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 유산
문화재청 지음 / 눌와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 보니, 좀 삐딱한 느낌글처럼 되었지만, 책은 더없이 예쁘장하며, 글과 사진은 참말 깔끔합니다 ^^;;;;

 

 

 


 유네스코가 바라보지 않아도 보배
 [책읽기 삶읽기 107] 문화재청 엮음, 《한국의 세계유산》(눌와,2010)

 


  유네스코에서 올린 우리 나라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한국의 세계유산》(눌와,2010)을 읽는다. 문화재청에서 엮은 책이라 하는데, 글과 사진이 퍽 깔끔하다고 느낀다. 이 나라 문화재청이 예전에도 이처럼 깔끔한 글과 사진으로 우리 나라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책을 내놓은 적 있었을까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좋은 자료가 있더라도 알차게 묶거나 어여삐 엮지 못하기 일쑤였다. 지난날 이 나라 공무원은 ‘자료집’만 내놓을 뿐이었다. ‘책’을 만들지 않았다.


  수원 화성을 다루는 자리에서 정조는 ‘튼튼하게만 쌓을 화성’이 아니라 ‘아름답게도 쌓을 화성’이라고 얘기했다고 밝힌다. 이 같은 말마따나 쓰임새를 살피는 한편, 눈썰미를 북돋우는 살림살이가 곧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곰곰이 돌아보면, 이 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 옷 한 벌을 지어도 ‘튼튼하면서 예쁜’ 옷을 지었고, 밥 한 그릇을 차려도 ‘알차며 맛나고 보기 좋게’ 밥을 차렸다.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랄 때에 더없이 기쁜데, 튼튼하게 자라면서 어여쁜 빛을 한결 뽐내면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아니, 씩씩하게 뛰놀며 튼튼히 자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어여쁜 모습인가.


.. 1592년 임진왜란 때 불국사는 피해를 입었다. 이때 2000여 칸이나 되는 건물은 모두 불타 버리고 석축과 계단, 석탑과 석등, 금동불상 등만이 화를 면했다 … 정조가 죽고 나자 정조가 계획했던 개혁도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물론, 화성 축성 이후 우리 나라에는 뚜렷한 축성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사회 각층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형편에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축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  (23, 73쪽)

 


  그런데 ‘세계유산’이란 무엇일까. 유네스코는 지구별 여러 나라 세계유산으로 무엇을 손꼽을까. 깨끗하며 아름다운 자연 삶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임금님이 살던 집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우람하게 지은 절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불국사도 해인사도 종묘도 창덕궁도 화성도 경주도 왕릉도 온통 ‘나라님’이라 하는 ‘권력자’들이 누리던 삶이지 싶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도 세계유산으로 2010년에 이름을 올렸다 하는데, 두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때문에 세계유산이 되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참말, 세계유산이란 한국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돈·이름·힘’을 부리는 사람들이 짓거나 누린 것 테두리에서 못 벗어나지는 않나 궁금하다.


  이를테면,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바르며 돌로 바닥을 대고 풀로 지붕을 잇던 여느 살림집은 세계유산이 될 수 없을까. 아니,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을까.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싹 밀어 없앤 풀집인데, 제주에 성읍마을이라든지 남녘땅 곳곳에 몇 군데 민속마을을 새로 돈을 들여 만들면서, 막상 사람들이 풀집이나 흙집이나 나무집에서 살아가도록 하지 않는다. 아직도 ‘새마을 깃발’은 전국 곳곳에서 나부낀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을까. 수도물에 앞서 우물물과 냇물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빨래기계에 앞서 냇가 빨래터는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었는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에 앞서 오솔길이랑 고샅길이랑 골목길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으로 사랑받을 수 없었나.


.. 공군 대령 김영환은 1951년 9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면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자신이 지휘하는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지만 김 대령은 가야산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그곳에는 바로 고려대장경판을 모셔 둔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법보전의 뒷벽 창의 경우에는 칸마다 창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 또한 장경판전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로 짐작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원리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옛사람들의 경험에 의거한 과학적인 판단을 좇아가지 못하는 셈이다 ..  (32, 34쪽)

 

 


  《한국의 세계유산》은 예쁘게 잘 빚었다고 느낀다. 나라밖 사람들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돌아보며 찬찬히 살필 만하다고 느낀다. 다만, 한 가지 아리송하다. 한국사람은 지구별에 손꼽힐 만한 세계유산을 여느 때에 얼마나 누리며 살아가는가. 한국사람은 나라밖으로 내세울 만큼 자랑스럽고 아름답다 여기는 세계유산을 이녁 삶터 둘레에 얼마나 가까이 두며 사랑하는가.


  박물관에 모시기에 세계유산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누리는 삶일 때에 세계유산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언제나 누리는 삶일 때에는 따로 세계유산이나 한국유산 같은 이름표를 붙이지 않더라도 가없이 고운 빛과 무늬를 살가이 드러낸다고 느낀다. 세계유산이든 한국유산이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모신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라, 늘 내 삶에 녹아들며 누리는 살림살이 이야기일 때에 값어치가 있다고 느낀다.


