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길
사진사관학교 일우 엮음, 김홍희 기획 / 디자인하늘소(Designhanulso)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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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01



‘한길’인가 ‘일방통행’인가

― 이바구길

 김홍희·사진사관학교 일우

 디자인하늘소 펴냄, 2013.7.25.



  사진책 《이바구길》(디자인하늘소,2013)을 읽습니다. ‘사진사관학교 일우’에서 사진을 배우는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몇 장씩 찍은 사진을 책 한 권으로 그러모았습니다. ‘이바구길’은 부산 동구에 있는 산복도로를 걷다가 만난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넘긴 뒤, 책끝에 붙은 말을 읽습니다.


 “부산 동구의 ‘이바구길’은 고통을 감내한 자들이 자존감을 밝히는 길이다. 절망 속에서 울부짖는 희망도 아니며 실오라기 같은 자존심도 아니다. 도도히 고통을 딛고 선 자들의 자기 독백이다. 한숨도 아니며 한탄도 아니다. 모진 세파를 겪어 온 자신을 담담히 드러내는 길이다. 자랑할 것도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다(김홍희).”


  사진을 읽으면서 ‘사진에 찍은 동네’가 어떤 이야기를 담으면서 어제에 이어 오늘이 흐르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느 곳을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이 사진에 나오는 이웃’을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떻게 마주하려 했는가를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바구길 사람’일 수 있고, ‘이바구길 길손’일 수 있으며, ‘이바구길 나그네’일 수 있는 한편, ‘이바구길 구경꾼’일 수 있습니다. ‘사진사관학교 일우’ 사람들과 ‘김홍희’ 님은 어떤 사람으로서 이바구길을 걸었을까요? 어느 날 하루 걸었을까요? 여러 날에 걸쳐 걸었을까요? 여러 달이나 여러 해에 걸쳐 걸었을까요?


  이바구길을 어느 만큼 걷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봄에 걷든 가을에 걷든, 여름에 걷든 겨울에 걷든, 딱히 대수롭지 않습니다. 열 시간을 걷든 한 시간을 걷든, 날마다 몇 시간씩 걷든, 어느 하루 꼭 십 분을 걷든, 모두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걷는 시간’으로도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걷는 시간’과 맞물리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마음결’에 따라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마음결이 포근한 사람은 열 시간을 걷든 십 분을 걷든 포근한 숨결이 감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은 몇 해를 걷든 하루를 걷든 착한 눈빛이 서린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자리가 어두운 사람은 몇 달을 걷든 몇 분을 걷든 어두운 기운이 담긴 사진을 찍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 사진을 찍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이 깃듭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마다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이 다르니, 이러한 숨결을 좋다 나쁘다 잘됐다 안됐다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부산 동구의 이바구길을 일우 친구들이 찍었다. 이야기의 속성처럼 긍정적인 시선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사진은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모두 애정에서 출발했지만 관심의 표명은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이야기이고 그래서 다양한 삶이다(김홍희).”


  사진책 《이바구길》은 ‘여느 출사 사진책’하고 다릅니다. 사진을 깊고 넓게 배우려는 이들이 함께 배우고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걷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다만, 이 사진책에는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만 맴도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이란, ‘찍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와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를 함께 담기에 사진이 되는데, 사진책 《이바구길》에서는 ‘찍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에 치우쳤구나 싶어요.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무엇인지 여러모로 어렴풋합니다.


  볕이 좋은 날, 바다가 바라보이는 비탈골목집 옥상에 넌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는 사진에서 어렴풋하게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드러날 듯 말 듯하다가 끝내 이 사진에서도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는 좀처럼 못 드러났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드러나지 못했다고 해서 ‘안 좋은 사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진입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가를 수 없는 사진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한길이고, 어느 모로 보면 일방통행입니다. 볕이 좋은 날에 옥상에 빨래를 넌 사람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무엇을 생각하며 빨래를 널었을까요? 이러한 이야기와 손길과 숨결까지 사진에 담지는 않았구나 싶어, 사진책 《이바구길》은 어느 모로 보면 한길이지만, 어느 모로 보면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4348.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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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여행
신현림 지음 / 사월의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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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0



오늘 하루를 기쁘게 노래하는 사진

― 사과여행

 신현림 사진·글

 사월의눈 펴냄, 2014.7.23.



