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9.4.

숨은책 546


《슬기로운 병영생활》

 최종규 글

 육군본부

 1995.11.10.



  수원병무청 군의관은 몸살피기(신체검사)가 아닌 줄세우기·뒷돈받기를 했습니다. 어버이 돈줄·힘줄이 없거나 병무청에 뒷돈을 안 대면 누구나(?) 바로 끌려갑니다. 같이 몸살피기를 받던 또래가 물어요. “야, 10만 원이면 넌 안 끌려가는데 돈이 아깝냐? 우리 어머니라면 바로 돈을 줄 텐데.” “돈 때문이 아니야. 법대로 해야잖아?” “미친놈. 우리나라 어디가 법대로 굴러가냐?” 1995년 11월 10일, 논산훈련소에서 《슬기로운 병영생활》을 나눠 주고 저녁마다 쓰라 하며 걷어서 이튿날 돌려줍니다. ‘수양록·훈련일기’인 셈인데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안 쓰’면 얻어맞고 얼차려로 하루를 보냅니다. ‘육군목표 : 자유민주주의 수호’라지만 “각종규정 준수, 명령, 지시에 복종하고 있는지 하루일과를 반성” 하라는 《슬기로운 병영생활》은 ‘자유민주주의’하고 한참 멉니다. 팔굽혀펴기·턱걸이·2km 달리기를 이레마다 적고,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하는 그림을 보고서 느낌글을 적습니다. ‘병적부’에 넣으려고 찰칵 찍은 옛모습을 돌아보니 ‘굴레꾼(죄수)’ 같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국회의원·장관·시장·군수) 아들이 싸움판(군대)에 끌려간다면 이 짓을 시키거나 종살이를 시켜 바보로 굴리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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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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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4.

숨은책 536


《북한기행》

 피터 현 글

 금성철·박윤희 옮김

 한진출판사

 1980.8.5.



  북녘을 홀가분히 돌아다니고서 이야기를 남긴 사람은 아직 없다시피 합니다. 평양 한복판이나 시골 귀퉁이에서 수수하게 살림을 꾸리고서 이야기를 남긴 사람도 없다시피 합니다. 북녘 이야기는 두 갈래입니다. 첫째, 남녘 우두머리·벼슬아치·힘꾼·이름꾼·돈꾼이 북녘에 가서 심부름꾼 뒤를 졸졸 따르면서 “김일성 치켜세우기”를 듣고 난 이야기가 하나예요. 둘째, 북녘에서 몰래 달아난 사람이 남녘으로 와서 털어놓은 이야기가 둘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홀가분하게 누비고 돌아보고 느낀 대로 말하는 길을 트지 않는다면 총칼로 억누른 사슬터입니다. 북녘은 여태 사슬터로 흘러왔다면, 남녘은 얼마나 날개를 펴려나요? 《북한기행》을 헌책집에서 만났습니다. ‘1980.12.15. 122569호, 서울특별시립종로도서관’ 이름이 꾹 찍힌 책으로, 빌린이는 없더군요. 빌린이가 없어서 치운 듯해요. 피터 현(1927∼2019) 님은 ‘CBS 기자’로서 평양·함흥을 찾아가서 ‘벤츠 창 틈’으로 겨우 북녘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내내 심부름꾼(수행원)하고 다투었더군요.


“우리한텐 질문을 하거나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권한이 없어요.” “인민의 민주공화국에서 인민들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수 없단 말입니까?” 나는 다그쳤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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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4.

숨은책 541


《新修シエ-クスピヤ全集 第八回配本 : アセンズのタイモン》

 シエ-クスピヤ 글

 坪內逍遙 옮김

 中央公論社

 1934.5.3.



