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 : 온갖 영어


 바람이 몹시 부는 한낮,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빛깔 하늘에 하얀 빛깔 구름이 퍽 빠르게 흐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기에 날마다 멀고 가까운 멧자락이랑, 이 멧자락을 감싸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 구름 하나 없이 파랑이 물들기만 한 날이 있고, 파란하늘에 알록달록 무늬를 놓듯 하얀 솜털이 곳곳에 무리짓는 날이 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파랗디파란 눈부신 하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오늘날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말사랑벗들은 눈부신 파란하늘이란 어떤 하늘인지 잘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나라밖으로, 그러니까 티벳이라든지 뉴질랜드라든지 서사모아라든지 쿠바라든지 핀란드쯤으로 가 본다면, 비로소 눈부신 파란하늘을 볼 수 있겠지요. 티가 없어야 파랗고, 해맑아야 하얗습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많으면서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아주 많은 우리 나라니까 파랑을 파랑대로 느끼기 어렵고, 하양을 하양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여름에는 집이나 일터를 춥다 싶게 식히고, 겨울에는 집이나 일터를 덥다 싶게 덥히니 하늘은 하늘빛을 잃고 구름은 구름빛을 잃습니다.

 하늘빛을 잃은 나라에서는 밤에 미리내를 보지 못합니다. 구름빛이 없는 땅에서는 낮에 무지개를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미리내를 잃거나 무지개를 잊은 만큼, 더 많은 돈과 더 큰 아파트랑 자가용을 얻습니다. 미리내를 떠나 보내거나 무지개를 잠재우는 만큼, 더욱더 세계화에 기울어지고 영어바다가 되도록 뒤덮습니다.

 말사랑벗뿐 아니라 말사랑벗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몹시 바쁩니다. 몹시 바쁜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땅을 내려다보지 못합니다. 바람이 불 때에 겨울에는 찬 기운을, 여름에는 더운 느낌을, 봄과 가을에는 시원하거나 서늘한 느낌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땅을 밟으며 가만히 쪼그려앉아 흙을 만진다든지, 흙길을 줄줄이 오가는 개미나 뭇 벌레를 내려다본다든지 할 겨를이 없습니다. 바다나 냇가나 골짜기는 한여름 방학이나 휴가 때에만 찾아가는 곳으로 잘못 알고 맙니다. 조개 잔뜩 넣은 칼국수를 값싸게 사먹기는 해도, 막상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캐는 삶이 어떠한지를 헤아리지 못해요. 이에 앞서, 밥을 먹건 빵을 먹건 쌀이나 밀이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땀을 흘리며 일구어 거두고 털어 갈무리하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에 온갖 영어를 참 아무렇지 않게 쉬 섞곤 합니다. 사진을 찍으니 사진기이지만 으레 ‘카메라’라 이야기합니다. 서로 모여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를 한다 말합니다. 뜻이 맞는 동무들이 모여서 한 가지 놀이나 일을 즐기는데 동아리 아닌 ‘서클’이나 ‘클럽’을 한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우리 말사랑벗한테 책을 읽히려 하면서 ‘북쇼’를 한다고 떠들썩합니다. 초·중·고등학교 가운데에는 ‘English zone’을 만든 곳이 꽤 됩니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 수업에서 배운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짓눌리던 때 ‘조선말을 섣불리 쓰다’가는 흠씬 얻어맞거나 벌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든 집이나 마을에서 조선말을 쓰든 빨갱이라든지 나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푸대접을 받으며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영어를 버젓이 쓸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영어만 써야 하는 교실이나 골마루’를 마련할 뿐 아니라, 공문서에 영어를 함께 쓰기까지 하고, 대학교나 회사에 들어가자면 영어를 아주 잘 해야 할 뿐더러,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내야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또 관공서에서든 동네에서든 집에서든, 우리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고 손쉽게 쓰도록 이끌거나 살피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말이야 엉터리로 하든 멍텅구리처럼 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영어를 배워야 하면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잘 배워야 합니다. 허투루 배운다든지 겉치레로 배울 영어가 아닙니다. 한문을 배울 때에도 옳게 잘 배워야 합니다. 엉터리로 배울 한문이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옳고 알맞으며 슬기롭게 배울 우리말이요 영어이며 한문입니다. 세 갈래 말이 모두 다른 줄 제대로 깨달으면서, 우리말은 우리말답게 배우고 영어는 영어다이 배우며 한문은 한문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우리말 결과 느낌을 살리면서 우리 이웃하고 나누고, 영어는 영어 무늬와 말투를 북돋우면서 나라 안팎에서 외국사람을 마주할 때에 쓰며, 한문은 한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리면서 옛책을 찾아 읽을 때에 잘 써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바르게 짚어야 합니다. 아무 데에서나 어리숙하게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찬찬히 생각을 기울이고, 가만히 사랑을 쏟으며 주고받을 말입니다. 말사랑벗들이 영어를 영어다이 슬기롭게 배우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자리에 제대로 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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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필요 : “꼭 필요하다”라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한자말 ‘필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를 뜻하는 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꼭’과 ‘반드시’는 뜻이 같은 우리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서류”나 “꼭 필요한 물건”이라 말하면 겹말이 돼요. 한자말로 이야기하고 싶으면 “필요한 서류”라 하고, 우리말로 얘기하고프다면 “꼭 있어야 할 서류”나 “꼭 챙길 서류”라 해야 알맞습니다.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 내 도움이 필요하면
→ 내가 도와야 하면
→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42. 인간 : ‘인간’이라는 한자말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이러한 말짜임을 잊고 맙니다. ‘인간’이랑 ‘사람’을 사뭇 다른 자리에 써야 할 낱말로 여겨 버릇해요.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인간’과 ‘사람’을 영어로 옮긴다면, 또 노르웨이말이나 네덜란드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덴마크사람이나 버마사람한테 우리말을 가르친다 할 때에 ‘인간’이랑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저 인간 좀 보라구.” 같은 대목은 “저 사람 좀 보라구.”로 고쳐쓰면 되지만, 느낌을 달리하자면 “저놈 좀 보라구.”나 “저 녀석 좀 보라구.”나 “저 쓸개빠진 녀석 좀 보라구.”나 “저 머저리 좀 보라구.”처럼 다 다른 낱말을 넣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잊으면서, 사람들 모습과 삶을 나타낼 숱한 말투 또한 잊습니다.

