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분
오늘 아침 일찍부터 낮 한 시 무렵까지 서울에서 어느 일 하나를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뜻을 모아 무엇을 뽑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고 무엇을 뽑았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뜻있고 배울 만한 자리였습니다. 여러 사람은 저마다 여러 갈래 눈길로 어느 일 하나를 바라보았고, 이렇게 여러 갈래 눈길을 모아서 어느 일 하나가 알뜰살뜰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살폈다고 할 만합니다. 이 일을 마치고 낮밥을 먹은 뒤에 강남 고속버스역으로 왔어요. 요새는 시골에서도 ‘뚜껑 있는 뚝배기’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아서 ㅅ백화점 9층으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어요. 무척 값지고 값비싼 살림살이를 잔뜩 보았어요. 이곳에 있는 살림은 비싼값이라기보다 제대로 빚어서 제값을 받는 물건이네 하고 느껴요. 쉽게 사서 쉽게 쓰다가 버리는 살림이 아닌, 한 번 장만하면 두고두고 쓰다가 아이한테 물려줄 만하고, 아이는 다시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살림이라 할까요. 저는 예전에 그저 값싼 것을 사서 그저 오래 알뜰히 쓰자는 생각에 젖었다면 요새는 생각을 바꾸었어요. 값을 몇 곱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된 살림을 장만해서 즐겁게 쓰면서 손길을 타게 하여 두고두고 건사해야 살림이 빛나면서, 이 살림이 외려 더 오래갈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아요. 멋스러운 살림을 죽 돌아보며 생각해 보았어요. 나무를 손수 깎아 수저를 얻고, 나무를 찬찬히 다스려 그릇을 얻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요. 저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이런 손놀림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오늘 우리 아이들하고 이런 손놀림을 새로 짓고 싶다는 꿈을 키워 보았어요. 그나저나 사람들이 몹시 많은 ㅅ백화점이며 강남 고속버스역에서 부대끼다가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 가방을 싣고 자리에 앉으니 바로 곯아떨어지네요. 50분 동안 죽은 듯이 꿈나라를 헤매다가 일어나서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2016.1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