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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자연사박물관 1
백남극 / 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뱀 - 지성자연사박물관 1
- 글쓴이 : 백남극, 심재한
- 펴낸곳 : 지성사(1999.3.3.)
- 책값 : 15000원


.. 뱀은 머리를 제외하고는 몸 전체가 땅에 닿기 때문에 다리가 필요치 않다. 좁은 빈틈을 지나갈 때는 다리가 없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또 다리가 없으니 앞다리를 받쳐 주는 어깨뼈도 당연히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뱀이 큰 먹이를 삼키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된다 ..  〈25쪽〉


 ‘뱀’이라는 짐승을, ‘쥐’라는 짐승을 굳이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지난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살았으니 뱀을 잘 알아야 했겠지만(뱀에 물려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요즘 같은 때, 뱀을 알아서 어디에 쓸까요. 아마도 그림책으로만, 또는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로만 만날 뱀이라고 봅니다. 뱀 하면 곧바로 이어서 떠올릴 만한 개구리나 쥐도, 시골에서조차 하루하루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는 더욱 자취를 감추겠지요. 그나마 ‘뱀’은 이렇게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주기는 하는데, ‘쥐’­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참새’나 ‘비둘기’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 뱀 쪽에서 보면 독액 분출은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시간을 버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  〈66쪽〉


 사람 아닌 목숨붙이 삶을 알아보거나 헤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갈까요. 아이들은 왜 짐승 기르기를 좋아할까요.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는 왜 온갖 짐승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야구니 축구니 농구니 뭐니 하는 운동선수단 상징물에 짐승이 많이 쓰일까요. 짐승들을 사랑해서? 짐승들은 우리 이웃이라서? 이 세상은 사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터전이라서?


.. 이처럼 뱀의 천적들은 많이 있으나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잘 이루어져 있어 뱀의 생존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 인간들이 보신문화에 의한 상업주의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뱀을 잡아 생존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  〈56∼57쪽〉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느끼고, ‘우리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는 데에, 뱀이고 쥐이고 다른 짐승이고 살피고 헤아리는 뜻이 있을까요. 때로는 동물실험을 한다면서 살피기도 하겠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살피기도 하겠지요. 이 모두를 넘어서 누구나 즐겁게 어울리고,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뜻이 있을까요.

 뱀도 쥐도 개구리도, 참새도 비둘기도 까치도, 지렁이도 바퀴벌레도 개미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목숨붙이고 소중한 자기 삶을 꾸립니다. 뱀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며, 개미한테도 하느님이 있지 싶습니다. 밥이 되어 준 쌀한테도, 반찬이 되어 준 배추와 무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지요. 우리가 《뱀》과 같은 자연생태 이야기책을 펴내고 찾아서 읽고 헤아리는 일은, 우리 둘레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고 있는 하느님을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남극, 심재한 님은 뱀을 사진으로 찍고, 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저는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고, 헌책방과 책과 우리 말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어쩌면, 백남극 님과 심재한 님은 뱀을 보며 세상을 읽고, 저는 헌책방을 보며 세상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4339.8.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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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김영갑 1957∼2005
- 사진ㆍ글 : 김영갑
- 펴낸곳 : 다빈치(2006.5.15.)
- 책값 : 45000원


 비싸지 않은 사진책이 있으랴만, 사진책 《김영갑 1957∼2005》도 만만치 않은 값입니다. 성남훈 씨가 낸 사진책 《유민의 땅》(눈빛,2006)은 5만 원이고, 강운구 님이 낸 사진책 《우연 또는 필연》(학고재,1994)은 9만 원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을 모은 《은자의 나라 한국》(YBM Si-Sa,2002)는 98000원이에요. 이렇게 따지고 보면, 《김영갑 1957∼2005》에 붙은 45000원은 그럭저럭 붙은 값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5’보다는 ‘0’을 붙여 준다든지, ‘4’보다는 ‘3’만 붙여 주어도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83쪽〉


 스무 해 남짓, 아무도 돌보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제주섬 오름을 사진으로 담은 김영갑 님입니다. 더욱이 그냥 사진도 아닌 파노라마사진으로만 담았습니다. 김영갑 님이 꾸준하게 제주섬 오름을 파노라마로 찍으니, 하루하루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고, ‘그거 하나만 찍는 사람’쯤으로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59쪽〉


