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오동명 글.사진 / 학고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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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나누고 싶어 즐기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18] 오동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학고재,2003)

 


  마음을 나누고 싶어 즐기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무언가 번듯한 그림을 만들려고 하는 사진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남한테 멋스러이 보이도록 하려고 만드는 사진 또한 아니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즐기려고 찍는 사진이요, 스스로 마음을 넉넉하거나 따스하게 보듬고 싶어 찍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기를 거쳐 내 마음속으로 사랑스러운 기운이 스며듭니다. 어여쁜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기를 거쳐 내 마음속으로 우리 집 어여쁜 아이들 숨결이 스며듭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숲이나 멧골이나 바다나 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기를 거쳐 내 마음속으로 아름답구나 싶은 넋이 스며듭니다.


  아픔이나 슬픔을 사진으로 찍으면 내 마음속으로 아픔이나 슬픔이 스며들어요. 눈물 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으면 내 마음속으로 눈물 나는 이야기가 스며들어요. 괴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내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스며들겠지요.


  기쁨이라 더 좋고 슬픔이라 더 나쁘지 않아요. 그때그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진을 찍어요. 어느 때는 웃음을 사진으로 찍을 테고, 어느 때는 눈물을 사진으로 찍을 테지요. 삶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죽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푸른 숨결이 반갑다 여기면 풀과 숲과 나무를 사진으로 담을 테고, 따순 손길이 반갑다 여기면 살가운 사람들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담을 테지요.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을 때를 헤아려 보셔요. 누구나 사진책에 깃든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잔치에 찾아가 사진을 바라볼 때를 생각해 보셔요. 누구나 사진잔치에 걸린 사진을 읽습니다. 어떤 사진기를 썼거나 어떤 필름을 썼거나를 따지거나 가리지 않아요. 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이야기를 생각해요. 내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떠올려요.


  사진쟁이 오동명 님은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학고재,2003)라 하는 책을 내놓으면서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엔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이 집착이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워야 할 취미를 더 버겁게 만들 수 있다(5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사진은 스스로 재미있게 찍고, 스스로 즐기며 찍을 뿐입니다. 잘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부엌살림 맡은 이는 밥을 즐겁게 할 뿐, 밥을 잘 해야 하지 않아요. 빨래를 잘 해야 하나요? 아니에요. 빨래를 즐겁게 해서, 식구들 다 함께 새옷을 즐겁게 입으면 돼요. 길을 잘 걸어야 하나요? 아니에요. 길을 즐겁게 거닐며 식구들이 나란히 나들이를 다니면 돼요. 말을 잘 해야 하나요? 아니에요. 내 마음이 어떠한가를 몇 마디 낱말을 엮어 즐겁게 나누면 돼요.


  우리들은 무엇을 ‘잘 해야’ 할까요? 아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굳이 어떤 일이나 놀이를 ‘잘 해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요?


  누구나 즐겁게 살아가면 됩니다. 누구나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말을 하며, 즐겁게 사랑하면 됩니다. 즐겁게 글을 쓰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돼요. 가락과 빠르기를 맞추어 노래를 ‘잘 불러’야 하지 않아요. 마음을 즐겁게 다스리면서 기쁘게 누리면 되는 노래예요.


  이리하여, 오동명 님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사진은 거짓으로 만든 예쁜 얼굴이 아니라 자기애가 당당하게 드러난 얼굴 아닐까(24쪽).” 하고 덧붙입니다. 사람 얼굴도 ‘예쁘고 밉고’가 따로 없어요. 얼굴은 그예 얼굴이에요. 남한테 ‘잘 보이려’ 할 까닭이 없어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볼 까닭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잘 읽어 주기’를 바란다거나 ‘잘 바라봐 주기’를 바랄 까닭이 참으로 없어요.


  스스로 즐기는 삶이기에 스스로 즐기는 사진입니다. 곧, “사진 찍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의 마음 씀씀이야. 관심이 곧 사진실력이라 이 말씀이야. 아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으로도 아이 사진은 엄마가 충분히 잘 찍을 수 있어. 연출된 사진이 아니라 삶의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진은 엄마만이 찍을 수 있다는 말이지(54∼55쪽).” 하고 말할 만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루요, 사랑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사랑을 담아 말을 나누고, 사랑을 담아 사진을 나눕니다. 즐겁게 밥을 함께 먹습니다. 즐겁게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며 웃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건, 내 짝꿍이건, 내 동무나 이웃이건, 나는 언제나 나 스스로를 가장 홀가분하며 따사롭고 즐거운 한편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가꾸면서 서로 어울립니다.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가꾸기만 합니다. 씨앗 한 알 밭에 심어 즐거이 가꾸듯, 내 마음밭에 사랑씨앗 곱게 심어 즐거이 가꿉니다. 돌봅니다. 보살핍니다. 쓰다듬습니다. 어루만집니다. 아낍니다. 누립니다.


