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 녹색평론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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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6


새끼 여우가 나비랑 놀던 미나마타 바닷가
― 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 2015.9.1.


사람이 죽을 때 깔아 주는 깔짚이라는 것은 농민들이 고생혀서 기른 짚이니, 솜이불보담도 더,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 있지. 시원허믄서두 따뜻허니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임시 잠자리로는 딱 좋은겨. (10쪽)

이 아이들의 생활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가정생활이 아니고, 병원생활도 아니며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메틸수은화합물에 의한 중추신경계 중독성질환 인간으로서의 생활뿐이었다. (23쪽)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책 가운데 두 가지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2007년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이고, 다른 하나는 2015년에 《신들의 마을》(녹색평론사)입니다. 두 가지 책은 일본 미나마타병을 다룹니다. 그런데 미나마타병만 다루지 않습니다.

  두 가지 책은 미나마타라는 바닷마을을 먼저 다룹니다. 바다에 수은을 몰래 버린 공장 때문에 바닷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고 힘들었으며 죽어 나갔고 아이들이 아파서 몸부림치다가 죽는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아야 한 이야기를 나란히 다룹니다. 수은을 버린 공장이 아무런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팔짱을 낀 대목을 다룹니다. 미나마타 시골사람을 얕보는 도쿄 도시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고, 미나마타 시골사람하고 이웃이 되려는 작은 사람들 모습을 함께 비춥니다.


‘앞으로 단 5년이나마 더 살 수 있을까 생각은 했어. 그래도 그렇지, 어째서 엄마가 안아 주지도 못하는데 넌 말도 없이 할머니가 졸고 계실 때 죽은 거니.’ 아들의 넋이, 더없이 초라한 열세 살의 육체, 아직 따스할 유체로부터 빠져나가버리기 전에 도착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허리도 다리도 맥없이 힘이 빠져 풀길 위에 주저앉는다. 아아, 아름다운 하늘이네, 그녀는 생각한다. 하늘이 핑그르르 돈다. 단풍 든 옻나무 잎이 춤을 춘다. (59쪽)

“내는 암것두 몰러. 내가 미나마타병이라는 것밖에는 몰러.” (81쪽)


  일본 정부와 병원과 대학교와 지식인은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보기 모으기’에만 마음을 쏟았다고 합니다. 수은 피해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을 ‘저마다 살림을 지어 살아온 낱낱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았대요. ‘환자 1호, 환자 2호’처럼 ‘생체 실험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고 합니다.

  《슬픈 미나마타》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새로 나온 《신들의 마을》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흐릅니다. 조용하고 정갈한 바닷마을에서 수수하게 바닷살림을 짓던 이들이 갑작스레 마주해야 했던 죽음바다란,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서 우수수 죽어 나가는 모습을 치러야 했던 죽음마을이란, 가녀린 아이들이 어버이보다 먼저 삶을 내려놓는 나날을 으레 맞닥뜨려야 했던 죽음집이란, 참말로 얼마나 힘들면서 가슴이 찢어졌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간호사들은 미나마타병 환자는 바보거나 미쳤거나 그냥 세 살짜리 아이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허구 있는 디다가, 다들 툭허믄 울어들대니 갓난애를 달래듯이 어르는 것처럼 말을 허는 거야 … 결국 어떤 검사도, 어떤 약도 도움이 되진 않았지.” (101쪽)

“도쿄에 가믄 나라가 있을 줄 알었더니, 도쿄엔 나라가 읎드라구. 그것이 나라라믄 나라라는 것은 끔찍혀. 미나마타 사람들(공무원·공장 관계자)이나 ‘거기서 거기’드구만. 아니지, 또 쪼금 달러서 더 심허더구먼. 끔찍헌 일이지. 그냥 죽으란 소린지두 몰러. 소름 끼치는 디여. 나라라구 허는 것은. 어디루 가믄 우덜의 나라가 있는 것일까?“ (138∼139쪽)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디로 가면 우리 나라가 있을까?” 하고요.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나라란, 우리 마을이란, 우리 집이란, 우리 바다란, 우리 하늘이란, 우리 삶터란, 우리 이웃이란, 참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한두 공장만 수은을 버렸을까요. 곳곳에서 숱한 공장이 알게 모르게 수은을 바다에도 땅에도 슬그머니 버리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숱한 공장은 꽤 오랫동안 정화시설을 제대로 안 갖추었습니다. 정화시설을 갖추었어도 공장 굴뚝에서는 언제나 매캐한 연기가 솟구칩니다. 화력발전소 곁에서 사는 이들은 다른 고장보다 훨씬 자주 크게 몸이 아픕니다.

