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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 세트 - 전2권 - 70년대 강운구가 찍은 마을과 30년 후 권태균이 다시 찍은 그 마을 - 시간과 거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강운구.권태균 사진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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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

 

 사진찍는 강운구 님이 서른 해 앞서 찍은 어느 시골마을을, 서른 해 지난 뒤 후배 사진작가가 다시 찾아가서 요모조모 살피며 어떻게 마을이 달라졌는가를 좇으며 또 한 권 사진책으로 낸 판. 그래서 두 권이 한 묶음. 한 묶음은 55000원. 책은 비닐로 싸여 있어 속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고, 출판사 소개며 언론사 소개며 얼마나 칭찬이 침을 튀기던지.

 하지만 기자들이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책치고 ‘건질 만한’ 책이 없음을, 더욱이 사진책은 말짱 꽝이었음을 돌이켜 본다면, 이런 책은 그저 지나쳐 버리는 편이 나았을 텐데. 지난주 서울 나들이 때, ㄱ출판사 사장이 요 사진책을 사야 하는데… 하고 자꾸 눈독을 들이시지만 선뜻 사지 못하시기에, 냉큼 사고 말았다. 값이 버거우면 내가 사서 비닐 뜯어서 구경시켜 드리면 되니까. 나야 사진책 하나 산다고 10만 원도 쓰고 12만 원도 쓰고(차마 20만 원까지는 못 쓰겠더라만. 살가도 사진책이 9만6천 원, 프랑스 아무개 사진책이 11만 얼마…) 했으니 5만5천 원은 비싸면 비싸고 싸면 싸다고 할 값.

 ㄱ출판사 사장과 술집에 들어가 술을 시켜 놓고, 요놈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를 뜯어서 보는데, 아이쿠야. 어쩜 이렇게 사진 출력을 엉망으로 해 놓았는지. 배경이 조금 어두운 곳은 아예 먹칠이 되어 버렸고, 밝은 쪽은 허옇게 날라가 버렸고. 두 쪽에 걸쳐 펼친 사진은 인쇄-제본에 신경을 안 써서 안으로 많이 접혀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되어 있고…

 이게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삼형제 출판사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 나라 미술출판을 앞장서서 개척했다는 열화당 출판사에서 낸, 그것도 나라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강운구 님 사진책을 내는 정성이란 말인가? 기가 차고 혀가 차고 술이 차서 소주 세 병을 ㄱ출판사 사장하고 잇달아 마셨다.

 요즘 나오는 사진책은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녀석이 쉽게 4~5만 원 딱지를 달고 나온다. 그러나 이 사진책들에 4∼5만 원이나 주어야 할 값어치가 있을까? 차라리 이 돈이면 일본 사진잡지 10권을 사서 본다. 지난달 《일본카메라》, 《아사히카메라》 같은 사진잡지는 한 권에 4∼5천 원. 두어 달 지나 묵은 녀석은 3천 원쯤. 인쇄-제본 훨씬 훌륭하고 사진 선명도와 인쇄출력 뛰어난 이런 잡지를 보며 내 사진눈을 키우고, 좋은 사진을 보는 게 낫지. 그래, 두 권에 55000원을 붙인 까닭이 있구나 싶다. ‘싸구려’로 만들었으니 더 높은 값을 못 붙였(?)겠지.

 예전 《샘이깊은물》 잡지에 실린 강운구 님 사진만 해도 얼마나 좋았는데, 깨끗했는데, 어떻게 낱권 사진책으로 실린 강운구 님 사진은 1980년대 잡지 겉그림에 쓰인 사진보다도 해상도나 출력상태가 떨어질 수 있을까? 파주출판도시에 출판사마다 멋들어지게 세운 그 으리으리하고 비싼 건물 문짝 하나, 창문 하나 값만 요 사진책 하나에 들였어도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는 이렇게까지 실망스러운 판으로 우리 앞에 나오지 않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기자들이야, 이런 잘잘못까지 기사에 쓸 자리가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 또한, 이런 잘잘못을 못 느낄 수 있다. 언제 기자들이 4~5만 원이나 하는 사진책을, 또 10만~20만 원이나 하는 사진책을 자기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서 보겠는가?

