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사진가
플로랑 실로레 지음, 임희근 옮김 / 포토넷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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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9


사진가는 죽음 아닌 삶을 그리는 사람
― 로버트 카파, 사진가
 플로랑 실로레/임희근 옮김
 포토넷, 2017.8.1.


1936년 8월, 바르셀로나 프랑스역. 우리는 열기 가득한 이 도시에 도착한다. 거리 곳곳마다 무장한 군중의 술렁임과 정치의식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리고 내가 필름에 담는 이 숱한 미소들. 민중의 야단법석에서 느껴지는 이 소통의 기쁨. (13쪽)

1936년 9월. “게르다, 마드리드에 가면 나 당신과 결혼할 거야.” “이런 카파, 내가 누군데? 게르다 타로가 결혼이라는 부르주아 제도에 굴복할 것 같아? 어떻게 여기서, 한창 퇴각 중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숱한 시체, 부상자와 고아들 무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데. 우리 필름엔 죽음이 땀처럼 배어 나와, 카파.” (17쪽)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몸을 움직여야 찍을 수 있거든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만 움직인다고 해서 사진다운 사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몸하고 마음이 함께 움직여서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비로소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은 삶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며 마음이 움직였어도 이웃 삶을 읽지 못한다면 겉훑기로 그칩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나날이나 터전이나 모습을 고스란히 읽을 뿐 아니라, 이웃이 어떠한 꿈을 그리는가를 찬찬히 읽기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새로 찍어요.

  “사진은 사랑으로 찍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섞기는 사랑이 아닙니다. 고이 여기며 맑게 아낄 줄 아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삶을 읽더라도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며 얼싸안는 몸짓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겉을 넘어 속을 바라보려고 하되, 애써 바라본 속삶을 어떻게 삭이거나 헤아려서 서로 아름다이 나아갈 길을 열도록 사진 한 장으로 갈무리할 만한가를 모르기 일쑤입니다.


1937년 2월. 사람들은 내가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다고들 한다. 전투 중 찍은 일련의 사진들, 감성 풍부한 짧은 설명이 곁들여진 그 사진들. 편집진은 좋아서 죽는다. 게르다가 몸으로 보여주는 용기가 나날이 조금씩 내게 깊은 인상을 준다. 방공 사이렌이 울려도 그녀는 절대 망설이지 않는다. (18쪽)

1937년 7월 30일. 게르다의 부고는 〈뤼마니테〉 1면에 실렸다. 그녀는 전사한 최초의 여성 사진가였다 … 게르다의 남자 형제들은 그녀에게 라이카 카메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나를 원망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을 앞두고 있었다. (25쪽)


  사진책 《로버트 카파, 사진가》(플로랑 실로레/임희근 옮김, 포토넷, 2017)를 읽습니다. 《로버트 카파, 사진가》는 사진을 말하고 사진가를 말하기에 사진책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만화로 담아서 보여주기에 만화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을 만화로 담아 이야기를 지피니 이야기책이기도 합니다.

  사진책이면서 만화책이고 이야기책인 이 책은 사진을, 삶을, 사랑을, 무엇보다 이 모두를 둘러싼 우리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디로 흐르는가를 차분히 짚으려고 합니다.


1938년 10월 25일. 정처 없이 떠도는 이 사진쟁이의 삶은 대체 뭐 하자는 짓인가? 우리 사진들을 살릴지 여부를 통제할 권리가 없는 편집장들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권리를 수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가지 계획이 떠오른다 … 독립해서 활동하는 재능 있는 젊은 사진가들의 에이전시를 협동조합 모델로 창립하는 거다. 더 이상 우리의 고용주가 아닌 언론사들에 사진저작권을 그냥 양도하지 말고 그 권리를 우리가 가진다면? (33쪽)


  《로버트 카파, 사진가》를 읽으며 ‘게르다 타로(Gerda Taro/Gerda Pohorylles)’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납니다. 이 책을 지은 분은 게르타 타로란 분이 남긴 글을 읽고서 가슴이 찌릿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카파 + 게르다 타로’라는 얼거리로 만화를 그려 사진하고 삶하고 사람이 이어진 고리를 밝히고자 했다는군요.

  이 대목을 헤아리고 보니 책이름이 왜 “로버트 카파, 사진가”인가 알 만합니다. ‘로버트 카파 + 사진가 = 로버트 카파 + 게르다 타로’요, 로버트 카파라는 한 사람이 종군사진가이자 우리한테 ‘사진가’로서 널리 이름을 아로새긴 바탕에 게르다 타로라는 분이 있었구나 싶어요.

