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도서인데 이 사진책은 살 수 없구나. 살 길이 없을까. 슬프네. 헬렌 레빗 사진책을 한국에서 구경할 길이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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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de Show: The Color Photographs of Helen Levitt (Hardcover)
Helen Levitt / Power House Books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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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and There (Hardcover)
Helen Levitt / Power House 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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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벽 3 - 변화의 물결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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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서울로만 보내는 어른들
[시골사람 책읽기 004] 이시카와 다쓰조, 《인간의 벽 (3)》(양철북,2011)

 


  이원수 님이 쓴 동시 〈자두〉를 읽으면 “자두밭에 가면 달큼한 자두 냄새” 하고 첫머리를 엽니다. 더없이 마땅한 소리이지만, 이 마땅한 소리를 어린이시로든 어른시로든 쓰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자두밭에 가니 자두 냄새가 날 텐데, 이 마땅한 이야기를 시로도 소설로도 쓰지 못해요.


  겨울날 멸치를 말리는 바닷마을에 간다면 멸치 냄새가 널리 퍼지겠지요. 가을날 나락을 베어 말리는 시골마을 고샅에 서면 나락 냄새가 골고루 퍼질 테고요. 그런데, 멸치나 나락에서 풍기는 고소하며 흐뭇한 냄새를 노래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아주 드뭅니다. 멸치나 나락 냄새를 노래하는 가수는 몇이나 될까요. 아니, 있기나 할까요.


  아이들과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서 지내면 아이들 목소리를 스물네 시간 듣습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하노라면, 아이들 살내음을 스물네 시간 맡습니다. 이원수 님이 〈자두〉라는 동시를 써서 “자두 냄새”를 노랬다면, 나는 ‘아이’라는 동시를 써서 “아이 냄새”를 노래할 만합니다. 참말, 아이들 자장노래를 부르는 깊은 밤에 “착한 아이 예쁜 아이” 소리를 끝없이 되풀이합니다.


  2012년에 다섯 살 두 살인 아이들은 2013년을 맞이하면 여섯 살 세 살이 됩니다. 큰아이는 이제껏 보육원이건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안 다닙니다. 어버이 두 사람이 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기고 싶지 않으니 안 보냅니다. 아이들이 받아야 할 것이라면 ‘교육’과 ‘훈육’이 아닌 ‘사랑’과 ‘믿음’이라고 느껴요. 아이들은 ‘영양’을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 담긴 ‘밥’을 먹어요.


  참 많은 어버이들은 아이들한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베푼다면서 서울로 가려 합니다. 서울로 가면, 서울에서도 강아랫마을로 가려 합니다. 또 강아랫마을에서도 어느 학군에 들어가려고 용을 씁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모여 지나치게 시끌벅적한 서울에서 지내는 어버이와 아이는 즐거울까요? 한 해에 거의 천만 원쯤 들여 유치원에 보내는 서울마을 어버이는 즐거운 ‘교육’을 아이한테 베풀까요? ‘더 나은 교육 환경’이라는 데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서울마을 아이는 즐거운 ‘삶’을 누릴까요?


.. 점수가 떨어졌으면 떨어진 만큼 성적으로 환산해 버리면 되는 것인지, 또 점수보다는 더 실력이 있었을 텐데 점수가 안 나온 학생에게 오직 점수만으로 성적을 평가해도 괜찮은 것인지 …… 성적표를 받고 나서 성적이 떨어진 아이와 그 부모들이 실망할 것을 생각하면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크나큰 죄악처럼 생각된다. 한 아이의 지식과 재능, 성격, 품행을 두고 ‘너는 이만큼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다.’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불순한 행위가 허용되어도 괜찮을 것일까 ..  (3권 25쪽)


  나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맹자 어머니’를 배웠습니다. 흔히 어려운 한자말로 ‘맹모삼천지교’라 읊지만, 나는 그저 ‘맹자 엄마 얘기’로 떠올립니다. 맹자를 낳아 돌본 어머니는 ‘아이가 지내기에 가장 좋은 터’를 찾아 집을 옮깁니다. 세 차례 옮긴다지요.


  맹자 어머니는 어디에 집을 마련할까요. 맹자 어머니는 어떠한 곳이 가장 좋은 터라고 여길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은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옵’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생태를 맛보’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적어도 주말이면 공원에라도 가려고 애를 씁니다. 동물원을 찾아가 동물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아이들이 미치’고 말리라 생각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는 틈틈이 ‘시골마을 숲’으로 찾아가서 한숨을 돌리며 맑고 푸른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는지 몰라요.


