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거나 작은 출판사



  한국에서 큰 출판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표작’을 으레 듭니다. 큰 출판사이다 보니 그동안 펴낸 책이 대단히 많아서 대표작을 으레 드는데, 큰 출판사에서 으레 드는 대표작이란 많이 팔린 책이기 일쑤입니다.


  한국에서 작은 출판사를 곰곰이 헤아리면 ‘대표작’을 거의 들지 못합니다. 작은 출판사이다 보니 그동안 펴낸 책이 아직 적기도 하지만, 작은 출판사는 굳이 대표작을 들지 않아요.


  한국에서 큰 출판사는 워낙 많은 책을 펴내기에, 팔림새가 떨어지는 책은 아주 빠르게 판이 끊어집니다. 큰 출판사는 아무래도 팔림새가 높은 책을 바탕으로 삼아서 책을 알리거나 다루거나 이야기하지요.


  한국에서 작은 출판사는 한 권을 낼 적에도 워낙 온힘을 쏟아붓기에, 팔림새보다 살림살이를 더 살핍니다. 앞으로 판을 끊지 않고 두고두고 책손을 만나도록 하고 싶은 책을 펴내지요. 작은 출판사로서는 이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모든 책이 ‘작은 출판사 대표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작은 출판사는 모든 책을 넉넉히 아우르려는 품으로 책을 지어요.


  크거나 작은 출판사를 바라볼 적에 어느 흐름이나 모습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팔림새가 좋은 책도 얼마든지 좋은 책이고, 팔림새가 떨어지는 책도 얼마든지 좋은 책이기 마련이에요. 다만 저는 한 권 한 권 한결 넉넉하고 따스하게 품는 작은 출판사 몸짓과 손길을 눈여겨보면서 아끼고 싶습니다. 2017.6.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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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여는 이웃



  책방을 여는 이웃이 있습니다. 책방이웃입니다. 다만 책방이웃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책방을 연 분은 책방을 연 날부터 책방이웃으로 지냅니다. 이분이 지난날 무엇을 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제부터 책방이웃으로서 마음을 기울여 만납니다. 저는 책을 짓는 사람이기에 ‘지은이라는 이웃’이 됩니다. 책을 쓰는 이웃이 되어, 저를 둘러싼 사람들한테 즐겁게 이야기꽃 한 송이를 건넵니다. 저는 책을 쓰기도 하지만 책을 읽기도 하기에 ‘책손이라는 이웃’이 되어요. 저를 비롯해 수많은 분들은 다 같이 ‘책손이라는 이웃’입니다. 책손이라는 이웃은 ‘책벗이라는 이웃’도 되어요. 저마다 즐거이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꽃피웁니다. 저마다 상냥하게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꿈을 키웁니다. 따사롭고 넉넉하게 서로서로 이웃입니다. 2017.5.1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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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이라면 훔치지 않는다

― 쑥 몰래 캐고 논둑에 쓰레기 버리는 관광객



  도서관학교 마당하고 운동장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쑥을 잔뜩 캐는 관광객을 봅니다. 빨간 관광버스가 마을회관 앞 정자에 서더니 꽤 많은 이들이 내려서 이리저리 돌아보거니 하면서 커다란 파란 비닐봉지에 쑥을 잔뜩 뜯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챘어요.


  “여기에 함부로 들어와서 뭐 하세요?” “쑥 좀 뜯으려고요.” “다른 사람 땅에 몰래 들어와서 뜯어도 되나요?” “폐교인 것 같아서 쑥을 뜯으려고요.” “다른 사람 땅에 몰래 들어와도 되느냐고 물어봤지요?” “사람이 있는 줄을 몰랐지.” “폐교이면 그냥 들어와서 훔쳐가도 되나요? 저희는 이 폐교를 임대료를 내고서 써요. 다른 사람 것을 몰래 가져가는 일은 도둑질이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저씨 아주머니라 할 이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뜯은 쑥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잔뜩 구시렁거리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길가로 나갑니다. 이렇게 한쪽에서 관광객을 쫓아내는데, 운동장 한쪽 끝에서 또 쑥을 뜯는 분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또 묻습니다.