[인간(人間) : 사람]
※ 인간적인 생활
→ 사람다운 삶


43. 행복 : ‘복(福)된’ 일이란 “복을 받아 기쁘고 즐거운” 일을 일컫습니다. ‘행복’이란 곧 ‘즐거운 일’, ‘즐거움’입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 그대로 “즐거운 삶”이고, 이를 한자말로 옮길 때에는 “행복한 생활”이 돼요. 말 한 마디 즐겁게 나누고, 생각 한 자락 즐거이 펼칩니다. 글 한 줄 즐겁게 쓰고, 이야기 한 자락 즐거이 주고받습니다.

[행복(幸福) : 복된 좋은 운수]
※ 불행과 행복
→ 슬픔과 기쁨
→ 궂은 일과 좋은 일
※ 행복해 보이다
→ 즐거워 보이다
→ 좋아 보이다
→ 흐뭇해 보이다


44. 상상 : 마음속으로 그리는 일이란 ‘생각’입니다. 마음으로 꾸는 삶이니 ‘생각’해 보는 삶입니다. 예부터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했는데, 생각하는 사람이란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슬기롭고 알차게 일구려는 사람입니다.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라, 이루기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이루어 가려는 꿈을 품는 사람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상상(想像) :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 상상 밖의 일
→ 생각 밖 일
→ 생각도 못한 일
→ 생각조차 못할 일
→ 생각을 벗어난 일
→ 생각을 뛰어넘는 일
→ 꿈 같은 일


45. 안녕 : 우리 집 아이를 보는 어른들은 으레 ‘바이바이(bye-bye)’라는 영어를 씁니다. 아이는 이런 인사말이 영어인 줄 모르고 따라합니다. 옆에서 보던 아빠가 못마땅한 나머지 “잘 가셔요.” 하고 말하면 아이는 어느새 “잘 가셔요.”라는 말을 따라합니다. 아이보다 서넛이나 너덧 위 언니 오빠들이 아이를 보며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아이도 “안녕.” 하고 따라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슬그머니 “또 봐요.” 하고 말하면 아이도 스스럼없이 “또 봐요.” 하며 따라합니다.

[안녕(安寧) : 아무 탈 없이 편안함.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다
→ 사회가 걱정없게끔 지키다
→ 사회에 걱정이 없게끔 지키다
→ 사회가 튼튼하도록 지키다
※ 안녕, 또 만나자
→ 잘 가, 또 만나자
→ 잘 들어가, 또 만나자
→ 살펴 가, 또 만나자


46. 태양 : 하늘에 뜬 해를 놓고는 ‘해’라 하기보다 ‘태양’이라 하면서, 하늘에 걸린 달을 놓고는 딱히 ‘달’ 아닌 다른 이름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로 ‘썬(sun)’이나 ‘문(moon)’을 말하는 사람이 꽤 늘어납니다. 그나마 ‘썬에너지’라 안 하고 ‘태양에너지’라 하니 고맙다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햇빛과 햇볕조차 제대로 가누어 쓰지 못하기 때문에, ‘햇볕힘’ 같은 말마디를 알뜰히 살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태양(太陽) : 태양계의 중심이 되는 항성]
※ 태양에너지
→ 햇볕에너지
→ 햇볕힘


47. 최상 : 가장 높으니 “가장 높다”입니다. 가장 낮으니 “가장 낮다”입니다. 가장 나을 때에는 “가장 낫다”에요. 가장 나쁘기에 “가장 나쁘다”입니다.

