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와 대구 마실을 할까 말까 아직 망설인다.
마실을 하려면 바로 오늘 해야 한다.
아침 아홉 시에 면소재지 기름집에서
우리 집 보일러 기름 넣으러 온다.
아무래도, 마실을 가더라도
기름을 제대로 넣는가 지켜보고 나서야지 싶다.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시골에서는 기름을 10리터나 20리터 덜 넣곤 한다.
올 2월에 시골 어느 기름집 일꾼이
20리터 넘게 기름을 덜 넣고 간 적 있다.
나는 보일러 기름통에 눈금을 그렸기에
눈금대로 안 들어가면 속인 줄 뻔히 알 수 있다.
아무튼.
모든 집일을 혼자 건사하는 살림이라서
진주와 대구를 마실하느라
하룻밤 밖에서 자고 들어온다면
아이들 밥 먹이기나 놀리기나 여러 가지를
제대로 살필 수 없으니
좀처럼 집에서 떠날 마음이 없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있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이야기를 일구자면
바로 오늘 11월 14일에
진주를 거쳐 대구에 가야 한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스스로 핑계를 만들곤 한다.
'아무래도 은행계좌에 돈이 하나도 없어 1인잡지도 못 찍는데,
마실 다녀올 찻삯하고 책값이 어디 있겠어' 같은 핑계.
그런데 이런 핑계를 대면, 그야말로 졸졸 굶듯
고달픈 살림이 된다.
그래서, '돈 없어서 마실 못 간다'는 핑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아이들'을 핑계로?
이 또한 옳지 않다.
아이들은 스스로 잘 놀고, 스스로 잘 챙길 줄 안다.
그러면 무얼 핑계로 대나?
아, 아무것도 핑계를 댈 수 없다.
모두모두 잘 풀릴 일들만 있으니
이것저것 둘러댈 수 없다.
큰아이와 같이 갈까, 두 아이 데리고 갈까,
이래저래 생각해 보다가.
진주와 대구를 다니는 일은
두 도시 헌책방 너덧 군데를 한꺼번에 몰아서
후다닥 돌아본 뒤, 대구에서 사진책 만드는 분들 만나는 일인데
아이들이 좀 재미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아버지와 다니는 마실이 아이들한테 재미없어질 테니
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큰아이만 데리고 갈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작은아이가 너무 서운해 하고 쓸쓸해 하겠구나 싶어
이렇게도 못 한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동생을 안 데리고
저 혼자만 데리고 가면
서운해 하고 쓸쓸해 한다.
그러니까, 길은 하나.
볼일 봐야 하면 아버지 혼자 바지런히 볼일 보고
즐겁게 돌아올 노릇이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