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
[말사랑·글꽃·삶빛 31] 그림책은 어떻게 쓰는가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안 읽으며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먼저 찬찬히 안 살피고 나서 아이들한테 쥐어 주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느 그림책을 아이한테 내밀며 읽으라고 하더라도 어버이인 내가 먼저 그림책을 가만가만 읽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들 눈높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그림책은 지식인이나 지성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울타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한글을 깨친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읽고 쉽게 생각하며 쉽게 삶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를 담아서 그림책 하나 태어납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다가, 책에 적힌 글월을 죽죽 긋고는 아래나 위에 다른 말을 적어 넣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한글을 깨쳐 스스로 읽을 적에 썩 안 좋다 싶은 글월이라면 죽죽 긋고 새 말을 적어 넣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다른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펼쳐 읽어 준다 할 적에 ‘책에 적힌 대로만 읽지 않기’를 바라며 죽죽 긋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과 글이 어울리기도 하며, 글이 퍽 많이 실리기도 합니다. 그림책이 어떤 모양새로 태어나더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넣는 이들은 ‘말’을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을 말에 담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기 앞서, 이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는 어른들은 여느 때에 스스로 생각하던 삶을 여느 때에 즐겁게 쓰던 말에 담아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림책 《꽃섬》(웅진주니어,2012)을 읽다가 “도시는 빠르게 커지고 복잡해졌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같은 글월을 봅니다.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투이니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에도 이 같은 글월이 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복잡(複雜)하다’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풀이합니다. 한국말 ‘얽히다’를 가리키는 한자말 ‘복잡하다’요,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어수선하다’나 ‘어지럽다’입니다. ‘점점(漸漸)’이란 또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보면,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을 가리킨다 하는데, 국어사전 말풀이에 나오듯, 한국말은 ‘조금씩’입니다.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차츰’이나 ‘자꾸’나 ‘꾸준히’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복잡하다’와 ‘점점’이라는 한자말도 쓰고, ‘어지럽다’와 ‘차츰’이라는 한국말도 씁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을 들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쓸 때에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그림책 《일 년은 열두 달》(시공주니어,2006)을 읽다가 “동장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소식을 전해 줄 거야” 같은 글월을 봅니다. 아이들 앞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 말하는 어른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으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말합니다. ‘동장군(冬將軍)’도 이와 같은 흐름이에요. 아이들하고 나눌 그림책에 적어 넣을 낱말이라 한다면 ‘겨울장군’처럼 적을 수 있어요. “전(傳)해 줄거야” 같은 글월이라면 “알려주겠지”라든지 “들려줄 테지”처럼 손볼 수 있어요.


  한 가지를 더 살핍니다. ‘봄소식(-消息)’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한자말 ‘소식’ 뜻풀이를 찾아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리는 말이나 글. ‘알림’으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소식’은 한국사람이 안 써야 알맞다 여기는 낱말입니다. 다만, 국어사전에서 ‘소식’ 같은 한자말을 찾아보는 어른은 거의 없어요.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한들 이러한 한자말을 씻거나 털려고 애쓰는 어른 또한 거의 없어요.


  곰곰이 생각할 일입니다. 한자말 ‘소식’을 씻거나 털려 한다면, 어떤 한국말을 쓸 때에 알맞으면서 즐거울까요.


  나는 아이들한테 ‘봄소식’ 같은 말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봄노래’라든지 ‘봄얘기’라든지 ‘봄바람’ 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겨울장군이 차츰 물러나면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노래를 부르겠지요. 봄얘기를 속삭이겠지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봄꿈을 꾸겠지요.


  그림책 《엄마가 좋아》(한림출판사,1988)를 읽다가 “준비, 시작”이라는 글월을 보고 살며시 책을 덮습니다. 서너 살 어린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엄마가 좋아》인데, 일본사람이 쓴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일본말 “요이, 땅(ようい, どん)”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준비, 시작”으로 옮긴 셈이에요. 자, 생각해 봅니다. ‘준비(準備)’와 ‘시작(始作)’은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 한자말일까요. 일본사람이 한자로 적은 낱말을 한국사람이 한글로 옮기면 그림책에든 소설책에든 쓸 만하다 여겨도 될는지요.


