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언제 주느냐고?



  마을고양이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집 사람들을 보면 냥냥 울어댑니다. 우리가 저희한테 밥을 주는지 아는 터라 가까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만, 손을 타지는 않을 만큼만 가까이 다가오고, 우리가 이 고양이 옆을 스쳐서 지나가도 얌전히 있어요. 마당에 빨래를 널다가 문득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내 몸짓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마치 “너희는 뭘 그리도 몸에 걸치면서 사니? 안 번거롭니?” 하고 묻는 듯합니다. 이러면서 “밥은 언제 주니?” 하고 묻는 듯해요. 나는 마음속으로 말하지요. “얘들아, 너희한테 밥은 하루에 한 번 주지. 아직 우리 집 헛간을 드나드는 쥐가 있더라. 그 쥐를 좀 잡아먹고서 밥을 달라고 말하지 않으련?” 2016.1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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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 살짝 눈발



  서울서 하루를 묵으며 바깥일을 보았습니다. 엊저녁에 돌아왔습니다. 곁님이 집에서 해 놓은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다른 먹을거리로 저녁을 삼았습니다. 서울을 다니며 입은 옷을 몽땅 벗었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동안 흐르는 물로 적셔 놓습니다. 무자위가 말을 안 들어 살피다가 잠자리에 들 무렵 끄고, 새벽에 다시 켜 보니 제대로 돌아갑니다. 날이 밝으면 더 살피려 합니다. 넷이 영화 하나를 보고서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잇는데, 어느 결에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아득히 먼 어느 옛날, 마법을 무섭고 못된 쪽으로 쓰려는 동무를 만나 그 동무를 틀어막으면서 ‘너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말하는 꿈을 꿉니다. 마치 코앞에서 벌어진 일인듯 뚜렷하게 떠오르는 꿈입니다. 어제 고흥 읍내에 닿아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살짝 눈발을 보았어요. 고흥에 눈발이 스친다면 다른 고장은 무척 춥겠네요. 달빛이 매우 고와 인천 사는 형이 떠올라 쪽글로 인사를 보냈습니다. 어제그제 몹시 긴 하루였네 싶습니다. 2016.12.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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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오늘 아침 일찍부터 낮 한 시 무렵까지 서울에서 어느 일 하나를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뜻을 모아 무엇을 뽑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고 무엇을 뽑았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뜻있고 배울 만한 자리였습니다. 여러 사람은 저마다 여러 갈래 눈길로 어느 일 하나를 바라보았고, 이렇게 여러 갈래 눈길을 모아서 어느 일 하나가 알뜰살뜰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살폈다고 할 만합니다. 이 일을 마치고 낮밥을 먹은 뒤에 강남 고속버스역으로 왔어요. 요새는 시골에서도 ‘뚜껑 있는 뚝배기’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아서 ㅅ백화점 9층으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어요. 무척 값지고 값비싼 살림살이를 잔뜩 보았어요. 이곳에 있는 살림은 비싼값이라기보다 제대로 빚어서 제값을 받는 물건이네 하고 느껴요. 쉽게 사서 쉽게 쓰다가 버리는 살림이 아닌, 한 번 장만하면 두고두고 쓰다가 아이한테 물려줄 만하고, 아이는 다시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살림이라 할까요. 저는 예전에 그저 값싼 것을 사서 그저 오래 알뜰히 쓰자는 생각에 젖었다면 요새는 생각을 바꾸었어요. 값을 몇 곱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된 살림을 장만해서 즐겁게 쓰면서 손길을 타게 하여 두고두고 건사해야 살림이 빛나면서, 이 살림이 외려 더 오래갈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아요. 멋스러운 살림을 죽 돌아보며 생각해 보았어요. 나무를 손수 깎아 수저를 얻고, 나무를 찬찬히 다스려 그릇을 얻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요. 저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이런 손놀림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오늘 우리 아이들하고 이런 손놀림을 새로 짓고 싶다는 꿈을 키워 보았어요. 그나저나 사람들이 몹시 많은 ㅅ백화점이며 강남 고속버스역에서 부대끼다가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 가방을 싣고 자리에 앉으니 바로 곯아떨어지네요. 50분 동안 죽은 듯이 꿈나라를 헤매다가 일어나서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2016.1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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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집에서 하루 묵어 보며



  길손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좋습니다. 길손집은 인터넷이 잘 되어 좋습니다. 하룻밤 묵는 값이 눅은 만큼 여럿이 한 방에 묵는 길손집은 좀 시끄럽습니다. 한 방뿐 아니라 옆방에 묵는 사람들 말소리가 밤에 꽤 크게 울립니다. 잠자리에서까지 귀에 소리통을 꽂고 싶지는 않으니 다음에는 방을 잘 골라야겠다고 느낍니다. 제가 묵은 방에는 여섯 사람이 묵을 수 있는데 마침 저를 빼고 다른 길손이 이 방에 들지 않아 호젓하면서 널찍하게 하루를 지냅니다. 머리가 다 마르면 슬슬 짐을 꾸려 오늘 바깥일을 볼 곳으로 전철을 타고 가려고 합니다. 2016.1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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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묵는 길손집



  그동안 여관에서 묵다가 오늘 처음으로 길손집에서 묵습니다. 길손집은 적어도 하루 앞서 자리를 얻어야 한다는데, 오늘 바로 자리를 알아보고도 묵을 곳이 있어서 고맙게 짐을 풀어놓습니다. 가방을 내리고 짐을 꺼내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하고 손전화에 밥을 주고, 도시락을 먹고 하니 비로소 몸을 쉴 만합니다.아직 다른 길손은 들지 않고 혼자 조용히 있습니다. 여섯 사람이 묵을 수 있는 이 방에 곧 다른 길손도 들어올까요? 이제 이를 닦고 한숨 돌린 뒤에 기지개를 펴려고 해요.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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