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박영희 지음, 강제욱 외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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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2 ― 사라지는 사람은 수공업자가 아닌, ‘착한’ 사람들
 :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 책이름 :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 글 : 박영희
- 사진 : 조성기, 강제욱, 안성용, 안중훈, 정윤제, 장석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11.17.)
- 책값 : 11000원



 (1) 누구 맘대로 ‘사라지는 직업’이라 말하는가


 엊저녁 ㅁ방송국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방송으로 찍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네들은 헌책방을 다녀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추억으로 남겨지며 사라지는 헌책방인데 이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며 찾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찍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아직 찾아가 보지 않은 곳을 애써 찍으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리겠다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부딪혀 보면 깜냥껏 길찾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저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불쑥 연락을 해서 오늘내일 사이에 짬을 내어 도와 달라고 하지 마시고, 시중에 나와 있는 ‘헌책방을 말하는 책’도 있으니까, 그 책부터 먼저 사서 읽으신 다음, 가까이에 있는 헌책방을 몸소 찾아가 보시라고 말씀드린 다음 전화를 끊습니다.

 아직 하나도 모른다고 하는 헌책방을 찍는다는데, 저든 다른 누구든 옆에서 도와주면서 이곳저곳 찾아가서 찍는다고 할 때에는, 길잡이가 일러 주는 대로만 찍게 되지, 찍는 분들 스스로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헌책방을 담으려고 하는가를 엮어내기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좀 어설프게 되더라도, 손수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책 구경을 하고 다문 몇 권이나마 책을 사고, 또 산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헌책방에는 어떤 맛과 냄새가 스며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널리 세상을 보고 더 깊이 사람을 만나면서 몸으로 부대껴야지요. 지금은 헌책방 한 가지이지만, 앞으로 찍을 수많은 사람 삶과 발자취이니, 찍는 시간이 짧더라도 그 짧은 동안에도 확 뛰어들려는 매무새를 길러야지 싶습니다.


.. “누군가 제과점에 1억 원을 투자해 하루 50만 원어치의 빵을 팔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500만 원을 적금으로 붓기가 어렵다면, 저는 1000만 원을 투자해서 하루 5만 원어치의 빵을 팔고, 한 달 50만 원을 적금으로 붓는 쪽에 주사위를 던지겠습니다. 이 가게를 연 건 우리 빵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지 떼돈을 벌어 보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  (66쪽)


 이달에 나온 사진잡지 ㅍ을 보니, 여러 가지 사진잔치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진잔치 가운데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낯익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 동네 헌책방골목에 있는 〈집현전〉 헌책방 할머니가 당신 일터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내건 사진잔치 이름은 “사라져가는 직업들”. 사진잔치를 짤막히 알려주는 글을 보니, “1990년대부터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인 사업자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업종 중 진보하지 못한 업종들을 촬영한 사진을 통해 삶과 사회적 변화 혹은 소외받은 이들을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전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진잔치 대표작으로 앞세우는 ‘동네 헌책방 할머니’는, 사진작가께서 이야기하려는 두 가지 이야기감 가운데 어느 쪽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둘레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인 사업자’인지, ‘흔하게 볼 수 있으나, 스스로 발돋움하지 못해 사라지는 사업자’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이 찍은 헌책방 할머님한테도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잔치에 초대장을 보내주었을까 궁금합니다. 헌책방 할머님이 초대장을 받았다고 한다면,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으로 당신 얼굴이 맨앞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 더없이 궁금합니다.


.. “고부(5부)를 올라서야 기술자 소리를 듣는데 이때가 가장 지겨운 기라. 같은 기술자라도 장가든 놈부터 고부로 올려줬다 아이가. 지금 와 생각해 보니까네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처자식이 있는 놈부터 먼저 승진시켜야 세상 도리가 아니겄나?” ..  (84쪽)


 가만히 보면, 헌책방이라는 곳은 헌책방을 즐겨찾는 이들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아먹습니다. 배운 분들은 배운 분들대로 ‘헌책방 임자가 제값을 못 알아보고 싸구려로 넘겨주기를 바라는 소중하고 드문 책’을 눈밝히고 찾아내려고 애쓰기만 합니다. 적게 배운 분들은 적게 배운 분들대로 ‘헌책방하고 고물업이 뭐가 다르느냐’ 큰소리를 내며 ‘이깟 헌책 나부랭이 천 원 한 장이면 되지’ 하는 막말을 일삼습니다.

 그래도 헌책방이 이제까지 고이 버티면서 전국 곳곳에 점점이 뿌리내리면서 우리한테 고마운 책을 베풀어 올 수 있던 데에는, 얄궂은 책손은 꼭 있기 마련이지만, 얄궂지 않은 책손이 좀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눅은 값으로 팔아 주는 책 하나를 가벼운 주머니로도 넉넉히 장만하도록 해 주기에 고맙습니다. 다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서 내가 헌책방에서 도움을 얻었듯 다른 이도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 손길을 느끼기에 고맙습니다. 저는 저대로 낯 모르는 분한테 도움을 받고, 낯 모르는 분은 또 그분대로 제가 헌책방에 내놓는 책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지식을 담는 책입니다. 우리들은 책 하나 장만하여 읽으면서 한결 똑똑해지고 좀더 슬기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식을 다루는 슬기를 서려 놓은 책입니다. 우리들은 책 하나 장만하여 읽으면서 우리가 여태껏 얻거나 받은 지식을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나누면 좋은가를 깨닫고 느끼면서 새로워지곤 합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헌책은 새책 앞에서 기꺼이 고개를 숙입니다. 도서관 책 앞에서도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가 빳빳한 새책방과 도서관은 언제나처럼 코도 높고 키도 큽니다. 그렇지만 새책방에 오래오래 머물 수 있는 새책들이 아니라, 사랑을 못 받거나 덜 팔리면 어느새 사라집니다.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사라집니다. 도서관 책이라 하여 오래오래 책시렁에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조금 낡아지면, 대출실적이 없거나 적으면, 맞춤법이 옛것인 묵은 책이면 제자리를 비우고 다른 책이 들어서야 합니다.

 모든 상수도 물은 하수도 물이 있기에 흐를 수 있고, 모든 지하수는 땅으로 스미어 걸러지도록 하는 흙과 돌이 있어서 시원하면서 깨끗합니다. 비가 내리려면 말라서 하늘로 몽글몽글 올라가는 김이 있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거침없이 흐르자면, 골짜기까지 천천히 솟아나는 밑바닥 물이 있어야 합니다. 헌책방은 늘 아랫자리에서, 밑자리에서 소리도 없고 소문도 없이 이어왔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이라는 데를 ‘책을 읽으러’ 다녀 보지 못한 사람들 눈에는 예나 이제나 ‘사라져가는 곳’이나 ‘추억이 서린 곳’이나 ‘참고서 값싸게 사던 곳’이나 ‘포르노잡지를 몰래 훔쳐보던 곳’을 넘어설 만큼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헌책방이 우리한테 내어준 품을 안아 보지 못했고, 헌책방이 우리한테 베풀어 준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어요.


