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애 엄마가 알아본 시집
 [헌책방에서 만난 책 8] 문두근,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



- 책이름 :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
- 글 : 문두근
- 펴낸곳 : 혜화당 (1993.5.12.)



 (1) 함께 보는 눈으로


 아이를 옆지기가 돌보고 아빠 혼자 책방마실을 할 수 있으면 퍽 여러 시간 느긋하게 이 골마루 저 골마루 누비면서 책을 읽고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그야말로 이토록 호젓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홀로 아이하고 복닥일 옆지기가 걱정스러우며, 아픈 옆지기 곁에서 투정을 잔뜩 부릴 아이가 근심스럽습니다. 몸은 느긋하지만 마음은 바쁩니다.

 아이와 함께 책방마실을 하면 아이를 보랴 책을 보랴 사진기를 들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맞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살피면서 코로 책을 보는지 배꼽으로 사진을 찍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책방마실을 하고 책을 고르며 사진을 찍습니다.

 옆지기랑 아이랑 함께 책방마실을 하면, 이는 책방마실이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골치요 힘겨운 나날입니다. 그런데 온식구 나란히 책방마실을 한 까닭에, 세 사람 눈썰미로 책을 바라봅니다. 아주 살짝 들러 아주 살짝 책시렁을 둘러보지만, 사람마다 바라보거나 느끼는 책이 다르니까, 내가 못 알아챈 책을 옆지기가 알아채 주고, 옆지기가 못 알아보는 책을 내가 알아보아 줍니다.


.. 이른 아침 / 침대에 누운 채 본다 / 제쳐진 커튼 / 살없는 큰 유리창 밖은 / 한 폭의 수채화였다 / 잔잔히 빛나는 강과 / 흔들리는 숲과 / 제각각의 고풍한 집과 / 둘러 서 있는 건강한 나무들 / 그것은 복사본이 아니었다 ..  (스웨덴은 Doly의 그림을 낳고)


 새해맞이 인사를 하려고 경기도 일산에 자리한 옆지기네 어버이 댁에 찾아가는 길에, 서울 홍제동에서 살짝 쉽니다. 길이 고단하기도 하고, 어렵게 서울마실을 하는 마당이니, 다문 삼십 분이라도 헌책방에 들르고 싶습니다. 아이랑 애 엄마 모두 힘들기에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전철 3호선을 타고 구비구비 돌다가는, 또 버스로 갈아타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데, 어둑어둑한 저녁나절, 먼길을 오느라 코피를 쏟으며 힘든 아이하고 전철과 버스로 두 시간쯤 가기란 까마득합니다. 둘째를 밴 애 엄마가 전철과 버스에서 시달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택시삯 이만오천 원을 아깝다 여길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어차피 택시 타고 가니까, 다리쉼도 하고 아이 쉬도 누이며, 아빠도 마음쉼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 들러 아이는 두 번 쉬를 누게 하고 사진 몇 장 겨우 찍으니, 어느덧 책방 문을 닫을 때입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책방마실 맛을 살짝 보니까 어디이냐 싶습니다. 옆지기는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책을 볼 수 없다 하지만, 헌책방 아저씨하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문득 책 하나 보여서 끄집어 내어 애 아빠한테 건넵니다. “이 책 어떤지 한번 보세요.”

 낯선 글쓴이가 쓴 시집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입니다. 시집을 낸 곳 이름을 보니, 어쩌면 이 시집은 출판사에서 돈을 들여 내주었다기보다, 글쓴이가 돈을 내어 책을 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비출판’이라는 틀인데, 흔히들 ‘자비출판’ 책은 책이 될 만하지 않은 글을 묶는 책이라고 손가락질하곤 합니다. 그러나, 자비출판하는 책들 가운데에는 ‘장사하기 어려운 책’이 꽤 됩니다. 곧, 줄거리는 알차며 훌륭하거나 사랑스럽지만,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어 사서 읽기 어려운 책’이란 소리입니다. 이름값 없는 사람들 이름값 없는 글이라,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살가운 이야기라 할지라도, 여느 사람들은 이런 책을 사서 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낡은 의자 / 바닷가 돌멩이와 조개껍질 / 질그릇 조각 / 썩은 나무등걸 / 나뭇가지 휘어 만든 고기 뜰망 / 갈대와 지푸라기 / 그것들이 옷이나 보석이나 그림들과 / 그럴듯이 어룰렸다 // 스톡홀름 사람들은 / 손때 묻은 것들 / 크리스탈처럼 빛을 냈다 ..  (스톡홀름 사람들)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글쟁이 이름’이나 ‘펴낸곳 이름’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합니다.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합니다. ‘새로 나온 책’이나 ‘잘 팔리는 책’이나 ‘꾸준히 팔리는 책’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나 ‘권장도서’나 ‘고전’이 아닌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종이에 담은 삶이야기가 책입니다. 사람이 살아오며 겪고 부대끼며 헤아린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연예인 김수미 님이 쓴 글이란, ‘김수미’ 이름 석 자 아닌 ‘할머니 나이까지 살아오며 겪고 치른 삶’을 담은 글일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대학교수라는 이름을 내걸어야 책이 되지 않습니다. 소장학자나 전문가라는 이름을 걸쳐야 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나 스스로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며 사랑으로 나눌 이야기를 담으면 책이 됩니다.

 꾸민다고 책이 되지 않습니다. 덧바른다 해서 책이 되지 않아요. 수수하며 투박한 삶무늬 그대로 책이 됩니다.