  갓난쟁이를 돌보며 아기한테 대던 천기저귀 한 장이 나로서는 한국유산이나 세계유산이라 느끼지만, 따로 아무런 유산이 안 되어도 즐겁다. 아이들과 복닥이며 읽어 주고 읽던 그림책 하나가 나한테는 한국유산이나 세계유산이라 느끼지만, 굳이 어떠한 유산이 안 되어도 좋다. 시골집 감나무 한 그루, 뽕나무 한 그루, 후박나무 한 그루, 모과나무 한 그루, 동백나무 한 그루가, 여러모로 사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만하지만, 어떤 유산이라 이름 붙이기 앞서 늘 바라보며 쓰다듬는 좋은 벗님이기에 반갑다.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 같은 살림살이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빗자루 하나 호미 한 자루 같은 연장붙이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일하며 부르는 노래, 아이들 재우며 부르는 노래, 식구들이 나누는 이야기 한 보따리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 우리 나라에는 실로 ‘고인돌 왕국’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약 3만여 기, 북한에서 약 1만 기에서 1만5천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수이다 ..  (87쪽)

 

 


  식구들 저녁 밥상에 올리려고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를 가늘게 썰고 달걀 석 알을 풀어 달걀말이를 부친다.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를 가늘게 썰면서, 이 달걀말이를 식구들이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썰자고 생각한다. 석석 썰리는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 빛깔이 좋다. 좋게 느끼는 빛깔이니 좋게 섞일 테고 좋게 부칠 수 있겠지. 쌀을 씻어 밥물을 안친다. 푸성귀를 갈고 짜서 풀물을 마련한다. 얕은 멧자락에 올라 멧딸을 딴다. 모든 먹을거리가 좋은 먹을거리요, 좋은 삶을 북돋우고, 좋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꿈을 꾼다. 좋은 하루를 누리며 좋은 이야기가 태어난다.


.. 남사당놀이는 일반 서민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양반들에게는 크게 멸시를 받았다. 그래서 남사당패는 함부로 마을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을에서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을 골라 온갖 재주를 보여주는 한편 마을로 들어가 마을의 양반이나 이장 등에게 놀이판을 벌여도 좋다는 승낙을 얻어야 했다 … 남사당놀이는 일반 서민을 상대로 일반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 주는 놀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일반 서민들은 남사당놀이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회 풍자를 통해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었고,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쉴 수 있었다 ..  (144∼145쪽)

 


  유네스코가 바라보지 않아도 삶은 보배이다. 문화재청이 다스리지 않아도 사람은 사랑이다. 작은 시골마을 논개구리 소리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하루가 보배라고 느낀다. 작은 시골집 처마에서 둥지를 틀며 한식구로 지내는 제비들이 보배라고 느낀다. 시원스레 부는 바람에 따라 흐르는 구름 빛깔이 하얗고 맑다. 바람은 모내기를 마친 들판에 사름빛을 뽐내며 분다. 바람은 고운 햇살을 온누리 구석구석 따사로이 퍼뜨린다.


  내가 바라보는 보배가 저녁을 맞이해 천천히 곯아떨어진다. 나와 한삶을 누리는 보배가 곁에서 뜨개질을 한다. 나 스스로 아낄 보배인 내 손으로 식구들 옷가지를 빨래하고 개며 추스른다. 달빛과 별빛이 고르게 내려와 내 마음으로 스며든다. (4345.6.7.나무.ㅎㄲㅅㄱ)

 


― 한국의 세계유산 (문화재청 글·그림,눌와 펴냄,2010.12.27./16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 빛나는 그들에게, 삶을 물었다
이승환 지음, 최수연 외 사진 / 이가서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밥 한 그릇 함께 나눌 이웃
 [책읽기 삶읽기 105] 이승환·최수연,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고픈 사람은 없구나 하고. 사람들 누구나 ‘돈 버는 걱정’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고픈 삶’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 아지매들에게는 유명한 사진가보다는 생선 한 마리 더 파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알은체하지 않고 ‘니 맘대로 찍어라’며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고맙다 ..  (12쪽/최민식)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아주 마땅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돈을 쓰려고 돈을 법니다.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면 돈을 벌지 않아요. 이를테면, 어느 재벌회사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돈을 쓰려고 돈을 벌지, 그저 쟁이기만 하려고 돈을 벌지 않아요. 1억을 쓰고 싶으니 1억을 벌고, 100억을 쓰고 싶으니 100억을 벌어요.


  곰곰이 따지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도 돈을 법니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으니 돈을 법니다. 돈 버는 걱정 때문에 돈을 벌지는 않아요. 이모저모 돈을 써야 할 곳이 있다고 여겨 돈을 법니다.


  그런데, 돈 쓸 곳을 여러모로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좋은 나날을 더 기쁘게 여기기에, 돈을 벌려고 애쓸 품보다 하루하루 마음껏 누릴 품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홀가분하게 누릴 삶이 좋지, 돈을 버느라 보낼 나날이 좋을 수 없어요.


  곧, 나는 나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나대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 이철수는 겨울에만 판화 일을 한다. 봄·여름·가을에는 들일만 한다. 겨울 동안 꼬박 판화에 매달려 100여 점을 만든다. 1년에 100점이라는 이야기에 ‘기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이철수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이건데 도대체 그대들은 뭐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  (30쪽/이철수)


  우리 식구는 자동차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는 자전거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자전거에 앞서 두 다리로 살아갑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버스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잡아탑니다. 때로는 기차를 타 보고, 두 번쯤 비행기도 타 보았으며, 이렁저렁 배도 타 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동차 없으면 퍽 힘들겠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젊은이도 늙은이도 꼭 자동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면 가장 즐겁습니다.


  곧, 무엇이 있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 없으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즐길 줄 아는 삶이 좋은 삶입니다. 누릴 줄 아는 삶이 예쁜 삶입니다. 생각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 때에 빛나는 삶입니다.