 55000원이라는 돈… 생각해 보니, 독일 건축가 ‘헤르만 산더’ 사진책을 사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개화기 때 조선여행을 하며 찍은 그이 사진들, 우리 나라에 기증해서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헤르만 산더 사진을 묶어서 내놓은 자료사진책, 이것이 35000원인데, 이 사진책이 훨씬 나았지. 열화당 출판사는 사진가 강운구 선생 이름에 먹칠을 하는 몹쓸 사진책을 세상에 내놓은 죄값을 달게 치러야 할 줄 안다. (4339.11.15.물.ㅎㄲㅅㄱ)

*** 이 글이 악성 딴지라고 느낄 분이 있을지 몰라,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과, <샘이깊은물> 잡지에 실린 사진을 따로따로 스캐너로 긁어서 붙입니다. 스캐너나 포토샵으로 아무런 손질을 하지 않은 스캐너로 긁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 스캐너는 canoscan9900F입니다 ***

 
먼저, 열화당 사진책에 실린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사진입니다.
책 겉장 사진하고도 상태가 다르지요.
 
 
잡지 <샘이깊은물> 1985년 12월호 사진.
애엄마와 아기 얼굴, 옷,
여러 가지를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잡지가 낡긴 했어도
21년 앞선 때 사진출력이
훨씬 낫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두 가지 책을 한 자리에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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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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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찍는 사람 삶이 담깁니다
 - 《사진, 예술로 가는 길》을 읽으며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지난 토요일인 9월 9일, 인사동 김영섭갤러리에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전시회가 12일까지 열리는데, 이날은 전민조 님이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좀 늦게 가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전시장에 온 사람이 적어서 나중에 전민조 님과 함께, 가까운 다른 전시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 사진을 걸어 놓은 다음 사인회 같은 행사를 할 때면 으레 옷도 차려입고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만나고 몇 마디 그럴듯한 말도 하기 마련입니다. 거의 그렇지요. 하지만 전민조 님은 수수한 옷차림에다가 한쪽 어깨에는 작은 사진기를 메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은 스스로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늘 살아 있는 사진, 살아숨쉬는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싶어요.


.. 제 느낌 따라서 사물을 보고, 제 생각 따라 사물의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지 사물이 어떤 고정된 의미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졌는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  〈45쪽〉


 전민조 님 안내와 소개를 받으며, 인사동 다른 곳에서 열리는 ㄱㅇㅌ 님 사진 전시회를 구경합니다. 전민조 님은 자기 사진은 보잘것없다 하고 ㄱㅇㅌ 님 사진을 훌륭한 작품이라며 추켜세웁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고 대상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사람’을 사진감으로 삼는다고 해도, 정물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일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알몸사진을 찍을 수 있고, 어떤 몸짓을 해 보라고 한 뒤 빛을 맞추어 찍기도 하지요. 사람을 찍는 방법만 해도 참 갖가지이고, 사람한테서 무엇을 느끼느냐도 참 갖가지입니다. ㄱㅇㅌ 님은 사람이 아닌 자연 대상물만 찍는 분입니다. 전민조 님은 사람만 찍는 분입니다.


..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셔터 찬스이지 구도가 아닌 것이다. 구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 화면의 정리뿐이다. 정리는 조금 덜 되어도 내용이 좋아야지, 화면만 깔끔한 채 속이 텅 빈 사진은 쓸모가 없다. 말솜씨가 조금 서툴러도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이 좋으면 그게 훌륭한 말이요, 화려한 말솜씨에 내용이 없으면 그게 바로 헛된 말장난인 것이다 ..  〈72쪽〉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 두 분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다 보니, 여느 때 모습도 다릅니다. ㄱㅇㅌ 님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사막을 헤매는 분이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안 찍습니다. 그래서 사진 전시회 자리에도 사진기를 안 메고 있습니다. 전민조 님은 늘 자기 둘레에 있는 사람들부터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언제나 사진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습니다. 예전에 김기찬 님을 전시장에서 뵌 적 있는데, 김기찬 님도 조그마한 사진기를 언제나 품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어느 때라도 곧바로 꺼내어 찍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ㄱㅇㅌ 님 사진은, 자기가 찍으려는 대상을 훌륭히 찍었기 때문에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진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이분처럼 어느 대상을 깊이있게 살피며 ‘빛을 만지작’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 길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든 자기 길을 곧게 잘 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길로 갈 생각이 없다뿐이고, 전민조 님처럼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닐 뿐입니다. 저는 사람을 찍는 사람이니까요.


