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놀이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씩씩하게 잘 뛰어놀 수 있으니, 큰아이와 서로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다만, 작은아이는 신을 스스로 꿰지 못해 곧잘 맨발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맨발로 돌아다니는 녀석이 어머니 신이나 누나 신을 들고 돌아다니곤 한다.


  벼를 모두 베어 빈 논자락을 둘이 내닫는다. 다칠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자동차가 오가나 무엇이 오가나. 들도 둑도 길도 모두 너희 것이다. 가을바람과 가을햇살을 모두 가지렴. (4345.1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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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섬 내 아이가 읽는 책 10
수에자키 시게키 그림, 나루미야 마스미 글, 이예린 옮김 / 제삼기획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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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과 아이 얼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2] 수에자키 시게키·나루미야 마스미, 《고래섬》(제삼기획,2003)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보는 구름이 언제나 다릅니다. 하늘은 같은 하늘이라 할 텐데, 철마다 구름 생김새가 달라요. 구름이 흐르는 모습도 다르고, 구름이 흐르는 빠르기도 다릅니다. 구름 빛깔도 다르고, 구름이 흐르는 하늘 빛깔 또한 달라요.


  내 얼굴을 헤아려 봅니다. 내 얼굴은 철 따라 어떤 모습이 될까요. 내 얼굴은 날 따라 어떤 빛깔이 될까요. 내 얼굴은 꽃 따라 어떤 무늬가 될까요. 내 얼굴도 햇살에 따라 차츰 달라질까요. 내 얼굴도 바람에 따라 차근차근 바뀔까요. 내 얼굴도 시냇물 노랫소리에 따라 조금씩 거듭날까요.


  아이들을 바라보면 얼굴이 늘 다릅니다. 새근새근 잠들 때부터,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배고프다고 노래할 때, 신나게 밥을 먹을 때, 배불리 먹고는 슬금슬금 바깥으로 몸을 빼며 마당에서 개구지게 놀 때, 들판을 뛰놀 때, 멧길을 오를 때, 바다에서 첨벙첨벙 놀 때, 동무들을 만나서 놀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나서 놀 때, 참말 언제라도 얼굴이 다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웃는 어버이 곁에서 웃는 아이입니다. 찌푸린 어버이 곁에서도 웃으려 하는 아이 모습이지만, 어버이가 내내 찌푸리기만 하면 아이도 어느새 찌푸린 낯으로 바뀝니다. 어버이 스스로 언제나 활짝 웃는 낯이라면, 아이는 언제나 활짝 웃을 뿐 아니라, 둘레에 한결 싱그럽고 푸른 웃음꽃을 베풀어요. 웃음씨앗 심고 웃음나무를 키워요.


.. 별이 아름답게 빛나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잔잔한 파도가 별빛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어요. 노르는 집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10쪽)

 


  초승달이던 달은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됩니다. 다시 반달이 되고 초승달이 되며 그믐달이 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달을 바라봅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밤이면 달이 어디쯤 있나 살폈고, 달 둘레로 어떤 별이 있는가 헤아렸어요. 낮에는 구름을 보고 눈부신 하늘빛을 가늠합니다. 밤에는 달과 별을 보면서 새까만 하늘빛을 그립니다.


  어린 나날부터 으레 길가 풀과 꽃과 나무를 바라봅니다. 심부름을 다니거나 동무들하고 놀거나 어디를 다녀오거나 학교를 오갈 적이나, 으레 풀섶을 바라보고 빈터를 바라봅니다. 관청에서 돈을 들여 한때 심고 그치는 팬지꽃은 썩 내키지 않지만, 풀섶이나 빈터에서 저희끼리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는 제 마음을 끌었어요. 어쩌면, 조그마한 풀섶이나 빈터 들풀이 저를 불렀는지 몰라요. 거님길 돌 틈에서 자라나는 풀과 꽃도 저를 불렀다 할 수 있어요.


  씩씩하게 살아가는 풀과 꽃과 나무는 언제나 저한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었을까요. 땅바닥을 기듯 겨우 줄기를 올리고는, 누운 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들풀은, 도시에서도 이처럼 푸른 빛을 나누어 주었을까요.


  따로 누가 말해 주어서가 아니라, 호젓한 길을 걷거나 시내 한복판 길을 걷거나 풀 자라는 데는 밟을 수 없습니다. 살짝살짝 발을 비키며 걷습니다. 도시에서 조그마한 틈을 타고 자라는 풀이 기운낼 수 있기를 빕니다. 잔디밭이든 풀밭이 있으면 되도록 안 들어가려고 애씁니다. 나들이 온 사람들이 풀밭을 깔고 앉아 풀이 짓눌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저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모든 곳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이는데, 공원 풀밭마저 저렇게 밟아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도시사람으로서는 공원 풀밭을 밟을밖에 없겠지요. 누구라도 마음속에는 풀을 밟고 흙을 밟으며 살고픈 꿈이 있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깨닫든 못 깨닫든, 시멘트바닥에 눕기보다는 풀밭에 누울 적에 한결 상큼하고 시원하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나무걸상에 드러누우면 등뿐 아니라 몸이 시원하겠지요. 숲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드러누울 적에도 몸이 시원하겠지요.


