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 물고기가 사라진 강의 부활에 인생을 건 남자 이야기
야마사키 미쓰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환경책 읽기 61



샘터를 스스로 버리는 사람

―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야마사키 미쓰아키 글

 이정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13.5.10.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는 샘터와 빨래터가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마을 어귀에 있고, 하나는 마을 안쪽에 있어요. 마을 어귀에 있는 샘터와 빨래터는 제가 아이들하고 달마다 두 차례씩 치웁니다. 이제 시골마을에서도 샘터에서 물을 안 긷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안 하니, 늘 물이끼가 잔뜩 끼거든요.


  아이들은 샘터에서 물을 마시다가 발을 담가 참방참방 놉니다.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제가 신나게 걷어내고 바닥을 벗겨 미끄럽지 않게 해 놓으면, 두 아이는 이내 빨래터로 옮겨서 한참 물놀이를 즐깁니다. 한여름에도 차갑다 싶도록 흐르는 물줄기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다른 곳 물은 다 얼어도 샘터와 빨래터에서는 물이 얼지 않아요.



.. “여보,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곳에는 아무거나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 골프장이나 획일화된 테마파크는 지역의 진흥과 연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만 낳았다 … 오물 속으로 잠수를 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생물을 구하면 우리 인간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  (39, 49, 68쪽)



  흐르는 물은 얼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더럽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맑은 빛입니다. 흐르는 물에는 온갖 목숨이 깃들어 함께 살아갑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쉽게 업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이내 더러워지고 맙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맑은 빛을 띠지 못합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에는 아무런 목숨이 깃들지 못합니다.


  바람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흐르지 못하는 바람은 싱그럽지 않습니다.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건물에서도 바람은 흘러야 합니다. 지하상가나 지하철에서도 바람은 늘 흘러야 해요. 고인 바람에서는 누구라도 숨이 막혀요. 바람이 꽉 막혀서 옴쭉달짝 못한다면 사람도 다른 목숨도 갑갑해요.


  그러니까, 물과 바람 못지않게 모든 것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돈도 흘러야 하고 사랑도 흘러야 합니다. 이야기도 흘러야 하며 지식과 책도 흘러야 합니다. 흙은 빗물 따라 냇물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모래밭을 이루거나 갯벌을 이룹니다. 뭍에서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더라도, 숲과 들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가 가랑잎을 내놓고 시든 풀줄기를 내놓기에 새 흙이 자꾸 생겨요. 풀벌레가 죽고 크고작은 짐승이 죽으면서 주검 또한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흐르는 삶이 있는 지구별입니다. 흐르는 사랑으로 아름다운 지구별입니다.



.. 가장 무서운 것은 조사자의 그릇된 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국가가 공식적으로 ‘어류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세재 회사를 고발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빨래를 할 때, 때가 잘 빠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거품이 잘 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누나 합성세제에서 냄새가 오랫동안 지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69, 136쪽)



  지구별에 평화 아닌 전쟁이 감도는 까닭은 흐름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세워서 흐름을 막으니 전쟁이 터집니다. 지구별이 모두 같은 나라라면 전쟁이 터져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울타리가 없다면 군인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배고플 적에 도우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아픈 이웃을 보살피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이웃한테 찾아가면서 맛난 밥을 잔뜩 챙깁니다. 이웃이 지내는 집을 고치려고 신나게 찾아갑니다. 이웃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이웃한테 멋진 그림을 거저로 선물합니다. 이웃끼리 사랑스레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혼인을 하고 제금을 나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 국토교통성을 찾아가 댐 철거와 관련된 문제를 상담해 보면 틀에 박힌 듯 이런 말이 돌아온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물고기와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물고기와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연과 관련된 문제를 양자택일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오염이나 공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니까 … 실제로는 아무리 더러운 강이라고 해도 강은 강이다. 그곳에는 반드시 생명이 살고 있다. 불과 다섯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은 생명이다 ..  (149, 159쪽)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이 쓴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알에이치코리아,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늘 즐겁게 사귀던 냇물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합니다. 현대문명과 도시문명이 망가뜨리고 만 냇물을 되살리려고 온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이녁이 기울이는 땀방울은 온갖 행정과 관청과 관료와 제도에 가로막힙니다. 그래도,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은 고개를 꺾지 않아요. 냇물이 좋거든요. 냇물이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냇물이 흐르면서 삶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한편, 꿈과 이야기가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작은 바람은 어느새 꿈으로 자랍니다. 꿈은 시나브로 빛이 됩니다. 빛은 다시 이녁 가슴으로 스며들고, 이녁 가슴에 스며든 빛은 고운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이제 한국에서 샘터나 빨래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샘터나 빨래터가 있어도 따로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물이끼로 뒤덮여 제구실을 못합니다. 싱그러이 흐르는 샘물을 버리고 댐을 지어서 수돗물을 마시려는 한국사람입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맑은 물과 바람이 아닌, 정수기와 화학약품에 길든 물과 바람으로 목숨만 건사하려는 흐름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람들 스스로 이 대목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누리는 길을 저마다 즐겁게 찾아나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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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와 흑산도 빛깔있는책들 - 한국의 자연 217
고동률 / 대원사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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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0

 


섬에서 빛나는 삶과 꿈
― 홍도와 흑산도 (빛깔있는 책들 301-35)

 고동률 글

 박보하 사진

 대원사 펴냄, 1998.7.25.

 

 

  전라남도에 신안군이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알던 신안은 신안 바닷가에서 옛배를 길어올려 지난날 유물과 유적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어릴 적에는 흑산도라든지 홍도가 신안군에 있는 섬인 줄 몰랐습니다. 그 먼 바다까지 배를 타고 찾아갈 일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해 보곤 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내 삶이라,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여덟아홉 시간을 간다는 백령도를 헤아리면서, 흑산도나 홍도는 얼마나 뭍에서 먼 섬일까 하고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장봉섬에서 여러 해 일했습니다. 장봉섬 한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옹암분교에서 분교장을 맡으셨습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1988년부터 섬학교 교사로 계셨고, 세 해였지 싶은데, 섬학교 일곱 아이와 지내다가 분교가 문을 닫아야 하면서 다시 뭍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어머니와 형과 함께 배를 타고 장봉섬에 갈라치면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물결이 높게 치는 날에도 배를 탔고, 출렁출렁 흔들리는 배에서 어머니는 곧잘 멀미를 하셨습니다.