.. “미용실이 생겨날 때만 해도 다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남자 손님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남성전용 클럽은 느낌부터가 달랐어. 돈으로 밀어붙인다고 할까. 이 바닥은 이 바닥대로 쉬어 온 숨소리가 있는데 그 숨소리마저 돈으로 쓸어버릴 것 같았지.” ..  (114쪽)


 지난주에도 집에서 더는 안 보는 책이랑, 우리한테는 쓸모가 없으나 다른 이한테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책을 여러 꾸러미 헌책방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선물입니다” 하고 말씀드리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로서는 이 책들은 마음에 담아낸 줄거리로 넉넉하고, 읽는 동안 가슴이 뿌듯해졌기 때문에, 그 일로도 얼마든지 값을 다했습니다. 이 책들을 헌책방에 내놓으면서 몇 푼이나마 값을 받아도 나쁘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값을 안 받으면서 이 책들이 좀더 눅은 값으로 또다른 책손을 만나서 기쁘게 읽혀 주었으면 하고 꿈을 꿉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는 책쉼터가 되는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히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면서 우리 아이한테도, 또 우리 아이가 먼 뒷날 낳아 기를 아이한테도 언제나 가까이 찾아갈 수 있는 놀이터이자 책터이자 만남터이자 사람 부대끼는 삶터로 단단히 뿌리내려 주면 좋겠다고 비손을 올립니다.


.. 가만! 빠뜨린 게 하나 있다. 아침 7시 반, 출근을 너무 빨리하는 것 아니냐며 묻자 그는 출근하는 사람들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그 시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이 바람을 넣으러 가게에 들렀다가 문이 닫혀 있으면 얼마나 허탈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세 방 중 한 방 정도는 공짜로 ‘빵꾸’를 때워 주던 ‘섬산 자전거포’ 그 아저씨를 닮은 듯했다 ..  (174쪽)


 (2) 사라지는 사람은 ‘착한’ 사람들


 사진이 퍽 많이 실려서 현장 느낌을 살려 주는 듯한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한참, 이 책에서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 우리들이 보기에는 ‘사라져가는’ 무엇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라진다’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알맞지 않습니다. 이분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며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 묶여지는 분들은, ‘푸대접받는’ 분들입니다. ‘따돌림받는’ 분들입니다. 늘 푸대접받고 언제나 따돌림받지만, 그러면서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당신 한길을 걸어온 분들입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하건 말건 당신 스스로 보람을 느끼면서 울고 웃으면서 이어온 일입니다. 벌이가 많건 적건 스스로 기쁨을 맛보면서 집안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쳐 온 일입니다.


.. 제대와 함께 복직을 했을 때다. 제과제빵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파리바게뜨’의 출몰은 소규모 제과점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고, 그 여파는 제과점을 상대로 경영을 해 온 밀탑까지 쓰러뜨려 버렸다 ..  (54쪽)


 사라지게 된다면 사라지게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다면 사랑받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에 실린 사람들, 세공사와 제과제빵사와 선박 수리공과 이발사와 철구조물 제작사와 자전거 수리공 들은 왜 사라지게 되는 사람들, 사라지게 되는 수공업자일까요.

 이분들은 왜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밀려나거나 쫓겨나거나 내동댕이쳐지는 사람들, 수공업자가 될까요. 이분들 일은 어이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따뜻이 들여다보거나 따스히 감싸안는 일이 되지 못할까요.


.. “가위를 잡은 지는 오십 년째고, 이 가게에서 일한 지는 올해로 삼십칠 년째가 되는데, 손님 같지 않아.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 같아. 한 번 생각해 봐. 서른 중반부터 봐 온 얼굴들을 지금까지 봐 오고 있으니 이게 어디 주인과 손님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어. 계모임 하듯 한 달에 한 번은 보잖아.” ..  (118쪽)


 저로서는 어떤 학문이나 설문이나 통계나 자료조사로 이분들 삶을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과학 풀이에 따라서 파헤치고 논문을 쓰고픈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이분들하고 똑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고, 늘 부대끼며, 크고작은 일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자잘한 하루하루를 나누고 싶기만 합니다.

 쉰 해째 머리깎이 하면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처럼, 저는 스무 해 가까이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봅니다. 떠꺼머리 때부터 뵈어 온 아저씨가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할아버지가 되었고, 열일곱 푸름이로 학교옷을 입을 때부터 뵈어 온 아주머니가 어느새 손주를 보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여드름이 겨우 가실 무렵부터 보았던 헌책방 할아버지는 어느덧 애 아빠가 된 저를 술동무로 여겨 책 구경은 그만하고 술잔이나 같이 부딪히자며 팔뚝을 잡아끕니다. 스무 해 가까운 세월, 적잖은 헌책방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여러 헌책방 할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기나긴 햇수에 걸쳐서 읽고 보고 사고 되팔고 되내놓고 한 책도 많지만, 눈빛 마주치면서 말없이 이야기를 나누어 온 횟수 또한 많습니다.

 머리깎이 할아버지와 손님처럼, 헌책방 일꾼과 책손은 꾸준히 ‘계모임’을 합니다. 계모임을 할 때마다 당신들 삶이 달라지고 당신들이 낳아 기르는 아이들 삶도 함께 달라집니다. 계모임으로 어우러진 뒤 헤어지기까지는 고작 한 시간, 두 시간쯤일 텐데, 해가 갈수록 이 한두 시간이 기다려지고 바라게 되고 손꼽는 날이 됩니다.


..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의 손만 타면 검푸른 쇳덩이는 눈부시도록 광채를 발산하는 것이다. 내심 걱정이 되는 건 그의 눈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작업일수록 시력이 빨리 망가진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시력검사를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작업대에만 세 개의 형광등을 켜고 일하는 그는 요즘 들어 눈이 침침하다고만 했다 ..  (38쪽)


 사라지는 사람은 착한 사람들입니다. 잊혀지는 사람도 착한 사람들입니다. 밀려나는 사람 또한 착한 사람들입니다. 자취를 감추어 역사책이고 인문사회과학책 인용자료건 신문기사건 이름 석 자 적히지 못하는 사람 또한 착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도 착한 사람을 만나서 착함을 배우고자 자전거를 몰고 길을 나섭니다. 칭얼거리는 아기는 옆지기가 돌봐 주기로 하고. (4341.10.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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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산책 - 일상 속에서 건져낸 사진 이야기
한정식 지음 / 눈빛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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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동화 읽으며 자라니, 한국 사진을 못 찍어
 [잠깐 읽기 8] 한정식, 《사진 산책》 또는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 책이름 :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 글ㆍ사진 : 한정식
- 펴낸곳 : 열화당(1999.3.16.)

***
2007년 3월 20일, ‘눈빛’ 출판사에서 고침판을 새로 펴내 주었습니다. 여덟 해 만에 다시 나온 셈인데, 저로서는 새로 나온 판까지는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느껴서, 처음 나온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처음 책은 판이 끊어졌으며 1999년에 나왔음에도 책값이 1만 원이었는데, 새로 나온 판이 한결 보기에 나으며 2007년에 나왔는데에도 책값은 똑같이 1만 원입니다.