  누구보다 씩씩했고, 누구보다 새롭게 앞길을 그릴 줄 알았으며, 뒤로 물러서거나 한발 빼는 일이 없었다는 게르다 타로 님은 ‘여성 종군사진가’ 가운데 처음으로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탱크에 밟혀서 죽었다지요. 다만 ‘여성’이라는 말은 빼야지 싶어요. 똑같이 종군사진가입니다. 무엇보다 이이는 늘 함께 사진을 찍던 한 사람을 크게 바꾸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언제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1941년 3월. 항구의 통관 당국은 꽤나 애를 먹인다. 미국 영주권자이면서 헝가리 출신의 종군사진가라는 내 지위 탓에 통관만 할라치면 일이 꼬인다. (47쪽)

1944년 6월 6일. 주변에 비 오듯 쏟아지는 함포 사격으로 귀가 먹먹하고, 멀리는 기관총 쏘아대는 따다닥 소리가 들린다. 나는 네모상자에 달라붙는다. 찰칵. 너는 진짜로 여기 있는 게 아니야. 찰칵. 나는 거리를 어림잡아 초점을 맞추고, 두 손은 걷잡을 수 없는 경련으로 덜덜 떨린다. 찰칵. 뷰파인더에 눈을 딱 붙이고 있어, 제기랄! 이건 배 안에서 토하던, 방금 본 그 녀석이 아니야. 되밀려오는 파도에 내장이 둥둥 뜬 채 흔들리는 건 그가 아니야. 찰칵. (59쪽)


  사진가는 죽음 아닌 삶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피바람이 몰아치는 싸움터에서 죽은 사람들을 찍고 무너진 집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이 죽음수렁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을 가만히 비춥니다. 죽이고 죽은 끔찍한 땅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일어서려는 눈빛을 하나하나 비춰요.

  종군사진가 필름에는 죽음이 땀방울처럼 흐를 테지만, 이 죽음 어린 땀방울이란, 바보스러운 죽임짓을 멈추고 사랑스러운 살림길로 가기를 바라는 뜻을 품은 숨결이지 싶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죽음 곁에서 사진기를 쥐었으나 죽음을 떨치려 합니다. 죽음 아닌 삶을 보려 하면서 한 걸음을 딛고 우뚝 서서 찰칵 한 장을 찍습니다. 죽음이 비처럼 쏟아지는 한복판이지만, 이 빗줄기 같은 죽음을 다시 떨치고 한 걸음을 내딛은 뒤 더 씩씩하게 우뚝 서서 찰칵 새로 한 장을 찍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기운을 내어 나아갑니다. 한 장 두 장 손에 힘을 주어 단추를 누릅니다. 스스로 기운을 내지 않으면 죽음수렁에 갇혀 벌벌 떨다가 사진 한 장 못 찍을 뿐 아니라, 그대로 죽고 말 테지요. 삶을 찍으려고 한 발을 내딛습니다. 사랑을 찍으려고 한 발을 뻗습니다. 사람을 찍으려고 한 발을 듭니다.


1946년 5월. 난 언제든 카메라 가방을 메고 〈라이프〉든 다른 언론사든 일을 받아 떠나야 할 처지다. 뒤에 아내와 어쩌면 아이까지 남긴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73쪽)

1954년 5월 25일. 빨리! 이 친구들이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전에 셔터를 눌러. 찰칵. 두 번 눌러. 혹시 모르니까 좀더 잘 찍으려면 옆으로 한 발짝……. (85쪽)


  《로버트 카파, 사진가》는 로버트 카파 님이 1954년 5월 25일, 지뢰를 밟고 이슬처럼 스러진 날까지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때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에 눈을 박고 걸었는가를 그립니다. 지뢰밭 사이를 걸으면서도 지뢰 아닌 사진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삶을 그리던, 무엇보다 사랑을 그리면서 한 걸음을 내딛으려던 몸짓을 그립니다.

  이러다가 로버트 카파 님은 마지막 단추를 누르고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요. 사진기를 떨어뜨리고 몸뚱이가 사라집니다. 오래도록 그리던 이 품으로, 이제는 사진기도 사진짐꾸러미도 더 어깨에 걸치지 않아도 될 곳으로, 전쟁 아닌 사랑이 흐르는 보금자리로, 먼저 떠난 게르다 타로 님이 있는 하늘로, 가볍게 날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사진이 남습니다. 한 발 두 발 꿋꿋하게 내딛으면서 찍은 사진이 남습니다. 신문사나 잡지사 소유물이 아닌 사진가 스스로 일군 땀방울로 세운 ‘사진두레(사진 에이전시)’에 남긴 사진이 오래오래 퍼지면서 이야기꽃이 됩니다. 전쟁을 찍으면서 사랑을 그린 사진이 남습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사람살이를 담은 사진이 남습니다. 죽이고 죽는 피범벅에서 길어올린 따스한 삶을 그리는 마음이 사진으로 남습니다. 2018.4.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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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이예식 지음 / 눈빛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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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5


사할린 한겨레가 돌아갈 곳은 어디?
― 귀환
 이예식 사진, 눈빛, 2016.10.26.


