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어버이일 뿐,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진보라서 젖을 물리고 보수라서 가루젖을 먹일까요. 어버이는 늘 사랑을 먹입니다.


  빨래하는 나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나는 기계 안 쓰고 손으로 빨래한 지 열아홉 해째인데, 나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나는 그저 빨래하는 살림꾼일 뿐입니다. 식구들 옷을 아끼고 보듬으려는 아버지일 뿐입니다. 기계빨래를 하는 사람은 보수일까요, 진보일까요?


  삶을 즐겁게 짓고 사랑스레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삶을 빛낼 때에 그야말로 환히 빛나는 사람일 뿐, 진보이기에 빛나거나 보수이기에 어둡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사람을 가르거나 금그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무개가 진보이면 어떻고, 저무개가 보수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저 들판 나락은 진보도 먹고 보수도 먹습니다. 유기농 곡식이든 화학농 과일이든, 진보와 보수 똑같이 누구나 먹습니다.


  숲이 뿜는 푸른 바람과 햇살이 드리우는 따순 햇살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지 않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비도 눈도 모두 사람이나 짐승이나 푸나무를 가르지 않습니다.


  금을 그을 때에는 바로 이때부터 사랑과 믿음과 꿈을 잃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람을 금긋지 않으려 하는 당신이라면, 정규·비정규직으로 사람을 가를 생각이 없는 당신이라면, 진보도 보수도 아닌 ‘한 사람’이 되길 빕니다. (4345.1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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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2-11-09 19: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서재에 처음 글 남깁니다^^ 삶을 즐겁게 짓고 사랑스레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라 느껴집니다. 라는 구절이 정말 좋습니다..
그렇지만, 보수형 인간과 진보형 인간은 성향이 분명 나뉘어지고 있는 거 같아요. 글쎄요, 제대로 된 '보수'의 의미라면 또 모르겠지만..우리 나라에선 협애한 울타리의 이익만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 분들이 '보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거 같습니다만..

숲노래 2012-11-09 20:13   좋아요 0 | URL
'진보'와 '보수'가 무엇일는지 잘 생각해 보셔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에 '어느 정당 누구'를 찍느냐로 진보와 보수를 가를 수 있을까요?

삶을 어떻게 누리는가를 바라볼 때에는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가를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적에는 '새누리당 사람을 안 뽑는다'고 하지만, 막상 집에서 아무 집일을 안 하고 남성 가부장 권력을 누리는 사람을 두고도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요리도 빨래도 육아도 하지 못하는 '진보정치인'들이나 '진보지식인'도 참말 '진보'라는 이름이 걸맞을까요? 스스로 농사지을 줄 모를 뿐 아니라, 손에 흙이나 물을 안 묻히고 자가용을 모는 도시사람도 진보라고 해야 할까요?

참말 진보란 무엇일까요. '협애한 울타리의 이익'이라고 하지만, 그 '협애한 울타리의 이익'을 그분(보수)들이 제대로 알고나 그 울타리 이익을 붙잡을지도 생각해 볼 일이에요. 진보도 보수도 실질로 보면, 모두 헛꿈이거나 모래알조차도 안 되지 싶습니다.

jeandemian 2012-11-10 15:33   좋아요 0 | URL
칼로 두동강 낼듯이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그런 경우엔 진보라 이름붙일수도 제대로 된 앎도 아니겠지요. 아는것과 행동사이에도 의지와 체화라는 깊은 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2-11-10 20:21   좋아요 0 | URL
언론이나 여러 곳에서 '진보-보수 논쟁'을 만들어 자꾸 퍼뜨리는 까닭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런 논쟁에 휩쓸리면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가꾸고 사랑할까' 하는 생각에서 멀어지거든요.

이런 논쟁에 휩쓸리면서 '네 편 내 편 나누기'에 길들어져요. 그래서, 누구보다 진보 쪽이라 하는 사람들이 '분열'이 많이 생기는 까닭이, 스스로 논쟁을 해야 발전을 이룬다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에요.

논쟁이 아니라 '이야기'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삶을 일구어야 진보이든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어요. 곧, 내 삶부터 바꾸지 않고 논쟁만 해 본들, 아무 얻는 것 없고 달라질 것 없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니 하고 따져서 뭐 하겠어요. 내가 내 삶을 '옳고' 아름답게 가꾸면 될 뿐인걸요. (방관자 소리가 아니라, 주체자 소리인데, 이를 잘 알아들으실 수 있기를 빕니다)
 


 ‘쌍용’ 이야기를 쓰면 진보인가?