  우리 집 아이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을 때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리기 앞서, 나 스스로 퍽 어린 나날 어떤 말을 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나와 동무들은 “요이, 땅”을 비롯해서 “준비, 시작”과 “준비, 출발”과 “준비, 탕”까지 갖가지 말을 썼어요. 이런 말을 써야 한다거나 저런 말은 안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둘레 어른 가운데 우리들이 즐겁게 쓸 만한 말투와 낱말을 알려주는 어른도 없었어요. 이때에 이런 여러 가지 ‘일본말’과 ‘일본 말투’와 ‘일본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옮겨 적은 말투’ 말고,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말투도 몇 가지 썼습니다. 이를테면, “자, 가자”라든지 “하나, 둘, 셋”이라든지 “자, 하자” 같은 말을 아울러 썼어요.


  이제 그림책을 덮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더 깨끗하다 싶은 말이라든지, 더 아름답다 싶은 말이라든지, 따로 있을까 되새겨 봅니다. 말은 정갈하게 하더라도 삶이 정갈하지 못하거나 넋이 정갈하지 못하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삶과 넋을 어떤 말에 담아서 나타내는 셈일까 곱씹어 봅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아주 마땅히 어린이 눈높이를 살펴야 알맞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고르고 어린이한테 걸맞을 말투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알아듣기만 한다면 어떤 낱말과 말투라도 다 쓸 만하지는 않겠지요.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과 말투이면서, 어른 스스로 삶을 아끼고 생각을 살찌우는 낱말과 말투가 되어야겠지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사람이 러시아말을 흉내낼 까닭이 없어요. 네덜란드사람이 벨기에말을 따라할 까닭이 없어요.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하면 돼요. 라오스사람은 라오스말을 해야지요. 중국사람은 중국말을 하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하면 됩니다. 곧,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할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무늬만 한글인 한국말’이 아니라 ‘알맹이가 알차고 어여쁘며 튼튼한 한국말’을 스스로 슬기롭게 찾으면서 갈고닦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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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만화책

 


  어떤 만화책 1권과 2권을 읽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도무지 짚을 수 없다.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이 만화를 그리며 그이는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받기까지 했다는데, 무슨무슨 상은 어떤 만화에 주는지 알쏭달쏭하고, 상을 받았건 말건 이러한 만화책을 굳이 한국말로 옮겨 한국사람한테 읽히려 한 까닭은 무엇인지 또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 혼자 재미없다고 느끼거나 뜬금없다고 느낄는지 모르리라. 무슨무슨 상을 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느꼈을 테며, 한국말로 옮긴 출판사와 편집자와 번역자는 재미있게 읽었을 테지.


  저녁에 아이들과 〈아기공룡 둘리〉와 〈우주소년 아톰〉과 〈달려라 하니〉 만화영화를 하나씩 보면서 새삼스레 다시 생각한다. 꼭 어떤 틀이나 줄거리나 이야기가 있어야 재미난 만화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만화이든 시이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살아가는 꿈이 있을 때에 읽을 만하리라 느낀다. 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 있을 때에 즐겁게 맞아들일 만하리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밑까닭이 있다 하면, 바로 이 두 가지 대목이 아닐까. 꿈과 사랑. 나 스스로 꿈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글도 쓰지 못하고 어떠한 사진도 찍지 못한다. 나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않을 적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아무 사진도 못 찍는다. 난 언제나 사랑스레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요, 늘 꿈꾸듯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내 글과 사진에 사랑과 꿈을 담지 않는다면 굳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꿈꾸면서, 내 반갑고 즐거운 동무와 이웃하고 예쁘게 나눌 글과 사진을 한결같이 씩씩하게 돌보고 싶다.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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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대통령 바라기

 


  진보정당이 스스로 진보답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면서 대통령 후보만 잔뜩 내놓는 꼴이라는 소리를 어디에선가 듣는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통령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며 시장이나 군수도 하는 보수정당 사람들은 이제껏 한 번이라도 ‘보수정당다운 삶과 꿈과 사랑’을 펼치거나 나눈 적 있는가 곱씹어 본다. 아직 한 번조차 참다운 보수정당 정책이나 삶을 펼친 적이란 없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는대서 이런저런 정책을 지키거나 가꾸는 정치집단은 없지 싶다. 권력 앞에서 권력을 거머쥐려 할 뿐, 삶을 짓거나 가꾸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진보정당한테 바라는 꿈은 오직 하나, “즐겁게 살아가자”이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바랄 수 없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곳에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도시에서 공장 일꾼이나 회사 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웃’으로 지내도 아름답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으로 지내도 아름답다. 오늘날에는 몽땅 도시에서 살고 시골은 죽이는 꼬락서니요, 도시가 우락부락 커졌어도 시골을 짓누르며 시골을 쪽쪽 빨아먹는 꼴인데, 이런 바보스러운 얼거리를 바꾸거나 고치자면 오직 한 가지, 스스로 시골사람이 되는 길만 있다. 도시살이에 기대지 않고 흙을 누리면서 햇살과 바람과 풀을 사랑하면 모든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참 마땅한 노릇이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간다든지 단식농성을 한다든지 집회를 한다든지 해서는 어떠한 실타래도 풀지 못한다. 길은 하나이다. 공장을 떠나고 회사를 떠나면 된다. 내보내겠다 하면 기꺼이 나가 주면 된다. 다만, 모두 함께 나가야 한다. 모두 함께 나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고 시골로 가서 스스로 땅을 일구며 사랑해야 한다. 땅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으며 스스로 삶을 누리면, 재벌회사 삼성이건 엘지이건 에스케이이건 버티지 못한다.


