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언젠가 만날 - 인연을 찾아 인도 라다크로 떠난 사진가 이해선 포토에세이
이해선 글.사진 / 꿈의지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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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5



여기에 있으니 함께 만납니다

― 인연, 언젠가 만날

 이해선 글·사진

 꿈의지도 펴냄, 2011.2.25.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알거나 잘 모릅니다. 무엇을 잘 아느냐 하면, 사진을 찍으려면 ‘내가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서지 않은 곳에서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이 아니더라도 ‘바로 그곳에 있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모델을 찍는 패션사진도 모델과 한자리에 있어야 모델을 찍습니다. 패션사진에서 ‘바로 그곳’은 모델과 서는 무대입니다.


  한편, 무엇을 잘 모르느냐 하면, 멀리 날아가야 ‘사진을 찍을 만한 바로 그곳’을 찾지 않는다는 대목을 잘 모릅니다. ‘사진을 찍을 만한 바로 그곳’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티벳이나 네팔이나 인도나 부탄으로 날아가면, 한국사람은 ‘두멧자락(오지)’으로 찾아가는 셈입니다. 이와 달리, 티벳이나 네팔이나 인도나 부탄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면? 이때에 티벳사람이나 네팔사람이나 인도사람이나 부탄사람한테 한국이 바로 ‘두멧자락(오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인도 라다크가 ‘두멧자락’일 테지만, 인도 라다크에서는 한국이 두멧자락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에서도 한국이 ‘두멧자락’이 되며, 인도에서도 인도가 ‘두멧자락’이 됩니다. 두멧자락이란 어디일까요? 내가 두 발로 디디지 않은 곳이 두멧자락입니다. 고작 100미터쯤 떨어진 한 동네라 하더라도 나 스스로 그곳에 발을 디딘 적이 없으면 내 집에서 고작 100미터쯤 떨어진 곳도 두멧자락입니다. 서울에 살며 부천이나 인천에 나들이를 간 적이 없이 마흔 해를 살거나 예순 해를 살았으면, 서울내기한테 부천이나 인천은 두멧자락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는 이해선 님이 빚은 사진책 《인연, 언젠가 만날》(꿈의지도,2011)을 읽습니다. 이해선 님은 “얼굴도 모르는 한 소년의 주소를 달랑 들고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다. 벌써 십 년 전 일입니다. 대부분의 초보 여행자들처럼 지도에 그려져 있는 지명 모두를 두 발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시간이었지요(4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주소 하나’만 챙겨 스무 시간을 날아 이웃나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소 하나’조차 없이 마흔 시간을 날아 이웃나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열 시간 넘게 버스를 달려야 찾아갈 데가 꽤 많습니다. 서울에서 길을 나서면 열 시간 넘게 버스를 달리는 곳은 거의 없지만, 시골에서 길을 나서면 열 시간 넘게 버스를 달려야 하는 곳이 아주 많습니다. 이를테면, 전남 고흥에서 강원 양양을 가려 한다면 얼마쯤 걸릴까요? 가장 빠르기로는, 고흥에서 서울을 거쳐 양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무척 많이 돌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전남 강진에서 경북 울진으로 가려 한다면 얼마쯤 걸릴까요? 가장 빠르기로는, 강진에서 부산을 거쳐 울진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도 참으로 많이 돌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전북 임실에서 강원 태백으로는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강원 인제에서 경남 합천으로는 어떻게 갈 만할까요?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그리 어렵잖이 찾아갈 만하지만, 막상 서울이나 부산에서 이러한 시골자락으로 나들이를 다니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그리고, 이 시골자락에서 저 시골자락으로 나들이를 다니는 사람도 아주 드물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국에서 살며 한국 골골샅샅 두루 다니는 사람이 대단히 적습니다. 한국에서 인도 라다크를 찾아가는 길보다, 한국 서울에서 살며 영동이나 영주나 진천이나 장수를 찾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어요. 한국에서 티벳이나 버마나 베트남이나 칠레나 브라질 같은 데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곧잘 만날 테지만, 한국에서 청양이나 태안이나 곡성이나 칠곡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디에서 만날 만할까요. 밀양에서 송전탑 싸움이 불거지기 앞서 밀양을 찾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해남이나 고흥에서 핵발전소 싸움이 불거질 적에 해남이나 고흥을 찾은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이해선 님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처 없이 떠돌던 내 삶이 히말라야 오지에 붙박혀 살아온 한 여자의 삶 앞에서 갑자기 초라해졌습니다(48쪽).” 하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한 곳에서 100년 가까이 살다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저녁노을처럼 조용했습니다(57쪽).” 하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곳에서 백 해 가까이 살다가 숨을 거두는 사람은 아주 고즈넉하면서 조용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백 해 가까이 살다가 숨을 거두는 사람도 아주 고즈넉하면서 조용해요.