 

  인천항을 떠난 배는 장봉섬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섬에서 통통배가 마중을 나옵니다. 섬에서 내릴 사람은 통통배로 갈아탔습니다. 섬에 있는 포구는 아주 작거든요. 큰 배가 닿을 수 없어요. 포구에서 내려 여러 짐을 짊어진 채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용케 경운기를 만나면 짐칸에 얻어 탑니다. 하염없이 걸어야 할 적에는 흙먼지 날리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도라지꽃을 보았습니다. 섬에서 자라는 도라지는 어린 내 키를 훌쩍 넘도록 크게 자랐고, 호미로 도라지를 캐서 뿌리를 잘 씻은 뒤 벗기면 날로 먹어도 맛있고 무쳐도 맛있는 나물이 되었습니다.

 

 

.. 홍도와 흑산도의 아름다운 자연미와 특이한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느끼려면 많이 걷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  (109쪽)

 

 

  국민학교를 갓 마친 나는 옹암분교 아이들을 만나서 함께 놀 수 있었으나, 어쩐지 수줍고 부끄러웠습니다. 섬아이는 살갗이 아주 까맸고, 도시인 인천에서 온 내 살갗은 허얬습니다. 허연 살갗 때문에 더 섬아이하고 마주하지 못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섬에서 한 달쯤 지내면 내 허연 살갗도 제법 까무잡잡 타곤 했어요.

 

  섬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섬에서 어떤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요. 섬에서 읽는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섬에서 보는 하늘과 섬에서 걷는 길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으레 섬에서 지내는데, 우리 식구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려 찾아오지만, 다른 이들은 섬에서 놀려고 찾아옵니다. 작은 분교가 있는 작은 숙소에서 네 식구가 지내는데,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인천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까닭을 요즈막에 새삼스레 돌아보곤 합니다. 방학이라고 인천으로 돌아가면, 여름철에 섬으로 놀러오는 이들이 분교 건물에 함부로 들어와서 어지럽히거나 유리창을 깨거나 쓰레기를 운동장에 버리거나 해요. 운동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놀이꾼이 있기도 하고, 병을 아무 데나 던져서 깨뜨리기까지 해요. 그러고 보니, 섬에서 머무는 동안 쓰레기를 줍거나 빈병을 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 유람선 선장의 홍도와 바다 사랑은 끔찍하다 못하여 처절하기까지 하다. 관광객이 무심코 담배나 휴지를 바다에 던졌다가는 망신도 보통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니다. 목청 큰 선장은 집 방바닥에 침을 뱉을지언정 바다에는 먼지 하나 털어내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  (15∼16쪽)

 

 

  그리 크지 않은 섬에 있던 아주 조그마한 분교는 곧 문을 닫습니다. 분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섬에서 가장 큰 학교로 먼길을 다녀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중학교를 다니려고 인천으로 하숙을 나왔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섬에 남아 섬사람으로 지낼까요.

 

  이제는 장봉섬 옹암분교 마지막 분교장이던 우리 아버지를 떠올릴 마을 어른은 아무도 없지 싶어요. 분교가 문을 닫고 몇 해 뒤 장봉섬을 찾아와서 부러 분교까지 혼자 걸어온 적 있는데, 그사이 분교는 모든 유리창이 깨지고 모든 물건이 사라졌으며 모든 것들이 어지럽게 되고 말았습니다. 작은 운동장 축구골대마저 쓰러지고, 국기게양대는 넘어졌으며, 운동장 곳곳은 빈 술병과 고기 구워 먹은 시꺼먼 잿더미가 춤추고 이곳저곳에서 오줌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나중에 다시 열기를 바라며 학용품도 공책도 교과서도 그 교실에 그대로 두었는데 어느 하나 남아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지내던 관사도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관사 지붕에 고추를 널어 말리면서 바다를 하염없이 내다보던 일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 삼층석탑과 석등을 가림은 물론 뿌리가 굵어지면서 석탑을 기울게 한 것이다. 팽나무뿐만 아니라 인간도 훼손에 일조를 하였다. 나름대로 보존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바닥을 온통 시멘트로 바르고 주변에 돌담을 쌓아 석등과 석등 주변은 원형을 거의 잃었다 ..  (61쪽)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피서란 무엇일까요. 관광이란 무엇일까요. 도시 손님은 누구인가요. 모두들 맑고 깨끗하며 싱그러운 시골로 찾아가서 맑은 바람과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을 텐데, 시골에 온갖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도시로 돌아가면, 시골은 어떡해야 할까요. 도시에서 가져온 것들을 지져 먹든 구워 먹든 즐겁게 누릴 노릇이지만, 빈병도 쓰레기도 과자봉지도 귤껍질도 몽땅 도시로 가져가서 치워야 옳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사람은 도시사람 뒷자리를 치우는 일꾼이 아니거든요. 시골사람은 시골마을을 돌보고 가꾸면서 사랑하는 숲지기인걸요.

 

  고동률 님 글과 박보하 님 사진으로 빚은 예쁘고 작은 책 《홍도와 흑산도》(대원사)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1998년에 처음 나온 책인데, 요즈음에 새로운 판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4년 눈길로 바라보자면 1998년에 나온 책에 실린 이야기는 참 오래되고 아스라한 옛모습으로 여길 만합니다. 참말 이 책에 나온 이야기와 다르게, 그동안 아주 많이 달라졌거든요. 뱃길은 더 빨라졌고, 온갖 위락시설은 더 늘었으며, 집도 건물도 길도 아주 많이 바뀌었습니다.

 

 

.. 예전에 비하여 지금의 생활은 많이 윤택해졌다. 자식들 대학 보내고 목포 등지에 집을 장만하여 두기도 한다. 생활이 어느 정도 윤택해지면서 어부의 자식들은 고기 잡는 일을 대물림하지 않고 있다. 지긋지긋하기만 한 섬을 떠나 육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  (90쪽)

 

 

  이런저런 추억에 잠길 생각으로 《홍도와 흑산도》를 읽지는 않습니다. 이웃들한테 이 작고 예쁜 책을 아스라한 옛생각에 잠기라는 뜻으로 읽으라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을 찬찬히 펼치면서 넘기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가꾸는 삶이란 무엇인지 천천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곰곰이 새기며 읽고 사진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저마다 꿈꾸는 사랑이 어떻게 빛나는가 하고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삶이란 어디에서 아름다울까요. 삶은 누가 가꿀까요. 삶을 이루는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삶을 밝히는 꿈은 누가 곱다시 보듬을까요. 책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덮습니다. 4347.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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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우리 섬
강제윤 글.사진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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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60

 


걷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본다
―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
 강제윤 글·사진
 호미 펴냄, 2013.12.21.

 


  걷는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은 이웃을 보고 마을을 볼 수 있습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볼 수 없고 마을을 볼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겨울나무를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봄꽃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꾀꼬리가 노래하면서 날갯짓하는 모습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제비집을 보고, 나비춤을 봅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겨울나무를 보지 못해요. 걷지 않는 사람이 봄꽃을 볼 수 없어요. 자가용을 몰면서 꾀꼬리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고, 도시에서는 꾀꼬리가 어떤 새인지 아예 생각조차 못 합니다. 걷지 않는 사람이라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제비가 둥지를 짓거나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요.