  오늘 하루는 기쁨입니다. 왜 기쁨인가 하면, 기쁨이기 때문에 기쁨입니다. 달리 까닭을 붙일 수 없습니다. 기쁨이니 기쁨이고, 기쁨인 하루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쁩니다. 오늘 하루가 기쁨인 줄 아는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스스로 부릅니다. 유행노래나 대중노래가 아니라, 저절로 태어나는 가락에 맞추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빙그레 웃습니다. 오늘 하루가 기쁨인 사람은 노래를 부르듯이 도마질을 해서 아침밥을 짓고, 한식구와 함께 기쁘게 밥을 먹은 뒤, 기쁘게 설거지를 하고, 기쁘게 걸레를 빨아서 기쁘게 방바닥을 훔치고, 기쁘게 집일을 건사할 뿐 아니라,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적에도 온통 기쁨물결입니다. 기쁘게 하루를 누리는 사람이 손에 사진기를 쥐면, 기쁨이 묻어나는 사진을 기쁘게 찍습니다.


  오늘 하루는 슬픔입니다. 왜 슬픔인가 하면, 슬픔이기 때문에 슬픔입니다. 달리 토를 달 수 없습니다. 슬픔이니 슬픔이고, 슬픔인 하루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슬픕니다. 슬픈 탓에 노래를 안 부릅니다. 슬프기에 옆에서 누가 노래를 불러도 시큰둥할 뿐 아니라 듣기 싫습니다. 슬픈 사람은 억지스레 겨우 아침밥을 짓고, 한식구가 모여앉는 자리조차 거북합니다. 말 한 마디 없이 꾸역꾸역 밥을 입에 집어넣다가 지겹고 짜증스러운 일을 하느라 고된 아침과 저녁이 됩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든 회사에 가든 밭에서 남새를 돌보든,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은 힘들고 지치며 한숨이 나옵니다. 슬퍼서 힘이 나지 않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기도 귀찮고,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있으면 이맛살을 찡그려 이도 저도 아닌 사진을 찍습니다.



.. 제가 태어나 사과나무 숲을 처음 봤던 날이 기억나요. 그만 흠뻑 반했던 날이요 … 사과는 태양과 바람과 비의 음료수예요. 갈증을 풀고 생의 활기를 주는 사과의 실체는 물이자 사랑입니다 ..





  남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내가 그리는 모습이요, 기쁨이든 슬픔이든 스스로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가난하거나 힘들어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배부르거나 돈이 많아도 고단하거나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느끼니, 이녁은 사진기를 손에 쥐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묻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하루가 꿈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꿈결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을 찍을 테지요. 오늘 하루가 노래라고 느끼거나 웃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노래가 흐르는 사진을 찍거나 웃음이 감도는 사진을 찍어요. 오늘 하루가 괴롭다고 느끼면, 사진을 찍을 적에도 괴로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음결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스스로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내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사진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기쁜 마음일 때에는 기쁘게 사진을 찍고, 기쁘게 사진을 읽습니다. 슬픈 마음일 때에는 슬프게 사진을 찍으며, 슬프게 사진을 읽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일 때에는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으며, 홀가분하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이론을 많이 익힌 사람은 사진이론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사진역사를 많이 살핀 사람은 사진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이론이나 역사를 따로 안 살피거나 거의 모르는 사람은 이론이나 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는 일이 드뭅니다.


  어떤 사람은 ㄴ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사진기가 가장 좋다고 여겨 이 회사 사진기만 씁니다. 어떤 사람은 ㅋ이나 ㅁ이나 ㄹ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사진기가 가장 좋다고 느껴 이 회사 사진기만 씁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어느 사진 한 장이 어떤 사진기로 찍었는지 거의 모르거나 아예 안 살핍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회사 사진기로 얻은 사진인가?’는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고 ‘누가 찍은 사진인가?’도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랑을 담는 여행이며, 그 사랑은 사진이 증거한다’라는 제 아포리즘으로 두 작업의 공통점을 말하고 싶어요. 다른 점은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사과를 들고 지구를 여행하며 찍은 거죠 ..