.. 이런 특수한 기법은 특수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 그런 기법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표현이 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을 현혹시키려는 얕은 꾀로 떨어지기 쉽다.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볼지 몰라도, 사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경멸당하기 쉽다 ..  〈89쪽〉


 값싸고 손쉽게 찍을 수 있는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퍼지면서 사진은 ‘취미’라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때때로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를 태우듯, 술잔을 비우듯 사진 찍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말 인사동을 걸으니 그 엄청난 사람숲을 메운 어느 사람 어깨에도 사진기가 대롱대롱 걸려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나 싶어서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참 많이 찍어도 그 흔한 사진 전시회는 들여다보지 않고, 또 찾아갈 마음도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취미이고 놀이니까 다른 사람 전시회야 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진은 ‘보여줌’인데. ‘나 혼자 좋아서 찍고 그치는 일’이 아닌데. 태우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담뱃재가 아니라, 잔을 비우면 사라지고 마는 술잔이 아니라, 담배 태우는 즐거움이자 술잔 기울이는 즐거움인데. 으리으리한 전시장에 사진을 걸어놓아야만 사진이 아닌데. 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사진첩도 바로 ‘조촐한 자기 사진전시’인데.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마음이기에, 사진기를 들면서도 무엇을 찍고 나누고 보여주면 좋을지를 못 느낄까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얼굴을 매만지기는 해도, 해가 가고 달이 가며 자연스럽게 갈고닦이는 자기 얼굴을 가꾸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 필자의 글을 지침서로 활용할 수는 있어도 이를 미신처럼 믿어서는 안 된다. 남의 생각대로만 따르다가는 자기를 잃기 쉽다. 예술에서 자기를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필자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초보자의 경우, 어느 것이 필요하고 필요없는지 그것조차도 모르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구분하라는 말인가, 걱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필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고 했지만, 다른 말은 따르지 않더라도 다음 말만은 그대로 기억해 두고 따라 주기 바란다.
 초보자든 경험자든 여러분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느낌에 따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해야 한다. 만일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원칙은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참고 사항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 놓고 …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채워 나갈 길을 몰라 걱정하는 것이니까 모르는 것이 아니요, 자기 사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다 ..  〈147∼148쪽〉


 저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느냐 싶기도 하지만, 겉멋들린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이 참 거슬리고 비위가 안 좋습니다. 책 하나 냈다고 해서 자기를 ‘작가’라 한다거나, 전시회 한 번 했다고 ‘작가’라 내세우는 사람이 아주 많거든요.

 

 사진도 예술이라 하지만, 사진이 예술이 되든 안 되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마음둘 대목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며, 사진이 예술이든, 또는 예술로 올라가든 말든, 그런 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배우는 일이란 기계 다루는 법, 장비 만지는 법, 대상을 요리조리 살피며 찍는 법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구도 잡거나 빛과 색감 느끼는 법도 사진 배우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고 느끼는 일이 바로 사진 배우기입니다. 전시회를 찾아가고 사진책을 사서 모으는 일이야말로 사진 배우기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찍은 좋은 사진을 보고 자기 마음이 뭉클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사진 가운데 잘 찍은 좋은 사진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거나 짠하거나 감동을 하니까요.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며 감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사진을 백 날 찍어 보아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진은 기록이다”고도 하는데, 요즘 사진을 찍는 분들 어느 누구를 보아도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누구랑 찍었다는 기록”일 뿐, 자기 눈과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과 몸짓으로 자기 나름대로 찍은 사진이라는 느낌이 안 듭니다. 사진을 예술이라 한다면, “사진 찍는 이 나름대로 자기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지 싶은데, 예술이든 아니든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취미’나 ‘놀이’도 아닌 ‘기록’하는 사진일 뿐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이런 사진이라면 자기부터 재미가 없고, 이 사진을 볼 다른 사람도 재미가 없을 텐데 싶어요.


