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뜻



  삼례에 있는 ‘동상연구소’에서 《인문예술》이라는 ‘연간 무크지’를 냈습니다. 아직 글삯은 못 받았지만 책은 이쁘게 잘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쁘게 잘 나온 책이니 굳이 글삯은 안 받고 자원봉사를 했다고 기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이쁜 책에 글을 하나 실었습니다. 저는 《영리한 공주》라고 하는 아주 멋진 어린이문학을 바탕으로 ‘낮에 호미 쥐고 밤에 책을 드는 살림’ 이야기를 써 보았어요. 원고지로 100장에 이르는 긴 글인데, 글을 다음처럼 마무리지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뜻이란 바로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3.11.흙.ㅅㄴㄹ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활짝 웃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숨결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놀고 얼마나 춤을 잘 추며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고 얼마나 웃음을 잘 지으면서 동무하고 손을 맞잡는가를 새삼스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 어른들도 ‘노래방이 아니어’도 멍석만 있으면, 또 멍석 없이 마당만 있으면, 또 멍석도 마당도 아니어도 논두렁이나 오솔길에 서기만 해도 춤사위가 흐드러지고 노랫결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영리한 공주》라는 조그마한 어린이책에 나오는 ‘똑똑한 가시내’는 스스로 모든 삶을 배웠고, 모든 살림을 지으며, 모든 사랑을 나누어요. 이 똑똑한 가시내는 세 가지 꿈을 들어 준다는 말에 ‘물감’하고 ‘바늘’하고 ‘종이’를 바랐어요.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지으며 이야기를 써요.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귀농자금이 더 많이 있어야’ 할까요? ‘자가용이나 농기계를 더 많이 갖추어야’ 할까요? ‘인문 지식이나 철학 지식을 더 많이 머릿속에 담아야’ 할까요?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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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고 영화로



  ‘하이디’는 만화영화로 처음 만났습니다. 오래도록 만화영화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일본 중역 간추린’ 하이디가 자그마한 학급문고 한켠에 있었지 싶고, 그무렵 이 일본 중역 간추린 ‘하이디’를 읽었는지 가물거립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살며 만화영화 하이디를 새삼스레 보며 놀랐고, 이 훌륭하며 아름다운 작품에 깃든 숨결을 새롭게 만나려고 ‘안 간추리고 모두 실은’ 두툼한 《하이디》를 장만해서 찬찬히 읽어 봅니다. 하루에 몇 쪽씩 때로는 스무 쪽씩 읽다가 우리 도서관학교에 영어책이 하나 있을까 싶어서 살피니 마침 하나 나옵니다. 언제 장만해 놓았는지 아련하지만 미리 장만해 놓기를 잘했구나 싶고, 나중에 손에 쥐어 읽을 날을 헤아리며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책은 그때그때 갖출 만하구나 싶어요. 2017.2.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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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는 책이 아니지만



  아이들이 학습지를 풀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이 아닌 학습지만 손에 쥔다 한들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한테 학습지만 떠맡긴 채 어버이나 어른은 배움을 게을리 한다면? 아이들만 배우라 하고 어버이나 어른은 배울 생각이 없다면?


  학습지는 책이 아닙니다. 교재나 교과서도 책이 아닙니다. 꼴은 책일는지 몰라도 알맹이는 책이 아닙니다. 학습지·교재·교과서는 배움으로 나아가는 길에 곁에 두는 작은 동무와 같습니다. 학습지를 아이한테 맡길 적에는 이 대목을 잘 헤아리면서 어버이랑 어른도 저마다 새롭게 배움길에 나서는 몸짓을 보여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아이가 ‘학습지 아닌 책’도 만날 수 있도록 북돋아야겠지요.


  아이한테 책만 떠맡긴다고 해서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가위만 쥐어 준다고 해서 아이가 뭔가를 오리지 못해요. 호미만 쥐어 준대서, 돈만 쥐어 준대서, 자동차 열쇠만 쥐어 준대서, 통장만 쥐어 준대서, 참말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쥐어 주든 이 ‘무엇하고 얽힌 이야기’를 ‘늘 사랑스러운 손길’로 ‘따스하게 함께하는 숨결’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2017.2.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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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씨앗



  책은 글쓴이나 그린이로서는 열매입니다. 오래도록 흘린 땀방울로 빚은 열매예요. 이러면서 씨앗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열매에는 씨앗이 깃들거든요. 살점은 맛나게 먹고서, 살점이 감싸는 씨앗을 땅에 심지요. 책을 읽을 적에는 글쓴이하고 그린이가 빚어 놓은 열매를 기쁘면서 고맙게 누리는데요, 이렇게 기쁘면서 고맙게 누리고서 ‘글쓴이나 그린이가 함께 남긴 씨앗’을 우리 마음에 심어요. 앞으로 ‘책을 읽은 사람’ 스스로 새롭게 나아갈 길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씨앗으로 마음에 품어요.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맛본다고 할 만합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열매 먹기요, 둘째는 시나브로 씨앗 심기예요. 고맙게 일군 땀방울을 기쁘게 받아먹고는, 우리가 저마다 새롭게 뿌릴 씨앗을 바지런히 가꿉니다. 그래서 “모든 책은 열매이다”하고 “모든 책은 씨앗이다” 하고 말할 만하지 싶습니다. 2017.2.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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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깎는다



  연필을 깎습니다. 아이들하고 마실을 나가기 앞서 연필을 깎습니다. 두 아이는 종이접기로 바쁘기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뭇소리도 안 들립니다. 두 아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종이접기를 마치기를 기다리며 연필을 깎습니다. 연필 열다섯 자루쯤 깎으니 비로소 아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사십 분 동안 연필을 깎았네요. 아이들은 종이접기로 두 시간 즈음 보냈어요. 마지막으로 깎은 연필을 본 큰아이가 “아버지 그 연필 무슨 무늬야? 보여줘.” 하고 묻습니다. “자, 보렴.” “아, 꽃이랑 나무구나.” “예쁘니? 예쁘면 네가 이 연필 쓸래?” “음, 아니, 음. 그러니까.” “그래, 그냥 네가 써. 네가 쓰면 되지.” 어릴 적에 저는 연필을 되게 못 깎았지 싶은데, 이제서야 그무렵 왜 연필을 되게 못 깎았는지 살짝 느껴요. 그저 즐겁게 쓰도록 깎으면 되는데, 심을 아까워하지 않으면 되는데. 2017.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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