  사진이론을 잘 배워야 사진을 잘 읽지 않습니다. 내 마음결이 어떠한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읽습니다. 사진실기를 알뜰히 배워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내 마음결이 어떠한가를 또렷이 깨닫고 알아차리면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찍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기쁨이 드러나든 슬픔이 드러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슬픈 이야기나 아픈 이야기나 놀라운 이야기나 멋진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넉넉하게 담을 만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우리 삶을 밝히는 숨결이기에 반갑게 읽습니다.


  기쁜 이야기를 사진에 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를 사진에 담기에 덜 훌륭하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은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만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패션사진은 이쁘장하거나 놀라워 보이는 이야기만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기에 사진찍기요, 이야기를 느껴서 나누기에 사진읽기입니다.



.. 길과 길에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시와 사람의 이야기가 스며 있어요. 사과를 통해 그곳과 저는 깊이 이어지고 만납니다 … 그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싶어 사진 찍었어요 … 사과를 든 왼송르 쭉 뻗어 오른손에 쥔 사진기로 찍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 때가 있어요. 물론 춤출 때처럼 즐겁기도 하고요..




  신현림 님은 능금 한 알과 함께 나들이를 합니다. ‘사과’나 ‘부사’ 같은 이름도 있으나, 한국말은 ‘능금’이고, 먼 옛날 한국말은 ‘멋’입니다. 일본사람은 ‘링고’라는 말을 쓰며, 서양사람은 ‘애플’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떤 말을 쓰든 다 좋습니다. 그저 나라가 다르고 겨레가 다르며 자리와 때가 다를 뿐입니다. 사과이든 능금이든 애플이든 링고이든 멋이든 뭐이든 다 똑같습니다. 《사과여행》에서 신현림 님은 이녁 마음을 나누는 숨결을 곁에 두면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어디에서나 함께 있고, 어디에서나 함께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함께 꿈꾸는 숨결이 무엇인지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 예술은 속도전에 실려 가는 현재를 브레이크 걸어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심각하게 질문해야 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어요 … 영원을 향해 갑니다 ..




  바람이 불어 능금나무 가지를 살짝 건드립니다. 동이 트고 해가 솟으면서 능금나무를 햇볕이 따사롭게 어루만집니다. 해가 기울고 달이 뜨고 별이 돋으면서 포근한 기운이 능금나무 잎사귀와 꽃망울을 살살 간질입니다. 종달새 두 마리가 살짝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종달새 두 마리는 푸드득 날아가고, 이내 딱새와 박새와 참새가 사이좋게 날면서 능금나무 둘레를 맴돕니다. 직박구리가 날아와서 능금나무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를 콕 찍어 낚아챕니다. 뭇 새들 부리에서 살아남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천천히 허물을 벗어 고운 날개를 팔랑이는 나비로 거듭납니다.


  능금 한 알은 사람도 먹고 벌레도 먹으며 새도 먹습니다. 때로는 다람쥐도 먹고 숲짐승도 먹으며, 흙바닥에 툭 떨어진 능금알을 지렁이나 풀벌레가 먹기도 합니다. 개미도 먹고 달팽이도 먹습니다.


  능금을 먹은 여러 목숨은 능금똥을 눕니다. 능금 냄새가 나는 똥을 누어 흙한테 돌려줍니다. 흙은 능금 냄새가 나는 똥을 받아들여서 한결 기름진 까무잡잡한 고운 흙으로 거듭나고, 이 흙은 다시 능금나무를 살립니다. 능금나무는 능금똥으로 더욱 기름진 흙한테서 기운을 받아들여 줄기를 올리고 새롭게 꽃을 피웁니다.