  더 있으니 좋을 수 없습니다. 덜 있어서 나쁠 수 없습니다. 하나를 누리든 둘을 누리든, 하나도 못 누리든 둘은 엄두도 못 내든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자동차를 얘기했지만, 멀리멀리 자주 나다녀야 한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홀가분하겠지요. 그런데, 혼자 나다닌다 하면 자전거로 넉넉해요. 둘이나 셋이 나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달거나 저마다 자전거를 몰면 돼요. 꼭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고, 어느 때에 맞추어야 하면 더 일찍 길을 나서면 됩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달리면 돼요.


.. 먹을 것 아껴서 필름과 인화지 사는 처지를 빤히 알기에 극구 사양했으나, ‘손님 대접할 정도는 버니 걱정 말라’며 검지로 헛총을 놓고는 낡은 르망을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따뜻한 삐딱이였다 ..  (45쪽/김영갑)


  밥 한 그릇 나누는 삶이란 남한테 밥 한 그릇을 내어주는 삶이 아닙니다. 나부터 내 몸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다고 느끼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기에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다고 여기지 못하면,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내밀지 못해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예쁘게 피어날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두루 사랑을 나누어 줘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지 못한다면 내 이웃은커녕 바로 나 스스로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에 나오는 이 땅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밥 한 그릇 넉넉히 누릴 줄 알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값이나 가방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책에 실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얄궂다 해야 할 텐데,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을 사다 읽으면서, 막상 이녁 삶은 ‘밥 한 그릇으로 넉넉히 살찌울 사랑’이 되도록 건사하지 않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길은 오직 사랑인 줄 머리로 안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아요.


..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인들은 다 위대하며, 심지어 문학의 열병을 앓고 있는 문청들에게는 시인은 곧 하느님이다 ..  (117쪽/김용택)


  도시사람들이 아파트를 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아파트를 버리고, 아파트를 빌리거나 장만하느라 들인 돈으로 ‘마당과 텃밭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해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호젓하게 햇볕을 누리는 마당이 집마다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햇살을 머금으며 돌볼 텃밭이 집마다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참말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사람들 누구나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좁은 틈바구니에서 시멘트랑 아스팔트에 둘러싸이지 말고, 숲과 그늘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 시원한 터전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 “늘 내 운동의 마지막은 땅과 생명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예전에는 남녀평등, 노사평등을 외쳤으나 이제는 사람과 자연의 평등을 외쳐 나가야지. 이것도 지난날의 치열한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이거든. 이러한 소박하고 잔잔한 움직임이 계속 번져 나가 큰 물결이 됐으면 해요.” ..  (243쪽/조화순)


  도시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4대강 반대’를 외칩니다. 그런데,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야기를 목청 높이 외친다 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4대강 반대’를 하자면, 참말 이 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집권자 정책하고 맞설 만한 삶을 꾸려야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4대강 반대’를 하고 싶으면, ‘4대강 언저리에 작은 집을 얻어 작은 시골살림 누리면’ 돼요. ‘4대강 둘레 작은 땅뙈기를 장만해서 작은 살림 즐기면’ 돼요.


  시골 땅값은 도시 집값하고 견주면 매우 싸요. 시골에서 내 밭과 땅을 누릴 때에는 먹고 입으며 자는 품은 아주 적어요.


  사람들 스스로 누릴 줄 알고, 가꿀 줄 알며, 사랑할 줄 알면 돼요. 사람들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가꾸지 못하는데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정치집권자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요.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만 몰려드는데, 아주 마땅히 이런 토목공사를 밀어붙이겠지요. 사람들은 온통 도시로만 몰려들었으니까, 시골에서 살아가며 참말 온몸 부딪혀 ‘4대강 사업 얼마나 나쁜 줄 알아?’ 하고 따질 사람이 없어요.


  통계나 숫자나 이론이나 비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직 내 몸뚱이로 움직이는 삶으로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밥 한 그릇을 나누자면, 내 몸을 움직여 밥 한 그릇을 지어야지요. 밥을 하고 밥을 푸고 밥그릇을 내밀어야지요. 머리로만, 입으로만, 말로만 외친다 해서 어느 하나 이룰 수 없어요. 밥 한 그릇 나눌 이웃이 누구요, 밥 한 그릇 내밀 내 모습이 어떠한가를 슬기롭게 살펴야 해요. (4345.6.4.달.ㅎㄲㅅㄱ)


―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이승환 글,최수연·임승수·방상운·장기훈 사진,이가서 펴냄,2009.11.25./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아닌 것이 없다 - 사물과 나눈 이야기
이현주 지음 / 샨티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가
 [책읽기 삶읽기 104] 이현주,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

 


  아침에 일어나서 들새 소리를 들으며 뒷간으로 가서 똥을 눕니다. 똥을 한창 누고 나올 무렵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섬돌에 신을 벗고 들어갈 무렵, 처마 밑 옛 둥지 손질해서 암수 짝을 이루어 새로 들어온 제비 두 마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은 시골마을에 작은 집 하나만 마련했습니다. 우리한테는 꼭 이 집 한 채 얻을 돈만 있었거든요.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막상 밭이고 논이고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고 즐거이 살아갑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보는 밭을 바라보고 논을 들여다봅니다. 때때로 두레를 나가고 곧잘 일손을 거듭니다. 때때로 푸성귀를 얻고 곧잘 쌀을 얻습니다.