  올림픽이란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리라고 합니다. 누가 얼마나 잘하는가를 겨루기도 하지만, 겨루기보다 어우러지기를 더욱 높이 삽니다. 아니, 어우러지지 않고 겨루기만 하려 든다면, 이는 올림픽하고 어긋난다고 여겨요.

  어우러지기란, 하나되기란 올림픽에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느 운동경기에서도 이야기하지요. 여느 운동경기에서도 팔꿈치로 몰래 찍는다든지, 다리를 슬쩍 걸어 넘어뜨린다든지, 꼼수나 속임수를 쓰면 손가락질을 해요.

  운동경기뿐 아니라,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 어디에서나 첫자리 올라서기를 가장 높이 살 수 없습니다. 남보다 잘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집을 지어 살림을 꾸리는가요? 시험점수를 더 높이 받아야 하기에 학교를 다닐까요? 님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사회일까요?


사할린 동포들의 운명은 참 억울하고 비참하다고 봅니다. 1939-1940년에 카라푸토(사할린의 일본식 지명)로 강제징용 당한 이들은 타국 땅 탄광, 벌목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이 패망하지만 동포들은 그렇게 그리웠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131쪽)


  사진책 《귀환》(눈빛, 2016)을 읽으면서 어우러지기를 헤아려 봅니다. 사할린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 그곳에 그대로 남습니다. 잃었던 나라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나라가 사할린 한겨레를 부르지 않았어요. 이 나라는 중국하고 중앙아시아하고 일본에서 살던 한겨레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돕는 일을 안 했으며, 까맣게 잊었어요.

  1949년 사할린 마카롭에서 태어나 〈새고려신문〉 사진기자로 일한 이예식 님은 사할린에서 살며 사할린 한겨레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자리가 아닌, 삶터라고 하는 자리에서 사할린 한겨레가 걸어왔고 걸었으며 걸어갈 길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한국 정부는 ‘영주귀국’이라는 일을 꾀한 적이 있으나 모든 사할린 한겨레를 아우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할린 1세를 지나 사할린 2세나 3세나 4세는 아예 생각 밖입니다.

  어우러지기나 하나되기는 마음에 없는 한국 정부라고 할 만합니다. 올림픽 같은 커다란 운동경기를 치르기는 하되, 정작 이 나라 안팎에서 아프고 슬픈 한겨레를 아우르는 길을 좀처럼 못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건사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들이지만, 평화로이 하나되는 길에는 아직 못 연다고 할 만해요.


영주귀국……. 사할린 1세 동포들의 영주귀국 주요 조건은 1945년 8월 15일 전 출생자들로 제한했고,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난 것이죠. 그립고 그리웠던 조국에 갈 수 있게 됐지만 자식들을 버려야만 하는 심정은 어땠을까요? 하루하루 늙어 가는 동포들의 삶은 기다림이었기 때문에 자식보다는 대부분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131쪽)


  숱한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한국에 일자리가 없지 않습니다. 온누리 여러 나라는 차츰 가까워집니다. 이웃나라는 이웃마을처럼 살가운 사이로 달라지는 판입니다. 여러 말을 쓰며 삶을 이어야 했던 한겨레붙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넓고 깊게 온누리를 바라보도록 북돋울 수 있는 슬기와 힘이 있습니다. 두 손이며 온몸이 거친 주름살이 되기까지 삶을 일군 한겨레붙이 발걸음이나 이야기는 우리 모두한테 살아숨쉬는 오랜 역사이자 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친, 기다리고 기다리다 흙으로 돌아간, 숱한 사할린 한겨레 이야기를 흑백사진으로 고요히 담은 《귀환》은 돌아갈 길을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한 우리 이웃이자 한식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어우러지기란, 하나되기란, 참말로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이제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함께 살아갈 나라를, 함께 일굴 터전을, 함께 사랑할 마을을, 함께 손을 잡고 활짝 웃음지을 길을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2018.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읽기/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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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현경미 지음 / 도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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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7



마음에 담긴 노래대로 사진을 보기

―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현경미

 도래, 2014.6.25.

 https://blog.naver.com/hope4us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발전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면 흥분하고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왜 우리는 인도의 한 부분만, 그것도 문화나 경제적으로 생활수준이 가장 뒤떨어진 삶만 보려 하는지 말이다. (7쪽)


인도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알고 있다면 찍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 상태라면 제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라도 차가운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17쪽)



  인도를 사진으로 마주하고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도래, 2014)를 폅니다. 지은이는 첫머리에 사진을 찍는 눈길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사람은 외국사람이 이 나라를 ‘문명으로 발돋움한 눈부신 도시’가 아닌 ‘뭔가 좀 오래되거나 후줄근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안 좋아한다고들 해요. 이러면서 정작 다른 나라로 가면 ‘뭔가 좀 오래되거나 후줄근한 모습’을 사진으로 즐겨 찍는다지요.