 (1) 사진이란 무엇인가


 둘레에서 곧잘 ‘도서관에서 사진강좌 안 하나요?’ 하고 묻곤 합니다. 저는 싱긋 웃으면서 ‘사진 강좌라고 뭐 있나요. 10분만 이야기하면 사진 강좌는 끝인데, 그런 걸 어떻게 해요?’ 하고 대꾸해 줍니다. 짧으면 5분에 끝나고, 길어도 30분을 넘어갈 수 없는 ‘사진 강좌’입니다.

 몇 번 사진 강좌랍시고 들어 볼 때마다, 참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사진 ‘강의’라면 다릅니다. 사진 ‘교육’이 될 때에도 다릅니다. 이때에는 지루할 수 없습니다. 말이야 다 같거나 비슷한 말일 텐데, 이 말을 쓰는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자리가 모두 다르니, ‘사진 강좌­’라 한다면 참 꺼려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은 사진 ‘교육이나 강의’는 바라지 않고, 사진 ‘강좌’만을 바랍니다.


.. 모르는 이들은 기념사진이 ‘작품사진’ 바깥쪽에 따로 선 막대기인 줄로만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념사진이라고 해서 작품사진일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작품사진’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꿈이 담긴 영롱한 사진이 작품이 아니라면 무엇이 ‘작품’일까 ..  (꿈을 찍는…/31쪽)


 2005년이었지 싶은데, 그때 한 번 자원봉사로 사진 ‘강좌’를 해 본 적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회원들한테 ‘국립공원에서 사진 찍기’를 들려주고 함께 국립공원 나들이를 하며 사진을 찍는데, 5분쯤 지나니 할 말이 없더군요. 사진기 기능이 이렇고 저렇고, 노출이 이렇고 저렇고, 초점이 이렇고 저렇고, 틀이 이렇고 저렇고, 사진 찍는 매무새가 어떻고 저떻고 …… 하는 이야기는 금세 끝납니다. 필름으로 찍어서 손수 인화 현상을 한다면 좀더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모두들 디지털사진기를 들고 국립공원을 오르내리면서 이곳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허튼 짓을 하는 사람을 잡거나, 잘못된 시설을 바로잡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분들한테 가르쳐 줄 ‘강좌 지식’은 그야말로 한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줌조차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함께 산을 타고 숲길을 지나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때때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서 쉬면서 가만히 둘레를 돌아보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눈에 곱고 살갑게 다가오는 모습’이 있을 테니, 그 모습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담아내어 보시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보다 사진을 좀더 많이 찍기는 했습니다만, 제 사진이 그분들보다 한결 보기좋거나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찍은 곳이 헌책방이거나 골목길이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 터이나, 국립공원을 저보다 훨씬 자주 구석구석 누벼 보신 분들이 국립공원에서 담는 사진은 제 눈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넌지시 여쭈었지요. ‘모두들 사진 잘 찍으시는데, 사진 강좌라고 따로 없어도 되잖아요?’ ‘그래도, 한 번도 그런 강좌를 들어 보지 못해서, 우리가 잘 찍나 못 찍나를 알 수 없으니까요.’ ‘강좌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더 잘 찍지 않아요. 오히려 강좌를 많이 받는 분들은, 강좌를 이끄는 사람이 바라보는 틀거리대로 따라가거나 멋부리는 흉내를 내면서 고유한 자기 틀거리를 잃어버리게 돼요. 여러분들은 모두들 고유한 자기 틀거리와 눈을 잃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훌륭하게 잘 찍으시잖아요.’


.. 하지만, 아이들 사진이 밝아야 한다는 까닭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밝은 사진을 뽑는 것이 소위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예술 작품 선정기준이 될 수도 없거니와, 더구나, 아이들이라고 언제나 밝을 수도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는 법인 것을 ..  (슬픈 어린이/82쪽)


 돌이켜보면, 제가 찍는 사진감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어 온 분이 있었다면, 얼결에 그이 사진 틀거리를 흉내내거나 베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제 나름대로 제 눈길을 틔울 수 있겠지만, 좀처럼 못 벗어났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둘째 사진감인 ‘골목길’은 찍는 분이 꽤 많으나, 골목길 사진 찍는 분들은 한결같이 ‘골목 바깥 사람’으로서 구경하는 사진밖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웃는 골목사람’이나 ‘꾀죄죄한 뒷골목’ 풍경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습니다. 오히려 골목길 사진은 많은 이들이 찍어도 그 어느 작가들 사진에도 영향을 안 받고 있습니다.

 셋째 사진감인 ‘자전거’는 찍는 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모임 분들 사진은 놀러다니는 사진이나 술마시는 사진이나 그저 싱싱 달리는 사진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또는 멋스럽게 찍으려는 사진. 생활자전거를 찍는 분이나,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나는 모습을 담아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사진감 세 가지를 알뜰하게 담아낸다 싶은 분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홀로 부지런히 제 사진 틀거리를 갈고닦는구나 싶습니다. 배울 사람이 없으니 처음부터 어디 학교나 강좌에 나갈 꿈도 꾸지 않았고, 혼자서 이 책 저 책 들추고, 몸을 움직여 온 하루를 길에서 보내고 사람을 만나면서 사진눈을 추스를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 제 사진, 제 가족사진, 적어도 저와 가까운 사람의 사진일 때에 사진을 보는 흥미는 배가된다. 반대로, 나와 관계가 멀수록 그 사진을 보는 흥미는 또 반감하고. 그래서, 노출이 부족하고, 핀트가 덜 맞았어도 내 아들, 내 손녀의 사진은 볼 때마다 미소가 떠오르고,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남의 사진이면 그저 두어 장 보고 나면 하품이 난다 … 사람 속에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사진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땅 위에서 땅에 속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사진은 가장 커다란 매력을 발산한다 … 그리하여, 우리 선배들은 한때 사진이 예술이 아님을 소리 높이 외쳤다. 사진은 예술 이상이라는 자부심이 거기 있었다. 사진의 예술성을 앞장서서 주장한 사람들은 오히려 아마추어들이었다 ..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90∼91쪽)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무엇을 하는 일인가. 사진은 놀이에 가깝나, 일에 가깝나. 사진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사진을 하는 내 삶은 어떠한가. 사진에 담는 마음이나 얼이나 느낌은 무엇인가. …… 사진을 찍으면서 늘 헤아려 보는 몇 가지 물음입니다.

 아직 이 물음에 마땅히 풀이말을 내놓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섣불리 풀이말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인 한편, 풀이말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늘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스스로 풀이말을 찾아가야 하는 물음이 아니랴 싶어요. 차근차근 제 길을 걷고, 하나둘 느끼는 대로 곰삭이면서, 서두르지 않되 게으르지 않도록 매무새를 추스른다면, 어느 날 문득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는 물음이라고도 느낍니다.


