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 버섯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5
최호필.고효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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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0



숲을 가꾸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

― 화살표 버섯 도감

 최호필·고효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5.28. 28000원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몰아 숲길을 달리다가 버섯을 처음 만나던 때를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그때 숲버섯을 딴 일을 또렷이 떠올려요.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면, 여름으로 접어들면, 가을이 깊으면, 때랑 철이랑 날에 따라 다른 버섯이 돋는 숲은 그야말로 나물밭이라 할 만합니다. 아니 버섯밭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버섯숲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그렇듯 버섯도 다른 생물과 유기적으로 공존하며 생태계의 한편을 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무의 구성물질인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생태계 순환의 큰 고리 역할을 합니다. 살아 있는 나무와 영양을 주고받으면서 나무의 생장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 있는 나무에 침투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수많은 곤충의 먹이가 되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 곤충이 번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4쪽)



  버섯숲이란, 버섯골이란, 버섯밭이란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리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버섯은 풀이 아닌 곰팡이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는데, 막상 이 곰팡이라는 버섯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 보면 얼마나 맛나면서 냄새가 그윽한지 몰라요. 더구나 버섯은 구워서 먹어도 맛나지요. 버섯만 따로 굽든, 고기하고 함께 굽든, 더덕이나 당근이나 감자랑 함께 굽든, 이래저래 맛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제가 집에서 버섯구이를 하면 아이들 수저질이 매우 잽쌉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지요. 이 놀라우며 반갑고 고마운 버섯을 다룬 《화살표 버섯 도감》(자연과생태, 2017)을 찬찬히 넘기면서 이 땅 곳곳에서 숲을 가꾸는 몫을 살그마니 맡는 버섯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640쪽에 818가지 버섯을 놓고서 3,500장에 이르는 사진을 보여주는 엄청난 도감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버섯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4000∼5000종으로 추정합니다. 그중 현재까지 1900여 종이 보고되었고 여기에 버섯 책자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한 버섯까지 더하면 2300여 종 이상에 이릅니다. (4쪽)



  숲에서 버섯을 따신 분은 아마 다들 알 텐데, 숲버섯은 곧 녹습니다. 버섯이 땅에 살짝 뿌리를 박고 피어날 적에는 싱싱한데, 이 숲버섯은 사람 손에 닿아 땅에서 떨어지면 이내 녹아요.


  가게에서 파는 버섯은 여러 날 둘 수 있습니다. 가게까지 오는 데에도 하루 안팎 걸렸을 테고요. 쉽게 녹는 숲버섯을 헤아리면, 또 잘 안 녹고 오래 가는 ‘가게버섯’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이루는 먹을거리란 더없이 놀라우면서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숱한 숲버섯 가운데 우리가 아는 버섯은 참말 없구나 싶어요. 《화살표 버섯 도감》을 엮은 분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기도 하는데, 거의 5000가지나 있다고 하는 숲버섯 가운데 우리는 몇 가지 이름을 알까요? 알려지지 않은 숱한 버섯은 숲에서 어떻게 나고 스러질까요?



생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태 관련 교육도 많이 있으나 풀과 나무, 곤충 등에 대한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버섯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버섯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5쪽)



  예부터 숱한 버섯을 사람들이 잘 살피고 가려서 밥살림에 보탰어요. 요새는 가게에 놓는 몇 가지 버섯을 빼고는 우리가 잘 알거나 살피기는 퍽 어려워요. 집에서 길러서 먹을 수 있는 버섯도 있을 테지만, 숲마실을 하면서 문득문득 만나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을 만나서 즐겁게 먹는 길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밥살림에 버섯을 보태지 않더라도, 숲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작은 목숨붙이인 버섯이기에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반갑게 지켜볼 수 있어요.


  버섯마다 어떻게 다르고 어떤 대목을 살펴보면 좋은가를 화살표로 콕콕 짚으며 알려주는 도톰하면서 알뜰한 《화살표 버섯 도감》을 책상맡에 놓습니다. 숲마실을 다녀오면서 버섯 사진을 찍으면 이 도감을 뒤적이면서 우리가 만난 숲 이웃을 헤아려 봅니다. 2017.10.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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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탐미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시루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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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4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 나비 탐미기
 우밍이 글·그림·사진
 허유영 옮김
 시루 펴냄, 2016.7.19. 14000원


  나비가 알 낳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애벌레가 번데기를 튼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번데기를 벗고서 깨어나는 나비를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다만, 알을 낳든 번데기를 틀든 나비로 깨어나든, 동영상이 아닌 맨눈으로 코앞에서 지켜보기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요즘 나는 나비를 관찰할 때 그림을 그려 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나비를 상품으로 여기면 마음속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고 시장 논리에 따라 판매할 것이고 … 우리가 나비라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것을 내적 가치를 지닌 특별한 생명으로 여긴다면 오직 거래, 수집, 연구 수단으로 나비를 잡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11쪽)


  마당에서 나비를 지켜보며 놀던 큰아이가 ‘나비 알낳기’를 처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좀처럼 ‘나비 알낳기’를 못 보았어요. 어쩌면 느긋하게 살펴보지 못한 탓에 못 알아보았을 수 있어요. 다른 놀이가 더 재미있어서 나비 날갯짓에 숨은 뜻을 몰랐을 수 있고요.

