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9.24.

숨은책 757


《제주방언 연구》

 박용후 글

 동원사

 1960.9.8.



  이웃고장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늘 그 고장에 헌책집이 있는가부터 살핍니다. 새책집에는 ‘막대기(바코드)’를 받아 ‘나라책숲(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간 책만 깃듭니다. 이와 달리 헌책집은 ‘막대기 없이 조금만 찍어 이웃하고 가볍게 나눈 책’이 깃들어요. ‘안 파는 책(비매품)’을 만나려면 헌책집에 갈 노릇입니다. “‘안 파는 책’을 뭣하러 찾아다녀?” 하고 묻는 분이 많은데, 일제강점기에 나온 책이건, 달책(잡지)에 딸린 책(별책부록)이나 만화책뿐 아니라, 마을빛을 헤아린 책인 ‘지역문화·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안 파는 책’으로 조금만 나왔습니다. 제주 〈책밭서점〉에서 《제주방언 연구》를 만났어요. 책밭지기님은 “이거 비매품으로 100권만 나온 책이야. 가리방이라고 알아? 쇠붓 있잖아? 그거로 하나하나 긁었는데, (제주) 관공서에서 버리더구만.” 제주말·제주살림·제주넋을 살리고 품는 길은 여럿입니다. 하늘나루(공항)를 더 짓거나 부릉길(찻길)을 더 닦기보다는, 마을빛을 온몸으로 사랑하며 여민 작은책 하나를 돌아본다면 아름답겠지요.


“위에서 고찰하여 온바와 같이 ‘탐라(耽羅)’는 ‘탐무라(耽牟羅)’에서 온 것인데 ‘탐무라’는 곧 ‘섬무라’요, ‘무리’와 같은 말로써 ‘모리>모이>뫼’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뫼’로 된 것으므로 ‘섬무라’는 곧 ‘섬뫼(島山)’를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472쪽)

.

.

제주 옛이름인 ‘탐라’ 말밑을 차근차근 두루 짚으며

캐낸 이야기를 담은 책을

거의 처음으로 만났다.


‘섬뫼’는 

“섬 + 메(산)”이자

“섬 + 담(성벽)”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섬뫼 = 섬메 = 섬담 = 섬나라’라고 한다.

‘탐라 = 섬나라’란 뜻이기도 한 셈이다.


이 값진 책을 버려준

제주 어느 관공서가 고맙다.


그리고 버림받은 책을

고이 손질해서 품어준

제주 책밭서점이 고맙다.

사랑한다.

.

.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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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9.24.

숨은책 756


《中等學校 朝鮮語文法 全》

 심의린 글

 조선어연구회

 1936.5.27.첫/1938.3.20.3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배움터에서 무슨 이야기와 삶길을 듣고 배울 적에 아름답고 슬기롭게 자랄까요? 예부터 시골에는 따로 배움터가 없습니다. 집이 삶터이자 배움터요, 숲과 바다와 들과 마을이 고스란히 삶터이자 배움터였어요. 배움터도 나라지기(정치 지도자)도 없던 무렵에는 싸움이나 다툼이 없지요. 오늘날 어린이는 여덟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꼬박꼬박 배움터를 다닙니다만, 이 열두 해 동안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크는 길을 듣거나 배울까요? 경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 길잡이로 일하던 심의린(1894~1951) 님이 쓴 《中等學校 朝鮮語文法 全》은 1936년에 “昭和十一年六月二日 朝鮮總督府檢定濟 高等學校朝鮮語及漢文科用”을 받아서 나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말과 한문 길잡이책으로 써도 된다고 여겼’으며, ‘京城師範 金本忠郞’이란 분이 품던 책입니다. ‘김본충랑’은 ‘일본이름(창씨개명)’입니다. 심의린 님은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25)이란 ‘학습사전’하고 《조선동화대집》(1926)이란 ‘학습동화’를 엮었습니다. 배움길잡이로서 온힘을 다한 자취를 엿볼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말·한글’보다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을 무척 많이 썼고, 조선총독부 배움틀(교육과정)을 고스란히 따랐습니다.


ㅅㄴㄹ


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304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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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9.19.

숨은책 753


《바무와 게로, 추운 날 밤엔 별 구경을 하지 마세요》

 시마다 유카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중앙출판사

 2000.10.1.



  ‘어른살이’에서는 얼어붙거나 숨이 멎으면 죽음으로, 몸이 말을 안 들으면 끝으로 여깁니다. 숨이 멎거나 몸이 말썽일 적에는 그만 두려운 마음이 몰아치고 와들와들 떨어요. 죽었구나 싶어도 되살리는 손길은 아이스러운 눈길에서 깨어납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도 보드라이 어루만지면서 숨결을 불어넣는 마음은 아이다운 숨빛에서 비롯해요. 비슷한 줄거리여도 어른이 써서 어른끼리 읽는 글하고, 어른이 쓰더라도 어린이랑 함께 누릴 이야기는 사뭇 달라요. 《바무와 게로, 추운 날 밤엔 별 구경을 하지 마세요》는 그림책입니다. 그림감은 ‘죽음·살림·어버이·아이’요, 이 넷을 ‘놀이’로 풀어내고 ‘사랑’으로 녹입니다. 어린이책·그림책은 죽음을 늘 삶하고 맞물리는 길로 바라보고, 끝이 아닌 새롭게 내딛는 자리요, 무서움·두려움·걱정이 아닌, 포근히 떠나보내거나 사랑으로 달래어 숨을 새롭게 불어넣는 손빛을 찾는 길로 다루어요. 못물에서 얼어붙은 어린 오리를 만난 ‘바무와 게로’는 어찌저찌 어린 오리를 살려내요. 그런데 어린 오리는 별밤에 또 밖에 나가 꽝꽝 얼어붙습니다. 바무와 게로는 언 오리를 또 찾아내어 녹여서 살리지요. 어미 오리를 그리는 어린 오리를 포근히 다독이고 놀이로 새길을 밝혀 줍니다.


