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잠꼬대



  밤에 네 시간 가까이 책상맡에 앉아서 글 하나를 새로 쓰고 손질한다. 이제 마지막 손질을 마치고 기지개를 켜려 할 즈음 큰아이가 잠꼬대를 길게 한다. 뭔 잠꼬대를 이리 길게 하는가 싶어서 살그마니 방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작은아이가 자다가 구르며 누나한테 달라붙는다. 누나를 자꾸 옆으로 미는 듯하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잠결에 꿈나라에서 동생이 장난스레 꼬집거나 밀치는 몸짓으로 시달리는 듯하다. 얼른 작은아이를 다시 데굴데굴 굴려서 제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찾아서 씌운다. 큰아이도 이불을 걷어차서 저만치 갔다. 아침에 새로 일어나면 이 글을 다시 살펴서 마무리를 짓고 출판사에 넘겨야지. 맛있는 잠꼬대 소리를 들으니 새삼스레 기운이 솟는다. 나도 얼른 즐겁게 꿈나라로 날아가자. 4348.12.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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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며 이불깃 여미기



  어제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두 아이 사이에 눕고는 이불깃을 여미는데, 깜깜한 방에서 문득 ‘눈을 감고’ 이불깃을 여미는 내 모습을 느낀다. 어라? 눈을 떠도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왜 눈을 감고서 이불깃을 여미지? 눈을 감으면 깜깜한 곳에서 더 잘 보이나?


  한참 이불깃을 여미다가 눈을 떠 본다. 새까맣다. 눈을 감아 본다. 똑같이 새까맣다. 그런데 나는 굳이 눈을 감은 채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미었다. 이불깃을 여미다가 괜히 웃음이 난다. 혼자 하하 웃다가 자리에 누워서 새삼스레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되풀이해 본다. 깜깜한 빛만 느낀다. 이러다가 문득, 눈을 감거나 뜨더라도 늘 보이는 무엇을 느낀다. 마치 밤하늘에 가득한 별 같은 아주 작은 빛송이가 눈을 뜨든 감든 늘 수없이 보인다. 바탕은 새까맣지만 그냥 까맣기만 하지 않고, 수많은 별잔치가 두 눈 가득 있다.


  그나저나 왜 나는 아이들 이불깃을 여밀 적에 눈을 감을까 하고 돌아보니,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밤에 기저귀를 갈며 으레 누운 채 갈곤 했기에 그때 버릇이 고스란히 남았구나 싶다. 밤에 불을 켜면 아이들이 눈부셔 하니까 언제나 깜깜한 채 기저귀를 갈았고, 오줌으로 폭 젖은 기저귀를 들고 깜깜한 마루를 지나서 씻는방으로 가져가서 담갔다. 어두운 곳에서 스스로 더 어두운 눈이 되어 느낌으로 살피면 오히려 무엇이 어디에 있는가를 더 잘 헤아린다고 할까. 어두운 곳에서는 눈에 기대지 않으면 한결 잘 보인다고 할까. 그래서 깜깜한 밤에 눈을 가만히 감고서 이불깃을 여미는 셈이구나 싶다.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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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거들려는 손길



  아이들도 언제나 거들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가만히 지켜보면서 언제쯤 저희한테 심부름을 맡길까 하고 기다린다. 이를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어릴 적에 집에서 놀며 으레 어머니 목소리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어머니 혼자 힘들게 일하지 마시고 뭣 좀 심부름을 시키시지, 하면서 기다리기 일쑤였다. 이리하여 아주 작은 심부름을 맡기셔도 대단히 기뻤다.


  큰아이가 밥상맡에 작은 인형을 올린다. 아버지가 모처럼 바깥마실을 하고 돌아오던 날 작은 인형을 넷 장만했는데, 두 아이는 저마다 하나씩 챙기고 다른 둘은 어머니 몫하고 아버지 몫으로 하라면서 다시 내밀었다. 멋진 아이들이다. 인형 넷이 있으면 네 사람이 하나씩 가지면 된다고 한다. 이러면서 이 인형 가운데 하나를 밥상맡에 놓고는 더 맛있게 먹자고 한다. 인형한테도 밥상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인형 보기에도 맛난 꽃밥상을 차려야 하겠지. 인형이 보기에 우리 이쁜 아이들이 이쁘게 밥상을 받아서 이쁘게 하루를 누리는구나 하고 느끼도록 해야 하겠지. 4348.1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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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가방에서 나온 잇솔



  이틀을 바깥잠을 자고 고흥으로 돌아오는데, 내 잇솔이 아무리 보아도 안 나왔다. 나는 틀림없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고 여겼으나, 다른 것은 다 나와도 잇솔만큼은 안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이도 못 닦고, 잇솔도 잃었네 하고 여기면서 고흥으로 돌아왔는데, 오늘 아침에 작은아이가 제 가방에 있는 장난감을 모두 방바닥에 쏟으면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니, ‘작은아이 가방에 담긴 장난감’ 사이에 내 잇솔이 있다. 응? 왜 아버지 잇솔이 네 가방에 있니? 작은아이는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얘야, 네 것이 아니면 함부로 네 가방에 넣지 말아야지. 네가 그렇게 넣으면 네 것이 아닌 그 물건 임자는 그것을 써야 할 적에 제때 못 쓴단다. 네 것이 아니면 함부로 가져가거나 챙기면 안 되고, 언제나 반드시 물어보아야 해. 그래도, 잃었다고 여긴 잇솔은 찾았다. 바로 옆에 있었다. 4348.1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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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울리는 소리



  고흥집을 떠나서 며칠 동안 인천하고 일산으로 나들이를 나오면서 아이들은 마음껏 쿵쿵 뛰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마당을 누리는 한층집이 아주 드물다. 도시에서 사는 여느 사람들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집에서 살기 마련이고, 이러한 층집에서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살살 걸어야 한다.


  층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라면 어릴 적부터 쿵쿵 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 발걸음이 익숙하리라. 마당 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라면 어릴 적부터 스스럼없이 콩콩 뛰면서 다니는 발걸음일 테지. 땅바닥이나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을 울리는 다 다른 소리를 듣고 누리면서 씩씩하게 자란다. 바닥마다 다른 결을 헤아리면서 아이들은 더 튼튼한 다리와 몸이 된다.


  도시에 있는 모든 층집에서 아이도 어른도 쿵쿵 콩콩 소리를 낼 수 있으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아이들이 마음껏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4348.11.3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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