.. 섬에도 새로운 트레일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하지만 섬의 길들은 부러 만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트레일이다 … 본디 이름 없는 길에 사람이 다니면서 이름이 생겼다가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이름이 없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길은 자연의 것을 사람이 잠시 빌려 쓰던 것이다 …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분재를 한다고 나무를 캐 가고, 난과 야생화를 파내느라 섬의 산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산마루가 닳고 등산화 바닥이 닳도록 다닌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다닌들, 이 섬의 산이 쉽게 없어지거나 바닷속으로 꺼져 버리기야 하겠는가 ..  (9, 75, 107쪽)


  걷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걷는 사람이 논일과 밭일을 합니다. 두 다리로 이 땅에 서서 들일을 합니다. 풀을 뽑건 나물을 캐건, 두 다리로 땅을 디뎌야 풀내음을 맡으면서 봄맛을 누립니다. 자가용을 몰아 마트에 가서 푸성귀를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만, 마트에서 사는 푸성귀로는 영양소는 얻을 수 있을 터이나, 풀 한 포기가 뿌리내리는 흙을 알 수 없어요. 흙을 모르고, 햇볕을 모르며, 빗물을 모르는 채 영양소만 먹을 때에는 몸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흙을 알고, 햇볕을 알며, 빗물을 아는 삶으로 풀을 먹을 때에 비로소 몸이 살아납니다.


  아픈 사람은 예부터 시골로 보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도시에 둔 채 좋은 약만 먹인대서 몸이 낫지 않습니다. 약과 병원과 의사만으로는 아픈 사람을 고치지 못합니다. 아픈 사람 스스로 일어서려고 마음을 먹어야 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이 늘 보는 모습과 마시는 바람과 들이켜는 물과 먹는 밥이 달라져야 해요. 눈코입으로 마주하는 삶자락이 달라져야 아픈 몸을 씻을 수 있습니다.


  안 아픈 사람도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아갈 때에 몸과 마음을 한결 아름답게 건사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시골이듯, 안 아픈 사람은 한결 튼튼하면서 힘차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시골입니다. 그리고 이 시골은 누구나 걷도록 합니다. 누구나 흙을 밟고 만지면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 돌이켜보니 그 시절 농사가 많아서 잘살던 사람들은 이제는 어렵게들 산다. 농사지어도 돈이 되지 않으니 자식들 키우고 결혼 시키느라 농토까지 다 팔아 버렸고 지금은 그저 품팔이나 하며 살아간다. 반면에 농사가 없던 사람들은 바다에서 살 길을 찾다 보니 부유해졌다 … 밭에서 수확한 두릅은 깨끗이 씻어 건조한 뒤 다음날이면 한산도 농협으로 보내져 경매된다. 봄이 와도 이제는 더 이상 산과 들에서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 나물 캐던 처녀는 어느덧 일흔넷 노인이 되었다 ..  (81, 96쪽)


  꽃은 꽃집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꽃은 흙에서 자랍니다. 꽃집에서 꽃을 키우더라도 흙이 있어야 합니다. 꽃집에 두는 흙은 어디 먼 나라에서 사들이지 않습니다. 모두 시골에서 가져옵니다. 시골에서 따스한 햇볕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싱그러운 빗물을 머금은 흙일 때에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 모두 싱그럽게 싹을 틔워요.


  사람도 풀이랑 나무랑 꽃하고 똑같습니다. 풀과 나무와 꽃이 좋은 흙과 바람과 물을 머금으며 아름답게 자라듯, 사람도 좋은 흙과 바람과 물을 마주할 수 있는 터전에서 살아갈 때에 아름답게 자랍니다.


  농약과 비료로 더 굵은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요? 농약과 비료로 키운 열매나 푸성귀는 우리 몸에 얼마나 이바지를 할까요? 농약과 비료가 아닌, 흙과 바람과 빗물로 키우거나 자라도록 하는 푸성귀와 열매를 먹을 때에 비로소 튼튼한 몸과 마음이 되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가르칠 적에도 농약과 비료하고 똑같다 싶은 입시교육으로 닦달하면 아이들 누구나 고달픕니다. 가르치는 교사도 고단합니다. 농약을 뿌리는 사람도 농약 때문에 고단하듯이, 입시교육을 집어넣는 교사도 고단한 노릇입니다.


  시골사람이라면 잘 알겠지요. 농약과 비료를 친 곡식이랑 농약도 비료도 안 친 곡식이랑 맛이 얼마나 다른 줄 잘 알겠지요. 도시 아이들이 왜 아토피로 몸살을 앓는지 시골 할매와 할배도 다 알 테지요. 도시로 떠난 이녁 아이들하고 손자한테 농약과 비료를 듬뿍 친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먹으라고 줄 시골 할매나 할배는 없을 테지요.


.. 자동차의 방해 없이 걸음에 몸을 맡기고 온전히 걸을 때 생각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 육지의 횟집들에서는 자연산이라 해서 양식보다 몇 배 비싼 값에 회를 팔지만 어부들은 양식이나 자연산이나 같은 값에 활어를 넘긴다. 판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포로수용소를 만들기 위해 용초도에 들어온 첫날부터 미군들은 여자를 찾았다 한다. 여자들은 모두들 으슥한 곳에 숨어서 숨을 죽여야 했다 … 섬을 찾는 뭍사람들은 대체로 걷기에 목말라 한다. 그러니 섬에는 아무리 많은 걷기 길이 생겨도 지나치지 않다. 제발 자동차 도로 확장은 더는 없으면 좋겠다. 또 관광객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하면 좋겠다 ..  (180, 194, 196, 316∼317쪽)


  강제윤 님이 통영 둘레 섬을 두루 돌면서 적바림한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호미,2013)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강제윤 님은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섬맛을 봅니다. 자가용이 아닌 두 다리를 아끼고 믿고 사랑하고 즐기고 누리면서 섬내음을 맡습니다. 자전거조차 달리지 않고 오직 두 다리에 기대어 섬을 걸으면서 섬빛을 깨닫습니다.


.. 농담처럼 말씀하시지만 어디 고개 하나만 넘어왔으랴. 삶이 내내 고갯길이었을 것을. 딸들은 서울에 산다. “대학교를 거기서 나와서 안 내려와요.” 하지만 할머니는 욕지도가 제일 좋다. “다 다녀 봐도 여가 젤로 좋아요. 제집이 제일이죠.” … 통영의 무전동은 본래 ‘안개’라 불렀다. ‘개’는 포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륙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포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228, 249쪽)


  읍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시골 아이는 읍내에서 살고 싶습니다.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닌 시골 아이는 도시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딱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시골에서만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내는 시골 아이조차 도시로 떠나서 살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아이를 도시로 내보내기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와 경제는 모든 아이가 도시로 떠나서 자가용을 몰며 회사원이 되도록 밀어붙입니다.