  우리 집에서 깨어나는 나비가 몇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파란띠제비나비 한 마리가 후박나무하고 초피나무 사이를 매우 잰 날갯짓으로 넘나들었습니다. 큰아이는 이런 잰 날갯짓을 궁금해 하면서 한참 지켜보았고, 나비가 문득문득 스치듯 지나간 자리마다 작은 알이 하나씩 남은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관람객들은 여과지도 붙이지 않은 손전등을 반딧불에 마구 비추어대고 주전부리를 손에 든 채로 전시관을 어슬렁거린다. 그들 중 반딧불과 진정 교감하려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왕얼룩나비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에겐 그저 남에게 뽐내기 위한 종이 한 장일 뿐이다. (27쪽)


  나비가 낳은 알을 처음으로 알아본 큰아이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온 식구를 부릅니다. 여기에 알이 있고 저기에 알이 있다면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알을 쳐다보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알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슬픈 낯빛인 큰아이를 달래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나비가 왜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는 줄 아니?” “아니. 몰라.” “그러면 생각해 보자. 나비가 나뭇잎 하나에 모든 알을 다 낳았어. 그런데 이 나뭇잎이 똑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알은 다 죽어?” “그래. 다 죽지. 그래서 나비는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아. 그렇게 온갖 잎마다 알을 하나만 낳으려고 매우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면서 알을 낳을 만한 잎을 살피지.” “그렇구나.” “네가 찾아낸 알은 어쩌면 다른 벌레가 먹이로 삼았을 수 있어. 그렇지만 모든 알이 다 벌레먹이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우리가 못 본 자리에는 틀림없이 나비가 낳은 알이 살아남았을 테니까.”


나는 배추흰나비를 잃어버린 밭두렁에서 채소들이 얼마나 외롭게 자랄지 상상할 수 없었다. (45쪽)

래리가 말했다. “올해 설에 저어새를 보러 갔는데, 가는 도중에 길가에 노점상이 많았어.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 주변에 가 보니 저어새 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있더라니까. 빈난공업단지, 툰텍스화학단지, 메이능저수지가 전부 완공되면 그 노점상들이 저어새 기념 머그잔이나 연노랑나비티셔츠, 가방 같은 걸 팔게 되겠지.” (71∼72쪽)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지난 2000년에 《나비 탐미기》(시루 펴냄)를 썼다고 해요. 이 책이 2016년에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나비 전시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비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가를 지켜보았고, 전시관장은 나비를 언제나 한낱 돈푼으로만 여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대만 곳곳을 누비면서 나비를 살필 적마다 대만이 일제강점기였을 적에 일본 학자가 얼마나 대만 나비를 꼼꼼히 살펴서 적바림했는가를 새삼스레 느꼈다고 합니다.

  한국도 대만하고 엇비슷합니다. 한국 나비를 놓고도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깊고 넓게 살폈어요. 한국 사회는 그무렵 식민지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비 한살이를 눈여겨보거나 아끼는 손길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날개를 펼치면 10cm도 넘는 그 거대한 나비를 어째서 보지 못하는 걸까? 온몸이 검은 그 나비를 밤낮이 바뀐 아둔한 박쥐로 오인해서일까? 아니면 먹색 날개를 가진 새로 착각해서일까? 어쩌면 눈을 크게 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92쪽)

나비들과 사귄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또는 소풍을 즐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나들이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103쪽)


  여름이 저무는 즈음 시골마다 뻥 뻥 하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집니다. 총을 쏘는 소리입니다. 노루가 밭으로 들어온다면서 이 마을이나 저 마을이나 총을 쏩니다. 총알을 재워서 쏘는지 빈 총으로 소리로만 쏘는지 모르나, 아침 일찍 뻥 뻥 소리가 나고, 해질 무렵까지 이 소리가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어린이나 젊은이는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니 밭 언저리에서 총을 하루 내내 쏠 수 있구나 싶습니다. 마을에 어린이나 아기가 산다면, 또 젊은이가 북적거린다면, 노루나 멧돼지가 밭에 드나든다고 해서 함부로 총소리를 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노루를 미워하며 총소리를 내는 시골에서는 나비도 몹시 싫어합니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애벌레일 적에 잎을 얼마나 갉아먹느냐면서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기에, 나비는 수없이 많은 ‘열매 꽃가루받이’를 해내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자리에 맺는 꽃마다 살포시 앉아서 꽃가루를 조금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살뜰히 해 줍니다.


그 후 일본군은 계획적으로 숲을 죽이고 철거하고 운반했으며 그 증거로 나무 처형장으로 향하는 철도와 도로를 남기고 떠났다. 뒤이어 들이닥친 국민당 정부는 산맥과 강을 독살하고 마구잡이로 갈라놓았다. 산소와 하늘은 재벌들에게 독점당하고 재벌들은 그 대가로 몇 푼 안 되는 이자를 내놓으며 스스로 해친 땅을 ‘보호하는’ 자비를 베풀었다. (128쪽)


  나비는 그저 겉보기로만 날갯짓이 고운 목숨일까요? 나비가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요? 나비 애벌레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까요? 오직 사람만 있고 벌도 나비도 잠자리도 새도 사라져야 할까요?

