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속 티타임 - 언제 보아도 좋은 달콤한 영국동화 이야기
기타노 사쿠코 지음, 강영지 그림, 최혜리 옮김 / 돌베개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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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3.19.

인문책시렁 215


《책장 속 티타임》

 기타노 사쿠코

 강영지 그림

 최혜리 옮김

 돌베개

 2019.2.28.



  《책장 속 티타임》(기타노 사쿠코·강영지/최혜리 옮김, 돌베개, 2019)은 영국에서 태어난 글꽃에 깃든 먹을거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영국하고 다르게 마련이라, 밥살림도 달라요. 영국사람으로서는 투박한 먹을거리일지라도 우리로서는 낯설 뿐 아니라 궁금할 만합니다.


  우리나라 글꽃에 깃든 먹을거리도 이웃나라 사람한테는 낯설면서 궁금할 테지요. 그런데 밥살림 이야기는 ‘이 밥을 손수 지어’ 보아야 비로소 글꽃에 담아낼 만합니다. 나무로 불을 때어 아궁이에서 솥밥을 지어 보지 않고서 ‘아궁이밥’이 뭔지, ‘솥밥’이 뭔지, 하나도 못 그려요. 글로 시늉은 낼 테지만, 불을 때면서 퍼지는 냄새에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또 아궁이에서 번지는 불에 이글거리는 낯, 불빛이 없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다가 아기를 보고, 아이들을 살피는 눈길이 밥 한 그릇에 고루 서립니다.


  전기밥솥에 쌀을 넣고서 단추만 척 누르면 끝나는 밥을 하더라도, 쌀알을 그릇으로 옮겨서 한 톨씩 손가락 사이로 느끼며 살살 젓고서 쌀뜨물을 내고, 이 쌀뜨물로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인다든지, 이 쌀뜨물로 빨래를 한다든지, 이 쌀뜨물로 나중에 설거지를 한다든지, 이 쌀뜨물을 꽃이나 나무한테 준다든지, 얼마든지 어느 곳에서라도 밥살림 이야기에 밥내음이 피어나는 결을 담을 만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자리를 눈여겨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던 글님은 스스로 ‘영국 밥살림’이나 ‘영국 주전부리’를 찾아나서기로 했다지요. 글 몇 줄 또는 글 몇 마디만으로는 도무지 궁금한 대목을 풀 길이 없을 테니까요. 어떠한 땅이며 터전에서 어떠한 햇볕을 쬐면서 자라는 들살림을 어떠한 손길로 건사해서 어떠한 살림집에서 어떠한 세간을 다루면서 어떻게 차려내었는가를 몸소 느껴 보아야 ‘영국 글꽃에서 마주한 밥 한 그릇’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푸른별 모든 곳에 고르게 흐르는 바람입니다만, 우리나라 바람하고 이웃나라 바람은 다릅니다. 전남 고흥조차 읍내하고 마을 바람이 다르고, 바닷가랑 멧기슭이랑 들이랑 마당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다릅니다. 서울바람하고 제주바람도 마땅히 달라요. 이 다른 바람결을 느낀다면,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살림을 지으면서 스스로 일군 다 다른 사랑을 글 한 줄에서도 읽을 만합니다. 옮김말은 매우 일본말씨·옮김말씨스러워서 안타깝긴 했습니다.


ㅅㄴㄹ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비버 부부와 아이들은 방금 만난 사이일 뿐인데도 어느새 힘을 모아 하얀 마녀에게 맞서 나니아를 되찾겠다는 강한 동지의식을 갖게 됩니다. (22쪽)


《비밀의 화원》에는 미셀스웨이트 저택의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과 디콘네 같은 농민이 먹는 음식이 영국 계급사회를 드러내듯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61쪽)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정원을 위해 쓴 작품이기에, (133쪽)


영국에서 남자아이에게 흔히 붙이는 이름인 ‘피핀’은 접목이 아니라 종자를 통해 생겨난 사과 품종을 가리킵니다. (161쪽)


5월에 영국 시골의 숲을 걷다가 희고 작은 선갈퀴꽃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어지러이 피어 있는 광경과 마주한 일이 있습니다. (176쪽)


#物語のティ-タイム #お菓子と暮らしとイギリス兒童文學 #北野佐久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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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 내가 좋아하는 것들 5
김경희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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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3.10.

