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르는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
이근화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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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35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이근화

 마음산책

 2020.8.20.



생각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식물처럼 시들고 썩어버린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식물이어서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꾸는 고유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7쪽)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끼니를 거르는 일과 폭식이다. 정신이 피폐해진다. 그러니까 매일 적당히 조금씩 맛있게 먹기 위해 또 좀 걸어야 한다는 것을 환기하게 되는 나이. (29쪽)



우리는 아주 작다. 그리고 아주 크다. 작기에 크고, 크기에 작다. 작다고만 바라보기에 큰 길을 놓치고, 크다고만 여기기에 작은 길을 못 본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이근화, 마음산책, 2020)를 줄줄이 읽다가 글쓴님이 스스로 모든 삶터이며 삶길이며 확 내려놓거나 바꿀 수 있다면 글길이 어떻게 달라졌으려나 하고 헤아려 본다. 좋아하는 길은 싫어하는 길하고 늘 맞닿는다. 싫어하는 길도 좋아하는 길하고 언제나 맞물린다. 이 대목을 어릴 적부터 깨닫고는 아찔했다. 어린 나날 늘 이 실랑이로 머리가 아팠고 “아니, 그럼 어쩌라고?”를 혼자서 외쳤다. 이러다가 살아내면서, 이곳에서도 살아내고 저곳에서도 살아내며, 또 그곳에서도 살아내고, 어느새 곁님이 함께 살고, 어느덧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좋다 싫다’가 아닌 ‘스스로 지으면서 이루고픈 사랑’ 하나만 헤아리면서 즐거이 노래하면 되는 줄 깨닫는다. 끼니를 거르기 싫으면 먹으면 된다. 마구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된다. 둘 다 해보면 된다. 하루에 굳이 두끼나 세끼를 먹을 까닭이 없다. 몸이 안 바라면 며칠이고 안 먹으면 되고, 몸이 바라면 하루에 너덧끼를 먹어도 된다. 그렇다. 삶이란 스스로 즐겁게 나아가는 길일 뿐이니, ‘작은이(작은 사람)’ 목소리보다는 ‘사람’ 목소리를 바라보면 스스로 살림을 노래하는 하루가 되는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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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혼자서 - 윤동희 산문집
윤동희 지음 / 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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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32


《좋아서, 혼자서》

 윤동희

 달

 2019.12.30.



출판사 문학동네의 브랜드로 시작한 북노마드는 계열사로 승격했고, 2016년 1인 출판사로 독립했다. 모기업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했다. 수억 원이 들어갔다. 괜찮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날의 보상으로 여겼으나 곧 후회했다. (10쪽)


나는 왜 일을 하는 걸까. 성공하고 싶어서? 성장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그렇지 않다. 지나치게 애쓰지 않았다. 그저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 다녀야 하고, 취업해야 하고, 일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보! 나는 바보였다. (13쪽)


나는 내 아이의 아기 시절을 실시간으로 목격하지 못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타깝다. 모든 시간이 소중하지만 가장 아까운 시간이었다 … ‘북노마드’를 시작한 이유는 하나.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지 딸아이의 시간에 맞출 수 있어서였다. (20쪽)



《좋아서, 혼자서》(윤동희, 달, 2019)를 읽는다. 글쓴님은 문학동네에서 따로 연 작은 출판사를 이끄는 몫을 하다가, 이곳을 따로 사들여 홀로서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그동안 땀흘려 일군 책이 그곳에 있으니 사들일 수도 있는데, 이보다는 그 밑돈으로 아예 새롭게 출판사를 차려도 될 만하지 싶은데 하고 생각해 본다. 혼자서 가는 길이라면 더 홀가분히, 좋아서 가는 길이라면 더 가볍게 나아갈 적에 그야말로 “좋아서 혼자서”가 될 테니까.


적잖은 사내는 그냥 사내일 뿐 ‘아버지’가 아니기 일쑤이다. ‘아버지’는 어버이 노릇을 하는 사내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곁사내라서 아버지가 되지 않는다. 글쓴님 스스로도 밝히지만 기저귀를 간 적이 없는 사람은 아버지일 수 없다. 기저귀를 간 적이 없다면, 빨래를 한 적도 없다시피 하겠네 싶고, 밥짓기라든지 비질이나 걸레질도 거의 모르겠네 싶다.


