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하고 글도 쓰고 일도 하고



  밥도 하고 글도 쓰고 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마감까지는 아니지만 새달에 펴내려고 하는 책에 깃들 글을 손질하느라 바쁘게 하루가 흐르면서도 이 새봄에 밭일도 하고, 서재도서관도 손질하고, 아이들하고도 놀고, 아직 어설픈 집살림도 다스린다. 이러면서 새로운 글도 쓴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조금씩 만진다. 조금씩 만지면서 하는 일이다 보니 ‘뭔가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하루하루 흐르는 동안 어느덧 테두리가 잡히고 그림이 드러난다. 제비와 딱새와 참새와 직박구리와 검은등지빠귀……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지저귀면서 기운을 북돋우는 아침에 기지개를 켜면서 더 힘을 내려 한다. 2016.4.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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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를 담근 하루



  한 달 남짓 만에 깍두기를 새로 담근다. 어제 읍내에서 무를 한가득 장만했는데 생강을 빠뜨렸다. 양념거리를 집에서 손수 심어서 돌보면 빠뜨릴 일이 없이 그냥 마당에서 슥슥 뽑거나 잘라서 쓸 텐데, 아직 그만큼까지는 안 된다. 마당 한쪽에 생강밭이 조그맣게 있어야겠구나. 아무튼 낮에 무를 잘 씻어서 숭숭 썰고서 소금으로 절였다. 저녁에 풀을 쑤고 양념을 마련하면서 감자버섯조림을 했고 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였다. 가만히 한숨을 돌리면서 기운을 모은 뒤에 맨손으로 씩씩하게 석석 버무렸다. 마늘을 빻다가 에고 허리야 하면서 쉬엄쉬엄 일을 했다.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서 설거지까지 마치니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했지만, 마음을 곧 다스리면서 ‘나는 늘 튼튼하고 기운차다네’ 하고 속삭였다. 아무렴, 밭일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이 일도 저 일도 다 해낼 수 있지. 오늘은 원고 교정을 얼마 못 보았지만, 또 아이들하고 숲마실도 못 갔지만, 이튿날에는 밭일을 조금만 하고 아이들하고 숲마실을 가자고 생각한다. 깍두기를 담가서 보람찬 오늘 내 마음은 꼭 모과꽃과 같다. 2016.4.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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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터 ㅊ, 이제 ㅋ



  나흘째 ‘사전 원고 손질’을 한다. 이제 곧 나올 새로운 사전이기에 더 꼼꼼히 살피느라 나흘째 걸린다. 말을 다루는 책을 살피니, 자꾸 새로운 말을 더 볼 수밖에 없고, 일은 더디다. 그렇지만 나흘째에 이른 오늘, 드디어 ㅊ을 지나 ㅋ으로 넘어선다. 이렇게 보다가도 다시 ㄱ이나 ㄴ이나 ㄷ으로 돌아가서는, 앞에서 갈무리하거나 손질한 대목을 또 보태고 다듬고 손질한다.


  눈코 뜰 사이 없이 글손질을 하느라, 아이들 밥차림이 허술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더 오래 놀아야 한다. 살짝 숨을 돌리고 머리를 식혀야겠다. 등허리를 편 뒤 아이들하고 한동안 논 다음, 새롭게 기운을 내어 ㅎ까지 씩씩하게 나아가야지. 이 일을 다 마치면 옥수수알을 불려서 옥수수씨도 뒤꼍에 기쁘게 심어야지. 2016.3.3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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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을 새롭게 손질하기



  마당 한쪽에 놓은 커다란 평상을 손질한다. 이레에 걸쳐서 조금씩 손질한다. 비를 많이 맞아서 썩고 갈라진 자리는 톱으로 잘라낸다. 커다란 평상은 2/3 크기로 줄어든다. 크기를 어림하니 처마 밑에 둘 만하다. 처마 밑에 평상을 두면 비 맞을 걱정이 없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덮개를 씌우면 될 테니까. 다리가 튼튼하도록 받침나무를 더 붙이고 못질을 하고, 새 널을 붙이고 헌 널을 떼고, 마무리로 옻을 바른다. 말로 하자면 한 줄이면 넉넉하지만, 두 아이가 옆에서 심부름을 살몃살몃 하며 놀도록 하면서 이레에 걸쳐서 이 일을 했다. 이 일만 한다면 이틀이면 다 끝낼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옷도 개고 청소도 하고 도서관 갈무리도 하고, 이 일 저 일 함께 하자니 이레가 걸린다. 더욱이 옻을 발랐어도 뒤쪽까지 꼼꼼히 바르려고 날씨를 살펴서 하느라 옻바르기도 이틀이 걸린다. 기지개를 켜고 평상에 드러누워서 따끈따끈한 봄볕을 쬔다. 작은아이는 내 오른쪽에 눕고 큰아이는 내 왼쪽에 눕는다. 셋이 평상에 누워서 볕바라기를 하는데 큰아이가 “어머니는 어디 누워?” 하고 묻는다. 그래, 셋이 눕기에는 작지. “어머니는 마루에 누우라고 할까? 어머니 혼자 평상에 눕고 우리는 마루에 누울까?” 2016.3.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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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방을 메고서



  우리는 가방을 메고서 나들이를 간다. 아버지 혼자 짐가방에 가득 넣어 짊어지면 힘드니까 너랑 나랑 서로 가방을 메고서 짐을 조금씩 나누어 메자. 우리 가방은 공부하는 책을 담으면 책가방이고, 아버지처럼 짐을 담으면 짐가방이지. 인형을 넣으면 인형가방이고, 그림종이하고 크레파스를 담으면 그림가방이야. 아차. 가방에 연필주머니가 있구나. 함부로 뛰면 안 되는데. 그래도 달리고 싶으니 어떡하지. 사뿐사뿐 얌전히 달리면 될까. 우리는 다 같이 가방을 메고서 즐겁게 나들이를 간다. 2016.3.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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