  인도나 몽골이나 부탄 같은 곳을 찾아가는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찍는 모습 가운데 ‘크게 발돋움한 도시 한복판’보다는 ‘시골스럽거나 오래되거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나 마을이나 골목’을 찍는 일이 흔하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이는 한국에서도 으레 불거집니다. 오래된 골목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사진을 찍는 분들은 ‘더 낡거나 더 오래된 모습’을 찾기 마련입니다. 마실꾼뿐 아니라 사진작가도 이런 모습을 더 눈여겨보고요.



길을 가다가도 멀리 사원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갔다. 사원이 웅장하고 역사가 깊고, 뭐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76쪽)



  무엇을 사진으로 찍느냐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한번 가만히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왜 인도를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어야 할까요?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힌 인도 사진을, 정작 인도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쩌면 우리 스스로 인도라는 나라를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기에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을 찾아내어 찍으려 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찍은 사진을 이웃한테 고스란히 선물로 준다고 생각한다면, 섣불리 ‘그런 모습’만 찍지는 않을 테고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은 다음에 선물로 준다면, 이를테면 ‘못난 모습’으로 나온 사진은 버리거나 지우기 마련입니다. 장난 삼아 ‘못난 모습’으로 나온 사진을 줄 수 있지만,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라면 ‘못난 모습’은 굳이 안 쓰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으려 한다면,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은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야기를 하려고 사진을 찍지요. 즐거이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사진을 찍어요.



처음부터 사진기를 들이대지 말았어야 했다. 몸과 마음을 다 비우고 그 사원의 아름다움을 먼저 감상했어야 했는데 오직 사진 욕심만 채우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 마음속으로는 하나도 감동받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111쪽)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를 읽으면, 지은이 스스로도 ‘사진 욕심’에 빠져서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찍고 말았다는 말이 곧잘 흐릅니다. 지은이 스스로 이제껏 지켜본 ‘다른 작가들 욕심투성이 사진’에서 훌훌 벗어나 새롭고 상냥하며 즐겁게 사진빛을 이루고 싶은데, 때로는 더 좋은 사진이나 더 나은 사진을 얼른 찍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아마 우리 스스로 바쁘다고 여기는 터라 ‘마음 아닌 욕심’으로 기울지 싶습니다. 오늘 아니면 다시 그곳에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니, 차분히 돌아보고 둘러보고 헤아리고 살핀 뒤에 살며시 사진기를 들기보다는, 서둘러 이 모습도 찍고 저 모습도 찍으려 할 수 있어요. 굳이 100장이나 200장을 찍어야 하지 않는데, 다문 한 장만 찍더라도 이 한 장에 마음을 담으면 되는데, 숫자에 얽매인다고 할까요. 사진으로 안 찍으면 마음에 안 남는다고 여긴달까요.



이 동네 어르신들을 뵙고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쉴 때는 언제나 기다란 곰방대에 말린 담뱃잎을 잘라서 꼭꼭 누른 다음 담배를 태우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157쪽)



  서두르지 않거나 바쁘지 않은 몸짓이 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에서뿐 아니라 마실하기에서도 비슷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에서도 비슷하고, 무엇을 배우는 길에서도 비슷합니다. 책 한 권을 서둘러 읽는대서 책 한 권을 더 잘 알아채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보다 책을 1시간 빨리 읽기에 책을 더 잘 꿰뚫지 않아요.


  오늘 찍지 못한다면 이튿날 찍을 수 있습니다. 올해 찍지 못한다면 이듬해 찍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올해도 못 찍을 뿐 아니라 이튿날이나 이듬해에도 못 찍는다면, 서너 해 뒤라든지 열 해쯤 뒤에 찍을 수도 있어요.


  더 빨리 사진 한 장을 얻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빨리 읽어치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더 빨리 다그쳐서 더 빨리 배우라 이끌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더 빨리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작가 자리로 본다면, 더 빨리 더 멋진 사진을 선보여서 더 이름난 사진작가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힌두사원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복전함에 꼭 시주를 한다. 그것이 예의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뿐, 특별히 소원을 빈 적은 많지 않다. 사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163쪽)