아무래도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집살림이나 집일은 모르지 않겠나. 더더구나 ‘기저귀 갈기’란 종이기저귀일까, 천기저귀일까? 기저귀를 갈지 않았다면, 아기한테 젖을 먹이는 일도 안 했을 텐데, 젖떼기밥을 어떻게 먹이는지, 아기에서 아이로 흐르는 사이에 수저를 어떻게 쥐도록 이끄는지, 아이한테 걸음마를 시키고, 아직 다릿심이 모자란 아이를 안고 업고 챙기면서 저잣마실을 하거나 바람을 쏘이는 나날이라든지, 아이가 말을 익히도록 ‘어른끼리 쓰는 일본스러운 인문학 한자말’이 아닌 ‘삶에서 묻어난 살림말을 부드러이 들려주고 노래를 함께 부르고 춤을 신나게 추면서’ 자장자장 재우는 하루도 모르겠구나 싶다.


글쓴님은 손수 쓴 책에서 이 대목을 얼핏 밝히는데, 이마저도 안 밝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요새는 ‘글쓰는 사내’뿐 아니라 ‘글쓰는 가시내’도 집살림이나 아기돌봄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분들이 나쁘거나 잘못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어른도 될 수 있고 어버이도 될 수 있으며 그냥그냥 철없는 아이로 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어린이로 노래하는 삶도 재미있다. 굳이 모든 길을 다 치르거나 겪어야 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보면서 함께 사랑으로 새꿈을 그리면서 노래하는 살림길을 걷지 않고서 ‘페미니즘’이라든지 ‘진보’라든지 ‘생태환경’ 같은, 또 ‘문화예술’이나 ‘인문철학’ 같은 이야기를 섣불리 안 하면 좋겠다.


힘들구나 싶으면 안 해도 되지만, 적어도 달포쯤은 천기저귀로 똥오줌을 가리도록 해보는 살림은 치러내야지 싶다. 벅차구나 싶으면 안 해도 되지만,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서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밥을 차려서 먹이는 집일을 달포쯤은 해봐야지 싶다.


왜냐하면, 요새는 다들 혼씽씽이(자가용)을 몰면서 다니지만,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씽씽이를 몬 사람은 드물었고, 한두 다리 앞서 이 나라 거의 모두라 할 어머니는 두 팔과 두 다리로 아기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면서 말을 가르쳤고 걸음마랑 노래를 물려주었으며, 오롯이 피어나는 웃음꽃을 보여주었으니까. 좋아서 그 길을 가기에 이웃을 바라보면 좋겠다. 혼자서 그 길에 서기에 둘레를 헤아리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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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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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28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신소희 옮김

 푸른숲

 2020.3.20.



어릴 때 할머니 집 근처 산울타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블루벨 꽃봉오리와 산사나무 이파리, 병꽃풀의 뾰족한 가시와 갈퀴덩굴 어린잎을 쳐다보던 것이 기억난다. (15쪽)


며칠 뒤 나는 방과후 활동을 마친 막내딸을 데려오려고 이웃 마을로 차를 몬다. 동네 농산물 가게 옆에 한 줄로 늘어선 어린 피나무를 지나치는데 가면올빼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96∼97쪽)


11번 국도로 차를 몬다. 그곳에는 다리가 여럿 있다. 머릿속에 다리를 찾아가자는 생각만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어느 다리가 가장 좋을까?’, ‘어느 다리가 가장 높고 효율적일까?’ 불쾌하고 끔직한 소음이 퍼져나간다. (135쪽)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예쁜 새모이 보관소를 산다. (146쪽)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신소희 옮김, 푸른숲, 2020)는 “The Wild Remedy”란 이름으로 나온 책. 영어 ‘와일드’를 ‘들’이나 ‘숲’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을 거의 못 본다. 다들 영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야생’을 쓴다. 책 첫자락에 실은 치킴글 첫 줄이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우울한 감정 그 자체보다 압도적인 자기혐오와 비판을 동반한다는 데 있다(7쪽).”이다. 무슨 소리일까? 무늬는 한글이되 알맹이는 알쏭하다.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들을까? 알아듣고서 책을 읽을까? 이런 말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까? 첫자락 첫 줄을 “슬프면 슬픔보다 스스로 깎아내려서 끔찍하다”로 고쳐 놓는다. 들빛이 마음을 달래고 몸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준다는 줄거리를 다루는구나 싶은 책이면서도, 글쓴이는 내내 자동차를 몰면서 찻길을 가로지른다. 자동차를 몰면서도 멧새 몸짓을 지켜보고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노래를 들을 수 있겠지. 우리가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빠른길 한복판에서도 숲 한복판 둥우리에서 갓 깨어난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부르는 가녀리면서 사랑스러운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책을 덮을 때까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들이나 숲에서 어떻게 마음을 달랬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을 장만해서 읽을 시골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시골사람이라면 종이책을 내려놓고 호미를 손에 쥐고서 밭자락에 쭈그려앉겠지. 숲사람이라면 가벼운 차림으로 나무를 타고 오르며 구름물결을 내다보겠지. 서울사람한테 이 책이 어느 만큼 들빛이나 숲바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옮김말이 하나같이 너무 서울스럽다. 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말씨에 들빛이 감돌도록 하면 안 될까? 무엇보다 글쓴이가 너무 자동차를 몰아대기만 하는구나 싶다. 자동차를 버리고서 맨손에 맨발에 맨몸으로 들이며 숲을 마주한다면, 사진찍기를 안 해도 좋으니, 그저 오롯이 들바람을 먹고 들풀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하루를 누린다면, 이 책에 흐르는 글이 모두 달랐겠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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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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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21


