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할머니들
마당가 밭가 멧골
가을볕 머금으며
노랗게 반짝이는
굵은 알 톡톡 따서
읍내 버스역 둘레에
종이 한 장 깔고 앉아
가을빛을 판다.

 

쉰 알
만오천 원에 얻다.

 


4345.10.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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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읽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오직 ‘노예 되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른바 다람쥐처럼 쳇바퀴 돌도록 길들입니다. 아이들 누구나 톱니바퀴가 되어 틀에 맞추어진 채 꼼짝도 못하도록 꽁꽁 가둡니다. 그래서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학교에 처음 발을 내딛는 때부터 ‘바보’가 돼요. 학교에 가는 아이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바보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는 무엇이냐. 바로 바보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사는 무엇이냐. 맑은 넋 아이들한테 숫자와 경쟁과 도시 물질문명 지식조각만 잔뜩 집어넣어 노예로 만드는 일꾼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노예 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것을 가르치려 하는가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엇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가르치나요. 유치원과 보육원은 아주 어린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나요.


  삶을 보여주는 학교는 없습니다. 삶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삶을 보여준다면 학교가 문을 닫을 수 있겠지요. 교사가 교과서 지식이나 대입시험문제를 안 가르치면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따돌림받기 쉽겠지요.


  얼마 앞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시험날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다 그만둔 사람이고, 내 옆지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우리 집 어린 두 아이는 어떠한 보육원이나 어린이집도 안 다니거든요.


  나부터 스스로 삶을 누리고 싶기에 학교가 덧없을 뿐 아니라 무섭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학교이든 감옥하고 똑같이 생겼습니다. 똑같은 크기로 나눈 교실 칸은 똑같은 크기로 나눈 감옥 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차림새로 길들이고 채찍질하는 학교는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차림새로 지내도록 하는 감옥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와 감옥은 ‘사람’을 사람 아닌 ‘숫자’로 부릅니다. 번호로 불러요. 번호로 부르면서 점수를 매겨요. 점수가 좋으면 감옥에서 일찍 나올 수 있고, 점수가 좋으면 학교에서 ‘착한 아이’나 ‘모범생’이라는 이름을 얻어요.


  감옥에서도 학교에서도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직업교육은 하지요. 게다가, 직업교육이라 해 봤자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직업교육인데, 이마저도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인 직업교육이에요.


  감옥도 학교도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도록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를 초·중·고·대 열여섯 해를 다닌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밥하기·빨래하기·아이돌보기·사랑하기·살림하기’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배우지 않아요. 교사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가르치지 못해요. 씨앗을 건사해서 흙에 심고 돌보는 길을 스스로 익히거나 배워서 아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 앞에서 사랑을 말할 줄 알고 꿈을 노래할 줄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한테 빨래하고 밥하며 아이들 보살피는 따순 손길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줄 만한 교사가 몇이나 될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를 몽땅 도시로 올려보내는 교사만 가득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숲과 바다와 멧골과 들판을 이야기하면서 시골로 보낼 줄 아는 교사는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사범대학을 다녔든 교육대학을 마쳤든, 교사자격증을 손에 쥐고 한국 사회에서 교사 구실을 한다고 밝히는 월급쟁이 공무원 가운데 그야말로 ‘교사’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할 만한 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교사라는 삶길을 느낀 이라면 거의 모두 한국 사회 제도권 울타리를 뜯어고치려 힘쓰거나 제도권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으리라 느낍니다.