 (2) 문화란 무엇인가


.. 차례나 제사를 모실 때 지방은 가로체 한글로 한동안 썼다. 한글로 모시려니까 ‘현고(顯考)’ ‘현조비(顯祖妃)’ 등이 안 어울리어 그냥 ‘아버님’ 또는 ‘할머님’ 등으로 고쳐 썼다. 거기에, 축문도 우리 말로 고쳐 놓았다. “유세차(維歲次) … 휘일부림(諱日復臨)…” 어쩌고 해서 알아들을 후손들 거의 없고, 그것을 그대로 한글로 써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겠기에,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우리 말로 고쳐쓰기로 한 것이다 ..  (지방 대신 사진으로/26쪽)


 ‘사진 예술’이라는 말이 쓰이고 ‘사진 문화’라는 말이 쓰입니다. 그렇지만 ‘사진 생활’이라는 말은 그리 쓰이지 않습니다. ‘예술 사진’이라는 말이 쓰이고 ‘상업 사진’이라는 말이 쓰이며 ‘다큐 사진’이라는 말은 쓰이지만, ‘생활 사진’이라는 말은 좀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감을 얻어내어 담는 ‘생활 사진’은 ‘다큐 사진’이 되기도 하고 ‘기록 사진’이 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예술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거꾸로 ‘예술 사진’이나 ‘기록’이나 ‘다큐’가 될 수 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또 ‘예술 사진’이 ‘생활 사진’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넓혀서 살피면, 그림이나 글도, 연극이나 영화도, 체육이나 과학도, 예술이나 상업이나 다큐라는 테두리에서는 움직이지만, ‘생활’이라는 자리로는, 자기 삶이든 이웃 삶이든 우리 모두가 어울리는 삶이든, 삶자리로 다가오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쓰는 말부터 어렵습니다. 전문 갈래이니 전문 낱말을 쓴다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전문 갈래라고 해서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말로만 주고받는 일이 옳거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퍽 자주, 배부른 이야기가 많아서 꺼리게 됩니다. 배고픈 사람들 이야기, 배고파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못 본 체하는 이야기, 배고픈 삶이란 무엇인가를 도무지 모르는 이야기, 한 마디로 배고픔을 겪거나 부때기거나 찾아보지 않는 배부른 이들 잔치라고만 느껴지곤 합니다.


.. 내가 서 있는 땅을 내려다본다. 내가 지금 편안한 것은 땅 위에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나라, 내 땅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 보물이 경주 부근에만 묻혀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나라 어디를 가든 그것은 역사의 땅이요, 유적지이다. 고고학적 가치는 깨어진 기왓장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덩이 자체가 우리의 골동품이요, 유물인 것이다 ..  (사라지는 땅/44∼45쪽)


 살아 있을 때에는 대접 한 번 받지 못하다가, 죽고 난 뒤에야 대접을 받는 수많은 그림쟁이, 글쟁이를 떠올려 봅니다. 사진쟁이는 죽고 난 뒤에도 대접을 거의 못 받고 있는데, 훌륭한 노래를 남긴 분들 가운데에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난과 굶주림과 외로움에 허덕이다가 쓸쓸하게 떠난 분이 무척 많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박물관에 모셔지고 민속마을이 만들어지고 하면서 ‘옛 서민이 쓰던 물건과 살던 집’이 소중한 문화재라며 떠받들리고 있는데, 용인 민속마을 같은 데에서 되살린 옛 서민 살림살이가, 제주민속박물관에서 되살린 지난날 서민 발자취가, 고작 쉰 해나 백 해 앞선 때 우리 모습이었음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스스로도 내동댕이치지만, 나라에서도 업신여기고 틈나는 대로 까부수며 쫓아낸 서민 삶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서민 삶이 뒷날 ‘좋은 유물’로 떠받들림을 받습니다. 오늘날, 서민 삶은 ‘새마을-신도시-뉴타운’이라는 새 이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쫓겨나고 내몰리고 버려지고 죽어 쓰러집니다. 2008년 이날 이곳에서는 푸대접하는 서민 삶인데, 2058년쯤 되면, 아니 2028년쯤만 되어도, 2008년까지 살아남은 서민 삶터를 ‘근현대 골목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린다면서 수천억 원을 쏟아부어 박물관이니 문화마을이니 뭐니 하고 꾸며 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사는 인천 동구에도, ‘송림동 달동네’를 법을 앞세워 싹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운 옆으로, ‘달동네 박물관’을 적잖은 돈을 들여서 되살려 놓았습니다. 이 ‘달동네 박물관’에는 날마다 수백 사람이 찾아와서 ‘좋은 구경하고 간다’고들 이야기합니다.


 (3) 삶이란 무엇인가


.. 옳은 말씀이시다. 내가 부처임을 깨달으면 그 순간부터 나는 부처다운 생각을 하고, 부처다운 말씀을 하고, 부처다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우리가 찍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지, 나무나 바위가 아니다. 우리가 찍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우러르는 것은 부처님이지 부처님의 형상을 한 쇳덩이나 나무토막이 아니듯이 ..  (삼존불/114∼115쪽)


 예술이 되는 글도 쓸 수 있고 예술이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예술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돈이 되는 글도 쓸 수 있고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돈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번듯해 보이는 글을 쓰며 이름을 날릴 수 있고 번듯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며 이름을 높일 수 있으며 번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으며 이름 석 자 떵떵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도 돈도 이름값도 안 되는 글과 그림과 사진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 삶을 담아내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 이웃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에 담을 수 있습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어우러진 삶터를 사진에 새겨 놓을 수 있습니다.

 나라이름은 한국이지만, 한국이라는 고유함보다는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며 어중간함’으로 재개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한국에서 글을 쓴다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한겨레라 하지만, 한겨레라는 어깨동무를 하지 못하고 북녘하고도 사이가 틀어지고 중국조선족이나 재일조선인 권리를 북돋우지 않는 이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리란 어디에 있을까요. 말은 한국말이지만 한자공동체라는 허울에다가 세계화라는 겉치레에 따라서 제 얼과 넋을 키우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무슨 눈길과 생각을 사진에 담아낼까요.


.. 나는 분명 외국에 와 있었다. 그것도 우리와 인종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유럽에 생전 처음 온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반가움을 느낀 것일까. 무언가 생전에 살던 동네라도 다시 와 본 듯한 착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려서 읽고 자란 통화의 탓이었다. 나만 해도, 안데르센이며 그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인어공주나 백조왕자를 꿈꾸고, 알리바바나 백설공주가 콩쥐나 팥쥐보다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라인강변의 옛 성이 낯익어 뵈었던 것도, 그 성을 보면서 잠자는 공주를 연상하게 된 것도 모두 그 옛날에 읽으며 자랐던 서양 동화와 그 삽화가 끼친 기다란 그림자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옛날얘기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 문득, 내 사진이 돌이켜졌다. 내 사진은 과연 내 것일까. 우리 냄새가 나는 그런 것일까 돌이켜졌다. 우리는 서양식 사고방식, 서양식 감정, 서양식 문화에 너무 진하게 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찍었다고 그대로 우리 사진일 수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서양 동화보다 우리 전래 동화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 왔더라면 내 사진에서도 우리 냄새가 자연스럽게 풍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유럽 여행/166∼167쪽)


 한정식 님은 대학교수 정년퇴임을 앞둔 1999년,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사진산문을 묶어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짜임새를 고치고 책이름을 바꾸어 《사진 산책》을 다시 내놓습니다.