  시골에서 오붓하고 즐겁게 흙을 일구며 손전화 안 쓰고 텔레비전 안 보며 자가용 안 몰아 보라. 시골에서 호젓하고 예쁘게 들을 누리고 풀과 나무를 사랑하며 숲을 돌보아 보라. 공장과 회사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청와대는 어떻게 될까. 준법투쟁을 할 일도 없다. 모두들 어깨띠도 머리띠도 내려놓으면서 시골로 가면 된다. 편의점 알바이건 할인매장 점원이건 모두 똑같다. 다 함께 그 고단한 일거리를 내려놓으면서 시골로 오라. 시골에는 삶자리와 일자리와 사랑자리와 꿈자리가 그득그득 있다. 열 평만 있어도 식구들 먹을거리는 넉넉히 나온다. 도시에서 전세와 월세로 골머리를 앓지 말고 시골로 와서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람’다이 살아가면, 오늘날 모든 도시 말썽거리와 지구별 골칫거리는 사라진다.


  싸움은 싸움을 부른다. 평화는 평화를 부른다. 사랑은 사랑을 부른다. 미움은 미움을 부른다. 미움을 부르는 싸움을 하면서 어떠한 실타래도 풀지 못한다. 평화를 부르는 사랑을 할 적에 모든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아쉬움도 걱정도 내려놓고 시골로 오라. 전철도 버스도 멈추고 시골로 오라. 은행도 공장도 세우고 시골로 오라. 자, 이렇게 하면 어찌 될까. 사람들이 도시 쳇바퀴와 톱니바퀴 짓을 그만두고 시골로 오면 어찌 될까. 십만이나 백만이 모이는 집회를 한들 정치권력은 달라지지 않고 경제권력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십만이나 백만이 한꺼번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오면 어찌 될까. 하루아침에 도시가 달라진다. 하루아침에 재벌회사가 두 손 번쩍 들리라.


  쉽게 얘기해 본다면, 한가위와 설날을 떠올리면 되낟. 한가위와 설날 때처럼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 보라.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옴쭉달싹 못한다. 한가위와 설날에 도시사람이 몽땅 시골로 가더라도 시골은 붐비지 않을 뿐더러, 모든 도시사람을 먹여살리기까지 하고, 일거리도 많고 즐겁다. 자, 텅 빈 도시에서 삼성회사 우두머리가 무얼 하겠는가. 텅 빈 도시에서 대통령 혼자 무얼 하겠는가. 도시를 텅 비우면 그동안 바보짓을 하며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정규직이니 알바생이니 무어니 하며 들볶던 그네들 권력자는 아무런 권력을 부리지 못한다. 위에서 시키기만 하던 바보스러운 우두머리 스스로 모든 톱니바퀴를 돌리거나 쳇바퀴질을 해야 한다. 긴 나날이 들지 않는다. 사흘쯤 도시를 텅 비운 채 시골에서 호젓하게 얼크러지면서 두레놀이를 하며 삶을 빛내자. 그러면 저들 권력자는 그네들 스스로 톱니바퀴와 쳇바퀴를 내동댕이칠밖에 없다. 사람들이 톱니바퀴로 다시 돌아갈 까닭이 없고, 사람들이 거듭 쳇바퀴질을 할 까닭이 없다. 돈버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할 일이 없다. 대통령이나 회사 우두머리나 정치꾼이 부질없고 덧없이 톱니바퀴질과 쳇바퀴질로 사람들을 억눌러도 사람들 스스로 ‘돈푼’에 얽매일 뿐 아니라 스스로 권력자 자리로 올라서고 싶다는 서글픈 밥그릇다툼을 벌이니, 자꾸자꾸 엉터리 정치·경제·교육·사회 틀거리가 단단해지기만 한다.