  마음에 담긴 노래대로 사진을 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마음자리에 서두르려는 생각을 심으면, 한국에서든 인도에서든 늘 바빠맞은 몸짓으로 닦달하면서 겉훑기에 그치기 쉽다고 봅니다. 우리가 마음밭에 차분하면서 느긋한 생각을 심으면, 인도에서든 한국에서든 언제나 즐거우면서 상냥한 손길로 이야기꽃 이루는 사진 한 장을 얻는다고 봅니다.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사진 두 장 찍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사진 석 장 찍을 수 있어 기쁩니다. 사진 넉 장 찍을 수 있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을 한 장씩 찍을 적마다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고마움, 반가움, 기쁨, 사랑, 여기에 꿈, 노래, 꽃, 해, 별을 떠올리고 웃음, 눈물, 아픔, 날개돋이를 그리다가 어깨동무, 손잡기, 이웃되기, 서로돕기를 담아 볼 수 있습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부겐빌레아는 겨울이면 특히 꽃의 색깔이 짙어져서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별 감상 없이 지나쳐 버리고는 했는데 이 산속에서 다시 만난 부겐빌레아는 먼지 한 점 없이 선명하게 피어 꽃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45쪽)



  어디에서나 사진꽃이 핍니다. 길에서도 숲에서도 꽃은 그저 꽃으로 곱습니다. 숲에서만 고운 꽃이 아닌 길에서도 고운 꽃입니다. 인도에서도 한국에서도,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 마을에서도 저 마을에서도, 우리는 상냥하면서 고운 마음을 건네면서 상냥하면서 고운 사진을 얻습니다.


  노래하는 마음으로 꽃길을 거니는 몸짓이 되면, 참말 누구나 언제나 노래꽃 같은 사진을 찍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대로 사진 한 장을 이룹니다.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눈길에는 우리가 나누고 싶은 말 한 마디가 살며시 드러납니다. 찬찬히 마주하면서 먼저 마음에 깊이 담고서야 사진기를 손에 쥘 노릇입니다. 아직 마음에 깊이 담지 않았다면 사진기는 등짐 깊숙하게 묻어둘 노릇입니다. 2018.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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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 흔적에 길을 묻다 오늘의 다큐 5
박노철 지음 / 눈빛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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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4


이 사진은 눈 덮인 냇물이 아닙니다
―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 눈빛, 2017.6.29. 25000원


  해마다 며칠쯤 시골이 북적입니다. 새해 첫머리, 설날, 한가위에 자동차가 꽤 북적입니다. 이맘때에는 고샅마다 자동차가 줄짓고, 여느 때에는 고샅이든 한길이든 안 보이던 사람들이 보이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요.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기에 여느 날 시골은 매우 조용합니다. 도시하고 매우 먼 시골은 더욱 조용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도시하고 먼 시골은 여러 가지가 많이 나곤 해요. 먼저 먹을거리가 많이 나지요. 들이며 숲이며 냇물이며 깨끗하니 곡식이나 열매가 잘 자랍니다. 깨끗한 바다를 낀 시골이라면 갯것이나 바닷것이 잔뜩 나오고요.

  그리고 도시하고 먼 강원도 시골에는 화석연료라 하는 광석이 많습니다. 도시라는 자리에서 강원도를 보자면, 옛날에는 ‘탄광이 많은 고장’이었을 테고, 오늘날에는 ‘주말이나 휴가철에 놀러가는 고장’일 테지요. 머잖아 ‘겨울올림픽을 여는 고장’이라는 이름을 얻을 테고요.


광산은 사라져 가지만 그곳에 아직도 흐르고 있는 희고 붉은 폐광수는 분주했던 옛 탄광촌의 영화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산맥 골골 깊은 곳, 옛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흰 폐광수는 그 옛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광부들의 애환이 깃든 피눈물일 수 있다. (167쪽)


  사진책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눈빛, 2017)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말 그대로 폐광을 다룹니다. 강원도 깊은 멧골에 있다가 문을 닫은 탄광을 다룹니다. 기나긴 날 광석을 캐다가 이제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훤히 드러나는 등골 시린 모습을 다룹니다. 한때 탄광이던 곳이 폐광으로 바뀌면서 오늘 어떤 ‘자국’으로 있는가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헤아려 보면, 폐광이 되고 나서야 환히 드러나는 등골 시린 모습은 아니지 싶습니다. 한창 탄을 캐던 무렵에도 이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한창 탄을 캐던 무렵에는 더욱 등골 시린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폐광 아닌 탄광이던 무렵에는 광산에서 흘러내리는 ‘광물 섞인 물’이 들이나 숲이나 내를 흠뻑 물들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우리들입니다. 지난날에는 숲을 망가뜨리고 마을을 더럽히는 ‘폐광수’를 거의 헤아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난날에는 공장 굴뚝 매연하고 쓰레기물을 ‘개발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사진책 《폐광》은 한여름에도 마치 눈이 내린 듯한 냇물을 보여줍니다. 둘레에 풀이나 나무는 짙푸른데, 냇물만 새하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면서 영 뜬금없다 싶은 모습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둘레 숲은 한겨울에 눈이 소복하게 덮여 새하얀데, 폐광수가 흐르는 물줄기는 싯누렇거나 시퍼렇습니다.