  오늘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살지만, 이런 사회 얼거리에도 ‘처음 태어난 시골자락’에서 그대로 눌러 지내는 할매와 할배가 아주 많습니다. 어쩌다 한두 차례 ‘도시에 있는 아들딸 만나러 나들이를 다닌 일’이 있는 할매와 할배도, 나이가 들면 더 도시마실을 못 다닙니다. 그저 이녁 고향 터전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다가 고즈넉하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를 밟거나 독일을 밟을 적에 자유일까요? 비행기를 한 번도 탄 적이 없어도 마음이 홀가분하면 자유일까요? 온누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면 자유일까요? 고향 삶터에서 흙을 가꾸고 나무를 심으면서 삶을 지으면서 마음이 아늑하면 자유일까요?





  이해선 님은 “곰파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승려가 되겠다며 붉은 옷을 나풀거리며 뛰어다녔습니다. 붉은 치맛자락이 어릴 적 입었던 한복 같아서 친근하게 다가옵니다(300쪽).” 하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세상과 격리된 채 사원에서 공부하는 어린 아이들은 책가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눈으로 고립되는 겨울, 헬기에서 떨어뜨려 주는 비상식량 마대자루가 아이들의 책가방이었습니다. 내가 여분으로 가져간 대형마트의 글씨가 새겨진 비닐봉지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책가방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메고 간 카메라 가방을 만져 보고 또 만져 보며 부러워했습니다(349쪽).” 하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비닐봉지이든 사진기 가방이든 어느 쪽이 더 낫거나 덜 낫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으며,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즐겁게 쓰면 즐겁습니다. 기쁘게 누리면 기쁩니다.


  높다란 멧자락에 있는 절집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비닐봉지 하나도 기쁘게 맞이하기에 기쁘게 웃으면서 가방으로 쓸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를 곁에 두고 지내는 한국사람은 비닐봉지가 너무 흔해빠지다 보니 비닐봉지를 한 장 얻어도 기쁘게 맞이할 줄 모르고 기쁘게 웃을 줄 모릅니다.


  백만 원짜리 가방을 선물받아야 기쁘지 않습니다.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기쁘지 않습니다. 기쁘게 쓸 가방이 있을 때에 기쁩니다. 기쁘게 찍을 사진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사진기를 쥐어야 기쁩니다.


  평화를 찾으려면 평화를 찾으면 됩니다. 평화를 찾으려고 굳이 나들이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찾으려면 사랑을 찾으면 됩니다. 사랑을 찾으려고 애써 온갖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습니다. 꿈을 찾으려면 꿈을 찾으면 됩니다. 이 일 저 일 붙잡는다고 해서 꿈을 찾지 않습니다.


  이해선 님은 이 책 첫머리 즈음에서 “마음의 평화는 단순함으로부터 나오나 봅니다(50쪽).” 하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길은 아주 쉽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울 자리는 아주 가까운 데에 있습니다. 바로 나한테서 샘솟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릴 평화는 바로 내가 스스로 길어올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으니 함께 만납니다. 내가 누군가를 찾아나설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만나고 싶은 그대’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삶을 기쁨으로 맞아들여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는 그대가 나한테 찾아올 수 있는 까닭은, ‘내가 그리는 그대’가 찾아오는 내가 바로 이곳에서 한결같이 삶을 기쁨으로 맞이해서 살림을 여미기 때문입니다.


  웃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노래하면서 사진을 읽습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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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이한구 지음 / 눈빛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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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11월호에 함께 싣는 글이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6



온마음 다해 사랑하는 사진

― 군용

 이한구 사진

 눈빛 펴냄, 2012.10.16.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들꽃이 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들꽃이 피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들꽃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들꽃이기 때문입니다.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서 동백꽃이 피는 이른봄을 맞이해야 비로소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백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만 헤아린다면, 옷이나 가방이 새긴 들꽃 그림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찻잔이나 책에 새긴 들꽃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하고 잇닿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꽃을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찻잔에 들꽃 사진을 새기려면, 맨 먼저 들꽃한테 찾아가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을 테지요.


  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웃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과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사로잡혀 골목에서 놀지 못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골목놀이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골목동네를 밀어내고 들어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 놀이터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러한 것을 빗대어 ‘골목놀이 어린이’ 이야기를 곰곰이 짚을 수 있습니다.



.. 군입대 통지서가 나왔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놀라진 않았으나, 몇 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늘 해 오던 대로 카메라를 들고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어슬렁거렸는데 유독 휴가 나온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






  이한구 님은 《군용》(눈빛,2012)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책에 깃든 군대 모습을 돌아보면, 함부로 찍을 수 없는 모습이라든지, 군대에서 바깥에 비밀로 감추는 모습을 엿볼 만합니다. 이한구 님은 책끝에 몇 마디를 붙이면서 “촬영한 필름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피엑스에서는 흑백 필름의 현상이 불가능했다. 비닐봉지로 싸서 땅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필름에 빗물이 스밀까 봐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하고 밝힙니다. 군대에서 현상이나 인화를 하기 힘들기도 했을 테지만, 현상과 인화를 했더라도 이 사진을 섣불리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군대 바깥에서는 ‘아무것 아니네’ 하고 여길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군사기밀 위반’이라고 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사기밀을 들먹이는 군대에서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급이 있는 간부가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사진을 찍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건 철책에서건 참호에서건 지오피 초소에서건 수색이나 매복을 하는 때이건 깊은 두멧자락에 천막을 치고 여러 날 묵으며 훈련을 할 때이건, 간부들은 거리끼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열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대대장이나 연대장이나 사단장 상장을 줄 적에도 사진을 찍으며, 단체행사나 진급신고를 할 적에도 사진을 찍어요.