 


  ㅈㅈㄷ신문도 ‘쌍용’ 이야기를 노동자 눈높이에서 쓸 수 있다. 그러면 ㅈㅈㄷ신문 기자는 진보인가? ㅇㅁㅂ 대통령은 ㅈㅈㄷ신문에서도 까거나 헐뜯거나 나무랄 수 있다. 그러면 ㅈㅈㄷ신문 기자는 진보인가? ㅇㅁㅂ 대통령을 손가락질한대서 진보가 될 수 없다. 옛 독재자를 꾸짖는대서 진보가 될 수 없다. ‘쌍용’ 이야기를 글로 쓴 사람은, “쌍용 이야기를 글로 썼을” 뿐이다. ㅇㅁㅂ 대통령을 손가락질한 사람은, “ㅇㅁㅂ 대통령을 손가락질했을” 뿐이다. 옛 독재자를 꾸짖은 사람은, “옛 독재자를 꾸짖었을” 뿐이다.


  이른바 ‘프레임 선점 논쟁’이라든지 ‘진보 논쟁’이란 모두 덧없다. 진보란 ‘목소리 내기’가 아니요, ‘네 편 내 편 금긋기’가 아니다. 스스로 삶을 아름답고 사랑스레 북돋우면서 올바르고 슬기롭게 가다듬는 모습이 곧 ‘진보’이다. 진보는 목소리가 아닌 삶이다. 보수 또한 목소리가 아닌 삶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을 튼튼히 건사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나아가려고 한다. 한 사람 몸은 보수와 진보가 얼크러지면서 씩씩하거나 튼튼할 수 있다. 한 사람 마음은 진보와 보수가 어우러지면서 예쁘거나 아름다울 수 있다.


  북녘땅에서 굶주리다가 남녘땅으로 어렵사리 건너온 사람을 돕는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오직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동냥그릇을 들고 우리 집에 동냥을 한다 할 적에, 이이한테 “여보게, 당신 진보요? 보수요?” 하고 물을 까닭이 없다. 동냥하는 이가 굶지 않도록 밥술 나누어 주면 된다.


  꽃은 꽃일 뿐, 진보 꽃도 보수 꽃도 없다. 꽃 이야기를 쓰면 되지, 진보 눈길로 바라보거나 보수 눈썰미로 들여다볼 까닭이 없다. 삶을 쓸 수 있을 때에 삶쓰기가 되면서 삶을 빛낸다. 삶을 쓰지 못할 적에는 겉치레나 껍데기로 진보인 척할는지 모르나, 껍데기 진보나 겉치레 진보는 머잖아 시들시들 사라지고 만다.


  ‘쌍용’ 이야기를 다룬 책은 진보 목소리인가? ‘삼성 반도체’ 이야기를 다룬 책은 진보 목소리인가? 진보도 보수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쌍용’ 이야기를 다룬 책 가운데 하나요, ‘삼성 반도체’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 가운데 하나이다. 제대로 쓴 책은 제대로 쓴 책이고, 겉만 훑는 책은 겉만 훑는 책이다. ‘줄거리(소재)’가 노동자 이야기라서 더 아름다울 까닭이 없다. 줄거리만 가난하거나 여린 이 삶을 다룬대서 더 읽혀야 하지는 않다. (4345.1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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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님의 "진보의 안티공지영, 어떻게 봐야 할까?"

 

 

공지영 작가가 '진보 편'인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공지영 작가 스스로 '나는 진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 쪽'이 될 수는 없어요. 스스로 삶이 진보이면 누가 금을 긋지 않아도 진보일 테니까요.

 

하종강 님은 언제나 '노동운동'만 하고, 노동운동을 글로 쓸 때에도 '인터뷰 받는 사람'과 하나하나 주고받고 살피면서 책이나 기사로 내놓습니다. '원문 왜곡이나 훼손'을 하지 않아요.

 

마태우스 님도 본질하고는 다른 쪽을 바라보시는 듯한데, 어느 쪽을 바라보든 저마다 자유예요. 그런데 이번에 <의자놀이>라는 책에서 하종강 님을 비롯해 노동 쪽 사람들이 공지영 작가를 비판하는 까닭은 바로 '원문 왜곡과 훼손'이에요.