[최상(最上) : 수준이나 등급 따위의 맨 위]
※ 최상의 선택이다
→ 가장 낫게 고르다
→ 가장 잘 고르다
→ 가장 잘 되다
→ 가장 낫다


48. 완전 : “완전 짱이야.” 같은 말마디를 쉽게 듣습니다. 어린이도 쓰고 푸름이도 쓰며 어른도 씁니다. 누가 먼저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말마디를 곰곰이 되짚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주 훌륭해.”라든지 “참 좋아.”라든지 “몹시 대단해.”라 말하는 사람은 차츰 사라집니다. “완전히 엄마가 된 기분이네.” 같은 말마디도 쉽게 듣습니다. “아주 엄마가 된 느낌이네.”라든지 “꼭 엄마가 된 듯하네.”라든지 “마치 엄마가 된 듯하네.”라 말하는 사람 또한 나날이 사라집니다. 우리말은 ‘아주’ ‘깡그리’ ‘송두리째’ ‘모조리’ ‘온통’ ‘참말로’ 우리말다움을 잃습니다.

[완전(完全) :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 완전히 실망이야
→ 매우 실망했어
→ 아주 미워
→ 너무 안타깝구나
→ 참 안쓰럽구나


49. 가족 : 한자말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가족’은 일본사람이 쓰는 낱말이고, ‘식구(食口)’가 한국사람이 쓰는 낱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얼개로, ‘혼인(婚姻)’과 ‘결혼(結婚)’이 있어요. ‘혼인’이 한국사람 낱말이요, ‘결혼’은 일본사람 낱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한국말인가 일본말인가를 옳게 가르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씁니다. 따지고 보면, 일본말만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아요. 영어도 어느 곳에나 거리끼지 않고 써요.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지는 않습니다. 말을 살리는 넋이나 글을 북돋우는 얼을 생각할 수조차 없이 메마른 우리나라입니다.

[가족(家族) :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살붙이를 먹여살리다
※ 가족적 분위기이다
→ 따스한 느낌이다
→ 오순도순 좋다


50. 충분 : 말을 제대로 살피면 생각을 한결 깊이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한결 깊이 하는 사람은 내 삶을 더욱 차분히 일굽니다. 말사랑벗들은 둘레 어른들이 “밥은 충분히 먹었니?” 하고 묻는 말을 더러 들은 적 있나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어느 어른이든 “밥은 배불리 먹었니?” 하고만 물었습니다. 지난날 어른들은 일터에서 “돈은 넉넉히 받나?” 하고 얘기했으나, 이제는 “보수(報酬)는 충분히 지급(支給)되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충분(充分)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함]
※ 이만 하면 충분하니
→ 이만 하면 넉넉하니
→ 이만 하면 되니
→ 이만 하면 괜찮니
※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다
→ 솜씨를 제대로 뽐내다
→ 솜씨를 마음껏 펼치다
→ 솜씨를 실컷 보여주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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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고 : “생각하고 궁리(窮理)함”을 뜻한다는 ‘思考’입니다. ‘궁리’란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사고’란 “생각하고 깊이 생각함”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차분히 살피면서 생각한다면, ‘사고’이든 ‘궁리’이든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쉽게 헤아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차분히 살피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고’나 ‘궁리’ 같은 한자말이 자꾸 생겨나거나 불거집니다.

[사고(思考) : 생각하고 궁리함]
※ 사고 능력
→ 생각하는 힘
→ 생각힘
※ 논리적으로 사고하다
→ 논리 있게 생각하다
→ 논리에 맞게 살피다
→ 짜임새 있게 헤아리다
→ 곰곰이 곱씹다
→ 빈틈없이 돌아보다
→ 옳고 바르게 톺아보다


32. 양보 : 어릴 적부터 버스를 탈 때에는 어른한테 자리를 ‘양보’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하는 ‘양보’란, “내가 앉은 자리를 내주는” 일이었습니다. ‘양보’라는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는 못했으나, 왜 이리 어려운 말을 쓰나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손쉽게 “어른한테 자리를 내줍시다”라 말하면 넉넉할 텐데요.

