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네가 엉뚱해도



묻는 네가 슬기롭기에 너한테 대꾸하는 말이 슬기로울까? 나한테 띄운 네 글이 엉터리이기에 나도 너한테 엉터리인 글을 마주 띄워야 할까? 묻는 네가 사랑스럽기에 너한테 대꾸하는 말이 고스란히 사랑스러울까? 나한테 퍼붓는 네 글이 얄궂기에 나도 너한테 얄궂다 싶은 글을 마구 들이밀어도 즐거울까? 생각한다. 다시 생각하고 자꾸 생각한다. 누가 참 엉뚱하거나 엉망이로구나 싶은, 바보스럽거나 어처구니없거나 부질없구나 싶은 이야기를 물어도 대수로울 일이란 없다. 어떤 물음을 받아들이건 나 스스로 어떠한 길을 꿈으로 지으면서 나아가려 하는가, 이 하나만 헤아리면서 맞글을 적거나 맞말을 들려주면 될 뿐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돌보면서 스스로 곱게 빛나는 기쁨을 누리려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거나 살림을 짓거나 곁님을 바라보거나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는다. 누구한테 잘보이거나 밉보일 까닭이 없을 뿐더러, 서로 엉뚱하거나 엉성할 일도 없다. 가장 수수하면서 가장 티없이 웃는 낯으로 글 한 줄을 적고 말 한 마디를 풀어놓아 바람결에 띄우면 넉넉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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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서 떼쓰기



나고 자란 고장인 인천에 모처럼 느긋하게 와서 오랜 동무한테 전화를 했는데 고등학교 적 여러 동무하고 얽혀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쩜 이렇게 그 나이에도 철이 없이 살아가려 하는지, 한숨보다는 눈물이 나왔다. 얘들아, 그 나이에 그렇게 놀면서 무슨 돈을 얼마나 거머쥐고 싶어서 그러니, 하고 묻고 싶더라. 이러다가 고등학교 적에 같이 교지편집부로 일하던 동무가 인천에서 사서 일을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고, 속으로 ‘그래 맞아, 예전에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하고 떠올렸다. 아, 우리 오랜 동무 가운데 인천에 고스란히 남아서 참하게 삶을 짓는 씩씩하고 멋진 녀석이 있구나! 인천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무한테 오늘 아무리 늦게 일이 끝나더라도 내가 묵는 길손집 언저리로 와 달라고 살짝 떼를 써 보았다. 보름쯤 앞서 새로 낸 책을 줄 테니 꼭 와 주기를 바랐다. 안 오거나 못 올 수 있을 테지만 이렇게 말을 넣었는데, 저녁 열 시가 되도록 딱히 대꾸가 없어서 길손집에서 까무룩 잠들었는데 열한 시 넘어서야 닿을 수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또 잠들었지만 만났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기운을 얻는다. 어쩌면 이 기운은 스스로 길어올린다고 할 만할 텐데, 나는 우리 동무님이 시장이나 군수나 장관이나 대통령으로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즐겁게 하루를 짓고, 기쁘게 살림을 노래하며 상냥하게 사랑을 꿈꾸고 따스하게 서로 안고 토닥일 줄 안다면 서로 하느님과 같다고 느낀다. 다만, 그래도 인천에서 이 밤하늘에 별은 안 보이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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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


《우리말 동시 사전》이란 사전+동시집+우리말 이야기책을 써내고서 스무 날이 지난다. 이 책을 받아서 읽은 이웃님이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사랑스럽다고 말씀해 주신다. 무척 고마운 말씀이라고 여기면서 살그마니 대꾸를 한다. “겉보기로는, 제가 지난 열한 해에 걸쳐서 쓴 동시를 모아서 엮은 사전이에요. 속보기로는, 제가 지난 열한 해에 걸쳐서 만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웃님을 그리면서 그때그때 한 줄 두 줄 쓴 동시를 새롭게 가다듬고 갈고닦아서 엮은 사전이지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웃님을 만나거나 알 수 있어서 쓸 수 있던 동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는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같이 삶말을 배우는 길을 걷기에 다시 여밀 수 있어요. 틀림없이 제 손끝에서 태어난 동시이지만, 이웃님 마음하고 아이들 눈빛에서 길어올린 동시이기도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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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송곳을 볼 적이면, 누가 송곳을 말할 적이면, 으레 어릴 적 일이 떠오른다. 송곳이란 연장은 대단히 날카로워서 송곳에 찔려 피가 난 적이 꽤 잦다. 이러던 어느 날 송곳이란 녀석이 왜 자꾸 나만 찔러서 피를 내느냐 싶어서 “네가 얼마나 날카로운데?” 하면서 송곳을 눈앞에 대고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이때에 송곳을 보니 그리 날카롭지 않더라. 오랫동안 날카로운 곳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판판해 보였고 둥그스름해 보이기도 했다. 그 뒤로는 송곳에 찔린 일이 없다. 어쩌면 송곳은 우리가 지켜봐 주기를, 제대로 보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저를 제대로 보거나 알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손에 쥐지 말라는 얘기를 속삭이지 않았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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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쓰다



여느 날보다는 늦은 새벽 네 시에 눈을 뜬다. 여느 날이라면 밤 두 시에 눈을 뜬다. 어제 하루 어울린 이웃님을 돌아보면서 오늘 새로 할 일을 가다듬는데, 하루를 열며 어떤 이야기를 먼저 글로 남기려는가 하고 문득 바라본다.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라면 우리 사랑님하고 어우러지는 길이 먼저라, 글보다는 세 사람을 으레 먼저 본다. 새벽에 일어나면 하늘을 먼저 보고, 밤에 눈을 감을 즈음에는 마음자리에 흐르는 별빛을 먼저 느끼려 한다. 가만히 따지면 글은 으레 맨끝이라 할 만하다. 삶이 꽃등이요, 살림이 꽃등이며, 사랑이 꽃등이라 할까. 내 손에서 피어날 글은 언제나 꽃다운 글인 꽃글이기를 바란다. 스스로 꽃글을 쓰자면 꽃눈으로 둘레를 볼 노릇이요, 꽃손으로 삶터를 가꿀 노릇이며, 꽃걸음으로 사뿐사뿐 다닐 뿐 아니라, 꽃치마이든 꽃신이든 꽃다이 차려입고 바람처럼, 아니 꽃바람처럼 휘휘 노래를, 아니 꽃노래를 읊을 노릇이겠지. 그러고 보니, 꽃글을 쓰고 모아서 꽃책을 엮어서 꽃이웃한테 살포시 건네면, 이 꽃책은 우리 살림자리에, 아니 우리 꽃살림에 꽃돈으로 돌아오겠구나 싶다. 스스로 꽃이 되기, 그렇구나. 먼저 쓸 이야기란 마음 가득 꽃넋을 채우기로구나. 꽃넋으로 꽃마음을 돌볼 줄 아는 꽃생각이기에 글 한 줄 한 줄에 포근한 숨결을 담을 수 있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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