  거꾸로 시골마을 삶을 떠올려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골에서 지내며 숨이 막혀 죽을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시골에서 지내며 답답하거나 갑갑해서 미칠까요?


.. 부모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내 자식만 안전하게 교육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콩나물 교실도 고통스럽지 않다. 교사가 부족해 선생들이 과로로 결핵에 걸려도 어머니들은 관심이 없다. 글쓰기 대회는 1년에 한 번뿐이지만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는 것을 어머니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근본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교사들의 투쟁에는 ‘선생들이 학교를 쉬고 파업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린다 ..  (3권 237쪽)


  오늘날 한국을 살펴보면, 어느 시골마을이든 지자체에서 ‘아이들한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베푼다고 하면서 하는 일이란 고작 ‘서울에서 이름난 학원 강사를 큰돈 들여 부른 다음 입시공부 시키는 짓’에서 머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시험성적 잘 나온 몇몇 아이들을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 같은 데로 영어 연수 보내 주기’쯤 해 줍니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시골아이가 시골아이답지 않게 크도록 밀어붙이는 꼴입니다. 시골아이가 도시아이로 바뀌도록 닦달하는 꼴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기쁨과 보람과 재미를 잃어버리도록 내모는 꼴입니다.


  도시아이들은 바다도 모르고 숲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갯벌도 모르고 들판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나락도 모르고 마늘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바지락도 모르고 갑오징어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쭈꾸미도 모르고 전어도 모릅니다.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무엇을 알까요.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무엇을 누리는가요. 고흥에서 나고 자라며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가요. 시골마을 고흥에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분은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가르치는가요.


  서울에서 고흥으로 찾아온 도시내기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가릴 줄 모릅니다. 그런데, 고흥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가릴 줄 아는지 궁금해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와 유자나무와 탱자나무와 석류나무와 매화나무 앞에 서서, 앙상한 나뭇줄기만 보면서도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 줄 알아볼 고흥아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해요. 아니, 아이에 앞서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고흥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은 ‘겨울날 앙상한 나뭇줄기’를 살살 어루만지며 ‘너 참 씩씩하게 겨울을 잘 나는구나.’ 하고 노래할 수 있는지요.


.. 민들레의 흰 씨가 날아간다. 도랑에서 송사리가 헤엄친다. 황매화 나무의 노란꽃, 보랏빛을 띤 제비꽃. 보수파도 없고 개혁파도 없다. 소란을 떠는 이들은 어른뿐이다. 아이들 세계에는 일교조도 없고 문부성도 없다 ..  (3권 426쪽)


  일본사람 이시카와 다쓰조 님은 195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를 《인간의 벽》이라는 소설책 세 권으로 갈무리했습니다. 관료주의에 물들고 찌든 교육부(문부성)에서 아이들을 오직 숫자(성적)로만 옭아매며 바보처럼 길들이려 하는 모습을 《인간의 벽》 세 권을 읽으며 하나하나 느낍니다. 그런데, 195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라고 하나, 어째 1990년대 한국 교육밭하고 똑같으며 2010년대 한국 교육밭하고도 똑같습니다. 앞으로 2030년대나 2050년대 한국 교육밭은 어떻게 될는지요. 아니, 2030년쯤 되면 시골마을 고흥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한 군데라도 남아날까 궁금합니다. 2020년만 되어도 고흥군 면소재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몽땅 문을 닫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죄 서울로만 보내려는 교육정책인걸요. 허울로는 ‘지붕없는 미술관’이지만, 막상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고흥이 얼마나 ‘지붕없는 미술관’인 줄 못 느끼는걸요. 기숙사에 틀어박혀 시험공부만 하느라 바쁜걸요. ‘지붕없는 미술관’을 누리거나 돌아볼 겨를이 없는걸요. 주말에는 ‘서울에서 찾아온 입시학원 강사’한테서 ‘대학입시 특강’을 받느라 부산한걸요.