  고3 아이들을 대학교에 하나라도 더 보내면 무엇 할까요. 아이들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아이들은 ‘고1’이나 ‘고3’이나 ‘중2’나 ‘초4’라는 숫자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아이예요. 아이들은 ‘어린이’요 ‘푸름이’예요. 푸름이한테 푸른 삶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고는 ‘수능성적 숫자에 맞추어 등급 나누어진 대학교 이름표’에 목을 매달도록 등을 떠민다면, 이런 사람을 두고 교사라고 할 수 없어요. 숫자와 등급에 맞추어 대학교에 들어온 아이들한테 ‘알파벳으로 된 성적’을 붙이는 사람을 두고 교수라고 할 수 없어요. 연구를 하는 사람은 연구자이지 교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대학교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은 무얼 연구해서 어떤 삶을 빛내려고 할까요. 스스로 어떤 삶을 밝히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내 아버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둘레에 많이 있는 ‘교사 벗’이나 ‘교수 선후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사로 일하거나 교수로 지낸대서 바보스럽거나 멍청한 삶으로 나뒹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사이건 교수이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몫을 맡으면서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대목을 똑바로 읽고 슬기롭게 바라보며 아름답게 맺거나 풀 줄 알아야지 싶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제도권 학교교육’을 읽지 못한다면, 교사로서도 교수로서도, 무엇보다 어른으로서도, 어버이로서도,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아무런 빛과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4345.1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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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2-11-2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와 감옥의 비유가 어쩜 그리도 딱딱 들어 맞는지 신기하군요!ㅎㅎ

특반 학생들은 화장실 청소도 시키지 않는다는 걸 아세요?
특특반 학생들의 야자 마치는 시간은 밤 12시, 특반 학생들은 11시,
일반반 학생들은 10시... ㅋㅋ 참 우습죠?
분노로 일렁이는 마음을 이제는 지켜볼 줄 아는 연륜이 쌓여가고 있어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나쁘지만 않더군요.ㅎㅎ

종규님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계신 듯 보여요.
댁의 아이들 또한 바로 제가 키우고 싶었던 아이들의 모습이어서 볼때마다
무척 흐뭇하고 뿌듯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용기로 보여 제 눈엔 더없이 훌륭해 보이는군요!^^


숲노래 2012-11-21 15:12   좋아요 0 | URL
헉... 특반이나 특특반이라는 게 있나요?
참...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에서조차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공부만 하면
이 아이들이 나중에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면
ㅇㅁㅂ 같은 사람이나 ㅂㄱㅎ 같은 분들보다
훨씬 무섭거나 끔찍한 일을 할밖에 없는 줄
다들 모르거나 못 느낄까 싶기도 하네요...

삶이란 대단하지 않은데
이 대단하지 않으면서
사랑스럽고 좋은 나날을
여느 도시사람과 시골사람
모두 맑고 밝게
깨닫고 느끼며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
나카야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무얼 하며 놀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4] 나카야 미와,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웅진주니어,2006)

 


  아이들 어머니는 할 공부가 있어 엿새 동안 집을 비웁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공부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는 집에서도 공부할 틈을 놔주지 않거든요. 다른 데 쳐다보지 말고 저희를 쳐다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혼자 시골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집일을 합니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방바닥을 훔치고 이불을 털어 말립니다. 설거지를 하고는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똥 눈 아이 밑을 씻기고, 똥바지를 빨며, 아이들을 씻깁니다. 아이들이랑 마을 들판이라도 쉬엄쉬엄 걷자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짬을 못 냅니다. 이제 이럭저럭 아침일과 낮일을 마쳐서 홀가분히 나들이를 할라치면 작은아이가 코코 잠듭니다. 작은아이를 재우고 큰아이하고 놀다가 끝방 문짝 경첩을 떼어 새로 달다가는, 이윽고 큰아이도 졸음이 쏟아져 무릎에 누여 코코 재웁니다. 큰아이를 재울 즈음 작은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이제는 다시 작은아이하고 둘이 이리저리 같이 움직입니다. 작은아이도 큰아이처럼 아버지 곁을 1미터조차 안 떨어지려 합니다. 오줌을 누든 응가를 누든, 두 아이는 저마다 아버지 곁 1미터 안팎에서 놀거나 뒹굽니다.


  둘이 나란히 잠들고, 둘이 나란히 뛰놀며, 둘이 나란히 쉬다가, 둘이 나란히 밥을 먹으면 참으로 수월할 텐데 생각합니다. 아니, 둘이 나란히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야, 두 아이 손을 하나씩 잡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지요. 하나는 까무룩 잠들면, 하나만 데리고 다닐 수 없고, 자는 아이를 늦가을 찬바람 맞히며 들마실을 다닐 수 없어요.