  숲속 풀밭은 이부자리입니다. 드러누워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은 지붕입니다. 아, 눈이 부시구나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감은 눈 위로 구름이 하얗게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눈을 감으니 귀가 살그마니 열립니다. 바람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물결 사이사이 어떤 바람이 흐르는가를 읽습니다. 시골에서는 고즈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멧새 날갯짓과 노랫마디를 읽습니다.

 

 


.. 노로는 좀더 가까이 가서 꽃들을 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자기의 커다란 몸이 꽃이나 나무에 상처라도 주면 큰일이었으니까요. 노로는 아름다운 섬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  (30쪽)


  색색 소리를 내며 자는 아이는 어여쁩니다. 다독다독 재우고 나서 귀를 살며시 아이 가슴에 댑니다. 콩콩콩콩 뛰는 숨결을 느낍니다. 나도 아이 곁에 눕습니다. 내 손을 내 가슴에 댑니다. 내 숨결은 어떠한가 느껴 봅니다. 아이 곁에 나란히 누워 숨결을 느끼는 내 얼굴도 아이와 같이 어여쁠 테지요. 한낮에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듯 평상에 드러누울 적에도,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가득 들으며 내 얼굴이 환할 테지요.


  꿈을 꿀 적에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꿈을 키울 적에는 맑게 빛나는 얼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누리고 꿈을 즐길 적에는 해사한 얼굴이 되리라 느껴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운 얼굴이 됩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예쁜 얼굴이 됩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누구나 귀여운 얼굴이 됩니다.


  어른도 귀엽고 아이도 귀엽습니다. 할머니도 예쁘고 아기도 예쁩니다. 어린이도 곱고 푸름이도 곱습니다. 삶결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이에요. 삶무늬에 따라 새로워지는 얼굴이에요.


.. ‘아, 다행이야.’ 노로는 생각했어요. 따뜻한 햇볕 속에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몸이 둥둥 떠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노로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  (43쪽)

 


  수에자키 시게키 님 그림이랑 나루미야 마스미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고래섬》(제삼기획,2003)을 읽습니다. 스스로 섬이 된 커다란 고래는 어릴 적부터 다른 고래들과 즐거이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고래는 어릴 적부터 어른 고래보다 덩치가 훨씬 큽니다. 큰 덩치라서 동무 고래가 자꾸 따돌리고 괴롭힙니다. 덩치 커다란 어린 고래는 어린 고래답게 신나게 헤엄치지 못하고 물살을 가르지 못합니다. 웃는 얼굴이 되지도 못하고 우는 얼굴도 되지 못합니다. 웃을 만한 일이 없고, 울고파도 눈물이 커다란 물줄기처럼 퍼질까 걱정스러워 울지도 못해요.


  슬픔을 삼키며 무리에서 떨어집니다. 홀로 기나긴 마실을 떠납니다. 슬픔을 씻고 기쁨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섭니다. 눈물 아닌 웃음으로 살아갈 터를 스스로 바라고 꿈꾸며 빕니다.


  그렇지만, 고래한테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동무가 없습니다. 덩치가 우람한 고래하고 사이좋게 동무로 지내려는 이가 없습니다. 커다란 덩치만 보고는 지레 두렵게 여기거나 꺼리거나 쫓아내려 합니다. 커다란 고래는 이곳에도 머물지 못하고 저곳에도 깃들지 못해요.


.. 해님이 바다 저편으로 돌아갈 무렵, 깜짝 놀랄 일이 생겼어요. 노로의 몸에서 새싹 하나가 쑤―욱 자라 나온 거예요. 동물들이 ‘어머나!’ 하고 놀라는 동안 새싹은 꽃봉오리가 되더니, 금세 두둥실 작고 하얀 꽃으로 피어났어요 ..  (44쪽)

 

 


  집에서 아이들이랑 노래를 부를 적에 〈빨간머리 앤〉을 곧잘 함께 부릅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노랫말 가운데에는 “상냥하고 귀여운 빨간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하는 대목이 있어요. 다른 사람 얼굴에 대면 예쁘지 않다지만, 앤 매무새나 모습은 사랑스럽다고 해요. 그림책 《고래섬》에 나오는 덩치 큰 고래도 이와 같으리라 느껴요. 바다동무는 모두 큰 고래를 얼핏 보며 무섭다거나 꺼림칙하다거니 하며 손사래를 칠 뿐, 고래가 어떤 마음인지를 읽거나 느끼거나 함께하려고는 안 해요. 고래가 마음속으로 무얼 바라거나 비는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은 스스로 꿈을 꾸고 스스로 이룹니다. 그림책 《고래섬》에서 고래 또한 스스로 꿈을 꾸고 스스로 이룹니다. 모두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스스로 어여쁜 꽃송이를 품고픈 꿈을 천천히 이룹니다. 커다란 ‘고래 덩치’는 바다에 둥실 남깁니다. 커다란 덩치는 시나브로 섬이 됩니다. 커다란 고래 몸뚱이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고래는 넋으로 살아가고 몸뚱이는 꽃섬으로 남습니다.