  여기에 고속도로가 있어요. 자동차에서도 늘 매연이 나와요. 자동차가 들끓는 곳에서는 하늘이 매캐해요. 자동차가 끝없이 싱싱 달리며 매연을 내뿜는 고속도로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기 일쑤예요.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수은을 몰래 잔뜩 버린 화학공장도 말썽이요, 우리를 둘러싼 온갖 위해·위험·공해 시설도 말썽이라고 느낍니다.


(진보운동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하고 있는 걸 보자면 나는 간이 오그라들었다. ‘정보선전반’도 아마 못 알아들을 거다. ‘오르그’를 알 리가 없지. ‘다방면’도 분명히 알쏭달쏭할 것이다. 그런 용어는 어부들의 생활어와는 거의 인연이 없었다. (164쪽)

어패류의 맛과 수은 맛의 합성에 의한 변화구조를 해명한 연구논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183쪽)

“아무래두 말여, 회사 간부들허구 이야그를 할 때, 우덜은 말두 떠듬떠듬, 뱃사람 말밖에 헐 줄 모르구 말여, 저쪽은 다들 도쿄대학 출신들이구 말두 근대적이구, 주눅이 든다구나 헐까, 뱃사람 차림 그대루로는 뭐랄까, 지저분한 놈들이 쳐들어가는 것 맹키로 그러니께 지대로 만나주지두 않구유.” (299쪽)


  《신들의 마을》은 다른 대목을 더 짚습니다. 애써 미나마타로 와서 바닷마을 사람을 돕겠다고 나선 진보운동가가 쓰는 말이 대단히 어려웠대요. 공무원이나 공장 관계자나 병원 의사·간호사도 미나마타 시골사람이 못 알아들을 말만 썼다는데, 진보운동가는 다른 테두리로 어려운 말을 써서 시골사람이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수은중독이 일어난 지 스무 해가 지나도 이를 둘러싼 논문은 보이지 않았다 하며, 바닷사람 사투리는 언제나 주눅이 든 채 입을 벙긋하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고 해요.

  어쩌면 한국에서도 이와 같으리라 느껴요. 대추리나 밀양에서 터져나오는 낮고 작은 목소리는 정부한테 얼마나 가 닿았을까요. 나라 곳곳에서 낮고 작은 이들이 털어놓는 낮고 작은 목소리는 중앙정부나 지역정부 문턱을 얼마나 넘을 수 있을까요.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은, 집안의 대들보였던 아버지가 폐인이 되면서, 대다수 환자 가정과 마찬가지로 전업 어가였던 이 가정이 단숨에 궁핍해졌다는 점이다. 발병은 1955년 11월이었다. (226쪽)

‘짓소’가 작성한 미나마타병 환자 일람표에 기재된, ‘자택에서 빈둥빈둥, 보행 약간 곤란’은, 다가미 카츠요시와 그의 발병으로 비롯된 이 집안의 고난에 대해,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227쪽)


  공해병이란 대단히 무섭습니다. 그러나 공해병만 무섭지 않습니다. 공해병을 일으킨 사람도, 공해병을 일으키고서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는 사람도, 공해병하고 멀리 떨어졌으니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공해병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무섭습니다.

  수은으로 더러워진 바다는 이제 깨끗할까요.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바다는 이제 어떠할까요. 그리고 한국 바다는 얼마나 깨끗할까요.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를 낀 바다는 얼마나 깨끗할까요. 공장이 가득 들어찬 한국 바다는, 제철소랑 화학공장이 숱하게 늘어선 한국 바다는, 참말로 얼마나 깨끗할까요.


“미나마타(공해 회사)에 보내는 간부는 멍청한 인간인지도 몰라. 그렇게도 도리를 모르는 걸 보믄.” (289쪽)

“우리 바다, 우리들 논밭에 수은을 갖다 부어놓구, 성의를 다한다는 말만으로 될 거라구 생각허는 거여? 말만으루?” (294쪽)

“누에콩밭에 꽃이 필 무렵이면 새끼 여우들이 부모와 함께 해변까지 내려와서는, 밀물 드는 해변에 나비가 팔랑팔랑하는 것을 고양이 새끼들처럼 손을 뻗어 쫓아다니니까, 부모가 조마조마하며 말리는 것도 보였답니다. 얼마나 보기 좋던지.” (317쪽)


  《신들의 마을》은 미나마타 사람들이 치러야 한 슬프며 아픈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으면서 새끼 여우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공해병으로 바다가 더러워지기 앞서 으레 마주했던 모습을 바닷마을 사람 목소리로 차분히 그려냅니다.

  새끼 여우가 어미 여우하고 바닷가로 나와 나비를 잡는다며 뛰어놀았대요. 바닷마을 사람들은 봄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대요. 저 여우 식구란 하느님이 아닐까 하고. 이 바다란 하느님이 살포시 찾아와서 살아가는 터전이 아닐까 하고.