  고흥아이는 서울아이가 되어야 아름다울까요. 고흥아이는 고흥아이로 살아가면 불쌍하거나 안쓰러운가요. 숲이 아름다운 고흥에 ‘숲학교’가 없어요. 바다가 예쁜 고흥에 ‘바다학교’가 없어요. 들이 어여쁜 고흥에 ‘들학교’가 없어요. 온통 입시학교만 있고 방과후교실만 있으며 입시특강만 판쳐요. 고흥아이는 어디에서 숨을 쉬면서 숨통을 틀어야 할까요. 고흥아이는 푸른 숨결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요. (4345.11.19.달.ㅎㄲㅅㄱ)

 


― 인간의 벽 1∼3 (이시카와 다쓰조 씀,김욱 옮김,양철북 펴냄,2011.3.30./권마다 14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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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1 : 허물을 쓰는 책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이 일군 책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를 읽으면 첫머리에 “도서관 건축을 먼저 읽어냈다. 그런데, 그렇게 도서관 탐방을 하다 보니, 탐방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막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도서관의 장점보다는 허물을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게 될 것 같았다(13쪽).”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건축일을 하는 두 사람이 도서관을 즐겁게 찾아다니다가 문득 ‘도서관 나들이’를 글로 쓰면 좋겠다고 여겨 새삼스레 도서관을 바라보노라니 ‘건축일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허물’이 너무 많아, 자칫 허물만 잔뜩 늘어놓는 글이 되겠다고 느꼈다 합니다.


  건축으로 바라보는 자리뿐 아니라, 언론으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정치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로 바라보는 자리라든지, 막상 ‘옳고 바르며 아름다운가’ 하는 잣대를 놓고 바라본다면, 어디에서건 허물이 잔뜩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건축이든 언론이든 정치이든 교육이든 허물이 참으로 많아요. 어느 곳에서건 줄세우기가 이루어집니다. 교육보다 입시지옥으로 들끓는데,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는 아이와 어버이조차 스스로 입시지옥으로 뛰어들 뿐,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벗어나거나 이를 뜯어고치려고 힘쓰지 못해요.


  왜 이렇게 모두들 악다구니처럼 엉겨붙거나 다툴까요. 왜 이렇게 모두들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고 용을 쓸까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 나날일 텐데요. 서로 믿고 기대며 어깨동무할 때에 빛나는 삶일 텐데요.


  이시카와 다쓰조 님이 쓴 《인간의 벽》(양철북,2012) 셋째 권을 보면 “문부성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은 획일적이다. 아이들마다 다른 성격을 무시하면 교육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407쪽).”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1950∼6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인데, 한국 교육밭을 놓고 본다면 2010년대에도 이 같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도 몽땅 ‘줄세우기(획일)’예요.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줄세우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모두 ‘대학바라기’를 놓고 줄세우기를 시켜요. 더 빨리 영어를 가르치고, 더 많은 교과서 지식을 끝없는 시험으로 달달 외우도록 시켜요. 아이들한테 삶도 사랑도 꿈도 가르치지 않아요. 들꽃을 따사로이 바라보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흙땅에서 뒹굴며 뛰놀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하늘을 누리고 냇물을 즐기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하나하나 따지면 서글픈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온통 허물을 까밝히는 글이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글프거나 허물을 까밝혀야 할까 궁금해요. 나부터 스스로 사랑스러운 길을 찾고, 나부터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나부터 스스로 어여쁜 이야기를 일구면 될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도서관 나들이를 할 적에는 도서관 책시렁에 꽂힌 책을 즐기면 되듯, 한국 교육밭이 엉망진창이라면 열 걸음 백 걸음 멀찍이 물러서거나 아예 발을 안 담그면서 시골마을에서 우리 아이들과 호젓하게 삶을 누리면 돼요. 사랑스레 뛰놀며 힘차게 노래할 예쁜 삶을 꽃피우면 돼요. 허물을 까밝히며 쓰는 글도 있어야 할는지 모르지만, 이보다는 사랑을 길어올리는 글부터 즐거이 써서 나누어야 한다고 느껴요. (4345.1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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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49) -의 계절 1 : 비의 계절

 

비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모이치 구미코/김나은 옮김-장미마을의 초승달 빵집》(한림출판사,2006) 30쪽

 

  짧은 보기글입니다. 여기에는 ‘시작(始作)’이라는 말이 안 붙습니다. 으레 “비의 계절(季節)이 시작되었습니다”처럼 쓰는 요즈음인데. “비의 계절이 되었습니다”처럼 적은 이 짧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비의 계절
→ 비철 / 장마철
→ 비오는 철
 …

 

  겨울이 되면 시골마다 돌아오는 ‘사냥철’이 있습니다. 사냥철이 되면 도시에서 몰려드는 사냥꾼들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냥 갈비집이나 전골집에서 가서 고기 사먹으면 될 텐데, 꼭 총을 들고 손수 잡아서 구워 먹어야 맛이 있는가 봅니다.


  짐승들한테는 해마다 한두 차례 ‘짝짓기철’이 있어 암수 서로 살가이 만나서 사랑놀이를 즐깁니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철은 ‘장마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철은 ‘눈철’이나 ‘눈보라철’쯤 될까요?