  《나비 탐미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말썽거리가 터졌다 하면 닭이고 달걀이고 수십만 수백만 목숨이 땅에 묻혀서 죽어야 하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알맞게 먹고 나누는 사회보다는 더 돈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나비 탐미기》를 쓴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잠자리채를 안 쓰려 한다고 합니다. 사진기조차 안 챙기려 한다고 합니다. 나비를 지켜보거나 살필 적에 오로지 두 눈으로 살피면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하면서 더딘 길을 가는 셈이겠지요. 잠자리채로 낚아채면 더 가까이에서 손으로 쥐면서 지켜볼 수 있을 텐데, 나비를 따라서 숲을 헤매고 온 골짜기를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사진기로 찍어 놓으면 그림 그리기가 한결 수월할 테지만,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한참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들(나비)의 엄지손가락만 한 문신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처럼 지면에 닿을 듯 가깝게 엎드려 아주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며 눈을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야성적인 붓터치이자 생명의 먹물이 퍼진 모습이다. (156쪽)

세잔 작품의 복제품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 실력이 세잔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것은 영혼을 선과 색채 속에 가두어버린 그림일 뿐이다. 황세줄나비도 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경치다. (31쪽)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은 모습을 지켜본 뒤, 오래오래 들여다본 다음, 즐겁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비가 어떻게 날갯짓을 하며 알을 낳는지 그리고, 나비가 알을 낳은 잎을 그렸어요. 아이는 마음에 담은 우리 집 나비를 그림으로 옮겨서 앞으로 새로운 목숨(애벌레)이 깨어나서 즐겁게 잎을 갉다가 번데기를 틀고, 바야흐로 고운 나비가 다시금 태어나기를 꿈꿉니다.

  나비를 그림으로 담으면서 나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지를 생각합니다. 나비를 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웃인지를 헤아립니다.

  그림에 담으려고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그림으로만 담을 생각이기에 억지로 잡지 않습니다. 그림에 담고 싶기에 나비 날갯짓을 따라서 함께 들길이나 숲을 달립니다. 그림으로 담은 뒤에는 따뜻한 눈길로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우리가 나비뿐 아니라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싶습니다. 기쁨도 평화도 사랑도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바라보는 눈길에서 피어나리라 봅니다. 2017.8.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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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산책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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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9


달콤한 바람 마시는 마실길에 책을 읽다
― 섬마을 산책
 노인향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8.7. 12000원


  어릴 적에 바람이 달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느 때에는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늘 지내야 했기에 달디단 바람을 느꼈구나 싶어요.

  제가 어린 날을 보내고 국민학교를 다니던 마을에는 화학공장하고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아침 낮으로 늘 이 앞을 지나다니며 코가 뚫어지는구나 하고 느꼈지요. 이러다가 갯벌이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 시골에 나들이를 갈 적에는 바람맛이 참 다르네, 바람이 달구나 하고 느꼈어요. 고작 여덟아홉 살 아이 코에도 시골바람은 달았습니다. 모깃불 태우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즈음, 뜨끈뜨끈한 온돌과 달리 종이 한 장만 댄 나무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또 얼마나 달았나 모릅니다.


달뜬 마음을 가득 안고 노두길로 첫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왼쪽 해변에서 “퐁퐁”, “다다다” 하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서히 드러나는 펄에 점점이 박힌 돌이 가득하다. 돌에서 소리가 날 리는 없고, 뭔가 싶어 갯벌로 내려가는 순간 돌멩이 위에서 수많은 무언가가 다시 “퐁퐁”, “다다다” 뛰어간다. 짱뚱어 새끼들이다. (36쪽)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울에서 일하면서 지내는 노인향 님이 쓴 《섬마을 산책》(자연과생태,2017)을 읽다 보면 섬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시골내기 어린이로 살던 무렵에는 바람이 달콤한 줄 몰랐다고 해요. 서울내기 어른으로 살다가 섬마실을 하며 ‘어릴 적 늘 마시던 바람’이 참말 달콤했네 하고 깨닫는다고 합니다.