  작은 바닷마을이 하느님 마을입니다. 작은 숲마을도 하느님 마을입니다. 작은 냇마을도, 도시에 있는 골목마을도 모두 하느님 마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은 하느님 마을입니다. 다만 잊혀진 하느님 마을이거나 잃어버린 하느님 마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8.2.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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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의 역사 - 현대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1
루이트가르트 마샬 지음, 최성욱 옮김 / 자연과생태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127


알루미늄은 무시무시한 자원 먹깨비
‘살림’하고 ‘쓰레기’ 사이를 오간다
― 알루미늄의 역사
 루이트가르트 마샬/최성욱 옮김
 자연과생태, 2011.10.20.


요즘에 와서야 빈 캔을 모으자고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버려졌다.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자 예전 같으면 한 번 더 사용할 물건까지 버리는 낭비생활에 길들여졌고, 그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22쪽)

무거운 다용도 유리병을 들고 다니는 것은 맥주회사나 중개상인 모두에게 아주 불편했다. 그리고 유리병 운반은 돈이 많이 들었다. 또 가게에서 판매대에 진열할 때도 넓은 면적을 차지했으며, 빈병 회수를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해야 했다. (25쪽)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것한테 둘러싸이면서 살아간다고 할 만합니다. 겉보기로는 반들반들하거나 눈부시지만, 살짝 손을 거치면 어느새 빛을 잃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이 잔뜩 있어요. 바로 ‘살림’하고 ‘쓰레기’ 사이에 있는 숱한 물건입니다.

  가게마다 반들반들하거나 눈부신 상자나 비닐로 덮인 물건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물건을 돈을 치러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것이면서 살림이라 할 수 있는데, 겉을 벗겨 알맹이를 쓰거나 누리거나 먹거나 하면, 어느새 모든 껍데기는 쓰레기가 됩니다.

  빵이나 과자를 담은 비닐이나 종이상자 모두 껍데기만 있으면 쓰레기예요. 마실거리를 담은 팩이나 깡통도 껍데기만 있으면 쓰레기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무기 수요가 줄어들자 알루미늄은 남아돌게 되었다. 알루미늄 생산회사와 제품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장개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고, 만능 금속인 알루미늄을 새로운 시장개척에 폭넓게 적용하려 했다. (44쪽)


  《알루미늄의 역사》(자연과생태, 2011)라는 책을 곰곰이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아주 쉽고 흔하게 쓰는 ‘알루미늄’이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고 여겼습니다. 언제부터 알루미늄을 살림에 썼고, 알루미늄을 얻어서 누리자면 어떤 길을 거쳐야 하며, 알루미늄을 쓰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지 싶어요. ‘만능 금속’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 쇠붙이가 우리 곁에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보크사이트 재고량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보크사이트 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나치는 점령지역을 무자비하게 수탈한다. 여기서 프랑스는 독일이 특별히 관심을 가진 나라였다. (226∼227쪽)

채굴방법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폐기물을 부수적으로 발생시킨다. 농경지건 숲이건 상관없이 이 원료가 매장된 층 윗부분에 있는 모든 것을 먼저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보크사이트 채굴은 대형 굴착기와 트럭을 이용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엄청난 양의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들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노천채굴을 위해서는 파낸 흙을 실어 나를 효율적인 교통인프라가 필요하다. (268∼269쪽)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비닐자루나 깡통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꽉 찬 먹을거리나 마실거리였을 테지만, 먹거나 마신 사람이 가볍게 버린 탓에 여기저기에서 구릅니다. 빈 껍데기, 이른바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가서 알맞게 나누어 한길에 내놓는 손길이 널리 퍼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냥 아무 곳에나 버리는 손길도 꽤 많습니다.

  쓰레기통이 있다 하더라도 종이랑 알루미늄이랑 쇠랑 플라스틱이랑 비닐이랑 병을 차곡차곡 갈라서 놓도록 마련하는 일은 드뭅니다. 더욱이 이렇게 갈라 놓았어도 아무 데나 엉성하게 집어던지는 사람이 많아요.

  ‘재활용 분류 쓰레기통’ 앞에 설 적마다 아이들이 언제나 묻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아무 데나 버려? 여기는 병이라고 적혔는데 왜 여기에 플라스틱을 버리는 사람이 있어? 여기는 플라스틱이라고 적혔는데 왜 여기에 병을 버리는 사람이 있어?”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꾸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한글을 읽을 줄 몰라 아무 데나 넣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지요. 참말로 한글을 못 읽어서 아무 데나 넣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마 재활용 분류 쓰레기통 앞에 서더라도 글씨를 안 쳐다보고서 그냥 집어던진 뒤에 돌아서지 싶어요.