 

책을 많이 팔아서 몇 억에 이르는 돈을 기부해 준다 해서 '노동운동'이 이루어질까요? 그러면 다른 사업장과 파업현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어떤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노동운동을 돕는다든지, 이를테면 농민운동을 돕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시골 농사꾼하고 직거래로 유기농 곡식을 사 주면, '도시사람으로서 농민운동을 함께 하는' 셈이 될까요? 유기농 곡식이기에 못생기거나 자그맣거나 벌레먹은 것도 '제값을 치르며 기꺼이 맛나게' 먹을 뿐 아니라, 틈틈이 '농활'을 가서 농사짓기와 거름내기를 비롯한 모든 시골살이를 하나하나 몸으로 겪으면서 '농민운동'이나 '농민돕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쌍용 문제는 공지영 작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기록했어요. '공지영 작가가 선정'된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작가가 이것을 쓰자'고 했을 뿐이에요.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이것을 글로 쓰자'고 한 대목을 높이 사는 일이란 개인 자유이지만, '쌍용 노동자'나 '노동운동 기록하던 사람'들은 공지영 작가더러 이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마태우스 님이 궁금해 하는 것은 마태우스 님 스스로 찾아서 풀면 돼요. 그러나, 본질과 얽힌 대목은 옳고 바르게 바라볼 줄 안다면, 스스로 궁금함을 풀어야 한다고 느껴요. 본질을 옳고 바르게 바라보지 않고서 어떤 궁금함을 풀 수 있을까요?

 

개인 취향으로 공지영 작가를 좋아하든 말든, 본질과 사실과 거짓을 옳고 바르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어떠한 문제도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진보 쪽에 있다는 사람들이 공지영 작가를 달가이 여기지 않는 수수께끼' 또한 풀 길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102160558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참과 거짓'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짚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17171522
(덧붙여 이러한 글도 있으니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본질'을 읽지 않으시는 분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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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들 유채꽃 책읽기

 


  가을들 사이를 아이와 함께 지나가다가 노란 꽃송이를 본다. 유채꽃일까 갓꽃일까. 잎사귀를 보면 푸르다가도 살짝 까맣게 올라오려는 모습인데, 갓잎은 훨씬 넓게 까만 빛이 올라오니까 갓잎은 아닐 듯한데, 그러면 유채일까 궁금하다. 또는 유채를 닮은 다른 풀은 아닐까 알쏭달쏭하다. 논둑에 다른 풀은 거의 나지 않았고, 다들 추위에 하나둘 스러지는데, 오직 이 녀석만 푸른잎을 달고 꽃송이까지 노랗게 피운다. 며칠 따스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일까. 가을에도 퍽 따스한 남녘 날씨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네 이름이 유채꽃이든 갓꽃이든 다른 풀꽃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나는 네 잎을 뜯어서 맛나게 먹으면 즐겁다. 네 노란 꽃송이를 가을날 반가이 맞이하며 예쁘게 들여다보면 즐겁다. 봄에 만날 꽃을 가을에 먼저 만나니, 이러한 삶은 이러한 삶대로 즐겁다.


  아이하고 한참 노란 꽃을 구경하다가 곰곰이 돌이켜본다. 마을마다 가을걷이를 마친 다음에는 ‘경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빈논에 유채씨를 잔뜩 뿌리곤 한다. 유채는 씩씩하게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뜨린다. 이 씨앗이 바람 따라 곳곳에 흩날리면서 논둑에도 뿌리를 내려 이 가을에 새삼스레 피어날 만하리라 느낀다.


  봄볕을 받아도 푸르며 노랗게 빛나고, 가을볕을 받아도 푸르며 노랗게 빛나는구나. 봄에도 가을에도 따순 사랑과 같이 햇살이 드리우니 언제나 즐거울 테지. 내 마음속 빛줄기는 이 가을에 어떠한 무늬와 모습으로 따사로운 꿈길이 될 수 있을까. (4345.1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꽃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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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을 깊이 살피고 헤아리면서 아인슈타인 님 책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그런데, 정작 아인슈타인 님이 쓴 책은 알라딘에서 18권이 뜨는데, 아인슈타인 이름을 빌어 나온 책은 자그마치 3800권 즈음 뜬다. 참 뜬금없구나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적은 풀이를 읽기보다는 아인슈타인 님이 손수 쓴 책을 읽으면 될 노릇 아닌가.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나의 노년의 기록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이종철 옮김 / 지훈 / 2005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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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보른 서한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외 지음, 박인순 옮김 / 범양사 / 2007년 4월
23,000원 → 23,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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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명언- 나는 다시 태어나면 배관공이 되고 싶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김대웅 옮김 / 보누스 / 2009년 3월
6,900원 → 6,210원(1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2012년 11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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