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내가 쓴 글이 어떻게 읽히면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본다. 이웃님이 손수 짓는 살림터에 이야기꽃으로 살며시 꽃송이처럼, 바람결처럼, 냇물 한 줌처럼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노래로 가만히 해님처럼, 별빛처럼, 빗방울 하나처럼 깃들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밭으로 상냥히 풀님처럼, 숲바람처럼, 이슬 한 방울처럼 퍼질 수 있으면 좋겠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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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말씨



그림책을 어른도 읽는다지만, 누구보다 어린이하고 아이가 먼저 즐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쓰는 이는 거의 어른이요, 그림책을 엮는 이는 몽땅 어른이다. 그림책을 사서 어린이한테 건네는 이도 어른이겠지. 나라밖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긴다면 어린이가 스스로 옮길 일이란 없이, 모조리 어른이 옮긴다. 이때에 생각해 볼 노릇이다. 어른한테 익숙한 말씨로 그림책을 쓰거나 엮거나 옮기는가, 아니면 어린이가 배울 만한 말씨를 헤아리면서 그림책을 쓰거나 엮거나 옮기는가? 또는 어린이가 쉽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새로 배우도록 북돋우는 말씨로 그림책을 쓰거나 엮거나 옮기는가? 어른만 읽는 문학이나 책을 쓰거나 엮거나 옮기는 이라면 함부로 그림책 글을 건드리지 않기를 빈다. 어린이 눈높이를 떠나, 어린이 삶과 꿈과 사랑을 헤아리지 않는 이들은 부디 그림책 글을 손질하지도 만지지도 않기를 바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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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려는 글쓰기 (옥중편지란다)



얼음판을 지치는 여자 선수를 때리고 괴롭힌 분이 구치소에서 옥중편지를 썼다고 한다. ‘옥중편지’를 이런 때에도 쓰는구나 싶어 놀란다. 옥살이를 한다면 ‘옥중편지’일 텐데 이이는 처음부터 잘잘못을 밝히거나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이가 짓밟은 여자 선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거나 잘못했다고 빈 적도 없었지 싶다(언론에 나온 이야기로 보자면). 그러나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여자 선수를 때리고 괴롭혔다.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이제 옥중편지를 쓴다. 남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이는 참으로 한결같다.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얼마든지 남을 때리거나 괴롭힌다. 이러면서 잘잘못을 못 깨닫는다. 이런 허수아비뿐 아니라, 허수아비를 부리는 웃자리 아재도 매한가지이다. 다들 먹고살려고 그런 짓을 일삼는다. 이런 엉터리 실타래를 풀기란 아주 쉽다. 한체대를 없애면 된다. 얼음판을 지치는 ‘엘리트 스포츠’도 그만두면 된다. 겨울올림픽이라는 데에 앞으로 안 나가면 된다. 거짓부렁을 일삼는 이들이 잘잘못을 깨닫거나 털어놓도록 하자면, 그들이 먹고살 길을 송두리째 한꺼번에 박살을 낼 노릇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이는 참된 문화부장관이자 올바른 대통령이리라 본다. 이런 일을 안 한다면? 그이는 거짓부렁하고 한통속일 테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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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듯 쓰더라도



어제 마감할 글을 오늘 마쳐서 보낸 다음에 작은아이를 이끌고 순천마실을 간다. 작은아이 새 잠옷을 장만하러. 마땅한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이제 고흥 같은 시골서는 어린이옷을 찾기가 어렵거나 없다. 아산 천안 고양 마실길을 거치며 매우 바빠 글 쓸 짬을 아예 못 내다시피 하다가 어제도 집안일 신나게 하니 글살림은 뒷전. 그래 아이들하고 집살림이 먼저이지. 마을 앞 지나가는 버스를 타도록 온힘을 모아 마감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달리듯 쓰더라도 세벌손질은 하자고. 여느 때에는 다섯벌이나 열번손질을 하는데 고작 세벌손질이라 찜찜하지만 세발손질로도 살끌히 해서 틀린곳 없도록 가다듬다고 두 눈에 불을 켰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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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살리는 글쓰기



이야기꽃을 펴려고 이웃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기운을 많이 쓴다. 이러면서 밤잠이나 낮잠을 거의 이루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꽃을 편 이튿날 책다발을 신나게 쌌고, 곧장 이 책다발을 혼자 다 날라서 고흥으로 데리고 왔다. 3.5톤 짐차에 책다발이랑 책꽂이를 싣고서 나르는 일을 오랜만에 해보니 재미있는데, 고흥으로 돌아와서 하룻밤 달게 자니 뒤늦게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팔다리이며 어깨이며 등허리이며 묵직하네. 그대로 더 누워서 쉴까 하다가, 아침에 띄울 누리글월이 있어서 이럭저럭 버티니 서너 시간이 훌쩍 흐른다. 몸이 가볍건 무겁건 스스로 쓰려고 하니 뭔가 쓰네. 마음에 한 마디 말을, ‘몸이 무겁든 말든 써야 할 글이 있으니 쓰겠어’ 하고 씨앗으로 심으니 몸은 이 말씨앗을 받아들여 저절로 움직인다. 돌아보면 그렇다. 마감글을 써서 보낼 적에도 ‘마감에 맞추어서 새 이야기를 써서 보내겠어’ 하는 생각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으니 글을 써낸다. 어떤 글을 쓰고 싶다면 바로 이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써야겠다는, 신나게 쓰겠다는, 신나게 쓰고서 기쁘게 몸을 쉬겠다는, 생각이란 씨앗을 마음에 심으면 되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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