  때로는 싯누런 물줄기하고 시퍼런 물줄기가, 또는 싯누런 물줄기하고 새하얀 물줄기가 만납니다.

  한참 《폐광》을 넘기다가 어릴 적에 본 냇물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마을에 식품공장하고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두 곳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물은 뭐랄까 매우 아리송한 빛깔이면서 때로는 무지개 같은 빛깔이었습니다. 이러면서 냄새가 코를 찔렀지요. 어른들은 “거기 그만 쳐다봐라. 코 뚫릴라.” 하면서 도리질을 쳤으나, 두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물이 어우러지는 아리송한 빛깔에 사로잡혀서 한참 쳐다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황변현상과 백화현상의 산과 계곡을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그나마 환경 복원사업으로 일부 회복되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외면받는 폐광의 잔재들은 차고 넘친다. 나는 좀더 가까이에서 그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168쪽)


  이 땅에서 석유는 나지 않는다고 하기에 석유밭 언저리가 얼마나 새까만지를 두 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석탄이 많이 났기 때문에 석탄밭 언저리가 얼마나 새까만지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을 닫은 석탄밭 둘레가 그동안 어떤 자국이었는가를 똑똑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모습을,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땅밑에서 광물을 캐내느라 탄광 둘레 숲이나 마을은 그동안 얼마나 망가졌는지 짚어야지 싶어요. 광물을 더 캐내지 않아도 폐광이 된 뒤로 한참 지난 오늘날까지 얼마나 모진 쓰레기물이 흐르는가를 또렷이 짚어야지 싶어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짚어야지 싶습니다. 숱한 공장이나 골프장이나 큰 발전소 곁은 어떤 자국이나 모습일까요? 아늑한 물질문명을 누리느라 시골은, 숲은, 마을은, 폐광 둘레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요? 앞으로는 전기나 문명이나 자원을 누리는 길을 처음부터 새로 짚으면서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책 《폐광》이 ‘폐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강원도 멧골을 말없이 보여주었다면, 아마 적잖은 분들은 이 사진이 어떤 모습이나 자국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으리라 봅니다. 왜 새하얀 물줄기인지, 왜 시퍼렇거나 싯누런 물줄기인지 도무지 모르겠지요. 다만 시커먼 물줄기를 보고서야 뭔가 있구나 하고 느낄 테고요.

  사진으로 똑똑히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스스로 삶길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폐광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한강이며 낙동강이며 금강이며 두루 스며들어 우리 목을 죄리라 봅니다. 모두 우리 스스로 끌어들인 모습입니다. 모두 우리 스스로 지은 자국입니다. 2018.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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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 김지연 사진 산문
김지연 지음 / 열화당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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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61


일흔 할머니가 들려주는 사진꽃 이야기
― 감자꽃
 김지연 글·사진
 열화당, 2017.12.5. 16000원


사과나무 과수원을 서성거리는데 주인이 왔다. 주인은 표정 없이 떨어진 사과를 광주리에 담았다. 새벽부터 낯선 곳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더니 떨어진 사과 몇 알을 건네주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상큼한 사과 맛이 있을까? (13쪽)

요즈음 나 자신에게 되묻고 있다. ‘나는 밥값을 하고 있는 것인지.’ 사진을 하는 동안, 세상사에 발을 담그고 살면서 세삼 ‘밥값’도 제대로 못 하는 사진가는 아닌지 반문해 본다. (21쪽)


  사진기라는 기계는 평등하면서 평등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라는 기계가 평등하다면,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이 기계를 손에 쥐는 사람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 할머니도 젊은이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사진기라는 기계가 평등하지 않다면 값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서, 더 돈을 치르면 해상도가 더 빼어난 기계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대학교 사진학과라든지 사진밭 여러 어른 뒷줄에 서서 이름을 펴기도 합니다.

  곰곰이 따진다면 사진밭뿐 아니라 어느 밭을 보든 매한가지입니다. 호미 한 자루는 누구한테나 평등합니다. 누구나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굴 수 있어요. 연필 한 자루는 모두한테 평등해요. 누구나 연필 한 자루로 글을 여밀 수 있지요. 그렇지만 어버이한테서 땅을 물려받지 못하면 다른 이 땅을 빌려서 부쳐야 합니다. 글밭도 글밭 여러 어른 뒷줄이 있어서, 이 뒷줄에 살그머니 서는 사람이 있어요.


