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보이는 한자 - 삶을 본뜬 글자 이야기
장인용 지음, 오승민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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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아쉬운책 2021.3.26.

맑은책시렁 241


《세상이 보이는 한자》

 장인용 글

 오승민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12.29.



  《세상이 보이는 한자》(장인용, 책과함께어린이, 2020)는 한자란 글씨를 지을 무렵 어떤 마음을 담았는가를 들려주면서, 오늘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쓰는가를 살며시 짚습니다. 글을 제법 알고 책을 퍽 읽은 어른이 보기에는 쉬운 한자를 살펴서 말결을 더 널리 익힐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라도 한자는 영어하고 똑같이 바깥말이자 바깥글입니다.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똑같이 어렵기 마련입니다. 말을 좋아해서 영어나 일본말이나 러시아말이나 독일말로 죽죽 뻗어 나가며 배운다면 한자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그러나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고 살아가는 길에서 한자는 꽤나 높직한 담벼락입니다.


  ‘한자와 한자말을 아는 어른’이라면 ‘온누리가 보이는 한자’로 여길 만하지만, ‘한자를 잘 모르고 한자말인지 아닌지 가리지 않고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어른’이라면 ‘온누리를 막는 한자’로 느낄 만합니다. 어린이한테는 어떨까요?


  어린이한테 한자를 들려주거나 알려준다고 해서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섣불리 온갖 한자말을 끼워서 가르치려고 들지는 말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린이한테는 한자에 앞서 우리말부터 제대로 들려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야지요. 우리말을 모르는 채 한자를 배우거나 왼들 부질없어요. ‘물’이라는 낱말이 어떻게 비롯했고 어떻게 쓰임새를 펴는가를 모르는 채 ‘수(水)’라는 한자만 가르친들 뭘 알까요? ‘흙’하고 ‘땅’하고 ‘터’ 같은 우리말이 어떻게 비롯했고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모르는 채 ‘토(土)’라는 한자만 알려준들 뭘 배울까요?


  물이나 흙이 대수롭고 뜻있기에 ‘숲’하고 얽힌 한자가 무척 많다는데, 우리말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말도 ‘숲’하고 얽힌 낱말이 대단히 많아요. 무엇보다도 ‘살림’을 짓고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 길을 밝히는 우리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우리말을 바탕으로 한자를 나란히 놓고, 또 영어도 함께 놓으면서, 오늘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말글살이를 하는가를 넌지시 나무라면서 어린이가 앞으로 새길을 새말로 열도록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말은 외워서 못 써요. 말은 오로지 삶으로 녹여내어 즐겁게 놀면서 재미나게 익히고 새롭게 지어서 씁니다.


ㅅㄴㄹ


하늘이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면 땅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손으로 만질 수도 있어. 거기서 식물들이 자라고 동물들도 발을 딛고 살아가기에 흙과 돌에 관련된 글자가 많은 건 당연한 거야. (24쪽)


물이 들어간 글자가 많은 것은 물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61쪽)


원래 ‘민(民)’은 백성이라는 뜻이 아니었어.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기엔 전쟁에서 사로잡은 다른 나라 포로들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노예로 부렸다고 해. ‘민(民)’은 그 모습을 나타낸 글자였지.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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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제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3
배성호.주수원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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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1.3.18.

맑은책시렁 240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

 배성호·주수원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11.13.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배성호·주수원, 철수와영희, 2020)를 읽으면, 우리가 무엇을 살 적마다 낛(세금)이 나간다고 하는 대목을 넌지시 들려줍니다. 값싸다 싶은 주전부리를 사더라도 낛이 나가기 마련인데, 물을 마시거나 숨만 쉬어도 낛이 나갑니다. 냇물이나 샘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물낛(수도세)을 내요.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도 목숨낛(주민세)을 냅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가게를 차리거나 일터를 열면 온갖 낛이 뒤따릅니다. 느끼든 못 느끼든 안 느끼든, 우리가 하루를 사는 동안 하루몫으로 나라에 돈을 내요.


  나라는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움직이거나 일하거나 놀면서 내는 돈을 모아서 나라살림을 꾸립니다. 고장(지자체)에서는 고장살림을 꾸리지요. 교사·공무원·군인은 모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내는 돈으로 일삯을 받고, 이이가 일하는 자리도 우리가 낸 돈으로 짓고 꾸립니다. 핵발전소를 짓든 화력발전소를 짓든, 이런 삽질을 하든 저런 막짓을 하든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흘러나간 돈으로 합니다.