 김영갑 님뿐일까요. 다른 사진작가를 볼 때에도, 글쟁이를 볼 때에도, 그림쟁이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나 예술에 몸바친다고 하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들 보통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너, 그거 왜 하니? 밥이 되니, 돈이 되니? 뭐가 되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꾸만 돈-힘-이름이 있는 쪽으로 우리 눈길을 돌리라 합니다. 자, 그래서 그런 쪽으로 눈을 돌린다 칩시다. 돈한테 눈을 돌려 돈을 얻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일는지요. 힘한테 눈을 돌려 어마어마한 권력을 움켜쥐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참뜻일는지요. 이름한테 눈을 돌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이름값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 우리가 꾸려 가는 삶일는지요.

 

 말이 아닌 사진으로, 몸짓 발짓 손짓에다가 마음짓까지 모두 담아낸 사진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김영갑 님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붓을 놀려 글을 몇 글자 끄적이기도 합니다. 사진만 보아서는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이 드물고, 사진을 보면서 우리 삶터를, 자기 자신을 느끼거나 헤아리는 사람이 참 없기 때문입니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  〈23쪽〉


 김영갑 님은, “들판의 야생화들을 한 다발 꺾어 병에 꽂아 두면 벌과 나비가 찾아들었다. 그 녀석들도 꽃 속에서 한참을 놀다 가곤 했다. 꽃을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을 볼 때마다, 내 사진도 그래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요란스럽게 떠벌리지 않더라도 말없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두 사람 사진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 온몸을 던져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103쪽)” 하고 말하면서 자기가 사진 찍는 뜻을 밝힙니다. 이렇게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바쳐야 이룹니다. 하나되어야 만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스스로 곰삭여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뒷사람한테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북돋우고 알뜰하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찍어 온 사진입니다. 김영갑 님이 찍지 않아도 제주섬 오름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김영갑 님이 남기지 않았다면 제주섬 오름 모습이 나날이 바뀌고 무너지고 개발과 돈벌이 땅놀음에 사라져 버렸다고도 하겠지만, 이렇게 바뀌고 무너지는 우리 삶터도 우리 모습이요 역사일 테지요. 이런 우리 모습과 역사 가운데 한 자락을 붙잡은 김영갑 님 사진책 《김영갑 1957∼2005》입니다. 스물 몇 해에 걸쳐 모아낸 사진들인데, 이 사진책 하나 집어들고 스물 몇 해에 걸쳐서 잘 간수하면서 즐길 수 있다면, 책값은 그다지 안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뭐, 저도 스무 해쯤 꾸준하게 즐길 마음으로 이 사진책을 선뜻 샀습니다. (4339.7.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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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 - 임응식 회고록
임응식 지음 / 눈빛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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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
- 글쓴이 : 임응식
- 펴낸곳 : 눈빛(1999.7.20.)
- 책값 : 20000원


 대여섯 해 앞서, 서울 서교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이라는 책을 한 권 본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책 겉싸개가 없기도 했지만, 1999년에 나온 책이 무슨 2만 원이나 하나 싶어서 마음에 안 들었고, 그다지 읽을거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 1930∼40년대 당시 부산은 일본군의 주요 요새였다. 군사기밀보호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 데나 카메라 들이대다가는 영락없이 잡혀갔다. 사진을 찍으려면 요새 사령관이 발부하는 허가증이 있어야 했으며, 촬영이 끝나면 밀착인화와 함께 원판을 헌병대에 제출해서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촬영 금지구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좋은 피사체가 있어도 카메라를 댈 수 없었다. 찍고 싶은 유혹을 못 견뎌서 망원렌즈로 한 컷 어떻게 슬쩍 했다가는 검열 때 걸려서 치도곤을 맞기도 했다. 또 1941년부터는 감광재료가 배급제로 되었고, 1944년부터는 군기보호법에 의한 촬영금지 지역 밖이라 할지라도 20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는 찍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제가 한국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식민지의 국민들은 오나 가나 구박이고 천대고 비하였다 .. 〈39쪽〉


 온삶을 사진 하나에 바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진을 찍는 마음’,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 ‘사진과 우리 삶’을 견주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얼마 없다고 느껴서 아쉽다고 생각했고, 그냥 헌책방에 서서 대충 조금 읽다가 말았습니다. 그리고 대여섯 해가 지난 얼마 앞서. 이 책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사서 읽기로 합니다.


