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누리신문(인터넷신문)’에 글을 쓰다

 


  ‘시골 누리신문’에 글을 쓴다. 이제 이레쯤 되었다. 따로 어느 신문이나 잡지나 사외보에 글을 써 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 스스로 좋아하면서 글을 쓴다. 내 누리집에 올려서 내가 읽고 즐기면 되기에, 굳이 이곳저곳에 글을 보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나한테 따로 글을 써 달라고 얘기하는 곳에만 거의 자원봉사와 같이 글을 써서 보냈다.


  몇몇 ‘서울 누리신문’에 글을 써서 보내면, 글삯을 받을 수 있다. 내 이름도 여러모로 널리 알려질 만하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누리신문’에 글을 써 보았는데, 누리신문이라 하더라도 밑뿌리가 서울이라면 으레 서울 이야기만 다룬다고 깊이 느꼈다. 더욱이, 서울에서도 누리신문 도움돈이나 광고를 대 줄 만한 정치나 경제나 큰 시민단체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꼈다. 작고 작으며 작은 사람들 이야기는 ‘서울 누리신문’에서는 다룰 수 없는 대목이로구나 하고 느꼈다. 진보를 말하는 종이신문이나 누리신문도 이 틀에서는 거의 다르지 않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중도이든, 다들 정치 이야기만 다루려 할 뿐, 작고 작으며 작은 사람들 알콩달콩 사랑꽃 피어나는 이야기는 다루려 하지 않는다. 아니, 다룰 수 없다고 해야 옳지 싶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는 종이신문이나 누리신문 일꾼은 스스로 ‘작고 작으며 작은’ 사람이 아니니까. 크고 크며 큰 이야기에 눈길을 두면서 스스로 크고 크며 큰 자리로 올라서고픈 생각을 하니까.


  나는 아직 ‘작고 작으며 작은 사람들 살아가는 작은 마을’에서 작고 작으며 작게 살림을 꾸리면서 기자로 일하는 사람을 못 본다. 글을 쓰는 이 가운데에는 크고 크며 큰 마을을 떠나거나 크고 크며 큰 서울을 떠나는 이가 가끔 있지만, 기자나 지식인이나 교수나 학자 가운데에는 크고 크며 큰 서울이나 도시를 떠나는 이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다. 어쩌면 어쩔 수 없겠지. 기자가 일할 곳, 교수가 일할 곳, 지식인이 일할 곳은 온통 서울이나 커다란 도시에 있으니까. 시골에는 기자나 교수나 지식인이 일할 곳이 없다고 여길는지 모르니까.


  책이란 무엇일까. 신문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어떠한 사랑이 될까. 시골마을 사람들과 오순도순 나누려고 글을 쓰면서 신문을 엮거나 책을 내놓는 사람은 이 나라에 몇쯤 있을까. 나는 ‘시골 누리신문’에 글을 보내기로 하면서, 내 둘레 작고 작으며 작은 이웃들이랑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가이 지내는 꿈을 꾼다.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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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꿉놀이 1

 


  안동 편해문 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나무소꿉’은 두 아이가 언제나 잘 갖고 노는 소꿉놀이가 된다. 다만, 두 아이는 소꿉놀이를 흐드러지게 즐긴 다음 아무렇게나 팽개친다. 하나하나 찾아서 갈무리하는 몫은 늘 아버지가 맡는다. 아직 두 아이가 제대로 갈무리하기는 어려울는지 모르나, 밥상 밑이든 책상 뒤이든 숨겨 놓는 녀석은 동생이다. 누나는 예쁘게 놀고 예쁘게 건사할 줄 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도 문득 소꿉놀이를 하곤 한다. 조그마한 나무칼로 곤약을 퍽 예쁘장하게 썬다. 그나저나, 네가 썰었으면 네가 먹어야지, 그렇게 담기만 하고 내버려 두니?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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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아이]라는 게시판을 새로 연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다가

틈틈이 '놀이 사진'만으로도

이야기를 갈무리하겠다 싶어

이제 비로소 게시판을 열어 본다.

 

그동안 찍은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을

하나하나 갈무리하기란 힘들지만,

오늘부터 새 놀이를 새롭게

담고 누리면 되리라 생각한다.

 

아픈 두 돼지들아,

얼른 둘 다 나아서

새 아침에

또 새 놀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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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냥놀이

 


  어머니가 쓰는 성냥을 하나둘 슬쩍슬쩍 평상으로 가져가더니, 다섯 살 큰아이 사름벼리가 ‘성냥으로 이름 그리기’ 놀이를 한다. 그래, 너 사름벼리는 이름에 ‘ㅇ’이 없으니 성냥으로 이름을 그릴 수 있구나. 네 동생도 이름에 ‘ㅇ’이 없어. 그런데, 너 “사름벼리”만 성냥으로 그리면 되지, “사름벼리ㅋ”는 뭐니. ‘ㅋ’라고 붙이는 그림말은 어디에서 배웠니. 무슨 뜻인 줄 알기나 하고 붙이니.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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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안고서

 


  아이들을 안고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글쎄’라는 낱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글쎄’라는 말이 아니고는 무슨 말을 할 만한가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안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참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이들을 안든 업든 스스로 아무것이나 다 하며 살아간다면, 굳이 이것저것 생각할 까닭 없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안고 밥을 한다. 아이들을 안고 밥을 차리며, 아이들을 안고 밥을 먹인다. 아이들을 안고 똥기저귀를 빨다가는, 아이들을 안고 살살 달래며 자장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을 안고 그림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을 안고 내가 읽고픈 책을 읽기도 한다. 아이들을 안고 글을 쓴다. 아이들을 안고 전화를 안다. 아이들을 안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걷고 갠다. 아이들을 안고 대문까지 나가서 택배를 받는다. 아이들을 안고 응가를 누며, 아이들을 안고 밤하늘 별을 바라본다.


  아이들을 안고, 아니 아이들을 안기 앞서 큰가방 여럿을 메고 지고 걸면서 아이들을 안는다. 얼추 삼사십 킬로그램쯤 되는 짐을 짊어진 채 아이들을 안고 마실을 다닌다. 아이들을 안고 저잣거리 마실을 한다. 아이들을 안고 군내버스에 탄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린다. 아이들을 안고 멧길을 오르내린다. 글쎄, 아이들을 안고서 못할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프면 아이들을 안고 마시면 된다. 다만, 아이들을 안고서 지내고 보면, 굳이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이들을 안고서 풀을 뜯을 만하고, 아이들을 안고서 꽃송이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면 즐겁다.


  이 밤에 큰아이 토닥이며 얼른 아픈 몸 나으라고 빌다가,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서 너도 얼른 나아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 씩씩하게 놀렴, 하고 속삭인다.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빨래순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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