[양보(讓步) :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남에게 미루어 줌. 자기의 주장을 굽혀 남의 의견을 좇음.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
※ 양보의 미덕
→ 양보하는 아름다움
→ 베푸는 아름다움
※ 한 치의 양보가 없다
→ 조금도 물러서지 않다
→ 흔들리지 않고 맞서다
※ 양보하는 삶
→ 몸바치는 삶
→ 나를 바치는 삶


33. 고민 : 애를 태우는 일이란 속을 태우는 일입니다. 속을 태우는 일이란 ‘걱정’입니다. 우리말은 ‘걱정’이고, 한자말은 ‘苦悶’이에요. 걱정하기 때문에 마음이나 몸이나 괴롭습니다. 마음도 몸도 고단합니다. 고달프거나 고되어요. 힘들거나 힘차거나 벅찹니다. 힘겹거나 버거워요. 걱정하기에 근심스럽고, 근심스러우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앓이까지 합니다.

[고민(苦悶) :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
※ 생활비 때문에 고민이다
→ 살림돈 때문에 괴롭다
→ 먹고살 돈 때문에 걱정스럽다


34. 대화 : 요즈음도 학교에 ‘상담실(相談室)’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상담실’이란 상담을 하는 방이고, 상담이란 “문제를 풀려고 의논(議論)을 하는” 일입니다. ‘의논’이란 “의견(意見)을 주고받는” 일이며, ‘의견’이란 “생각”을 뜻해요. 그러니까, ‘상담실’은 “생각을 나누는 방”이에요. 생각을 나누는 일이란 바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곧 ‘이야기 나눔’입니다.

[대화(對話)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 대통령과의 대화
→ 대통령과 이야기하기
→ 대통령하고 얘기하기
→ 대통령과 얘기 나누기
→ 대통령하고 이야기꽃
→ 대통령과 도란도란 얘기꽃


35. 질문 : 예부터 궁금하거나 모르는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또래나 동생이나 손아래인 사람한테는 ‘물’었고, 손위인 사람이나 어른한테는 ‘여쭈’었어요. 학교에서 학생이 교사한테 무엇이 궁금하다고 말할 때에는 ‘여쭌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묻’는 사람도 ‘여쭈’는 사람도 없습니다. ‘質問’을 하거나 ‘質疑’를 합니다. 말하거나 이야기해 주는 사람 또한 없이 ‘對答’과 ‘應答’만 합니다.

[질문(質問) : 모르거나 의심나는 점을 물음]
※ 질문을 던지다
→ 묻다
→ 여쭈다


37. 부유 : 돈이 많다고 해서 꼭 잘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많아야 잘사는 사람으로 여겨요. 더욱이, 돈이 없으면 하나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여기고요. 그렇지만, 돈이 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돈있는’ 삶입니다. 돈이 없으면 ‘돈없는’ 삶이에요. 그리고, 돈이 퍽 많을 때에는 ‘가멸다’라 가리키고, 돈이 무척 많을 때에는 ‘가멸차다’라 가리킵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가난하다’고 합니다.

[부유(富裕) : 재물이 넉넉함]
※ 부유한 가정
→ 넉넉한 집안
→ 가멸찬 집
→ 잘사는 집


38. 항상 : 누구나 ‘항상’과 같은 한자말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한자말을 쓸 때에는 “내가 한자말을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를 쓰고 싶다면, 쓰고픈 사람 마음대로 쓰되, “난 영어를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떠한 말을 쓰는가 살피지 않고 이 말 저 말 섞을 때에는 나 스스로 내 넋을 옳게 다스리지 못하기도 하고, 내 둘레에서 내 말을 듣는 사람 넋을 어지럽히는 일이 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를 뜻한다는 ‘항상’인데, ‘변(變)함없다’는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말풀이는 “언제나 항상 같다” 꼴이 되어요. 얄궂게 겹말이 된 말풀이입니다.

[항상(恒常) : 언제나 변함없이]
※ 항상 독서를 한다
→ 늘 책을 읽는다
→ 언제나 책을 읽는다
→ 노상 책을 읽는다


39. 미소 : ‘미소’는 그냥 한자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인 줄 아는 사람이 많고, 우리가 안 써야 좋은 낱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 쓰임새는 수그러들지 않아요. 우리는 왜 알맞고 살가우며 곱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할까요. 말사랑벗은 어떠한 낱말로 웃음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좋을까요.