.. 유람선으로 / 운하를 따라 / 암스테르담 둘러 본다 // 앞으로 쓰러질 듯 / 뒤로 넘어질 듯 / 옆으로 누울 듯 / 300년도 더 된 집들이 / 400년도 더 된 건물이 / 서로 몸을 기대고 / 서로 손을 잡고 / 다정하다 // 오래된 것은 / 낡은 것으로 여기었으나 / 늙은 것이 아름답다 / 늙은 것이 평화롭다 ..  (암스테르담에서)


 시집을 펼칩니다. 먼저, 옆지기가 한번 슥 펼쳐서 읽었다는 시부터 읽습니다. 다음으로 책장을 죽 넘겨 가운데 짬부터 하나하나 읽어 봅니다. 다시 처음으로 와서 읽습니다. 책장을 덮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시집은 이렇게 시집 하나로 엮였으니 참 고맙구나 싶은 한편, 이 시집은 얼마나 사랑받았거나 ‘문학평론’을 받아 본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시집을 ‘한국 시문학’ 가운데 하나로 다룰 일이 있을까 없을까 궁금합니다. 교과서에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하나라도 실을 일이 있을까 모르겠으나, 이 시들이 교과서에 안 실린다면, 이 시는 읽을 값이 없다고 여겨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이름있거나 이름없는 모든 문학평론가 가운데 ‘문두근’이라는 시쟁이 한 사람 이름을 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문두근 시문학 비평’을 어느 누구라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름 안 팔린 사람 시문학을 이야기해 본들 논문거리나 기사거리가 되지 않겠지요. 이름 안 판 사람 시집을 다루어 본들 논문집이나 문학평론책 같은 데에 실어 주지 않겠지요. 김용택이나 신경림이나 안도현 같은 이름 석 자쯤 되어야 사람들이 눈여겨볼 테지요.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라는 조그마한 시집 하나하고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라는 도톰한 시집 하나하고 나란히 꽂혔을 때, 여느 사람들은 어느 시집에 손을 뻗고 어느 시집을 돈을 치러 장만하거나 어느 시집을 즐거이 읽어 주려나요.


.. 우리 대한민국 / 외국의 누가 다녀갈 때 / 빌딩이 서고 / 고층 아파트촌이 생긴다 / 그곳에 살던 철거민들 / 생활을 잃고 / 투사가 된다 // 오늘도 / 타일랜드 사람들은 / 세계의 모든 사람들 보든 말든 / 세계의 모든 사람들 웃든 말든 / 메남강에 붙어 / 판잣집 난간에 / 오키드꽃 피운다 ..  (판잣집에서 오키드꽃 피운다)


 아주 짧게 책방마실을 마친 다음 밖으로 나옵니다. 옆지기네 아버님하고 어머님한테 무얼 선물해야 좋을까 이야기하다가 이 늦은 저녁에 무얼 살 수도 없으니 봉투에 맞돈을 담아 드리기로 하자면서 은행에서 돈을 찾습니다. 살림돈이 거의 바닥인데, 어찌저찌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살 수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옆지기네 식구들은 숫자가 많으니, 고기집에 들러 고기를 꽤 묵직하게 삽니다. 시골집 우리들은 고기 한 점 사먹을 일이 없으나, 옆지기네 어버이 댁을 찾아갈 때면 가금 고기를 장만합니다.

 전철역 옆에 선 택시를 불러 일산까지 들어가느냐고 여쭙니다.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니 아이가 또 쉬 마렵다 합니다. 참말 쉬가 마려울까? 아이는 힘들고 졸린 나머지 쉬 마렵다고 얘기했다고 느낍니다. “그냥 바지에 싸도 돼.”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얼마 뒤 눈을 껌뻑껌뻑하다가 픽 스러집니다. 아주 깊이 잠듭니다.

 택시는 자유로를 달리고 컴컴한 일산 맨 바깥쪽 논밭 가득한 마을로 접어듭니다. 드디어 옆지기네 어버이 댁에 닿고, 택시 일꾼한테 삼천 원을 더 드립니다. 이 깊은 곳까지 달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 ‘우리 나라도 양공주 산업시대가 있었지요.’ / ‘그렇죠. 그때는 양공주들이 외화를 벌어들였죠.’ ..  (나는 지금 발기할 달러가 없습니다)


 아이를 살살 안아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 신을 벗기고 자리에 눕힙니다. 아이는 잠들었다가 깨어납니다. 이모랑 삼촌이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있으니, 졸린 몸이면서 억지로 일어납니다. 아빠는 힘들어 죽겠으니, 아이 곁에서 한동안 지키고 섰다가 먼저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까 헌책방에서 장만한 시집이며 몇 가지 책을 꺼내어 몇 쪽이나마 펼칩니다. 아무리 힘들어 곧 쓰러질 판이랄지라도 이마저 안 읽으면 난 바보가 된다고 생각하며 눈꺼풀에 힘을 줍니다.


 (2) 함께 사는 몸으로


 아이랑 함께 살아가며 책을 읽기란 퍽 힘듭니다. 아이한테 눈높이를 맞추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아이하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애 아빠이기 앞서 책쟁이로서, 저는 일찍부터 어린이책이랑 그림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다음부터 어린이책이랑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1998년 1월 4일인가 5일에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읽은 뒤부터 비로소 어린이책에 눈을 떴습니다. 어린이였을 때에는 어린이책다운 어린이책을 거의 한 가지조차 못 보고 컸는데, 뒤늦게 어린이책 참맛을 깨달아 ‘어른으로서 어린이책’을 참 많이 읽고 그러모았습니다. 애 아빠가 아니었을 때부터 그림책을 꽤 많이 사서 보고 모았습니다.