  회사나 공공기관에 두 다리로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요. 학교로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 손을 잡고 걸어서 오가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날 십 리 길이든 이십 리 길이든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 어른들이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자가용을 몹니다. 십 리는커녕 한두 리밖에 안 되는 길조차 걷지 않고 자가용을 몹니다.


  가방이나 보자기를 들고 짐을 옮기는 어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외국여행을 한다면 비행기를 타기까지, 또 자가용으로 호텔 앞에서 내려 승강기를 타고 객실에 들어갈 때까지 커다란 바퀴가방을 돌돌 끌기는 할 테지만,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면서 여행하는 어른도 퍽 드물어요. 다들 자가용을 탑니다. 모두들 자가용을 타려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주 빠르게 가로지릅니다.


  서울에도 골목이 아직 많아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면, 관광지도에 없는 아름다운 삶빛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통영 섬에도 아름다운 삶빛이 있지만, 부산에도 인천에도 대구에도 아름다운 삶빛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빛이란, 아름다운 사람들이 조촐하게 가꾸는 빛입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꾸미는 빛이 아닌, 하루하루 들을 가꾸듯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가꾸면서 이룬 빛입니다.


  골목에서는 골목빛입니다. 섬에서는 섬빛입니다. 시골 마을에서는 마을빛입니다. 숲속에서는 숲빛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빛이요, 어디에서나 누리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빛입니다.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은 이야기합니다. 우리 함께 걷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땅을 걷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빛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일하고, 느긋하게 걸으면서 노래하며, 즐겁게 걸으면서 웃음꽃 피우는 춤잔치 벌이자고 이야기합니다. 4347.2.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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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북녘은 나비도 다르나요 - 나비 박사 이승모 우리 인물 이야기 23
이상권 지음, 신민재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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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6

 


나비는 사람한테 ‘나쁜 벌레’인가
― 이승모 할아버지의 남녘북녘 나비 이야기
   나비 박사 이승모, 남녘 북녘은 나비도 다르나요
 이상권 글
 이제호 그림 / 신민재 그림
 청년사 펴냄, 2003.4.30.
 우리교육 펴냄, 2009.9.1.

 


  전라남도 함평이라는 곳에서 ‘나비 잔치’를 합니다. 나비를 아끼고 사랑하는 잔치마당이라 할 텐데, 다른 시골에서는 엄두조차 내지 않는 잔치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 시골에서는 나비를 몹시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나비와 벌이 꽃가루받이를 해 준다고 여겼습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밀어막친 비료농사와 농약농사 물결은 나비 애벌레가 푸성귀와 열매를 갉아먹는다고 여깁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비료와 농약을 퍼붓는 농사를 지으면서 나비 애벌레가 갉아먹을 풀잎과 나뭇잎이 모조리 사라지거든요. 나비 애벌레가 찾을 먹이는 사람들이 밭에서 돌보는 푸성귀와 열매밖에 없습니다.


  논둑이고 밭둑이고 여느 풀이 자랄 틈이 없는 오늘날 시골입니다. 밭고랑이고 들이고 숲이고, 여느 나무를 그대로 지켜보지 않는 오늘날 시골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비가 ‘좋은 벌레’ 아닌 ‘나쁜 벌레’가 되도록 내몰았지만, 사람들은 다시금 나비를 괴롭히기만 합니다.


.. 허허허, 그럴 거야. 요즘은 애벌레만 벌거지라고 하니까. 하지만 예전에는 애벌레뿐 아니라 작은 곤충들도 다 벌거지라고 불렀단다. ‘곤충’이라는 말도 없었어. 풀밭에서 꿈틀꿈틀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니는 것들을 다 벌거지라고 했어. 그러니까 너희가 아는 벌거지와는 조금 다르지 … 나이 드신 어른들은 요즘도 고급스럽고 깨끗한 옷을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이라고 하신단다. 그리고 예전에 어른들이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처녀들을 보고 말씀하신 것도 생각나는구나. “꼭 잠자리 날개처럼 옷을 입고 다니네.” 너희도 잠자리 날개를 자세히 보렴. 맑고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  (17, 47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골사람이 나비를 어떻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비가 깨어나거나 말거나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바쁜 일이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나비가 알을 까고 먹이를 찾을 만한 빈터나 들이나 숲이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파트마다 꽃밭을 두기는 하지만 시골 못지않게, 때로는 시골보다 훨씬 많이 농약을 뿌립니다. 도시에도 틀림없이 곳곳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있으나, 막상 나비를 구경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나비가 살아날 틈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퀴퀴한 바람인 도시인데, 농약을 더 끼얹으니 어른이고 아이이고 맑은 바람을 마시가 몹시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벌이 어떻게 나고 죽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벌이 깨어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회사와 가게에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부산스러운 도시사람인데, 돈 얼마쯤 치러 꿀을 사다 먹습니다. 벌이 없으면 꿀을 얻지 못할 테지만 벌을 알지도 못한 채 꿀을 사다 먹습니다. 벌이 있어도 들과 숲에 고운 꽃 피우는 온갖 풀과 나무가 우거져야 벌이 꿀을 모으지만, 막상 시골 들과 숲에 풀과 나무가 우거져야 하는 줄 헤아리지 않습니다. 시골 들과 숲에 고속도로를 내거나 철길을 닦거나 골프장을 놓거나 공장을 짓기에 바쁠 뿐, 벌이 꿀을 모을 푸르며 아름다운 들과 숲을 지키는 일에는 젬병입니다.


.. 우리 집은 학교에서 30리나 떨어져 있었단다. 5리가 2킬로미터이니까, 30리면 12킬로미터쯤 돼. 부지런히 걸어도 두 시간 남짓 걸리니, 아침 일찍 나서야 지각을 하지 않았단다. 먼길이긴 했지만 대동강변에 있는 둑길이라, 강바람이 부는 풀밭 길을 달려가면 되었어. 요즘처럼 신호등을 건널 필요도 없었고, 차나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없었지. 그리고 그 먼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단다. 그 둑길을 지나다 보면 개구리랑 곤충 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 … 요즘은 차가 없으면 어디를 다니기가 힘든 세상이야. 하지만 나는 여태껏 차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단다. 산이나 들로 다닐 때마다 차가 아쉽기도 했지. 그런데 이 할아버지 생각에는 말이야, 우리 나라에서 차를 몰고 다니면 성격을 버릴 것 같더구나. 조금만 막히면 짜증 내고, 운전자들끼리 욕하고, 그럴 때는 위아래도 없이..  (20, 90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봄에 제비가 찾아오거나 말거나 알지 못합니다. ‘제비’라는 새는 이름으로는 알지만, 제비를 그림을 그리라 하면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어른이나 아이는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제비를 본 일이 있어야지요. 어릴 적에 보았다 하더라도 까맣게 오래된 일입니다. 제비가 왜 도시로 찾아오지 않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제비가 왜 시골에서조차 자취를 감추는지 알아보지 않습니다.


