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글



고흥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손님을 맞이하려고 작은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갔다. 그런데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길에 ‘배웅’하러 간다고 말하다가 뭔가 잘못 말했네 싶어 돌아보니, ‘배웅’은 떠나보낼 적에 쓰는 말이잖아! 어쩜 사전을 쓴다는 사람이 ‘마중·배웅’을 거꾸로 아이들한테 말했네. 속으로도 웃고, 겉으로도 웃는다. 아무튼 손님을 마중했고, 사흘을 손님하고 보내고서 오늘 배웅을 할 텐데, 오늘이야말로 ‘배웅’을 하자고 생각한다. 마음을 맞이하고, 마음을 보내며, 마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띄운다. 이 마음이 오롯이 글로도 삶으로도 사랑으로도 태어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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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글



우리는 글을 틈내어 쓴다. 틈을 살펴서 쓰고, 틈을 읽어서 쓴다. 틈이 있기에 쓰지만, 틈이 없어도 쓴다. 틈이란 너랑 나 사이에 바람이 흐르는 길이다. 틈이 있으니 바람이 불고, 틈을 두고서 숨을 가볍게 돌리면서 새로 기운을 낸다. 빈틈이 있기에 더 배우고, 빈틈이 없기에 훌륭하게 가다듬는다. 어느 틈이든 좋다. 우리는 서로 틈틈이 만나고 노래하면서 글꽃을 짓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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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쓰다



우리는 늘 목소리를 쓴다. 딴소리가 아닌 우리 목소리를 쓴다. 남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를 쓴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글이 내 목소리가 아닌 딴소리나 남소리라면, 우리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제소리가 아니라면, 이러한 글은 대단히 따분하거나 뜻없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굳이 따오지 않아도 된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말할 노릇이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한 이야기는 안 해도 된다.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를 고스란히 돌아보면서 이야기하면 된다. 우리가 쓸 글은 남글이 아닌 제글이니까, 남삶이 아닌 제삶을, 남소리 아닌 제소리를, 남길이 아닌 제길을 즐겁게 적으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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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옮겨적는다



내가 하는 말을 바로 내가 그때그때 옮겨적을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이 문득문득 터뜨리는 말을 받아적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바로 나 스스로 이슬이나 구슬처럼 여길 줄 안다면, 나는 아이들이 문득문득 터뜨리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슬이요 사랑스런 구슬인가를 느끼면서 꼬박꼬박 받아적어서 노래로 부를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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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으로 쓴다



눈을 뜬 우리는 눈을 뜬 채 글을 쓴다. 눈을 뜬 채 쓰는 글은 그냥 글이라고만 한다. 이와 달리 눈을 감은 이가 쓰는 글은 따로 ‘점글’이라 하며 ‘점자’라고도 한다. 눈을 뜬 채 글을 쓰는 이들은 그냥 글만 쓸 뿐, 점글은 헤아리지 않는다. 문득 돌아본다. 여느 글을 점글로 옮기는 일은 쉬울까, 어려울까? 눈을 뜬 사람은 글에 깃든 이야기를 눈으로 둘러보면서 느끼거나 살필 수 있다. 눈을 감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 손으로 만지면서 어림해야겠지. 그러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모습은 어떻게 어림할 만할까? 마음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헤아려 본다면, 눈을 뜨며 쓰는 글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글에 갖가지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를 마구 섞는다면, 이런 글을 점글로 어떻게 옮길 만할까? 두 눈으로 쓰는 글이기 앞서, 마음으로 쓰는 글이라면 좋겠다. 두 눈을 뜬 사람만 읽을 글이 아니라, 두 눈을 감고도 느끼고 누리면서 마음속에 꽃길이 환하게 펼칠 수 있도록 북돋우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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