  살림(경제)을 읽고 알며 생각하는 길이란, 바로 이런 돈흐름을 헤아리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이 나아가도록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스스로 하루를 짓는 삶이라고 봅니다. 나라돈(우리가 낸 돈)으로 총알이나 미사일이나 폭탄이나 탱크나 잠수함을 만들어도 좋은가를 살펴야 합니다. 나라돈(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찻길을 더 늘려야 하는지 숲을 푸르게 가꾸어야 할는지 살펴야지요. 나라돈(우리 살림돈)으로 벼슬아치 일삯을 더 줄는지, 아니면 이웃사랑을 하는 길에 쓸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물은 고이면 썩어요. 돈도 고이면 썩습니다. 썩은 물은 죽음길입니다. 썩은 돈도 죽음길이에요. 돌고돌아야, 다시 말하자면 꾸준히 흐르면서 어디이든 거치고 닿아야 비로소 맑게 빛나는 물줄기예요. 누구한테나 고루 흐르면서 어디이든 머물면서 살려야 비로소 밝게 쓰는 돈자루입니다.


  조그마한 책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는 어린이한테 살림길을 모두 짚어 주거나 밝힐 수는 없습니다. 자그마한 실마리를 건드립니다. 이 작은 실마리를 바탕으로 우리 어른이 한결 슬기로이 우리 보금자리랑 마을이랑 이웃을 바라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별도 헤아리면 좋겠어요. 우리 두 손을 거쳐서 흐르는 돈은 이 나라 벼슬아치나 나라지기뿐 아니라 이웃나라 벼슬아치나 나라지기한테도 흘러들거든요. 모두 하나로 맺어 흐르는 살림길을 잇는 돈 한 푼입니다.


ㅅㄴㄹ


경제 활동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면서 이뤄집니다. (38쪽)


여러분도 세금을 낼까요? 아직 돈을 안 버니까 안 낼 거라고요? 아니에요. 우리는 매일매일 물건을 살 때 세금을 낸답니다. (56쪽)


그런데 항상 자기 물건만 쓰지는 않잖아요. 내가 쓰지 않을 때 다른 친구들이 쓸 수 있도록 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이 쓰지 않을 때 내가 쓸 수 있다면 어떨까요? (79쪽)


착한 소비는 다섯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요. 첫 번째는 환경이에요. 지구 온난화 같은 기후변화를 일으키거나 오염물질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지 살펴요. 두 번째는 사람이에요. 인간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전쟁이나 군사력과 연관이 없는지 살펴요.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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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 430일간의 모유 수유 모험 일기, 결국은 해피 엔딩!
최아록 지음, 정환욱 감수, 김연희 팁 / 샨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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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아기를 낳아 돌본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삶이 녹아든 이야기로 배우면

한결 좋고,

그러고서 책도 읽으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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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5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최아록

 샨티

 2020.11.25.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최아록, 샨티, 2020)를 읽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어버이한테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물려받는 때가 아닌, 누리그물에서 이모저모 스스로 그때그때 찾아서 보는 때인 만큼,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길도 글이나 책으로 만나겠네 싶어요.


  책 한 자락입니다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곧장 배울 뿐 아니라 훨씬 깊고 넓게 익힐 만한 젖물림입니다. 어머니가 아기한테 ‘밥을 먹이는’ 살림을 놓고 ‘젖먹이기’나 ‘젖물리기’라 합니다. 그저 보면 ‘먹이기’이나 곰곰이 보면 ‘물리기’이거든요.


  한자말이라서 ‘수유’를 안 써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왜 먼먼 옛날부터 “젖을 물린다”고 했는지 혀에 이 낱말을 얹고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물리다 = 물려주다’이고, ‘물림 = 물(흐름)’이에요. 이어서 흐르는 숨결에 사랑을 담습니다. 그래서 젖을 물린다고 합니다.


  말씨로 ‘젖물리기’가 무언지 읽어내어도 어떻게 아기를 안아서 사랑하면 즐거운가를 온몸으로 깨닫고 온마음으로 움직일 만해요. 여기에 ‘아이를 낳아 돌본 삶을 누린’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는 ‘책으로 쓰자면 100이나 1000이 될 만한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들려줄 만해요.


