈음이 아닌 옛날에도 ‘다른 사람이 빚은 멋진 글’을 빌어서 ‘내가 쓰려는 글’에 따서 드러내는 일을 으레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따와서 쓰기’를 할 적에는, 누가 어디에 언제 쓴 글인가를 찬찬히 밝혔습니다. ‘예의’라기보다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생각을 글로 밝힌 이웃님이 있구나 하고 느껴서, 그 글을 기쁘게 옮기고 고맙게 밝힙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삶이라고 느낍니다.


  꼭 논문이 되어야만 ‘출처 밝히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시에서도 소설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내 이웃님이 빚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밝힐 수 있고, 이렇게 밝힐 때에 참말 서로 아름다운 사이(동무, 동료)가 되어, 문학을 더욱 살찌울 수 있겠지요.


  표절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대목을 어겨서, 서로 생채기를 받는 일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 말이나 글’을 으레 옮겨서 ‘내 생각을 밝히’곤 합니다. 내 이웃이 아름답게 쓴 글은 내 생각을 밝히는 자리를 더욱 빛내어 줍니다. 내 이웃이 사랑스레 쓴 글은 내 뜻을 드러내는 자리를 더욱 북돋아 줍니다.


  ‘출처를 안 밝히고 마음으로만 존중했다’고 말할 노릇이 아니라, 작품에 한 줄로라도 고마움을 밝힐 때에, 이웃 작가도 독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함께 빚는 문학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만하겠지요. 4348.6.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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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야 할 책인가



  서울로 바깥일을 보러 나오기는 했으나, 참말 서울 가는 버스표 끊을 돈밖에 없었다. 고흥에서 시외버스에 오른 뒤 여러 사람한테 ‘도와주셔요’ 하고 말씀을 여쭈었다. 인천에 사는 형하고, 서울에서 커피집을 꾸리는 이웃님이 마실삯을 보태어 준다. 서울에서 뵌 출판사 지기님이 마실삯을 또 보태 주었고, 서울에서 사진가로 일하는 분이 잠자리를 내어주었다. 출판비평 일을 하는 분이 낮밥을 사 주셨고, 사진잔치를 이끄는 분이 저녁밥을 사 주신다. 더없이 고마운 손길을 받으면서 서울에서 책방 한 군데를 들를 수 있었고, 책을 육만칠천 원어치 장만한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더 고르고 싶었으나, ‘고맙게 받은 돈’으로 책만 살 생각이니, 하고 스스로 되물으면서, 골랐던 책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또 책시렁에 내려놓았다. 새로운 책을 한 권이라도 이 마실길에 장만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우면서 기쁜가. 꼭 사야 할 책이었기에 산다. 꼭 사야 할 만한 책인가를 돌아본다. 꼭 사서 읽고 마음을 곱게 북돋우는 길에 이바지할 책을 장만해서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4348.6.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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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6-20 23:23   좋아요 0 | URL
신중함, 소중함이 느껴지네요.
선택받은 책들은 뿌듯할 듯 하네요~

숲노래 2015-06-21 05:15   좋아요 0 | URL
주머니가 가벼운 탓에
모든 책을 고르지 못하니
한 권씩 더 알뜰히 장만하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