  이리하여, 나는 대통령뽑기에는 눈길을 안 둔다. 대통령을 누구로 뽑는들 달라질 일은 없으니까.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스레 바꿀 때에 온누리가 달라지고 이 나라가 달라지지, 대통령 한 사람 잘 뽑는대서 온누리가 안 바뀌고 이 나라가 안 바뀐다. 다만, 대통령을 굳이 뽑아야 한다면, 나로서는 ‘아줌마 대통령’을 뽑고 싶다. 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고 사랑스레 살아가며 사랑스레 살림을 꾸리는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어, 집살림처럼 나라살림 알뜰살뜰 여민다면 재미나리라 본다.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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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 지는 시골

 


  보름달빛 하얗게 온 고을과 들판을 적신다. 달빛이 아주 환해 길과 집과 들이 훤하게 보인다. 밤하늘이 그리 깜깜하지 않다. 달빛을 받으며 훤히 열린다. 그러나, 이 달빛은 깊은 시골에서만 달빛이 될 뿐, 면내나 읍내로 나가더라도 전깃불빛한테 가로막힌다. 도시사람은 달빛이 있는 줄 느낄까. 도시사람은 별빛이 나란히 온 지구별을 감싸는 줄 생각할까. 달을 느끼지 않고 별을 바라보지 않으며 해가 뜨더라도 고작 하루가 되풀이되는 줄 여기기만 한다면, 삶을 누리는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


  보름달 지면서 하늘은 한결 까맣게 빛난다. 밤하늘이 까맣게 빛나면서 온갖 별이 반짝인다. 비로소 미리내를 볼 수 있고 아주 자그맣게 보이는 별을 만날 수 있다. 저 멀디먼 별 가운데에는 지구에서 보내는 빛을 받는 곳도 있겠지. 저 멀디먼 별나라에서는 지구빛을 어떤 빛으로 맞아들이거나 느낄까. 지구별 스스로 빚는 빛으로 느낄까, 지구별을 갉아먹는 전깃불빛 매캐한 공해덩어리 빛으로 느낄까.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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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 샘터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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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꿈꾸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118] 김수미,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

 


  시골집에 손님이 찾아옵니다. 여느 때에도 늘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에 차릴 밥을 이것저것 미리 손질해 놓지만, 손님이 찾아온 만큼 이모저모 더 마음을 써서 손질을 합니다. 집식구끼리 먹는 밥이라면 엊저녁 먹고 남은 찬밥이 있어도 아침에 그대로 먹지만, 손님이 온 만큼 아침밥은 달리 해야지 생각합니다. 어쨌든 따순 밥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찬밥을 볶든지 지지든지 어떻게 끓이든지 할 생각입니다. 손님이 들고 온 먹을거리를 더 맛나게 먹자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함께 찾아온 아이들은 도시내기라 풀밥 먹기가 익숙하지 않은데, 우리 식구 먹는 대로 풀을 밥상에 차리자면 힘들는지 몰라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풀을 맛나게 먹도록 이끄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 나 자신 우울증과 빙의를 앓으면서 자살 직전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 후배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다. 개미는 바늘로만 찔러도 치명적이지만 코끼리에게는 그저 따끔할 뿐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자. 절벽에서 떨어지면 코끼리는 치명적이지만 개미는 끄떡없지 않은가?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세상 모든 개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16쪽)


  동이 틉니다. 날이 밝습니다. 마을을 드나드는 멧새는 으레 우리 집 후박나무와 산초나무에 앉았다가 갑니다. 멧새와 들새는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빠짐없이 들르지 싶습니다. 새를 쫓는 집은 없고 새를 미워하는 집은 없어요. 새들은 감나무에 앉아 감을 쪼아먹기도 하고, 후박나무 열매를 먹기도 했고, 후박씨를 먹든 산초열매를 먹든, 저희 마음껏 이 나무 저 나무에 앉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곱게 뽑는 목소리로 나긋나긋 새벽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침에는 아침나절대로 아침노래를 듣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멧새와 들새가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이으며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다 다릅니다. 고운 결로 새삼스레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하루 흐름으로 보자면 동이 트며 온 고을이 환하게 빛날 무렵 새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먹이를 찾으며 비비배배 노래한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바라보자면, 새들이 이슬 내린 깃을 털고 힘차게 일어나서 비비배배 노래하기에 아침햇살이 새삼스레 우리한테 찾아온달 수 있습니다.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구나 아직 동이 안 튼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열기에, 이러한 숨결과 손길을 받으며 아침햇볕이 즐거이 찾아온달 수도 있어요.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새벽에 조용히 생각에 젖습니다. 아직 새근새근 자며 고단한 몸을 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아이들과 손님 아이들은 모두 저희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고 자랍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베푸는 사랑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나 혼자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지 않았어요. 내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어 내 자그마한 사랑이 내 어버이한테 새롭게 기운이 되기도 했을 테지만, 내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이 있기에 내 작은 몸뚱이는 천천히 자랐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큽니다. 이동안 아이들 나름대로 가슴속에서 사랑씨앗 살며시 심으며 저희 어버이한테 조그맣게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서로 주고받기에 사랑이요, 서로 나누기에 사랑입니다. 서로 즐겁게 웃는 사랑이고, 서로 기쁘게 북돋우는 사랑입니다.