.. 지은 지 10년 안 되어 / 못살겠다 / 새 아파트로 이사가야겠다 / 투기를 하고 / 지은 지 20년 지나면 / 재개발이다 / 딱지를 팔고 사고 하는 / 우리 대한민국 / 달러가 많아서인지 / 자유주의 국가여서인지 / 그까짓 수리하는 일쯤 / 1년이면 OK / 아니 6개월이면 OK / 어느 아파트처럼 / 어느 다리처럼 / 무너지면 고치면 된다 / 대한민국, 만세 ..  (대한민국, 만세)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기로 하던 무렵, 옆지기는 퍽 어린 동생을 집에서 돌보고 가르치면서 그림책을 많이 보아 왔음을 느낍니다. 옆지기가 어린 동생한테 읽히며 즐긴 그림책 가운데에는 제가 혼자서 좋아하며 즐기던 그림책하고 겹치기도 했지만, 안 겹치는 책도 많습니다. 두 사람 그림책이 하나로 모이니 꽤나 푸짐합니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 눈썰미로 바라보는 그림책 깊이하고 두 사람 눈길로 살피는 그림책 깊이는 다를밖에 없겠지요.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책방마실을 할 때에 셋이서 책을 고른다면 ……, 아, 아무래도 주머니가 털털 털릴 뿐 아니라 이듬달 살림돈까지 앞당겨 쓰는 꼴이 될까 싶은데, 어찌 되었든, 세 사람 눈높이로 들여다보는 그림책 깊이라면 오늘 눈높이보다 한결 그윽하리라 생각합니다.


.. 우리 중 누군가는 저렇게 작은 왜놈들이니까 자동차도 작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잠시 거리에 서서 경적 소리도 하나 없이 잘도 흘러가고 있는 꼬마장난감 자동차를 보면서 아니야 아니야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야 속으로 연신 뇌까리었다 ..  (日本·日本人 1 - 자동차)


 시집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를 생각합니다. 애 엄마가 알아보았기에 고른 이 시집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는 애 아빠랑 애 엄마가 먼저 즐겁게 읽으며 우리 집 책꽂이에 건사할 수 있습니다.

 널리 사랑받았다든지 꽤 팔렸다든지 이렁저렁 여느 책방 책꽂이나 도서관 책꽂이에 꽂혔다면, 나중에 우리 아이도 어렵잖이 이런 시집 하나쯤 얼마든지 찾아 읽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용히 나와서 아주 조용히 잊히거나 묻힌 시집 하나란, 되찾기 몹시 어렵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스무 살 나이가 될 2027년에는 이런 시집 하나는 한 권조차 안 남을 수 있어요. 한두 권 남는다면 ‘옛책’ 대접을 받아 퍽 비싼값에 사고팔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거나 널리 팔린 시집이 아닌, 이냥저냥 조용히 스쳐 지나가며 묻힌 시집 하나를 옛책으로 다룰 헌책방이 있을는지요. 그저 ‘좀 묵은 책’이니 비싸게 사고팔 책으로 여기지 않을는지요.


..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탠드 바의 둥그런 높은 의자가 적당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저 의자에 앉을 손님을 정중히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새벽 2시였다 … 어디 한마디 거침새도 없었다. 그러나 앵무새 같지도 않고 그러나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때로는 버스 속에서 스스로 노래하여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녀 오늘도 5시간 20분 동안 자기의 손님에게 쉬지않고 무어라 말하고 있지 않을까 ..  (日本·日本人 3 - 세 명의 직장여성)


 시집에 실린 시를 거듭 읽어 봅니다. 문두근 님이 스웨덴이나 태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이나 중국을 다녀오며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한 시집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에 담긴 이야기들은, 1993년과 2011년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을까 헤아립니다. 열여덟 해 동안, 한국 삶터는 한결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었을는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로 슬픈 길에서 허덕이는지 되뇝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며, 글을 쓴다는 분들은 어떤 글을 쓰고, 시를 읽는다는 분들은 어떤 시를 읽을까 곱씹습니다.

 우리가 아낄 삶이란, 우리가 사랑할 이웃이란, 우리가 부둥켜안을 터전이란 어떤 얼굴이나 낯빛인지 생각합니다.


.. 그도 일본인처럼 키가 작았으나, 그도 일본인처럼 ‘하이’ 소리를 내었지만 캔맥주를 따서 건네주며 권하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들과 도상하였다. 그런데 그의 손은 손톱이 뭉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은 지문도 채취할 수 없을 듯 굳은살이었다. 그리고 작은 키에 비해 손은 거인의 것이었다. 그리고 손마디는 매듭진 새끼줄 모양이었다. 캔맥주를 건네주는 그의 손을 나는 두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  (日本·日本人 4 - 재일교포의 손)


 헌책방에서 시집 하나 알아본 애 엄마는 그냥 시집 하나를 알아보았습니다. 잘난 시집도 아닌 못난 시집도 아닌, 그냥 시집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우리들은 우리 아이가 잘난 아이라거나 못난 아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입니다. 똑똑하다거나 어리숙한 아이가 아니라, 그냥 우리 아이입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여느 눈길로 바라보면서 사랑하고 껴안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아이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듯, 책방마실을 하는 자리에서도 더 빼어나거나 남다르다 싶은 책이 아닌, 우리 식구들 조촐히 사랑하는 삶을 밝히거나 북돋울 예쁜 책을 살핍니다.

 책은 마음밥이지 돈이 아닙니다. 책은 마음동무이지 이름값이 아닙니다. 책은 마음뿌리이지 허울이 아닙니다. 좋은 책을 좋은 넋으로 받아들이자면, 우리 식구들부터 멧골자락에서 좋은 멧골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九州의 거리는 유독 낯설지 않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R형 보도 블록, 도로가의 배추꽃이 마치 내가 처음 가 보는 우리 나라의 어느 도시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가로수와 보도 블록과 도로가의 배추꽃이 모두 일본에서 고스란히 본떠진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생기었다 … 안내원이 굳이 서양식이라는 설명이 있었음에도 거기에는 한국 것이 있음을 체감하였다. 아,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느 한 부분도 틀림없이 일본 것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고 있는가 이쯤 생각이 머물렀다 ..  (日本·日本人 9 - 가로수, 보도, 배추꽃)


 아, 지난밤부터 퍼붓던 눈이 이제서야 그칩니다. 날이 개고 해가 납니다. 눈이 그쳤으니, 눈삽과 빗자루 들고 눈을 밀고 쓸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애 엄마가 몸을 씻도록 읍내 마실을 할까 싶은데, 새벽 네 시부터 잠에서 깨어 놀자며 복닥이던 아이가 여덟 시가 되어서야 다시 잠들었기 때문에, 읍내 마실을 나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뭐, 오늘 못 나가면 이듬날 나가면 되지요. 오늘은 멧골집에서 눈이랑 신나게 어우러지고, 이듬날 천천히 오붓하게 눈길을 보독보독 밟으며 읍내 나들이를 하면 되지요.