농어는 민박집 아저씨가 잡아온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주머니가 직접 기르고 담근 것이다. 세상에는 값비싸고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진미도 많다지만 팍팍한 식당 밥을 주식으로 삼는 이에게는 이런 소박한 밥상이 가장 귀하고 맛나다. (50쪽)

별똥별은 이 하늘 저 하늘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밤하늘에 선명한 선을 그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전쟁이 난 것처럼” 휘황찬란한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별이 지나가는 길”을 수십 번이나 본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못하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순간이다. (57쪽)


  섬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섬밥을 먹습니다. 섬에서 거둔 남새에 섬에서 낚은 물고기로 차린 섬밥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인 섬밥이라지만, 서울내기 어른으로서는 이 수수한 섬밥이야말로 맛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느긋하게 받아서 느긋하게 누리는 밥상입니다. 서둘러 그릇을 비워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밥알 하나 나물 한 점 천천히 헤아리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섬마실을 다니면서 마주하는 별이란 무엇일까요. 별은 섬이나 시골에만 뜨지 않아요. 비록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에 만만하지 않다지만, 서울 하늘에도 별은 언제나 있습니다. 건물에 가리거나 불빛에 막힌다고 하더라도 애써 찾으려고 하면 ‘서울별’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바쁘게 다니지 않을 수 있는 자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별을 마주합니다. 땅바닥이나 풀밭이나 평상에 드러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비로소 별빛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낱말이나 지식으로만 아는, 또는 책이나 영상이나 영화에서 보는 별똥별이 아닌, 맨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별똥별은 매우 달라요.


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가 봐야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살아온 세월만큼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그래, 가 봐라. 그리고 내년에 또 온네이.”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79쪽)

깊은 산골에 살던 어린 시절, 도시에서 온 손님들이 이따금 “공기가 달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공기가 아이스크림도 아닌데 어떻게 달다는 것인지. 그런데 뭍에서 뱃길로 2시간 반이나 떨어진 섬에 서서 비로소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84쪽)


  여름이 흐릅니다. 일찌감치 말미를 얻어 여름마실을 다녀온 분이 있을 테고, 이제부터 말미를 받아 여름마실을 다녀올 분이 있을 테지요. 마실길에 《섬마을 산책》이라는 책 한 권을 챙겨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혼자 마실을 다닌다면 때때로 혼자 생각에 잠길 즈음 가방에서 꺼내어 읽을 만합니다. 아이를 이끌고 마실을 다닌다면,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이 곯아떨어진 뒤에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꺼내어 펼칠 만합니다.

  섬마실을 떠날 적에만 《섬마을 산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아요. 섬마실에서는 나하고 다른 눈과 다리와 손과 마음으로 섬을 느끼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들마실이나 숲마실에서는 들이나 숲을 이루는 터전에서도 누리는 달콤한 바람처럼 섬에서 어떤 달콤한 바람으로 기쁜 이야기를 적바림했는가를 헤아립니다.


돈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붕붕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보인다. 풍이다. 꽃무지과 곤충인 풍이는 딱지날개를 벌리지 않고 옆에 있는 틈 사이로 속날개를 내밀며 난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내는 이 날갯짓 소리에 벌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다. (146쪽)

열여섯. 한창 다른 세상이 궁금할 나이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이들이 또 하나같이 소리친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다시 대청도로 올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164∼166쪽)


  며칠 말미를 얻기에도 바쁜 몸이라면 이곳저곳 마실을 다닐 적에 자칫 바쁘게 움직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말미란 우리가 여느 때에 매우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느긋하고 스스로 넉넉하며 스스로 너그러운 마음을 되찾자는 하루일 때에 즐거울 만하지 싶습니다.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아도 돼요. 더 많은 뭔가를 느끼거나 보거나 누려야 하지 않아요. 섬 한 곳도 좋고, 골짜기 한 곳도 좋으며, 바닷가 한 곳도 좋아요. 그냥 수수한 시골집 한 곳도 좋습니다.

  매캐한 바람에 둘러싸인 채 살아온 나날을 며칠쯤 말끔히 잊고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마실길을 누려 봐요. 고작 서울에서 한두 시간을 벗어날 뿐인데 바람맛이 달라지는 하루를 누려 봐요. 때로는 솜사탕처럼 달고, 때로는 사탕수수보다 달며, 때로는 코코아는 댈 수 없도록 달디단 바람을 누려 봐요.

  달콤한 바람 한 줄기가 우리 몸을 감돌 적에 온갖 티끌을 씻어 줍니다. 달콤한 바람 두 줄기가 우리 몸을 스치면서 웃을 적에 갖은 앙금을 달래 줍니다. 달콤한 바람 석 줄기가 우리 몸을 어루만지면서 노래할 적에 바야흐로 맑은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책 한 권으로 바람마실을 함께 누립니다. 2017.8.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본문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맙게 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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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 행복한 에너지 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3
최영민 지음, 원정민 그림 / 분홍고래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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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5


숲에 송전탑을 박지 않는 슬기로운 정책을 꿈꾸며
― 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행복한 에너지
 최영민 글
 원정민 그림
 분홍고래 펴냄, 2017.5.15. 13000원


  서울에서 나고 자라는 어린이한테 여름 무더위에 부채 하나만으로 땀을 식히라고 말한다면, 서울 어린이는 어떻게 받아들일 만할까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지내며 자동차나 건물이나 일터나 가게에서 늘 에어컨 바람을 쐴 뿐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으레 에어컨 바람을 쐬는 어른한테 이 여름에 부채 하나로 시원한 여름을 누려 보라고 말한다면, 서울 어른은 어떻게 생각할 만할까요?

