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장만했는지 모르는 책읽기



  예전부터 책을 장만할 적에는 ‘오늘 읽을 책’을 가장 눈여겨보는데, 이 다음으로는 ‘모레 읽을 책’을 함께 살펴본다. 아무리 큰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이라 하더라도 머잖아 판이 끊어질 수 있으니, ‘오늘 바로 읽을 책’이라고 여기지 않더라도 ‘앞으로 틀림없이 찾아서 읽고 싶다고 여길 책’이라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했다.


  스무 해 남짓 앞서 나온 시집들을 요즈음 하나씩 찾아서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시집들은 스무 해 앞서 어느 새책방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시집들은 어느 새책방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일쑤이다. 일찌감치 장만해 놓았으니 예전에는 안 읽었어도 오늘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을 굳이 장만하지 않았다면 내 눈에 뜨일 일이 없으니 오늘도 앞으로도 읽을 까닭이 없을 수 있다.


  스무 해 앞서 이 시집들을 장만할 적에는 ‘오늘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스무 해 남짓 지난 오늘은 ‘오늘 읽는 책’이 된다. 예전에는 ‘오늘’이 아니었고, 오늘은 ‘오늘’이 된다. 다만, 이 책들을 가만히 살피니, 언제 장만했노라 하는 글월을 한 줄조차 안 남기기도 했다. 그냥 장만하기만 하고 아주 잊은 책이라 할 만하다. 언제 장만했는지 모르는 책이라고 할 만하다. 오늘 나는 이 책을 손에 쥐어 읽지만, 열 해인지 스무 해인지 흐르는 동안 ‘오늘 나한테 없던’ 책인 셈이다. 4348.4.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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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님이 '고무신' 이야기를 여쭈셔서

문득 생각해 보니,

고무신 이야기로 글을 써 보면

재미있겠다고 여겨

고무신을 신는 즐거움을 한 번 적어 봅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을 건드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


고무신과 책읽기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에 고무신을 신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도 틀림없이 고무신을 팔았을 테지만, 내 어버이가 나한테 고무신을 신으라고 사서 신긴 일이 없고, 내 동무 가운데 고무신을 신은 아이도 없습니다. 동네에서도 고무신을 발에 꿴 사람을 볼 수 없었어요. 어쩌다가 시골에 갔을 적에만 드문드문 고무신을 보았을 뿐, 이 신을 딱히 내가 신어야 한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2003년에 이르러 비로소 고무신을 처음으로 신습니다. 이무렵부터 시골에서 일을 했기에 ‘시골에서 흙을 밟으며 지내는 시골사람’이라면, 운동신이나 가죽신이 아닌 고무신을 발에 꿰어야겠다고 느꼈어요. 저절로 고무신을 찾았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시골에서는 다른 신을 신으면 퍽 성가십니다. 으레 흙길을 다니고 숲길을 걸으니 운동신이나 가죽신은 안 어울립니다. 고무신은 흙이 잔뜩 묻어도 털기에 수월하고 빨기에도 쉽습니다. 게다가 고무신은 빨고 나면 곧 말끔하게 말라요.


  무엇보다 고무신은 신바닥이 아주 얇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을 발에 꿰고 걸으면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짙게 느낄 수 있어요. 고무신을 한 번 꿴 뒤로는 이 느낌이 아주 사랑스럽고 즐거워서 다른 신을 꿸 생각을 한 번도 안 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스러운 흙바닥이 살갑습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다운 딱딱한 바닥이 차갑습니다. 살가운 시골바닥을 느끼면서 노래하고, 차가운 도시바닥을 느끼면서 춤을 춥니다. 어느 곳에서든 이 지구별을 느끼도록 북돋우는 고무신이기에, 내 발은 늘 고무신차림이요, 내 몸은 언제나 고무신과 함께 노래합니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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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책읽기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러구러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는 이들은 으레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술을 마셔야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될까요?