  가장 해맑은 얼굴이 되어 고이 잠듭니다. 가장 빛나는 얼굴이 되어 새근새근 꿈꿉니다. 고래는 저 스스로 무엇으로 바뀌었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오래오래 잠듭니다. 그예 끝없이 잠들면서 더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요. 이제 고래한테는 사랑과 믿음과 꿈이 가득합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 이 땅덩이도, 곰곰이 알고 보면 어떤 고래 한 마리가 바뀐 터일 수 있어요. 우리들은 아주 커다랗고 커다란 고래 등판에 숲을 이루고 집을 지으며 오순도순 살림꽃을 피울는지 모릅니다. (4345.11.9.쇠.ㅎㄲㅅㄱ)

 


― 고래섬 (수에자키 시게키 그림,나루미야 마스미 글,이예린 옮김,제삼기획 펴냄,2003.7.25./85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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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 짓는 애틋한 틀
 (312) 옮겨심기

 

4월은 싹이 나는 달일 뿐만 아니라 이식(移植)하는 달이기도 하다 …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바라는 대로 곧 옮겨 심는 시기가 된다
《카렐 차페크/홍유선 옮김-원예가의 열두 달》(맑은소리,2002) 71, 99쪽

 

  ‘번역(飜譯)’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을 뜻합니다. 곧, 한국말은 ‘옮기다’요 한자말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로는 ‘飜譯’인 셈입니다. 한글로 ‘번역’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는 않아요. 그러나, ‘옮김꾼’ 같은 이름은 거의 안 쓰입니다. ‘번역가’라는 이름만 쓰입니다. 책을 살피면 간기에 ‘옮긴이’라고 적습니다만, 이 이름처럼 바깥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분들 스스로 이녁 일을 ‘옮긴이-옮김꾼’처럼 밝히는 분은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다시피 해요.


  국어사전에서 ‘이식(移植)’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뜻풀이에 “= 옮겨심기. ‘옮겨심기’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곧, ‘이식’이든 ‘移植’이든 한국사람한테는 알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옮겨심기’ 한 가지라는 소리입니다.

 

 옮겨살다 ← 이사(移徙)
 옮겨가다 ← 이전(移轉)
 옮겨적다(옮기다) ← 번역

 

  옮겨서 살고, 옮겨서 가며, 옮겨서 씁니다. 옮겨서 적고, 옮겨서 다니며, 옮겨서 말합니다. 생각해 보니, ‘통역(通譯)’이란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줌”을 뜻한다 하니, 이 한자말을 ‘옮겨말하다’처럼 새롭게 쓸 수 있어요. 한 낱말로 새롭게 쓰기 아직 낯설다면 ‘옮겨 말하다’처럼 써도 돼요. 스스로 익숙하게 쓰고, 스스로 밝게 쓰며, 스스로 즐겁게 쓰면, 차츰차츰 환하게 빛나는 낱말이 되리라 느껴요. (4345.1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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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개기

 


  오늘은 어쩐지 빨래를 개기 싫은 날. 큰아이더러 빨래를 갤 수 있겠니 하고 물어 본다. 큰아이는 다른 놀이를 하다가 척척 하나씩 갠다. 예쁘게 잘 개는구나. 그동안 손놀림이 많이 늘었구나. 이렇게 무럭무럭 크면서 네 자리를 찾겠지. (4345.1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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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8 19:13   좋아요 0 | URL
아이에겐 모든 것이 재밌는 놀이가 아닐까요?

숲노래 2012-11-08 20:05   좋아요 0 | URL
네, 재미나고 즐겁고 사랑스러운 놀이일 테지요~~
 

비오는 날

 


비오는 날
달리는 자전거는
상큼하다.

 

비오는 날
비비고 짜는 빨래는
축축하다.

 

비오는 날
짭짤히 끓인 미역국은
따뜻하다.

 

비오는 날
방바닥에 불을 넣으면
식구들 모두
이불을 뒤집어쓰며
오붓하다.

 


4345.9.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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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8 19:11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시를 흉내 내어 쓰고 싶어지네요. 멋져요.
비가 들어간 시는 왜 저는 다 좋아할까요. ^^

숲노래 2012-11-08 20:05   좋아요 0 | URL
그러면 오늘부터 즐겁게 쓰셔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