.. 일황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을 들은 것은 당시 거주하던 도쿄 시내의 어느 아파트에서였다. 라디오 앞에 있는 일본인들과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의 의미와 나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됐구나 하는 기쁨의 그것이었다 ..  〈46쪽〉


 문득,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사진을 찍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어온 몸가짐이나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다룬 글을 ‘어떤 틀에 박힌 글’로만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응식 님이 쓴 회고록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은 말 그대로 ‘임응식이란 사람 하나가 걸어온 사진밭, 사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고, 어떤 큰 이야기,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데, 이 책에서 다른 것을 느끼거나 찾으려 했구나 싶습니다. 한편, 바로 이처럼 있는 그대로 수수하게 펼치는 이야기에서 사진을 찍는 마음과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엉뚱한 자리에서 어긋난 생각으로 책을 느끼려 했구나 싶어요.


.. 그림은 돈이 되어도 사진은 돈을 까먹을 뿐인데도 나는 아직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운명론이랄까, 소명의식이라 할까, 내게 주어진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이루어 왔고, 그것이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진 재산이며 보물인 것이다 ..  〈24쪽〉


 아하,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2000년 즈음만 해도 ‘사진찍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눈에 제대로 안 들어왔겠다 싶어요. 이제 저도 어느덧 사진을 찍은 지 아홉 해가 되었고, 조금만 있으면 열 해째가 됩니다. 그동안 찍은 수만 장에 이르는 사진, 잃어버려서 새로 갖춘 사진장비 들을 헤아려 보면, 사진을 찍어서 돈이 되어 본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고, 그동안 사진에 바친 돈만 어마어마합니다. 웬만한 중형차 한 대를 살 만한 돈을 사진에 쏟아부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태껏 어느 한 번도 ‘돈 안 되는 사진을, 그것도 헌책방 한 가지만 찍어 온 사진을 아쉽거나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마음은 임응식 님도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돈이 되건 말건 자기가 즐기는 일이며 보람 또한 듬뿍 느끼는 일이기에 꿋꿋하게 이어온 길이라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려온 사진 삶이라면, 이 회고록을 읽어내는 동안 제 자신이 사진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을 다소곳하게 추스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집어서 읽는 내내 이야기가 하나하나 마음에 콕콕 새겨져서 금세 읽게 되더군요. 겪어 보니까, 이제 저도 사진 삶을 꾸린다고 할 수 있다 보니까 비로소 책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4339.6.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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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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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차미례
- 펴낸곳 : 눈빛(2004.11.11)
- 책값 : 12000원


 지난주 목요일, 몽골에서 우리 나라로 일하러 온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시골 버스역으로 갔습니다. 버스가 언제쯤 오는가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한뎃잠이(노숙자)나 부랑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가방 하나 들고 버스역 둘레를 서성거리더군요. 나중에야 이이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한 대 놓치고(한글을 읽을 줄 몰라서, 서울 가는 버스인 줄 못 알아보았지요. 옆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고) 있던 몽골 노동자인 줄 알았습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  〈64∼65쪽〉


 한국에 한 해 동안 있었다는 몽골 아저씨는, 시골(충북 음성과 충주 신니면 쪽)에서 플라스틱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는데, 일감이 없어서 돈을 더 벌 수 없어서 서울에 있는 누이한테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누이는 한국 남자한테 시집가서 살고 있다더군요.


..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은 가슴과 팔목에 일일이 자기 번호가 잉크로 씌어진다 ..  〈55쪽〉


 몽골 아저씨는 “다들 몰라 몰라 해, 당신,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고 띄엄띄엄 말합니다. 무슨 소리인가는 한참 뒤에 알았는데, 길을 물어 보았을 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다들 ‘몰라(요)’ 하고는 가 버린다는 것.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을 알려주는 한편,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함께 길을 찾아 주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것.