수력발전소 혹은 전기를 이용해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이 창출한 이익은 지역주민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그들에게 유용하지도 않다. (304쪽)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알루미늄 제련소는 이 독가스를 거의 정화하지 않고 그대로 배출했다. 이 불소로 인해 인근 식물들이 말라죽었고, 동물과 인간 할 것 없이 뼈가 굳어져 쉽게 부서지는 골격불소증이나 골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309쪽)


  《알루미늄의 역사》를 읽으면 이 지구별에서 알루미늄을 널리 쓴 발판은 전쟁이었다고 밝힙니다. 더 가벼운 전쟁무기를 쥐어짜려고 알루미늄이라는 쇠붙이를 쓰기로 했고, 전쟁무기를 엄청나게 쏟아내려고 알루미늄을 캐내고 다듬자니 전기를 또 엄청나게 써야 하는데, 이러자니 숲을 엄청나게 망가뜨려서 수력발전소를 세운다든지 석유를 다시 엄청나게 때야 한다든지 …….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알루미늄은 사람들한테 이바지를 하려고 태어난 쇠붙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지구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쇠붙이입니다만, 이웃나라로 더 손쉽게 쳐들어가서 더 손쉽게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뜻에서 알루미늄을 널리 썼다고 해요. 유럽에서 피가 튀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쟁 동안에 세운 엄청난 ‘알루미늄 제조 공장’을 놀릴 수 없다고 여겨, 또 ‘알루미늄 광산이며 여러 곁가지 산업’을 북돋우려고, ‘전쟁무기 공장’을 ‘생활용품 공장’으로 바꾸었다는군요.

  이러면서 값싸고 가벼운 알루미늄 깡통이나 그릇이 퍼졌고, 이 값싸고 가벼운 알루미늄 깡통이나 그릇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2차 알루미늄이 에너지 절감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철 알루미늄을 재처리할 때 분쇄기와 분류기, 기름 분리기와 건조기, 정화기를 따로 이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는 불가피하다. (329쪽)


  알루미늄으로 겉을 감싼 물건은 하나같이 가게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게에서 깡통들이 마실거리나 물건을 장만한다면, 아무리 되살림을 잘 해낸다고 하더라도 알루미늄이란 어떻든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다고 해요. ‘알루미늄 캐내기’뿐 아니라 ‘알루미늄 되쓰기’ 모두 무시무시한 자원 먹깨비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슬기로울까요? 이도저도 꽉 막혀 보이기는 하지만, 길은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알루미늄을 안 쓸 수 있는 살림으로 간다면, 실낱 같은 빛줄기를 찾을 만하지 싶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삶이 아닌, 집에서 손수 지어서 쓰는 삶이 된다면, 또 가게에서 사다가 쓰더라도 집에서 그릇을 챙겨 다니면서 ‘집에서 챙긴 그릇에 물건 알맹이’만 담아서 쓸 수 있다면, 자원 먹깨비인 알루미늄을 차츰 줄일 만하지 싶습니다.

  소비생활이 아닌 살림짓기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길을 연다고 할까요. 우리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소비문화를 보여주거나 가르치기보다는, 다 같이 집이나 마을에서 살림짓기로 나아가는 새길을 가꿀 수 있어야 한달까요. 커다란 공장에서 잔뜩 만들어서 유통업체를 거쳐 잔뜩 사다 쓰도록 하는, 이른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끊자는 몸짓이 된다면, 마을에서 작게 지어서 마을에서 쓰는 두레살림을 편다면, 삶도 나라도 사회도 지구별도 제자리를 찾으리라 봅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정말 중요한 문제는 포장 재료의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시스템이냐 아니면 재사용시스템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67쪽)


  《알루미늄의 역사》는 알루미늄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두 짚습니다. 이 책은 우리더러 ‘알루미늄을 안 쓸 적에 가장 훌륭합니다’ 하고 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읽고 보니, 글쓴이는 이 말을 밝히지 않았어도 우리가 ‘알루미늄을 안 쓸 수 있는 살림을 저마다 찾아야 하지 않나?’ 하고 묻는구나 싶어요. 환경보호라는 대단한 이름이 아닌, 살림살이라는 수수한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살아내자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어야겠습니다. 2018.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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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
시릴 디옹 지음, 권지현 옮김 / 한울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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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5


길을 늘리니 자동차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 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
 시릴 디옹/권지현 옮김
 한울림, 2017.9.27.


모든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이 하나같이 1면으로 다뤄야 마땅할 이 정보를 블로그 포스트로 올렸다. 프랑스의 가장 유력한 일간지 〈르몽드〉도 마찬가지였다. (17쪽)

오늘날의 시장경제 체제는 식량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정작 생산한 식량 중 3분의 1을 폐기합니다. (36쪽)

오늘날 우리는 가공식품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요리하는 시간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완벽하게 식품업계가 제안하는 식습관에 적응해 버렸지요. (55쪽)


  날마다 신문이 나오고 방송이 흐릅니다. 그러면 신문이나 방송 머릿글은 무엇을 다룰까요? 우리는 무엇을 알거나 듣거나 헤아리면 좋을까요?