  비가 오는 철이면 ‘비철’입니다. 눈이 오는 철이면 ‘눈철’이고요. 꽃이 피는 철이면 ‘꽃철’이겠지요. 안개가 잔뜩 끼게 되는 철이면 ‘안개철’이라 할 만합니다. 열매가 무르익는 철이면 ‘열매철’이라 해도 좋아요. 뭐, 해마다 겨울이면 고등학교 아이들은 ‘입시철’이 다가와 시달리잖아요. 우리한테는 ‘철’입니다. 다만, 요새는 하도 철부지가 늘어나서 철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4339.12.19.불./4345.1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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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이 되었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34) -의 계절 2 : 내복의 계절

 

이제부터 내복의 계절이 시작되었다고 엄마가 말했다

《요안나 올레흐(글),윤지(그림)/이지원 옮김-열두 살의 판타스틱 사생활》(문학동네,2008) 189쪽

 

  ‘계절(季節)’은 ‘철’로 고치고, ‘시작(始作)되었다고’는 ‘되었다고’나 ‘맞이했다고’로 고쳐 줍니다.

 

 내복의 계절이 시작되었다고
→ 내복 입는 철이라고
→ 속속옷 입는 때라고
→ 속속옷을 입어야 한다고
→ 속속옷 입을 날이 되었다고
 …

 

  제가 살던 인천집은 겨울이면 으레 영 도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여태껏 달삯 내며 살았던 집 가운데 따뜻하다고 느꼈던 집은 한 군데도 없었구나 싶습니다. 그동안 어찌 살았고 오늘도 어찌 사는가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제가 이러한 집들에 살기 앞서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다들 참 용케 버티어 내는구나 싶고, 방에서도 두꺼운 겉옷 입거나 이불 뒤집어쓰면서 손 호호 불어 녹이거나 주머니에 쑥 찔러넣으며 살아냈을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달삯을 꼬박꼬박 치르면서도 이렇게 추운 집에서 언손 비비며 살아가는구나 싶기도 해요. 차라리 바깥에서 돌아다닐 때에는 몸도 움직이니까 몸도 살지만, 집에서 집안일만 하면 몸이고 뼈고 다 얼어붙겠구나 싶습니다.


  글 한 줄 쓰면서도 손가락이 얼어붙어서 두 손을 비비며 녹여야 합니다. 보일러를 살짝살짝 돌리면 엉덩이는 따뜻해지는데 방에 불기운이 감돌지 못합니다. 집임자가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달삯 받는 집을 이렇게 내버려 두고 우리더러 돈들여 고쳐쓰라고 하는 셈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가난하니 이런 추위를 이겨내면서 ‘고달프면 돈벌어서 내 집 마련해서 꾸미셔!’ 하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옷을 두껍게 껴입는 철
 옷을 두툼하게 껴입는 겨울
 속속옷 챙겨입는 겨울
 속속옷 단단히 챙겨입는 철
 …

 

  옆지기는 집에서 속속옷을 입습니다. 저는 속속옷을 안 입습니다. 추위를 덜 타서 그렇기도 하지만, 속속옷을 입으면 움직일 때에 땀이 많이 나서 힘들기 때문입니다. 골목마실을 하든 자전거 나들이를 하든 몸에서 나는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게 젖으면 외려 고뿔에 걸리기 쉬우니 옷을 얇게 입곤 합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이렇게 썰렁하다 못해 추운 집에서는 웃도리를 두 벌 입는데, 이렇게 해도 추운 오늘 같은 날은 두꺼운 겉옷을 걸쳐야 합니다.


  우리야 이렁저렁 이 집에서 견디고 버틴다고 할 텐데,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고 나서 이 집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은 어떻게 견디거나 버틸는지, 아니면 두 손 들고 다른 데로 내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에도 퍽 따스한 남녘마을로 살림집으로 옮겨서 살아가는 이 밤에 문득 춥디춥던 옛집을 그립니다. (4341.12.25.물./4345.1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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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속속옷 입는 날이 되었다고 엄마가 말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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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31) -의 계절 3 : 수유의 계절

 

매년 수유의 계절이 되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이가라시 다이스케/김희정 옮김-리틀 포레스트 (1)》(세미콜론,2008) 5쪽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다듬고, ‘계절(季節)’은 ‘철’로 다듬어 줍니다. “휘어질 정도(程度)다”는 “휘어지곤 한다”나 “휘어질 만큼 가득하다”나 “휘어지도록 가득하다”로 손봅니다.