.. 자기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적당히 감추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솔직해야 된다. 솔직해야 좋은 사진이 찍힌다. 특히 유교적 규범 속에서 자라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에 퍽 조심스러운 편이다 … 가릴 것 다 가린 누드 사진보다 체모든 성기든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라야 한다. 보이는 것 다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라야 한다. 우리가 바위를 찍을 때 어느 부분을 가리고 찍는 일이 있던가? 꽃을 찍을 때 어느 부분을 피해 가면서 찍은 적이 있던가?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상대하는 것,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다. 꽃은 가리고 찍지 않는 사람이 몸은 왜 가리고 찍을까? ..  〈163∼164쪽〉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이가 똥누는 모습도 사랑하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도 사랑하며, 코가 막혀 킁 하고 풀었는데 콧물이 손등에 튀는 모습이라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기가 오줌을 지려서 옷을 적셨다 해도 ‘더럽다’고 느끼는 부모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든 모습을 그대로 껴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겉모습을 보고, 얼굴이나 몸매를 보면서 마음이 끌린다 해서 사랑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겉모습과 얼굴과 몸매를 보며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적잖은 분들도 이런 사랑놀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참사랑에는 자꾸만 멀어지지 싶어요. 연속극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책마저 그렇습니다. 이런 형편이고 흐름이니, 사진 하나를 찍어도 있는 그대로를 찍기보다는,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보다는, 잘 찍었다 하든 못 찍었다 하든 ‘나 아무개가 찍은 사진이요’ 하는 느낌이 배어나는 사진보다는, 구도가 엇나가고 흔들리기도 하고 빛도 어설피 맞추었다고 해도 ‘내가 찍고 싶어서 찍었어’ 하는 사진보다는,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히고 뻔할 뻔자이며 남들 다 찍는 사진을 따라쟁이로 좇아가는 사진만 찍는구나 싶어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자기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재미를 함께 느낍니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올바른 마음을 함께 얻거나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그동안 하찮게 여기거나 그냥 지나쳤던 대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거나 차분히 되돌아보는 마음을 느끼며 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자기가 사는 대로 사진이 찍히기 때문이에요. 놀 때도 그래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노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그 사람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배어나옵니다. 좁은 한강 자전거길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내달리면서 딸랑이를 시끄럽게 울리는 사람이 ‘자전거를 즐긴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 사람 삶부터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사진도 좋아하고 책과 헌책방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탄다고 모든 자전거꾼을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있다고 모든 사진작가를 다 좋아하지 않으며, 책을 즐겨읽는 사람이라 해서 모든 책쟁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삶부터 다부지게 가꿀 줄 아는 사람, 자기한테 딱 하나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사진기를 들고 책을 읽으며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습니다.


.. 사진만이 예술이어도 좋고, 예술이 아니라 해도 그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의미에 변화가 없다. 사진 말고는 말이 그러해서, 문자에 의한 기록은 그것이 설사 예술이 못 되어도 가치가 있다 ..  〈68쪽〉


 사진을 보며 사진을 느낀다기보다는, 사진을 보며 사람이 꾸려가는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책을 다루는 매무새를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끼고, 아무개가 다니는 책방이나 도서관을 보며 그이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을 꾸리는가를 느낍니다.


