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늘



  책이 훌륭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이 훌륭하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책이 눈꼽만큼도 안 훌륭하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맞추어 훌륭해지기도 하고 놀라워지기도 하며 새로워집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보다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으로 읽고 ‘어떤 손’으로 살림을 짓느냐로 갈립니다. 어떤 책에서든 아름다운 숨결을 읽어내어 어떤 자리에서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피고, 어떤 하루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즐거움으로 꽃피울 줄 안다면, 우리로서는 종이책 읽기나 사람책 읽기나 숲책 읽기도 모두 값집니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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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좋은 일인가



  새벽에 고흥집을 나섭니다. 고흥읍에서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타니 텔레비전이 있고, 이 텔레비전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54조 원에 이르는 무역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히며, 해마다 중국이 미국 지적재산권을 수천억 달러에 이를 만큼 훔쳤다고 덧붙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아니, 맞는 말입니다. 중국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지적재산권도 어마어마하게 훔칩니다. 그러나 이를 놓고 한국이나 일본은 중국에 거의 못 따집니다. 더 파고들면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에 짓눌린 채 온갖 살림이며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만, 해방 뒤에는 일본 지적재산권을 어마어마하게 훔쳤습니다. 게다가 일본 지적재산권뿐인가요. 온누리 여러 나라 지적재산권을 ‘한국은 가난한 나라’라는 토를 붙이면서 훔쳐서 썼어요. 이런 일을 일삼아서 떼돈을 거머쥔 출판사가 제법 있습니다. 이제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어쨌든 좋은 일인가요?” 이웃나라 지적재산권을 훔쳐서라도 우리가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참말 어쨌든 좋은 일인가요? 아이들이 달리며 놀다가 넘어집니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까집니다. 피가 철철 흐를 적도 있습니다. 이때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맨 먼저 “너희 몸은 늘 튼튼하다는 마음으로 파랗게 거미줄을 그리렴” 하고 이르고서 꼬옥 안습니다. 살살 달래고서 핏물을 닦고 구멍난 옷을 기웁니다. 밤에 하루를 돌아보며 아이들하고 말을 섞어요. “낮에 놀다가 넘어졌잖니. 많이 아팠을 텐데, 이렇게 아프면서 배울 수도 있어. 너무 서두르지 않았나 하고. 그리고 다쳤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그리고 다쳐서 아플 적에 몸이 어떠한가를 느끼면서 우리 이웃을 더 깊이 살필 수 있단다.” 어쨌든 좋은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배울 수 있다”고 여겨요. 지적재산권 훔침질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고, 오늘 우리가 새롭게 지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울 수 있어요.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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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다



  새벽바람으로 구미 삼일문고에 이야기꽃을 펴려고 가는 길에 돌아봅니다. 시골에서 산 지 여덟 해를 되짚으니, 시골살림이 늘수록 시골이웃이 나란히 늡니다. 인천이나 서울이라는 고장에서 살 적에는 인천이웃하고 서울이웃이 곁에 많았다면, 시골에서 살 적에는 우리 시골마을뿐 아니라 둘레 작은 도시나 시골에 깃든 이웃이 부쩍 늘어납니다.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도 먼 터라 외려 서울길이 가장 빠르다 할 만한데,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서도 으레 여덟아홉 시간쯤 걸리는 고장에 사는 이웃을 만나요. 더 헤아리면 나 스스로 배움길을 걷는 만큼 이웃을 달리 사귑니다. 책만 짓는 살림이 아닌, 숲그림을 품는 살림으로 나아가는 동안, 누구보다 나 스스로 새로 배우고, 이 배움길에 나란히 나선 숱한 이웃을 알아봅니다. 2018.3.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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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 하기 좋은 자리



  어떤 일을 하기에 참으로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어떤 일을 훌륭히 할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바꾸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돈 많고 집 넓은 어버이한테서 태어나서 처음부터 그저 넉넉하게 다 누리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 없고 집 없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나 처음부터 갖은 가시밭길을 걸으며 온통 모자란 채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여기지 않을 뿐더러, 더 좋은 길도 없다고 여깁니다. 다만 우리는 어느 쪽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든 우리 이야기를 쓰고 나눌 수 있어요. 갖은 가시밭길을 걸었으면 이 이야기를 글로도 쓰고 둘레에 밝히면서 나처럼 가시밭길을 걷는 뒷사람이나 젊은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모두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살았으면 이 넉넉한 살림을 곁에 있는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면서 서로 즐겁게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갈 수 있어요. 이리하여 “책집 하기 좋은 자리는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뜸하게 다닌다면 아직 사람이 뜸하게 다닐 뿐입니다. 이제 책이란, 누구나 집이나 일터에서 누리그물로 손쉽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 목 좋은 곳에 책집을 연다 한들 하나도 안 좋다고 여길 만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책이란, 책집이란, 사람들이 품을 들이고 말미를 들여서 골목이며 시골이며 마을이며 느끼면서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며 비를 우산으로 받으면서 찾아가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찾아가서 숲을 배우는 터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책이 그저 상품이나 물건이 아닙니다. 이제는 흔한 상품이나 물건마다 “왜 굳이 이 자리에서 이 마을책집을 가꾸는가를 이웃한테 밝혀서, 책 하나를 만나러 먼먼 골목이며 서울이며 시골이며 마을을 돌고 돌아서 찾아오는 맛이랑 멋”을 함께하자는 마음을 속삭일 수 있습니다. 2018.3.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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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은 책



  사전을 보면 ‘좋다 = 나쁘지 않다’로 풀이하고, ‘나쁘다 = 좋지 않다’로 풀이합니다. 이런 사전풀이가 엉터리인 줄 오랫동안 안 느끼고 살다가 2011년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예 틀린 사전풀이는 아니지만, 어딘가 엉성할 뿐 아니라, 참뜻을 제대로 안 짚지 않았나 하고요. 이때부터 제 삶에서 한 가지가 찬찬히 사라졌으니 ‘나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나쁘지 않은’ 책도 읽지 않기로 합니다. ‘나쁘지 않은’ 사람은 굳이 더 만나지 않기로 합니다. ‘나쁘지 않은’ 길은 참말로 그만 걷기로 합니다. 또렷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하고, ‘좋다’고 여길 수 있는 책만 읽기로 합니다. 내가 만나는 이웃뿐 아니라 나 스스로 이웃님한테 서로 ‘좋은’ 사이가 되자고 다짐합니다. ‘좋다’고 여길 수 없는 길이라면 걸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신문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좋은’ 밥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밥을 먹으며, ‘나쁘지 않은’ 집에서 살지 않을까요? 2018.3.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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