  “여기에서 뭐 하세요?” “쑥 뜯었어요.” “그 쑥을 왜 뜯으세요?” “먹으려고 뜯지요.” “여기 땅임자한테 물어보시고 쑥을 뜯으시나요?” “폐교라서 들어왔어요.” “폐교이든 아니든, 또 폐교라고 하면 그냥 들어와서 뜯어도 되나요?” “아니요.” “아닌 줄 아신다면 생각해 보세요. 빈집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 밭에 들어가서 무나 배추를 뽑으면 될까요?” “아니요.” “쑥하고 무나 배추하고 다르지 않아요. 다 같아요. 빈집이라고 해서 들어가서 무엇이든 몰래 가져가는 일은 도둑질이에요. 뜯으신 쑥을 내려놓아 주세요.” “미안해요. 이런 일을 도둑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앞서 대여섯 사람은 잔뜩 뜯은 쑥을 내려놓지 않고 다 가져갔어요. 외려 쑥을 더 못 뜯게 한다고 구시렁거렸지요. 이분만큼은 이녁이 잘못한 일이라고 털어놓아 줍니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덧붙여 이야기합니다.


  “쑥을 뜯고 싶으시면 먼저 땅임자를 찾아보고 물어보셔야 해요. 그렇게 물은 뒤에 쑥을 뜯으면 되지요. 쑥을 뜯거나 안 뜯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다른 사람 땅에 들어와서 그곳에 있는 것을 몰래 가져가는 일, 도둑질을 하면 안 되어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시니까 그냥 버려진 땅인 듯 보실 수 있지만, 이 땅은 다 어떤 일을 하려고 이렇게 두는 곳이에요. 부디 넉넉히 살펴주시기를 바라요.”


  ‘빈집’이니 ‘폐교’이니 하면서 쑥이며 나무이며 나물이며 몰래 훔쳐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학교에 옮겨심은 초피나무 여섯 그루는 어느새 몽땅 사라졌습니다. 한두 그루씩 누가 몰래 훔쳐갔어요. 마을 할매나 할배가 훔쳐갔을 수 있고, 오늘처럼 낯선 관광객이 슬쩍 훔쳐갔을 수 있습니다. 세 그루는 초피나무를 옮겨심은 지 며칠 만에 도둑맞았고, 세 그루는 옮겨심은 지 달포쯤 지난 오늘 감쪽같이 도둑맞았습니다. 어쩌면 이 관광버스 관광객이 제가 미처 못 본 사이에 슬쩍 훔쳤을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까지 우리 초피나무를 버젓이 보았거든요.


  빈집이나 폐교라 하더라도 ‘우리 이웃집’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이웃집’ 마당에 함부로 들어와서 무엇을 훔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함부로 들어가서 훔치는 곳은 ‘이웃집’이 아니겠지요. ‘낯선 사람 집’이니까, ‘모르는 사람 땅’이니까 슬그머니 들어와서 훔칩니다. 너나들이를 하는 사이라든지 어머니 밭이라든지 아버지 땅이라면, 또 아이들 땅이나 밭이라면 우리는 함부로 이 땅에 들어가서 훔치는 짓을 안 하리라 생각해요. 이웃집 밭이나 땅일 적에는 이웃이 아무리 먼 데에 있더라도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묻겠지요.


  옆에 있는 낯선 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 훔침질을 부추깁니다. 이런 훔침질을 하려는 마음이 이명박·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뽑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주제넘는 이야기일까요? 낯설거나 낯모르는 사람들 땅이나 밭을 고이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평등이나 평화가 아직 한국에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린다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셈일까요?