  여느 사병은 사진기를 몰래 숨겨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사관이나 중대장이 틈틈이 관물검사를 하지만, 사병끼리 숨긴 사진기는 거의 들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숨깁니다. 서로서로 아주 깊은 곳에 사진기와 필름을 감춥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을 돌이키면, 필름 한 통조차 군대에 못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있던 군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라는 곳에 있었는데, 지도로 보면 남녘 땅이 아닌 북녘 땅이었습니다. 지오피에서 내려와 주둔지에 있더라도 외출이나 외박을 ‘리 단위 작은 마을’ 언저리에서 맴돌았고, 이곳에서 몇 곱에 이르는 바가지를 쓰곤 했습니다.





.. 가자, 최전방으로.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후방에서 뭉개지 말고 최전방을 겪기로 마음을 굳혔다. 역으로 생각하면 입대는 내 삶에서 최전방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군대. 외부에서 주어진 의미 외에,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병이면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군대에서 찍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돈과 이름과 힘이 없으면 모두 끌려가는 군대라는 곳에서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민주다 평등이다 평화다 하고 외치더라도, 군대에서는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켜서 적군을 무너뜨리려는 뜻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줄을 대어 널널한 곳으로 빠지는 사람이 많고, 아무런 줄이 없는 사람은 가장 막다르거나 고된 멧골짜기 추운 곳으로 가기 일쑤입니다. 내가 군대에 있던 1995∼97년만 하더라도 도시 인구가 아주 많았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매우 적었는데, 내가 있던 군대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들어온 사람과 여느 공장 일꾼으로 있다가 들어온 사람이 아주 많아 ⅔를 차지했어요.


  사내는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들어가서 겪기로는, 군대에 가면 거친 말을 배우고 주먹질에 길들며 계급과 신분에 따라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제도권 질서에 얽매입니다. 서로 사람답게 아끼는 사랑이나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기로운 삶을 가꾸는 길을 배우지 못합니다. 게다가 젊은 사내를 꽁꽁 틀어막은 뒤 곧잘 성인비디오를 틀어 주는 군대이니,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성교육이나 사랑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사내는 가시내를 가시내가 아닌 성 노리개로 바라보는 눈길에 젖어듭니다.


  사회에 환하게 드러나지 않은 군대 모습이라고 할 텐데, 영화를 찍는 이는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를 무대나 장치로 되살려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군대에서 겪은 대로 머릿속으로 되살려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군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이루는 이야기인 사진은, 사진기도 필름도 못 들여오도록 하는 군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군대에서 1회용사진기를 썼습니다. 소대나 분대에서 돈을 모아 1회용사진기를 한 대 장만하기로 말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누군가 휴가를 나가거나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올 적에 1회용사진기를 챙겨서 가져와야 하는데, 휴가자나 외출자가 부대로 돌아올 때에 경계근무를 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찬찬히 따집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가까운 사이라면, 이녁한테 줄 선물을 미리 챙겨 사진기를 봐 달라 말합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깐깐하다면, 1회용사진기를 비닐봉지로 싸서 땅에 파묻고 부대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밤에 경계근무를 서러 나올 적에 ‘아까 파묻은 자리’로 몰래 조용히 가서 캡니다.





..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승리부대에 배치됐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작고 애잔한 것들이었다 ..



  분대와 소대마다 몰래 들여와서 찍은 사진은 다시 몰래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문방구에 맡겨서 필름을 찾고 사진을 뽑습니다. 원본필름은 문방구에서 바로 불살라 없앱니다. 우리는 사진 몇 장만 챙깁니다. 비무장지대 안쪽 지오피와 선점에서 내내 있었기 때문에, 사진기나 필름이 사열이나 검열이나 검사에서 걸리면 바로 영창으로 잡혀갔어요. 그런데, 몰래 사진기를 들여와서 몰래 찍고 몰래 찾은 사진은 하나같이 ‘금강산을 뒤로 하고 손가락 브이를 그린 모습이거나, 눈을 쓸다가 찍은 모습, 비가 내려 길이 깎였기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길을 다시 닦으려고 일하던 모습, 얼굴을 재로 새까맣게 발라서 야간행군을 하다가 찍은 모습, 내무반에서 깔깔거리며 놀던 모습’입니다. 이른바 군사기밀에 걸릴 만한 모습은 처음부터 찍을 일이 없습니다. 젊은 사내들이 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데에 갇혀서 쓸쓸하게 지내며 끼리끼리 웃고 노는 모습만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거친 말과 주먹과 발길이 오가지만, ‘군대 기념’으로 찍는 사진에는 웃고 놀며 까부는 모습만 가득합니다. 고작 스물을 살짝 넘긴 앳된 사내들이 개구지게 뒹구는 모습입니다.