  요즈음 시골에는 에어컨을 놓은 집이 무척 많습니다. 도시로 나간 딸아들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에어컨을 들여놓아 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에어컨은 도시에서 손자 손녀가 찾아올 적에만 틀 뿐 여느 때에는 거의 안 쓰신다고 해요. 전기값 때문에 안 쓴다기보다 에어컨이 아니어도 시골에서는 시원하게 보낼 곳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무 그늘이 있고, 골짜기가 있으며, 마을 오두막이 있어요.


“불 피우는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면 불씨를 빼앗으려고 서로 싸우는 일은 없겠죠.” “그래도 불씨 때문에 전쟁을 한다는 건 이해가 안 돼요. 기술이 없어도 불씨를 서로 빌리면 되지 않아요?” 현우의 말이 맞다. 빌리면 되는데, 촛불에서 다른 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이 꺼지거나 약해지지는 않잖아? “좋은 질문이에요. 그렇게 하면 싸울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 (원시시대에) 불은 요즘 말로 하면 최첨단의 신물질 같은 거라 할 수 있어요. 그걸 가진 부족은 번창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음 부족은 쇠락할 수 있는. 현대에 석유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네요.” (44∼45쪽)


  서울에서도 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있다면, 나무 그늘에 놓은 걸상에서 시원한 여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무는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사람들한테 짙푸른 바람을 베풀어 줍니다. 푸나무가 있기에 숨을 쉴 수 있는 사람 목숨일 뿐 아니라, 푸나무가 베푸는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으로 여름 더위를 날 수 있는 사람 목숨이에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원하며, 다른 시설이나 자원을 쓰지 않고도 깨끗하면서 시원하지요.

  《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행복한 에너지》(분홍고래,2017)를 읽으면서 여름 더위하고 겨울 추위를 생각해 봅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숲이 마을살림을 도와줍니다. 비바람을 그어 주기도 하는 숲이요, 가물지 않도록 도와주는 숲이며,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그늘을 주는 숲이에요. 더욱이 숲이 우거지기에 집을 지을 나무를 얻어요. 숲에서 얻은 나무로 옷장이나 책걸상을 짜고, 종이를 빚으며, 땔감으로 삼지요.

  오늘날 우리는 나무로 땔감을 삼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서울이든 시골이든 화석연료를 땔감으로 삼기 마련이에요. 전기도 화석연료를 태워서 얻기 마련이니, 거의 모든 곳은 화석연료를 쓴다고 할 만합니다.

  화석연료를 언제까지나 쓸 수 있다거나, 화석연료를 태울 적에 쓰레기나 매연이 안 나온다면 딱히 걱정이 없겠지요. 그렇지만 화석연료는 모든 나라에 골고루 있지 않아요. 화석연료를 태우는 동안 지구 생태계가 흔들려요. 오늘날 우리는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엄청난 문화와 문명을 누립니다만, 이 길은 머잖아 접고서 새로운 길로 가야 하는 줄 거의 모든 사람이 알기는 알아요.


“고대 로마에는 9백 개 가까운 공중목욕탕이 있었대요. 그중 열 개는 아주 호화로운 곳이었거요. 로마 사람들은 목욕을 무척 좋아했어요. 씻는 것만이 아니라 휴식과 사교의 공간이기도 했죠. 그런 목욕탕을 유지하려면 많은 땔감이 필요했어요. … 그래서 로마 주변의 나무는 물론 이탈리아 지역 곳곳에 있는 숲이 파괴되었어요. 나중에는 아프리카에서 땔나무를 가져와야 했어요. … 물론 숲의 파괴는 목욕탕 때문만은 아니에요. 군대에 필요한 무기와 배를 만드는 데도 나무가 필요했죠. 금속을 가공하는 데 많은 나무가 연료로 쓰였고요.” (50∼51쪽)


  《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행복한 에너지》는 어린이들이 옛날 어른들이 어떻게 ‘에너지 싸움’을 벌였는가 하는 모습을 몸소 지켜보도록 이끌면서 ‘오늘 이곳에서는 어떻게 에너지를 나누며 살아야 아름다울까?’ 하고 묻습니다. 오늘날 눈으로 보자면 고작 불씨 하나일 뿐인데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싸움이 벌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눈으로 보자면 로마에 고작 900 곳쯤 되는 공중목욕탕이라지만,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에다가 아프리카까지 숲을 무너뜨리는 어마어마한 짓을 벌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른바 문화나 문명을 누리겠다면서 대단히 헤프게 살아온 어른들이에요.

  게다가 어른들은 헤픈 살림에서 그치지 않아요. 나무로 무기를 만듭니다. 먼 길을 새롭게 나서는 ‘여행하는 배’가 아니라, 무기를 잔뜩 싣고 다른 나라를 쳐부수어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는 ‘전쟁하는 배’를 뭇지요.


