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9


《말론 할머니》

 엘리너 파전 글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비룡소 펴냄

 1999.1.22.



  그리스·로마 옛이야기가 책으로 꽤 나왔고 널리 읽히는 줄 알지만, 어쩐지 저한테는 시큰둥했습니다. 높은 곳에 계시다는 님들 이야기에는 다 다르게 빗대는 뜻이 있는 줄 느끼면서도, 굳이 높은님 이야기에 사로잡혀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어요. 저는 우리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어떻게 보내었는지 더 궁금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나이(어린이 나이)’에 어떤 하루를 보냈고, 그무렵 마을과 나라는 어떠했는지 궁금했어요. 둘레 어르신한테 “살아온 이야기 좀 들려주셔요.” 하고 여쭈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면서 “고릿적 얘기는 들어서 뭣 하게? 재미없어.” 하면서 끊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문득문득 비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옛살림 이야기’는 새롭게 반짝이면서 놀라웠습니다. 《말론 할머니》는 늘그막에 홀로 죽음을 앞둔 조그마한 할머니 하루를 들려줍니다. 작고 가난한 할머니일 뿐 아니라, 곧 이 땅을 떠날 텐데, 마지막날에 이르도록 ‘나(할머니)보다 더 작고 가녀리구나 싶은 이웃 짐승’한테 잠자리를 내어주고 밥을 차려줍니다. 이러다가 더는 기운을 낼 수 없어서 깊이 잠들어요. 고요히 잠든 할머니를 본 여러 숲짐승은 할머니를 안고 이면서 하늘나라로 갔다지요. 하늘나라 문지기는 ‘허름하고 쬐꼬만 할머니 겉모습’에 손사래를 치다가, 숲짐승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말에 깜짝 놀라 얼른 하늘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말론 할머니마냥 아주 조그마한 그림책을 이따금 되읽습니다. 돈만 많으면 하늘나라로 못 간다고들 하지만, 우리 둘레는 온통 돈판입니다. 나라에서도 ‘경제발전’이라는 이름만 드높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어디 있을까요? 젊음을 통째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에 바친 할머니는 누구나 빛나는 하늘길로 나아갈 테지요. 돈과 힘과 이름을 거머쥐려는 무리는 누구도 하늘길은커녕 하늘 귀퉁이에도 못 깃들 테고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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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20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글

 고려원

 1988.5.5.



  여태껏 숱한 이들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꽃할매(종군위안부 피해자) 마음에 다가서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응어리를 푼 일이 없습니다. 이쪽에 있다는 벼슬아치도, 저쪽에 있다는 벼슬꾼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나라지기·벼슬아치·글바치뿐 아니라, 우리부터 스스로 꽃할매하고 썩 이웃을 못 한 터라, 이 굴레가 고스란히 이은 셈이지 싶습니다. 더욱이 임옥상 씨를 비롯해 적잖은 이들은 추레질(성추행·성폭력)을 일으켰고, ‘기억의 집’이라는 터전까지 헐어내야 했습니다. 2023년에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를 써낸 윤정모 님인데, 아주 한참인 예전 어느 날 《정신대 실록》을 읽었다고 합니다. 1981년에 임종국 님을 찾아뵙고서 말씀을 여쭌 뒤에 1982년에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처음 선보였고, 1988년에 조그마한 꾸러미로 다시 나옵니다. 이 글자락은 1991년에 영화로도 나왔으나, 영화를 찍은 사내는 ‘꽃할매 눈물앓이’가 아니라 ‘젊은순이 벗은몸’을 그려내는 데에 사로잡혔어요. 창피한 일입니다. 눈물과 생채기와 응어리를 오히려 장삿속으로 갉아먹었거든요. 가난하고 조그맣던 어린순이는 숱하게 끌려가서 노리개로 구르다가 스러졌습니다. 가난하고 조그맣던 어린돌이는 끝없이 끌려가서 짐꾼에 심부름꾼으로 구르다가 이슬(전쟁터 총알받이)로 스러졌습니다. 얼마나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밟혀서 죽고 다쳤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가난하고 낮고 작은 사람들은 몽땅 시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돈·이름·힘이 있으면 군대에 안 끌려가고 빠져나옵니다. 예나 이제나 젊은날에 꽃봉오리로 피어나지 못한 채 꺾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열일고여덟 살 무렵에, 또 스물한두 살과 스물너덧 살 무렵에, 동무나 또래한테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같은 책을 함께 읽고서 생각을 북돋우고 우리 앞길을 새로 짓는 그림을 펴자고 말을 섞으려 했지만, 다들 고개를 돌리더군요. 100사람한테 물으면 1사람쯤 귀를 열어요. 그러나 귀를 연 1사람이 있으면 기쁘게 함께 읽고서 수다꽃을 피웠습니다. 푸른꽃이란 풀꽃이고, 풀꽃이란 들풀이고, 들풀이란 작고 낮고 흔한 숨빛이되, 온누리를 맑고 밝게 보듬는 바람빛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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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563