  끝방 문짝 경첩을 고친 김에 끝방 창호종이문에 흰천을 풀을 발라 붙입니다. 찬바람 부는데 잘 붙을까 걱정했지만, 흰천은 잘 달라붙습니다. 이만큼 하면 찬바람이 덜 들어오리라 생각합니다. 아예 꽁꽁 틀어막으면 찬바람이 아예 안 들어올 텐데, 꽁꽁 틀어막으면 바람이 못 드나드니 바람갈이가 안 돼요. 찬바람이 좀 들어오더라도 바람갈이를 할 틈을 둡니다. 다만, 우리 집 틈은 너무 많아 바람갈이가 아주 잘 되지요.


  오늘도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치다꺼리를 하느라 저녁해가 뉘엿뉘엿 기웁니다. 두 아이가 재미나게 노는 모습도 지켜보고, 두 아이가 소꿉을 사이에 놓고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도 지켜보며, 큰아이가 삶은달걀 까는 모습도 지켜봅니다. 콧물 줄줄 흘리는 작은 아이를 지켜봅니다. 그림책에 적힌 큼직한 글씨를 읽어 달라는 다섯 살 큰아이는 제 공책에 큰 글씨를 옮겨적어 봅니다. 글씨를 배운다기보다 글씨를 그리는 놀이를 하는 큰아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한글을 배우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한테 한글을 가르칠 마음이 없기도 하고, 여섯 살이 되든 일곱 살이 되든, 아이가 글을 가르쳐 달라고 바랄 적에 찬찬히 가르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는 아이가 궁금해 할 적에 ‘이건 이렇게 읽고, 저건 저렇게 읽어.’ 하고만 알려줍니다.


.. 높은 곳도 아주 무서워해요. “아래를 보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걸.” 겁쟁이에 울보, 행동은 늘 꾸물꾸물. 그래서 겁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  (3쪽)

 


  바람이 붑니다. 늦가을에서 이른겨울로 넘어서는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늦가을 첫무렵에는 퍽 따순바람이 불어 겨울 앞두고 퍽 포근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스산한 바람이 찾아드니 참말 겨울이 곧 닥치겠구나 싶습니다.


  스산한 바람 따라 나무마다 마지막 잎사귀를 떨굽니다. 겨울에도 푸른잎을 고스란히 다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는 푸른 숨결을 건사합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도 겨우내 푸른 숨결을 고이 건사할 테지요.


  마당 가장자리와 텃밭에서 아직 푸른 잎사귀 돋우는 들풀도 겨우내 새근새근 겨울잠을 자리라 생각합니다. 모두들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따숩게 부는 봄바람을 기다리리라 생각해요.


  사람들은 겨울에 겨울잠을 안 잡니다. 겨울이면 집에서 조용히 옹크리기는 하지만, 요즈음 시골에서는 겨울에도 마늘밭을 돌아보고 밀밭이나 보리밭을 살펴봅니다. 옛날 사람들은 겨우내 짚신을 삼든 돗자리를 엮든 부산하게 일손을 놀렸겠지요. 밀린 바느질을 하거나 미룬 길쌈을 했을 테고요. 겨울에 나무하는 사람은 없었을 터이나, 소작농사를 하느라 여느 철에 너무 빠듯하던 이들은 겨울에도 언몸 더 옹크리며 나무를 하러 멧길을 탔으리라 생각해요.


  가을이나 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갓난쟁이 기저귀를 갈고 빨래하느라 퍽 고단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겨울날 시골집에서 기저귀 말리기란 또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러나, 이런저런 집일이나 빨래나 살림일이 고단하기만 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즐거이 맞이하는 일이고, 놀이와 같이 누리던 일이라고 느껴요. 서로가 서로를 달래며 노래를 부릅니다. 일노래를 부르며 즐깁니다. 일이 고되기에 일노래를 부른다 할 테지만, 일노래를 부르는 마음은 고단한 삶을 고단한 모습이 아닌 사랑스러운 삶으로 바꾸어 줍니다. 일노래를 부르고 일얘기를 빚는 나날은 삶을 새로 돌보고 북돋우는 꿈빚기였으리라 느껴요.