.. 엄니는 매일 마당에서 꽃에 물을 주시면서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이야기를 하곤 하셨는데 내가 엄니를 꼭 닮았다. 집 안만이 아니었다. 끝이 안 보이는 깨밭에는 작은 주머니만 한 연보라색 깨꽃이 주렁주렁 열리고, 원두막 위에는 하얀 박꽃이 춤을 추고, 밭고랑 사이사이 노오란 호박꽃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밭에 올라가면 보리밭 사이에 몰래 심었다는 시뻘건 양귀비꽃도 보였다 ..  (65쪽)


  밥을 예쁘게 차려서 즐거이 먹은 다음 무얼 할까 헤아립니다. 마을 고샅을 살짝 걷다가 바다에 함께 갈까 싶습니다. 바다는 여름철에 물에 첨벙 뛰어들어도 재미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차디찬 바닷물에 살며시 손을 담그다가 모래밭에서 달리고 주저앉아 바람을 듬뿍 쐬어도 재미납니다.


  말없이 바라보아도 좋은 바닷바람입니다. 가만히 맞아들여도 기쁜 바닷햇살입니다. 들에서는 들바람과 들햇살을 누립니다. 멧골에 오르면 멧바람과 멧햇살 누립니다.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한 올 두 올 이야기 실타래가 바람에 실려 나한테 찾아옵니다. 석 올 넉 올 이야기 꾸러미가 햇살 따라 아이들한테 찾아듭니다. 풀과 나무는 모두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를 받아먹고 자랍니다. 어른인 나도, 우리 아이들도, 손님 아이들도, 누구나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가 있기에 다부지게 하루를 열 수 있습니다.


  꼭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종이상자 하나가 놀잇감이 됩니다. 반드시 무얼 사야 하지 않습니다. 풀잎 하나 뜯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꼭 어딘가 가야 하지 않습니다.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집식구 사랑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꿈을 꾸어요. 내 모습을 꿈꾸고 내 얼굴을 꿈꾸어요. 따스하고 너그러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하루를 빛낼 수 있는 내 삶을 꿈꾸어요.


.. 나는 주로 여성들 위주로 모인 강연에서, 나의 행동이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가 그것이 메아리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  (239쪽)


  김수미 님 이야기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를 읽습니다. 김수미 님이 내놓는 이야기책은 한결같습니다. 늘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담습니다. 언제나 당신 하루를 글로 적바림합니다. 굳이 소설을 쓸 까닭이 없어요. 누구라도 스스로 이녁 삶을 적바림하면 글이고 소설이고 문학이고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아요. 내 삶을 찬찬히 살피면서 적바림할 때에도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누가 나를 사랑해 주어야 내가 예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습니다. 아니, 꼭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적어야 사랑이 되지 않아요. “널 사랑해.” 하고 말할 적에 사랑이지 않아요. 삶을 함께 누리면 돼요. 함께 누리는 삶이 사랑이에요. 함께 나누는 밥그릇 하나가 사랑이에요. 김치 한 접시가 사랑이에요. 국 한 모금이 사랑이에요. 늘 마시는 바람 한 줄기가 사랑이에요. 나한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가 사랑이에요. 구름 한 자락이 사랑이에요. 아침저녁으로 드리우는 노을이 사랑이에요. 풀벌레 한 마리 노랫가락이 사랑이에요. 빗물 한 방울이 사랑이에요.


  김수미 님은 꿈을 꿉니다. 꿈을 꾸기에 글을 씁니다. 김수미 님은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하기에 김수님은 이녁 삶을 가장 꽃피울 만하다고 여긴 ‘연기’를 하면서 이녁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사랑을 방긋방긋 웃음꽃으로 나누어 줍니다. (4345.10.29.달.ㅎㄲㅅㄱ)

 


―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글,샘터 펴냄,2009.6.15./12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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