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867


《캐테 콜비츠와 魯迅》

 정하은 엮음

 열화당

 1986.12.15.



  쓰러지는 중국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 루쉰(노신) 님이고, 어리석게 총칼로 춤추는 독일을 쳐다보며 안타까워 발을 구르던 캐테 콜비츠 님입니다. 루쉰과 캐테 콜비츠는 만난 적이 없지만, 비슷한 물결을 서로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우두머리는 아름길 아닌 멍청한 굴레를 뒤집어쓰면서 치닫는데, 숱한 사람들은 거의 넋놓고서 우두머리를 좇았습니다. 총칼은 언제나 총칼을 일으킵니다. 총칼은 꿈도 사랑도 안 일으킵니다. 총칼은 서울도 시골도 무너뜨리고, 들숲을 망가뜨리고, 사람들 사이를 갈가리 찢어요. 루쉰 님은 글자락으로, 캐테콜비츠 님은 그림자락으로, 저마다 제 나라 이웃을 일깨우기를 바랐습니다. 총칼 아닌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어야 한다고 외친 두 사람입니다. 총칼 아닌 포대기로 아기를 품고서 돌봐야 한다고 노래한 두 사람입니다. 《캐테 콜비츠와 魯迅》은 오직 미움이 불길처럼 치솟으면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려 드는, 그런 끔찍한 수렁에서 씨앗(어린이·푸름이)을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두 사람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들려줍니다. 오늘날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작은날개(드론)를 띄워 서로 치고받으면 누가 다칠까요? 큰날개(미사일)을 쏘아 서로 다투면 누가 죽을까요? 그저 모두 무너집니다. 참사랑을 들려주는 어진 목소리를 누구보다 푸름이가 듣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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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866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

 이진희 글

 이규수 옮김

 삼인

 2003.9.20.



  열여덟 살 즈음에는 어떤 책을 읽으면 어울리려나 돌아보곤 합니다. 열여덟이란, 으레 ‘고2’라 일컫고, 배움수렁(입시지옥)이 코앞입니다. 이무렵이면 어느새 책을 내려놓고서 셈겨룸(시험)만 헤아리기 일쑤예요. 그런데 이무렵만 책을 내려놓지 않더군요. 열여덟 살 즈음 책을 내려놓는 푸름이는 스무 살을 맞이하고 서른 살에 이르도록 책을 안 가까이하더군요. 아무리 셈겨룸을 치러야 하더라도, 책을 턱 놓으면 그때부터 마음이 메마르게 마련이에요. 열여덟 살뿐 아니라 열아홉 살에도, 커다란 셈겨룸을 앞두고도, 마음을 사랑으로 새롭게 숲빛으로 토닥이는 책을 곁에 둘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은 2003년에 한글판이 나옵니다. 이진희 님은 일본한겨레(재일조선인)입니다. 일본에서 살며 일본글로 책을 썼어요. 우리 발자취를 살피고 밝히는 길을 걷는 동안, 더구나 일본에서 살며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어떤 가시밭길에 수렁에 고비를 넘나들어야 했는지 차곡차곡 풀어냅니다. 글꽃(문학)은, 이웃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피면서 새삼스레 묶습니다. 삶글은, 피땀과 눈물노래를 오롯이 들려줍니다. 여러모로 보면 《해협》 같은 삶글이 외려 푸른글꽃(청소년문학) 같습니다. 모진 너울을 맨몸으로 받아들이며 빙그레 웃고 다시 한 발짝씩 나아가는 하루를 보여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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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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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27.

숨은책 904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

 편집부 엮음

 청담문학사

 1987.7.23.



