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마음으로 책읽기



  나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종교를 바란 적조차 없습니다. 성경이나 꾸란이나 불경을 읽더라도, 종교가 아닌 삶넋을 헤아리려는 뜻으로 읽습니다. 누구 말을 빌지 않더라도, 종교라는 틀(질서)은 우리 마음을 옭아매면서 새로운 숨결로 가도록 북돋우지 않는 굴레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에 예부터 ‘하느님’이 있던 대목을 언제나 새롭게 떠올립니다. 한겨레한테는 아무런 종교가 없습니다. 임금님한테는 유교이든 불교이든 내세워서 사람들을 억누르려고 한 정치권력이 있었겠지만, 여느 시골자락 수수한 사람한테는 종교도 권력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없었습니다. 여느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사랑 하나를 씨앗으로 심어서 가꾸는 삶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슴에는 하느님이 있다고 느낍니다. 모든 사람들 가슴에는 하느님이 고요히 잠든 채 우리가 불러서 깨우기를 기다린다고 느낍니다. 우리 가슴에 고요히 깃들어 곱게 잠자는 하느님은, 우리가 불러서 깨우는 그날 싱그럽게 노래하면서 일어날 테고, 꽃으로 피어나면서 아름다운 숲노래를 들려주리라 느낍니다.


  책을 읽는 마음을 말한다면, 아무래도 ‘하느님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내 가슴에서 숨쉬는 하느님과 같은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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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책읽기



  마루야마 겐지라고 하는 분이 이녁 꽃밭을 가꾸면서 ‘꽃’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해’와 ‘빗물’을 바라보는 동안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은 셈이라고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나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은 셈이라고 느낀다. 먼먼 옛날부터 집에서 살림을 지은 사람들 누구나 어마어마하구나 싶은 책을 읽은 셈이지 싶다.


  한문을 익혀서 중국책을 읽을 때에만 ‘책읽기’가 되지 않는다. 임금님 곁에서 나랏일을 보아야 ‘지식’이 되지 않는다. 집일을 하고 집살림을 돌보는 모든 몸짓이 책읽기이면서 지식이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하루가 삶이자 사랑이면서 배움이고 책이요 지식이다.


  우리는 언제나 ‘책을 읽는’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삶을 누리고 즐기고 짓고 가꾸고 일구고 가다듬고 거느리면서 다스리기 때문이다. 종이책도 책이지만, 종이에 얹지 않고 마음에 얹어서 나누는 삶책도 책이다. 삶책을 슬기롭게 읽을 때에 철이 들고, 철이 들 때에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난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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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책읽기



  아이들이랑 곁님하고 이틀에 걸쳐서 퍽 오래 걸었다. 자동차가 안 다니는 길만 골라서 논둑길과 숲길을 걸었다. 이 길을 걷고 난 뒤 사흘에 걸쳐서 생각에 잠겨 본다. 어떤 길이 걸을 만한 길일까? 자동차가 많이 달린다면 아무래도 걷기에는 안 좋겠지. 그러나, 자동차 때문에 안 좋은 길이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내 마음에 따라서 좋음과 싫음이 갈린다. 마음이 넉넉하거나 푸근하거나 사랑스러우면, 어떤 길을 걷든 즐거우면서 기쁘다. 마음이 안 넉넉하거나 안 푸근하거나 안 사랑스러우니, 좋은 길이라는 데를 걸어도 즐거움이나 기쁨이 안 솟기 마련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잘 자라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할 뿐 아니라, 풀내음과 나무내음과 꽃내음이 흐드러지는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 아름다운 길은 누가 지었을까? 이 아름다운 길은 어떤 손길로 태어났을까?


  바람이 어루만지고 해님과 흙과 빗물이 일군 숲길을 바라본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숲짐승이 골고루 얼크러지면서 함께 지은 숲길을 바라본다. 나는 마음 가득 기쁜 사랑을 담을 때에 기쁜 삶이 되고, 나와 이웃인 수많은 목숨붙이는 저마다 기쁘게 노래할 때에 아름다운 길, 이른바 ‘걷고 싶은 길’을 함께 짓는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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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을 모는 놈들은 말이지



  오늘 하루 곁님이랑 두 아이랑 바다마실을 다녀왔다.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골버스가 서는 자리 바로 옆에 어떤 분이 자가용을 세웠다. 이곳에 있는 면소재지 마트에 들러서 뭔가를 사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지, 이 ‘시골버스 서는 곳’이면서 마트 건너편인 자리에는 주차장이 있다. 예전에 은행이 있던 자리이기도 해서 주차장이 제법 넓다. 주차장에 차를 댈 자리가 비었다. 널널하다. 그런데, ‘마트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자동차를 엉성하게 길가에 댄다. 시골버스가 서야 할 자리에 댄다. 3분쯤 뒤에 버스가 들어올 텐데, 이 사람은 ‘제 볼일을 곧 마치고 돌아올 생각’인 듯하다.