 바뀐 책이름만 놓고 보아도, 한정식 님이 사진을 자기 삶에서 놓지 않고 붙잡는 매무새를 느끼게 됩니다. ‘시간’이니 ‘아름다움’이니 ‘풍경’이니 하는 말을 모두 놓아 버리고 ‘산책’으로 바꾸어 놓은 말마디를 곱씹어 봅니다. 앞으로 세월이 열 해쯤 더 지난 뒤에 이 《사진 산책》을 거듭 찍어내게 될 때, 또는 두 번째 ‘사진 산책’을 나서게 될 때에는 다른 말로 이름을 붙이며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341.7.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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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6
조나단 콕스 글.사진, 김문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진찍기란
 [잠깐 읽기 4] 조나단 콕스,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 책이름 :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 글ㆍ사진 : 조나단 콕스
- 옮긴이 : 김문호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8.4.15.)
- 책값 : 17000원



 (1)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사진


.. 이제 문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다 ..  (14쪽)


 몇 해 앞서,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아서 찍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제는 내가 굳이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헌책방 사진찍기’는 잠깐 반짝하고는 수그러들었습니다. 헌책방에 와서 책은 안 보고 사진만 찍던 그 많던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조용히 책을 즐기는 사람만 헌책방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헌책방 사진찍기’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듯, 어디에서나 사진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부터 늘 사진기를 어깨에 걸쳐메고 다니기는 합니다만, 길을 걸어가는 데에도 사진기를 들이대고 전철에 서서 책을 읽는 데에도 사진기 불꽃을 터뜨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 젊은이들이 자기 사진기에 담는 이 엄청난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할까?’ 궁금했습니다. 제 차림새가 뭔가 도드라져 보여서 사진세례를 받는가 싶기도 했으나, 사진이란 ‘어딘가 눈에 뜨이는 모습을 담는 일’이 아닌데, 이 젊은이들은 기계는 대단히 좋은 녀석을 장만하면서도, 정작 이 기계를 왜 다루고 어떻게 다루고 언제 다루어야 하는가는 까막눈이구나 싶었습니다.


.. 나는 피사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미지가 실물 크기의 몇 배로 나타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피사체를 가장 좋은 빛에서 포착하려 하고, 적정한 노출과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얻고자 할 뿐이다 … 나는 얼마나 고배율의 이미지를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 접사사진을 촬영하려면 먼저 당신이 사용하는 장비에 통달하고, 뛰어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 장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  (18쪽)


 요즈음도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는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납니다. 사진 모임도 제법 많고, 공원이나 옛 궁궐에 ‘출사’ 나가는 사람도 많으며, 골목길 모습을 찍는다며 출사를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는 분들이 출사를 다녀왔다고 이야기를 건네면, 그분 인터넷방이나 블로그를 찾아가보고 무슨 사진을 어떻게 찍었나 들여다보곤 합니다.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참 부지런히 많이도 찍던데, 정작 올려놓는 사진은 몇 장 안 되기도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이이는 뭘 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 찍기 좋다는 곳’에 가서 무얼 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출사는 핑계고, 그냥 술 마시는 모임을 한 셈인지? 출사랍시고 모여서 빈둥빈둥 수다만 떨지는 않았는지? 출사를 했으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사진을 헤아려 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텐데, 당구장에서 공치기 놀이나 하고 있지는 않으셨는지?


..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촬영하는 사진이 카메라를 망가뜨려도 좋을 만큼 대단한 사진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두라! ..  (43쪽)


 곰곰이 헤아리면, 사진 모임에 나가고 출사에도 나가는 분들이 늘 보아 온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은, ‘퍽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멋지구나 싶은 모습’이곤 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스스로 자기 삶을 알뜰히 담고, 사진에 찍힌 사람 삶이 사뿐히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있다고 하는 모습’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을까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읽었어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는 못 읽었으니, 《태백산맥》은 읽었어도 《광주 전남 현대사》는 모르고 있으니, 《외딴 방》은 읽었어도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건드려 보지도 않으니, 어찌할 길 없는 노릇일까요.

 신락균을 알든, 임응식을 모르든, 강운구를 읊든, 한정식을 따르든, 최민식 이름 석 자를 되뇌이든, 김기찬 이름 석 자를 새기든, 육명심 강의를 들었든, 이명동 말고 저 명동도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든, 먼저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들이고 품을 들여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고 되새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림 좋은 사진을 바라든 뜻이 있는 사진을 바라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 찍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가슴에 새기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내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눌러대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뒤돌아보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2) 사진기를 들기 앞서 생각하기


.. 빛을 연구하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피사체의 모습이 빛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해 보라 ..  (62쪽)


 훌륭한 사진쟁이든 훌륭하지 않은 사진쟁이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담을 대상하고 가까워진 다음에 사진기를 들자. 그렇게 해도 늦지 않다’고. 백두산에 오른 기쁨과 벅참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서 여기저기 막 찍는다고 하여, 내 가슴으로 다가온 기쁨과 벅참이 사진에 담기지 않습니다. 모르지요. 헐레벌떡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헐레벌떡 사진이 가장 뜻있는지도.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대충대충 사진이 가장 재미있는지도.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그냥저냥 사진이 가장 값진지도. 겉치레와 겉멋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겉치레 사진이나 겉멋 들린 사진이 가장 알맞는지도.


.. 카메라가 내 팔의 연장이라고 느껴질 때면 시간을 벗어난 것 같은 초월의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의 일부가 된다 … 사진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볼 때 현실을 떠나 다른 장소로 가는 느낌을 주고 싶어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가가 사진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기에 그들의 창조적인 측면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 렌즈의 선택을 제한하면 피사체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  (85∼86쪽)


 제 사진감인 ‘헌책방’과 ‘골목길’, 여기에 ‘자전거’까지 해서 사진에 담을 때마다 늘 혼자말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모습을 담을지가 머리에 떠오르거나 마음에서 샘솟기 앞서까지는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한쪽 어깨에 언제나 사진기가 걸려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찍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면 섣불리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사진기 구멍으로 ‘찍을 대상’을 요모조모 살피지 말고, 두 눈으로 먼저, ‘찍을 대상’을 살피자고.

 그러고 나서, 내가 꼭 찍어야 하는지, 나 아니면 찍을 사람이 없는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찍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합니다.

 돈 떨어질 걱정이 없는 디지털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저장장치에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는 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으면 어차피 다 지워야 합니다. 게다가, 쓰레기 사진을 치우느라 소중한 시간이 빼앗깁니다. 엉뚱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시간이 버려지고, 엉뚱한 사진을 지우느라 또 시간이 버려집니다. 또한, 엉뚱한 사진을 찍는다고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정작 제가 즐겨야 할 헌책방이나 골목길이나 자전거하고 함께하는 시간마저 줄어들어요.