  삶이 흐르듯이 사람이 자라고 나무가 자랍니다. 잎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앗이 깃들어 새로운 풀이나 나무로 깨어나고 싶습니다. 사람들 가슴에도 씨앗이 있어, 이 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면 사랑이 태어나거나 꿈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음밭에 심어서 태어나는 꿈과 사랑은 ‘시를 쓰고 싶은 꿈’일 수 있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 좋고, 어떤 사랑이든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는 시계를 보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해를 보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밥내음을 맡으면서 때를 읽습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안 보고 아무 때도 안 헤아립니다.


  사진책 《사과여행》을 가만히 넘기면서 신현림 님이 손수 지어서 누리는 삶을 떠올립니다. 어떤 빛일까요. 어떤 그림일까요. 어떤 노래일까요. 어떤 웃음일까요. 아마 어느 날에는 기쁜 노래가 가득하고, 어느 날에는 슬프디슬픈 생채기가 불거질 테며, 어느 날에는 마냥 허전하면서 시무룩할 테지요. 홀가분하다가 들뜨거나 설레는 날이 있고, 아이와 손을 맞잡고 신나게 춤을 추는 날이 있을 테지요.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삶을 오롯이 사진 한 장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늘 즐겁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삶을 알뜰살뜰 사진 한 장으로 여밀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긴긴 겨울이 끝나면 얼어붙은 땅뙈기가 녹으면서 딸기풀이 자라고, 하얗게 딸기꽃이 피는 사월을 거쳐, 빨갛게 소담스러운 멧딸기 익는 오월이 됩니다. 사진책 《사과여행》에 흐르는 푸르고 하야면서 바알간 열매가 애틋합니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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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저도 보고 싶네요.
˝사과는 순례중이다˝라는 말은 곧 신현림 본인이 순례중이라는 뜻으로 읽혀요, 사과를 통해서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숲노래 2015-01-14 09:43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소량인쇄로 살짝 태어난
예쁜 사진책인데
중앙매체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아서
아마 이 책이 나온 줄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느낍니다.

얼마 앞서 신현림 님은 `그림책`도 손수 내놓으셨는데
`순례하는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요

수이 2015-01-1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현림씨 사진 좋아해요. 저도 살짝 장바구니로 퐁당_^^

숲노래 2015-01-14 09:44   좋아요 0 | URL
작고 수수한 책에 깃든
작고 수수한 사진과 이야기로
마음에 따사로운 씨앗 한 톨 심으실 수 있기를 빌어요

[그장소] 2015-01-1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인은 이름에서.숲..이..느껴져서..좋아요.

숲노래 2015-01-15 03:48   좋아요 0 | URL
신현림 님은 숲을 사랑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토닷 Photo닷 2015.1 - Vol.14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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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00



사진 한 장을 나누고 싶어서

― 사진잡지 《포토닷》 14호

 포토닷 펴냄, 2015.1.1.



  사진잡지 《포토닷》 14호(2015.1.)를 읽습니다. 한국에 처음 찾아왔다고 하는 세바스치앙 살가두 님 모습을 사진으로 바라봅니다. 지구별에서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살가두 님은 한국에 와서 무엇을 느끼거나 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이녁 사진잔치가 열리는 자리에만 찾아가느라 바쁠는지, 심부름꾼을 옆에 두지 않고 홀가분하게 한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겨를이 있을는지, 심부름꾼이 옆에 있다면 심부름꾼은 살가두 님을 어디로 이끌고 무엇을 보여줄 만한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도시 문화와 문명만 만날까요. 새마을운동 뒤로 크게 뒤바뀐 시골살이를 돌아볼까요. 고속도로로 서울과 부산을 가로지르면서 창밖으로 스치는 모습을 지켜볼까요. 핵발전소에서 큰도시로 뻗는 송전탑을 바라볼까요. 끊이지 않는 자동차 물결이나 지하철을 둘러볼까요.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찍고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번역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강력한 도구다(17쪽/세바스치앙 살가두).”와 같은 말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사진 한 장이면 ‘다른 말’을 쓰더라도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마다 즐겁게 삶을 짓는 이야기를 헤아릴까요. 저마다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헤아릴까요. 저마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단한 삶을 헤아릴까요.