아주 오래전에 식물들이 땅속에 묻혀 생긴 것이 석탄이라면 결국 화석에너지도 생명체에서 비롯된 거다. 우리가 쓰는 에너지에 생명의 역사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9쪽)

불을 둘러싼 원시인들의 전쟁보다 훨씬 뛰어난 무기와 기술로 싸운다는 것을,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제외하면 뭐가 다를까? 전쟁의 이유가 결국 에너지 때문이라면 대단한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의 이유가 정말 에너지 때문일까? 그걸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은 아닐까? (91쪽)


  원시 시대에는 원시스러운 무기로 죽이고 죽으면서 불씨를 거머쥐려고 싸웠다고 합니다. 근현대에 이르면 근현대다운 무기로 죽이고 죽으면서 문명을 키우느라 싸웠다고 해요. 오늘날에는 오늘날대로 최첨단무기를 앞세워서 죽이고 죽으면서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 권리를 가로채려고 싸운다고 합니다.

  화석연료가 많이 묻힌 나라는 화석연료가 적게 묻히거나 없는 나라한테 너른 손길로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힘센 나라는 전쟁무기를 그만 만들 수 있을까요?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대를 거느릴 돈과 힘과 품으로 아름다운 지구살림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미국·러시아·중국 같은 커다란 나라가 전쟁무기를 줄이기를 바라기 앞서, 남·북녘부터 서로 전쟁무기를 줄이면서 화석연료 씀씀이를 낮출 뿐 아니라, 앞으로는 평화롭고 평등한 민주 살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현대의 농업은 석유 농업이라 할 정도로 석유에 많이 의존해요. 농기계를 움직이는 건 물론 농약이나 비료도 석유를 갖고 만들거든요. 석유가 공급이 안 되니 농사짓기가 힘들어진 거죠.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식량 생산이 줄어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148쪽)

“전기 소비는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지만, 발전소는 주로 해안가에 있어요.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거죠. 지금처럼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각 도시로 보내는 에너지 공급 방식이 계속될 경우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전기도 별로 쓰지 않는데 송전탑 때문에 땅을 빼앗기거나 전자파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그걸 지역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163∼164쪽)


  도시에 사는 분들도 송전탑을 더러 볼 텐데,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길을 자동차나 기차로 달려 보면 시골에 송전탑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박힌 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습니다. 송전탑은 시골에서 도시로 뻗습니다. 사람이 적게 사는 시골에 우람하게 지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에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로 송전탑을 수없이 박아 놓습니다.

  이제는 좀 곰곰이 짚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송전탑은 논밭 한복판에도 들어섭니다. 송전탑은 아름드리숲에서 들어섭니다. 국립공원이라고 해서 송전탑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쇠말뚝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나라 곳곳에 엄청나게 큰 송전탑과 굵은 전깃줄을 수도 없이 박거나 이어 놓아요.

  송전탑 세우고 전깃줄 드리울 돈으로 깨끗하고 아늑한 전기를 도시에서 스스로 얻는 길이란 없을까요? 도시에서는 찻길이나 건물마다 태양광 전지판을 놓을 만하지 않을까요? 고속도로에 태양광 전지판 지붕을 놓을 만하지 않을까요? 송전탑을 세워야 하더라도 논밭이나 숲이나 멧자락이 아닌 고속도로를 따라서 지나가도록 할 만하지 않을까요?


“말을 타던 시대의 길은 사람과 말이 함께 이용했어요. 자동차가 등장한 뒤의 길은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됐어요. 그래서 자동차는 빠르고 편안하게 달리지만, 사람에게는 위험한 차도가 된 거죠. 사람들은 중독된 것처럼 빠른 속도를 원했고, 그래서 산을 뚫고 다리를 놓아 길을 만들고, 그 길에 아스팔트를 덮는 데 많은 돈과 노력을 기울여요.” (103∼104쪽)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덜어서 밥 한 그릇을 나눈다고 했습니다. 더 가진 이가 덜 가진 이웃한테 나누어 준다고 했습니다. 기부나 봉사라는 이름을 넘어서, 돈이 많은 나라나 기업이나 개인이라면, 돈을 이웃하고 넉넉히 나눌 만해요. 시골은 짙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과 물과 먹을거리를 도시 이웃하고 넉넉히 나눌 만하지요.

  시골이 깨끗해야 도시도 아름답고 즐거운 밥살림이며 옷살림이며 집살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커다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시골에 때려짓고서 송전탑하고 전깃줄로 도시까지 잇는 에너지 정책은 너무 낡았고, 위험할 뿐 아니라, 도시한테마저 도움이 안 되고, 돈은 돈대로 너무 많이 씁니다.

  요새는 시골에 빈집이나 빈터가 늘어나면서 이처럼 넓게 비어 버린 곳에 ‘커다란 태양광 발전 단지’를 세우곤 하는데요, 큼직하게 들어서는 태양광 발전 단지를 보면, 산중턱이나 마을 뒤쪽 산밭 자리에 ‘아파트를 세울 때처럼 굵고 긴 철근콘크리트 말뚝을 깊이 박은’ 뒤에 태양광 전지판을 붙입니다. 산중턱이나 산밭에 전지판을 세우려니 크고 굵은 철근콘크리트 말뚝을 밖을 수밖에 없겠으나, 이렇게 되면 산도 밭도 마을도 시골도 숲도 모두 망가져요. 화석연료를 안 태운다지만, 공사 시설이나 발전 시설은 생태를 오히려 무너뜨립니다.