..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보는 방법’을 배우고, 환경적 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 접사 이미지를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임을 나는 거듭 깨닫고 있다. 또, 피사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잘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거듭 놀란다. 사실 피사체가 자리를 뜨기 전에 내가 먼저 뜨는 경우가 더 많다 ..  (91,108쪽)


 사진을 찍어서 한 가지 모습을 종이나 파일로 남긴 뒤부터는,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부대끼던 삶터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모습이, 오늘 다르고 어제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지겠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 누구나 보는 모습이 아닌, 내 나름대로 뜻과 값을 두면서 바라보는 모습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사진 한 장에 이야기 한 자락이 생기고, 사진 두 장에 삶 한 자락이 새겨집니다. 사진 석 장에 눈물 한 방울 담기고, 사진 넉 장에 웃음 소담스레 묻어납니다.

 찍고 나서 두 번 거듭 보고, 찍었기 때문에 세 번 다시 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찍은 뒤에 다시 찾아오고 또 찾아갈 곳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찍은 그날부터 사랑하게 되거나 애틋하게 바라보는 무엇인가를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알아갑니다.


 (3)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가까이 찍기’를 말하는 ‘접사’는 제 사진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나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바꿉니다. 사진은 모두 똑같은 사진이구나. 다만, 모두 똑같은 사진을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을 뿐이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모두 똑같은 사진이라고 말할 수 없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으니, 다른 사람들 사진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 사진책을 장만하면서 즐기는 맛이 있구나.


.. 하루가 끝나고 유리상자 안에 갇혀 죽어 있는 수집물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피사체를 관찰하는 일은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  (7쪽)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쓴 조나단 콕스 님은 말합니다. 디지털파일을 RAW파일로 남겨 놓으라고. “JPEG포맷이 아닌 RAW 포맷을 사용하면 디지털 메모리 용량을 더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할 수 있는 이미지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촬영속도는 느리게 하고 촬영 이미지 수는 줄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메모리 저장 공간을 아끼기 위해서 좋은 피사체들을 보고도 충분히 촬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139쪽)”라고 말합니다.

 저는 어떤 파일로 사진을 남겨 두고 있었나 살펴봅니다. JPEG로 남기고 있었군요. 그랬나? RAW 파일로 형식을 바꿉니다. 그랬더니, 저장 장치에 담을 수 있는 사진 장수가 1/3로 줄어듭니다. 헉! RAW 파일은 원본파일이고, 이 원본파일을 쓸 수 있도록 줄이거나 만지려면 새 프로그램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헉헉!! 시험 삼아 RAW 파일로 사진을 담은 뒤 새 프로그램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애써 찍은 사진 1/2을 날렸습니다. 헉헉헉!!!

 파일 형식을 바꾸고 나서 보니, 예전 JPEG 형식이었을 때보다 빛느낌이 한결 살아납니다. 그렇구나. 이러한 파일 형식을 쓰는 까닭이 있었구나. 그러나 예전에 찍은 사진은 그 사진들대로 좋습니다. 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비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제가 담아야 할 사진감을 제 깜냥껏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가운데 담아낸 사진이었다고 한다면, 좀더 나은 파일 형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쁘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는 한결 나은 파일 형식으로 쓰면 되고, 또, 여태껏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지나쳤던 대목을 다시금 찬찬히 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한 자리에 머무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고여 있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용두질하며 즐기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 이미지를 보는 사람과 당신의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사체의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것이다. 거북이나 두꺼비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피사체의 시점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을 보는 사람은 피사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까지도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  (110쪽)


 사진책 오천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알아보는 눈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 만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찍는 손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몇 권 읽었느냐는 껍데기입니다. 예전에 읽은 권수가 아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읽는 책을 덮은 다음, 새로운 책을 읽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멋들어진 작품 하나 빚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멋들어진 작품은 일찌감치 이루어 놓은 하나로 그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를 처음으로 삼아 두 번째를 이루고 세 번째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열 며칠 동안 책상맡에 놓고 있던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마무르고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곧 책방 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4341.5.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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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전민조 사진집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사진 : 전민조
- 펴낸곳 : 눈빛(2007.10.6.)
- 책값 : 2만 원







 이 책 하나 26 ― ‘기다림’으로 담아낸 한국사람 ‘얼굴 사진’
 : 전민조 사진,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1〉 우리 동네 사람들


 아침에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라는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펼친 책에는, “의사는 병 치료에 많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력이 강한 농작물을 키우는 흙 만들기나 건강한 사람이 자라기 위하여 뱃속 밭 관리방법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69쪽)”라는 이야기가 보여서 밑줄을 긋습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서 아픈 이를 다스립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무엇무엇은 먹으면 안 되고 무엇무엇을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이 먹으면 좋을 무엇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아픈 사람들이 안 먹어야 할 무엇무엇은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 인부, 시청앞, 서울, 1972.4.19.


 어젯밤,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과 우유 한 통과 라면 두 봉지를 삽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척척 물건셈을 해냅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으려 하십니다.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아, 비닐봉지에 안 담으셔도 돼요.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가면 돼요.” “다 들어갈까?” “그럼요, 안 들어가면 안고 가면 되고요.”


― 해군 장교, 해군 대구함, 경남 진해, 1971.10.7.


 지난 토요일부터 날마다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셋이 어울려서 이곳으로 옵니다. 아이들 사는 집은 도원역 뒤쪽 숭의동.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신다고 합니다. 동네에 함께 뛰어놀 또래 동무가 드뭅니다. 여태까지는 셋이서 어떻게 지내 왔을는지. 도서관 전기세 고지서를 살짝 넘겨다보더니, “우와, 어떻게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와요? 우리 집에는 삼만 원도 넘게 나오는데.” “우리 집은 오만 원.” “우리 집은 칠만 원.” “우리들(도서관에서는)은 세탁기도 안 쓰고 냉장고도 안 쓰고 텔레비전도 안 써서 그래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두 대인데.” “우리 집은 세 대.”


― 농부, 전북 남원군 대산면 풍촌리, 1982.7.14.


 저녁나절 찾아오는 동네 동무가 있으면, 가끔 도원역 맞은편 2층에 자리한 닭집에 놀러갑니다. 예전에 피시방을 하던 자리에 들어오셨는데, 피시방 시설을 거의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부엌일을, 아저씨는 배달일을 합니다. 배달은 늘 밀립니다. 배달이 밀리는 까닭은 하나. 아저씨가 길눈이 많이 어두워, 한 번 배달을 나갔다 하면 소식이 영……. 그래도 주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늦쟁이 닭집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맛있게 즐깁니다.


― 농촌운동가, 서경원, 전남 함평, 1986.6.13.


 한때 은퇴를 했다가 올여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신 헌책방 할아버지 한 분 나이는 일흔아홉. 곧 여든입니다. 할아버지는 해방 또는 한국전쟁 즈음부터 헌책을 만져 오셨지 싶습니다. 당신 지난날을 아직 여쭙지 않고 책 구경만 했는데, 다음에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도 여쭐까 합니다. 이웃한 헌책방 할아버지는 일흔일곱. 두 분은 일을 마칠 저녁나절이면 소주잔을 부딪히며 지나온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해주에서 나고 자란 일흔일곱 헌책방 할아버지는 당신 옛 고향을 아직도 또렷하게 떠올리면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 귀순자, 이웅평, 광화문, 서울, 1983.4.10.