《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강경이 옮김

 클

 2020.9.15.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나른다. 해마다 꼭 같은 장소에 피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15쪽)


꽃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지만 자연의 부활과 싱그러운 성장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19쪽)



《덧없는 꽃의 삶》(피오나 스태퍼드/강경이 옮김, 클, 2020)을 읽다가 아무래도 아리송해서 영어 이름을 살피니 “The Brief Life of Flowers”라고 한다. 그래, 그렇지. 글쓴님은 꽃살이가 ‘덧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글쓴님은 그저 꽃을 바라보며 ‘짧아’ 보이지만 막상 ‘안 짧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책이름에 ‘덧없다’란 말을 붙이니 마치 꽃이란 얼마나 뜻없고 값없이 그냥그냥 지나가는가 하고 느낄밖에 없다. ‘덧없다’는 아무 자리에나 안 쓴다. 한자말로 치자면 ‘허송세월’이 덧없는 셈이다. 꽃 한 송이가 아무 뜻이 없이 필까? 우리들은 아무 뜻이 없이 이 별에 태어났다가 떠나는가? 아니다. 모든 꽃은 즐겁게 꿈꾸다가 즐겁게 피어나서 즐겁게 진다. 얼핏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한 해로 마치는 듯하지만, 웬만한 꽃은 여러해살이일 뿐 아니라, 나무 못잖게 오래 살기도 한다. 줄기나 잎은 시들어도 뿌리는 안 시들기 때문이다. 겨울에 말라죽은 듯한 풀로 보이더라도 봄에 줄기가 새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 ‘덧없이 지낸 풀’이 아니라, 즐겁게 꿈꾸며 겨울에 쉬었다가 봄에 일어나는 살림이다. 책이름 하나로 줄거리가 확 달리 퍼진다. 옮김말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꽃이라는 숨결을 차분히 찬찬히 차곡차곡 헤아리면 어떨까? 씨톨을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려서 꽃가게에서 돈으로 사고팔아 길거리에 잔뜩 심는, 그런 겉치레 꽃이라면 ‘덧없다’고 할 터이나, 들꽃이며 풀꽃이며 숲꽃이며 골목꽃이며 밭꽃이며 마당꽃이 덧없을 일이란 아예 없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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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정진오 지음 / 도서출판 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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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19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인천》

 정진오

 가지

 2020.7.22.



‘인천 송도 앞바다 매립 신도시 조성’ 기공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했다. 비가 내렸다. 당시 사진을 보면 YS는 경호원이 우산을 뒤에서 씌어 주고 있는데 최기선 시장은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도 대통령들은 송도에서의 큼지막한 행사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도국제도시는 인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매우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20쪽)