  술을 마셔야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된다면, 과자를 먹어도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됩니다. 그리고, 술을 안 먹고 과자를 안 먹어도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은 잘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마음’이고 ‘어떤 뜻으로 하루를 열고 닫으면서 삶을 지으려 하는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냥 가볍게 한 잔을 하든 신나게 열 병을 마시든, 이러한 ‘마실거리’가 ‘술’이 되어서 내 길(문화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또는 공부이든 훈련이든 연습이든)을 가로막는다면, 이는 ‘내 뜻(의지)’이 아니니,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싶다(버릇, 취향)’는 생각, 그러니까 ‘마시고 싶다’나 ‘먹고 싶다’ 같은 생각은 우리가 활활 불살라서 태울 ‘뭇느낌(경험, 감정 산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여느 때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도 저절로 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그런데, ‘그냥 마시던 바람’을 깊이 생각하고 넓게 헤아리면서 마시면, 내 몸은 달라집니다. 바람 한 줄기를 기쁘게 받아들여서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내어 활활 불태우면서 신나게 내뿜을 수 있다면, 우리 몸은 새롭게 깨어납니다. 언제나 ‘내 뜻(의지)’을 새롭게 살려서 숨을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숨쉬기는 버릇(습관적)처럼 할 수 없습니다. 술 한잔은 버릇처럼 마실 수 없습니다. 숨으로 바람 한 줄기를 마실 적에는 ‘버릇’처럼 마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새롭게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 ‘숨을 쉬는 내 삶’에서 ‘술을 함부로 마시’지 말 노릇입니다. 술이 아닌 다른 것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냥 ‘버릇’처럼 마시거나 맞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술이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지요. 술뿐 아니라 다른 몸짓에서도 제대로 나 스스로를 다스리거나 가눌 줄 알아야 합니다. ‘술’은 여러 가지 ‘내 몸짓’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보기일 뿐입니다. ‘글쓰기를 앞두고 한잔 했네’라든지 ‘글을 잘 쓰려고 한잔 했다’ 하고 생각했다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기쁜 몸짓이 아니라면, 어떤 몸짓이든 아예 안 하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느껴요. 기쁘게 한잔을 마시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활활 태우고, 아름답게 웃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새 숨결’로 거듭나야 한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새롭게 깨어나서 내 삶을 새로 짓는 발걸음이 될 때에는,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우리 몸은 언제나 눈부시게 튼튼합니다. 그러니 문화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술을 마셔야 뭔가 더 잘 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려 한다면, 내 몸과 마음을 새로운 피로 깨어나게 하겠다는 깊고 단단한 ‘내 뜻’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내 뜻’이 없이 마시는 모든 술은 화학약품을 벌컥벌컥 들이켜서 내 삶을 망가뜨리려 하는 몸짓하고 똑같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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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예방 군내방송’ 책읽기



  두 달쯤 되는구나 싶은데, 고흥군에서는 아침 낮 저녁에 한 차례씩 ‘군내방송’을 한다. 군내방송이란 무엇인가 하면, 군청에서 면사무소로 녹음파일을 보내 주어, 이 파일을 면사무소에서 마을마다 큰소리로 틀어대는 방송이다. 시골은 넓고 사람이 적으니 곳곳에 스피커를 붙여서 마을방송을 하는데, 이 마을방송은 면사무소 한쪽에서도 할 수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고흥군이 하는 군내방송은 ‘산불예방’이다. 마을 어르신더러 논밭에 불을 지피지 말고,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방송을 한다. 감시를 해서 ‘적발’을 하면, 불을 피운 사람은 100만 원∼1000만 원까지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산에 불을 내면 감옥에도 갈 수 있단다.


  군내방송은 ‘계도’도 ‘홍보’도 아니고 ‘협박’이다. 그런데, 이런 군내방송을 지난 두 달 동안 날마다 세 차례씩 억지로 들어야 했다. 이렇게 하면 불을 안 지필까? 군내방송이 흐르는 때에도 논둑이나 밭둑을 태울 분은 스스로 알아서 다 태운다. 안 그러면 어쩌겠는가. 게다가 논밭둑을 태우는 삶은 아주 옛날부터 이어졌다. 이를 하지 말라고 한들 안 할 수 있을까. 이런 군내방송을 할 겨를과 품이 있다면, 시골마을이 넓어도 면소재지 일꾼이 마을마다 돌면서 ‘날짜를 맞춰서 불 지피기를 지켜보’면서, 잘 지펴서 태울 수 있도록 하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느낀다.


  그나저나, 군청에서 산불예방 군내방송을 하면서도 정작 멧자락을 함부로 깎아 관광도로를 내기 일쑤요, 골짜기에 시멘트를 마구 퍼부어 4대강 지류사업 따위를 일삼는다. 마을 어르신을 윽박지르는 군내방송은 그만두고, 군청이 저지르는 엉터리 개발사업을 그쳐야 ‘푸른 숲’을 가꾸거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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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받으며’ 책읽기



  몇 해 앞서 민방위훈련을 받아야 할 적에, 이 훈련에 가면 으레 책을 몇 권 챙겨서 읽었다. 민방위훈련이라고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무슨 방공호 같은 데에 우리를 여러 시간 가두고 비디오를 틀어 주는데, 삶을 북돋우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이야기만 가득했다. 이리하여, 나는 민방위훈련을 받을 때마다 책을 신나게 읽었는데, 이제 민방위훈련을 받을 일이 없으나, 오늘 순천에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해서, 이 교육을 받는 자리에서 책을 두 권 읽는다.


  여러 사람을 모여서 자리에 앉힌 뒤 하는 ‘교육’은 무엇을 헤아릴까? 무엇을 가르치려는 생각일까? 미리 나누어 준 자료꾸러미에 다 나온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두 시간을 채우려 하는 교육은 무슨 뜻일까? 아무런 아름다움도 기쁨도 보람도 들려주지 못하는 ‘교육’은 우리한테 무엇일까? 오늘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어른들(교사)은 참말 무엇을 말하는 셈일까?


  나는 학교(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교과서 밑에 다른 책을 숨겨서 읽기 일쑤였다.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없는 ‘교육’을 마흔 줄이 넘은 나이에도 받으면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니, 어느모로 보자면 쓸쓸했지만, 홀가분하게 책에 빠져들 수 있기도 했으니 고맙기도 했다. 그냥 그렇다. 4348.3.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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