 

 수유의 계절이 되면
→ 수유가 익는 철이 되면
→ 수유를 따는 철이 되면
→ 수유철이 되면
 …

 

  감이 익을 무렵이면 “감이 익을 무렵”이면서 “감이 익는 철”이요 “감철”입니다. 능금이 익을 때라면 “능금이 익을 때”이면서 “능금이 익는 철”이요 “능금철”입니다.


  우리는 ‘수박철’과 ‘딸기철’과 ‘참외철’과 ‘호박철’과 ‘살구철’과 ‘대추철’ 들을 이야기하면서 요즈음 날씨가 어떠한지를 헤아리곤 합니다. 우리 입맛에 따라 철을 생각하고, 산과 들에서 무르익는 열매를 떠올리며 철을 생각합니다.

 

 (열매나 푸성귀나 온갖 먹을거리 이름) + 철
→ 수유철 / 능금철 / 배추철 / 감자철 / 바지락철 / 전어철

 

  이제는 웬만한 가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로 없이 온갖 열매가 널리고 갖은 푸성귀가 펼쳐집니다. 굳이 철을 살피지 않더라도 언제나 딸기를 먹고 수박을 먹으며 바나나를 먹습니다. 집이나 일터 또한 요즈음 철이나 날씨가 어떠한가를 몰라도 한결같이 따뜻하거나 시원합니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든 전철이나 버스로 움직이든, 우리는 바깥 날씨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꼭 바깥 날씨를 알뜰히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몸이 바깥 날씨를 잊거나 잃으면서, 우리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잊거나 잃는 무엇인가는 우리 삶에서 또다른 무엇을 잊거나 잃도록 줄줄이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열매의 무게로
→ 열매 무게로
→ 열매들 무게로
 …

 

  스스로 삶다운 삶을 잊거나 잃으면서 삶을 밝히는 생각을 함께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 누가 괴롭히거나 들볶지 않더라도 스스로 우리 터전을 일구는 생각을 잊거나 잃는다면, 우리는 고운 뜻과 넋을 담아낼 말과 글 또한 우리 손으로 내버리거나 내치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4342.8.2.해./4345.1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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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유철이 되면 열매 무게로 가지가 휘어지곤 한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1) -의 계절 4 : 가정방문의 계절

 

가정방문의 계절이 다가왔다. 토요일 오후, 일요일, 방과 후, 교사는 늦은 밤이 되면 이 자유로운 시간에 아이들의 가정생활을 조사하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시카와 다쓰조/김욱 옮김-인간의 벽 (3)》(양철북,2011) 406쪽

 

  ‘가정방문(家庭訪問)’은 버릇처럼 쓰는 말투로 여길 만합니다만, “집집이 찾아다니는”처럼 손볼 수 있어요. ‘계절(季節)’은 ‘철’로 다듬고, ‘오후(午後)’는 ‘낮’으로 다듬으며, “방과 후(後)”는 “방과 뒤”로 다듬어 봅니다. “이 자유(自由)로운 시간(時間)에”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홀가분한 때에”로 손질하면 한결 나아요. “가정생활(家庭生活)”은 “집살림”이나 “집안 모습”으로 손질할 수 있는데, 글흐름을 살펴 “아이들의 가정생활을 조사(調査)하기 위(爲)해”를 “아이들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나 알아보려고”나 “아이들이 집에서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려고”처럼 새롭게 손질하면 한결 매끄럽습니다.

 

 가정방문의 계절이 다가왔다
→ 가정방문 철이 다가왔다
→ 가정방문을 하는 철이 다가왔다
→ 집집이 찾아다니는 철이 다가왔다
→ 아이들 집을 찾아다니는 철이 다가왔다
 …

 

  보기글을 살피면, “가정방문이 다가왔다”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아이들 살림집을 하나씩 찾아다니는 일을 가리키는 ‘가정방문’일 텐데, 이 낱말은 교사가 해야 하는 일 ‘이름’이기도 하기에 ‘-의 계절’처럼 붙는 말마디를 모두 덜어도 뜻을 짚을 수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집집이 찾아다니는”처럼 풀어서 쓸 수 있고, 느낌을 살려 “아이들 집을 찾아다니는”처럼 적을 수 있어요. “아이들 어버이를 만나러 다니는”이라 적어 보거나, “아이들 사는 마을을 돌아다니는”이라 적어도 어울려요. 어떤 굴레에 매이지 않으면서 말빛을 살피면 됩니다. (4345.1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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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집을 찾아다니는 철이 다가왔다. 토요일 낮, 일요일, 방과 뒤, 교사는 늦은 밤이 되면 이 홀가분한 때에 아이들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나 살펴보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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