  너무 마땅한데, 제비는 먹이가 없는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처마가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너무 많아 아슬아슬한 데에서는 자동차에 치여 죽습니다. 날쌘 제비이지만, 시골에서 자동차에 받혀 머리가 터진 채 죽기 일쑤입니다. 무엇보다, 제비가 잡아먹을 애벌레나 풀벌레나 벌나비가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에서 제비가 어떻게 살겠어요.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를 들이붓다 보니, 제비가 잡아먹을 애벌레도 풀벌레도 벌나비도 찾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헬리콥터로 시골 들과 숲에 농약을 뿌려대니, 제비는 이 농약을 맞고 숨을 거두기까지 합니다.


.. 어느 날 나는, 풀밭에서 베짱이 한 마리를 잡았어. 베짱이를 방에다 풀어 놓으면 밤새도록 우는데,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아. 그래서 나는 베짱이를 아예 키우려고 생각한 거야 …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어. 내 몸 안에서 들리는 시냇물 소리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지냈지.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은 어떤 곤충을 보게 될까 하는 마음에 설레곤 했어 …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빵이나 돈이 아니라 나비였어. 사실 나비 한 마리 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놈을 보자 배고픔이 싹 달아나고 마치 형제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거야. 아, 눈물이 나더구나 ..  (34, 55, 68쪽)


  이상권 님이 쓴 《이승모 할아버지의 남녘북녘 나비 이야기》(청년사,2003/우리교육,2009)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전라남도 함평은 어떤 마음으로 나비 잔치를 꾀했을까 궁금합니다. 전라남도 함평군 공무원과 군수는 어떤 넋으로 ‘오늘날 시골에서는 나쁜 벌레로 여기는 나비’를 주인공으로 삼아 잔치를 벌이려고 했을까 궁금합니다.


  나비는 꽃가루를 쪽쪽 빨아서 먹습니다. 풀꽃과 나무꽃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돕습니다. 나비 애벌레는 잎사귀를 알맞게 갉아먹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나비가 잎사귀를 솎아내고, 거위벌레는 가지를 톡톡 끊어 줍니다. 제비를 비롯해 수많은 멧새는 나비와 나비 애벌레와 거위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제비가 날갯짓하는 논밭 언저리에는 둠벙이 있기 마련이요, 참개구리와 풀개구리가 봄부터 깨어나 작은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거미도 작은 벌레를 잡아먹지요. 잠자리도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데, 거미와 제비와 숱한 멧새는 잠자리를 새삼스레 잡아먹습니다.


  저마다 알맞게 어우러지는 숲살이예요. 서로서로 고르게 어깨동무하는 숲살림입니다. 숲살이를 돌아볼 수 있을 때에 시골이 아름답습니다. 숲살림을 보듬을 수 있을 적에 시골이 사랑스럽습니다.


.. 정말 이렇게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치어나 잠자리 애벌레들은 서로 적당히 잡아먹는단다. 알고 보면 서로서로 개체수가 많아지지 않도록 조절을 해 주는 거야 … 북쪽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낮나비’와 ‘불나비’라고 부른단다. 낮에 날아다니는 나비, 밤에 불을 보고 찾아오는 나비라는 뜻이야 … ‘호랑나비’는 북쪽에서는 ‘범나비’라고 불러. 많은 사람들이 ‘범’이 한자고, ‘호랑이’는 한글인 줄 알더구나. 하지만 범이 한글이란다. 호랑이는 범을 뜻하는 ‘호(虎)’ 자와 늑대를 뜻하는 ‘랑(狼)’ 자가 합쳐진 말이야 … 하늘소라는 말은 중국식 이름인 ‘천우(天牛)’라는 말을 그대로 풀어 놓은 거야. 누가 맨 처음 하늘소라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야. 북한에서는 하늘소를 ‘돌다래’라고 해. 돌다래란 발로 돌을 들어올린다는 뜻이거든 ..  (60, 80, 81, 82쪽)


  함평에서는 나비 잔치를 하지만, 함평군에서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함평을 등집니다. 다른 시골에서도 아이와 어른 누구나 시골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학교교육은 초·중·고등학교 어디에서도 ‘시골에서 즐겁게 흙을 만지며 살도록’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교육 열두 해에 걸쳐, 아이들이 손수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거나 나무를 돌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학교에서조차 학교나무에 농약을 쳐대는걸요. 학교에서마저 학교나무 이름을 교사도 학생도 모르는걸요.


  도시나 시골이나 입시교육으로 바쁩니다. 애써 대학교에 간다 한들,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만 헤아립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 도시에서 예술인이나 문화인이 되는 길을 생각하지, 시골에서 예술꽃이나 문화나무 가꾸려는 젊은이가 없습니다. 밥과 옷과 집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슬기롭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도무지 없습니다.


.. 함평 군청 사람들은 자운영뿐 아니라 나비의 애벌레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다 심겠다고 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우리 생각을 받아 줄까 하는 의심이 들더구나. 나비 애벌레가 곡식을 뜯어먹으니까 농약을 치는 건데, 군청에서는 그런 나비를 키우겠다고 하니 말이야. 그리고 이 엄청난 사업을 작은 군청에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 예전에는 함평에 탱자나무가 참 많았다고 하더구나. 지금처럼 콘크리트 담이 생기기 전에는 보통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대. 탱자나무는 일 년 내내 보기 좋단다. 봄이면 울타리를 하얀 꽃이 뒤덮고, 여름이면 초록색으로 물들이지. 그리고 가을에는 황금 같은 열매가 달리고 겨울에는 가시만 드러나지만 참새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단다 ..  (114, 116쪽)


  이승모 할아버지는 “도감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야. 우리 조상들은 도감이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어. 당신들이 연구해서 쓴 책은 책이름 끝에 ‘지’를 붙였지, 도감이란 말은 붙이지 않았단다(10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승모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도 학교에서는 안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지만 사회에서도 모릅니다. 학교와 사회에서도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왜 가뭄이 찾아오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큰물이 지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왜 산사태가 생기는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4대강 삽질을 한대서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바닷가 갯벌을 둑으로 막아 없앤대서 좋아질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까지 모조리 도시로 보낸대서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함평에서는 나비 잔치를 벌이지만, 다른 시골에서는 나비가 ‘나쁜 벌레’입니다. 나비뿐 아니라 제비를 비롯한 온갖 멧새도 ‘나쁜 새’입니다. 잠자리와 거미와 개구리를 반기는 시골은 자꾸 사라집니다. 오로지 농약과 비료만 춤춥니다. 함평에서 꾀하는 나비 잔치가 도시 관광객만 불러들이는 놀이판이 아닌, 시골이 시골스럽게 푸른 빛으로 맑게 숨쉬도록 이끄는 한마당이 되기를 빕니다. 4347.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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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02-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입장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하다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할 존재라는 걸 뒤늦게 깨닫곤하지요.

