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68) 나중의 1 : 나중의 일

 

그가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을 한층 더해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182쪽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苦痛)”은 “장례식을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이나 “장례식을 감도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손질합니다. “충분(充分)할 정도(程度)로”는 “넉넉할 만큼”으로 손보고, “개발(開發)한 것은”은 “만든 때는”이나 “지어낸 때는”으로 손봅니다.

 

 나중의 일이었다
→ 나중 일이었다
→ 나중이었다
 …

 

  오늘 일어난 일이라면 “오늘 일”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어제 일”입니다. 지난해 겪은 일은 “지난해 일”이에요.

 

 지금 일 / 나중 일 / 지난해 일 / 이듬해 일 (o)
 지금의 일 / 나중의 일 / 지난해의 일 / 이듬해의 일 (x)

 

  올바르며 알맞춤하게 적을 우리 말씨와 말투를 찬찬히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낱말과 낱말을 이어서 글월을 이룰 때에 어떤 토씨를 넣어야 올바른지를 살피고, 군더더기가 될 대목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서 글을 잘 여미어 주면 좋겠습니다.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 가서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을 지은 때는 나중이었다
 …

 

 사람마다 말버릇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말씨로 이야기합니다. 이렁저렁 쓰는 사이에 익숙해진 말투가 있습니다.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는 잘 살리거나 지켜 주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를 살린다고 하면서, 우리 말법을 흐트리거나 깨뜨리거나 흔들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4341.7.13.해/4346.5.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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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례식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을 한층 더해 주기에 넉넉하도록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나중에 지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9) 나중의 2 : 나중의 문제

 

이 순간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계산서는 맨 나중의 문제였다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김성민 옮김-뱅뱅클럽》(월간사진,2013) 233쪽

 

  “이 순간(瞬間)”은 “이때에”로 손봅니다. 글흐름에서 ‘그녀(-女)’는 ‘옆지기’로 손볼 수 있고, 덜어내어 “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처럼 적을 수 있어요. ‘중(中)에서’는 ‘가운데’로 손질하고, “맨 나중의 문제(問題)였다”는 “맨 나중 일이었다”나 “맨 나중이었다”로 손질하면 ‘문제’라는 한자말을 덜 수 있어요.

 

 맨 나중의 문제였다
→ 맨 나중 일이었다
→ 맨 나중이었다
→ 맨 나중에 따질 일이었다
→ 맨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

 

  한 번 손이나 귀나 입이나 눈에 익은 말투는 오래오래 갑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 “잘 가”나 “잘 있어”나 “다음에 또 봐” 같은 인사말을 들려주지 않고 “바이바이(byebye)”나 “안녕(安寧)” 같은 인사말만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인사말만 익숙해요. 어른들이 “살펴 가”나 “살펴 가셔요”처럼 인사하지 않고 “조심해”나 “조심해서 가”처럼 인사한다면,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말에만 익숙할 뿐, ‘살피다’라는 한국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는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한국사람은 예부터 “맨 나중이었다”처럼 말했고, 한자말 ‘문제’를 쓰더라도 “맨 나중 문제였다”처럼 말했어요. 토씨 ‘-의’를 붙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어른들이 자꾸 이러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을 쓰면, 아이들은 이런 말투에 익숙해집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런 말투를 못 듣더라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간 뒤, 또 대학생이 되거나 어른이 된 다음 이런 말투를 둘레에서 자꾸 들으면, 시나브로 이 같은 말투에 젖어들어요.