.. 오슬로는 / 산책을 좋아한다 ..  (오슬로는)


 엄마랑 아이랑 아빠는 두 다리를 좋아하는 시골사람입니다. (4344.1.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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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마음
― 조성선,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



- 책이름 :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
- 글 : 조성선
- 펴낸곳 : 전파과학사 (1985.6.20.)


 내가 글을 언제부터 썼는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에 처음으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때까지는 따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를 온마음 기울여 붙잡은 때는 1995년부터라고 느낍니다. 내 어버이하고 살아오던 집에서 나와 혼자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갈 때부터 비로소 내 글쓰기 첫길을 열었다고 떠올립니다.

 1995년 4월 5일, 내 어버이 집을 나와 홀로 살림을 꾸리기로 한 때부터 이제까지 어설프든 어리숙하든 집살림과 책살림과 글살림을 혼자서 맡습니다. 따지고 보면 혼자서 살림을 한다 할 수 없고, 내 둘레 숱한 사람들 도움손길을 받으며 혼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혼자 살아간다지만 밥과 옷과 집을 혼자서 마련하지는 못하니까요. 언제나 누군가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글쓰기를 할 때에 으레 내 힘과 슬기로 글쓰기를 한다지만, 글로 쓸 수 있는 이야기란 내가 꾸린 삶이면서 내가 내 둘레 사람들과 부대끼며 꾸린 삶입니다. 내가 부대끼며 꾸린 삶이란 내 힘만으로 이룬 삶이 아니라, 둘레 사람들 사랑과 믿음으로 이룬 삶입니다. 글쓰기를 하기까지 얻는 온갖 깜냥 또한 내 마음밭이 따뜻하거나 내 머리가 뛰어나서 얻는 깜냥이 아닙니다. 나한테는 조그마한 씨앗이 하나 있을 뿐, 이 씨앗을 돌보거나 보살피는 손길이 많습니다. 게다가 내 가슴에 깃든 씨앗이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길러서 베푼 선물입니다.


.. 수업을 참관하던 내가 보기에는 보라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보였다. 다른 분단에서 실험한 결과도 모두 검은색으로 나타났다. 나는 조금 전에 발표했던 학생 곁으로 다가갔다. “얘, 이 색이 보라색이냐?” 그 학생은 머리를 긁으며 싱긋이 웃기만 하고 말을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보라색 같지가 않은데, 너는 이 색이 무슨 색으로 보이니?” 나는 옆에 앉은 다른 학생에게 물어 보았다. “검은색 같아요.” … “그런데 왜 보라색이라고 발표했지?” “녹말가루에 요오드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 “네가 실험한 결과는 소금이 ‘거뭇거뭇’하게 되지 않았는데 왜 ‘거뭇거뭇’하다고 발표했자?” “전과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 학생은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 지식이란 이미 발견되었거나 밝혀진 사실을 체계있게 엮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 수업에서, 교사가 어떤 식의 덩어리를 말로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어린이들의 발견하고자 하는 왕성한 의욕을 꺾어버린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  (9, 12, 39쪽)


 1995년 4월부터 2011년 1월에 이르는 나날을 돌이킵니다. 갓 홀로 살아가던 때이든 멧골자락 작은 집에 깃든 오늘 내 삶이든, 글쓰기를 하는 방은 겨울이면 썰렁해서 손이 시립니다. 따끈따끈한 곳에서 글쓰기를 한 적은 한 번조차 없다고 느낍니다. 추위를 잊거나 모르면서 글쓰기를 한 일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추운 날은 춥게 글을 쓰고, 더운 날은 덥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쓸 때면 으레 날씨를 헤아리고, 날씨를 헤아리는 하루하루 그대로 글을 씁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잠이 모자란 나날인 오늘, 잠이 모자라 꾸벅꾸벅 졸면서 글을 씁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는 매무새 그대로 글을 쓰고, 아이를 안고 달래며 토닥여 재우는 삶자락 고스란히 글을 씁니다.

 돈이 없어 더 따스한 집을 마련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 살림집을 꾸리거나 보듬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하기도 합니다. 겨울날 추운 집이라면 이래저래 뚝딱뚝딱 고치거나 손질해서 찬바람이 덜 들어오도록 해야 할 텐데, 이런 데에는 제대로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책 하나를 살핀다든지, 글 하나를 여민다든지, 어리숙하나마 밥하고 빨래하는 집일에는 마음을 쓰지만, 막상 집 안팎을 다스리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글을 쓰는 데에 마음을 바치듯, 집을 고치는 데에 마음을 바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모든 삶을 다 건사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 모든 삶을 다 건사한다면 글을 쓸 겨를이 없다든지, 구태여 글까지 쓰면서 살아갈 까닭이 없는지 모릅니다. 집을 손질하는 재미 하나로 넉넉할 삶일 테니까요.


.. 이렇게 볼 때 공장을 거쳐 나온 물건들은 제조되는 과정에서 연료를 소비시킨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므로 우리는 물건이나 물자의 낭비를 막음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대기오염도 줄여야 할 것이다. 즉 대기오염과 거리가 먼 것 같은 수도물도 헤프게 쓰면 쓸수록 대기를 오염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수도물 생산비의 1/3∼1/5은 전기요금이므로, 수도물의 낭비는 전기의 낭비와 같고, 전기의 낭비는 결국 석유나 석탄을 더 많이 태워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대기오염을 심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대기오염을 심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물 한 컵 연필 한 자루 도화지 한 장 양말 한 켤레라도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대기가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못 쓰게 된 물건이라도 마구 버리거나 태워서 또다시 대기를 오염시킬 것이 아니라 다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여 재활용해야 할 것이며 ..  (143∼144쪽)


 글을 쓰는 마음은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기쁘든 슬프든 즐겁든 고단하든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그대로 글로 담습니다.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을 쓴 조성선 님은 과학이라는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살았기에 이와 같은 책을 묶었겠지요. 과학나무가 삶나무가 되고, 삶나무가 사랑나무가 되는 길을 헤아리면서 글조각 하나하나 모았겠지요.