  버스를 타는 자리 코앞에다가 자가용을 세우니, 버스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내 눈길이 막힌다. 자가용을 아무 데에나 세우는 사람은 이런 대목을 알 길이 없겠지. 자가용으로 다니니까 버스가 어디로 다니는지, 버스가 언제 드나드는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살피지 못하리라.


  ‘자가용을 모는 놈들이 바라보는 눈길’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버스를 기다리는 김이기도 하고, 이놈은 왜 여기에 자동차를 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아니, 이 자동차는 무슨 일로 내 눈길을 가로막으면서 저 자리에 섰을까 싶기도 했다.


  곰곰이 헤아려 보니, ‘자가용을 모는 놈’이란 여러모로 눈이 좁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자동차로 달릴 길을 보느라 다른 것을 살필 틈이 없다. 자동차를 세울 자리를 보느라 둘레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거나 돌아볼 틈이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을 탓하거나 나무랄 일이 없이 이 사람은 이러한 삶이로구나 하고 문득 깨닫는다. 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낀다. 보는 대로 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한다. 그런데 ‘좁은 눈길’이란 또 뭘까? 자동차를 모는 ‘놈’이 좁은 눈길이라면, 얼마나 좁은 셈이고, 삶이나 눈길이나 마음을 놓고 뭐가 좁다고 할 만할까? 이 자동차를 보면서 ‘저놈!’ 하고 여기는 내 마음이나 생각이나 눈길이야말로 좁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러한가 하면, 나만 이렇게 자동차를 볼 뿐, 곁님이나 아이들은 자동차를 보지 않는다. 세 사람은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서 과자를 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웃고 논다. 이 자동차를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 곁님이랑 아이들이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놀듯이, 나 스스로 즐기거나 누릴 삶을 스스럼없이 즐기고 멋지게 누리면 된다. 자동차야 저 알아서 여기에 섰다가 저기로 떠나지 않겠는가.


  다시 헤아리자면, 자동자(자가용)를 모는 사람은 놈도 님도 아니다. 자동차를 문득 본 사람은 님도 놈도 아니다. 나는 버스가 들어올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살펴보다가 자동차가 내 눈길을 가렸기에 ‘저 녀석 뭔데 내 눈앞을 가리지?’ 하고 느꼈을 뿐이고, 이 자동차는 버스가 들어오기 앞서 아주 말끔히 사라져 주었다.


  재미있다. 재미있네. 이리하여, 나는 곁님이랑 두 아이랑 노래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몸이 아주 지쳐서 저녁도 안 차리고 만두를 구워서 저녁으로 삼아 신나게 먹는다. 영화를 함께 보고 나란히 곯아떨어졌다. 4348.5.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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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책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쓴다고 할 때에는,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책한테 새로운 숨결을 나누어 준다고 본다. 내 나름대로 어느 책 하나를 이렇게 읽었노라 하고 밝히려는 느낌글이 아니라고 본다. 책마다 다르게 흐르는 숨결을 받아들이면서 누린 기쁨을 내 나름대로 풀어놓기에 느낌글을 쓸 수 있다고 본다.


  날마다 얼마나 많은 책이 새롭게 나오는가. 이 많은 책은 얼마나 고운 손길을 타면서 태어났을까. 퍽 많은 사람이 기다리거나 바랄 만한 책도 태어나지만,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책도 태어난다. 어느 책이든 내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어 줄 책이 될 테고, 나는 어느 책이든 내 마음이 닿을 만한 책을 고맙게 맞이하면서 기쁘게 삭인다.


  느낌글을 쓸 적에는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책’이 앞으로 한결 빛나도록 한손을 거드는 셈이라고 본다. 어느 책 하나가 나한테 다가와서 나누어 준 고운 숨결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살며시 징검돌을 놓는 셈이라고 본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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