  “낮에는 극명하게 다른 공장이지만 밤이면 양쪽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은 힘 같은 게 느껴져요. 버려진 곳과 살아 움직이는 곳,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바라본 작업이에요(25쪽/장태원).”와 같은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공장을 사진으로 담는다 할 적에도 두 가지 모습을 엿본다고 합니다. 어느 한 가지로만 바라볼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모습만 있지 않을 테니까요. 온갖 물질과 문명을 만드는 공장이면서, 온갖 쓰레기와 매연을 내놓는 공장입니다. 공장에서 만든 물건으로 갖가지 문화와 예술이 피어나도록 하지만, 공장을 만들고 공장으로 자원을 가져가느라 지구별을 파헤치거나 망가뜨립니다.






  공장은 무엇일까요. 공장이 있어야만 돌아가는 도시란 무엇일까요. 도시란 무엇이고, 도시는 왜 공장이 없이는 버티지 못할까요. 공장이 없이 삶이 있으면 안 될까요. 공장도 도시도 아닌 보금자리와 삶자리가 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사진을 읽든 글을 읽든 늘 물음표입니다. 내가 나한테 묻습니다. 내가 내 이웃과 동무한테 묻습니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자신과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길 바라요(35쪽/이송희).”와 같은 이야기처럼, 사진 한 장으로 ‘내 이야기’를 너한테 들려주면서, 너는 ‘네 이야기’를 새롭게 그립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로 읽으면서, 어느새 내 이야기를 가만히 그립니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그릴 수 있도록 이끌기에 ‘사진 한 장이 지구별을 넘나들면서 읽힙’니다. 군말이나 덧말이 없어도 마음으로 이야기가 흐르기에 사진 한 장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만히 퍼집니다.


  “현재 쿠바 사진계의 가장 특별한 점은 다큐사진과 예술사진 사이에 전통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59쪽/넬슨 라미레즈 드 아레야노 콩드).”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와 예술이 달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예술을 갈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상업이나 패션을 나누어야 할 까닭이 없고, 보도사진이나 스냅사진이나 생활사진이 달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똑같이 ‘사진’입니다. 사진답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고, 사진다울 때에는 사진입니다.





  신문에 실려야 사진이 아니고, 영화 포스터나 광고 전단지에 실려야 사진이 아닙니다. 전시회에 걸린다든지 책으로 나와야 사진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담지 않으면 사진이 아닙니다.


  웃음뿐 아니라 눈물도 이와 같아요. 오늘 내가 이곳에서 아파서 흘리는 눈물을 담지 않으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98쪽/남택운)?”와 같은 이야기처럼, 사진 한 장으로 두고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진 백 장이나 사진 만 장이 있어야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사진 한 장이면 넉넉합니다.


  사진책 한 권이면 넉넉하고, 사진기 한 대면 넉넉합니다. 사진기 한 대와 필름 한 통이어도 넉넉하며, 작은 메모리카드 하나여도 넉넉합니다. 이리하여, “사진이 오직 기계질이나 기록뿐이라면 우리가 굳이 사진을 문화나 예술로 다룰 까닭이 없을 테고, 사진이 그저 기계질이나 기록뿐이라면 사진을 즐기거나 읽거나 나누거나 누릴 까닭이 없으리라 봅니다. 사진은 기계질이나 기록에서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기계를 빌어서 우리 마음을 나타내고 생각을 나눌 수 있기에, 사진을 문화나 예술로 다루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봅니다(125쪽/최종규).”처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야기잔치를 누리려고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니라,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려는 사진입니다. 남 앞에서 자랑하려는 사진이 아니라, 이웃과 손을 맞잡고 빙그레 웃으려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외국 사진가들은 높은 비용을 주고 대접을 해 주면서 우리나라 사진가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느냐고 많이도 싸웠다(108쪽/안성진).”와 같은 이야기처럼, 한국사람 스스로 아직 한국 사진문화를 일구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름난 사진가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돋보이는 사진가이지는 않습니다. 손놀림이 뛰어나거나 손짓이 대단한 사진가는 있을 만합니다만, 이야기 한 자락을 일굴 적에는 손놀림이나 손짓은 대수롭지 않아요. 투박한 손놀림도 사랑스럽고, 수수한 손짓도 아름답습니다. 이리하여, “한국 현대사진은 겉으로 화려하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속빈 강정이다. 작가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사진적 기반은 취약하다. 수도 서울 사대문 안에 사진가들이 제집처럼 드나들 곳이 있는가(115쪽/진동선)?”와 같은 이야기가 불거집니다. 온갖 사진잔치는 꾸준하게 있고, 여러 사진축제도 꾸준하게 있으나, 막상 ‘사진놀이터’라든지 ‘사진마당’은 마땅히 없습니다.