 글이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이란, 어느 날 한꺼번에 확 쏟아부은 글로 엮지 않습니다. 글이란, 오늘까지 살아낸 내 모든 땀과 슬기와 꿈을 실어 푼푼이 적바림합니다. 책이란, 날마다 조금씩 적바림하면서 그러모은 삶조각을 차근차근 꿰어맞추며 내놓습니다.

 과학을 하는 마음이란 글을 쓰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제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을 하는 마음이란 글을 쓰는 마음과 매한가지로, 내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아낌없이 돌보는 매무새를 건사해야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문하는 과학으로만 치달을 수 없는 과학이요,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치달을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웃음과 울음을 담는 과학하는 마음이고, 갖은 기쁨과 슬픔을 싣는 글쓰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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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얘기하고 장미와 말을 섞는
― 이원수, 《시가 있는 산책길》



- 책이름 : 시가 있는 산책길
- 글 : 이원수
- 펴낸곳 : 경학사 (1969.6.10.)


 “아동문학을 내 꽃동산으로 생각해 왔다(5쪽).”고 하는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을 봅니다. 시랑 소설이랑 동화랑 산문을 골고루 엮은 《시가 있는 산책길》은 “동화나 동시가 아동들만의 것으로 끝나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생각(5쪽)”에 따라 내놓는 책이라고 합니다. “문학 예술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4쪽)”한다는 이원수 님입니다. 하루하루 즐겁다고 여기며 보내었기에 즐겁다고 여기며 살아온 손길과 내음과 빛깔과 무늬가 이원수 님 시와 소설과 동화와 산문마다 알뜰히 배어듭니다. 슬프다고 여길 때에는 슬픈 빛과 내음이 담기고, 좋다고 여길 때에는 좋은 빛과 내음이 담깁니다.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내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 가며 조잘대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달)



 이름난 글쟁이나 손꼽히는 평론가 글을 들지 않더라도, 글은 삶이고 책 또한 삶입니다. 부엌일도 삶이고 바깥일도 삶입니다. 장작패기도 삶이며 지게질도 삶입니다. 빨래도 삶이고 젖먹이기도 삶입니다.

 우리가 부대끼거나 복닥이거나 마주하는 일 가운데 삶 아닌 일이란 없습니다. 아귀다툼도 삶이며 주먹다짐도 삶입니다. 손찌검도 삶인 가운데 따돌림도 삶이겠지요.

 나 스스로 즐겁게 꾸리는 삶일 수 있으나, 나부터 짓궂게 팽개칠 수 있는 삶입니다. 깊디깊이 바라보며 속으로 사랑할 삶인 가운데, 겉스쳐 지나가면서 겉치레에 얽매이는 삶입니다.


.. “쟤는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셔요. 전 쟤를 사랑하고 있어요. 쟤는 나를 잴강잴강 씹었어요. 전 아파서 울었어요. 그뿐인가요? 쟤는 저를 마구 비벼서 찢었어요. 저는 쟤 때문에 죽었어요. 아! 나를 죽인 아이여요! 사람을 죽였으면 사형을 받겠지요. 장미꽃을 죽인 아이는 어떻게 됩니까? 사형은 안 받습니까, 선생님?” ..  (191∼192쪽)


 엊그제만 해도 초승달이던 밤하늘인데, 오늘 새벽에 올려다보니 차츰 통통하게 차오르는 밤하늘입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한 달 두 달 지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빠랑 엄마는 꾸준하게 무르익는 나이로 접어듭니다. 이울고 차는 달마냥 나고 스러지는 사람이요, 가느다란 초승달에서 똑 사라지는 듯 보이는 달이었다가는 통통하게 꽉 차는 달처럼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엇을 하며 밥을 차리나 생각하고, 새벽녘 흩뿌리는 눈발을 보며 오늘만큼은 부디 눈도 그치고 날도 하루쯤 풀리면 얼마나 고마우랴 비손합니다.

 시골자락 삶자리이니 으레 땅을 보고 쉬 하늘을 봅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를 듣지만, 언제나 집 둘레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크고작은 새들 날갯짓을 바라보며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풀도 나무도 흙도 모두 눈으로 덮인 나날인데, 이런 겨울날 꽁꽁 얼어붙기만 한 날씨에도 어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낼 수 있니? 너희들도 얼른 따순 봄 찾아와 살진 먹이로 배를 채우면서 새끼를 키우고 싶겠지?


.. 서울의 거리에도 이젠 내 작품 속의 어느 장면이나, 내 동시의 어느 소재가 된 것이 늘어 가는 게 즐겁고, 그래서 나의 산책은 곧 내 생활과 어울려 하나가 되어 버린다. 아귀다툼하며 거리를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가엾은 것 같다 ..  (314쪽)