  글님으로서도 처음이요, 이 책을 쥘 아기 어머니로서도 처음일 ‘젖물리기’라 한다면, 또 곁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면, ‘젖 = 밥’인 줄 생각하면 좋겠어요. 어른은 밥만 먹나요, 아니면 물도 마시나요? 아기한테 젖만 물리면 아기도 힘겹습니다. 아기한테 틈틈이 물도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야 해요. 그리고 아기가 크는 동안 당근이나 무나 감 같은 열매를 물려 주면 좋지요. 플라스틱 젖꼭지가 아닌 열매를 물려 주셔요. 배춧잎이나 시금치도 좋습니다. 이렇게 해야 아기는 ‘앞으로 맞아들일 밥이란 살림’을 혀로 입으로 손으로 몸으로 배웁니다.


  사내인 저더러 아기를 낳고 돌보는 길을 어떻게 다 아느냐고 묻는 분이 둘레에 제법 많은데, 저로서는 두 할머니한테서 듣고 보고 배웠으며, 곁님이 가르쳐 주기도 했고, 스스로 이모저모 찾아내고 살펴서 두 손에 그득히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맡아서 늘 하다 보니 어느새 삶으로 녹아들었습니다. 책도 좋지만,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는 살림이면 됩니다.


ㅅㄴㄹ


내가 하도 쩔쩔매니까 시어머니가 와서 수유하는 걸 잘 보시곤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어. 아기를 바짝 당겨서 안는 것과 젖을 깊이 물리는 것. 이 두 가지를 고치니까 젖 통증이 줄어들도 바다다 편안히 젖을 먹기 시작하더라. (33쪽)


몇 모금 마셔 봤는데 ‘어?’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소∼하면서 달달∼한 깊은 맛이 감동적이다. (43쪽)


아기랑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 우선은 엄마가 즐겁고 편안한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엄마가 편안하면 아기도 자연스러게 편안해질 테니까. (98쪽)


아기가 밤에 자다가 잠깐 깨서 울 때 무조건 젖을 물리지 말고 등을 톡톡 두드리면서 달래거나 보리차를 조금 먹여서 재워 보라고 하더라.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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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도우미 재미난 책이 좋아 10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스즈키 마모루 그림, 양선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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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8


《고양이 도우미》

 다케시다 후미코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

 양선하 옮김

 주니어랜덤

 2010.9.20.



  《고양이 도우미》(다케시다 후미코·스즈키 마모루/양선하 옮김, 주니어랜덤, 2010)는 얼핏 보면 ‘고양이를 맡아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 같으나, 곰곰이 보면 ‘아기가 아이로 자라고, 푸른 나날을 지나며 어버이 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같은 길타래를 풀어내는구나 싶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기기만 해도 반가운 씨앗이요, 환한 곳으로 태어나기만 해도 고마운 아기요, 꼼틀꼼틀 꼼지락꼼지락 놀면서 자라기만 해도 기쁜 숨결이요, 서고 걷고 뛰고 달리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눈빛이요, 조잘조잘 수다에 노래를 터뜨리기만 해도 아름다운 몸짓입니다. 이밖에 무엇을 바라야 할까요?


  누구나 꿈꾸고 춤추고 웃고 떠들면서 뛰놀 만한 터전이어야 마을이며 나라이리라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보고 헤아리고 지켜볼 만한 삶터여야 보금자리요 나라이지 싶습니다. 배움책을 외워야 하는 배움터가 아닌, 살림길을 꽃피우는 슬기로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을 나눌 배움터여야지 싶어요. 줄세우기가 없는 어깨동무를 익히고 마음껏 생각날개를 펴도록 이끌어야 어른이라고 봅니다.


  그나저나 집안일은 누가 할 적에 아늑한 집이 될까요? 우리는 돈을 바깥에서 얼마나 벌어야 할까요? 바깥에서 기운을 다 빼는 바람에 집에서는 뒹구는 몸짓이라면, 집이란 어떤 자리가 될까요?


  이웃나라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 나라에서는 “부지깽이도 거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지깽이’가 삶자리에서 사라졌을 테지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모저모 바라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그저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싶은 자리일 뿐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이모저모 해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사랑을 바라보고 물려받고 새롭게 가꾸면 됩니다.