  “사진은 찍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진이 나온 뒤나 오랜 시간이 흘러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뒤에도 사진을 보며 나눌 이야기가 생기거든(96쪽).” 하는 말마디를 되새깁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이야기가 찍힙’니다. 어떤 모습이 찍히는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가 찍히는 사진입니다.


  글을 쓸 때를 떠올려 봐요. 글쓰기란 이야기쓰기예요. 맞춤법쓰기나 표준말쓰기가 아닌 이야기쓰기예요.


  그러면 이야기쓰기란 무엇일까요. 바로 ‘삶쓰기’예요. 삶을 쓰고, 사랑을 쓰며, 꿈을 씁니다.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사진찍기 = 사진찍기’가 되고, 사진찍기란 삶을 찍고, 사랑을 찍으며, 꿈을 찍는 얼거리가 돼요.


  내가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가 즐기는 사랑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가 빛내는 꿈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오동명 님은 “자기가 직접 찍으며 나눈 대화만큼 마음을 오래 잡아둘 수 있을까(240쪽).” 하는 말로 사진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를 마무리짓습니다. 그야말로 ‘사진 잘 찍는 솜씨나 재주’란 덧없습니다. ‘값진 사진장비’란 부질없습니다. ‘사진학교 다닌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이력서’는 값없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삶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을 나누고 싶어 즐기는 사진입니다.


  실컷 찍고 신나게 누리며 예쁘게 밝히는 사진입니다. (4345.11.3.흙.ㅎㄲㅅㄱ)

 


―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오동명 글·사진,학고재 펴냄,2003.5.6./13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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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학교 책읽기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나이에 따라 줄을 세운 다음, 똑같이 생긴 교실에 넣고, 똑같이 생긴 걸상에 앉혀, 똑같은 교과서를 펼치고,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담도록 이끕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삶을 배우지 못하고, 제도권학교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삶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밥짓기·옷짓기·집짓기 어느 하나 배우지 못하고, 어른들은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가르치지 못하는데, 이를 배우거나 가르쳐야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가 되어 똑같이 움직이도록 내모는 제도권학교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쳇바퀴를 돌 뿐입니다. 삶을 누리거나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걷지 못합니다. 삶하고도 동떨어지고, 사랑하고도 등질 뿐더러, 꿈을 빛내는 길하고도 멀어집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돈을 벌 일자리’를 ‘도시에서 몇 가지’ 찾지만, 정작 아이 스스로 무엇을 아끼고 좋아하는지를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합니다. 삶을 누리는 일이나 사랑을 나누는 놀이를 살피거나 돌아보지 못합니다. 어른도 이와 같아, 어른 스스로 ‘교과서 지식 알려주는 몫’은 하지만,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즐기지 못합니다.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책을 못 읽습니다. 오직 ‘학습’을 하고 ‘독서’를 하며 ‘독후 활동’이나 ‘독후감’이나 ‘논술’에 얽매입니다. 아이들 손에 책이 있다고 하지만, 이는 책 아닌 종이꾸러미일 뿐, ‘삶을 밝히고 사랑을 깨달으며 꿈을 북돋우는 이야기’ 깃든 슬기꾸러미로 스며들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어른(교사)이 손에 책을 쥐더라도 이와 비슷해요. 어른 또한 사랑을 깨달으려고 책을 펼치지 않습니다. 어른부터 삶을 밝히려고 책을 읽으면서 어른다이 살아가는 꿈을 북돋울 수 있어야 아름다울 텐데, 제도권학교에 길든 어른 가운데 이녁 넋을 곱게 돌보려고 책을 쥐는 이는 너무 적어요. 어쩌면 제도권학교에서 달삯쟁이로 일하면 ‘삶·사랑·꿈’하고는 고개를 돌려야 할는지 모르지요.