.. 우리는 흔히 사람을 찍고, 꽃을 찍고, 풍경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관찰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찍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꽃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는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시간이다. 사람의 몸에 묻은 시간, 꽃이 아니라 꽃에 핀 시간, 풍경이 아니라 풍경에 담긴 시간을 우리는 찍고 있는 것이다 ..  〈64쪽〉

 

 


 


 오늘 충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아침에 잠이 깨었어도 몸이 고단해서 일어나지 못했고, 끝내 시간을 많이 넘겼습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 7시간 걸려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아침에 길을 나서지 않으면 저녁에 위험한 터라, 오늘 같은 날은 길을 나서기 힘듭니다. 그래, 덕분에 오늘 하루는 서울에서 더 보내야 하지만, 서울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된 만큼, 오늘은 서울 인사동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전민조 님 사진 전시회에 조용히 한 번 더 보러 갈 생각입니다. 고작 스물여섯 장밖에 안 건 조촐한 사진 전시회이지만, 자기 마음과 삶을 고루 담아서 손수 뽑아내 걸어 놓은 저 사진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일도 좋다고 느끼거든요. 집에 하루 더 빨리 돌아가는 일도 좋지만, 하루 늦게 돌아가는 일도 나쁘지 않아요. 집에 빨리 가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즐기는 일이 목적이니까요. 뭐, 그래서 요새는 돈버는 일도 안 하고 있습니다. (4339.9.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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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자연사박물관 1
백남극 / 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뱀 - 지성자연사박물관 1
- 글쓴이 : 백남극, 심재한
- 펴낸곳 : 지성사(1999.3.3.)
- 책값 : 15000원


.. 뱀은 머리를 제외하고는 몸 전체가 땅에 닿기 때문에 다리가 필요치 않다. 좁은 빈틈을 지나갈 때는 다리가 없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또 다리가 없으니 앞다리를 받쳐 주는 어깨뼈도 당연히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뱀이 큰 먹이를 삼키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된다 ..  〈25쪽〉


 ‘뱀’이라는 짐승을, ‘쥐’라는 짐승을 굳이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지난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살았으니 뱀을 잘 알아야 했겠지만(뱀에 물려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요즘 같은 때, 뱀을 알아서 어디에 쓸까요. 아마도 그림책으로만, 또는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로만 만날 뱀이라고 봅니다. 뱀 하면 곧바로 이어서 떠올릴 만한 개구리나 쥐도, 시골에서조차 하루하루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는 더욱 자취를 감추겠지요. 그나마 ‘뱀’은 이렇게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주기는 하는데, ‘쥐’­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참새’나 ‘비둘기’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 뱀 쪽에서 보면 독액 분출은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시간을 버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  〈66쪽〉


 사람 아닌 목숨붙이 삶을 알아보거나 헤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갈까요. 아이들은 왜 짐승 기르기를 좋아할까요.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는 왜 온갖 짐승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야구니 축구니 농구니 뭐니 하는 운동선수단 상징물에 짐승이 많이 쓰일까요. 짐승들을 사랑해서? 짐승들은 우리 이웃이라서? 이 세상은 사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터전이라서?


.. 이처럼 뱀의 천적들은 많이 있으나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잘 이루어져 있어 뱀의 생존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 인간들이 보신문화에 의한 상업주의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뱀을 잡아 생존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  〈56∼57쪽〉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느끼고, ‘우리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는 데에, 뱀이고 쥐이고 다른 짐승이고 살피고 헤아리는 뜻이 있을까요. 때로는 동물실험을 한다면서 살피기도 하겠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살피기도 하겠지요. 이 모두를 넘어서 누구나 즐겁게 어울리고,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뜻이 있을까요.

 뱀도 쥐도 개구리도, 참새도 비둘기도 까치도, 지렁이도 바퀴벌레도 개미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목숨붙이고 소중한 자기 삶을 꾸립니다. 뱀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며, 개미한테도 하느님이 있지 싶습니다. 밥이 되어 준 쌀한테도, 반찬이 되어 준 배추와 무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지요. 우리가 《뱀》과 같은 자연생태 이야기책을 펴내고 찾아서 읽고 헤아리는 일은, 우리 둘레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고 있는 하느님을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남극, 심재한 님은 뱀을 사진으로 찍고, 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저는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고, 헌책방과 책과 우리 말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어쩌면, 백남극 님과 심재한 님은 뱀을 보며 세상을 읽고, 저는 헌책방을 보며 세상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4339.8.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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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김영갑 1957∼2005
- 사진ㆍ글 : 김영갑
- 펴낸곳 : 다빈치(2006.5.15.)
- 책값 : 45000원