《別冊 1億人の昭和史 : 日本植民地史 1 朝鮮》

 松井孝也 엮음

 每日新聞社

 1978.7.1.



  돌아가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한창 갈무리하던 2004년 3월 18일에 박원순 님 곁일꾼(비서)이 저한테 찾아와서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마스터’를 맡아 달라고 여쭈었습니다. 한참 듣고서 “이제 다 얘기하셨나요? 그럼 제가 얘기하지요.” 하고는, 먼저 ‘북마스터’라는 ‘얼어죽을’ 이름부터 걷어치우시라고, ‘아름다운 가게’는 헌책을 사고파는 일에서 손을 떼기를 바란다고 얘기했습니다. 작은 마을책집을 죽이는 짓을 여태 못 깨달았더라도 좀 뉘우치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여연대쯤 되면 ‘아름다운 가게’가 아니라 ‘온나라 헌책집 한마당’을 여는 틀을 세워서 작은 마을책집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두 시간쯤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마을책집 혼자서 모든 알차고 값진 책을 널리 알려서 팔기는 어려운 만큼, 작은 마을책집마다 큰덩이로 알차고 값진 책을 내놓으면, 이 책꾸러미를 따로 어느 너른터에 그러모으고 펼쳐서 ‘책숲마을’을 나라돈으로 꾸리는 길을 나라가 앞장서서 하도록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냐고도 얘기했어요. 이러고서 이 일을 잊었는데, 박원순 님은 서울시장이 되었고, 제가 여민 ‘전국 헌책집 목록’과 ‘서울 헌책집 길그림’에다가 ‘서울 헌책집 사진’까지 말없이 가져다가 ‘서울 헌책집 목록’을 따로 서울시청 누리집 한켠에 띄우기도 하고, 책집그림(책방지도)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나쁜 곳에 가져다가 쓰지는 않았으니 모르는 척했습니다. 2019년 3월 27일에 〈서울책보고〉가 연다는 말을 먼발치에서 들었습니다. 2004년에 들려준 얘기를 열다섯 해 만에 살리는구나 싶더군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말은, 제가 2004년에 지어서 책이름으로도 붙였는데, 〈서울책보고〉에서는 저한테 알리지 않고 그냥 썼습니다. 하기는, 어느 헌책집 한 곳도 이 이름을 저한테 안 묻고서 그냥 씁니다. 《別冊 1億人の昭和史 : 日本植民地史 1 朝鮮》은 서울 연신내 〈문화당서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문화당서점〉 책집지기님은 어느 날 “박원순 씨가 존일(좋은 일) 하는 줄 아는데, 외상값을 십 년 넘게 안 갚네. 바빠서 그런가 보지.” 하고 문득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서 며칠 뒤에 ‘헌책방 나들이’로 여미고서 어느 신문에 글을 실었더니, 글이 실린 이튿날 박원순 님이 〈문화당서점〉하고 〈골목책방〉에 외상값을 갚으러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두 책집지기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귀띔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두 책집지기님은 이윽고 웃음을 거두고는 “외상값 안 갚아도 좋으니, 바쁘게 일만 하지 말고 책도 좀 보러 다니시면 좋을 텐데.” 하고 쓸쓸히 보태었습니다. 옆나라 일본은 이웃인 우리나라를 총칼로 짓밟으면서도 발자국을 고스란히 살려서 《別冊 1億人の昭和史 : 日本植民地史》를 열다섯 자락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들이 벌인 잘잘못을 떠나서, 뒷사람한테 물려주거나 남기는 책빛은 대단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책은 어느 날 버려지며 사라질 수 있고, 고스란히 건사해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책살림이 이어가려면 징검다리인 헌책집이 알뜰살뜰 있어야 하겠지요. 어느새 다섯돌(2019∼2024)을 맞는 〈서울책보고〉는 어질며 밝고 눈길을 틔우는 책숲마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이제 스무 해쯤 된 일과 이야기이니

이렇게 새삼스레

남겨 놓는다.