  바보스럽거나 얼빠진 이들이 저지른 시커먼 이야기를 머릿글로 다루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문이나 방송은 머릿글을 늘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정작 이 바보스럽거나 얼빠진 일은 사그라들거나 줄어들 낌새가 없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우리 스스로 참답게 살아갈 이야기를 머릿글로 안 다루는 터라 우리 스스로 참살림을 잊거나 잃지는 않을까요? 바보스럽거나 얼빠진 이들 이야기를 으레 머릿글로 마주하면서 우리 스스로 이들 바보꾼이나 얼간이를 나무라는 데에 온힘을 쏟고 말아, 막상 우리 살림살이를 알뜰하면서 아름다이 가꾸는 즐거운 길하고 멀어지지는 않을까요?


미국에서는 식량이 생산된 지역에서 소비될 지역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2400킬로미터를 이동합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지요. (75쪽)

우리는 정부처럼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89쪽)

보통 1헥타르의 땅에서 기계로 생산하는 양만큼을 우리는 1000제곱미터의 땅에서 생산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9000제곱미터에는 수백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축을 기르고, 숲속 정원과 꿀벌 채집장을 만들고, 늪을 두고,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1헥타르의 땅에 훨씬 풍요로운 농원을 만드는 겁니다. (102쪽)


  《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한울림, 2017)를 쓴 시릴 디옹 님은 예전에 어린이책으로 《내일》을 쓴 적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붙이되 뒷말을 더 붙인 새로운 숲책에서는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프랑스 정치나 사회를 비롯해 지구 곳곳 참살림하고 거짓살림을 몸소 찾아다닌 이야기를 다룹니다.

  왜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날마다 머릿글로 똑같이 바보 정치꾼 이야기를 다루기만 할까 하고 갸우뚱해 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알아야 할 이야기는 왜 머릿글로 안 다룰 뿐 아니라, 사람들이 누구나 손쉽게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참살림은 왜 안 보여줄까 하고 아리송해 합니다.

  그리고 이 궁금함을 여러 나라 여러 이웃한테 여쭈지요. 여러 나라 여러 이웃은 상냥하게 웃으며 말해요. 기계나 기름을 안 쓰고 땅을 지으면 아주 적은 땅뙈기에서 외려 더 많은 먹을거리를 얻을 뿐 아니라, 나머지 훨씬 너른 땅을 숲처럼 가꾸고 고운 보금자리까지 지어서 아주 넉넉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예요. 신문이나 방송을 내려놓고서 우리 보금자리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에너지 전환을 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구 생태계에도 유익하고, 건강에도 좋은데 우리가 하지 않고 있다는 거군요. 거참 이상한 일이군요? (122쪽)

꿈을 꾸고, 자연 속을 걷고, 시를 읽고, 바람을 느끼고, 사랑하고,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142쪽)


  《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려운 듯하지만 쉽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쉬운 듯하지만 어렵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주 쉬우면서 어려운 이야기를 묻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길을 가고 싶은가를 묻습니다. 커다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그만두고 집집마다 집열판을 붙이는 얼거리로 바꾸면 돈이 훨씬 적게 들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까지 잔뜩 생긴다지만, 정작 이 길을 가는 나라는 드문 대목을 몸소 겪으면서 한 올 두 올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슬기로운 길을 가는 나라는 하나같이 ‘작은 나라’라고 해요. ‘커다란 나라’는, 커다란 정치힘이나 군대힘을 거느린 나라는, 참말 하나같이 더 많은 씀씀이로 더 헤프게 지구자원을 쓰면서 사람들을 길들인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한국은 작으면서 알찬 나라일까요? 아니면 짐짓 크게 몸짓을 부풀리면서 속알이 빈 나라일까요?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우리는 지난 50년간의 연구를 통해 도로를 더 많이 만들수록 자동차 통행량이 더 많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놀라운 결과죠. (165쪽)

아무리 우리에게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우리는 이미 안락함과 자동화에 익숙해져 버렸다. 열렬한 환경운동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173쪽)

요약하면, 지금의 통화 체계는 이자를 갚는 데 필요한 돈을 다른 사람에게서 가져와야 하는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경제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거군요. (227쪽)


  찻길을 늘리면 늘릴수록 자동차는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지난 쉰 해에 걸쳐서 살핀 끝에 이러한 얼거리를 찾았다고 해요. 그러면 ‘길이 막히니 찻길을 늘린다’고 하는 정책은 순 엉터리인 셈입니다. 길이 막히면 오히려 찻길을 줄여야 하는 노릇이에요. 찻길을 줄일 적에 오히려 길이 안 막힌다고 합니다.