  우리가 늘 쓰는 말투는 어릴 적부터 들은 말투이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늘 듣는 말투입니다. 내가 쓰는 말투가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한테 스며들고,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이 쓰는 말투가 나한테 스며들어요. 서로 사랑스럽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날마다 사랑스러운 말투로 아름답습니다. 서로 얄궂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자꾸자꾸 얄궂게 쓰는 말투가 퍼집니다. 4346.5.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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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계산서는 맨 나중이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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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8) 변신의 1 : 변신의 시간

 

“변신의 시간이니?”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키르스텐 보이에/박양규 옮김-아빠는 전업 주부》(비룡소,2003) 52쪽

 

  같은 한자말 가운데에도 일본 한자말과 한국 한자말이 있습니다. ‘가족(家族)’이 일본 한자말이라면, ‘식구(食口)’가 한국 한자말입니다. ‘현관(玄關)’은 일본 한자말이고, ‘문간(門間)’이 한국 한자말이에요. 어차피 한자말이니 어느 쪽을 쓰든 달라질 없다 여길 수 있고, 영국사람과 미국사람이 ‘같은 영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영어를 쓰듯, 한국사람도 한국 삶자락과 알맞도록 찬찬히 가다듬을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현관문을 열고”보다는 “대문을 열고”라든지 “문을 열고”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변신(變身)’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 뜻은 “몸의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바꿈”입니다. 한국말로 쉽게 풀어내자면 ‘바꿈’이거나 ‘몸바꿈’이거나 ‘모습 바꿈’입니다.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스스럼없이 쓸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말 없이 말삶 곱게 일구는 사람이 있고, 이러한 한자말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나며 말밭 넓고 깊게 돌보는 사람이 있어요.

 

 변신의 시간이니
→ 변신하는 시간이니
→ 바뀌는 시간이니
→ 확 달라지는구나
→ 확 달라졌는걸
→ 새 사람이 되었네
 …

 

  한자말 쓰느냐 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자말 ‘변신’을 쓰더라도 말틀 잘 가누면 됩니다. 곧, “변신의 시간” 아닌 “변신하는 시간”이나 “변신 시간”처럼 적으면 돼요. 말넋 고이 추스르지 못하면서 토씨 ‘-의’까지 붙이면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바뀌는 모습이니 “확 바뀌었구나?”처럼 손보면 됩니다. “딴 사람이 되었네?”라든지 “멋지게 바뀌었네?”처럼 손보아도 돼요. “못 알아보겠는걸?”이라든지 “눈부시게 달라졌네?”처럼 손볼 수 있어요. 자리와 때를 살펴 말을 합니다. 흐름과 줄거리를 돌아보며 글을 씁니다. 4346.4.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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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 되었네?” 엄마는 문을 열고 나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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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5) 믹스견(Mix犬)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흔히 똥개라고 하지요
《이효리-가까이》(북하우스,2012) 190쪽

 

  ‘믹스견’이라는 낱말을 처음 마주하면서 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똥개’라고 하는 낱말을 잇달아 들으면서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군요. 국어사전에는 안 실릴 낱말이요 영어사전에도 안 실릴 낱말이라 인터넷으로 살펴봅니다. 인터넷에서는 ‘믹스견(Mix犬)’을 “잡종견, 똥개를 순화하여 부르는 말. 영어의 ‘Mix’와 한자의 개 ‘견(犬)’의 합성어”라고 풀이합니다.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 순심이는 골목개예요
→ 순심이는 마을개예요
→ 순심이는 동네개예요
 …

 

  아마 ‘순종’과 ‘잡종’이라는 낱말 때문에 ‘믹스견’ 같은 낱말을 새삼스레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라면 다 같은 개인데, 암컷과 수컷이 같은 갈래 아닌 다른 갈래끼리 붙어 낳은 개라서 조금 더 부드럽고 따스하게 가리키려고 이런 낱말을 지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피 섞인 개’를 ‘똥개’라고 가리키는 일은 그리 알맞지 않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똥개란 똥을 먹는 개일 뿐, 피가 섞인 개를 가리킬 수 없어요. 게다가 지난날 똥개가 먹던 똥은 나쁜 똥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서 풀을 먹던 시골사람이 눈 풀똥을 먹는 개이니, 하나도 나쁠 개가 아니지요. 흙을 살리고 풀과 나무를 북돋우는 똥은 아주 값진 거름이에요.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흙을 살찌워 씨앗을 심고 거두니,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눈 똥을 다시 먹는 셈입니다. 똥개만 똥을 먹지 않아요.