.. 결국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상병이 되고 나서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이한구 상병의 방독면은 카메라인가? 카메라가 너를 살려 주나?” 방독면 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화학전 대비 야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 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은 온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면서 찍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가 깃든 《군용》에도, 사진가 아닌 여느 군인이던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웃고 울며 찍은 ‘기록’에도 애틋한 삶이 흐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군대에서 온갖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군인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고 스스로 군대살이를 사진으로 담으라 하면 어떤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을 수 있을까요. 군대는 전쟁훈련을 시키는 곳이라 평화와 동떨어지지만, 군인이 되어야 하는 젊은 사내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면, 평화나 사랑이라는 싹이 살짝 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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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그늘
손승현 지음 / 사월의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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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에 쓴 이 느낌글은, 사월의눈 출판사에서 '알라딘 유통'을 안 할 적에 썼다. 엊그제부터, 사월의눈 출판사에서 이 사진책을 알라딘에서 유통한다고 알린다. 그래서 부랴부랴 새로운 글로 띄운다. 이제 조금 더 널리 알려지면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빈다~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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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3월호가 나왔다. 어제 낮에 우리 집에 왔다. 정기구독자한테는 어제 왔으니, 이제 책방에도 배본이 되었을까. <포토닷> 이번 호에 실은 사진비평을 올린다. 사진책 <밝은 그늘>은 인터넷책방에도 여느 새책방에도 없기에 손승현 님 다른 책에 이 글을 붙인다. 이 사진책을 장만하고 싶은 분은 https://www.facebook.com/aprilsnowpress '사월의눈' 출판사 누리집으로 들어가서 여쭈면 된다.(20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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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44

 


어느 자리에서 찍는 사진입니까
― 밝은 그늘
 손승현 사진
 사월의눈 펴냄, 2013.10.31.

 


  여러 사람이 어느 곳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들이나 골짜기나 바다나 숲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여러 사람은 나들이를 간 곳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고는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만 담을 수 없겠다고 여겨, 서로서로 사진기를 가방에서 꺼냅니다. 저마다 찰칵찰칵 찍습니다. 이때에,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여러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이들이 찍은 사진 가운데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모델을 앞에 두고 사진작가 여럿이 둘러싸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때에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나 운동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모인 신문기자가 대통령이나 운동선수를 둘러싸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때에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뜻밖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나,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똑같은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적에도 노상 다른 사진이 태어나고, 이웃이나 친척이나 동무가 찾아와서 사진을 찍을 적에도 늘 다른 사진이 태어납니다.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면서 찍는 사진은 늘 다른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스럽네 하고 느끼면서 찍는 사진은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드러납니다.

 

 


.. 몽골의 경제성장률이 17%, 작년이 12%, 올해도 15%인데 90% 이상이 모두 광산개발과 관련된 지표다. 몽골에 갈 때마다 울란바타르 풍경이 급속도로 바뀐다. 그 안에서 유목민의 삶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마다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 사람들이 몰린다. 몽골의 인구가 300만 정도다. 그런데 울란바타르 주민의 비율이 22% 정도였다가 지금은 40%가 넘어간다 … 유목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들 중 중학생 되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한다. “도시 가서 택시 운전기사 아니면 광산 갈 거예요.”라고. 답이 딱 두 개다 ..  (70∼71쪽)


  이와 달리, 아주 똑같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찍은 사진이 아닌데, 참 똑같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표절’이나 ‘도용’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두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았는데, 왜 참으로 똑같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까요? 이때에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찍으려는 사진이나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려는 사진이 아니라, 어떤 욕심이나 꿍꿍이를 품었기 때문에 ‘표절’이나 ‘도용’이라 할 만한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림을 그린 고호 님은 밀레라는 분이 그린 그림을 수없이 따라서 그렸어요. 그런데, 고호 님이 그린 ‘밀레 그림’은 표절이나 도용이 아닙니다. 밀레라는 분이 그린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을 기쁘게 맞아들여 사랑스럽게 붓질을 했기에, 고호 님이 그린 ‘밀레 그림’은 새로운 그림이 됩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해돋이나 해넘이를 찍는다 하더라도, 어느 사진은 ‘누군가 찍은 사진을 흉내낸 듯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어느 사진은 ‘이야,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은 기법이나 표현법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자리에서 찍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제주섬 오름에서 사진을 찍은 김영갑 님을 떠올려 보셔요. 김영갑 님은 으레 똑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자리는 똑같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달랐어요. 김영갑 님은 이녁이 찍은 사진을 선보이면서 ‘똑같은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어요. 같은 자리에 서도 언제나 다른 사진이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름다움을 바라보거나 느끼면서, 내 이웃한테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사랑스러움을 깨닫거나 누리면서, 내 이웃한테 사랑스러움을 베풀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늘 따사롭습니다.