  걸어다니는 길을 늘리기에 걷기에도 좋으면서 자동차한테도 좋다지요. 고속도로를 늘린대서 자동차가 싱싱 달리지 않는다지요. 찻길을 늘리고, 자동차를 늘리며, 기름을 더 많이 쓰도록 하는 경제 얼거리란, 뒤에 숨은 몇몇 사람들 배를 불리는 길이 된다지요.


민주주의 혁신은 작은 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구 32만 명의 아이슬란드, 인구 450만 명의 아일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벨기에 등 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이 분야의 선구자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326쪽)

핀란드 교육체계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배우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자립성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둔다. (391쪽)


  어제를 돌아보면서 오늘을 생각합니다. 오늘을 바라보면서 모레를 그립니다. 우리가 그릴 모레는 어떤 모습일 적에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스스로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지, 아니면 ‘대학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생각을 집어넣는지 하루빨리 깨달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입시지옥에 매달리느라 정작 손수 삶을 짓는 길하고 멀어지는 한국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할 힘이 없기 마련입니다. 입시공부만 하느라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은 대학교를 마치고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된다 한들, 집살림을 할 줄 모르고, 아기를 낳아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게다가 너무 바빠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우리 앞날은 아름다운 꿈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앞날은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도는 수렁이 될까요? 아이도 아이입니다만, 우리 어른부터 어른으로서 즐겁고 고우며 사랑스러운 앞날을 마음에 그릴 수 있을는지요? 부디 우리 누구나 가슴에 꿈을 품고 기쁜 하루를 그리는 앞날을 맞이하기를 빕니다. 2018.1.1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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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기다리는 사람 - 화가의 탐조 일기
김재환 글.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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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4


보석처럼 예쁜 눈인 큰소쩍새
― 새를 기다리는 사람
 김재환 글·그림
 문학동네, 2017.10.20. 18000원


말발도리 덤불에는 통통한 녀석들이 열 마리쯤 모여 있다. 멋쟁이들이다. 머리 위의 검은 깃털이 쇠박새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더 크다. 게다가 수컷은 또렷한 분홍빛 깃털이 참 곱다. (21쪽)

갈대밭 사이 도로를 천천히 달리는데, 오른쪽 풀섶에서 갑자기 잿빛개구리매 수컷이 나타났다. 녀석은 순식간 차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 짧은 순간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42쪽)


  겨울에 나무는 조용히 잠든 듯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곳곳에 눈이 터서 봄을 기다리는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으면서 잎을 떨굴 적에는 안 보이던 눈이 가지 곳곳에 빼곡하게 돋아요.
  나무마다 다른 겨울눈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찔레밭에서 살짝 놀랍니다. 꽤 많은 참새가 푸득푸득하면서 놀거나 날더군요. 오호라, 너희가 이곳을 너희 보금자리로 삼는구나.

  그래요, 우리 집 뒤꼍 한쪽은 찔레밭인데요, 봄마다 찔레나물을 누리고 싶어서 찔레밭으로 삼아요. 찔레알은 커다란 새가 먹지 않습니다. 아니, 커다란 새는 찔레덤불에 깃들지 못해요. 자그마한 참새나 딱새나 박새가 차지해요. 이러다 보니 우리 집 뒤꼍 찔레밭은 겨우내 새삼스러운 참새 보금자리가 되어, 이곳에서 즐겁게 참새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마라도 하늘에는 수많은 칼새가 날아다니고 있다. 섬 둘레가 모두 절벽이라 번식하기 좋을 것이다. 빠르게 비행하는 녀석을 간신히 촬영했는데 입안이 불룩한 녀석들이 있다. 먹이 사냥을 하던 중이었나 보다. (109쪽)

관리직원들이 뗏목을 타고 다니며 어리연꽃을 걷어내려는 참이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작업을 해 왔는지 걷어낸 연잎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다. 여기서도 덤불해오라기를 보는 것이 이제는 힘들어지겠다. 어쩐지 새 사진가들이 없더라니. (123쪽)


  《새를 기다리는 사람》(문학동네, 2017)을 읽습니다. 이 책은 김재환 님이 빚은 그림하고 글이 고이 어우러집니다. 이제는 사라진 《자연과 생태》라는 잡지에 ‘새를 지켜본 이야기’를 2011년 1월 이야기부터 2012년 12월 이야기까지 실었다고 해요. 스물두 군데에서 126가지 새를 지켜본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어린 시절에 갈매기를 참새 보듯 흔하게 보던 아내는 고향의 바닷가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갈매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살던 동네에서 참새 정도만 보던 나도 훗날 동해안의 북쪽 바닷가에 이렇게 자주 새들을 찾으러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167쪽)