 1969년에 1쇄를 찍은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은 1972년에 2쇄를 찍은 듯하고 1978년에 3쇄를 찍은 듯합니다. 아니, 3쇄는 안 찍었겠다 싶습니다. 제가 뒤적이는 책은 1972년에 찍은 2쇄 같습니다. 1978년에 간기 종이를 새로 붙여 책값을 650원에서 700원으로 올려받습니다. 그러니까, 1972년에 잔뜩 찍어 놓고 안 팔린 책을 여섯 해 뒤에 종이값이든 물건값이든 꽤 올랐으니까 이렇게나마 종이 한 장 붙여 50원을 더 받으려 했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어찌 보면 우습지만, 곰곰이 헤아리면 슬픕니다. 이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이 2011년까지 새책방 책시렁에 얌전히 남았다면, 슬프게도 1972년 책값 650원 그대로일 테니까, 하는 수 없이라도 2011년 물건값에 발맞추어 6500원이만 16500원이든 올려붙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책을 헌책방에서 뜻밖에 마주친다 할 때에는 ‘마흔 해 앞서 붙은 책값이 650원이든 700원’이든 따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 터전을 헤아릴 때에 이 책이 얼마쯤 될까를 따져야 합니다. 350쪽이 넘는 퍽 도톰한 책이라 한다면 요사이는 글책이랄지라도 만오천 원쯤은 하겠지요. 값싸게 만 원 안팎일 수 있을 테고요. 헌책방 헌책 값으로 《시가 있는 산책길》을 만 원에 살 수 있다면 아주 싼 셈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헌책방에서 딱 한 번 마주칠 그때가 아니고서는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테니, 만 원 아닌 이만 원이어도 값싼 셈입니다. 나중에는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을 얹어 준다 하더라도 책 껍데기 구경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참 얄궂은 짐승이라, 판 끊어졌지 오래되었지 소담스럽지 알뜰하지 ……, 이런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산다 할 때에 만 원이나 이만 원 값을 치러야 한달 때에는 비싸다고 여깁니다. 아마, 이원수 님 이름을 아는 분들조차 이 책을 5000원에 사 가라 하더라도 비싸게 여길는지 모릅니다. (4344.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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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아닌 날씨를 보며 산다
― 데오도라 크로버,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책이름 :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글 : 데오도라 크로버
- 옮긴이 : 김정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81.9.20.)



 이오덕 님이 1984년에 내놓은 책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 끝자락을 보면 〈어린이의 마음을 지켰던 마지막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있습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제대로 읽어 제대로 말한 글은 1981년부터 2011년 오늘까지 오직 이 글 하나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책으로 묶이지 못하거나 신문·잡지 같은 데에 안 실린 채 조용히 적바림한 사랑스러운 느낌글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구태여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느낌글이 아닌, 일기장에 살가이 적어 놓은 느낌글이 있을 수 있겠지요.


.. 캘리포니아 산기슭 언덕 지방의 샛강이나 하상에 깔린 자갈 속에 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처음 이주했을 때는 물방울에 불과했던 것이 강물을 이루어 산맥의 서쪽 면을 쏟아져내리게 되었다 … 그들(백인)은 비록 물방앗간샛강족은 한 명도 못 잡았지만 잡아 죽일 인디안 ‘몇 명’은 발견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 길이 나고 목장이 들어서고, 구릉 지대로 새로 밀려드는 백인 이주민들 때문에 물방앗간샛강 지방은 갈수록 잠식당했던 것이다 ..  (64, 98, 144쪽)


 1981년에 나온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쓴 ‘데오도라 크로버’ 님은 1982년에 나온 《마지막 인디언》을 쓴 ‘디오도러 크로버’ 님하고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책이 옮게 적바림한 이름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두 책 모두 글쓴이 이름을 알파벳으로 밝히지 않았거든요. 다만, ‘크로버’는 ‘Kroeber’로 적으며, 남편 이름은 ‘알프레드 루이 크로버’라 합니다. 알파벳 이름이 ‘Kroeber’라 한다면, 네덜란드 쪽 이름이 아닌가 싶고, 네덜란드 쪽 이름이라면 이 이름은 ‘끄루베르’로 읽어야 맞는데, 영어 투로 읽는다면 ‘크루버’입니다.

 책에는 안 나오는 이름을 인터넷으로 살펴 가까스로 ‘Theodora Kroeber’라는 알파벳 이름을 찾아냅니다. 이 알파벳 이름으로 다시금 살피니, ‘Theodora Kroeber’ 님은 1897년 3월 24일에 태어나, 1979년 7월 4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시오도라 크뢰버’ 님은 딸아이 ‘어슐러 K.르 귄’을 1929년 10월 21일에 낳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슐러 K.르 귄’은 판타지문학 작품으로 몹시 사랑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 1850년대는 야나족에 있어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측면이 적에게 노출되자 그들은 도매금으로 노예 신세가 되거나 납치되었고, 성병으로 인한 극심한 타격 때문에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이런 인접 지방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야히족은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식량을 주워 모으던 땅을 상실하면서, 멀지않아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 심각한 타격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사슴이나 다른 사냥감들의 수가 감소했음은 물론, 권총을 쏘는 소리(이쉬는 권총이 ‘부서지는’ 소리라고 했다)가 투석기나 활 따위가 지닌 무성무기의 장점을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짐승들이 워낙 조심을 하는 터라 몰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인디안들은 가능한 시간, 가능한 장소에서 말·노새·소 그리고 양들을 가져갔다. 그들은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걸칠 것으로 만들면서 이 가축들의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았다 … 단지 살기 위해서 훔치거나 죽인 것이지, 가축 수를 늘리거나 재산을 모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  (88∼90쪽)