인문책시렁 214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

 김경희

 스토리닷

 2022.1.20.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김경희, 스토리닷, 2022)은 ‘집밥’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밥을 잘 차리거나 멋스러이 해내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집밥을 어떻게 맞이했고 받아들이면서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물려주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순이돌이로 짝을 이룬 이웃님한테 마실을 갈 적에는 으레 그 집 살림을 들여다볼밖에 없는데, 참으로 숱한 돌이는 부엌일을 아예 안 하다시피 합니다. 이분들이 나이가 제법 있기에 어릴 적부터 부엌일을 안 해 버릇한 탓이라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는 이웃 순이돌이는 하나같이 ‘생각이 좀 있다’거나 ‘책 좀 읽었다’는 분이거든요.


  머리로는 ‘왼길’에 선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막상 두 손에 물을 안 묻히는 돌이가 수두룩합니다. 부엌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살며 밭살림을 가꾼다면 밭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부엌일도 밭일도 ‘함께’ 해야 아름답습니다. 순이돌이가 나란히 하고, 아이어른이 같이 할 적에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어깨동무(성평등·페미니즘)란, ‘함께짓기’라고 느껴요. 함께짓기에 함께걷는 길입니다. 함께짓기에 함께사는 사랑입니다.


  집밥이란, 집살림을 이루는 사랑이 드러나는 빛이에요. 끼니를 때우려고 맞아들이는 집밥이 아닌, 오늘 하루를 스스로 어떻게 사랑으로 지피면서 나누려 하느냐는 생각을 주고받는 집밥이라고 느낍니다. 밥살림에 옷살림에 집살림을 어버이 곁에서 차곡차곡 지켜보면서 물려받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는 멀잖은 앞날이라면, 이 나라는 아름답겠지요.


  집안일을 하라고 시킬 까닭이 없어요. 집안일을 안 하겠으면 함께 안 살면 됩니다. 스스로 집안일을 할 줄 알고, 손수 집살림을 돌볼 줄 아는 돌이랑 순이가 만나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을 적에, 비로소 집밥은 언제나 맛나고 멋스러우면서 즐겁습니다.


ㅅㄴㄹ


청소와 정리 대신 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했다. (25쪽)


“물론 그 말도 상처가 됐고 당신의 손님 근성도 싫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태도도 싫어. 난 지쳐서 더는 못하겠어.” “당신이 고생하는 거 알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언제까지 표현을 못 한다고만 할 거야. 크게 표현하래, 일상에서 배려하고 생각해 주라고.” (48쪽)


일하는 엄마로 살아 보니 굶지 않게 집밥을 해서 내놓는 것만도 대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90쪽)


신문지를 식탁에 깔고 그 위에다 다듬다 보면 아이들도 와서 호기심에 한주먹만큼은 곧잘 다듬어 주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순순히 하지는 않았다. “나만 먹지 않는다는 거 알지?” 하고 외쳐야 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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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 청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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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0.12.

인문책시렁 185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옮김

 청미

 2019.3.20.



  《체리토마토파이》(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청미, 2019)는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어떠한 마음과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가를 찬찬히 옮겼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가 손수 이녁 삶자취를 글로 적을 수 있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할머니 삶길을 눈여겨보거나 귀여겨듣고서 글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기도 아가씨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하루를 다 다르게 노래하면서 살아갑니다. 푸른돌이가 할머니처럼 살지 않고, 할아버지가 푸른순이처럼 살지 않습니다. 아줌마가 어린돌이처럼 안 살고, 어린순이가 아저씨처럼 안 살아요.