  꼭 어느 곳에 가야 멋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느 나라로 찾아가야 훌륭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꼭 인도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네팔이나 부탄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를 애써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외딴 두멧시골까지 가야 다큐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몸매 잘 빠진 모델을 찾아야 패션사진이 빛나지 않아요. 사진을 찍으려면,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나누려면, 스스로 마음을 살찌워야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고 싶으면, 스스로 마음을 사랑과 꿈과 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 몽골의 밤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보면 경이롭다 못해 한동안 멍해지곤 했다. 여기서 평화로움의 정적을 깨는 단 하나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다 … 내가 마을에 가서 “사진을 찍어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나이드신 분들은 목욕을 하고 나왔다. 이를 닦고 와야 한다면서 가시는 분도 계시고. 응시 방식의 문제는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점에 있는 것 같다. 사진을 평생 몇 번밖에 안 찍어 본 분들이다. 사진을 뽑아 드리니 가장 중요한 물건들을 놓아 두는 가족사진 옆에 놓더라. 액자에 넣어서 ..  (74, 76쪽)


  손승현 님이 몽골에서 만난 ‘지구별 이웃’과 얼크러진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손승현 님은 몽골 시골자락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부풉니다. 그렇지만 몽골 시골자락을 벗어나 울란바타르라는 도시로 가면 가슴이 오그라듭니다.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미리내를 올려다보면서 손승현 님 스스로 미리내 마음이 되어, 미리내처럼 빛나는 이야기를 미리내와 같이 밝은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돈과 경제개발이 춤추는 도시 한복판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몽골 시내 한켠에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작은 ‘지구별 이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시내 한켠에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작은 ‘지구별 이웃’이 있어요. 부산 시내에도, 대구 시내에도, 인천 시내에도, 어디에나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이 있습니다.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을 바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을 사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이 주눅들도록 하는 사회 얼거리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 마음앓이를 가슴으로 삭히면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사진책 《밝은 그늘》에 나오는 아파트와 선글라스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몽골 사회는 몽골 바깥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요. 몽골 정치인과 기자와 작가는 몽골을 어떤 빛으로 그리고 싶을까요. 한편,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한국 바깥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요. 한국 정치인과 기자와 작가는 한국을 어떤 빛으로 그리고 싶을까요. 한국에서 사진가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빛과 그늘로 한국을 살며시 밝힐 만할까요.


.. 뉴욕에 있을 때 전세계에서 온 사진들을 보며 작가가 사는 지리적 환경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느꼈다.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몽골에 가서 본 것은 그들이 냉소적이고 비극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당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희망을 이 사람들을 통해서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그런 것을 보는 따뜻한 마음의 스파이가 되려고 했다 ..  (84, 86쪽)

 


  겨울이 지나면서 봄이 찾아옵니다. 봄이 흐르면 여름이 찾아옵니다. 여름이 무르익다가 가을이 찾아옵니다. 가을이 저물면서 겨울이 찾아옵니다. 봄이 되어 들판에 푸른 빛이 살아나면 비로소 딸기풀에 하얗게 꽃망울 맺습니다. 딸기꽃이 지는 늦봄부터 딸기알이 빨갛게 익습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여름 문턱에 딸기맛을 보았는데, 이제는 누구나 철없이 딸기알을 사다가 먹습니다. 맨땅에서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면서 풀벌레와 멧새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자란 들딸기나 멧딸기를 먹으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비닐집에 갇힌 채 기계소리를 듣고 난로 열기와 석유내음을 마신 철없는 딸기를 대형마트뿐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서조차 손쉽게 사다가 먹는 오늘날 한국 사회입니다.


  딸기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딸기를 찍을까 궁금합니다. 딸기와 얽힌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딸기가 마신 바람이나, 딸기가 받은 햇살이나, 딸기가 머금은 빗물이나, 딸기가 들은 맹꽁이 노래나, 딸기가 지켜본 제비춤을 ‘딸기를 찍은 사진’에 살포시 담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능금밭에 섰대서 능금을 사진으로 잘 찍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섰기에 바닷가와 모래밭을 사진으로 잘 찍지 않습니다. 몽골에 간대서 누구나 《밝은 그늘》과 같은 사진책을 빚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어 서로 사귀는 이웃으로 지내면, 몽골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콜롬비아에서도 동티모르에서도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언제나 밝은 빛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보입니다. 마음을 열어 서로 사랑하는 동무로 지내면, 늘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흐드러진 무지개 그늘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물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삶이 되고, 마음을 사랑해 사진이 됩니다. 마음이 자라며 꿈이 되고, 마음을 보살펴 사진이 되어요.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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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10 - Vol.11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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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3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 사진잡지 《포토닷》 11호

 포토닷 펴냄, 2014.10.1.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 작가상’을 노순택 님한테 주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아직 ‘국립사진관’이나 ‘국립사진전시관’이 없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사진전시도 하고, 이렇게 사진가한테 주는 상도 ‘미술관’에서 줍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11호에서는 이 이야기를 “성실한 사진가 노순택이 이 ‘실성’한 시대에, ‘넝마주이’처럼 수집한 수상한 장면들이 국가기관이 수여하는 최고의 미술상을 차지하게 된 최근의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48쪽/최연하).”와 같은 말로 차분히 다룹니다.