 헌책방마실을 하며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곧잘 만납니다. 아주 흔한 책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책 또한 아닙니다.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얌전히 꽂힌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기쁘게 집어드는 사람은 썩 드뭅니다.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이 아니라면, 게다가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일지라도 책읽기를 몹시 좋아하거나 공부를 깊이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않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들 말과 삶을 다룬 책이 그럭저럭 팔리거나 읽히곤 합니다. 북중미 토박이들이 살아오며 남긴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얻는다고들 합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은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북중미에서 마지막 석기사람으로 살았다 할 만한 ‘이쉬’라는 사람을 ‘박물관사람’으로 삼아 ‘보살폈다’고 하는 백인이 곁에서 지켜보고 학문으로 파헤친 이야기를 갈무리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입니다. 《마지막 인디언》은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을 어린이도 알기 쉽도록 한결 부드러우며 애틋하게 엮은 동화문학입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이른바 보고서라 할 만합니다. 북중미 땅에서 ‘야히 겨레’가 어떻게 백인 손아귀에서 괴로워 하다가 그만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는가를 차분히 들려주는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쉬’라는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이 ‘야히 겨레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스스로 적바림해 놓아야 한다는 ‘야히 겨레 옛사람 목소리’를 듣고 나서 스스로 박물관사람으로 지내는 자취와 삶을 곁에서 꼼꼼히 살핀 ‘적이 아니지만 동지 또한 아닌 인류학자(남편)랑 이야기꾼(아내)’이 갈무리하면서 엮어 놓은 ‘야히 겨레 역사를 다른 모습으로 담은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 이쉬는 사냥의 어느 과정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의식을 거치지 않고는 화살을 만지지도 않았다. 사슴 사냥을 나갈 때는 다른 의식절차도 첨가되었다. 사슴 사냥을 나가기 전날이면 이쉬는 밤이고 낮이고 생선을 먹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금욕기간은 3일로 연장되는 적도 있었다 ..  (268∼269쪽)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는 당신 삶을 숱한 글과 사진과 이야기로 남긴 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 삶을 담은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1981년에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읽히다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아직 한국땅에서는 이 책이 책다이 읽히기 어렵다 할 테고, 문화학이나 인류학으로서도 깊이 헤아리기 힘들다 할 테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길동무로 삼기에도 벅차다 할 테지요. 한국사람은 한국문화와 한국삶조차 살뜰히 돌아볼 겨를이 없을 만큼 몹시 바쁘니까요.

 시계나 달력에 맞추어서 살아간 사람이 아닌 이쉬입니다. 날씨와 철과 바람과 흙과 햇볕에 따라 살아간 사람인 이쉬입니다. 이쉬를 읽으려면 내 삶이 시계 아닌 날씨로 움직여야 하고, 달력 아닌 철에 따라 숨쉬어야 합니다. 돈이 아닌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며 살아야 합니다. 1978년에 나왔다는 ‘이쉬 이야기 담은 영화’가 어떤 줄거리를 담았을는지 궁금합니다. 12달러면 살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 이 영화를 장만할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4344.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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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삶을 고마운 말에 실어 고마운 책으로
― 민영, 《내 젊은 날의 사랑은》



- 책이름 : 내 젊은 날의 사랑은
- 글 : 민영
- 펴낸곳 : 나루 (1991.9.30.)


 시를 쓰는 분들이 쓰는 산문을 즐겨읽습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이 쓰는 산문도 즐겨읽습니다. 그런데 산문을 쓰는 이들이 쓰는 시나 소설은 거의 못 봅니다. 어쩌면, 산문쓰기만을 즐기는 이는 퍽 드물지 않느냐 싶고, 산문쓰기를 하는 이들은 다른 갈래 글은 거의 못 쓰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 한 장에 말 한 마디를 붙일 때에도 산문입니다. 사진과 글이 어울린다는 거의 모든 책들은 산문으로 적은 글이라 할 만합니다. 자서전이나 일기나 편지를 책으로 묶을 때에는 산문으로 쓴 글이라 여길 만하고, 책을 읽고 적바림하는 글 또한 산문으로 적바림하는 글이라 볼 만합니다.

 산문이란 가장 홀가분하게 쓰는 글입니다. 길이를 맞출 까닭이 없으나 길이를 맞추어 써도 됩니다. 줄을 띄어서 적을 까닭이 없지만 줄을 알맞게 띄어서 적을 수 있어요. 산문은 시처럼 써도 되고 소설처럼 써도 됩니다. 산문이라는 테두리에서 산문이라는 알맹이를 건사한다면 모두 산문입니다.

 시 가운데에는 산문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문 가운데에는 ‘시산문’이란 없습니다. 산문이란 그예 산문이지만, 산문이면서 시 내음이 나기도 하고 소설 빛깔이 나기도 합니다. 산문은 제 얼굴이나 목소리가 없다 할 만한 글인데, 제 얼굴이 없어도 즐겁고 제 목소리가 나지 않아도 즐겁게 나누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 우리가 세든 집은 긴 것이 특색이었다. 버스간처럼 길다랗게 생긴 일자 집을 반으로 나눠 오른쪽에는 주인집 식구들이 살고, 나머지 왼쪽 단간방에는 우리가 살았다. 집 앞에는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늘 만국기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엄마(아내)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공동수도로 물을 길러 가야만 했다. 물지게를 지고 돌층계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한참 동안 내려가야 수도가 있는데, 거기에서 물이 담긴 물지게를 지고 집까지 돌아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서울로 시집오지 말 걸 그랬어요. 시골 있을 때도 이처럼 고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팔자인 모양이죠? 하기야 시골에서는 저보고 서울로 시집가 얼마나 좋으냐고 말들을 하지만, 이거 어디 서울 신랑 얻었다고 좋아할 수 있겠어요?” … 아빠는 이때부터 우리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여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열심히 살려고 밤잠조차 줄여 가며 노력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동숭동 집에서 평지에 있는 효제동 집으로 이사한 것은 그 이 년 후의 일이었다. 전세값이 해마다 껑충껑충 오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낙산 꼬방동네 인심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가난뱅이 사정은 없는 사람만이 안다고, 조선 팔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다 모인 꼬방동네 사람들의 마음에는 훈기가 있었다 ..  (22, 24, 31쪽)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글이든 마음대로 쓰지 못합니다. 내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야 비로소 글 한 줄을 씁니다. 산문 또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야 비로소 한 꼭지 얻습니다. 그런데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서 이루는 산문 한 꼭지이지만, 시를 쓸 때나 소설을 쓸 때나 사진을 찍을 때처럼 어떠한 틀에 매이지 않습니다. 틀에 매일 때에는 산문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사진을 찍든 내 잣대에 따라 내 틀을 마련해야 하기는 하면서도 내 틀에 얽매여서는 열매 하나 이루지 못합니다. 틀을 마련하여 지키지만 틀에 매일 때에는 아무런 문학도 문화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산문은 틀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어느 결에도 매이지 않되, 다른 모든 문학과 문화와 마찬가지로 모든 넋과 기운을 바치는 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산문쓰기가 다른 시쓰기나 소설쓰기나 사진찍기보다 한결 힘들는지 모릅니다. 틀이 없는 틀이 산문쓰기가 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일과 살림살이 가운데 ‘틀이 있는 틀’이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하면서 쌀알 숫자를 꼭 똑같이 맞추는 일이란 없어요. 그저 쌀자루에 담아 놓은 작은 밥그릇 하나를 푹 박아서 집어올리는 느낌과 무게로 어림합니다. 쌀을 씻을 때에 물을 어느 만큼 부어서 씻은 다음 몇 초에 걸쳐 어떠한 빠르기로 개수대로 버려야 하는가 하는 틀 또한 없습니다. 밥을 안칠 때에 불을 어떠한 불을 넣고 몇 분 몇 초 동안 끓여야 하는가 하는 틀 또한 없어요. 그런데 모두 같은 밥입니다.