  부디 슬기를 모아야지 싶어요. 이제는 참말 새로운 앞날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정책을 펴야지 싶어요. 함께 즐거울 길을 찾고, 아이들이 기쁘게 물려받아서 꿈을 키울 만한 삶터로 이 땅을 가꾸는 어른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미래로 가는 희망 버스, 행복한 에너지》라는 책에 붙은 이름처럼, 새로운 앞날로 함께 갈 수 있기를, 즐거운 에너지가 될 수 있기를, 깨끗하고 평화로운 정책과 나눔을 이루기를 빕니다. 2017.7.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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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미 한국 생물 목록 24
동민수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숲책 읽기 128



스물한 살 젊은이가 일군 첫 개미도감

― 한국 개미

 동민수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6.19. 28000원



  우리는 늘 여러 가지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듣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동차가 달리거나 서는 소리를 듣습니다. 장사하는 짐차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설거지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를 들어요.


  우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나비가 팔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거미가 집을 짓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공벌레가 옹기종기 모이는 곳에서 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는 사람 귀에는 잡히지 않는 주파수라고 해요. 지구가 날마다 구르는 소리도 사람 귀에는 잡히지 않는 주파수라고 합니다. 지구는 틀림없이 해 둘레를 돌되 날마다 스스로 돌기도 하지만, 이처럼 도는 소리를 사람이 듣지도 느끼지도 못한다고 해요. 커다란 소리를 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개미나 나비나 공벌레처럼 작은 목숨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도 해요. 벌이 집을 짓거나 지렁이가 땅밑에서 길을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도 하겠지요.



개미는 우리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땅속 깊이 구멍을 뚫어 토양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개미 살포 식물의 씨앗 확산을 돕습니다. 중국에서는 작물을 재배할 때 베짜기개미를 해충 방제로 이용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씨앗을 수확하는 데 개미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4쪽)


한글 ‘개미’라는 말의 어원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과거에 ‘가얌벌게’, ‘개야미’ 등으로 불린 것을 보아 흔히 보이는 개미(일본왕개미, 곰개미, 주름개미 등)가 검은 색인 것과 관련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14쪽)



  동민수 님이 빚은 생태 도감인 《한국 개미》(자연과생태,2017)를 읽으며 개미살림을 그려 봅니다. 동민수 님은 어릴 적부터 개미한테 푹 사로잡혔다는데, 어느덧 대학생이 된 이즈막에 도감 하나를 써내요. 글과 사진으로 개미살림을 살뜰히 담아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스물한 살이라는 앳된 나이에 도감을 어떻게 써내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른 눈으로 본다면 동민수 님처럼 개미를 아끼면서 마주하는 깊이 있는 연구자가 아직 없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개미를 다룬 책은 더러 있기는 하지만, 《한국 개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개미를 찬찬히 살피고 가르고 바라보면서 분류학이라는 얼개로 담아낸 첫 책입니다.


  연구자한테 나이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이나 도감을 써낼 만한 나이는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얼핏 보자면 고작 스물한 살이지만, 어릴 적부터 개미를 눈여겨보았다면 벌써 열 몇 해를 개미살림에 고스란히 바친 걸음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개미살림을 살핀 햇수를 넘어서, 개미라고 하는 목숨을 우리 곁에서 아름다운 이웃으로 마주하는 눈길하고 손길이 있기에 멋진 생태 도감인 《한국 개미》를 이쁘게 선보일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미 몸에는 털이 많다. 털개미속처럼 종 구별에서 털이 무척 중요한 요소인 분류군도 있다. 털은 억세고 굵은 센털과 그보다 연한 잔털(연모)로 나눈다. 센털은 서 있는 각도에 따라 몸에서 수직이면 곧게 선 센탈(직립강모), 70도면 비스듬한 센틀(사직립강모), 45도 정도면 비스듬한 누운털(입복와), 몸과 평행하게 누워 있으면 누운털(평복와)이라고 부른다. (27쪽)



  사람이 보기에 개미는 매우 작습니다. 개미집은 땅밑에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나무줄기에 있기도 하고, 바위틈에 있기도 한 개미집이니, 개미집을 찬찬히 살피기란 퍽 어렵습니다. 더욱이 개미는 느리지 않습니다. 개미를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알 텐데, 개미는 개미 몸집에 대면 엄청나게 빨리 깁니다. 아니 마치 날듯이 긴다고 할 만해요. 사람더러 걷거나 달리라고 해도 개미처럼 빠르지는 못하리라 느껴요. 여기 있던 개미가 어느새 저쪽까지 기어요. 여섯 다리로 바람처럼 기지요.


  작으며 날쌘 개미를 지켜보거나 살피기란 만만하지 않아요. 영상으로 담거나 사진으로 찍기도 수월하지 않지요. 갈래를 꼼꼼히 가르기 어렵다고 하지만, 동민수 님은 꼼꼼히 살피고 갈래를 제대로 갈라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국 개미》는 개미 모습을 꽤 많은 사진으로 넉넉하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맨눈으로 볼 적에도 이럭저럭 가릴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해요.