이제 곧 번식지로 떠날 텐데 다가올 겨울에도 다시 찾아올는지.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은 어떻게 변할까? 먹황새를 그때도 만날 수 있을까, 걱정만 앞선다. (191쪽)


  새를 그리는 아저씨는 처음부터 새를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를 지켜보고 그리는 아저씨하고 함께 살림하는 아주머니는 어릴 적에 그토록 새가 많은 고장에서 나고 자랐어도 딱히 온갖 새를 살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와 같을 수 있어요. 우리 곁에 참으로 숱한 새가 깃을 들이는데 정작 우리로서는 어떤 새가 얼마나 있는지 하나도 모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온갖 새가 이 땅을 찾아들어도 ‘새가 뭐 대수인가?’ 하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른바 갯벌을 함부로 메우는 일이라든지, 숲을 밀어 관광지나 경기장이나 찻길을 닦는 일이라든지, 조용한 시골 바닷가나 들판에 공장이나 큰 발전소나 관광지를 들이는 일은, 우리를 둘러싼 온갖 새가 먼먼 옛날부터 지내던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이 되어요.

  저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에 해마다 겨울이면 큰고니를 비롯한 숱한 새가 무척 많이 찾아와요. 그만큼 새한테 먹잇감이 넉넉하고 조용하며 아늑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새한테 아늑한 보금자리를 개발업자는 그대로 둘 마음이 없지 싶어요. 자꾸 뭔가 들이려 하고, 끝없이 삽질을 하려고 달려들어요.


어떤 대기업에서 골프장을 지으려 했다는 개머리능선은 정말 멋졌다. 울룩불룩한 모양의 능선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풀밭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210쪽)

해질 무렵이 되었을 때 벚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큰소쩍새 어린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졸다가 눈을 살짝 떴을 때 드러난 눈동자가 보석처럼 예쁘다. 또 어떤 새들이, 어떤 나무 구멍에서 내 눈을 피해 숨어 있을까. 알수록 궁금하고 재미있다. (228쪽)


  ‘새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쩌면 예부터 온누리 누구나 새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늘 우리 곁에 머무는 텃새는 텃새대로 지켜보고, 철 따라 우리 곁에 찾아오는 철새는 철새대로 지켜보며  살았지 싶어요.

  텃새는 사람 곁에서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철새는 사람 곁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짝짓기를 하며 둥지를 틉니다. 새가 찾아들어 쉬다가 알을 낳고 새끼를 돌보는 곳이라면 사람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이라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새한테 먹잇감이 없는 곳이라면 사람한테도 즐겁지 못한 곳이요, 새가 보금자리를 틀 수 없는 데라면 사람도 즐거운 집이나 마을을 건사하기 어려운 데라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반짝반짝 보석 같은 눈을 굴리는 새를 바라봅니다. 갖은 빛깔로 고운 새를 바라봅니다. 바람 따라 흐르는 싱그러운 노래를 베푸는 새를 바라봅니다. 새를 기다리고, 새를 지켜보며, 새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리 터전을 그립니다. 2018.1.1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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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없어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12
아리아나 파피니 지음, 박수현 옮김 / 분홍고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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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3


망가뜨리고서 땅을 치는 사람들은 참 바보 같아
― 이제 나는 없어요
 아리아나 파피니 글·그림/박수현 옮김
 분홍고래, 2017.10.31. 12000원


  우리 눈에 뜨이지 않는 깊은 두멧자락에서 조용히 살다가 어느새 사라진 도마뱀이나 풀벌레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어느 숲에서 즐거이 살다가 그만 소리 없이 사라진 짐승이나 새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는 맹꽁이나 두꺼비 같은 물뭍짐승조차 자칫 이 땅에서 몽땅 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개구리마저 이 땅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흔하던 제비가 어느덧 매우 드문 새가 되었고, 뜸부기나 꾀꼬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새가 되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참새나 박새나 딱새처럼 사람들 곁에서 흔히 날아다니던 새도 하루아침에 씨가 마를 수 있어요.


나의 고향 아프리카에서는 얼룩말과 콰가를 교배해서 우리의 멸종을 막으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나를 재창조하는 게 가능할까? (1쪽/콰가 얼룩말)

사람들은 참 이상해. 아무 생각 없이 땅을 망가뜨리고 곧 후회하곤 하지. 숲을 몽땅 망가뜨리고는 얼마 안 돼서 지구 온난화를 막겠다며 방법을 찾고 있으니 말이야. 정말 바보 같아. (3쪽/상아부리 딱따구리)


  아리아나 파피니 님이 빚은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분홍고래, 2017)를 읽는데, 첫 대목부터 움찔합니다. 다음 쪽에서는 찌릿합니다. 저는 ‘콰가 얼룩말’이나 ‘상아부리 딱따구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그러나 이 같은 지구이웃은 틀림없이 이 지구에서 무척 오래 살았고, 무척 아늑하게 살았으며, 무척 아름다이 살았다고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러한 지구이웃을 처음 마주하고 난 뒤에 대단히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대요.