[미소(微笑) :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 미소를 짓다
→ 웃음을 짓다
→ 웃음짓다
→ 빙긋 웃다


40. 간단 : 저도 말사랑벗 나이일 때에는 ‘간단’ 같은 한자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손쉽게 썼습니다. 나중에 국어사전을 뒤적이고서야 이런 낱말을 굳이 쓸 까닭이 없다고 깨달았어요. ‘간단’을 “단순하고 간략함”으로 풀이하는데, ‘단순(單純)’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함”이라 합니다. ‘간략(簡略)’은 “간단하고 짤막함”이라 해요. 그러니까, “간단 = 간단하고 간단함”이란 셈이에요.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참 엉망진창이지요? ‘간단’이라는 한자말을 넣은 글월을 손보기란 어려울 수 있으나, 가만히 생각하면 퍽 수월합니다. “간단한 문제”란 “쉬운 문제”입니다. “간단한 옷차림”이란 “가벼운 옷차림”이에요. “간단한 구조”는 “수수한 얼개”나 “성긴 짜임새”예요.

[간단(簡單) : 단순하고 간략함
※ 간단한 조사를 하다
→ 가볍게 살피다
→ 몇 가지를 살펴보다
→ 얼추 알아보다
→ 조금 헤아리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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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상 : “그 이상(以上)이다”라 할 때에는 “그보다 크다”로 다듬으면 됩니다. “평균 이상이다”라 할 때에는 “평균보다 높다”로 다듬으면 되고요. 아니, 다듬는다기보다, 이처럼 이야기해야 알맞습니다. “이상(理想)을 높게 펼치라”라면 “꿈을 높게 펼치라”라든지 “뜻을 높게 펼치라”로 손질하면 됩니다. 아니, 이때에도 손질한다기보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 올바릅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며, 제대로 생각하는 길을 잊은 얄궂은 사람입니다.

[이상(異常) :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 이상한 일
→ 다른 일
→ 무언가 다른 일
※ 이상한 느낌
→ 다른 느낌
→ 아리송한 느낌
→ 알 수 없는 느낌
※ 이상한 사람
→ 남다른 사람
→ 알쏭달쏭한 사람
→ 얄궂은 사람
→ 못미더운 사람


22. 차이 : 우리말을 담은 국어사전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답다면, 우리 말사랑벗한테 국어사전을 틈틈이 읽고 알뜰히 살피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실은 국어사전이 안쓰럽거나 슬프더라도, 이 국어사전을 가만히 살피고 곰곰이 돌아보면서, 말사랑벗들 나름대로 옳고 바르게 우리말을 헤아리면서 익히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자말 ‘차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름”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말풀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말 ‘다름’을 한자말로는 ‘차이’로 적는 셈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다름’이고,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쓸 말은 ‘差異’예요. 한글로 ‘차이’라 적는다 해서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은 아닙니다.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견해 차이가 크다
→ 생각이 크게 다르다
→ 생각이 참 다르다
→ 생각이 아주 다르다
→ 생각이 크게 벌어진다
→ 생각이 크게 갈린다


23. 접촉 : 제가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중학교로 들어설 때에는, 두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말투’가 달랐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쉬운 말투를 쓰지만, 중학교부터는 어려운 말투를 썼어요. 이를테면, 국민학교 때까지는 ‘세모’와 ‘네모’였으나, 중학교부터는 ‘삼각형’과 ‘사각형’이었어요. 국민학생 때 자연을 배우면서 들은 말은 ‘닿다’와 ‘맞닿다’였으나, 중학생 때부터는 과학을 배우면서 ‘접촉’이라는 말을 듣고 써야 했습니다. ‘닿은 자리’나 ‘닿은 곳’ 같은 말투는 과학하는 말투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접촉면’이라고만 해야 했어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사회라는 데로 나오니, 우리나라 대통령과 다른 나라 대통령이 만나든, 이웃과 이웃이 만나든 으레 ‘접촉’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말은 ‘만나다’요 ‘사귀다’이며 ‘어울리다’인데, 이런 우리말을 듣거나 쓸 자리는 자꾸 사라집니다.

[접촉(接觸) : 서로 맞닿음. 가까이 대하고 사귐]
※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다
→ 이웃과 만나기를 꺼리다
→ 이웃과 사귀기를 꺼리다
 
 
24. 이하 : 학교에서 ‘이상-이하’랑 ‘미만-초과’가 어떻게 다른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넘다/넘치다-모자라다’라든지 ‘웃돌다-밑돌다’라든지 ‘적다-많다’ 같은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한눈에 알아보도록 쉬우면서 바르게 말하도록 우리말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었고, 쉽고 바른 우리말을 애써 배우려는 또래 동무 또한 없었습니다. 가르치면 그저 가르치는 대로만 배워야 하는 ‘쑤셔넣기(주입식)’만 판쳤습니다.