 김치를 접시에 담을 때에 몇 조각이 되도록 하나하나 세지 않습니다. 김치를 칼로 썰거나 가위로 자를 때에 크기가 어떻게 되도록 꼼꼼히 살피지 않습니다. 밥술을 뜰 때에도 똑같고, 젓가락질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밥을 먹고 젓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님과 입을 맞출 때에 ‘오늘은 몇 초 동안 입을 맞추어야지.’ 하지 않습니다. 더 깊이 입을 맞춘다든지 더 살짝 입을 맞춘다든지 해서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지 않아요.


..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처방전에 약이름을 적어 주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왕진을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안 됩니다. 이 약을 갖다 먹이면 곧 나을 겁니다.” 의사는 다소 사무적으로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기야 대학에서 교수직까지 맡으신 분이니, 조바심하는 환자 쪽의 요청을 다 들어줄 수는 없을 것도 같았다 … 그러나 앓는 아이의 아비로서는, 그때 그분이 좀더 차분하게 증세를 설명하며 다급한 자의 물음에 이해와 동정을 베풀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인술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일까? ..  (140∼141쪽)


 아이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를 때면 아이는 혼자 신나게 달리다가, 아빠 손을 잡다가, 힘들다며 안아 달라 합니다. 어찌 되든 우리들은 멧길을 오르내리고, 즐거이 바깥바람을 쐽니다.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기도 하지만, 엄마 무릎이나 아빠 무릎에 누워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오줌을 잘 가려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가 있는 한편, 잘못해서 바지에 쌀 때면 아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러니 하고 꾸중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꾸중을 듣는 아이가 신나게 뛰놀다가 곯아떨어져 색색대는 곁에서 이불을 덮어 주며 생각합니다. 왜 아빠로서 아이를 조금 더 따스히 돌보지 못하고 꾸중부터 하는가 하고.

 아직 많이 어리니까 잘못할 수 있습니다. 더 개구지게 놀고 싶지만 아빠가 온갖 집일과 글쓰기에 얽혀 온 하루를 마음껏 놀아 주지 못하니까 말썽을 부릴 수 있습니다. 어른으로서 이런 대목쯤 못 봐주는가 싶어 부끄럽습니다.


.. 현실에 안주하여 잠꼬대 같은 풍월을 읊조리긴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시는 치열한 자기성찰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짓이 끼어서는 안 됩니다. 잘난 체해서도 안 됩니다. 남에게 오래도록 불려지길 바란다면 시는 어머니가 떠 놓고 비는 한 사발의 정한수같이 진실하고 겸허해야 합니다 … 솜씨가 늘면 자만하기 쉽고 이제까지 공들여 쓰던 시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 정도의 글쯤이야’ 하고 시쓰는 작업을 무시하게 될 때, 즉 생각을 깊이하고 시어를 갈고 다듬는 일에 소홀해질 때, 이제까지 빈틈없이 긴장을 유지해 오던 시가 갑자기 맥이 풀려서 헤식은 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  (150, 157쪽)


 시쓰는 민영 님이 내놓은 산문책 《내 젊은 날의 사랑은》을 읽었습니다. 1991년에 나온 이 산문책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헌책방마실을 1992년부터 다녔는데, 이때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이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새책으로도 마주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 물 긷고 빨래하러 이오덕자유학교로 천천히 멧길을 걸어올라가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지난날 이오덕 선생님이 보시던 책 가운데 이 책이 눈에 뜨이어 빌려서 읽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스무 해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1970년대 첫무렵부터 1990년까지 쓴 산문을 성글게 그러모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은》이라는 책은 민영 님이 당신 글에 곧잘 쓰는 ‘헤식다’라는 말마디처럼 헤식은 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 작은 책에 꽤 길게 담은 ‘민영 님네 아주머님’ 이야기는 더없이 사랑스러우며, 그지없이 애틋합니다. 당신 따님 ‘들레’한테 띄우는 편지도 참으로 좋습니다.

 어쩌면, 민영 님 묵은 책을 읽으며 끄적이는 이 느낌글 하나는, 우리 집 첫딸 사름벼리한테 쓰는 어설픈 ‘아빠 편지’가 될는지 모릅니다. 곯아떨어진 딸아이를 잠자리에 곱게 눕혀 이불을 덮은 다음, 아버지도 많이 졸리며 고단하지만, 졸음과 고단함을 꾸욱 참으면서 글 한 꼭지 붙드는 삶을 오늘 하루치 남겨 놓고, 딸아이가 먼 뒷날 무럭무럭 자라나서 제 아비가 쓴 글을 찬찬히 돌아본다 할 때에 2011년 1월 어느 날 이런 글도 이런 살림을 꾸리면서 썼네, 하고 돌아보아 줄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꾸면서 쓰는 편지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고마운 삶이기에 고마운 넋을 껴안고 고마운 말을 고마운 책에 담습니다. (4344.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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