.. 그의 어머니는 그의 결심에 찬성을 한다. 그것은 가문의 문제이고 가문 전체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이 가는 ‘외국’은 싫어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집 밖으로 걸어나가게 될 때쯤엔, 어머니는 그가 어떻게 태어났던가를 기억해 낸다 ..  〈35쪽〉


 몽골에서 온 아저씨한테 이름을 묻지 않았군요. 참 바보입니다. 이름도 묻지 않다니. 하긴. 그 아저씨는 한국땅에서 ‘외국인노동자’라는 이름 하나만 달랑 받을 뿐, 그 어떤 노동자 대접, 사람 대접은 못 받을 테지요. 어떤 이는 ‘괜히 남의 나라에 와서 노동력을 빼앗는 사람’으로 볼 테고,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 돈을 벌어 돌아가려는 사람’쯤으로만 볼 테지요.

 이 아저씨는 제 고향나라인 몽골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수많은 남녘 관광객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찾아가는 ‘관광지 몽골’ 사람 가운데 하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네다섯 해 뒤에는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녘사회 물이 들 대로 들어서. 하지만 남녘 남자한테 시집온 그 아저씨 누이는 앞으로 딱 한 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나라, 겨레가 쓰던 말도 잊을 테지요.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아무런 자취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겝니다. (4339.4.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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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사람들
오진령 지음 / 호미 / 200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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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곡마단 사람들
 - 글 / 사진 : 오진령
 - 펴낸곳 : 호미(2004.1.15)
 - 책값 : 12000원


 '곡마단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 동춘서커스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1> 곡예사와 관객


 어릴 적 제가 살던 인천에도 동춘서커스단이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한창 지는 별이었던 동춘서커스단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우리 고향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또 제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고 신나게 보고 동무들하고 얘기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보고 배울 때까지 '동춘서커스단'이 이 모임을 만든 '박동춘' 씨 이름에서 왔다는 걸 몰랐습니다. 인천에 '동춘동'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모임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동춘서커스단은 지금 나라안에 딱 하나 남은 서커스단입니다. 지금 이 서커스단을 이끄는 박세환 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서커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저 사람들의
 웃음과 감동을 뺏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동춘은
 내 것이 아니고 관객들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28쪽>


 서커스. 저는 서커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커스를 보며 받는 감동과 웃음과 눈물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요. 다만 "공연을 보고 나서 하루 종일 회상에 젖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철 지난 양복을 빼어 입은 어느 할아버지는 비싸다며 기어코 천 원을 깎아 표를 산다. 서커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해 주는 소리도 들려오고,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자<22쪽>"도 보는 서커스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가요? 동춘서커스단은 "웃지 못했다면, 재미없다면 입장료 반환합니다"란 푯말을 큼직하게 써붙이고 공연을 한다는데 아직까지 입장료를 물어 내라 한 사람이 없었대요.

 누구나 찾아오고, 모두들 공연에 흠뻑 빠지고 즐긴달까요. '불쌍한 사람'이 아닌 '삶을 즐기고 곡예를 즐기는 사람'인 곡예사이나 공연을 즐기는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느 나라는 곡예를 가르치는 전문학교도 있고 나라에서 뒷배도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 곯고 불쌍하고 할 짓 없는 년놈들이나 하는 일을 '서커스'라 여기면서도 서커스를 보러 오기 주저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누가 곡예사이고 누가 관객일까요?


 <2> 똑같은 사람 삶인 곡예사 삶


 ..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겠는가? 곡예를 하다가 떨어져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진 그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처럼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있다 .. <54쪽>


 곡예사는 날마다 수없이 하늘을 납니다. 관객은 하늘을 나는 사람을 멀거니 구경합니다. 하늘은 누구나 날 수 있고, 하늘을 날며 느끼는 짜릿함이란 누구에게나 즐거울 텐데 우리들은 그저 구경만 합니다.

 곡예단 사람들 사진을 찍은 오진령 씨는 1998년부터 여섯 해 동안 곡예단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사진을 담았답니다. 어느 날 본 서커스 공연에 꼼짝도 못할 만한 감동을 받아 사로잡힌 그이는 서커스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싶었답니다. 여섯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 열흘씩 함께 지내며 살았답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던 오진령 씨였는데, 곡예사들과 함께 지내며 곡예사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이' 소박하고 자유롭고 진정 어린 삶을 살아가지만 순정하고 여린 탓에 생채기를 많이 받는 모습에 함께 가슴 아팠답니다.