  곧, ‘믹스견’이라 한다면 ‘똥개’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여길 수 없어요. 한자말 ‘잡종(雜種)’을 부드럽게 가리키자 하는 낱말로 여겨야 할 뿐입니다.


  한국말에는 피 섞인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한 가지 있어요. 바로 ‘튀기’입니다. ‘튀기’는 ‘특이’라는 옛말이 꼴을 달리한 낱말이요, 이 낱말은 “수말과 암소, 수소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짐승”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래서, 버새나 노새 같은 짐승이 바로 ‘튀기’입니다. 무언가를 깎아내리는 낱말이 아니고, 그저 ‘갈래 다른 짐승이 만나 태어난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일 뿐이에요.


  더 따진다면, 짐승을 가리킬 때에 쓰는 낱말이니, 이 낱말을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면 얄궂을 수 있겠지요. 다만,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을 가리켜 ‘꽃’이라고도 하고 ‘나무’라고도 합니다. 사내를 가리켜 ‘수컷’이라고도 하고 가시내를 가리켜 ‘암컷’이라고도 해요. ‘새끼’는 짐승이 낳은 어린 목숨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그런데 ‘새끼’라는 낱말을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처럼 쓰기도 해요. 얄궂게 거친 말을 하면서도 쓰지만, 스스로 따사롭고 좋은 마음이라 한다면, 푸나무 가리키는 낱말이든 짐승 가리키는 낱말이든 스스럼없이 즐겁게 쓸 만해요.


  안타깝다면, ‘튀기’라는 낱말, 곧 짐승 가리키는 이 낱말을 한겨레가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쓸 적에 얄궂은 마음이 되기 일쑤라, 자칫 이웃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이 생기고 말아요.

 

― 골목개, 마을개, 시골개, 동네개, 길개(길강아지)

 

  영어와 한자말 섞은 ‘믹스견’ 같은 낱말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더 좋겠어요. 더 부드럽고, 더 알맞으며, 더 쉽고, 더 따사롭게 가리킬 만한 이름 하나 즐겁게 빚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한결 나으리라 느껴요.


  길에서 살아가기에 ‘길고양이’이듯, 개한테도 ‘길개’라 할 수 있습니다. ‘길개’라는 낱말 느낌이 썩 내키지 않다면 ‘길강아지’라 할 수 있어요. 골목고양이나 시골고양이나 마을고양이처럼, ‘골목개’나 ‘시골개’나 ‘마을개’ 같은 이름을 써도 잘 어울려요. 굳이 ‘피가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를 따지려 한다면, 말 그대로 ‘섞이다’라는 낱말을 쓰면 돼요.


  스스로 꾸밈없는 마음 되어 꾸밈없는 말을 나누면 좋겠어요. 스스로 따사로운 마음 되어 따사로운 말을 주고받으면 좋겠어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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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1) 사전적 1 : 게릴라의 사전적 의미는

 

게릴라의 사전적 의미는 “정규군이 아닌, 소규모의 무장 집단이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전법, 또는 그 부대”이다
《오연호-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2004) 33쪽

 

  ‘의미(意味)’는 ‘뜻’으로 다듬습니다. “소규모(小規模)의 무장(武裝) 집단(集團)이”는 “무기를 갖춘 작은 무리가”로 손보고, “적의 후방(後方)을 교란(攪亂)하는 전법(戰法)”은 “적 뒤에서 흔드는 싸움법”으로 손보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사전적’이라는 ‘-적’붙이 한자말은 안 실립니다. ‘사전’은 한자를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두 가지 낱말이 있다 합니다. 먼저, ‘사전(辭典)’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 하고, “영어 사전”이나 “모르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았다” 같은 자리에 쓴다 합니다. ‘사전(事典)’은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이요, “한국 민속 사전”이나 “관혼상제 사전” 같은 자리에 쓴다 하는군요.