ㅅㄴㄹ


#島田ゆか他 #バムとケロ #バムとケロのさむいあさ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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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9.19.

숨은책 754


《개코형사 ONE코 5》

 모리모토 코즈에코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1.2.15.



  겉모습을 보고서 움찔거릴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겉차림을 보고서 웃음이 나올 사람은, 눈앞에서 지나가도 못 느낄 사람은, 자꾸 쳐다보고 싶은 사람은 있을까요? 《개코형사 ONE코》는 2010∼2019년 사이에 우리말로 열두 자락이 나왔습니다. 그림꽃님은 《조폭 선생님》이며 《코우다이 家 사람들》 같은 그림꽃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겉속을 읽는 마음을 뼈대로 삼고, 겉속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저마다 찾아나설 숨빛이 무엇일까 하고 넌지시 물어요. 《개코형사 ONE코》는 ‘강력계 형사’로 일하는 ‘하나코’라는 아가씨가 이야기를 이끕니다. 형사가 보아도, 형사 아닌 사람이 보아도, 또 사납이(살인범)가 보아도 도무지 형사나 경찰로 안 보이는 꽃치마 아가씨가 수수께끼를 풀거나 사납이를 잡아내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피가 튀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한복판에 문득 ‘경찰개보다 코가 좋은 꽃차림 아가씨’가 킁킁거리며 나타납니다. 말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사람이 사람다운 숨결을 잊고서 총부림·칼부림을 일삼으며 사납짓을 벌이는 모습이야말로 말이 안 될 노릇 아니냐고 되묻고 싶어요. 스스로 웃음을 잊고 기쁨을 등지기에 우락부락 다투거나 싸우는 오늘날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이 녀석이 형사? 말이 되는 소릴 해, 갓짱! 이 녀석이 형사면 난 간호사다, 간호사!” (21쪽)


#デカワンコ #森本梢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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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9.15.

숨은책 644


《放漁》

 곽학송 글

 명서원

 1976.7.15.



  1993년에 바뀐 배움수렁(입시지옥)은 또래를 둘로 갈랐습니다. “수능을 보려면 읽어야 해.”라며 받아들이는 또래가 있고 “수능 때문에 읽어야 해?”처럼 짜증내는 또래가 있어요. 저는 둘 사이에서 “수능이고 뭐고 우리 삶을 담은 글이면 모두 새롭게 여겨 읽을 생각이야.” 하고 대꾸했습니다. 다만, 저처럼 읽겠다는 또래는 못 봤습니다. “수능을 보려면 읽겠다”고 여긴 또래조차 “야, 설마 그 책과 그 사람(작가) 글이 (시험문제에) 나올까?” 하면서 절레절레 미루며 “네가 읽고서 줄거리를 알려줘.” 하기 일쑤였습니다. ‘곽학송’이란 이름은 또래 사이에 ‘읽어야 하나 마나’ 하는 갈림길 가운데 하나였어요. 배움책(교과서)에는 안 나와도 이분 글을 읽었고, 아무튼 셈겨룸(시험문제)에도 안 나왔습니다. 《放漁》에는 ‘제주 4·3’을 다룬 〈제주도〉라는 긴글이 나옵니다. 이런 글도 있구나 여기면서 읽다가, 힘자리(권력층)에 붙어 아픈죽음을 구경꾼 눈길로 다루고, 몹쓸놈(학살자)한테 ‘너희 잘못이 아니야(면죄부)’ 하고 읊는, 썩어빠진 글장난을 느꼈습니다.


ㅅㄴㄹ


“현수! 쏴라!” 현수는 무아무중으로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달려오던 노인은 도로 발길을 돌려 달리다가 비명도 없이 불더미 속으로 거꾸러졌다. 그 연후에도 현수는 그냥 방아쇠를 당기었다. (332쪽)


“시체를 간수해 줄 만한 것들이라면 애당초 죽이질 않았겠다!” “뭣이 어드레? 한 번 더 말해 보라우야!” “저것들은 까마귀 밥으로 알맞다 그 소리야.” (336쪽)


“하하 솔딕히 말해서  그때 우리 아이덜 체네(처녀)만 보믄 독수리 병아리 덥티듯 하디 않았읍마.” (395쪽)


“자넨 이런 말하지 않았나. 사형수가 사형 집행인을 원망하는 법은 없다구. 오판일 경우라도. 내가 뭐 잘못했나? 난 집행인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네. 사람이란 누구나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행인이 되게 마련이네.” (4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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