[이하(以下) :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적거나 모자람.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뒤거나 아래]
※ 18세 이하 관람 불가
→ 열여덟까지 볼 수 없음
→ 열여덟 살까지 못 봄
→ 열아홉 안 되면 못 봄
→ 열아홉부터 볼 수 있음


25. 작업 : 사회 한켠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일컬어 ‘근로자(勤勞者)’라 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노동자(勞動者)’라 합니다. 어느 쪽에서도 “일하는 사람 = 일꾼”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곳은 ‘일터’이지만 ‘작업장(作業場)’이라고만 가리킬 뿐이요, 이제는 ‘잡(job)'이라는 영어를 두루 쓰기까지 합니다.

[작업(作業) : 일을 함]
※ 작업을 완수하다
→ 일을 다하다
→ 일을 마치다
→ 일을 끝내다
→ 일을 끝맺다
→ 일을 마무리하다
→ 일을 마무리짓다


26. 계속 : 처음 듣고 말을 할 때에는 그때와 그곳에 알맞으니까 이런 말을 써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으리라 봅니다. 나중에는 왜 이런 말을 써야 하는지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그냥 말합니다.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길든다고 해야 하나요. 참으로 좋은 말인지,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을 말인지, 여러모로 괜찮은 말인지를 살필 겨를이 없을 뿐더러, 애써 살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쓰니까 그냥 쓰는 말입니다. 자꾸 쓰면서 버릇이 되는 말입니다. 잇달아 듣고 말하다 보니 뿌리내리는 말입니다. 좋은 말도 익숙해지지만, 궂은 말 또한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는 말이란 참 무서운 삶이라고 느껴요.

[계속(繼續) : 끊이지 않고 잇따라]
※ 계속 진행하다
→ 그대로 이어가다
→ 끊지 않고 하다
※ 계속 걷다
→ 꾸준히 걷다
→ 한결같이 걷다
※ 계속 펼치다
→ 잇달아 펼치다
→ 자꾸 펼치다


27. 순수 : “순수한 뜻이었어.” 하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이래저래 나쁜 뜻이란 없었다는 마음을 밝히려고 읊은 말입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나쁜 뜻은 없었어.”라든지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든지 “해코지할 마음이 아니었어.”라든지 “일부러 한 일이 아니었어.”처럼 말해야 올발랐겠구나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수예술”이나 “순수학문”이나 “순수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숱한 예술이나 학문이나 문학이 ‘돈을 바라보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수’라는 낱말을 꾸밈말처럼 붙이는구나 싶은데, “못된 생각이 섞인”다면 예술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요 문학도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를 앞에 붙일 수 없습니다. “그냥 학문을 할” 뿐이고, “좋아하는 문학을 할” 뿐입니다.

[순수(純粹) :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순수한 애정
→ 티없는 사랑
→ 맑은 사랑
→ 꾸밈없는 사랑
→ 깨끗한 사랑
→ 고운 사랑


28. 선택 :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분들을 ‘뽑는’ 자리에서는 으레 ‘선거’와 ‘선택’이라는 낱말만 쓸 뿐, ‘뽑다’나 ‘뽑기’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분들한테는 ‘뽑다’ 같은 낱말이 버르장머리없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대통령도 뽑지만, 반장도 뽑습니다. 국회의원도 뽑으나, 청소당번도 뽑습니다. 뽑는 일이랑 비슷하게 ‘가리기’와 ‘추리기’와 ‘솎기’와 ‘골라뽑기’가 있습니다. ‘추리기’와 ‘간추리기’는 또 다릅니다. 우리들이 ‘선택’이라는 한자말에 매인다면 이 숱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지만, 제대로 쓰는 결마저 잃거나 잊습니다.

[선택(選擇) :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 알맞은 단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 알맞은 말을 골라야 한다
→ 읽을 책을 선택하다
→ 읽을 책을 고르다
→ 읽을 책을 가리다
→ 읽을 책을 추리다
→ 읽을 책을 뽑다


29. 설명 : 선생님들은 늘 ‘설명’합니다. 선생님들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설명이란 곧 ‘말씀’이나 ‘말’이나 ‘이야기’이곤 합니다. “자, 내가 설명해 줄게.”란 “자, 내가 이야기해 줄게.”예요. 그러고 보면, 이야기해 주는 일이란, 잘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일입니다. 이야기란 ‘들려줍’니다. 흐리멍덩하게 알거나 어렴풋이 생각하던 대목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기도 해요. ‘깨우쳐’ 주거나 ‘일깨워’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설명(說明) :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 사용법을 설명하다
→ 쓰는 법을 알려주다
→ 쓰는 법을 들려주다
→ 쓰는 법을 얘기하다
→ 어떻게 쓰는지 말하다