  이 두 가지 ‘사전’을 알맞게 나누어 쓰면 되겠지요. 그런데 조금 더 쉽게 풀어내어 쓸 길은 없을까 궁금해요. 한자를 아는 이라 하더라도 ‘辭典’과 ‘事典’을 어떻게 달리 써야 하는가를 쉬 가누기 어려워요.


  가만히 돌아보면, 지난날 국어학자는 ‘辭典’을 ‘말광’이나 ‘말모이’로 풀어내어 쓰곤 했어요. 요즈음에는 이런 낱말을 안 쓰는데, 이러한 쓰임새를 살피면, ‘辭典’은 ‘말책’으로 다듬을 만합니다. 그리고 ‘事典’은 ‘일책’이나 ‘삶책’으로 다듬어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쓰는 말을 다루기에 ‘말책’이 되고, 사람들이 하는 일이나 누리는 삶을 다루어 ‘삶책’이 돼요.

 

 게릴라의 사전적 의미는
→ 게릴라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 게릴라 낱말풀이는
→ 게릴라 낱말뜻은
→ 사전에 나온 게릴라 뜻은
→ 사전에 실린 게릴라 풀이는
 …

 

  ‘말책’이란 ‘낱말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전을 편찬하다”라면 “낱말책을 엮다”로 손볼 수 있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았다”라면 “모르는 낱말뜻을 낱말책에서 찾았다”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쉽게 쓰지 않으면 말이 참 어려워요. 때로는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알맞게 쓰고 바르게 쓰는 일 못지않게 쉽게 쓰고 깔끔하게 가눌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퍽 예전부터 쓰던 한자말이라서 그대로 둘 때가 한결 낫다면, 이 한자말들 쓰임새가 얼마나 알맞는가를 곰곰이 살피는 한편, 따로 한자를 밝히지 않고도 뜻과 쓰임새가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는 낱말을 골라서 써야 합니다. 이는 토박이말도 마찬가지라, 제아무리 깨끗하고 살갑다 할 만한 토박이말이라 하여도, 따로 묶음표를 치면서 알려 주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운 토박이말이라 할 때에는 우리한테 알맞거나 올바르지 않습니다. 영어도 그래요. 꼭 영어라서 쓰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다. 쓸 만한 낱말이라면 영어든 한자말이든 쓸 노릇입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이어야 하고, 따로 붙임말이나 묶음표말이 없이도 누구나 선선히 받아들일 만한 낱말이어야 합니다.

 

→ 게릴라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서 이러저러하게 풀이한다
→ 게릴라 말뜻은 국어사전에 이러저러하게 나온다

 

  군더더기는 군더더기입니다. 비계는 비계입니다. 군더더기도 빛을 볼 때가 있고 비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튼튼한 뼈대와 단단한 속살이 없이 군더더기와 비계만 있다면 말다운 말이나 글다운 글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뿌리를 두고 우리 살갗에 와닿는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에 바탕을 두며 우리 마음밭에 씨앗 하나 되는 글을 쓰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을 다룰 때도 있으나 지식만 다루는 말이 아닙니다. 정보를 담지만 정보만 담는 글이 아닙니다. 우리 넋을 고이 실어야 하고, 우리 얼을 고스란히 담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을 널리 키워야 하고, 우리 마음을 깊이 가꾸어야 합니다. 토박이말이든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말다움을 알뜰히 갖추고 글다움을 살뜰히 추스르면서 참다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자리잡아 나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37.8.31.불/4342.2.5.나무/4346.4.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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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라는 낱말은 “정규군이 아닌, 무기를 갖춘 작은 무리가 적 뒤에서 흔드는 싸움법”을 뜻한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372) 사전적 2 : 오지란 사전적 의미로는