ㅅㄴㄹ


산더미처럼 쌓인 빨랫감도 빨아야 하고, 이불도 널어 말려야 했어요. “아휴, 바쁘다, 바빠. 어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어요. (4∼5쪽)


고양이 도우미는 정말 미안한 듯 말했어요. “손이 조그매서…….”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주머니는 고양이 도우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어요. (17쪽)


아주머니는 고양이 도우미가 와 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태 집안일은 모두 나 혼자 했어. 다들 바쁘다면서,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 (31쪽)


고양이 도우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시…… 실은, 빨래는 못해요.” “부엌일이랑 청소는? 또 빈집 보기는?” “그것도 잘…… 못해요.” “다림질 같은 건 아예 못하지? 심부름도?” “네, 아무것도…….” 웅크리고 앉아 있던 고양이 도우미는 갈수록 풀이 죽었어요. (50쪽)


아주머니는 식사 준비를 했어요. 연어도 먹음직스레 구워서 상을 차렸어요. 고양이 도우미는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해낙낙한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지요.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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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しれおてつだいねこ #わたしおてつだいね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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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마리 개
앙드레 알렉시스 지음, 김경연 옮김 / 삐삐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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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푸른책시렁 159


《열다섯 마리 개》

 앙드레 알렉시스

 김경연 옮김

 삐삐북스

 2020.9.1.



  《열다섯 마리 개》(앙드레 알렉시스/김경연 옮김, 삐삐북스, 2020)에는 열다섯 마리 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개를 놓고서 ‘마리’로 묶어도 될는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처음에는 틀림없이 ‘그냥 개’였을 테지만, 어느 날부터 ‘사람마음이 스며든 개’가 되었거든요.


  겉모습으로는 개이니 “열다섯 마리 개”라 할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사람을 ‘마리’로 세지 않듯, 사람하고 같은 마음이 된 개라 한다면 더는 ‘마리’로 셀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조용히 돌아봅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개도 고양이도 닭도 소도 ‘마리’로 세지 않습니다. ‘마리’는 ‘머리’하고 말밑이 같으니 나쁜 낱말은 아닙니다만, 사람이 아니라는 눈길로 가르는 뜻을 품은 낱말이에요.


  개도 고양이도 겉모습이 사람이 아닌 개요 고양이인 만큼 개랑 고양이를 ‘마리’로 세어도 되겠지요. 둘레에서 그렇게 세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저로서는 다 다른 겉모습이되 다 같은 숨결이 흐르는 사랑이라는 눈길로 바라보려 할 뿐입니다. 이러면서 짐승한테 ‘마리’란 말을 안 써 버릇하고, 두 아이를 건사하는 어버이입니다만,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높임말을 써요. 때로는 아이들하고 저하고 말을 트면서 이야기하고요.


  개라는 마음이 아닌 사람이라는 마음이 스며든 개는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개는 재미나거나 새롭게 삶을 바라보면서 보낼 수 있다고 여기고, 어느 개는 끔찍하면서 싫다고 여기면서 몸부림을 칩니다. 어느 개는 사람하고 말을 섞으면서 밥그릇을 챙기고, 어느 개는 사람하고 말이 아닌 마음을 나누면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겉모습으로 입은 몸뚱이로서만 사람이 아닌, 마음으로 싱그럽고 아름답게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우리가 걷는 길은 어떤 무늬요 빛깔이며 결일까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짝짓기랑 돈벌기랑 힘얻기랑 이름내기랑 배움쌓기에 매인 목숨일까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곱고 슬기로우면서 참하게 짓는 숨빛일까요?


  사람 사이에 말이 흐르지만, 막상 겉에서 맴돌며 마음으로 와닿지 못한 채 부스러지곤 합니다. 사람하고 나무 사이에 말이 흐르지 못한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나무랑 말을 섞고 마음을 나누곤 합니다.


  무엇이 사람다운 길일까요? 무엇이 개답고 고양이다우며 나무다운 삶일까요? 사람은 마음을 품으면서 얼마나 빛날까요? 마음으로 빛나는 삶이라면 무엇을 한복판에 놓고서 하루를 맞이한다는 뜻일까요?


 ㅅㄴㄹ


“만약 동물이 인간의 지능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헤르메스가 말했다. (17쪽)


이렇게 조심하는 것은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꼭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6쪽)


고양이나 다람쥐, 생쥐나 새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매즈논은 분명 그들과 소통하려고 애를 썼을 거다. 어떤 종이든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69쪽)


“주인이 아니라면 너를 고통스럽게 할 거야. 어느 날 넌 고통을 받을 거야. 상대가 누군지 아는 게 언제나 더 낫지, 안 그래?” “네 생각은 이해해. 하지만 이 인간은 주인이 아니야. 난 니라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렵지 않아.” (111쪽)


이미 창백한 존재들이 크림을 발라 더 창백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벤지는 경악했다. 하얀색에 지위를 가져다주는 뭔가가 있는 걸까? (172쪽)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프린스는 사랑했고, 그 답례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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