나부터 이런 책마을 발자취를

되새기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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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4.11.

헌책읽기 15 린하르트와 겔트루드



  1994년 어느 날, 왜 우리나라에서는 ‘페스탈로치’를 안 읽는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스무 살을 맞이했습니다. 이른바 ‘사범대학’에 있거나 ‘교육대학교’를 다니는 또래·윗내기·동생 모두 “이름은 들어 봤고, 수업에서 말은 하는데…….”에서 끝납니다. 1994년이나 2024년이나 페스탈로치를 읽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녁이 남긴 글이 한글로 몇 안 나왔을 뿐 아니라, 죄 사라졌거든요. 다리품을 팔아서 헌책집을 누벼야 겨우 한두 자락 찾아낼 수 있습니다. 《린하르트와 겔트루드》를 처음 만나고서 몹시 기쁜 나머지, 몇 해 동안 이 책을 늘 챙기면서 둘레에 읽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이 1746∼1827년 사이를 살던 사람이 남긴 이야기라고 덧붙이면 다들 놀라지만, 막상 먹고살기 바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잿집(아파트)이랑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려야 하기 때문에, 으레 손사래를 치더군요. 그래서 더는 이 책을 둘레에 읽어 주지 않습니다. 다만 큰아이랑 작은아이를 낳고서는 두 아이한테 읽어 주었고 스스로 늘 곱씹습니다. 둘레를 보면, 으뜸바치(일타강사)가 뭔 말을 하는지 챙기고, 그들이 낸 책을 잔뜩 삽니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보다는, 아이가 동무랑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으뜸자리에 서기를 바라는 판입니다. 어진 사람이기에 ‘어른’이되, 어진꽃을 피우려고 ‘어버이’로 서고, 어른과 어버이는 ‘어머니’가 살림을 이끌면서 ‘아버지’를 가르치고 타이르면서 살림살이가 깨어납니다. 어진 어른이자 어버이인 어머니가 일머리를 잡고서 일꾼을 일으킬 적에 이야기꽃이 피면서 사랑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아버지란, 어머니가 들려주는 모든 목소리를 잔소리 아닌 사랑소리로 맞아들이면서 스스로 깨어날 적에 아름답습니다. 이름값을 보지 말고, 이름을 보셔요. 겉모습과 얼굴을 보지 말고, 마음과 얼을 보셔요. 나이를 재지 말고, 나를 보셔요.



《린하르트와 겔트루드》(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 광개토, 1987.9.25.)


ㅅㄴㄹ


나는 어떠어떠한 주의(主義)에 대한 사람들의 모든 논쟁에 가담치 않는다. (7쪽)


“영주님, 교회는 너무 술집에 가깝습니다 … 저의 남편은 술에 유혹되기가 쉽습니다. 만일 날마다 술집 바로 근처에서 일하게 되면, 남편은 유혹을 막기가 어려우리라고 걱정이 됩니다. 목이 마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하루종일 눈앞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함께 어울리도록 부추겨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읍니까?” (20쪽)


“니겔, 너는 왜 진작 목사가 되지 않았나! 그렇다라면 교리문답 하나 멋드러지게 만들었을 텐데.” “그러다간 목사들의 밥줄이 모두 끊어지게요. 내가 어린아이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교리문답을 만들었다가는 목사가 한 사람도 필요없을 테니까요.” (25쪽)