2015년 인천시와 군 당국이 협의해 낮 시간에는 일반인도 문학산 정상을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했다. (26쪽)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인천》(정진오, 가지, 2020)를 읽다가 문득 책뒤를 보니, ‘전쟁의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한 국제해양도시 인천’이란 글월이 있다. ‘국제해양도시’란 이름을 인천사람이 쓸까? 인천시장이나 인천 국회의원이 겉발림으로 내세우는 이름이지 않은가?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다는 말을 섣불리 할 만한가? 인천이란 고장은 서울이며 경기에 공산품을 흩뿌리는 공장마을로 굴러야 하면서 얼마나 오래도록 매캐한 바람에 쓰레기물에 먼지에 시달렸는데. 글쓴님은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를 다닌 다음, 1995년부터 인천에서 기자로 일하며 인천을 바라본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1995년 앞서까지 인천이 어떤 곳인가를 겪은 적도 느낀 적도 본 적도 마주한 적도 없구나. 인천을 문학이나 영화로 엉뚱하게 그려서 돈벌이를 한 이들이 여럿 있다. 다만 이들이 그린 인천이 엉뚱하다 하더라도 ‘끼리끼리 그들잔치’인 그들 삶이었다면 뭐라 꾸지람을 하기도 나무랄 수도 없다. 골목집에서 살지 않은 그들이 인천에서 무엇을 알까. 골목놀이를 하며 자라지 않은 그들이 인천에서 무엇을 말할까. 다른 고장도 학교나 길거리에서 주먹다짐이 춤추었다지만, 인천은 2010년대가 넘어섰어도 학교에서 버젓이 체벌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팼다. 똑똑하거나 돈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보내거나 떠나는 뜨내기 터전이 된 인천이요, 덜 똑똑하거나 돈이 없기에 인천을 못 벗어나는 이들은 조용조용 서로서로 보듬으면서 이 고장이 매캐한 먼지바람이 아닌, 부디 골목에 두루 햇살이 스미어 조금씩 나누어 누리듯, 다같이 조촐히 지낼 수 있기를 꿈꾸었다고 느낀다. 이 나라 어디를 가 보더라도 인천처럼 골목길이며 골목마을이 드넓은 데가 없다. 어쩔 길 없지만, 워낙 숱하게 많던 공장이라, 그 공장 일꾼이 골목마을을 이루며 살았고, 이 일꾼은 하나둘 ‘서울 회사원살이’를 하는 길로 바뀌거나 새로 생겼다. ‘지옥철’이란 말은 인천에서 서울로 일하러 다닌 사람들이 타던 ‘국철(지하철이 아닌 국철이다)’을 일컫는다. 지옥철을 탄 적이 없는 채 인천을 함부로 ‘국제해양도시’란 이름으로 말해도 좋을까? 글쓴님이 적은 ‘막걸리와 헌책방의 상관관계’ 같은 꼭지를 읽으니, 배다리 책골목으로 책을 즐겁게 사러 자주 드나들지 않았구나 싶다.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인천》이라는 책이름에 걸맞으려면 ‘마실벗이 인천이라는 고장에 있는 책골목에서 어떤 책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한가’를 짚어야 하지 않을까? ‘이규보·김구·조봉암·김은호·황영준·배인철·이민창·이동휘·계봉우’ 같은 이름을 들출 수도 있겠지. 그런 이름도 제법 있으니. 그런데 ‘현덕·한하운·함세덕·박두성·그림할머니 박정희·고유섭’ 같은 이름은 건드리지도 못하는구나. 동일방직이라든지,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쓴 유동우, 《민주깡통을 아십니까》를 쓴 이은영 같은 이름은 아마 아예 모를는지 모르겠다. 글쓴님은 1995년부터 인천에서 기자로 일했으니, 인천사람이라면 가슴이 싸한 이름인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에 얽힌 눈물은 한 줄로조차 못 담으리라. 축구장으로 망가져 버린 ‘우리나라 첫 야구장’인 도원야구장(또는 숭의야구장)을 드나든 일은 있을까? 제철소 옆에서 쇳가루를 마셔 본 적이나, 유리공장 곁에서 유릿가루를 마셔 본 적 있을까? 고속도로 어귀나 둘레에서 매캐한 먼지를 마셔 본 적 있을까? 고속도로 때문에 둘로 갈린 한 마을하고 얽힌 생채기를 생각한 적 있을까? ‘선인재단’이란 이름으로 끔찍하도록 인천사람을 괴롭히고 등골을 빼먹으며 거리거리에 주먹잡이(깡패)가 춤추도록 한 백인엽·백선엽 두 놈팡이를 알 턱도 없겠지. 이런 여러 가지가 스민 인천이지만, 한글 점글을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지은 박두성 님이라든지, 아버지 박두성을 도우며 점글로 책을 찍고, 유치원을 돌보았고, 아이들을 모두 키워내고서 예순 넘은 나이부터 붓을 잡고 물빛그림(수채화) 살림꽃을 피운 박정희 님 같은 손길이 바로 인천을 이야기하는 ‘인문’이라고 느낀다. 인문이란 책이나 신문에 적힌 일본 한자말스러운 어렵고 딱딱한 말씨로 갈무리하는 논문이 아닌, 마을사람이 마을살림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지핀 이야기꽃일 테니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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