 헌책방 할아버지와 견주면 앳된 아가씨였던 ㅇ서점 아주머니도 스물을 얼마 안 넘긴 나이부터 헌책을 만졌습니다. 그때는 앳된 아가씨였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벌써 예순 할머니 나이가 됩니다. 배다리 골목집을 뚫으려는 산업도로 막는 일을 하랴, 책방 살림 돌보랴,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삶이 바로 고운 문화예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랴, 하루 한때도 몸 가붓이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가슴을 봐야지요. 가슴이 살아 있는지 봐야지요.” 하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우리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좋은 이웃.


― 전경, 신민당 개헌대회, 전주, 1986.6.1.


 조금 앞서 무슨 검사실이라면서 전화가 옵니다. 말끝에 ‘-요’를 붙이기는 하지만, 저기 높디높은 하늘 끝자락에서 낮디낮은 땅 밑바닥을 내리깔면서 읊어대는 목소리입니다. ㅈ일보 기자가 저를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는데, 그 건 때문에 출석을 해야겠다는 연락입니다. 히유, 이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좋지만, 어쩌고저쩌고를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사람을 깔보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면서, 이 아저씨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어떤 밥을 먹고,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으며, 자기 밥상에 차려진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는가 궁금해집니다.


― 법조인, 이회창, 이마빌딩, 서울 종로구, 1996.4.13.


 ㅅ시장에 순대집이 있습니다. 저잣거리마다 한두 군데쯤은 꼭 있는데, 꽤 괜찮구나 싶어서 틈틈이 찾아가는데, 엊그제는 이곳에서 순대국을 한 번 먹어 보았습니다. 순대는 괜찮았으나 순대국은 으으으. 다른 집 순대국보다는 덜 맵고 짰지만(위에 얹은 고추장범벅을 많이 덜어내기도 했으나), 혀와 위에 몹시 자극이 되어 탈이 나는 바람에, 저녁나절 물똥을 누느라 똥구멍이 지지리도 아픕디다. 집에서 우리끼리 해 먹을 때는 혀며 위며 자극이 하나도 안 되는 부드러운 국이나 찌개를 즐기지만,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국이나 찌개는 도무지 손을 못 대겠어요. 두렵습니다.


― 수녀, 복선수녀, 샤미나드의 집, 인천 부평구, 2007.7.8.


 서울에서 지낼 때 찾아가던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는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았습니다. 손님 뜸하거나 가게문 닫을 즈음 찾아가면, 혼자 소주 한 잔 드시다가, ‘어, 잘 왔어요!’ 하면서 옆 구멍가게에서 삶은달걀 하나 사 와서 건네면서 ‘한 잔 받으셔요’ 하고 내밀어 주십니다. 자전거집 아저씨는 당신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자전거 연장과 새 연장이 함께 있었는데, “같은 연장인데도 옛날 게 더 쓰기 좋고 잘 들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뒤 찾아가는 이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도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 “오늘은 내가 손질해 주지만,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집에서 혼자 해 보세요.”


― 정육점 주인, 김영기, 서울 금천구 독산동, 2006.2.11.


 배다리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과일장수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틈틈이 이곳에서 능금이며 배며 땅감이며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떨이라며 한 바구니에 2000원에 내놓은 능금을 살 때 보니까, 젊은 일꾼이 곯은 능금 몇 알을 슬그머니 끼워넣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맨들맨들 좋아 보이지만, 속에는 곯은 능금을 숨겨 놓다니! 어차피 이 능금을 사 가는 사람이 집에 가면 뻔히 볼 텐데, 이렇게 눈가림을 하면 그 집에 다시 찾아가고 싶을까나.


― 청소부, 정진석, 남구로역 앞, 서울, 2006.2.18.


 동네에서 옷집을 꾸려 온 ㅂ아주머니는 몸이 아파서 일을 오래도록 쉬었습니다. 거의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살아난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아, 머리카락이 곱슬이 되고 몸 이곳저곳 많이 달라졌다는데, 그래도 새 목숨을 얻은 듯이 즐겁다며, 한동안 놓고 있던 옷짓기를 다시 하고픈 꿈을 꾸십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부르시더니, “우리 집에 나팔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아침에 한 번 놀러오세요. 저기 개코막걸리 옆집 알지요? 문 똑똑 두드리면 되니까, 와서 꽃도 구경하고 차도 한 잔 해요.” 하고 말씀합니다.


― 위안부 출신 할머니, 길원옥, 주한일본대사관 앞, 서울, 2007.8.29.


 지난 일요일, 사진찍는 전민조 님이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전민조 님은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기 한 대 들고 도원역 뒤편, 숭의동 달동네를 천천히 거닙니다. 빛빛이 고운 담벽과 빨래와 길에 내놓아 앉는 걸상 들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그러다가 감 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미안하니까 “감 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쭈그렁 늙은이는 안 찍었지? 찍지 마.” 하면서 웃던 아주머니는(할머니였다고 할까. 손주를 보셨을 테니), 당신들이 따던 감을 몇 알 나누어 주십니다.

 











 〈2〉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사진책 《한국인의 초상》을 가만히 넘기며,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일는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웃한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 헤아립니다. 저도 이 동네 분들한테는 살가운 이웃으로 느껴질는지, 그냥 머리 길고 고무신 꿰는 젊은 양반으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만, 지난주 성당 나들이를 하던 날(입교자 신고), 수녀님이 손을 내밀며 “골목길 다니며 사진 많이 찍으시더니, 드디어 우리 성당에도 찾아오셨네. 반가워요.” 하고 활짝 웃으십니다. 언제 제 모습을 지켜보셨는지, 또 그 모습을 잊지 않고 계시는지. “내 이름은 예쁜데 내 얼굴은 못생겼다고들 해요. 하지만 이름은 예쁘니까 잘 기억해 주세요.” 하고 당신을 소개하는 수녀님은 얼굴 주름으로 미루어보건데, 예순은 훌쩍 넘은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글서글하며 시원시원한 이 수녀님을 보고 누가 ‘못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네 마실을 하면서 수녀님을 볼 때마다 느끼건데, 이분 가슴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예쁜 이름이 그냥 예쁜 이름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텐데.