  사진책을 두루 갖춘 도서관이 한국에 몇 군데 있습니까. 사진책을 씩씩하게 펴내도록 하는 밑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진동선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쪽으로는 맞지만, 한쪽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어디에서나 만나서 어울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골목에서 어울리고, 시골마을에서 어울리면 됩니다. 숲에서 어울리면 되고, 바닷가에서 어울리면 됩니다.


  대학교에 사진학과가 있어야 사진이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사진학과 교수가 꾸준히 늘고, 사진학과 졸업생이 꾸준히 나와야 사진이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남다른 ‘사진마당’이 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사진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탕이 되면서 사진마당이 있어야 사진마당이 제대로 굴러갑니다.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다지지 않으면서 사진마당만 세운다면, 또다시 건축물 하나 늘릴 뿐입니다.


  “사랑이 어린 손으로 사진기라는 기계를 손에 쥘 적에 비로소 ‘사진’이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어리지 않은 손으로 사진기라는 기계를 쥔다면, 자칫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뜻으로 사진기를 손에 쥐었어도, 사진에 찍힐 사람한테서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고 찍는 사진이라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 모델을 찍거나 피사체를 다루는 사진이 아니라, 구도와 장면을 연출하는 사진이 아니라, 주제를 일방통행으로 강요하는 사진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사진이 될 때에 비로소 ‘사진’입니다(125, 127쪽/최종규).”와 같은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기계가 있어야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사진이 태어납니다. 기계가 빼어나야 사진이 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울 때에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고울 적에 사진이 곱고, 마음이 착할 적에 사진이 착합니다. 마음에 꽃이 피어야 사진문화에 꽃이 피고, 마음에 사랑이 싹터야 사진문화가 사랑스럽게 발돋움합니다.


  사진 한 장을 나누고 싶어서 빙긋 웃는 사진벗이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앞날을 꿈꿉니다. 4348.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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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
고홍곤 지음 / 지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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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8



우리를 곱게 둘러싼 꽃

― 굽이 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

 고홍곤 사진

 지누 펴냄, 2013.4.20.



  우리는 언제나 꽃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누구나 꽃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사람은 밥을 먹지 못하고, 꽃이 피기에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우리가 늘 먹는 밥은 언제나 꽃밥입니다. 밥그릇에 꽃송이를 놓기에 꽃밥이 아닙니다. 꽃처럼 곱게 지은 밥이라서 꽃밥이 아닙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어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꽃밥입니다. 사람이 먹는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벼꽃과 보리꽃이 피고 난 뒤 천천히 시들어 차근차근 무르익은 열매입니다.


  풀꽃은 풀알을 맺습니다. 풀알은 풀이 맺는 열매입니다. 나무꽃은 나무알을 맺습니다. 나무알은 나무가 맺는 열매입니다. 모든 알은 꽃이 깃들던 자리요, 모든 열매는 꽃이 새롭게 태어난 모습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꽃에 둘러싸여 살아간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꽃이 있어 열매가 맺어 밥을 먹으니, 우리 곁에는 언제나 꽃이 있습니다. 꽃이 피어 열매를 맺고 밥을 나누어 주는 풀과 나무는, 밥뿐 아니라 싱그럽고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꽃이 없으면 밥을 못 먹을 뿐 아니라, 꽃이 없을 적에는 숨을 못 쉽니다. 한쪽에는 밥이 되는 꽃이요, 다른 한쪽에서는 숨이 되는 꽃입니다.


