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쓰는 만큼×10



  누가 물어요. 어떻게 책값으로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느냐 하고요. 저는 살며시 웃어요. “있잖아요, 저는 책을 되게 조금 사서 아주 적게 읽는답니다. 저하고 댈 수 없이 책을 잔뜩 사서 많이 읽는 이웃님을 알아요. 게다가 지난날하고 대면 요즘 저는 책을 참으로 적게 사서 적게 읽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제 예전 책값 씀씀이가 얼마나 컸느냐며 혀를 빼시는데, 이때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책값으로 쓰는 돈은 살림돈에서 덜거나 빼지 않아요. 처음부터 사서 읽어야 할 책을 즐겁게 사서 읽자고 여겨요. 때로는 어떤 아름다운 책을 사느라 백만 원을 쓰기도 하고, 책집골목에 가서 며칠 사이에 삼사백만 원을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책값을 쓰면서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심느냐 하면, ‘책값 쓰는 만큼×10’으로 살림돈이 새로 들어온다고 말하지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산다고 하는 말은 핑계나 거짓이라고 여겨요. 책값이란, 우리가 새로 지어서 쓰는 돈이에요. 있는 돈에서 쪼개서 책값을 쓰지 않아요. 아직 없지만 앞으로 지어서 건사할 돈으로 책을 장만해요. 아름다운 책을 즐거이 장만해서 읽으며 마음을 가꾸고 삶을 살찌우면, 어느새 ‘책을 장만하는 데에 쓴 돈×10’로 살림돈이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저는 더 생각해 보곤 해요. 우리가 즐겁게 쓰는 돈×10로 새로 즐겁게 살림돈이 들어온다면,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자리에서 똑같으리라고, 이웃돕기나 이웃나눔을 하면서 쓰는 돈 만큼×10로 또 기쁘게 보금자리숲을 가꾸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2018.3.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쥐다



  책쓴이로서는 책이 그이 얼굴입니다. 그리고 책을 쓴 손도 그이 얼굴입니다. 흙을 짓거나 살림을 가꾸는 사람으로서도 두 손이 그이 얼굴입니다. 소꿉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이한테도 두 손이 바로 아이 얼굴입니다. 우리는 얼굴을 보면서도 얼굴을 읽고, 책이나 손을 보면서도 얼굴을 읽습니다. 시나브로 마음을 나란히 읽습니다. 2018.3.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도 Me too!” 하고 외치기 힘들다, 그렇지만



  2016년 11월에 이어 2018년 2월에 “나도 Me too!” 외치는데 더없이 힘듭니다. 이렇게 힘들다니, 지난날에 끔찍한 일을 겪을 적에도 힘들었지만, 이를 털어놓기는 더더욱 힘들어요. 시인이나 연극인한테서 막짓이나 막말을 받아야 했던 분들이 예나 이제나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는가 하고 온몸으로 사무치게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놀자고 하기에 씩씩하게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한 시간 남짓 놀았습니다. 두 아이가 배고플 즈음 더욱 씩씩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밥을 지어서 차렸습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말하는 대로, 여느 날보다 훨씬 상냥하면서 따스한 내가 되려고 힘을 쏟았습니다. “나도 Me too!” 하고 외치는 까닭을 헤아립니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짓밟거나 따돌린 그분들이 똑같은 아픔이나 생채기를 받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고개 숙여 뉘우칠 줄 알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이제 낡은 몸짓이랑 말을 몽땅 털어내면서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거짓 껍데기를 벗기를 바라고, 허울을 내려놓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막짓이나 막말을 일삼은 그분들을 파묻어 버릴 힘이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한 마디 말을 건넬 힘만 있습니다. “그대여 그대가 지난날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나요? 여태 고개 숙여 잘못을 빈 적이 한 차례도 없는 줄 아나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 생각인가요? 이제 그만 넋을 차리시기를 바라요.” 


(숲노래/최종규)




[기사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04169&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기사 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07521&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름 좋은 이



  제 생각입니다만, 이름만 있거나 허울만 좋은 분이 쓴 책은 다 덮으셔도 되리라 느껴요. 우리는 이제 이름값이나 허울 때문에 읽는 책은 내려놓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더욱이 우리 곁에는 우리 스스로 아직 제대로 모르거나 눈여겨보지 못한 상냥하고 아름다운 책이 대단히 많아요. 참말로 이름이나 허울이나 겉멋이나 겉치레 아닌, 제대로 속이 여문 분이 쓴 책이 아니라면 베스트셀러라느니 거장이라느니 뭐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팔리는 책에서는 손을 뗄 때가 되었지 싶어요. 우리부터 달라지면 이 땅에 판치는 티끌이나 먼지를 하나하나 걷어낼 만하리라 봅니다. 2018.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마을 쓰레기



  ‘적폐’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라 합니다. ‘폐단’이란 옳지 못한 흐름이나 일이라고 하지요. 촛불로 정치권력을 끌어내렸으나 아직 정치나 사회를 비롯하여 문화나 지자체 모두 제대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바꿀 수 있을 테고, 어쩌면 한꺼번에 바꿀 수 있을 테지요. 요즈막에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을 놓고서 지난 쓰레기짓을 밝혀 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이승철 시인은 무척 못마땅하다는 뜻을 이녁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승철 시인뿐 아니라 이녁이 함께 어울리는 여러 시인은 예전에 저한테 ‘사내를 성추행하는 문인 어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그때 저를 성추행하고 막말을 일삼은 다른 시인으로 홍일선 시인이 더 있습니다). 그 ‘문인 어른’이라는 분‘들’은 열 몇 해나 스무 해쯤 지난 일을 왜 굳이 요즈음 새삼스레 들추느냐고 지청구를 하는구나 싶어요. 그런데요, 지난날에 그분들 스스로 성추행이나 막말이나 막짓을 뉘우쳤을까요? 지난 열 몇 해나 스무 해를 거치면서 그분들 스스로 고개를 숙이거나 잘못을 빌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셨을까요? 여태 그분들 스스로 한 번이나마 제대로 고개를 숙인 적도 잘못을 빈 적도 새로 거듭나려고 애쓴 적도 보이지 않았으니, 지난날 그분들 손찌검이나 막짓에 몸하고 마음이 다친 이들이 스무 해 안팎으로 삭이고 삭이다가 드디어 터뜨렸습니다. 저는 ‘적폐·폐단’ 같은 말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쓰레기’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책마을 쓰레기를 갈대비로 찬찬히 쓸어서 새봄 기다리는 밭자락에 고이 뿌려서 거름이 되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2018.2.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