자연과 환경이 관광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하는 땅과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더 세심하게 보아야하지 않을까싶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4-02-15 17:01   좋아요 0 | URL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이란 '자연'이지만, 막상, 늘 자연을 먹는 줄 제대로 이야기하거나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하곤 해요.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공기)도 모두 자연인데, 학교에서는 이를 하나도 안 가르치곤 해요.

앞으로 언제쯤 이런 대목을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이루어질까요. 그래도, 믿고 기다리고, 또 믿으면서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 길을 열 수 있겠지요...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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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8

 


‘능금’이 가르쳐 준 풀내음
―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글
 최성현 옮김
 김영사 펴냄, 2010.4.16.

 


  눈이 옵니다. 지난 12월과 1월에는 눈빛이 도무지 깃들지 않더니, 2월로 접어들어 엿새째 되는 오늘 눈이 옵니다. 고흥 위쪽 벌교만 하더라도 눈이 잦았겠지요. 벌교 위쪽 구례나 곡성이나 임실 또한 눈이 퍽 많았겠지요. 고흥과 이웃하는 장흥이나 통영이나 해남이나 강진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서도 올겨울에 눈은 거의 구경을 못하면서 포근한 나날이었을까요.


.. 그동안 줄곧 참아 준 사과나무, 사과나무를 도와준 잡초, 흙, 그리고 세상만물에 감사할 따름이다 … 사과가 열리지 않는 기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에 나는 그사이에 오이, 가지, 무, 양배추 같은 야채 농사 그리고 벼농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 어머니는 달랐다.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믿는 길을 가라. 그러면 된다.”고 말했다. 구시대 사람으로, 학교도 변변히 다닌 적 없는 분이 금과옥조 같은 말을 했다. “가난해도 좋으니 길가의 돌과 같이 살아라.” … 나는 사과나무 덕분에 산다. 내 삶이 어려워진 것은 다름아닌 사과나무가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과나무를 힘들게 한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다 ..  (7, 41, 52쪽)


  겨울이 포근한 고흥에 내리는 눈은 따뜻합니다.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 겨울을 그냥 보내기에는 서운하다 여기는 눈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소록소록 쌓이는 눈을 한 해에 한 차례 볼까 말까 한데, 이날이 바로 오늘이 됩니다.


  도시에서도 눈이 내릴까요. 도시에서는 이 눈을 성가시게 여겨 새벽부터 눈을 치우랴 부산할까요. 골목에도 한길에도 눈을 그대로 두면서 눈빛 하얗게 누리려는 사람은 없을까요.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자동차는 모두 멈춘 채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일터와 학교를 다니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자동차를 멈춰요. 다 함께 자동차를 멈추고 눈을 맞이해요. 눈이 하늘거리며 내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요. 눈이 천천히 흩날리면서 쌓이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내 머리카락에 눈이 쌓이고, 내 어깨에 눈이 덮이는 느낌을 새삼스레 헤아려요.


  2월에 내리는 눈은 막 새싹 틔우는 쑥에도 갈퀴덩굴에도 쌓입니다. 마당도 지붕도 하얗습니다. 마을 앞 큰길도 하얗습니다. 이 시골에서는 눈이 온대서 큰길을 치울 만한 일꾼이나 젊은이가 없습니다. 짐차나 자가용을 모는 마을사람이 없으니, 굳이 큰길 눈을 치울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우리 집처럼 아이들 있으면, 더더구나 눈을 치울 까닭이 없어요. 이 눈은 온통 아이들 것입니다. 이 눈은 모두 아이들과 흙 것입니다. 아이들과 흙과 풀과 나무가 즐겁게 맞이하는 눈입니다.


.. 나는 자연재배, 곧 자연의 힘을 빌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전에는 농약이 무서워 얼굴을 가리고 일했지만, 농약을 쓰지 않는 지금, 우리 가족은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 …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 집을 비롯해 주변 농가에서 농약 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므로 그런 중노동을 해야 하는 농사에는 미래가 없다고 보았다 … 보통 화상을 입으면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며 물집이 생기지만, 농약 화상의 경우 피부가 벗겨지며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다 … (다이홀탄은) 1964년에 허가되어 1989년 12월에 금지되었으니, 농가에서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관청의 지도로 이 농약을 사용하며 고통받은 것이다 … 무엇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참나무는 저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자연 환경 덕분에, 무수한 생명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9, 23∼24, 31∼32, 67쪽)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이 와야 새봄부터 흙빛이 좋다고 했습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인 채 겨울이 지나가야 흙이 한결 싱그러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눈이 쌓인 뒤 새봄에 흐물흐물 녹아 땅으로 스며들면, 이 눈이 풀씨앗 싹트게 하는 새로운 힘이 됩니다.


  눈은 나무마다 앉아 나무에 깃든 벌레 알집에도 쌓입니다.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다가 시들어 죽은 덩굴풀에도 눈이 쌓입니다. 나무는 눈을 뒤집어써도 씩씩하게 살지만, 덩굴풀은 찬눈을 못 견딜 테지요. 매화나무 겨울눈도 이 눈을 맞고는 깜짝 놀라 조금 더 폭 쉬고 나서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할 테지요.


  마당에 내려서서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봅니다. 마을 어귀 감나무에 걸린 비닐에도 눈이 덮입니다. 이제는 어느 시골에서나 밭일을 흙일 아닌 비닐일로 합니다. 마늘을 심건 고추를 심건 뭐를 심건 으레 비닐을 덮습니다. 이 비닐이 가을 지나 겨울 되어 바람 따라 휘휘 날립니다. 한겨울에 나무마다 뜬금없이 비닐꽃을 피웁니다.