  다 다른 아이들은 잠을 자도 다 다르게 잡니다. 몇 분 더 자는 아이가 있고, 몇 분 덜 자는 아이가 있습니다. 밥을 먹건 물을 마시건, 먹고 마시는 부피가 다르고, 먹고 마시는 빠르기가 다릅니다. 풀과 꽃을 쓰다듬을 때에 손끝에서 가슴으로 스미는 느낌이 다르고, 별과 무지개를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요.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사랑·꿈을 찾아 다 다른 책을 손에 쥐면서 다 다른 얼을 빛내야 할 테지만, 제도권학교에 깃들고 나면 ‘모두 같은 책’을 읽으면서 ‘모두 같은 줄거리’를 훑으며 ‘모두 같은 느낌글’을 쓰도록 내몰립니다.


  시 하나를 읽힐 때에 다 다른 아이가 다 같이 느껴야 할까요. 시 하나를 쓸 적에 ‘하늘’이 글감이든 ‘흙’이 글감이든 다 다른 아이가 다 같은 이야기와 모양새로 시를 써야 할까요.


  학교에 다녀야 한다면, 그야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터’인 ‘배움터’에 다녀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 아닌 사랑을 나누는 곳에서 자라고 놀며 살아야 맞습니다. 어른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몫을 할 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씩씩하게 놀며 예쁘게 살아야 맞습니다.


  삶을 누리는 사람만 책을 읽을 줄 압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만 책을 아낄 줄 압니다. 꿈을 빛내는 사람만 책을 쓸 줄 압니다.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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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은행잎 책읽기

 


  창원중앙역에서 기차를 내려 한 시간 남짓 창원시 언저리와 한복판을 걷는다. 처음 창원중악역 둘레를 걷는 동안, 퍽 많구나 싶은 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 숲을 이루어 눈이 확 트이고 가슴이 시원스레 열린다. 나무내음이 물씬 풍기며 알록달록 곱다. 이윽고 나무숲을 지나 시내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높다란 건물과 널따란 찻길과 끝없는 자동차가 물결을 이룬다. 나무그늘 아닌 건물그늘에서 벗어날 무렵 새삼스레 노란 은행잎이 빛나는 조그마한 거님길이 나오고, 5층짜리 나즈막한 아파트가 나온다. 도시에서 숨을 틀 만한 데가 시내 바깥에 살짝살짝 있구나. 도시에서 가장 예쁘다 할 만한 이 노란 은행잎 거님길을 걷는 아이들이 있네. 이 길을 거닐면서 노란 가을내음 가을빛 가을바람 누릴 수 있겠지. 도시에서 배기가스 때문에 은행나무만 심지 말고, 감나무도 심고 능금나무도 심으면, 감나무 우거진 길을 거닐며 감알 발그스름한 싱그러운 빛깔과 내음을 물씬 누릴 테고, 복숭아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으면 봄날 이 길을 거닐 적에 복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진 고운 빛깔과 내음을 듬뿍 누리겠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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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시골집으로

 


  창원 나들이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다섯 시간에 걸쳐 고흥에서 창원으로 가던 길을 거슬러, 다시 다섯 시간에 걸쳐 고흥으로 돌아오는데, 순천에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한 시간 남짓 기다리느라 집으로 오는 길은 더 멀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시골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즐겁다. 순천을 벗어나고 벌교를 지나 고흥 읍내로 접어든다. 고흥 읍내에서 다시 택시로 갈아타서 도화면으로 접어든다. 아주 조용하고 한갓지다. 자동차 불빛은 그예 사라진다. 택시에서 내리며 안경을 낀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까만 밤하늘이 별빛으로 환하다. 달은 뜨지 않는다. 달이 없으니 하늘이 온통 별누리가 된다. 미리내를 보고 온갖 별잔치를 누린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어여쁜가. 얼마나 해맑은가. 얼마나 환한가. 별이 빛나는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하루는 고운 숨결 싱그러이 노래하는 꿈과 같다.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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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다

 


  나는 어느 누구도 닮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닮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 ‘아무개’입니다. 나는 나 ‘아무개’입니다. 서로서로 ‘스스로 붙인 이름’ 한 가지라고만 그릴 수 있습니다. 갈대는 갈대이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감은 감이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하늘은 하늘빛이고 바다는 바다빛이에요. 어느 빛깔이름으로도 하늘이나 바다를 나타내거나 그리지 못합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오직 삶으로 읽고 말하며, 사랑으로 읽고 말하고, 꿈으로 읽고 말합니다. (43451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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