.. 대상 인물이 자기 안에서 소화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  〈추천글 - 한정식〉


 수녀님은 저 같은 사람들이 성당 문을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셨을까요. ‘이곳에 오면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많이 얻을 수 있으니 어서 와요’ 하고 잡아당기지 않고, 지긋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들이 손수 찾아가면,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웃으면서 맞아들이실까요.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기다림이란, 지켜봄하고 한 동아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켜봄이란 언제나 곁에 있는 일, 곁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고 감싸거나 보듬거나 돌보는 일, 마음으로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애틋하게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일하고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나이를 먹었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진 찍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진을 찍고 있다가 문득, 문학ㆍ그림ㆍ음악ㆍ연극 등과 사진을 사회적 성과물로 비교해 봤을 때, 사진이 세상을 이미지와 콘텐츠로서 한 그릇에 담는 데에 무엇인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사진을 화랑 벽에 걸기 위한 아름다운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았는가 ..  〈책 뒤에 - 전민조〉


 길을 걷다가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살며시 옆으로 돌아가서 걷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걷는이를 만나면 딸랑이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빠르기를 늦추었다가 옆으로 비껴가기. 자가용을 몰고 골목길을 가다가 사람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빠르기를 늦추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 하기.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 타기. 내가 읽었던 좋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해 주기. 집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삶거나 무치거나 마련한 먹을거리를 옆집에 찾아가서 맛보라고 한 접시 내밀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학교 시험성적이 높거나 낮거나, 고등학교만 마쳤거나 대학교를 마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할 만하거나 못생겼다고 할 만하거나, 돈많아 떵떵거리거나 돈없어 쩔쩔매거나, 힘이 세거나 여리거나, 곱고 깨끗하게 차려입거나 대충 아무렇게나 차려입거나, 모두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4340.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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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이시우 사진 / 인간사랑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 글ㆍ사진 : 이시우
 - 펴낸곳 : 인간사랑(1999.1.15.)
 - 책값 : 1만 원



 이 책 하나 17 ― 대한민국은 평화나라가 아니다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을 보고 나서


 

 사진을 찍는 이시우 님이 국가보안법을 어겼다고 해서 붙잡혔습니다. ‘이시우 님 한 사람만이 국가보안법을 어겼는가’ 생각해 본다면, 이 땅에서 안 붙잡힐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시우 님만이 붙잡힙니다.

 이시우 님이 붙잡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헌책방 일꾼도 차례차례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까닭에 발목잡혀서 붙들립니다. 그나마(?) 이시우 님은 중앙에서 알려진(?)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몇몇 언론매체에 소식이 나왔습니다만, 헌책방 일꾼은 전국은커녕 지역에서도 모르기 때문인지 소식을 실어 주는 언론매체가 없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아닌 구멍가게 일꾼이었어도, 동네새책방 일꾼이었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느낍니다. 한편, 이시우 님이나 헌책방 일꾼을 잡아간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려 한다면, 누구보다도 노무현, 박근혜, 이회창, 이명박, …… 이런 정치꾼들을 먼저 붙잡아 가두어야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큰힘을 휘두르며 ‘적나라인 북녘에 도움이 되는 몸짓과 말’을 퍼뜨리거든요.


 [53.문산 율곡리]
 : 누가 말했습니다. 싱그런 담쟁이넝쿨이 하루 빨리 자라 철조망을 덮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철조망이 그 안으로 숨어버리면 더 문제입니다. 단절 없는 청산은 낡은 것을 편들기 마련입니다.



 젊은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군대로 끌려가는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이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가 아닙니다. 군대에서 두 해를 썩어야 하는 일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면,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뜻이 참 평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 군대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한편, 계급에 종이 되도록 짓누르고, 이웃이나 동무조차 적인지 아닌지 의심하도록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목숨붙이를 돌볼 줄 알며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믿고 감싸는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할 스물 안팎 풋풋한 나이에 ‘사람 죽이는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길들어야 하는 젊음이 애처롭습니다. 아니, 끔찍합니다. 더욱이, 군대로 끌려가 바보에다가, 개에다가, 종에다가, 쓰레기에다가, 살인기계가 된 사내들이 ‘군 가산점’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쏠쏠히 대접을 받습니다. 예비군이 되어 군인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깽판을 쳐도 붙잡아 가지 않습니다. 해병대 나온 사람들은 ‘나 해병대 몇 기야!’ 하면서 술주정을 부리며 길가는 사람한테 윽박지르기도 하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돈과 힘과 이름이 있는 이들은 ‘구멍난 법 틈’으로 빠져나가 군면제를 받습니다. 어쩌다가 연예인이나 정치꾼 한두 사람은 ‘몰래 군대그물 빠져나간 일’이 들통나지만, 이렇게 들통나서 된서리 맞는 돈꾼ㆍ힘꾼ㆍ이름꾼은 아주 드뭅니다.


 [7.철원]
 : 지뢰표지판은 비바람 맞아 하루하루 뜯겨 가지만, 꽃잎은 하루하루 거듭납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이를 짓밟고 들볶으며 죽이기까지 하던 국가보안법입니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독재정권 탑을 쌓으려고 하던 이승만이 되살려내어 언론통제와 사회통제를 하고자 휘둘렀던 국가보안법입니다.

 해방이 되며 다행스레 국가보안법은 사라졌지만, 이승만이 살려냈습니다. 그나마 열 몇 해에 이르는 독재정권을 젊은 피가 무너뜨렸고(1960년), 젊은 피는 어른이라는 사람들한테 권력을 넘겨주었는데, 이때 권력을 얻은 수구 정치꾼들은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고,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려고 또다시 휘둘렀습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군부쿠테타가 일어나 박정희가 독재정권을 움켜쥡니다. 이리하여 일제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국가보안법이,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평화운동가’와 ‘민주운동가’와 ‘사회운동가’와 ‘노동운동가’와 ‘문화운동가’와 ‘교육운동가’들까지 두루 코를 꿰어 붙들어맵니다.

 코에 걸고 싶으면 코에 걸고, 귀에 걸고 싶으면 귀에 거는 국가보안법입니다. 참말로 나라를 말아먹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평화를 좀먹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이웃을 괴롭히며 시커먼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자연 삶터를 무너뜨리며 물과 바람을 더럽히는 사람들한테는 ‘국가보안법 죄목’을 씌우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 나라가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요. 휴전선 너머 북쪽에 있는 나라가 ‘인민이 민주주의로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휴전선 남쪽에 있는 나라 또한 ‘한겨레가 크게 하나되어 독립되거나 자유롭거나 평화롭거나 민주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2.양구 을지전망대]
 : 군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초소에 햇살이 가득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머리속에 담아 놓고 있을 지식이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사회는 학교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몸으로 껴안고 받아들여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어울리면 좋은가를 보여주고 이끌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군대가 있어야 한다면, 이 군대에서는 군인이 된 사람 마음을 먼저 가다듬고 추슬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을 눌러 제 잇속을 챙길 때 쓰는 힘이 아니라, 힘이 여린 사람을 보듬고 지켜 줄 수 있도록 방패가 되어 주는 매무새를 기르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결을 갈고닦는 곳이 군대가 될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비무장지대가 있어야 한다면, 지금처럼 남북녘이 백만에 이르는 군인을 촘촘히 박아 놓고 ‘무장지대’를 만드는 거짓말놀이를 벌여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쇠붙이를 거두어들이고 모든 총부리는 땅에 박아 놓으면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치지 않고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자유터, 평화터, 살림터가 될 수 있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누군가 쏜 총알에 맞지 않게, 누군가 심은 지뢰를 밟지 않게. (4340.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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