 비싸지 않은 사진책이 있으랴만, 사진책 《김영갑 1957∼2005》도 만만치 않은 값입니다. 성남훈 씨가 낸 사진책 《유민의 땅》(눈빛,2006)은 5만 원이고, 강운구 님이 낸 사진책 《우연 또는 필연》(학고재,1994)은 9만 원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을 모은 《은자의 나라 한국》(YBM Si-Sa,2002)는 98000원이에요. 이렇게 따지고 보면, 《김영갑 1957∼2005》에 붙은 45000원은 그럭저럭 붙은 값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5’보다는 ‘0’을 붙여 준다든지, ‘4’보다는 ‘3’만 붙여 주어도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83쪽〉


 스무 해 남짓, 아무도 돌보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제주섬 오름을 사진으로 담은 김영갑 님입니다. 더욱이 그냥 사진도 아닌 파노라마사진으로만 담았습니다. 김영갑 님이 꾸준하게 제주섬 오름을 파노라마로 찍으니, 하루하루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고, ‘그거 하나만 찍는 사람’쯤으로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59쪽〉


 김영갑 님뿐일까요. 다른 사진작가를 볼 때에도, 글쟁이를 볼 때에도, 그림쟁이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나 예술에 몸바친다고 하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들 보통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너, 그거 왜 하니? 밥이 되니, 돈이 되니? 뭐가 되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꾸만 돈-힘-이름이 있는 쪽으로 우리 눈길을 돌리라 합니다. 자, 그래서 그런 쪽으로 눈을 돌린다 칩시다. 돈한테 눈을 돌려 돈을 얻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일는지요. 힘한테 눈을 돌려 어마어마한 권력을 움켜쥐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참뜻일는지요. 이름한테 눈을 돌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이름값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 우리가 꾸려 가는 삶일는지요.

 

 말이 아닌 사진으로, 몸짓 발짓 손짓에다가 마음짓까지 모두 담아낸 사진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김영갑 님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붓을 놀려 글을 몇 글자 끄적이기도 합니다. 사진만 보아서는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이 드물고, 사진을 보면서 우리 삶터를, 자기 자신을 느끼거나 헤아리는 사람이 참 없기 때문입니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  〈23쪽〉


 김영갑 님은, “들판의 야생화들을 한 다발 꺾어 병에 꽂아 두면 벌과 나비가 찾아들었다. 그 녀석들도 꽃 속에서 한참을 놀다 가곤 했다. 꽃을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을 볼 때마다, 내 사진도 그래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요란스럽게 떠벌리지 않더라도 말없이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두 사람 사진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 온몸을 던져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103쪽)” 하고 말하면서 자기가 사진 찍는 뜻을 밝힙니다. 이렇게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바쳐야 이룹니다. 하나되어야 만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스스로 곰삭여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뒷사람한테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북돋우고 알뜰하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찍어 온 사진입니다. 김영갑 님이 찍지 않아도 제주섬 오름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김영갑 님이 남기지 않았다면 제주섬 오름 모습이 나날이 바뀌고 무너지고 개발과 돈벌이 땅놀음에 사라져 버렸다고도 하겠지만, 이렇게 바뀌고 무너지는 우리 삶터도 우리 모습이요 역사일 테지요. 이런 우리 모습과 역사 가운데 한 자락을 붙잡은 김영갑 님 사진책 《김영갑 1957∼2005》입니다. 스물 몇 해에 걸쳐 모아낸 사진들인데, 이 사진책 하나 집어들고 스물 몇 해에 걸쳐서 잘 간수하면서 즐길 수 있다면, 책값은 그다지 안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뭐, 저도 스무 해쯤 꾸준하게 즐길 마음으로 이 사진책을 선뜻 샀습니다. (4339.7.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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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 - 임응식 회고록
임응식 지음 / 눈빛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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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
- 글쓴이 : 임응식
- 펴낸곳 : 눈빛(1999.7.20.)
- 책값 : 20000원