.. 마음을 모으지 않고서 어떻게 아름다운 가을의 황금 들녘을 볼 수 있겠는가? … 자네가 누구를 기·다·린·다·면 자네는 영원토록 그를 만나지 못할 걸세 …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않는 수도 있나 ..  (21, 75, 99쪽)


  이제 마을 논마다 물을 가득 댑니다. 물이 가득 찬 논은 무논이라 합니다. 무논에는 개구리가 오붓하게 살아갑니다.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온 고을을 채웁니다. 낮보다는 저녁이나 밤에 더 개구지고 힘차게 울어대는데, 아무래도 낮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저희를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일 테지요. 깊은 밤이나 새벽에 첫째 아이 오줌 누이러 바깥으로 나오면, 언제나 곽곽 크게 울어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첫째 아이는 오줌그릇에 앉아 쉬를 누며 꾸벅꾸벅 졸고,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붙들면서 개구리 이야기를 듣습니다.


  논 옆을 지나갈 때에 가끔 개구리가 뽀롱 튀어나옵니다. 멋모르는 개구리는 찻길로 올라섭니다. 찻길로 올라선 개구리라 하더라도 우리 마을 언저리로 지나가는 차는 매우 드뭅니다. 한참을 내다 보더라도 차 한 대 지나갈 일이 없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우리 마을 무논 개구리는 나그네 자동차한테 치여 죽거나 밟혀 떡이 될 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을 내려다보아도 납짝꿍이 된 떡개구리는 아직 못 보았어요.


..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서둘러 안경알을 닦는다. 안경이 스스로 안경을 닦지 못한다는 사실이 따스한 위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나무 이름이지 나무가 아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무 이름이 아니라 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  (46, 58, 177쪽)


  엊그제 이웃집 마늘밭 일손을 조금 거들었습니다. 그리 안 넓은 밭뙈기인데,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마늘을 캐고 엮고 나르고 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늙은 몸 움직여 마늘을 심고 돌보다가 캡니다. 도시 사람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허리 구부러지며 일군 마늘을 돈 몇 푼 치러서 사다 먹습니다.


  참 고된 일이기에 당신 딸아들한테 마늘밭 일이건 무논 일이건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돈을 더 벌려고 짓는 흙일이 아니라, 시골마을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꿈과 사랑을 누리려고 짓는 흙일이라 한다면, 굳이 밭뙈기에 마늘만 가득 심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여러 푸성귀를 골고루 심을 만하고, 여러 열매나무를 알뜰히 심을 만해요.


  식구들 먹을 푸성귀라면 아주 마땅히 풀약이고 비료이고 안 쓰겠지요. 살붙이들 먹을 열매라면 아주 마땅히 거름만 낼 테며, 흙이 보드랍고 기름지도록 땀을 흘리겠지요. 이렇게 일구어 거두는 열매와 곡식과 푸성귀라 한다면, 저잣거리에 내다 팔더라도 제값을 옳게 받을 수 있으며, 흙일꾼이건 도시사람이건 모두 좋으며 흐뭇하리라 느껴요.


.. 사랑 아닌 것도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명심해 두어라. 이 세상에는 사랑의 표현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음을 … 세상에 순결하지 않은 물건이 있는가 … 이 땅에 생명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랑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길밖에는 걸어야 할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  (84, 96, 164∼165쪽)


  우리한테 아직 땅이 없지만, 오래지 않아 넉넉하고 너르며 푸른 땅뙈기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우리 땀과 똥오줌으로 땅뙈기를 한결 푸르며 어여삐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마다 흙을 살찌우고 땅을 북돋우며 이웃을 사랑하는 꿈결이 널리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제껏 시골에서는 어린이와 젊은이를 온통 도시로 보내기만 했지만, 앞으로는 도시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두 시골로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서로서로 겨루거나 서로서로 밟고 올라서서는 살아갈 수 없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기대고 돌보며 얼싸안을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은 서로서로 웃고 얘기하며 밥을 나눌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기름이나 자가용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는 사람이에요. 아파트를 먹지 못하고, 아파트는 오래지 않아 허물어야 해요.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누며 흙을 물려받아요.


.. 자네가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로 장단을 맞춘단 말인가 … 누가 나를 버렸는지 그건 모를 일이나 나는 버림받지 않았네. 아무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버릴 수 없으니까 … 나는 나무요 흙이요 물이요 공기요 태양이요, 나는 모든 것이다 ..  (64, 92, 111쪽)


  이현주 목사님 생각주머니를 담은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를 읽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온갖 ‘것’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먼저 말문을 열기도 하고, 나중에 말문을 열기도 합니다. 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마, 파리라든지 제비라든지 모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까.


  뒤꼍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앞마당 노랑붓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처마 밑 제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마을 들새랑 멧새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논둑 자운영이랑 광대나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오월이 무르익으며 한껏 해맑은 찔레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벌써 꽃씨 날리는 민들레 줄기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나는 내가 사랑할 만한 누군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며 서로 어깨동무할 만한 벗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손길이 그득 밴 부엌칼이랑 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빨래비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책들과 연필과 베개와 자판과 옆지기 뜨개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 우리 사랑스러운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며, 우리 어여쁜 두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 우리 좋은 동무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또, 하느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지구별이랑, 숲이랑, 바다랑, 해랑, 달이랑, 별이랑, 구름이랑, 빗물이랑, 무지개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4345.5.24.나무.ㅎㄲㅅㄱ)


―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글,샨티 펴냄,2012.3.9./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 쉽고 재미있게 익히는
배상복.오경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모른다
 [책읽기 삶읽기 103] 배상복·오경순,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

 


  배상복 님과 오경순 님이 함께 쓴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잘 모릅니다. 한국땅 학교에서 한국말을 옳게 가르치는 틀이 없기도 하지만, 한국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배우며 옳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도 합니다.