  노순택 님이 ‘올해를 밝힌 작가’로 꼽힐 수 있는 까닭이라면 아무래도 ‘등돌리지 않는 눈길’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그곳 이야기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담으려고 했던 몸짓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늘 그곳에 있어야 그곳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곳에 있지 않다면 그곳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늘 그곳에 있어야, 그곳 이야기를 가슴으로 담아서 글로 적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꾼이든 글꾼이든 그림꾼이든 모두 ‘오늘 바로 그곳’에서 함께 살면서 숨을 쉬어야 비로소 ‘내 이야기를 새롭게 빚어’서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포토닷》 11호에서 다루는 외국 사진가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레나 에펜디라고 하는 분은 “종종 바로 촬영을 시작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대개는 카메라를 꺼내기 이전에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얻은 신뢰와 친밀감은 카메라 앞에서의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내가 그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그들을 어떠한 잣대로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관찰자로서만 존재한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마음을 연다(68쪽/레나 에펜디).” 하고 밝힙니다.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이 서로 이웃이 될 때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이웃이 될 뿐 아니라, 동무가 되고, ‘같은 지구사람’이 될 때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든 ‘남’을 찍지 못합니다. ‘남’을 찍는 사진이라면 겉훑는 모습을 담을 뿐입니다. 남이 아닌 나를 찍어야 할 사진이고, 남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아니라 나를 이야기하는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남을 찍거나 남을 글로 보여준다고 해 보았자 ‘남’이 어떤 삶이거나 마음인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이라고 하는 사람은 바로 ‘남’ 스스로 보여주어야 제대로 드러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를 찍은 사진인지 남을 찍은 사진인지, 사진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찍은 사진인지 동무를 찍은 사진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사진에 사랑이 깃들었는가 안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이 드러나니까, 누구를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찍으려 했는지 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진에서 가장 이중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진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사진가는 상처받고 끔찍한 상황을 담아내 아이콘이 되는 이미지, 예술을 창조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 결과를 찬양하고, 사진가들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비극은 실재하고 사람들은 짐작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데, 우리들은 미적 감각을 지닌 예술가의 시선으로 이를 미화하고 특별하게 보이게 만든다(71∼72쪽/레나 에펜디).”와 같은 이야기는 무엇을 밝힐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다 하더라도, 우리는 ‘작가’가 아닙니다. 참말 우리는 ‘이웃’이나 ‘동무’입니다. 때로는 ‘한집 사람’입니다. ‘한식구’예요.


  예술이 되도록 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문화가 되도록 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이 즐겁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노래하려고 찍는 사진이요, 동무와 노래하는 기쁜 삶을 가꾸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무엇일까요.


  “어려서 제일 싫어했던 작가 중 한 명이 다이안 아버스였다. 무표정하고 우울한 사진이 증명사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외롭고 불확실했던 미국 유학 시절에 뉴욕의 한 서점에서 아버스의 사진집을 다시 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사진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걸 깨우치면서 ‘내가 사진을 잘못 배웠구나, 내 인생을 걸고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87쪽/변순철).”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을 잘못 배웠다면, 학교에서 잘못 가르쳤을까요, 배우는 사람이 잘못 받아들였을까요.


  무엇을 이야깃감으로 삼든,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는 온삶을 들일 노릇입니다. 글 한 줄을 쓸 적에도 온넋을 바칠 노릇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지어서 함께 먹을 적에도 온힘을 쏟을 노릇입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미래가 막막했을 때 사진관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시작했는데 일부러 아버지에게서 배우지 않았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아버지가 못 미더웠다. 그런데 대학에 와 보니 아버지가 했던 것을 학교에서 가르쳤다(103쪽/안주영).”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집에서 아버지한테서 배울 수 있던 사진을 굳이 대학교에 가서 배웠다고 합니다. 집에서 배우는 사진과 대학교에서 배우는 사진은 무엇이 다를까요. 졸업장이나 경력이 없는 작가와 졸업장이나 경력이 있는 작가는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사진’을 읽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작가 이름’을 읽는 사람인가요. ‘다이안 아버스’이니 놀랄 만한 사진이고, ‘이름 안 난 작가’이니 안 놀랄 만한 사진인가요.