30. 기억 : 예전에 듣거나 겪은 일을 잘 떠올리는 사람한테 흔히 “기억력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고, 기억하는 힘이란 “되새기는 힘”입니다. 되새김질 잘하는 셈이고, 생각힘이 남다르다는 소리예요. 지난 일을 헤아리는 모습을 일컬으며 ‘떠올리다’를 비롯해 ‘돌이키다’라든지 ‘되돌이키다’라든지 ‘돌아보다’라든지 ‘되돌아보다’라든지 ‘뒤돌아보다’라든지 ‘되씹다’라든지 ‘되새기다’라든지 참 많이 이야기합니다. 숱한 낱말마다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고, 느낌과 말맛이 살짝 달라요. 우리말을 생각하는 마음을 기르면 내 넋을 한결 넉넉하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기억(記憶)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 이전의 경험을 기억하다
→ 예전에 겪은 일을 떠올리다
→ 예전 일을 돌이키다
→ 예전 일을 다시 생각하다
→ 지난 일을 되새기다
→ 지난 일을 곱새기다
→ 그때 겪은 일을 되살리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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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용 : 어릴 적,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理髮所)’나 ‘이용원(理容院)’을 다녔습니다. 이발소나 이용원은 한자말이지만, 간판이 한자로 된 곳은 없었습니다. 아마, ‘이발소’나 ‘이용원’을 한자로 적으면 사람들이 이곳이 어떤 데인지 알아보기 힘들 테지요. 남자는 ‘이발소-이용원’을 다니고, 여자는 ‘미용실(美容室)’을 다녀야 한다 했는데, 나중에 ‘머리방’이 나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머리를 만지는 집이니 ‘머리방’이나 ‘머리집’이라 이름을 붙여야 옳아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이용’이라 한다면, 그리 쓸 만하지 않은 한자말이면서 ‘머리를 깎는 일’을 일컫는다고 여기지, 우리말 ‘쓰다’와 똑같이 쓸 낱말로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용(利用) :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 자원의 효율적 이용
→ 자원을 알맞게 쓸
→ 자원을 알차게 씀
→ 자원을 알뜰히 씀
→ 자원을 훌륭히 씀


12. 세탁 :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세탁소 아저씨는 동네를 돌며 “세에탁!”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에탁!” 하고 노래를 부를 때에 집에서 나와 당신 가게에 맡길 빨래감을 내놓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세탁소’에 ‘빨래감’을 맡겼습니다. 집에서는 누구나 ‘빨래’를 했습니다. 나중에 ‘세탁기’라는 기계가 나왔지만, 세탁기를 쓰면서 누구나 으레 ‘빨래한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며 ‘빨래방’이 처음 나왔습니다. ‘머리방’과 매한가지로, 빨래를 하는 집이니 마땅히 ‘빨래집’이라 이름을 붙였어야 했는데, 한글을 1400년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빨래’를 옳게 쓴 때는 2000년을 코앞에 둔 요즈막입니다.

[세탁(洗濯) = 빨래]
※ 매일 세탁해야 한다
→ 날마다 빨래해야 한다
→ 날마다 빨아야 한다


13. 열심 : 말사랑벗한테 “열심히 공부해.” 하고 말하는 어버이나 선생님이 있을 테지요. 저도 어린 날부터 이런 소리를 곧잘 들었습니다. ‘공부’라는 낱말뿐 아니라 ‘열심’이란 낱말이 얼마나 싫고 지겨웠는지 몰라요. 중학생쯤 될 무렵, ‘열심’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뒤적이다가 ‘바지런’이나 ‘부지런’을 한자로 옮긴 낱말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우리한테 “바지런히 공부하라”고 말한 셈이고, ‘공부(工夫)’란 ‘배움’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었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한테는 골아픈 말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할 말이라면, “열공”보다는 “힘써 배우라” 하고 말했으면 어떠했을까요.

[열심(熱心) :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 열심히 공부하다
→ 힘껏 배우다
→ 힘써 배우다
→ 애써 배우다
→ 온힘 바쳐 배우다
→ 땀흘려 배우다
→ 바지런히 배우다


14. 지각 :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지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늦지’ 말라고는 잘 말하지 않아요. 학교나 회사에서는 ‘조회’를 하고 군대에서는 ‘일조점호’를 합니다. ‘朝會’이든 ‘日朝點呼’이든 아침에 모이는 일이요, ‘아침모임’이에요. 가만히 보면, ‘조회’나 ‘점호’ 같은 말은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짓눌리던 때 슬프게 들어와 여태껏 슬프게 옥죄는 낱말이기도 합니다.