  모든 이야기는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다른 사람 삶이 아닌, 우리 삶을 들여다보기에 비로소 이야기를 얻고 펴면서 누립니다. 스스로 아팠기에 이웃이 아플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어림합니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갈랐기에 동무가 자전거를 타며 휙 바람을 가를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느긋이 살아가기로 해요. 서두르지 않아도 아기는 어린이로 크고, 푸름이로 자라며, 시나브로 철이 들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섭니다. 서둘러 죽어야 할까요? 빨리 늙어야 할까요?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숱한 분들이 먼저 버스나 전철을 타려고 우르르 달려들거나 새치기를 하더군요. 아이를 툭툭 밀치면서 새치기하는 분 뒷통수에 대고 “빨리 죽고 싶어서 빨리 타야 하니 아이를 막 밀치고 다니시는군요?” 하고 으레 한마디를 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이 뚜벅이랑 어린이·푸름이하고 할매할배하고 이웃일꾼(이주노동자)입니다. 시골버스를 타며 가만히 보면 어린이·푸름이가 자리를 내줄 적에 “고맙다”고 말하거나 “그대로 앉으렴” 하고 말하는 할매할배는 아주 드뭅니다. 예전에는 제법 있었으나, 갈수록 이처럼 말하는 할매할배가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삶터에서 ‘어른스러운’ 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나이만 먹은 사람인지, 철이 들며 생각이 깊어 가는 사람인지, 언제라도 찬찬히 생각하면서 오늘을 지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살짝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애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으려나? (63쪽)


혼자 살아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은 늘 있다. (172쪽)


살 만큼 살아 봤고 허다한 고뇌와 번민을 겪어 본 우리도 끝은 아직 모르기에. 우리의 끝, 이승을 떠나 빛으로 나아간다고 믿더라도 죽음은 늘 어둠과 결부된다. (216쪽)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의 괴로움을 살피려고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274쪽)


애들은 오늘 저녁을 먹고 올라갔다. 애들은 파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밤참을 먹을 거다.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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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드로잉 내가 좋아하는 것들 4
황수연 지음 / 스토리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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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9.18.

인문책시렁 207


《내가 좋아하는 것들, 드로잉》

 황수연

 스토리닷

 2021.5.9.



  《내가 좋아하는 것들, 드로잉》(황수연, 스토리닷, 2021)을 읽으면, 글님이 어릴 적부터 그림을 퍽 좋아하고 즐겼지만, 둘레 어른들은 ‘좋아하고 즐기는 그림’이 아닌 ‘멋지거나 잘나 보이는 그림’이라는 틀에 가두려 한 자취를 엿볼 만합니다. 아마 적잖은 이웃님은 이러한 일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즈음에는 살짝 나아진 듯하지만, 아직 어린이 붓놀림을 ‘붓놀이’로 바라보지 않는 어른이 수두룩합니다. 더구나 어린이는 여덟 살에 이르는 배움터에 들어가고, 여덟 살에 앞서 어린이집에 여러 해를 다니는데, 이동안 아이가 하루 내내 붓놀이를 해도 넉넉하도록 지켜보거나 함께 즐기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요?


  어린이는 하루를 조각조각 끊어서 ‘그림 한 시간, 영어 한 시간, 글 한 시간, 책 한 시간, 밥 한 시간, 낮잠 한 시간, 놀이 한 시간 ……’처럼 안 삽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누리고 싶은 대로 스물네 시간을 꽉 채웁니다.


  우리 어른은 하루를 어떻게 그리면서 채우나요? 하기 싫지만 돈을 벌려고 억지로 참지는 않나요? 그야말로 하기에 싫으나 마침종이(졸업장)나 솜씨종이(자격증)를 거머쥐려고 마음을 꾹 누르거나 닫지는 않나요?


  언제 어디에서나 붓을 쥐기에 그림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눈을 뜨며 바라보기에 그림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이 흐르기에 그림입니다.


  붓으로도 그리고, 눈길이 닿는 대로 그리며, 손가락뿐 아니라 나뭇가지나 온몸으로도 그리고, 마음이 가는 모든 자리를 그림으로 빛내는 삶입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그릴 일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와 그렸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척 내밀면서 ‘즐겁게 우러나와 빚은 그림에 흐르는 사랑’이란 기운을 나누어 받으라고 할 뿐입니다.