여왕개미 1마리는 수개미 여러 마리와 교미하면서 양적으로 풍부하고 유전적 다양성이 보장된 정자를 얻은 후, 배 끝부분에 있는 정자주머니에 저장한다. 그 뒤 일생 동안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듯 조금씩 정자를 방출해 알을 수정시킨다. (32∼33쪽)



  예전에는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개미를 손쉽게 만났습니다. 요즈음도 서울에서 개미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빈 틈을 두지 않고 빼곡하게 높다란 건물이 오르고 땅밑으로도 숱한 가게가 늘어서는데다가 자동차가 물결을 치는 데에서는 아무리 개미라 한들 삶터를 이루기 힘들어요. 개미 같은 벌레가 집이나 건물에 생기면 ‘벌레잡이 전문가’들이 온갖 약을 쳐서 개미랑 뭇벌레를 깡그리 없애기도 하고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개미가 맡은 몫이 무엇인가를 잘 살피지 않습니다. 개미쯤 없어도 되는 줄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개미가 있기에 사람도 살아갈 수 있어요. 개미가 말끔히 먹어치우는 것이 대단히 많거든요.


  배 한 알을 뒷밭에 놓았더니 어느새 여러 개미떼가 몰려들어 30분이 채 안 되어 꼭지만 남기고 모두 사라져요. 파리를 잡아 마당에 내려놓으면 어느새 개미가 찾아들어 날개도 다리도 몽땅 조각조각 갉아서 가져가요. 개미를 굳이 말끔지기(청소부)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개미는 억센 주둥이로 먹잇감을 잘게 바수어서 먹어치우거나 개미집 곳간에 채워 놓습니다.



초기 애벌레는 일개미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므로, 여왕개미가 게워 내는 양분을 받아먹고 자란다. 이때까지 여왕개미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34쪽)


(불개미아과는) 전 세계에 사는 두 번째로 큰 개미아과다. 현재까지 51속 3943종이 기록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0개 속이 기록되었다. (68쪽)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내다가 제 팔뚝이나 가슴이나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개미를 곧잘 만납니다. 처마 밑 평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밭일을 쉴 적에 발가락을 타고 발등을 지나 무릎을 거쳐 제 몸을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개미를 으레 만납니다. 나무 그늘에 밥상을 펼라치면 개미는 어느새 밥상까지 올라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아이들하고 앉아서 놀 적에도 어김없이 개미는 어디에선가 나타납니다. 서울마실을 하려고 읍내로 나가서 시외버스를 타는데, 제 가방에 어느새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이 버스마저 함께 타고 그만 서울까지 따라오는 개미가 있어요.


  개미가 제비꽃씨를 물어 날라서 제비꽃이 바위틈에서도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울 수 있어요. 오직 제비꽃씨뿐일까요. 개미로서는 먹잇감으로 삼아서 작은 풀씨나 꽃씨를 물어다 나를 텐데, 어느 모로 보면 멋진 시골지기 구실을 하면서 씨앗심기를 거든다고 할 만합니다. 인천에서 살 적에 도무지 저곳에서 봉숭아가 씨앗을 떨구어 자랄 수 없을 텐데 싶은 갈라진 담벽 틈에서 봉숭아가 자라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사람이 일부러 담벽 틈에 씨앗을 갖다 놓지 않았을 테고요. 개미는 봉숭아 씨앗을 물어서 나르다가 그곳에 두었을 수 있어요.



가시개미 여왕개미는 숙자의 군체를 발견하면 일개미를 공격해 몸을 씹고 체액을 빤다. 이는 숙주 군체의 군체인식 페로몬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다. 일차적인 화학 흉내가 마무리되면 숙주의 군체 깊숙이 들어가 여왕개미의 목 부위를 씹으며 완벽히 위장하며, 이 작업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여왕개미의 몸에 털이 많고, 특히 앞다리에 털이 있는 것은 페로몬을 흉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249쪽)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온 개미도감인 《한국 개미》입니다. 이 도감을 펴낸 자연과생태 출판사는 도감 집필자에 나이 제한이나 학력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즐겁게 어느 한 갈래 생태를 눈여겨보면서 아끼는 분이 있다면, 이분이 꾸준히 일구는 땀방울을 알뜰히 여미는 길을 간다고 해요.


  스물한 살 동민수 님으로서도 첫 도감이자, 이 나라 자연과 생태와 학문과 문화라는 갈래에서도 첫 개미도감이 태어났습니다. 젊은 생태학자이자 뜻있는 생태지기(숲이라는 생태를 가까이에서 눈여겨보며 지킬 줄 아는 사람)가 앞으로 이 길을 늘 즐겁게 갈고닦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 개미》에 이어 또 다른 아름다운 생태 도감이 멋스러이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개미살림을 넉넉하면서 알차게 보여준 동민수 님하고 자연과생태 출판사 모두한테 손뼉물결을 보냅니다. 2017.7.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개미 사진은 동민수 님이 찍었고,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셔서, <한국 개미>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즐거이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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