  고홍곤 님이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정갈히 엮은 《굽이 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지누,2013)를 읽습니다. 고홍곤 님은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느낍니다. 그래요, 꽃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느낄 만합니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사랑을 베풉니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말을 가르치면서 삶을 물려줍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놀리기 입히고 씻기고 돌보면서 꿈을 짓습니다. 어머니는 꽃이요, 꽃인 어머니가 열매인 아기를 낳습니다. 열매인 아기는 가슴에 씨앗을 품으면서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고, 새로운 꽃으로 피어난 아기는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울 열매를 내놓아 씨앗 한 톨을 물려줍니다.


  꽃은 어떤 모습일까요? 온갖 모습입니다. 꽃은 어떤 빛깔일까요? 갖은 빛깔입니다. 꽃은 어떤 무늬일까요? 숱한 무늬입니다.


  사진책 《굽이 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를 들여다보면 꽃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릅니다. 꽃마다 한들거리며 짓는 춤사위가 조용히 흐릅니다. 구름을 등에 진 꽃, 오래된 골목집과 함께 살아온 꽃, 시골자락에서 무리를 지어 자라는 꽃, 관광지에 잔뜩 심긴 꽃, 아주 조그맣게 올라오는 수수한 들꽃, 꽃대를 올린 풀줄기가 나부끼는 풀잎사귀, 어머니가 아이한테 물려주고 베푸는 사랑처럼, 꽃이 지구별에서 흔들리고 춤추고 나부끼고 노래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사진마다 그득히 흐릅니다.






  우리를 곱게 둘러싸는 꽃은 싱그럽습니다. 우리를 곱게 둘러싸는 꽃은 사랑과 꿈을 속삭입니다. 귀를 기울여서 꽃노래를 들어요. 사랑노래와 꿈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가슴을 살찌워요. 내가 받은 사랑이기에 이웃한테 나누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가슴이 부풀고 기쁘기 때문에, 이토록 기쁘며 고운 사랑을 새삼스레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면서 웃고 싶은 마음이기에 사랑을 찬찬히 펼칩니다.


  어머니는 굽이 굽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아버지도 굽이 굽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어린이도 할매도 할배도 모두 굽이 굽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꽃을 먹으면서 살고, 우리는 언제나 이웃한테 꽃을 베풀면서 삽니다. 꽃처럼 웃고 꽃처럼 노래해요. 글을 쓸 적에는 글꽃이 되도록,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꽃이 되도록, 노래를 부를 적에는 노래꽃이 되도록, 삶꽃을 가꾸고 사랑꽃을 키우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아가요. 4347.12.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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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원의 식사 눈빛사진가선 5
김지연 지음 / 눈빛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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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8



수수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진

― 삼천 원의 식사

 김지연 사진

 눈빛 펴냄, 2014.11.25.



  아이들한테는 삼천 원이든 삼천만 원이든 삼천조 원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장난감 하나가 대수롭고, 함께 놀 동무와 이웃이 대수로우며, 맛난 밥 한 그릇이 대수롭습니다. 느긋하게 쉴 집과 기쁘게 꿈을 꿀 잠자리가 반가우며, 생각을 열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이 재미있습니다.


  삼천 원짜리 책이든 삼만 원짜리 책이든 아이들한테는 똑같습니다. 삼천 원짜리 인형이든 삼천만 원짜리 인형이든 아이들은 인형을 물에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며 모래밭에서 함께 뒹굴며 소꿉놀이를 하는 장난감이나 벗님이 됩니다. 헌 이불을 덮든 새 이불을 덮든 새근새근 잠들 수 있으면 포근합니다. 오래된 집이든 커다란 호텔이든 꿈나라로 빠져들 수 있으면 살가운 보금자리입니다.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리는 김지연 님이 전주를 발판으로 삼아서 만난 이웃 이야기를 《삼천 원의 식사》(눈빛,2014)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으로 선보입니다. “삼천 원의 식사”라 했지만, “삼천 원짜리 밥”이 되기도 하고, “삼천 원어치 밥”이 되기도 합니다. “삼천 원으로 꿈꾸는 밥”이라든지 “삼천 원으로 나누는 사랑”이 되기도 해요.