  돌이켜보면, 시골에 있던 젊은이와 어린이를 모조리 도시로 끌어냈으니,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비닐을 쓸밖에 없어요. 일손이 모자라니 비닐을 쓰고, 농약을 쓰며, 비료를 쓸밖에 없어요. 더구나, 젊은이와 어린이 몽땅 도시로 빠져나간 만큼, 예전에는 나물로 삼아 먹던 풀을 오늘날에는 잡풀로 삼아 죄 베어 없애거나 태워 없애거나 농약으로 죽여 없애야 한다고 여깁니다. 도시로 떠난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교육비를 대느라 수확량을 늘려야 할 테니, 비닐과 농약과 비료로 더 많이 거두어 더 많이 팔아치운 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 나무줄기에 낳아 놓은 해충의 알덩어리에서 17센티미터가량 떨어진 곳에는 반드시 오렌지색 무당벌레 알이 있었다. 익충이 해충의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 해충과 익충이 공존하며 어느 한쪽도 모두 사라지는 법이 없다 … 확대경으로 벌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잎말이나방은 눈이 둥근 것이 의외로 귀엽다. 그 큰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 하루 내내 벌레를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흥미롭다. 잎을 먹어 가면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데 언제 어디로 호흡하는지 궁금해진다. 잘 보면 쉬지 않고 먹어대는 벌레의 옆구리 아래쪽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 곤충학자들도 거기까지는 몰랐다고 한다. 농부도 모른다. 그저 농약만 치면 되므로 벌레를 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벌레에게는 내 과수원 네 과수원이 따로 없고, 그들은 오로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날아갈 뿐이다. 누구보다 벌레는 자기 보금자리를 잘 알아챈다. 우리 과수원은 벌레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  (46∼47, 48, 49쪽)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써서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거두면, 그만큼 더 거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만큼 농약값과 비료값과 비닐값을 들여야 하고, 기계값까지 들여야 합니다. 더 거둔다면 더 거두는 만큼 돈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흙이 죽습니다. 이리하여 흙을 다시 살린다며 이것저것 논밭에 뿌려야 하거나 아예 새 흙을 사다가 부어야 합니다.


  그러면, ‘돈’으로만 칠 적에도,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일은 시골 흙일꾼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아니,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동안, 또 농기계를 쓰는 동안, 시골 흙일꾼은 품은 품대로 더 들이면서 주머니에 남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는 사이 농협과 농기계 회사와 중앙정부는 푼푼이 돈을 벌겠지요.


  농약과 비료를 쓰는 동안 시골 흙일꾼은 몸이 다칩니다. 안 생길 병이 생깁니다. 농약도 비료도 비닐도 안 썼다면 병원 갈 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을 텐데,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동안 몸이 고단하면서 자꾸 병원 갈 일이 생깁니다. 애써 ‘더 거두어 돈을 더 만졌다’ 하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병원으로 갑니다.


  과학자나 전문가나 학자나 농협 직원 가운데,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를 쓰면서 들이는 돈과 버는 돈,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를 안 쓰면서 아끼는 돈과 지키는 돈, 이러한 돈흐름을 낱낱이 파헤치거나 밝힌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통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농약을 안 쓰면 벌레가 꼬일까요. 농약을 쓰니 벌레가 더 꼬이지 않을까요. 농약으로 벌레를 잡는다는데, 농약 때문에 해충뿐 아니라 익충을 모두 죽이는 꼴인 한편, ‘해충을 먹고 살아가는 익충’으로서는 ‘먹이를 삼을 해충이 다 사라져’서, 이제 ‘익충이라는 벌레가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갉아먹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가요.


.. 어느 날엔 논둑에 앉아 메뚜기가 벼에 어느 정도 해를 입히는지 지켜본 일도 있다 … 어느 정도 해를 입히느냐면, 한 이삭당 100∼130개의 나락이 열리는데 그중 많아야 다섯 알 정도에 피해를 줄 뿐이다. 그런데도 헬리콥터를 써서 농약을 살포한다. 그 탓에 해충인 노린재나 이네카메무시가가 생기고, 익충인 거미가 모조리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 농약 한 방울 안 준 이런 산속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잎이 무성할까. 왜 벌레와 병은 이 나뭇잎을 해하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에 잠겨 나는 나무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주위는 향기로운 흙냄새로 가득했고, 어깨까지 자란 풀을 헤치고 보니 나무 주변의 땅은 푹신푹신한 데다 촉촉했다 … 나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둔 잡초는 건강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아래 땅은 발이 빠질 정도로 푹신푹신했다 ..  (50, 65, 66쪽)


  기무라 아키노리 님이 쓴 《사과가 가르쳐 준 것》(김영사,2010)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무라 아키노리 님 삶을 다룬 영화 〈기적의 사과〉를 아이들과 함께 다섯 차례 봅니다. 먼저 혼자서 한 번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함께 네 차례 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능금밭을 일구는 시골집에서 태어나 살지만, 흙 만지고 살기 싫어 도시로 떠납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몇 해 지내지 못하고 시골로 돌아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도시에서 눌러앉아 살고 싶지만, 시골에 있는 어버이가 불러서 시골일을 거들러 돌아와요. 그러고는 시골마을 이웃하고 혼인을 합니다. 이제는 도시로 나갈 길이 없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합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을 쓴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시골에서 논일을 하고 밭일을 하면서, 능금밭을 돌봅니다. 능금밭에는 예전부터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흙이 키우거나 살찌우는 능금이 아닌 농약과 비료가 키우는 능금입니다. 농약을 뿌리면서 누구보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 스스로 고달픕니다. 온몸이 간지럽고 붓습니다. 혼인해서 함께 살아가는 곁님은 기무라 아키노리 님보다 더 고달프게 농약에 시달립니다. 온몸이 부을 뿐 아니라 몸져눕기까지 합니다. 도시사람은 능금밭에서 능금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자주 치는지 모르는 채 빨간 열매만 먹겠지요. 도시사람은 능금밭에서 농약을 뿌리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 채 빨간 열매를 돈을 치러 사다 먹겠지요.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두고볼 수 없어 농약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약 뿌리는 횟수를 줄입니다. 농협에서 뿌리라는 대로 뿌리지 않아도 벌레꼬임은 늘지 않고 능금도 잘 맺힙니다. 차근차근 일이 잘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약을 한 방울도 안 뿌리기로 합니다. 이제껏 잘 되었듯이 이 또한 잘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농약을 한 방울도 안 뿌리니 벌레가 꼬이고 잎이 말라죽어요.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능금밭이 끔찍하게 바뀐 모습을 보고는 한 해 두 해 세 해 …… 깊은 수렁에 빠져듭니다.