 

오지란 사전적 의미로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내륙에 있는 땅’을 뜻한다
《이대우-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도솔오두막,2006) 94쪽

 

  ‘의미(意味)’는 ‘뜻’으로 다듬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기글 끝에 ‘뜻한다’라는 낱말이 보이는군요. ‘의미’와 ‘뜻’을 겹으로 썼으니, 앞쪽에서 털어내 줍니다. ‘해안(海岸)’은 ‘바닷가’로 손보고, ‘내륙(內陸)’은 ‘뭍’으로 손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 사전 풀이로는
→ 사전 뜻풀이로는
→ 사전을 찾아보면
→ 사전을 뒤적이면
 …

 

  ‘오지(奧地)’라는 낱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몰라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았다는 보기글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이 낱말이 나옵니다. 보기글대로 ‘멀리 떨어져 내륙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두메’라는 토박이말로 고쳐쓰라고 덧답니다.


  그래요, 한문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분들한테는 ‘오지’나 ‘奧地’ 또는 ‘오지(奧地)’가 익숙하거나 알맞다고 느끼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 말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두메’나 ‘외딴 곳’이나 ‘두메산골’이나 ‘구석(구석자리)’ 같은 낱말이 익숙하거나 알맞다고 느낍니다.

 

→ 오지라는 낱말은 뜻이 이러저러하다
→ 오지는 이러저러한 뜻이라고 한다
→ 오지는 이러저러한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라고 한다
→ 오지는 사전에 이러저러한 곳이라고 실려 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만한 낱말이라면 얼마든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쓰는 낱말이라 하더라도 올바른 쓰임새에 따라 쓰는지를 헤아려 보고자, 틈틈이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네 국어사전은 우리 말과 글을 얼마나 올바르게 담아내는가요. 국어사전을 엮는 우리네 학자님들은 얼마나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거나 아끼는가요. 국어사전을 뒤적이는 우리들 여느 사람은 우리 말과 글을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하게 쓰고자 마음을 기울이는가요. 4342.2.5.나무/4346.4.18.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지라는 낱말은 “바닷가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뭍에 있는 땅”을 뜻한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62) 사전적 3 : 사회적 의미와 사전적 의미

 

‘일기’에 대한 사회적 의미는 사전적 의미와 조금 다르다
《황선미-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38쪽

 

  “‘일기’에 대(對)한”은 “‘일기’를 가리키는”이나 “‘일기’를 일컫는”으로 손질해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보다 “사회적 의미”와 “사전적 의미”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리송합니다. 왜 이렇게 글을 써야 할까요. 이렇게 글을 써야, 사회에서 바라보는 눈길과 국어사전에 실린 말풀이를 잘 견줄 만한가요. 곰곰이 헤아려 보면, 이 보기글은 한국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무엇에 대한 이런 것과 저런 것은 조금 다르다’와 같은 꼴로 쓴 글인데, 영어 번역투인지 일본 말투인지 알쏭달쏭합니다. 한국말로 옳고 바르게 적자면, ‘이렇게 보는 무엇과 저렇게 보는 무엇은 조금 다르다’와 같은 꼴이 되어야지 싶어요.

 

 ‘일기’에 대한 사회적 의미는 사전적 의미
→ 사회에서 보는 ‘일기’와 국어사전에 실린 ‘일기’ 말풀이
→ 사회에서 말하는 ‘일기’와 사전에서 말하는 ‘일기’
→ 사람들이 얘기하는 ‘일기’와 사전이 말하는 ‘일기’
 …

 