  아니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지구이웃하고 사이좋게 살던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운하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고 술집, 식당, 호텔 그리고 자동차 대여점 등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어. 결국,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내가 이곳에 계속 살았다면, 인간들이 이곳을 망가뜨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테니까. 육지뿐만 아니라 푸른 하늘까지도. (5쪽/테코파 민물고기)


  수수한 텃사람은 지구이웃을 먹잇감으로 삼더라도 먹이로 삼아야 할 적에만 알맞게 사냥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북중미 물소떼를 들 수 있어요. 북중미 텃사람은 물소를 함부로 사냥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북중미에 전쟁무기를 앞세워 들어온 서양사람은 재미삼아 물소떼를 사냥했어요. 기나긴 해에 걸쳐 물소떼하고 텃사람은 함께 살아왔지만, ‘어떤 사람들’이 총으로 사냥놀이를 하면서 이 땅에서 한 갈래 지구이웃은 자취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는 이 지구에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자취를 감춘 지구이웃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서 하늘에서 살아가는 지구이웃이 ‘어떤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들려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무가 사라지자 우리의 사냥감은 사라지고 말았어. 더는 사냥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하나둘 굶주리고 사라졌지. 우리는 인간의 것을 빼앗기 시작했어. 어쩌겠어. 너무 배가 고팠는걸.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이라도 사냥할 수밖에 없잖아. (11쪽/북아메리카 퓨마)


  그동안 ‘어떤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양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무기를 앞세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거나 괴롭혔어요. 이들 서양사람은 이웃나라 사람들도 괴롭혔으나, 숲짐승이나 냇물고기나 풀벌레나 물뭍짐승 같은 지구이웃도 괴롭히거나 마구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양사람 아닌 한국사람도 ‘어떤 사람들’이 됩니다. 가까이에는 4대강사업이 있고, 숱한 막개발이 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숲이며 멧골을 엄청나게 깎아냅니다. 고속철도를 놓는다며 골골샅샅 파헤쳤고, 작은 땅에 고속도로가 참 많은데 아직도 새로 고속도로를 더 내려 하지요. 집집마다 적은 돈으로 깨끗한 전기를 쓰도록 이끄는 정책은 펴지 않고, 정갈한 숲이나 바다를 망가뜨리려는 엄청난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정책만 펴요.


사람들은 우리를 사냥하는 것에만 눈이 멀어 우리가 사라지는 걸 깨닫지 못했지. 이제 나는 내 친구들과 이 높은 하늘에서 살고 있어. 아주 잘 살고 있지. 비록 지구에서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사냥도 없고 전쟁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웃으며 하늘을 날기도 하지. (13쪽/도도새)


  이 땅 아닌 저 하늘에서 사는 옛날 지구이웃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나중에 뉘우칠 막개발을 왜 자꾸 하느냐고 물어요. 왜 평화로운 살림이 아닌 전쟁무기를 때려짓는 길로 가느냐고 물어요. 숲짐승이나 냇물고기만 괴롭히는 ‘어떤 사람들’이 아닌, 왜 이웃한 숱한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짓을 일삼느냐고 묻습니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킨 발자취를 돌아보면 하나같이 돈으로 이어집니다. 이웃한테 있는 돈을 가로채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웃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없거나 모자란 이웃하고 나누려 하지 않으니 전쟁으로 불거지고, 있거나 넘치는데 이웃하고 나누려 하는 마음이 없기에 전쟁으로 치닫습니다.

  이웃마실을 하는 수수한 발걸음이 아닌 여러 관광상품도 돈하고 맞닿습니다. 아름다운 숲을 관광지로 개발한다면서 거꾸로 아름다운 숲을 망가뜨리기까지 해요. 국립공원에 놓으려는 하늘차(케이블카)가 그렇고, 국립공원으로 쉽게 오르도록 돕는다며 자꾸 닦는 찻길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잡아 가방과 장갑을 만들었어. 지금 나는 양쯔강에 없어. 이제 나는 하늘이라는 아름다운 강과 호수를 헤엄치지. 가끔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 사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여행하기도 해. (35쪽/양쯔강 돌고래)


  그림책 하나를 아이들한테만 읽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그림책 하나를 아이들 곁에서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곁에서 우리 어른들이 낯부끄러운 줄 느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묻는 말 “어머니 아버지, 왜 이런 지구이웃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어요?” 하고 물을 적에 “어른으로서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이런 미안한 일이 없도록 우리 어른들도 힘을 낼게. 너희 아이들도 슬기롭고 아름답게 힘을 내 주렴.” 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함께 바꿔요. 이제부터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고, 숱한 지구이웃하고도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요. 2017.12.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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