  “열심히 촬영하고 돌아와 컴퓨터로 사진을 고른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진이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니 전부 애정이 가고 대상들도 다 예뻐서 그 사진이 그 사진 같다(125쪽/김주원).”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기에 이 사진이 모두 예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들여서 찍은 사진일 때라야 비로소 예쁩니다. 온힘을 기울여서 찍은 사진이라면 100장을 찍었을 때에 100장 모두 즐거우면서 반갑습니다. 온힘을 기울이지 못한 사진이라면 1장이나 10장만 찍었어도 영 못 미덥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안승일 님은 백두산 곁에서 하얀 숨결을 마시면서 하얀 사진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요? 우리들은,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빛깔이 되어 어떠한 마음을 어떠한 사랑으로 담아서 보여주는가요? 사진기를 손에 쥔 오늘날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사진길을 걷고, 사진책을 내거나 읽으며, 사진 하나로 생각을 주고받는가요(133쪽/최종규)?”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은 늘 마음으로 찍습니다. 내 마음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은 늘 삶으로 찍습니다. 내 삶이 어떤 길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사진이 거듭납니다.


  장비로 찍는 사진이 아닌,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손놀림이나 기계질로 찍는 사진이 아닌, 삶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작가와 비평가는 사진을 얼마나 어떻게 읽을까 궁금합니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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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카메라 - 카메라 우체부 김정화의 해피 프로젝트, 201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김정화 지음 / 샨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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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4



사진기 아닌 마음이 여행한다

― 여행하는 카메라

 김정화 글

 샨티 펴냄, 2014.9.25.



  사진기가 세 나라를 돕니다. 김정화 님은 디지털사진기를 여러 대 마련해서 맨 먼저 베트남에 찾아갑니다. 베트남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사진기를 건네어 스스로 제 삶을 사진으로 담도록 이끌고는, 이 사진기를 가지고 미얀마(또는 버마)로 넘어갑니다. 미얀마에서 비슷한 또래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사진기를 건네어 그 나라에서 그곳 아이들이 마주하는 이웃과 삶을 사진으로 담도록 이끕니다. 이런 뒤, 몽골로 넘어가서 몽골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누리는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도록 이끕니다.


  세 나라를 돈 사진기에 깃든 이야기가 흐르는 《여행하는 카메라》(샨티,2014)를 읽습니다. 김정화 님은 ‘사진기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과 느낀 생각을 차근차근 적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쥐자 베트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제일 많이 찍은 사진은 다양한 각도의 ‘자아도취적’ 셀카였다(23쪽).” 하고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은 ‘내 모습’이 여러모로 궁금했구나 싶습니다. 또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고 싶은가 봅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만으로도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런 각도에서 찍고 저런 각도에서 찍든 그렇지요. 나라와 겨레마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입니다. 생김새뿐 아니라 옷차림이 다릅니다. 옷차림뿐 아니라 머리카락 모양이 다릅니다. 이런 사진이 ‘자아도취적’ 사진이든 아니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웃나라 동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보다 ‘내 모습’이라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왜 그렇잖습니까. 편지로 사귀는 벗은 으레 ‘네 사진을 보내 주렴’ 하고 바랍니다. 얼굴 사진조차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바랍니다. 같은 사람 사진이지만 새롭게 찍어서 보내면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베트남 아이들이 ‘내 모습’을 수없이 찍었다면, 참으로 아이다운 마음이지 싶어요.


  그러니까,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을 생각하면 됩니다. 김정화 님은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냐 하는 질문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찍는 사람의 느낌이 전달되는 사진, 이야기가 상상되는 그런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34쪽).” 하고 말하는데, 베트남 아이들이 ‘내 모습’을 잔뜩 찍었어도, 이러한 사진에는 이러한 사진대로 이야기가 깃들기에, 이러한 사진을 받는 이웃 미얀마(또는 버마) 아이들은 이웃나라 동무들 살림살이와 하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여행하는 카메라》에 나오는 아이들 사진은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에서는 피사체의 표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웠다(40쪽).”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를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아이들은 늘 함께 지내는 한집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고, 이웃집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가까이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더없이 자연스럽고 사랑스레 찍을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빼어난 사진가들이 베트남이나 미얀마(또는 버마)나 몽골로 찾아가서 다큐사진을 찍더라도 아이들 사진처럼 찍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빼어난 사진가는 ‘이웃이나 동무나 한집 사람’을 찍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내 집 사람들이나 내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아주 자연스러우면서 사랑스럽겠지요. 누구나 스스로 가장 가깝고 살가운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주 훌륭하도록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사진찍기는 ‘마음찍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올 찍는 일이 사진찍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는 ‘이야기찍기’요 ‘노래찍기’가 되기도 할 테지요. 내가 이웃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찍고, 내가 오늘 하루 새롭게 부르는 노래를 찍습니다.


  김정화 님은 세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지만, 아직 세 나라 삶을 읽지 못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나눔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도 나눠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그런 말을 하니 혼란이 왔던 것이다(68쪽).”와 같은 일을 겪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 삶을 아직 덜 읽었기에 잘못은 아닙니다. 아직 덜 읽었으니 세 나라 아이들은 저희 삶을 찬찬히 알려주거나 보여줍니다. 세 나라 삶을 읽는 몫은 오로지 김정화 님한테 있습니다. 미리 헤아리든, 그 나라에 가서 찬찬히 오래 머물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든, 스스로 익히고 살필 노릇입니다.