  “사전적 의미”라는 말마디도 “국어사전적 의미”라는 말마디도 한국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말은 ‘말뜻’이나 ‘말풀이’나 ‘뜻풀이’입니다. 단출하며 쉽고 또렷한 한국말을 젖히고 “사전적 의미” 같은 말마디를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안 쓰는 바람에 “사전적 의미”와 나란히 “사회적 의미” 같은 말마디까지 쓰고 맙니다. 이 보기글이라면, “사람들이 일기를 느낄 때와 말뜻은 조금 다르다”라든지 “사람들이 일기를 보는 눈과 말풀이는 조금 다르다”처럼 쓰면 넉넉해요. 해야 할 말은 쉽게 하고, 나눌 생각은 넉넉히 나누도록 하면 즐거워요. 애써 말을 꼬거나 뒤틀지 않아도 됩니다. 4346.4.18.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기’는 사전에 실린 ‘일기’ 말뜻은 조금 다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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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4 : 결자해지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 근본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부모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소년 자신이다
《천종호-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 46쪽

 

  “근본(根本) 원인(原因)이야”는 “까닭이야”나 “그 일이야”나 “그 일이 생긴 까닭이야”나 “그런 일이 터진 까닭이야”로 손봅니다. ‘일단(一旦)’은 ‘먼저’나 ‘무엇보다’나 ‘누구보다’로 손질하고, “부모(父母)와 가족(家族)에게”는 “부모와 식구한테”나 “어버이와 식구한테”로 손질하며, ‘심려(心慮)’는 ‘걱정’이나 ‘근심’으로 손질합니다. “물의(物議)를 일으킨 것은 소년 자신(自身)이다”는 “물결을 일으킨 쪽은 바로 소년이다”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소년이다”로 다듬어 봅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는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해결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곧, “스스로 맺고 푼다”는 뜻이고, 이와 같은 뜻 그대로 적을 때에 가장 쉽고 또렷합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
→ 맺은 사람이 푼다고 했다
→ 잘못한 사람이 푼다고 했다
→ 잘못한 사람이 바로잡는다고 했다
→ 엎은 사람이 주워담는다고 했다
→ 저지른 사람이 추스른다고 했다
 …

 

  사람들한테 낯익지 않거나 쉽지 않은 영어를 쓰는 이들은 으레 ‘한글로 적은 영어’ 앞뒤에 ‘알파벳으로 적는 영어’를 붙입니다. 사람들한테 낯설거나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이들은 어김없이 ‘한글로 적은 한자말’ 앞이나 뒤에 ‘한자로 밝혀서 적는 글’을 달아 놓습니다.


  ‘결자해지’라 한글로 적은 뒤, 곧바로 ‘結者解之’라 한자를 붙인 보기글입니다. 이렇게 적으면 사람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글을 쓰면 글쓴이 뜻을 사람들이 더 널리 헤아릴 수 있을까요.


  한자를 알아야 말뜻을 알 만한 한자말이라 하면, 사람들이 한자를 알아야 이 한자말 뜻과 쓰임을 압니다. 곧, 사람들이 한자를 모르면, 이렇게 적은 글월을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읽을 수 없는 글이고,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 글을 읽지 말라는 뜻이 되고 맙니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한테 영어를 배우라는 뜻으로 온갖 영어를 글에 끼워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말 모르는 사람한테 일본말을 배우라는 뜻으로 갖은 일본말을 글에 끼워넣으면 어떻게 되나요. ‘똘레랑스’라든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프랑스말이 어느덧 한국 사회로 깊이 스며들었는데, 아직 이런 프랑스말 모르는 한국사람 제법 많아요. 그런데, 한국사람이 꼭 이런 프랑스말까지 알아야 ‘똘레랑스’를 할 수 있거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할 만한가요. 한국사람 누구나 알아듣고 즐겁게 받아들이게끔 쉽고 또렷한 한국말을 찾거나 빚어서 널리 나누어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4346.4.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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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은 사람이 푼다고 했다. 그런 일이 터진 까닭이야 어찌되었든 먼저 부모와 식구한테 걱정을 끼치고, 사회에 물결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소년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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