  책을 찬찬히 읽다가, 오늘날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떠올립니다. ‘국어(國語)’라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쓰였다 하지만, 이 한자말을 바로잡거나 고치려는 공공기관이나 교사는 그리 안 많습니다. ‘國語’라는 낱말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일본말’을 가리키던 낱말이요, 일본 제국주의자가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며 ‘일본말’을 ‘國語’라는 과목으로 가르쳤습니다. 한국말은 ‘조선말’이나 ‘조선어’라는 이름으로 가르쳤어요. 더 깊이 헤아려도 이와 같아요. 한겨레는 예부터 ‘한겨레 말’을 썼을 뿐입니다. 다만, 한겨레 스스로 한겨레 말을 가리키는 이름은 따로 없었어요. 굳이 이런 이름이 있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았으니까요. 조선 때에 한겨레 글이 태어나기는 했으나, ‘한겨레 글’인 ‘훈민정음’은 여느 사람(백성)이 쓰는 글이 아니라 권력자와 지식인이 쓰는 글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식민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학교라는 데가 생기며 여러 과목을 가르쳤고, 이때에 이 나라 이름은 ‘조선’이었기에, 학과목은 ‘조선말’이나 ‘조선어’였어요. ‘국어’라는 말은 안 썼어요.


  그나저나, 국어라는 낱말이 이러하건 저러하건, 이 말을 쓰건 말건, 한국사람이 오늘날 쓰는 한국말이 어떠한가를 학교에서 찬찬히 가르치지 않기도 하지만, 스스로 찬찬히 익히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지 않으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 언어라는 것은 태생한 배경과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과거 전화가 귀해 이장 집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고 우체국 먼 길을 가서 전화를 하던 때를 생각하면 “들어가세요.”라는 표현이 충분히 상상이 간다. 언어라는 것이 반드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를 전달할 때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세월이 흘러 어원은 잘 모르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써 온 표현도 적지 않다 … 외국어나 외래어는 우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구나 엉터리 영어라면 우리 말을 쓰는 게 낫다 ..  (19, 141쪽)


  요즈음 한국사람은 ‘한국말’과 ‘외국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한국말과 외국말 사이에 있는 ‘들온말(외래말)’도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외래어(外來語)’처럼 한자로 적으니 못 알아들을 수 있는데, 한자 뜻풀이 그대로 “밖에서 들어온 말”이기에 한국말로는 ‘들온말’입니다. “들어와서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들온말’입니다.


  들온말은 아직 한국말이 되지 않았으나, 한국사람이 여러모로 쓰는 낱말을 가리킵니다. 들온말을 쓰는 까닭은, 이제부터 한국말을 새롭게 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온말을 여러모로 쓰면서 이 들온말을 한국말로 알맞고 슬기롭게 가다듬거나 갈고닦아 풀어낼 낱말을 빚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사람은 들온말을 한국말로 갈고닦지 않습니다. 들온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게다가, 들온말 아닌 바깥말(외국어, 다른 나라에서 쓰는 말)을 마치 한국말처럼 삼으며 버젓이 써요.


  ‘외국어(外國語)’ 또한 한자로 적으니 어떤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할 수 있는데, 말뜻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쓰는 말”, “이 나라 아닌, 이 나라 바깥에서 쓰는 말”이 ‘외국어’입니다.


  영어도 외국어요 일본어도 외국어입니다. 미국사람 쓰는 미국말이든 일본사람 쓰는 일본말이든, “한국 아닌, 한국 바깥에서 쓰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은 한국 바깥에서 쓰는 영어를 잘 익혀야 한국 바깥으로 나가서 외국사람을 사귈 때에 좋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주고받자면서 영어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아요.


.. 참고로, 총각김치를 담글 때 쓰이는 어린 무를 ‘총각(總角)무’ 또는 ‘알무’ ‘알타리무’라 하는데, 1988년에 개정된 표준어 규정은 순수 우리 말인 ‘알무’ ‘알타리무’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해서 한자어 계열인 ‘총각무’로 쓰도록 했다. 따라서 ‘총각무’ ‘총각김치’가 표준어이고, ‘알무’ ‘알타리무’ ‘알타리김치’는 표준어가 아니다. 순 우리 말을 버리고 한자어를 표준어로 선정함으로써 비판이 있는 부분이다 … ‘간절기’는 정체불명의 말이다. 한자어권 어디에도 이런 단어는 없다. 일본식 표현을 오역한 것일 뿐이다 … 지난 2000년 국립국어원이 ‘간절기’를 신어 목록에 올렸지만 이는 한 해 동안 신문이나 잡지 등에 새로 등장한 용어를 모은 것일 뿐이다. 이 가운데는 유행어뿐 아니라 비속어도 포함돼 있다. 그 말이 어법상 옳은 것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  (45, 120쪽)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라는 책에도 군데군데 나오지만, 국립국어원은 나라에서 세운 ‘한국말 지킴터’다운 노릇하고는 좀 동떨어집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고 슬기롭게 쓰도록 돕거나 이끄는 구실을 잘 못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말’을 그러모으는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이에 앞서 ‘한국사람이 더 아끼고 사랑할 만한 좋은 말’부터 그러모으도록 힘써야 할 노릇입니다.


  신문이나 잡지에는 누가 글을 쓰겠습니까. 한국말을 옳게 가누거나 가꾸는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나요. 들온말과 바깥말을 찬찬히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나요.


  교과서도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이고, 학교도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이며, 신문·잡지 또한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입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나머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을 일깨우는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같은 책을 써야 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얼마나 모르면 이 같은 책을 애써 써야 할까요.


