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덧글을 버리는 글쓰기



내가 쓰는 여러 누리집 가운데 한 곳에 ‘쓰레기 덧글’을 남긴 이가 있다. 이이는 ‘쓰레기 덧글’을 남기면서 퉁명스레 한 마디를 내뱉는다. 왜 ‘덧글 창을 공개’하느냐고. 웃기는 소리이다. 나는 ‘들어온(로그인)’ 사람만 덧글을 쓰도록 해 둔다. 아무나 다 덧글을 쓸 수 없다. 더구나 덧글 창을 ‘들어온 사람이 쓰도록 하’든 ‘아무나 쓰도록 하’든, 이 덧글 창에 ‘쓰레기 덧글’을 올리라고 열어 둘 사람이 어디 있는가? 길가나 골목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도시에서 짐차에 쓰레기를 몰래 싣고 와서 시골 밭둑이나 골짜기 한켠에 들이붓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생각해 보라. 밭둑이나 숲이나 골짜기에 높다랗게 시멘트담이나 쇠가시울타리를 안 쳤으니,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다. 쓰레기를 스스로 건사하지 않거나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이 잘못이다. 온누리 모든 누리집이 매한가지이다. ‘쓰레기 덧글’을 달아도 좋다는 뜻으로 덧글 창을 열어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 덧글’, 줄여서 ‘쓰레글’을 쓴 이한테 쓰레글을 돌려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튕겨!”나 “반사!” 하면서 놀지 않는가? 쓰레글을 쓴 쓰레님(쓰레기 누리님)한테 “튕겨!”를 하면서 한 마디를 보태었다. 너 말야, 그런 쓰레글을 쓰면서 삶이 즐겁니? 그런 쓰레글을 쓰는 동안 웃거나 춤을 추니? 그런 쓰레글을 쓰는 줄 바로 네 마음이 똑똑히 지켜본단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가 모를 줄 아는 글쓰기



내가 쓰는 누리집에 가끔 ‘차분한 척하며 책장사를 하려는 글’을 덧글로 남기는 이가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름을 감춘 계정’을 뚝딱 만들어서 ‘마치 책을 매우 많이 읽고 글도 꽤 오래 쓴 느낌’을 풍기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발자국을 좇아 그들 계정이 깃든 그들 누리집까지 가 보면 ‘갓 계정을 등록해서, 내가 쓰는 누리집에 책장사를 하려는 글을 처음으로 올렸’기 일쑤이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테지. 첫째, 책쓴이가 몸소 하는 책장사. 둘째, 책낸곳에서 몰래 하는 책장사. 나는 책장사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운 책을 펴내어 아름답게 팔면 될 노릇이다. 사랑스러운 책을 펴내어 사랑스럽게 팔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책장사 하나만을 바라면서 책쓴이나 책낸곳이 그들 이름을 숨기고서 몰래 꾀하는, 마치 ‘일반 독자가 그 책이 아주 훌륭하다고 여겨서 글을 쓴다’는 모습을 보이면, 누가 모를 줄 아나? 아마 그런 글에 속아넘어갈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 글에 속아넘어가서 책을 제법 팔 수 있다고 여기니, 이런 짓을, 뻔히 드러나는 뒷장사를 하겠지. 스스로 이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거짓 계정’을 뚝딱 만들어서 여기저기 퍼나르는 글을 뭐 하러 쓸까? 그런 글을 쓰면서 책장사를 하면 즐거울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떻게 다 읽어요?