나락을 거침없이 삼키고 흰 폭포처럼 위용있게 쌀을 뿜어내는 정미소는 어린 나에게 정말 대단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나 절대로 무너지는 날이 없을 줄 알았던 그 정미소가 이제는 시골 면사무소 뒤에서 납작이 엎드린 채 길가로 난 큰 문을 걸어 잠그고 안채 마당에서 소소한 창고로 쓰이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23쪽)

“언제 또 봬요.”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글씨요…….” 주인은 말꼬리를 흐린다. 우리가 언제 또 만날 수나 있겠어요. 정미소도 그렇다. (39쪽)


  사진책 《감자꽃》(열화당, 2017)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을 여민 분은 쉰 줄이라는 나이부터 사진기를 손에 쥐었고, 이 사진책을 일흔 줄 나이에 선보인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라 이를 만한 나이에 사진길을 걷자는 생각을 했고, 할머니라 이를 만한 나이에 새로운 사진책을 여밉니다.

  사진책 《감자꽃》에 실은 글이나 사진은 스무 살이나 마흔 살 즈음에도 쓰거나 찍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어떤 분은 스무 살이나 마흔 살에도 이 사진책에 깃든 글만큼 사진만큼 이야기를 엮을 수 있겠지요. 사진기는 평등하거든요. 그런데 사진기만큼 평등한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나이와 발걸음입니다.

  삶길을 걸어온 나이에 맞추어 글 한 줄에 얹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삶길을 지핀 발자국에 맞추어 사진 한 장에 담는 이야기가 살며시 달라요.

  스무 살 젊은이가 정미소를 바라보는 마음이나 눈길은 쉰 살 아주머니가 정미소를 바라보는 마음이나 눈길하고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에 정미소를 늘 쳐다보면서 살다가 아주머니 나이를 지나 할머니가 된 분이 사진기를 손에 쥐어 담아낼 이야기를 서른 살 젊은이가 담아낼 수 없겠지요.


나는 감자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는 감자꽃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나 이쁘고 곱던지,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감자꽃을 묶어서 부케처럼 만들어 할머니 손에 쥐여 주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 (43∼44쪽)

면내에는 물론 읍내에도 미용실이 한두 군데밖에 없던 시절인지라 여자애들도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면서 컸다. 예전에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9쪽)


  사진 찍는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전북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립니다. 늦깎이로 사진길을 걸었다 할 만하고, 어느새 할머니 나이에 이르는데, 이즈막 할머니 나이에 감자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해요. 감자밭에서 감자꽃을 따서 버리는 시골 할매 곁에서 감자꽃을 주섬주섬 그러모아서 ‘감자꽃다발’을 엮습니다. 감자알처럼 투박하면서 살가운 시골 할매 손이란, 짐짓 쓸모없다고 여겨 버리는 감자꽃 고운 꽃송이처럼 따사롭고 푸진 손이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흙짓는 시골 할매나 할배 손에 꽃다발을 안긴 일은 없지 않을까요. 흙빛을 닮은 시골 할매나 할배 손에 작은 들꽃 한 송이를 가만히 건넨 일도 없지는 않을까요.


정읍의 눈 내리는 벌판을 걷노라면 마치 꿈속을 걸어가는 것 같다. 바람도 없는데 하염없이 눈이 쌓이고 또 쌓인다. 행여 길을 잘못 들어도 별로 당황스러울 것이 없다. 인가가 멀리서 보이는 국도에서 버스를 내리면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옆으로 방천길이 마을로 이어진다.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는 곳에 간판도 창문도 없는 오래된 이발소가 있다. (55쪽)

우연한 기회에 동네 할머니 방의 문지방 위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을 찍게 되면서 ‘낡은 방’ 연작을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찍게 되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오래된 방에는 이렇게 가족의 역사가 가훈처럼 붙어 있었구나. 자식을 낳고, 그들이 자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돌이나 부모님의 환갑을 기념하는 사진들을 찍고, 그것을 모아서 문지방 위나 벽에 온통 걸어 두고 늙은 부모는 살아가고 있었구나.’ (83쪽)


  사진책 《감자꽃》은 감자꽃 같은 사진하고 글이 어우러집니다. 어쩌면 감자꽃은 덧없을는지 모릅니다. 사진책 《감자꽃》에 흐르는 사진하고 글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스쳐서 지나갈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자알에서 뿌리가 돋고 줄기가 오르며 잎이 나기에, 이러면서 꽃이 피기에, 또 꽃이 지거나 꽃을 따기에, 시나브로 감자알이 굵습니다. 꽃내음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꽃이 피지 않는 풀이나 나무란 없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삶이나 살림이란 없습니다.

  비록 그늘진 자리에서 겨우 자그마한 꽃송이를 바들바들 떨면서 터뜨리더라도, 이 자그마한 꽃송이를 고작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접어야 하더라도, 모든 풀이며 나무이며 사람이며 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꽃피우는 곡식이랑 열매를 먹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꽃피우는 사랑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입니다.