.. 결국 “5만 원이세요.” “10만 원이세요.”처럼 돈에다 “-세요.”를 붙이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돈을 존대하는 기형적 어투다. 고객을 존중하기는커녕 돈이나 사물을 높여 손님을 놀리는 듯한 표현이다 … ‘쿨비즈’는 일본에서 쓰이는 용어를 우리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똑같은 운동에 똑같은 이름이 쓰였다. 일본에서 영어를 어떻게 조합해 쓰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엉터리 영어를 가져다 우리가 국가 정책 용어에 버젓이 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말로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  (63, 143쪽)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라는 책은 중학생 즈음이면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 나타나는 낱말이나 말투는 퍽 어렵습니다.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같은 글월이 보이는데, “슬기롭게 이름을 붙이면”처럼 다듬을 만합니다. “돈을 존대하는 기형적 어투다” 같은 글월은, “돈을 높이는 엉뚱한 말이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어법상 옳은 것인지는” 같은 글월은 “그 말이 옳은지는”으로 다듬으면 되고, “한자어를 표준어로 선정함으로써 비판이 있는 부분이다”는 “한자말을 표준말로 삼아 비판받는 대목이다”로 다듬으면 즐겁습니다.


  67쪽을 읽으면,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역시 주체와 관련된 것을 높이는 간접 높임이므로 ‘교장 선생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고 해야 한다. 아예 말을 바꾸어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로 해도 해도 된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간접 높임’을 쓰든 말든, “교장 선생님 말씀이 있다”라는 말이, 참말 말이 되는지부터 살펴야지 싶어요. 이 대목부터 제대로 따져야지 싶어요.


  먼저, 이렇게 함부로 쓰는 말은 잘못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이니까요. 다음으로, 한국말은 임자말이나 토씨를 줄이거나 지우곤 합니다. 이런 한국말 빛깔을 헤아리며, “너, 할 말 있니?” 같은 말투를 돌아봅니다. “너, 할 말 있니?”에서 가지를 치면, “선생님, 하실 말씀 있어요?”가 되고, 이 흐름에 따라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 때에도 “교장 선생님(이 하실) 말씀이 있겠습니다”처럼 될 수 있어요. 이와 같은 흐름과 결과 무늬를 찬찬히 짚을 때에, 비로소 한국사람 스스로 잘 모르는 말을 잘 생각하도록 도우리라 믿습니다.


  109쪽을 읽으면, “그래도 ‘배워 주다’를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간첩이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웬 ‘간첩’? 북녘에서는 ‘가르쳐 주다’를 ‘배워 주다’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누군가 쓴다면 ‘간첩’인지 살피라 하는 소리인데, 이와 같은 말투는 인권과 인격을 깎아내릴 뿐 아니라, 고장말을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북녘을 떠나 남녘으로 온 사람이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요. 중국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가는 이웃이 매우 많아요. 이들은 ‘북녘 말투’를 이녁 고장말로 그대로 쓰면서 살아가는데,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라는 뜻일까요? 북녘말은 북녘말대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껴안을 때에 남북이 하나되는 슬기로운 길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북녘사람은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됩니다. 북녘사람 말투는 나쁘거나 못된 말투라도 되는 듯 적바림한 대목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잘 모르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한겨레 이웃’이나 ‘한겨레 동무’나 ‘한겨레 살붙이’부터 잘 모르기도 한다고 느껴요. 한국사람은 영어를 배우고 일본말을 배우고 하지만, 정작 경상도말이나 전라도말을 얼마나 배우려 하나요. 서울말만 듣고 익힐 뿐, 막상 인천말이나 수원말이나 평택말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얼마나 살피려 하나요. 북녘말을 헤아리기 앞서, 같은 울타리라는 남녘에서조차 이웃말을 돌아보지 못해요. 강원말에서도 춘천말과 원주말과 고성말과 양구말은 달라요. 경상도말에서도 마산말과 진주말과 거제말과 통영말은 모두 달라요. 통영에서도 마을마다 조금씩 달라요. 섬마다 또 살짝살짝 달라요. 우리 한국사람은 외국말은 외국말대로 배워야겠습니다만, 한국사람으로서 ‘한겨레 이웃말’부터 제대로 살피고, ‘한겨레 이웃삶’ 또한 사랑스레 돌아보며, ‘한겨레 동무마을’을 따사로이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5.5.19.흙.ㅎㄲㅅㄱ)


―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배상복·오경순 글,이수영 그림,21세기북스 펴냄,2012.5.14./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강제윤 지음, 박진강 그림 / 호미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책에 이름 몇 글 적히지 않아도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8] 강제윤, 《어머니전》

 


- 책이름 : 어머니전
- 글 : 강제윤
- 그림 : 박진강
- 펴낸곳 : 호미 (2012.5.1.)
- 책값 : 15000원

 


  어머니는 딸을 낳고, 어머니는 할머니 되며, 딸은 어머니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되며, 아들은 아버지 됩니다. 느티나무는 느티씨를 떨구어 어린 느티나무를 키웁니다. 단풍나무는 단풍씨를 떨구어 어린 단풍나무를 키웁니다.


  어린나무가 씨를 맺어 땅에 떨굴 때까지는 퍽 오랜 나날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열매나무를 몇 해만에 금세 키우고 굵다란 열매까지 척척 열리게끔 하지만, 꽃을 피우든 열매를 맺든 하자면, 작은 씨앗 하나는 오랜 나날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웁니다. 여러 해나 열 몇 해 지나야 비로소 첫 꽃송이와 첫 열매를 맺어요.


