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깨비 글쓰기



하루를 마감하고 꿈나라로 가려는데 큰아이가 문득 일어나서 “옆에 같이 누워 주세요.” 하고 말한다. “얘야, 너, 귀신 나온다고 생각하지? 귀신이 있니? 귀신을 봤니? 귀신이 너를 괴롭히니?”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작은아이 이불깃을 여미고 두 아이 사이에 눕는다. 조용히 파랗게 고요히 가만히 꿈그림을 그린다. 굳이 다른 말을 더 들려주기보다는 얌전히 상냥히 포근히 눕기만 해도 아이들은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리라. 이튿날 아침에 아이들한테 ‘잠깨비’를 얘기해 줄까 하고 생각한다. “잠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먹깨비’를 얘기하고, “먹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책깨비’를 얘기하고, “책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꽃깨비’를 얘기하고, “꽃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바람깨비’를 얘기하면서, 우리 곁에는 언제나 숱한 ‘깨비’가 있는데, 우리를 마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다만 우리가 성을 내거나 시샘을 하거나 싫다 하거나 꺼리면, 이런 깨비는 무럭무럭 자라서 ‘장난깨비’가 된다고 얘기할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어깨동무하고 신나게 하루를 지으면서 지내면, 온갖 깨비는 우리한테서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시나브로 무지개랑 별로 거듭나 사르르 녹는다고 얘기를 덧붙일 생각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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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니?



어떤 이는 내 겉모습이나 옷차림을 보고 암말을 안 한다. 어떤 이는 뭔가 잔뜩 말하고 싶으나 참는다. 어떤 이는 대뜸 이 말부터 한다. 어떤 이는 아무렇지 않다고 여겨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을 한다. 어떤 이는 겉모습하고 옷차림을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삶이 얼마나 신난가 하는 이야기부터 풀면서 그동안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을 꽃피워서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살림길을 주고받는다. 한 사람은 가만히 있다. 이 한 사람을 보는 눈이 그저 다 다르다. 나는 이 다른 여러 눈길 가운데 어느 눈길이 가장 좋거나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이 다 다르니 다 다르게 보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러면서 시나브로 생각하는데, 함께 이야기판을 벌일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가릴 수 있다. 똑같은 옷인데, 누구는 치마라 하고, 누구는 반바지라 하고, 누구는 치마바지라 한다. 그리고 누구는 그저 옷이라 하고, 누구는 우리 몸뚱이야말로 넋이 뒤집어쓴 옷이라고 한다.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보고 싶은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우리 손에서 피어나는 글이 다 다르게 흐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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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힘을 다해



온힘을 다해 아침저녁을 차린다. 설렁설렁 차리면 밥상맡에 앉은 사람이 바로 눈치를 챈다. 온힘을 다해 차리는 밥은 수저를 드는 사람이 굳이 눈치를 채지 않아도 한결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누린다. 온힘을 다해 아침저녁을 차린 다음에는, 다시 온힘을 다해 부엌을 치운다. 이러고 나면 어느새 기운이 쪽 빠지고 머리가 어질어질. 먹을 때보다 차리고 치울 적에 기운이 더 쓰이지 싶다. 이리하여 요새 늘 생각해 본다. 앞으로 아이들이 손수 밥을 지어서 먹고 치울 줄 안다면, 그때에는 밥은 되도록 안 먹거나 적게 먹으면서 살아야겠다고. 2018년을 돌아보면 보름쯤 밥 없이 지낸 적이 있고, 뒤이어 열흘 즈음, 또 이레 즈음, 닷새 즈음, 서너 날, 하루나 이틀 즈음, 이렇게 밥을 몸에 안 넣은 적이 있다. 밥끊기라기보다 몸에서 바라지 않는다고 여겨 물조차 안 마시며 지내기도 했다. 보름쯤 밥 없이 지낼 적에는 몸이 대단히 가벼웠고, 밥이란 데에 마음도 품도 겨를도 안 들이니 머리가 어찌나 맑고 시원하게 돌아가는지,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는 먹기 때문에 기운이 난다기보다, 먹기 때문에 한결 굼뜨거나 퍼지거나 지치지 싶다. 우리는 먹기 때문에 온힘을 ‘밥하고 치우는 데’에 너무 써 버리지 싶다. 먹지 않아도 즐거운 살림이라거나 적게 먹어도 넉넉한 살림이라 한다면 우리 하루가 얼마나 길고 알찰는지 가만히 그려 본다. 온힘을 다해 밥을 짓는 나날도 나쁘지 않다. 온힘을 다하는 걸음걸이를 잇다 보면, 앞으로 온힘을 다해 꿈을 짓고 사랑을 펴며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나날을 맞이하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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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못 쓰는 글



모르니 쓸 수 없다. 모르는 채 쓰면 어찌 될까? 거짓글이 되겠지. 생각해 보라. 모르면서 밥을 어찌 짓나? 모르는 채 국을 어떻게 끓이나?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쓴 글이 뜻밖에 잘 될 수 있겠지만, 이런 글은 오래가지 못한다. 밥이든 글이든 제대로 익히고 나서야 해야 제대로 빛이 난다. 모를 적에는 배운다. 밥짓기도 배우고 글짓기도 배운다. 모르니까 배워서 익힌다. 밥짓기도 배워서 익히고, 글짓기도 배워서 익힌다. 밥을 지어서 나누는 살림을 찬찬히 배워서 삶으로 익힌다. 글을 지어서 나누는 기쁨을 차근차근 배워서 사랑으로 익힌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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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글



꿈에서 또다른 나를 본다. 이른바 평행세계라 하는 나란나라에서 살아가는 내가 이곳에 있는 나한테 말을 건다. “어이. 이봐. 잘 보이지? 네가 이곳에서 본 이야기를 소설로 써 봐.” 나는 대뜸 대꾸한다. 여태 꿈을 구경하다가 내 목소리를 낸다. “뭐? 소설을? 난 소설 싫어하는데.” “싫어하든 말든 써 봐. 재미있어.” “아, 소설도 쓰라고? 난 동화를 쓰고 싶은데.” “동화를 쓰든 말든 써 봐. 네가 이곳에서 본 이야기를 잘 떠올려서 쓰면 돼.” “그런가? 그러면 너희도 설마?” “응. 우리도 이쪽 나라에서 글을 쓸 적에 너희 나라 이야기를 꿈에서 보고서 써.” “그렇구나. 헨델이란 사람이 꿈에서 들은 노래를 이승에서 옮겨서 풀어냈다고 하더니, 노래뿐 아니라 글도 그렇구나.” “그래. 넌 몰랐구나.” 이야기를 마치고 꿈자리에서 일어난다. 꿈인지 꿈이 아닌지 헷갈린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하다. 내가 글을 쓸 적에는 이곳에 있다는 생각을 까무룩 잊는다. 오직 글쓰기만 생각하는데,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조차 없이, 아무 소리도 느낌도 배고픔도 추위도 더위도 고단함도 졸림도 안 느끼면서 그저 마음에서 흐르는 모든 목소리랑 노래랑 춤을 고스란히 풀어낼 뿐이다. 내가 그동안 쓴 모든 글은, 어쩌면 나 스스로 모르게 저쪽 꿈나라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낱낱이 옮겼을는지 모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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