[지각(遲刻) : 정해진 시각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등교함]
※ 지각대장
→ 늦기대장
→ 늦기쟁이
→ 늦쟁이


15. 판단 : ‘판단’ 말풀이는 ‘판정(判定)’을 찾아보도록 나오고, ‘판정’ 말풀이는 ‘판별(判別)’을 살펴보도록 나옵니다. ‘판별’이란 “판단하여 구별함”이라 나와요. 그러니까, ‘판단 → 판정 → 판별 → 판단’인 셈이랍니다. 이런 돌림풀이로 된 국어사전을 펼칠 말사랑벗은 우리말을 어떻게 배우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판단(判斷) :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
※ 정확한 판단을 내리다
→ 올바로 살피다
→ 올바로 가누다
→ 올바르게 가리다
→ 올바르게 헤아리다
→ 옳고 바르게 생각하다


16. 입장 : 흔히들, ‘立場’이라는 한자말만 일본 한자말로 여기며,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入場’이라는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에요. 우리말은 ‘들어옴’입니다. “입장하세요.”는 잘못 쓰는 말이라 “들어오세요.”라 말해라 올바릅니다. ‘입장과 퇴장’은 ‘들어오고 나가기’로 손질해야 알맞습니다. 곰곰이 살펴본다면, 지난날 한국사람은 ‘입장’ 같은 한자말을 안 썼습니다. ‘입장’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어찌저찌 고쳐써야 한다기보다, 이런 말을 아예 안 쓰면 됩니다. “내 입장 좀 봐줘.”가 아니라 “나 좀 봐줘.”라든지 “나를 좀 생각해 줘.”라 말해야 올발라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는 “자리 바꿔 생각해 봐.”이거나 “(네가) 내가 되어 생각해 봐.”로 고쳐 주어야 합니다.

[입장(立場) : 당면하고 있는 상황. ‘처지(處地)’로 순화]
※ 내 입장이 난처하다
→ 내 자리가 딱하다
→ 내가 힘들다
→ 내가 어찌할 바 모르다


17. 이해 :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언제나 “이제 이해하겠니?” 하고 물었습니다. 때로는 “이제 알겠니?” 하고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해하다’란 ‘알다’란 소리입니다.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니?” 할 때에는 “네가 나를 알 수 있니?”라는 뜻이며, “네가 내 마음일 수 있니?”와 같은 느낌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란 알기 어려운 일이면서 ‘알쏭달쏭하’거나 ‘아리송한’ 일이에요. ‘알듯 말듯한’ 일이 되기도 하겠지요.

[이해(理解) :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 이해하기 어렵다
→ 알기 어렵다
→ 헤아리기 어렵다
→ 받아들이기 어렵다
→ 깨닫기 어렵다


18. 감동 : 마음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책이 좋다고 느낍니다. 저는 ‘좋은’ 책이라기보다 ‘제 마음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책을 즐깁니다.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사랑이고, 마음이 움직일 때에 비로소 믿음입니다.

[감동(感動) :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 감동했어
→ 뭉클했어
→ 짠했어
→ 마음이 움직였어
→ 대단했어
→ 좋았어
→ 아름다웠어
→ 마음이 촉촉히 젖었어
→ 흐뭇했어
→ 가슴이 터질 듯했어


19. 제공 : ‘금품 제공’을 하듯이 ‘애정 제공’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쁜 꿍꿍이셈인 사람은 돈을 몰래 주거나 뒷주머니에 꽂아 넣습니다. 착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주거나 나누거나 베풀거나 펼치거나 함께하거나 선보입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 알맞게 말을 합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만큼 말을 가꾸거나 돌봅니다.

[제공(提供) : 무엇을 내주거나 갖다 바침]
※ 음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 밥을 거저로 준다
→ 밥을 그냥 준다
→ 누구한테나 밥을 준다
→ 아무나 밥을 먹을 수 있다
→ 밥을 거저로 먹을 수 있다


20. 시인 : 시를 쓰는 사람도 ‘시인(詩人)’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小說家)’라 합니다. 그림을 그리면 ‘화가(畵家)’라 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시꾼’이나 ‘시쟁이’, ‘소설쟁이’나 ‘소설꾼’, ‘그림쟁이’나 ‘그림꾼’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이’나 ‘가르침꾼’이라 일컬을 수 있고, 배우는 사람은 ‘배움이’나 ‘배움꾼’이라 가리킬 수 있어요. 언제나 내 모습 그대로 내 이름을 붙이면 되고,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가장 알맞거나 좋은 이름을 얻습니다.

[시인(是認) :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함]
※ 과오를 시인하다
→ 잘못했다고 밝히다
→ 잘못이라고 털어놓다
→ 잘못임을 받아들이다
→ 잘못했음을 받아들이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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