  서울에서 살던 1998∼2003년에 헌책집으로 마실을 가서 이 책 저 책 보노라면 책집지기님이 으레 “참 온갖 책을 다 보시네. 하긴. 이 책 참 멋지지 않습니까. 일본이라면 밉지만 일본책은 배울 대목이 많아요. 보세요. 저 나라에서는 이때에도 이런 책을 냈어요.” 하고 말씀합니다. 《新修シエ-クスピヤ全集 第八回配本 : アセンズのタイモン》도 책집지기님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생각해 봐요. 1934년이면 우리로선 식민지 때 아닙니까? 그때 누가 셰익스피어를 읽거나 알겠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전집을 저희 말로 옮겼어요.” 이날 이 헌책집에서 《新修シエ-クスピヤ全集》을 ‘第四回配本 1934.1.3. 《ヂョン王》, 《ブ-リクリベ》’하고 ‘第八回配本 1934.5.3. 《アセンズのタイモン》, 《ぢゃく馬馴らし》’ 두 꾸러미만 집었습니다. 책집지기님은 “왜 둘만 사시나? 싸게 줄 테니 다 가져가셔요.” 하고 묻습니다. “아녀요. 전 보기책으로 둘만 곁에 두게요. 다른 손님도 이 놀라운 책을 만나셔야지 싶어요.” 여덟째(8회 배본) 꾸러미 사이에는 〈沙翁復興 8〉(1934.5.)이란 알림책이 깃들고, 꾸러미 겉에는 “新刊 大邱 東城路一 螢雪書店 電 二二七二番”이 찍힙니다. 아, 대구 마을책집 자취입니다. 이제 ‘대구 동성로 형설서점’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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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4.

숨은책 540


《재미있는 종이접기 (120가지)》

 편집부 엮음

 남향문화사

 1971.5.5.



  어릴 적에 종이접기를 꽤 좋아했으나 막상 마음껏 쓸 만한 종이가 적었습니다. 2000년을 넘어선 뒤로는 종이가 매우 흔하다고 느끼지만, 1990년 첫무렵까지도 종이를 무척 아껴썼어요. 알림쪽(광고지) 뒤가 하얗다면 알뜰히 건사했어요. 어린이로 살던 1980년 언저리에는 길에 구르는 종이가 없나 하고 살피고, 신문종이까지 고마이 여겼습니다. 나중에 보니 모든 곳에서 종이가 드물지는 않더군요. 가난살림인 마을에서는 무엇이든 아쉬울 뿐이에요. 껌종이도 주워 두루미나 별이나 공이나 개구리를 접습니다. 집에 ‘종이접기책’이 있던 동무가 있었는지 모르나, 다들 눈썰미로 배우거나 스스로 길을 찾아내어 접었습니다. 《재미있는 종이접기 (120가지)》는 1971년에 나왔고, ‘여성단체협의회 추천도서’ 글씨를 겉에 박습니다. 그때 이런 책이 다 있었네 싶어 놀랍지만, 줄거리는 일본책을 고스란히 가져왔어요. ‘오리가미(折り紙)’는 일본 살림이고, 종이오리기는 중국 살림이며, 노엮기(지승공예)는 우리 살림입니다. 처음은 이와 같더라도 서로 얼마든지 받아들이거나 배울 만하고, 우리 나름대로 ‘종이접기’란 이름을 지었어요. ‘일본 종이두루미’하고 ‘우리 종이두루미’는 다르게 접어요. 종이로 꼬물거리며 시름을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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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30.

숨은책 545


《續 主婦之友 花嫁講座 第五卷 習字兼用 手紙の書き方》

 石川武美 엮음

 主婦之友社

 1940.7.31.



  배움터가 서기 앞서는 순이돌이 누구나 집일·집살림을 같이 건사하고 배우며 돌보는 길이었습니다. 임금붙이·벼슬아치·글바치라면 글을 익히거나 읽었을 테지만, 수수한 순이돌이는 흙을 만지고 풀꽃나무를 읽으며 해바람비하고 동무하는 나날이었어요. 일본도 우리나라도 ‘국민교육’을 “하루 빨리 글과 셈을 익혀서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싸울아비(군인)나 톱니바퀴(부속품)가 되라”는 밑뜻으로 시켰습니다. 지난날 돌이(남자)만 으레 배움터에 밀어넣어 ‘국민교육’을 시켰는데, 싸움터 총알받이로 잔뜩 내보내야 했거든요. 이동안 순이(여자)는 집일과 아이돌봄을 도맡도록 갈라요.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지어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주던 옛날에는 함께 일하고 쉬고 놀고 배웠습니다.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할 적에는 늘 순이돌이가 어깨동무였어요. 《續 主婦之友 花嫁講座 第五卷 習字兼用 手紙の書き方》는 ‘싸울아비가 되도록 배움터에 들어가는 길이 막힌 순이’를 가르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밥짓기·옷짓기도 가르치지만 ‘글씨쓰기’도 가르칩니다. 일본은 순이한테 글씨를 가르치는 여느 책까지 냈습니다만, 우리는 순이한테 글씨를 가르칠 생각을 안 하기 일쑤였어요. 총칼에 눌렸다고는 하나, 돌이 스스로 눈을 안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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