  김지연 님은 “천 원어치 붕어빵을 사면서, 혹은 이천 원짜리 두부 한 모를 사면서 그들에게 모델을 서 줄 것을 간청했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장사를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때로는 뜨거운 국사발을 나르는 늙은 주인장 앞에서 단 2초의 시간을 할애받는다.” 하고 속삭입니다. 김지연 님이 찍은 사진에 나온 분들은 ‘모델’이 되었다고 하지만, 모델이라기보다는 ‘이웃’입니다. 전주에서도 볼 수 있고,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고흥에서도 사귈 수 있는 이웃입니다.




  이웃을 찍은 사진인 《삼천 원의 식사》이고, 이웃이 누리는 삶을 보여주는 사진인 《삼천 원의 식사》이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을 사진으로 들려주는 《삼천 원의 식사》입니다.


  김지연 님은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지체할 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물이 식을까 봐, 국수가 불을까 봐 걱정을 한다.” 하고 소근거립니다. 어쩌면, 김지연 님은 자존심이라는 대목을 걱정하거나 마음을 쓰셨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존심이란 대수롭지 않아요. 서로 아끼는 마음이면 되고, 서로 보살피는 손길이면 됩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면 넉넉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면 아름답습니다.


  사진책 《삼천 원의 식사》를 낳은 사진기는 어떤 사진기일까요? 값비싼 사진기를 썼을까요? 그럭저럭 쓸 만한 사진기를 썼을까요? 제법 값이 싼 사진기를 썼을까요? 어떤 사진기를 쓰든 다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낳을 수 있으면 어떤 사진기를 쓰더라도 사진이 즐겁고, 이야기를 낳지 못하면 어떤 사진기를 쓰더라도 사진이 따분합니다.





  양은 그릇에 국밥을 팔든 질그릇에 떡국을 팔든 나무그릇에 붕어빵을 올리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밥을 먹습니다. 우리는 그릇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떡국을 먹는 사람이지, 질그릇을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읽을 뿐, 사진기를 읽거나 살피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김지연 님은 “할머니는 처음엔 사양하더니 이내 보따리를 이고 따라왔다. 그이는 뜨거운 장터국수 국물을 마시며 ‘아, 맛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양은 국수 그릇을 움켜 든 두 손은 손톱이 닳고 살결은 거칠었다. 삼천 원짜리 식사가 이런 것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하고 귀띔합니다. 저잣마실을 하다가 만난 할매하고 장터국수 한 그릇을 함께 나누었다고 해요. 저잣거리 할매는 국수 한 그릇에 “아, 맛있네!” 하고 말씀하셨대요.


  사진책 《삼천 원의 식사》는 “아, 맛있네!”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사진책 《삼천 원의 식사》는 “아, 즐겁네!”를 함께 노래하고 싶습니다. 사진책 《삼천 원의 식사》는 “아, 고맙네!”를 서로 나누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사진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사진은 늘 이곳에 수수한 이웃과 함께 있습니다. 사진은 늘 이곳에 수수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내 손에 있습니다. 4347.12.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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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2-1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좋은데~ 함께살기님 따사롭고 정다운 느낌글 읽으니 더 읽고 싶네요 ^^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2-18 10:50   좋아요 0 | URL
이 책 내신 분이
전주에서 `서학동 사진관`을 꾸리셔요.

언제 전주로 나들이 가셔서
전주비빔밥과 전주막걸리(모주)를 드실 일이 있으시면,
서학동 사진관이라고 하는
이쁘장한 곳에도 마실해 보셔요.

겨울에는 살짝 쉬신다고 들었는데,
골목 안쪽에 곱다라니 깃든 사진관이
아주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저도 아직 가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았습니다 ㅠ.ㅜ)

appletreeje 2014-12-1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 배송 받아 잘 보고 있습니다~
책이 말씀대로 참 좋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전주 갈때엔 `서학동 사진관`도 꼭 가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4-12-19 06:14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 나누는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이야기를
조촐히 누리시기를 빌어요.

삶이 언제나 사진으로 태어나고
사진에서 새롭게 사진을 읽으면서
함께 노래하는 이야기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