.. “배추를 생으로 쌈 싸 먹고 채독에 걸리면 그 벌레가 사람 피를 빨아 먹어. 그냥 두면 죽어라우. 한디 옥수수 수염 대려 먹으면 나섰어.” 병이 있으면 병을 낫게 해 주는 약도 곁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는 약만 먹고 살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맨날 노물(나물)로 먹고 살았제.” 할머니는 그런 약초들을 캐다 팔아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 할머니는 어제 딴 강낭콩 두 가마니를 삼천포 장에 내다 팔고 오는 길이다. 10킬로그램에 일만오천 원, 두 가마라 해 봐야 겨우 삼만 원이다. 씨 뿌리고, 키우고 결실을 얻어다 파는 값이 이토록 헐하다. 농사가 얼마나 천대받는 시대인가 … 저 고무 대야 속 작은 전복 하나에도 잠녀들 목숨 값이 들어 있다 ..  (13, 44, 67쪽)


  우리 집 뒤꼍 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이 뽕나무에서는 오디가 맺힐 테고, 오디가 맺히기 앞서 뽕꽃이 필 텐데, 뽕꽃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합니다. 봄맞이 숱한 들꽃과 나무꽃을 말하는 사람 많은데, 막상 이른봄 찾아드는 느티꽃이라든지 굴참꽃이라든지 떡갈꽃을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얘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아무래도 하얗거나 노랗거나 분홍빛 감도는 꽃잎 아니고는 익숙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붉은 빛이거나 보라빛 아니라면 꽃잎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단풍나무에는 단풍꽃이 핍니다. 은행나무에는 은행꽃이 핍니다. 소나무에는 솔꽃이 필 테지요. 나무는 줄기를 굵고 높고 튼튼히 뻗으면서 꽃을 피웁니다.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차근차근 씩씩한 어른이 되면서 몸속에 씨앗을 품습니다. 몸속에 품은 씨앗으로 아이를 하나만 낳을 수 있고, 열을 낳을 수 있습니다. 씨앗을 모두 목숨으로 맺어야 하지 않아요. 씨앗은 씨앗대로 몸속에서 곱게 깃들다가 몸안으로 스며들 수 있어요. 씨앗은 좋은 꿈을 만나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어요. 씨앗은 새로운 씨앗으로 이어지며 우리들 살아가는 지구별을 아름다이 돌보는 밑힘이 될 수 있어요.


  돌이켜보면, 나무들은 나무씨를 내며 지구별을 푸르게 가꿉니다. 풀들은 풀씨를 내며 지구별을 푸르게 돌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씨를 내어 지구별을 어떤 빛깔로 가꾸는가요. 사람은 사람씨를 맺을 때에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나누는가요. 사람은 저마다 몸에 품은 씨앗을 알뜰히 건사하나요. 사람은 스스로 몸에 품은 씨앗을 예쁘게 아끼나요.


.. “부친 모친 가시고 나니 갈 일이 있나.”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향이 되었다 … 장소가 고향이 아니다. 사람이 고향이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향이다. 할머니는 이미 스스로 자식들의 고향이 되었으니 어디에 달리 고향이 있겠는가 ..  (39, 189쪽)


  아침이 되어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납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하나둘 잠듭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무언가 집일을 해 보려 하지만, 내 몸도 고단해서 아이 곁에 나란히 쓰러집니다. 아이들이 잘 때에 함께 자고, 아이들이 일어날 때에 같이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깨기 앞서 하루를 열며 아침을 맞습니다. 아침밥 차리려고 부엌일을 하든,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려고 밑빨래를 해 두든, 아이들이 새근새근 꿈나라를 누빌 때에 조용히 일어납니다.


  내 어머니도 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이와 같았겠지요. 내 아버지도 내가 어린이였을 무렵에 이와 같았겠지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아 돌본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와 같았을 테고,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며 마주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이와 같았을 테지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들하고 함께하면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널리 살피며 더 깊이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늘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아이들보다 더 힘을 쓰고 더 사랑을 북돋우며 더 꿈을 키웁니다.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받은 사랑을 누립니다. 내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한테서 받는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을 물려주지 못하는 어버이는 사랑 없이 메마르게 살아갑니다.


  나무는 씨앗에 무엇을 담을까 생각해 봅니다. 풀은 씨앗에 무엇을 실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나무는 작은 씨앗이 앞으로 어떻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기 바랄까요. 봄날 짙푸르게 우거지는 풀들은 저희 풀씨가 앞으로 어떤 땅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기를 꿈꿀까요.


.. 아주머니는 난생처음 본 나그네지만, 집에 들렀으니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게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넙죽 받아먹는다. 평생 다시 마주칠 일 없을 나그네한테 베푸는 마음이란, 대체 어떤 마음일까 … “오늘 연락선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우리 손죽도가 훤합니다.” 할머니는 손죽도를 찾아와 준 나그네에게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  (105, 156쪽)


  섬마을을 돌며 ‘어머니’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강제윤 님이 빚은 《어머니전》(호미,2012)을 읽습니다. 《어머니전》에 나오는 이들은 강제윤 님한테 어머니라 할 만한 분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이들 ‘어머니’가 ‘할머니’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이들 ‘어머니’가 ‘동무’일 수 있습니다.


  강제윤 님이 섬마을에서 만나는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줄에 접어든 어머니 들은 하나같이 일을 합니다. ‘일’이라 했지만, 당신들 어머니 삶을 이어온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이합니다.


  바다에 나가든 물을 만지든 흙을 보듬든, 어머니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아주 늙은 오늘까지 일을 하고 삶을 꾸리며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씁니다. 어머니들은 어디에서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며 들판을 사랑합니다.