.. 오늘날의 농업은 관찰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에서 벗어난 인간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자연 앞에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 농업이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통감했다 … 사람이 재배한 것은 썩어 간다. 자연이 기른 것은 썩지 않고, 시들어 간다 … 어떻게 하면 벼기 기뻐할까. 어떻게 하면 논이 힘을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 만약 내가 벼나 흙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좋다 … 농부가 재배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강이 깨끗해질 수가 없다. 강이 깨끗해지지 않는 한 바다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 옛날에는 일본의 길가에서도 살갈퀴가 자랐지만, 제초제가 등장한 뒤로 사라져 가고 있다 … 나는 해충이,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유해물질을 대신 먹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해충은 비료, 농약을 사용하는 작물, 특히 미숙 퇴비를 넣은 작물에 많이 모인다 ..  (81, 93, 94, 98, 105, 133, 141, 184쪽)


  도무지 능금밭이 안 되겠구나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생각하면서 숲속으로 들어간 기무라 아키노리 님입니다. 줄에 목을 걸어 죽으려 하는데 나뭇가지에 걸치려던 줄이 안 걸립니다. 능금밭에 농약을 안 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손가락질을 받던 이녁은 죽으려고 하는 마당에서까지 줄 하나 제대로 못 거는 ‘바보’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숲속에서, 산속에서 홀로 씩씩하게 자라는 나무 한 그루를 봅니다.


  숲속에서는 농약도 비료도 없습니다. 비닐을 덮어씌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숲속 나무는 벌레가 꼬이지 않아요. 이런 병이나 저런 병을 걱정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왜 숲속 나무는 싱그럽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자랄까요? 왜 숲속 나무는 맛난 열매를 넉넉히 베풀어 숲짐승한테 좋은 먹이를 베풀어 줄까요?


  나무는 혼자 살지 못합니다. 나무 둘레에 풀이 한 포기도 없으면 나무는 말라죽습니다. 풀이 자라는 흙에서 나무가 자랍니다. 나무가 자라는 둘레에는 풀이 돋습니다. 풀과 나무는 늘 함께 살아갑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푸나무’라는 낱말을 썼어요. 풀과 나무를 아울러 ‘푸나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식물’이라는 한자말을 쓰지요. ‘식물’만 파고든다면, 뿌리를 캐지 못합니다. ‘식물’만 생각하거나 ‘식물학’이나 ‘생태학’이나 ‘생명공학’만 살펴서는, 풀과 나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풀과 나무를, 곧 ‘푸나무’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 비료, 농약, 제초제 덕분에 일본 농업은 중노동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중노동에서 해방되었을지는 몰라도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 젊은이들이 농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농사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 불필요한 기술을 쓰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자세가 중요한데, 그게 고학력자에게는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 자연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그러므로 산은 몇 천 년이 지나도 늘 건강한 것이다. 100년 이상 살고 있는 나무는 사람이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고 있는 것이다 … 옛날에는 벼과인 보리와 콩과인 땅콩을 반드시 심고, 그 뒤에 야채를 심었다 ..  (134, 136, 151, 159, 171쪽)


  쓸모없는 풀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모든 풀을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 알맞게 썼습니다. 시골사람은 고장마다 풀한테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면서 아꼈습니다. 표준말로는 한 가지이지만,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풀이름이 모두 달라요. 모두들 풀을 밥으로뿐 아니라 약으로도 썼습니다. 풀은 풀밥이면서 풀약입니다. 풀내음을 맡으면서 목숨을 건사하고, 풀빛을 먹으면서 숨결을 지켰습니다.


  풀은 흙을 살리고, 흙은 풀을 살립니다. 흙을 살리는 풀은 나무를 살립니다. 풀이 흙을 살리기에, 좋은 흙에서 나무가 살아갈 수 있어요. 풀을 살리는 흙은 나무를 살립니다. 좋은 흙에서 풀이 돋을 수 있으면, 이 좋은 흙에서는 나무도 쑥쑥 오를 수 있어요.


  논만 있어서는 시골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밭이 함께 있어야 시골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논밭만으로는 시골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숲이 논밭보다 훨씬 넓게 드리우고 멧골이 이루어져야 시골이 아름답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죽음 문턱에 이르러서야 여태 이녁이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농약을 안 치고 비료를 안 뿌려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능금밭에서 자라는 풀을 함부로 베면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모든 능금밭은 ‘풀베기’를 해서 흙을 죽이고는 농약과 비료로 겨우 능금나무를 살렸을 뿐이었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농약과 비료를 안 쓰려면 풀을 베면 안 되었어요. 그리고, 풀을 안 베고 능금밭을 풀밭으로 만들어 숲처럼 가꾸면서 콩을 심으면서 흙심을 되살립니다. 흙심을 되살리고 한 해 두 해 흐르니, 시나브로 숲과 비슷한 흙이 되고, 나중에는 숲과 같은 흙이 되어 능금나무에 꽃이 피고 멋진 열매가 맺습니다.


.. 무를 뽑아 보면 나선 모양의 자취가 남아 있다. 무는 수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볼트처럼 돌아가면서 자란다. 그러므로 무를 뽑을 때는 거꾸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려가면서 뽑아야 한다. 그러면 무가 쉽게 뽑힌다. 당근도 민들레도 마찬가지다. 뿌리와 잎사귀가 함께 움직인다. 그러면서 햇살을 구석구석 받는다 … 모든 작물이 오이와 같다고 본다. 부드러운 말을 하면 예쁜 꽃이 필 뿐 아니라 오래 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 농부는 자신이 식량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자재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늘 깨어 있는 눈으로 봐야 한다 ..  (186, 188, 197쪽)


  오늘날 이 나라 시골을 돌아보면, 풀은 풀대로 몽땅 베거나 태우거나 농약을 뿌려 죽입니다. 그러니, 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농사가 안 됩’니다. 풀을 나물로 삼을 줄 알아야 농약과 비료를 안 써도 됩니다. 풀을 나물로 삼지 않고, 또 풀을 나무와 벗삼는 이웃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 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를 끝도 없이 써야 합니다.


  시골빛이란 풀빛인 줄 깨닫는다면 비로소 농약과 비료에서 손을 뗄 수 있습니다. 시골내음이란 풀내임은 줄 알아차린다면 바야흐로 농약과 비료에서 풀려나, 씩씩하고 튼튼하며 푸른 시골살림 가꿀 수 있습니다.


  풀은 ‘적’이 아닙니다. 풀은 ‘몹쓸 것’이 아닙니다. 풀은 바로 우리 숨결이요 목숨이며 사랑입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이라는 책은 능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흙을 살리고 나무를 돌보는 풀을 이야기합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이라는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 님이 ‘능금나무와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배운 풀’이 무엇인가를 들려줍니다. 4347.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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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광일의 '기적의 채소'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지요...

숲노래 2014-02-07 00:25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있군요.
농학박사 송광일 님이라...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이 이러한 책을 쓸 때보다는
아무래도 '박사'나 '연구자'가 이러한 책을 써야
받아들여 주겠지요.

다시 생각해 보면, 농학을 하는 연구자 가운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분이 있기도 해야
농협이나 중앙정부 정책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구나 싶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