  1987년 여름은 뜨겁고 어지러웠습니다. 그즈음 ‘대학생’인 이웃 언니는 거의 보기 어려웠어요. 한마을 동무 가운데 딱 한 아이는 ‘대학생 과외’를 받았습니다. 동무네 어머님은 동무가 비싼 곁배움을 받는 동안 딴짓을 안 하도록 저를 옆에 앉혔으나, 동무는 늘 딴짓을 했어요. 저는 어머니를 도와 새뜸나름이를 하면서 본 머릿글을 떠올리면서 “전경이 최루탄 쏘면 무섭지 않아요?” 하고 묻곤 했는데, 과외하는 대학생 언니는 “난 잘 몰라.” 하면서 말을 돌리기 바빴어요. 이해 7월 5일 이한열 님이 숨을 거둡니다. 새뜸나름이는 더 받은 호외까지 얹어 집집마다 돌립니다. 사람이 고꾸라져도 우두머리는 버젓하고, 들꽃 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입에 풀바르기 버겁습니다. 새뜸을 돌리는 어머니는 “신문만 돌려. 거기 글은 읽지 말고.” 하셨어요.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는 “부산직할시립 구덕도서관 1987.9.10. 등록번호 51561”가 찍히지만, 빌려읽은 자국이 없습니다. “정성스럽게 책을 대하고 깨끗하게 책을 쓰자”는 글씨가 쑥스럽습니다. 누구는 왜 힘을 거머쥐려 했고, 누구는 왜 허수아비가 되어야 했고, 누구는 왜 최루탄을 쏘아야 했고, 누구는 왜 등돌리거나 모르쇠여야 했나 곱씹습니다. 태어났으나 읽히지 못 한 책은 가까스로 헌책집 책시렁에서 한 자락 살아남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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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7.

숨은책 899


《Commentary Book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편집부 엮음

 문학동네

 2023.



  책집마실을 하다가 한켠에 놓인 《Commentary Book》을 보고서 “뭐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들추었습니다. 책자취조차 없이 나온 꾸러미는 ‘코멘터리 북’이라고 하는군요. 영어 ‘Commentary’를 ‘코멘터리’로 읽어야 맞나 아리송하지만, 이렇게 영어를 붙여야 사람들이 눈여겨보고서 좋아하는구나 싶군요. 2023년 7월에 나왔다는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장강명, 문학동네)을 알리려는 뜻으로 나왔을 《Commentary Book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죽 들추는데, 손바닥책 하나를 내놓은 셈입니다. 큰 펴냄터라면 이만 한 알림책 하나도 푼돈으로 내놓고서 두루 뿌릴 수 있어요. 이른바 ‘풀이책·맛보기·미리보기’일 텐데, 장강명 씨 글이 어려워서 따로 풀이책이나 맛보기가 있어야 할까요? 문학동네에서 선보일 책을 더 알리고 싶기에 멋을 부리는 덤을 뿌리려는 뜻일까요? 글꽃마을을 가꾸는 길이란, 글을 짓는 손도, 글을 읽고 펴는 눈도, 글을 나누고 생각하는 마음도, 꽃빛으로 물드는 살림살이여야 곱다고 느낍니다. 몇몇 꾸러미로 뒤덮는 책마을이 아닌, 온갖 책이 무지개로 어우러지는 어울마을에 숲마을에 노래마을에 사랑마을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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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7.

숨은책 893


《世界文藝思潮史》

 서라벌예술대학출판국 엮음

 한국교육문화원

 1955.12.20.첫/1962.4.10.4벌



  고을이름인 ‘서라벌’은 우리말입니다. ‘서라벌’이 바뀌어 ‘서울’입니다. 두 낱말은 어떻게 해도 한자로 바꾸지 못 하니, 온통 한자가 춤추던 지난날에도 ‘서라벌·서울’만큼은 다들 한글로 적었는데, 요새는 ‘Seoul’처럼 쓰는 분이 부쩍 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우리글만 써야 할 까닭은 없더라도, 뭔가 얼이 나간 듯해요. 스스로 새롭게 배울 적에는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누구나 수월하게 듣고 배우는 길이어야 아름다울 텐데요. 《世界文藝思潮史》는 “서울大學校 敎育大學院 1年 李裕桓” 님이 얼추 1962년에 손에 쥐고서 바지런히 익힌 꾸러미입니다. 다들 새카맣게 한자를 써야 배울 수 있던 무렵이요, 한자 없이 한글로만 글을 적으면 “넌 무식하구나!” 하고 놀리거나 따돌리던 때입니다. 그러나 1920년에도 1950년에도 1970년에도 한글조차 모르던 사람이 수두룩하고, 한자는 더더욱 몇몇 사람만 겨우 읽던 글씨입니다. 많이 알거나 잘 안다면, 아직 모르거나 적게 아는 사람 눈금으로 맞출 적에 어질어요. 어린이한테 어떻게 풀이하려는 셈일까요? 어린이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다 다른 말은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사람이 지은 삶과 마음을 담는데, 높낮이로 가른 글은 굴레에 수렁으로 오래오래 흘러왔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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