  세 나라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껴안는다면 한결 깊고 넓게 바라봅니다. 한국에서도 그래요. 밀양 송전탑 사람들을 이웃으로 마주하면서 밀양에서 석 달을 살거나 세 해를 살아 보셔요. 사흘만 머물거나 세 시간만 지내다가 떠나 보셔요. 석 달과 세 해와 사흘과 세 시간은 사뭇 다르겠지요. 얼마나 머물면서 함께 하거나 지켜보느냐에 따라 내가 보고 느끼면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만큼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달라질 테고, 그만큼 내가 읽어서 깨달을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요.


  김정화 님이 엮은 책은 《여행하는 카메라》입니다. 사진기 하나를 여러 나라로 실어 나르면서 여러 나라 아이들이 새롭게 만나도록 다리를 놓는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곰곰이 읽어 보면, 여러 나라 삶과 사람과 이야기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이웃을 새롭게 읽거나 제대로 마주하는 ‘이웃 만남’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를테면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 몽골 아이들은 네 나이에 빨래도 직접 하느냐고 물었더니 함에르덴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도리어 의아해 한다(128쪽).” 하고 읊는 대목이 있는데, 오늘날 몽골 아이들이나 베트남 아이들뿐 아니라, 얼마 앞서까지 한국 아이들도 열 살 언저리에 집일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열 살 어린이도 풀을 뜯어서 소를 먹였고, 열 살 어린이도 빨래와 걸레질을 할 줄 알았습니다. 일본에서도 《오싱》이라는 작품이 아니어도 고작 일곱 살 어린이가 밥짓기를 할 줄 알았으며, 집일을 꽤 맡았으며, 동생도 돌보았습니다.


  열 살 어린이는 학교에 가서 학교 공부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왜 학교 공부만 해야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삶을 누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배우되, 집과 마을에서는 집살림과 마을살림을 함께 해야지요. 이것이 삶이니까요.


  김정화 님은 ‘여행하는 카메라’라는 일을 꾀하면서 《여행하는 카메라》라는 책도 내놓습니다만, 처음 품은 뜻은 “2차 때에 내가 하려는 사적인 실험 중의 하나가 사진 치료이다. 이런 질문들은 투사적 사진 치료의 기법이다(236쪽).” 하고 밝힙니다. 무엇을 치료하려고 ‘사진 치료’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달래거나 다독일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도 글로도 말로도 노래로도 춤으로도 밥 한 그릇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달래거나 다독일 수 있어요.


  ‘투사적 사진 치료’처럼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그저 사진기 하나로 ‘사진놀이’를 할 뿐입니다. 애써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일하면서 삶을 가꿉니다. 삶을 가꾸면 ‘치료’는 저절로 어느새 이룹니다. 따로 ‘치료’를 생각할 일이란 없다고 느껴요. 그저 ‘놀이’로 누리고, ‘삶’으로 맞이하면 됩니다.


  베트남과 미얀마(또는 버마)와 몽골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김정화’라고 하는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여겨서 받아들입니다. ‘김정화’라고 하는 사람이 저희를 돕는다든지 무엇인가 선물로 주려고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놀러오기를 바랍니다. 그저 이웃과 동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웃과 동무가 되자면,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나 자동차가 있어야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어 사귀면 이웃이나 동무가 됩니다.


  아이들은 사진놀이를 만나면서 재미있게 놀고, 재미있게 놀면서 천천히 삶을 새롭게 눈뜹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놀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사진기’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여행하는 고무줄’이 되어도 됩니다. 나라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모양새가 살짝 다르지만 꽤 비슷합니다. 한국에서 날아온 고무줄을 베트남 아이들이 놀고, 미얀마(또는 버마) 아이들이 놀다가, 몽골 아이들이 놀 수 있게 이어도 재미있습니다. 여러 나라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나서 느낀 이야기를 글로 쓰도록 이끌 수 있어요.


  ‘여행하는 고무줄’나 ‘여행하는 소꿉’을 꾀한다면, 굳이 사람이 징검돌이 되어 나르지 않아도 됩니다. 편지봉투에 고무줄이나 소꿉을 넣어서 보내도 돼요. 돌고 돌고 또 돌면서 함께 나누는 삶을 생각하고, 지구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을 돌아봅니다.


  사진기 아닌 마음이 여행을 합니다. 사진기를 빌어 마음을 한결 넓게 열 수 있기도 하지만, 사진기 아닌 나무젓가락으로도, 고무줄로도, 돌멩이 하나로도, 소꿉으로도, 나무조각으로도, 그림 한 점이나 연필 한 자루로도 마음을 여는 나들이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행하는 사진기’에 한결같이 따순 사랑이 감돌기를 바랍니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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