  그림을 좋아하시나요? 그러면 붓을 쥐셔요. 그림을 사랑하고 싶나요? 그러면 붓을 놓으셔요. 붓을 쥐면서 손길 가는 대로 종이로 옮기기에 그림입니다. 붓을 내려놓고서 온마음을 바람빛으로 물들이기에 그림입니다.


ㅅㄴㄹ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직접 그리는 것엔 그다지 뜻을 두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10쪽)


옆 반 선생님이 지나가다 한 마디 툭 던지셨다. “두 시간 동안 그린 게 이거야?” (13쪽)


애초에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게 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실패한 그림’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따져 봐야 한다. 다른 누군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실패한 것일까? (16쪽)


우리가 고호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로든 취미로든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다지며 사라가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46∼47쪽)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나는 그림이 더 그림다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90쪽)


낙서처럼 가벼웠다가 사실적인 묘사로 묵직했다가 갈팡질팡 나도 나를 알 수 없었다. 뭘 그리고 싶은지 내가 추구하는 그림 스타일은 대체 뭔지 고민을 해도 답은 없다. 좋아하는 게 많아 그런 건지 혹은 나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인지.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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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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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25.

인문책시렁 197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옮김

 까치

 2007.11.5.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월터 아이작슨/이덕환 옮김, 까치, 2007)는 뭇사람한테 훌륭하다고 떠받들리는 아인슈타인을 놓고서 차분하게 이녁 삶을 짚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으면서 꾸밈없이 바라본다면, 삶과 빛을 새롭게 느끼거나 헤아릴 만하다는 줄거리입니다.


  어느 누구를 보아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다 보면, 그만 그이 흉허물조차 빛나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더군요. 어느 한 사람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다 보면, 그만 그이 빛살마저 내치거나 배우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높지도 낮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이 나름대로 삶을 지으며 하루를 누립니다. 아인슈타인이라면 이녁 삶길을 스스로 갔겠지요. 이바지한 일도, 어설프거나 얄궂은 일도, 뛰어난 일도, 모자라거나 못난 일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이 이룬 열매를 받아먹거나 나누면서 배웁니다. 또는 이 열매를 바탕으로 이 너머를 헤아립니다. 우리가 손수 짓는 열매로도 새롭게 하루를 누리거나 몸마음을 살찌워요. 두 길을 나란히 살피기를 바랍니다. 이웃한테서 배우며 나누는 길이 하나라면, 우리 스스로 지는 사이에 배우며 나누는 길이 둘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사람이라는 몸이 빛나지 않습니다. 두 갈래를 나란히 품기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마음이 빛납니다.


  흉허물은 덮으면 고름이 되어 썩습니다. 흉허물을 드러내면 꽤 쓰라리거나 아플 만하지만, 쓴맛도 아픔도 슬픔도 몽땅 견디거나 받아들이면서 어느새 새살이 돋고 아뭅니다. 잘 할 적에는 “잘 했구나” 하고 깨닫고, 잘못을 할 적에는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기를 바라요. 두 마디 말을 모두 스스로 하고 받아들이며 녹여낼 적에 비로소, 우리 누구나 온누리(우주)요, 별이며, 씨앗이고, 숲인 줄 온마음으로 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어느 날 페르네는 아인슈타인에게 의학이나 법학 같은 분야 대신 물리학을 전공한 이유를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더 재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물리학에서 운을 시험해 보면 안 됩니까?”라고 대답했다. (60쪽)


그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본능이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당신처럼 나에게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내 부모님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81쪽)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나는 정말 강의를 잘 하지 못했다. 내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고 한탄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앉아서 강의를 들은 클라이너는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강의 기술이 선생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냉정하게 자신은 그런 자리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192쪽)


그러나 자신의 인기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거부감은 사실이라기보다 이론에 더 가까웠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터뷰, 발표, 사진 촬영, 공개 행사 참석 등을 쉽게 거절할 수 있었다. 정말 대중의 주목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찰리 채플린의 화려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326쪽)


그는 그 책에서 좌익이나 우익 모두에서 무도한 정권이 초래하는 명백한 교훈을 보았다. 그는 레빈에게 보낸 찬사의 편지에서 “폭력이 폭력을 낳습니다. 자유는 모든 진정한 가치의 개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초입니다”라고 했다.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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