나는 다 이야기해 준다. 내가 살아온 대로 낱낱이 밝혀 준다. “글을 어쩜 그렇게 쓸 수 있어요?” 하고 묻는 분한테는 “오늘처럼 글을 쓰려고 온삶을 바쳤으니까요.” 하고. “이렇게 글을 쓰려고 책을 얼마나 읽었어요?” 하고 묻는 분한테는 “사서 읽은 책은 10만 권쯤 되고요, 돈이 모자라 사지는 못하고 책집이나 도서관에서 책꽂이 앞에 서서 읽은 책까지 치면 100만 권쯤 되지 싶습니다.” 하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사서 읽어요?” 하고 물으면 “배우고 싶거든요. 제가 어릴 적부터 둘레에 있던 어른들은 저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는 몸짓’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데 책을 손에 쥐면, 벌써 죽은 사람이든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이든, 그분이 남긴 땀방울을 종이꾸러미를 펼치면서 배울 수 있어서, 책을 신나게 팠어요.” 하고. “100만 권은커녕 10만 권은커녕 1만 권도 읽기 힘들겠어요.” 하고 묻는 분한테는 “만 권 아니라 천 권조차 손수 사서 읽지 못하시겠으면 책읽기나 글쓰기는 그냥 끊으세요. 그만큼도 못하겠다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즐겁게 땀을 바칠 마음이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그만두세요.” 하고.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떤 글 쓰고 싶니?



어떤 책을 읽어야 글쓰기를 할 적에 좋으냐고 묻는 분한테 “이런 책쯤은 사서 읽으시면 좋아요. 도서관에서 빌릴 생각 말고, 돈을 모아 기꺼이 사서 말이지요.” 하고 이야기한다. 이때에 어느 분은 책이름을 꼼꼼히 챙겨서 참말로 다 사서 꼼꼼히 여러 벌 읽는다. 이때에 어느 분은 “아이고, 뭔 책이랑 사전이 그렇게 비싸요? 게다가 그렇게 많이 어떻게 사요?” 하고 대꾸하면서 끝내 아무 책도 사전도 안 사고, 스스로 배우지도 않는다. 더욱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생각조차 안 하고, 도서관에 없을 적에 도서관에 그 책을 갖추어 달라고 여쭐 생각도 없다. 이런 두 갈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냥 물어본다. “그대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탁 터놓고 물어본다. “마, 넌 어떤 글 쓰고 싶니?” 글쓰기를 할 생각이라면서 ‘글결에 이바지하는 사전하고 책’ 한 권 책상맡에 둘 줄 모르는 글쓰기를 할 생각?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물어보지 마. 사전도 곁책도 없이 그냥 써 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너, 그 책 읽었니?



누가 누리집에서 덧글을 남겼는데, 나더러 어느 책을 읽어 보았느냐고 따진다. 웃음이 나온다. 그 책을 ‘읽는다’란 무엇일까?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으면 ‘읽다’일까? 그렇다면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한벌쯤 훑으면 ‘책을 읽었다’고, ‘그 책 줄거리를 꿰거나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온누리 모든 책을 한벌쯤 훑는 몸짓을 하고서 ‘그 책을 안다’고 섣불리 말하거나 함부로 밝히지는 않는가? 내가 쓴 어느 글에 덧글을 붙이려 한다면,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어떤 살림을 지었는가를 꿰어야 한다. 왜? 그래야 ‘이야기’가 되니까. 내 삶과 생각과 넋과 살림을 제대로 꿰지 않고서 붙이는 덧글이란, ‘덧글싸움’을 하자는 소리일 뿐이다. 이는 내가 다른 이웃님 누리집에 들어가서 덧글을 달 적에도 똑같다. 내가 다른 이웃님 누리집에 올라온 글에 제대로 덧글을 달고서 그 이웃님하고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거나 ‘말을 섞을’ 뜻이라면, 그 이웃님이 그동안 쓴 글을 웬만큼 꿰도록 다(또는 거의 다) 읽어야 하며, 그 이웃님이 여태 살아온 나날과 생각과 살림도 함께 헤아릴 노릇이다. 이렇게 안 하고서 달랑 붙이는 덧글이라면, 이른바 ‘지나가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붙인 셈이 된다. 덧글쓰기란 무엇인가? 몇 줄이나 몇 마디를 남기는 덧글이란 무엇인가? 아무 마음이 없이 달아 놓는 덧글은 누구한테 이바지를 할까? 이웃하고 사귀거나 생각을 북돋울 뜻이 있다면 “너, 그 책 읽었니?”  하고 따지기보다는, “그대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책을 썼나요?” 하고 물으면서 가만히 다가올 수 있어야지 싶다. 이웃이 되려 한다면. 쌈박질 아닌 이야기꽃을 바란다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