  몸으로 아이를 품는 어버이라서일까요. 몸으로 아이를 품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아이를 품는 어버이라서일까요. 아버지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은 왜 어머니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처럼 따스하거나 너르거나 깊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아버지들은 왜 스스로 아이한테 따스하며 너르면서 깊은 사랑을 물려주려는 넋을 품지 않는 듯 보일까요. 아버지도 아이였을 적에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았을 텐데, 아이일 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스스로 어버이가 된 다음 아이한테 얼마나 어떻게 물려주는 삶일까요.


.. 다 밥 먹고 살자고 사는 세상 아닌가. 밥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섬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많은 사람이 도시에 살지만, 그들 또한 밥벌이를 위해 직장이라는 섬에 갇혀 살지 않는가 … 어느 쪽이든 자동차를 타고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떠난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도 대개는 섬에 몰입하기보다는 놀이나 식도락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섬에 와서도 섬을 보지 못한다 … “조개도 옛날 같지 않고 밤낮 자디잘아유. 원래 이게 물물이 크는 건데 밤낮 봐야 콩알 같아. 삶아 논 것마냥 안 커요.” 보름 한 물때마다 몰라보게 씨알이 굵어지던 것이 이제는 삶은 조개처럼 아예 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이다. 나무들도 시들시들하다가 썩어 주저앉는다. 밭작물도 제대로 자라는 것이 없다 ..  (159∼160, 162, 174쪽)


  ‘밥 먹고 살자’는 누리입니다. 나도 먹고 너도 먹으며 함께 살아가자는 지구별입니다. 어른도 밥을 먹고 아이도 밥을 먹습니다. 사람도 밥을 먹고 벌레도 밥을 먹습니다. 나무도 풀도 꽃도 새도 나비도 밥을 먹습니다. 저마다 밥상이 다르고, 저마다 집이 다르며, 저마다 아기씨가 다릅니다. 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사랑을 피우면서 생각을 빛냅니다.


  밥은 얼마나 어떻게 먹을 때에 즐거울까요. 내 몸을 따스하게 채우는 밥은 얼마쯤 먹을 때에 흐뭇할까요. 밥은 어떻게 차릴 때에 기쁠까요. 내 마음을 너그러이 보듬는 밥은 누구하고 먹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고속도로는 누가 지을까요. 제철소와 발전소는 누가 지을까요. 고속철도는 누가 지을까요. 공항과 항구는 누가 지을까요. 군대는 누가 만들까요. 탱크와 전투기와 항공모함은 누가 만들까요. 경제발전은 왜 이루어야 할까요. 사회복지와 문화예술은 왜 이루어야 하나요. 대학교에는 왜 가야 하고, 인터넷은 왜 해야 하나요.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기쁜 하루일까요. 무엇을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다운 꿈일까요. 무엇을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면서 즐기면서 고마운 나날일까요.


.. 나그네는 수백 년을 이어 온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못내 애석하다. 문화재란 무엇일까. 이미 사라져 쓸모없는 관청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과연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일일까. 저 오래된 마을과 집과 돌담과 나무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문화재가 아닐까 … 이 마을에도 돌담 대신 담장들은 대부분 블록 벽돌담이다. 사십여 년 전,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돌담을 헐어 버리고 쌓은 것이다. 돌담은 수백 년 세월에도 변함없이 튼튼한데 저 벽돌은 벌써 썩어서 시커멓다 … 이들 섬에는 각기 드라마 촬영장과 영화 촬영지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이 관광 상품으로서, 가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풍광 좋은 해변마다 촬영장이 들어서고 그것들이 마치 섬을 대표하는 문화처럼 선전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오래된 섬살이의 흔적들은 증발해 버리고 가상의 드라마가 현실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수천 년 역사의 섬에서 고작 내세울 것이 멜로드라마나 영화 촬영장뿐이라면 그것은 코미디다 ..  (17, 54, 162쪽)


  어머니들이 살아가는 오늘은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삶이야기’이고, 하루를 지나면 ‘옛이야기’입니다. 아버지들이 살아가는 오늘 또한 하나하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삶이야기’이고, 이듬날부터는 ‘옛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짓습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이야기를 짓습니다. 더 좋다거나 더 궂다 싶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더 기쁘다거나 더 슬프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살아가며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며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며 웃고 우는 이야기입니다. 좋다 싶은 일을 마주하면 좋다 싶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궂다 싶은 일을 부딪히면 궂다 싶은 생채기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기도 하고, 푸른개구리는 엄마개구리 말하고 어긋난 짓을 일삼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눈도 코도 귀도 손도 발도 하나뿐인 아이는 홀로 씩씩하게 크며 힘센 기운을 착한 곳에 씁니다. 팥죽을 나누어 먹은 밤알이며 까치이며 늙은 할멈을 거들어 범한테서 작은 보금자리를 지킵니다. 콩쥐도 팥쥐도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흥부도 놀부도 한결같이 귀여운 아이입니다. 방귀를 뀌어도 며느리요, 바느질이 서툴어도 옆지기입니다. 낫질을 잘 해도 옆지기일 테고, 글을 못 읽어도 사위일 테지요.


  모두들 사랑스럽게 얼크러지며 밥을 먹는 삶입니다. 저마다 살가이 어깨동무하며 밥을 나누는 삶입니다. 어머니들은 섬에서 수천 해 수만 해를 살았습니다. 따로 이름 석 자 없이도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돌봅니다. 족보나 역사책에 이름 몇 글 적히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도 사랑으로 키웁니다. 《어머니전》은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삶”입니다.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 꿈”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며 즐거이 누린 고운 빛입니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