“빵을 한 조각 더 제게 주세요. 안 돼요, 어머니?” “네 것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니, 니콜라스?” “하지만 난 루디를 주어야 하는 걸요.” “루디를 주라고는 말하지 않았어. 네가 먹고 싶으면 그걸 먹으려므나.” “먹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 조금도 더 안 돼요?” “응, 절대로. 얘야!” “왜요?” “우리의 배가 가득하게 되고 나서, 가난한 사람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 돼. 아니면 전부 루디를 주려고 그러니?” “예, 모두 주려고 해요. 루디는 지금 매우 배가 고픈 줄 제가 알고 있고, 또 우리는 여섯 시면 또 저녁을 먹는걸요.” (71쪽)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일을 시키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는 게 의무는 아닐 것이다.” (79쪽)


“루디의 목장과 나의 경계석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거짓 증언과 탈취행위가 사회전반에 헤아릴 수 없는 위험과 재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91쪽)


“왜 돈을 꾸어서는 안 됩니까?” “하나의 못에서 또다른 못으로 옮겨걸지 않는 것이 살림살이의 한 지혜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비싼 이자를 받지 않는 사채꾼은 백에 열 명도 없는 법이에요.” (107쪽)


“학교는 현재와 같이 가정생활과 크게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참으로 밀접한 관계에 서는 곳이어야 합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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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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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4.11.

헌책읽기 14 케테 콜비츠



  ‘대파’는 ‘큰파(大-)’가 아닌 ‘대나무’처럼 곧고 굵게 오르는 파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널리 퍼진 ‘대박’도 매한가지입니다. ‘대단하다·대수롭다’를 이루는 밑동인 ‘대’는 ‘장대·잣대·바지랑대·빨대’ 같은 곳을 받치고, ‘대머리·대가리’에도 씁니다. 대나무를 마당이나 마을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은 ‘대’가 왜 ‘대’인 줄 알고, ‘꽃대·속대’를 쓰는 뜻을 읽어요. 한때 대파 값이 제법 세긴 했지만, 능금이나 배에 대면 아무것이 아니고, 애호박이 훨씬 값이 셉니다. 다들 잊었을 수 있으나, 몇 해 앞서 달걀 한 판이 3000원에서 어느 날 5000원으로, 또 9000원을 거쳐 12000원까지 솟은 적 있습니다. 그때 대파 한 묶음도 9000원이었고, 시금치 한 단도 비슷한 값이었습니다. 그무렵 배추 한 포기는 2만 원을 넘었고요. 그즈음 기름값은 하늘로 껑충 솟아서 겨우내 얼음집에서 버틴 분이 꽤 많은 줄 압니다. 누가 잘 하고 더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우두머리에 선들, ‘그들’은 모두 ‘살림자리’를 안 쳐다보기 때문에, 이놈을 떨구거나 저놈을 올린들 이 나라는 안 바뀐다는 뜻입니다. 단출하고 얇게 처음 나온 1991년판 《케테 콜비츠》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케테 콜비츠 님은 우두머리도 으뜸도 아닙니다. 이녁은 ‘엄마’이자 ‘어버이’요, ‘사람’이자 ‘살림꾼’으로서, ‘사랑’을 그림에 새긴 길이라고 느낍니다. 벼슬을 쥔 무리 가운데 엄마나 아빠가 있을까요? 기저귀를 갈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살림을 추스르고, 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나비랑 풀벌레를 반기며 함께 노래하다가, 아이 손을 잡고서 풀밭에서 소꿉놀이를 하더니, 두바퀴 뒷자리에 아이를 태워서 들길을 천천히 달리는 벼슬아치나 글바치가 있기나 할까요? “변증법적 과정 경유”라든지 “명확 진실 제시”라든지 “동일화할 것 요구”처럼, 뜬금없는 먹물말은 걷어내기를 바랍니다. 엄마랑 아빠는 아이한테 이런 말을 안 쓰거든요. 우리는 사람일 노릇입니다.


《케테 콜비츠》(카테리네 크라머/이순례·최영진 옮김, 실천문학사, 1991.2.30.)


ㅅㄴㄹ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변증법적 과정을 경유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명확한 진실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바로 동일화할 것을 요구한다. (45쪽)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전쟁일기 1914년 10월 30일/94쪽)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나의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네가 너의 방식으로 사랑하였듯이 나는 내 방식으로 그렇게 사랑할 것이다.” (전쟁일기 1914년 섣달 그믐/95쪽)


“부끄럽다. 나는 아직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 전쟁을 겪었고 페터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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