‘자영업자’ 작업을 하면서 삼산이용원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주로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술 한 잔씩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늘 같은 말로 ‘사진도 못 찍는 사진사’라는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121쪽)

“꽃시절은 언제였어요?” “나는 존(좋은) 시절도 없었어”라는 대답이 들려오는 순간, 아차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147쪽)


  누구나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꽃길을 걸으려면 우리 삶이나 마을이나 나라는 어떤 길로 거듭나야 할까요.

  우리는 꽃날을 누리지 못한 채 저무는 삶일까요. 우리한테 꽃날이 찾아오려면, 아니 우리가 꽃날을 지어서 꽃잔치를 즐기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면 될까요.

  사진책 《감자꽃》은 일흔 할머니 나이를 걸어갈 키 작고 몸집도 작은 사진님 한 사람이 조곤조곤 일구어 온 사진밭을 차곡차곡 보따리 풀 듯이 보여줍니다. 숱한 정미소를 보여줍니다. 숱한 이발소를 보여줍니다. 숱한 마을지기를 보여줍니다. 숱한 시골가게를 보여줍니다. 숱한 마을이웃을 보여주고, 숱한 꽃송이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작고 여린 사진님 한 사람 눈에 뜨였기에 사진으로 깃들 수 있는 모습이라 할 만합니다. 크고 단단한 이들은 쳐다보지 않거나 아랑곳하지 않던 모습이라 할 만합니다. 낡은 방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빈 방을 어떤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낡은 방에 빼곡한 낡은 사진에 깃든 마음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요? 이제 빈 방이 되어 버린 자그마한 터가 한때 숱한 아이들이 바글바글 복닥이면서 씩씩하게 자라던 보금자리인 줄 읽을 수 있을까요?


오늘 또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외로울까 봐 이쁜 새악시들 사진을 걸어논 거요?” 할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벽에는 ‘꽃시절’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뿌듯했다. ‘아, 꽃시절.’ (158쪽)


  꽃가루가 꽃가루 아닌 모랫바람으로 온나라를 휩쓰는 오늘날입니다. 꽃비가 내려도 자동차 유리창에 떨어지면 귀찮거나 성가시거나 싫다고 여기는 오늘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꽃을 멀리하지 않았을까요? 감자꽃뿐 아니라 사람꽃도 멀리하고, 삶꽃이나 사랑꽃도 멀리하지는 않았을까요?

  꽃을 멀리하다 보니 어느새 꽃길하고도 멀어지고 꽃날도 잊고 말지는 않을까요? 스스로 꽃사람인 줄 잊으면서 그만 꽃벗이나 꽃이웃까지 잊지는 않을까요?

  사진님 한 사람이 쉰 줄부터 일흔 줄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이 꽃길이었는지 흙길이었는지 가시밭길이었는지 구름길이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사진길을 걸었겠지요. 사진님 한 사람이 쉰 나이부터 일흔 나이에 이르도록 일군 사진이 꽃사진이었는지 흙사진이었는지 가시밭사진이었는지 구름사진이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저 수수히 살아온 나날을 적바림한 사진이었겠지요.


꽃가루 황사로 범벅이 되고
오월은 장미대선으로 분주하고
꽃비는 더러운 차창 위에 모로 눕고
와이퍼는 호들갑을 떠는 금요일 밤
집에 돌아와 미역국에 찬밥을 말아 먹는데
내가 오늘 생일인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175쪽)


  사진을 놓고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놓고 아트라 해도 됩니다. 사진을 디자인해 볼 수 있을 테고, 사진에 이런 이론이나 저런 사상이나 그런 주의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든 사진으로 이야기를 지피다 보면 어느새 꽃 한 송이가 피어나서 향긋한 바람을 일으킬 만하다고 봅니다. 바로 ‘사진꽃’입니다.

  우리는 사진예술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하지 싶어요. 우리는 사진꽃 한 송이를 자그맣게 피울 수 있어도 넉넉하지 싶어요. 대단한 사진축제라든지 엄청난 사진페스티벌이라든지 놀라운 사진박물관을 세우지 않아도 되리라 봅니다. 들꽃 같은 사진이야기를 피우고, 마을꽃 같은 사진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진꽃이 맺는 씨앗 한 톨을 오래오래 바라보아도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일흔 할머니가 앞으로 아흔 할머니로 걸어가는 길목에서 피워낸 작은 사진책 《감자꽃》을 곱다시 덮습니다. 2017.12.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읽기/사진넋)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김지연 님한테 여쭈어 얻었습니다
* 서학동사진관 모습은 제가 찾아가서 찍었습니다
* 찻잔을 쥔 손은 사진가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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