 대여섯 해 앞서, 서울 서교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이라는 책을 한 권 본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책 겉싸개가 없기도 했지만, 1999년에 나온 책이 무슨 2만 원이나 하나 싶어서 마음에 안 들었고, 그다지 읽을거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 1930∼40년대 당시 부산은 일본군의 주요 요새였다. 군사기밀보호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 데나 카메라 들이대다가는 영락없이 잡혀갔다. 사진을 찍으려면 요새 사령관이 발부하는 허가증이 있어야 했으며, 촬영이 끝나면 밀착인화와 함께 원판을 헌병대에 제출해서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촬영 금지구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좋은 피사체가 있어도 카메라를 댈 수 없었다. 찍고 싶은 유혹을 못 견뎌서 망원렌즈로 한 컷 어떻게 슬쩍 했다가는 검열 때 걸려서 치도곤을 맞기도 했다. 또 1941년부터는 감광재료가 배급제로 되었고, 1944년부터는 군기보호법에 의한 촬영금지 지역 밖이라 할지라도 20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는 찍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제가 한국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식민지의 국민들은 오나 가나 구박이고 천대고 비하였다 .. 〈39쪽〉


 온삶을 사진 하나에 바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진을 찍는 마음’,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 ‘사진과 우리 삶’을 견주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얼마 없다고 느껴서 아쉽다고 생각했고, 그냥 헌책방에 서서 대충 조금 읽다가 말았습니다. 그리고 대여섯 해가 지난 얼마 앞서. 이 책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사서 읽기로 합니다.


.. 일황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을 들은 것은 당시 거주하던 도쿄 시내의 어느 아파트에서였다. 라디오 앞에 있는 일본인들과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의 의미와 나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됐구나 하는 기쁨의 그것이었다 ..  〈46쪽〉


 문득,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사진을 찍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어온 몸가짐이나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다룬 글을 ‘어떤 틀에 박힌 글’로만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응식 님이 쓴 회고록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은 말 그대로 ‘임응식이란 사람 하나가 걸어온 사진밭, 사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고, 어떤 큰 이야기,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데, 이 책에서 다른 것을 느끼거나 찾으려 했구나 싶습니다. 한편, 바로 이처럼 있는 그대로 수수하게 펼치는 이야기에서 사진을 찍는 마음과 사진을 바라보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엉뚱한 자리에서 어긋난 생각으로 책을 느끼려 했구나 싶어요.


.. 그림은 돈이 되어도 사진은 돈을 까먹을 뿐인데도 나는 아직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운명론이랄까, 소명의식이라 할까, 내게 주어진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이루어 왔고, 그것이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진 재산이며 보물인 것이다 ..  〈24쪽〉


 아하,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2000년 즈음만 해도 ‘사진찍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눈에 제대로 안 들어왔겠다 싶어요. 이제 저도 어느덧 사진을 찍은 지 아홉 해가 되었고, 조금만 있으면 열 해째가 됩니다. 그동안 찍은 수만 장에 이르는 사진, 잃어버려서 새로 갖춘 사진장비 들을 헤아려 보면, 사진을 찍어서 돈이 되어 본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고, 그동안 사진에 바친 돈만 어마어마합니다. 웬만한 중형차 한 대를 살 만한 돈을 사진에 쏟아부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태껏 어느 한 번도 ‘돈 안 되는 사진을, 그것도 헌책방 한 가지만 찍어 온 사진을 아쉽거나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마음은 임응식 님도 마찬가지였고, 이렇게 돈이 되건 말건 자기가 즐기는 일이며 보람 또한 듬뿍 느끼는 일이기에 꿋꿋하게 이어온 길이라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려온 사진 삶이라면, 이 회고록을 읽어내는 동안 제 자신이 사진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을 다소곳하게 추스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내가 걸어온 韓國 寫壇》을 집어서 읽는 내내 이야기가 하나하나 마음에 콕콕 새겨져서 금세 읽게 되더군요. 겪어 보니까, 이제 저도 사진 삶을 꾸린다고 할 수 있다 보니까 비로소 책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4339.6.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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