  작은 풀집 자그마한 칸에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 모두 모여 복닥거립니다. 할아버지가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머니가 옛이야기에 살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일손을 거들며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낮에는 파란 빛깔 눈부신 하늘을 보고, 밤에는 까만 빛깔 드리운 별빛을 봅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초승달이 저리 밝은 달이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초승달 곁으로 뭇별이 흐릅니다. 뭇별이 흐르는 곁으로 겨울밤을 노래하는 멧새 구성진 가락이 어우러집니다. 삶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이 있고, 숲이 있으며, 마음이 있습니다.


.. 겁보는 용기를 내어 ‘유령 깡통’을 열어 보기로 했어요 ..  (7쪽)

 


  나카야 미와 님 그림책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웅진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우리 집 다섯 살 큰아이는 이 그림책을 참 자주 펼쳐 읽습니다. 워낙 자주 본 나머지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맙니다. 다 뜯어질 판입니다.


  뭐가 그리 재미나기에 수없이 되읽을까 싶다가도, 아이 눈썰미로는 더없이 재미나기에 자꾸자꾸 되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그림책을 장만한 나부터 ‘한 번 읽고는 덮어 두려’ 했다면, 처음부터 장만하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되읽을 만하리라 여기기에 즐거이 장만합니다. 아이는 어버이 마음을 잘 받아들여 이 그림책을 보고 또 보면서 깡통유령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에는 겁보 아이가 나옵니다. 겁보라 하니 겁이 많은 아이라 할 텐데, ‘겁’이란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일컫습니다. 곧, 무언가를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긴다는 셈입니다. 스스로 겪어 보거나 치러 보아서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기지는 않아요. 스스로 해 보지 않고서 지레 두렵게 여기거나 무섭게 여겨요.


  깡통유령은 겁보라는 아이한테 이것저것 시킵니다. 겁보라는 아이는 깡통유령과 함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비로소 겪는데, 막상 겪으면서 생각하니 하나도 두렵지 않고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멋없이 두려움에 떨며 지낸 셈이요, 바보처럼 무서움에 사로잡혀 지낸 셈이에요.


.. “눈을 가려 봐!” “어어어? 생각만 해도 무서웠는데, 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  (21쪽)

 


  아이들은 높은 데에서 가볍게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신나게 달립니다. 넘어져서 까지거나 다칠 때가 있습니다. 팔다리가 부러지는 아이도 있을 테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달립니다. 훨훨 납니다. 물을 보면 물놀이를 하고, 조금 깊다 치면 헤엄놀이를 합니다. 나뭇가지가 보이면 막대기 삼아 새 놀이를 합니다. 돌멩이가 보여도 놀잇감으로 삼아 새 놀이를 즐겨요. 모래 한 줌이 놀잇감이 됩니다. 흙 한 줌이 놀이마당이 됩니다. 줄 하나로 꿈나라를 누빕니다. 종이 한 장으로 꿈누리를 오갑니다.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우리 어디에서 놀까요.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 적에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무얼 하며 놀 적에 즐거운가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많아요.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놀이가 많아요. 생각만 해도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많아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랑 어떤 삶을 함께 일구면서 하루를 빛내고 싶은지, 저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일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20.불.ㅎㄲㅅㄱ)

 


― 깡통유령, 용기가 필요해 (나카야 미와 글·그림,김난주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6.2.17./75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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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들이 나카야 미와 그림책을 아주 좋아해서 아주 너덜너덜해졌기에, 새로 한 권 더 장만할까 하고 살펴보았더니, 지난해와 올해에 새로운 이야기로 그림책이 두 가지 나왔다. 아쉽게도 <깡통 유령> 그림책은 두 권 번역으로 끝났구나 싶은데, 뒷이야기도 더 번역해 주면 좋을 텐데. 다른 그림책은 잘 팔리고 사랑받으니까 <깡통 유령>도 뒷이야기가 번역되기를 손가락 빼물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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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마을의 빵집
나카야 미와 글.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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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남기는 어린이

 


  가을햇살 곱게 받으며 마당에서 노는 사름벼리는 그림자 곱게 뒤로 남기면서 달린다. 빨간 꽃 한 송이 핀 자리로 공을 주으러 간다. 공을 줍고는 즐겁게 휙 던지며 논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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