  오늘 우리 도서관학교에서 쑥을 훔친 이들은 논둑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떠났습니다. 한 군데에 쓰레기를 모아 놓기라도 했으면 주워서 치우기 나았을 테지요. 또는 비닐봉지 하나에라도 쓰레기를 모아 담았으면 그나마 나았겠지요. 그러나 이들은 이 논둑 저 논둑 그 풀숲에 아무렇게나 빈 깡통하고 나무젓가락하고 비닐봉지하고 담배곽을 버렸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흙을 일구어 거두는 시골 땅에, 논에 밭에 온갖 쓰레기를 내팽개치듯이 버리고 떠났습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요. 이웃집 밭이나 마당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시나요? 이웃집 대문 앞에 쓰레기를 슬그머니 버리시나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또는 아이들이 사는 집 앞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시나요? 2017.5.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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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인가 글쓰기인가



  신춘문예에 소설을 내고 싶다는 젊은 분을 만났어요. 이분이 걱정하는 대목을 듣고서 생각해 보았어요. 이분에 앞서 나라면 어떠한가 하고 말이지요. 우리는 신춘문예나 등단이라고 하는 길을 거쳐야 소설가나 시인이 될 만할까요? 우리는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소설이나 시라는 틀에 맞추어 글을 쓸까요? 신춘문예라는 이름을 얻고 싶다면 신춘문예에 뽑히도록 글을 쓰면 되어요. 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굳이 신춘문예라는 이름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면 스스로 쓰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되어요. 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이 알아준다거나 상금을 받아야 좋은 글이 되지 않아요. 내 글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야 글을 쓰는 보람이 생기지 않아요.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글로 옮기면서 마음에 기쁨이 넘실거리기에 글쓰기(글짓기)라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요. 삶을 쓰듯이 글을 써요. 삶을 짓듯이 글을 지어요. 밥을 지어서 먹듯이 글을 지어서 나누고, 옷이랑 집을 짓듯이 글을 지어서 펼칩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써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이웃이 사랑할 만한 글을 써도 재미있고요. 우리는 스스로 어느 길이 우리한테 기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찬찬히 생각해서 슬기롭게 나아가면 됩니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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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점’하고 ‘책방’은 다르다



  대여점하고 책방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대여점은 책을 빌리는 곳이고,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요. 이 대목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더 벌어지는 자리가 있어요. 책방이 책방 아닌 대여점 구실을 한다면 이곳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못합니다. 똑같거나 엇비슷한 책이 그저 돌고 돌 뿐입니다. 이와 달리 책방에서는 아주 흔한 책이든 아주 드문 책이든, 책 한 권을 사이에 놓고서 책방지기하고 책손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갑니다. 책방은 이야기가 흐르기에 비로소 책방입니다. 책방은 다시 마을책방하고 큰책방을 가를 수 있어요. 마을책방은 책방지기 한두 사람 힘으로 꾸립니다. 큰책방은 책방살림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몇 사람에 ‘직원’이나 ‘알바생’이 있지요. 마을책방을 찾아가는 책손은 언제나 책방지기하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책을 만집니다. 큰책방을 찾아가는 책손은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는 직원이나 알바생하고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이 책을 만집니다. 마을책방에는 오래된 단골이 책방지기하고 이야기를 쌓고 삶을 쌓으며 사랑을 쌓습니다. 큰책방을 다니는 오래된 단골은 이 큰책방 직원이나 알바생이 누가 누구인지 알 턱도 없을 뿐 아니라,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삶도 사랑도 쌓지 않습니다. 마을책방 손님은 책방지기하고 ‘책으로 나누는 마음’을 잔잔하게 피우지만, 큰책방 손님은 큰책방에 그저 ‘실적’을 쌓아 줄 뿐입니다. 대여점이 나쁘다거나 큰책방이 아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여점과 큰책방은 저마다 알뜰히 맡은 몫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대여점하고 큰책방에 없으나 마을책방에 오롯이 있는 이야기하고 삶하고 사랑을 밝히려 할 뿐입니다.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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