 곡예사 가운데에는 자기과 같은 나이 동무가 있었답니다. <곡마단 사람들>에는 그 동무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어느 날 곡예사 동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88열차도 함께 탔다는데 그렇게 무서워하더랍니다. 줄 타는 곡예사인 그 동무가 말이죠.


 .. 줄 타는 곡예사가 고작 바이킹 따위에서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그 공포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 곡예사라고 해서, 줄을 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들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날마다
 그 큰 두려움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 <156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곡마단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알뜰히 담은 <곡마단 사람들> 머리말을 읽습니다. 오진령 씨는 우리들에게, 그러니까 서커스를 겉으로 구경만 하는 우리들에게 "서커스를 어린 시절의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 돌려 버리고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겁니다. 동춘서커스단에 있는 곡예사들은 "팔십 년 가까운 역사를 등에 지고서, 곡예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오늘도 사람들을 재미와 감동으로 울고 웃게 하면서 한 해 내내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 서커스를 바라보면 좋겠다고요.


 <3>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까


 곡마단 사람들은 열흘 걸려 공연할 천막을 세운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걷어 내릴 때에도 닷새 남짓 걸린답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형편이기에 제대로 연습할 짬이 없고 새로운 곡예를 갈고 닦을 짬이 없답니다. 한겨울 공연이 없을 때에는 노동판에 나간다는 그이들. 여느 때에 20~30미터 되는 곳도 너끈히 올라가던 사람들이라 건물을 높이 쌓는 노동판에서 인가가 '가장 좋답'니다. 인기 있고 돈 많이 버는 운동선수들은 한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은 살림돈을 벌고자 노동판에 갑니다.

 "곡예사로 꼭 성공해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이들이 곡마단에, 동춘서커스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 공연장 밖에서 손님을 맞는 원숭이들에게 사람들은 인사 치레인 양
 손가락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집어던지곤 한다. 그러나 정작 원숭이들
 은 사람들의 그런 무례한 행동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아량을 보인다.
 서커스와 동고 동락해 온 오랜 연륜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 <148쪽>


 는 이야기에서 보듯 곡마단과 함께 다니는 짐승들은 거의 놀림감입니다.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에게 '함께 공연하는 짐승'들은 둘도 없는 벗이요, 아낌없는 동무예요.

 책을 두어 번 되풀이해서 읽고 보다가 이제는 덮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난 뭐하러 <곡마단 사람들>이란 책을 사서 읽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곡마단 이야기를 뭐하러 보았는지, 보면서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를요.

 사회에서 푸대접받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가슴 아프게 읽었는지?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는지?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인지? 찬찬히 헤아려 보지만 뚜렷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곡마단 사람들이라 해서 어디 먼 별나라 사람도 아니고, 뚱딴지 같은 사람도 아니며,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만을 좇는 딴따라도 아닌 한편으로, 나와 똑같이, 우리와 똑같이 삶을 즐기는 이웃이라고 봅니다.

 오진령 씨에게 사진 찍힌 어느 곡예사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책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덧붙여 44~45쪽, 74~75쪽, 102~103쪽, 134~135쪽 사진은 두 쪽에 걸쳐 사진을 담았으나 사람 얼굴과 몸이 가운데에 접힌 채 잘려서 보기가 참 안 좋습니다. 사진을 많이 넣어서 엮는 책이라면 좀더 엮음새에 눈길을 두어야지 싶어요. 130쪽에 '대한 민국'이라고 띄어서 썼는데 '대한민국'이라고 붙이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커스 하면 불쌍한 놈들,
 몹쓸 놈들이라고 하지. 이런 데에 산다고 해서, 옷도 아무렇게
 나 입는다고 해서 불쌍한 건 아니야...... 그건 그렇고. 우리
 사진은 왜 찍어? 뭐에 쓰려구 그래? 서커스를 찍어간 사람이야
 많지. 그래도 내가 보기엔 제대로 찍은 사람은 드물어. 이왕
 찍는 거, 잘 좀 찍어 봐" ..  <158쪽>

***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곡마단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느끼고 보고 겪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낸 책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낮은 자리에 있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인 곡마단 사람들입니다. 그네들 삶과 목소리와 모습을 느끼며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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