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뒤에 숨는 어린이

 


  서재도서관에서 뛰노는 아이가 책꽂이 뒤에 숨는다. 서재도서관은 숨을 데가 많다. 뛸 곳도 널찍하다. 서재라는 데는 책을 꽂아 책을 누리는 데라고 할 테지만,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재미나게 뛰놀 자리가 되기도 한다. 책은 책이기도 하지만 놀잇감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베개도 되니까. 나무로 짠 책꽂이에 나무로 만든 책을 꽂아서 나무로 지은 집에 건사한다면 참 멋스럽겠지.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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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20.
 : 달을 바라보는 자전거

 


- 아이들이 여러 날 앓는 바람에 바깥마실도 제대로 못 다니고,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가을들녘 두루 돌아보러 다니지도 못한다. 따사로운 한낮에 집안일 모두 마치고 개운하게 기지개를 켠 다음, 자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할라치면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지고, 작은아이 재우다가 이제 일어날 즈음 큰아이가 곯아떨어지고, 다시 큰아이가 일어날 즈음에는, 그동안 잘 놀던 작은아이가 또 졸음이 쏟아져 쓰러지고. 이러기를 되풀이하니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어둡다.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저쪽에는 초승달이 뜬다.

 

- 아이들 어머니가 여러 날 집을 비우며 제대로 바깥마실도 못 시켰는데, 이렇게 저녁을 맞이하니 못내 서운하다. 아마 아이들은 안 서운할는지 모르나, 아버지인 내가 서운하다고 여기기에, 두 아이 옷 두툼히 입히고는 밖으로 나온다. 마침 오늘 저녁에는 바람이 거의 안 불어 자전거마실을 할 만하리라 생각한다.

 

- 달과 별을 보며 달린다. 수레에 탄 큰아이는 “달이 왜 자꾸 우리를 따라와?” 하고 묻는다. 달이 우리를 따라올까? 내 어릴 적, 식구들 다 함께 시골집 마실을 마치고 시외버스를 달려 인천으로 돌아가던 때에도 창문 바깥으로 달을 보곤 했는데, 국민학교 육학년이 되어도 ‘달이 따라온다’고 여겼다. 나중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에 ‘달이 따라오는군’ 하고 여겼다. 군대에서도, 서울에서도, 충북 멧골마을에서도, 나는 늘 ‘달이 나를 좋아해서 따라오나’ 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 겨울을 앞둔 늦가을인 만큼, 밤바람이 시원하지만은 않다. 제법 차다. 장갑 안 낀 채 자전거를 달리자니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바람이 안 부니 그나마 낫지만, 밤자전거 나들이는 이제 퍽 힘들 수 있겠다고 느낀다. 다만, 자동차 없는 호젓한 시골에서는 밤노래를 듣고 밤별을 누리며 밤들판 내음을 듬뿍 누릴 수 있어 즐겁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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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꾸리는 마음 (도서관일기 2012.11.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사람들은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을 북돋울’ 뜻으로 ‘도서관에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줄거리를 훑는대서 책읽기가 될 수 없다. 줄거리를 훑을 적에는 ‘줄거리 훑기’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책을 살핀다면 ‘독후감 쓰기’일 뿐 책읽기라 할 수 없다. 널리 이름나거나 알려진 책을 들춘다 할 적에도 ‘이름난 책 들추기’일 뿐 책읽기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다. 신문을 읽을 때에 모두 신문읽기가 되지 않는다. 신문에 어떤 이야기가 실리는가를 ‘읽고’서, 신문에 어떤 이야기가 왜 실리는가를 다시 ‘읽고’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을 새삼스레 ‘읽고’서, 내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하루를 되새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신문읽기라 할 수 있다.


  영화읽기나 노래읽기나 문화읽기나 교육읽기나 정치읽기나 사랑읽기 모두 이와 매한가지이다. 겉을 훑는대서 읽기는 아니다. 겉을 훑으면 겉훑기일 뿐이다. 줄거리를 살피면 그저 줄거리를 살핀다 할 뿐이다. 읽기란 ‘살기(삶)’로 이어진다. 꽃을 읽으며 꽃마음을 가만히 되새기며 내 마음을 돌아본다. 하늘을 읽으며 하늘흐름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넋을 되새긴다. 아이들 마음을 읽으며 어버이로서 내 마음을 함께 읽는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이 책 하나를 쓴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넋을 돌보아 어떤 꿈을 펼치려 했는가를 내 사랑을 쏟아 읽는다고 해야 알맞다.


  제주에서 책손 한 분 찾아온다. 햇살이 가장 밝고 따스한 낮에 큰아이하고 나란히 도서관마실을 한다. 우리 마을 끝자락에 있는 돌기둥 하나를 구경한 다음 우체국에 들러서 도서관으로 간다. 마을 끝자락 돌기둥은 육백 해쯤 되었는지 천 해쯤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돌기둥을 누가 왜 세웠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돌기둥을 세운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디에서 이 돌을 들고 와서 깎아 세웠을까. 이 돌기둥은 얼마나 긴 나날을 비바람과 눈바람 맞으며 이 자리를 지켰을까. 어쩌다 논 한복판이라 할 데에 이 돌기둥이 섰을까. 돌기둥은 논이 없던 때부터 돌기둥으로 있다가, 사람들이 이 언저리에서도 흙을 일구어 논을 만들었을까.


  큰아이는 도서관에 오면 책을 보기도 한다. 동생이랑 둘이 오면 뛰노느라 바쁘고, 어른들이랑 함께 오면 개구지게 뛰놀기도 하지만, 제 눈높이에 맞는 그림책을 집어서 조용히 읽곤 한다.


  고흥 시골마을에 연 도서관에 정작 고흥사람은 아직 거의 안 찾아들지만, 먼 곳에서 사는 분들이 고운 책손이 되어 찾아온다. 먼 곳에서 찾아온 분들은 느긋하게 책을 읽고 살피며 느낄 줄 안다. 그러니까 먼걸음을 하겠지. ‘가까운걸음’이라서 다들 바쁘거나 설렁눈길이지는 않지만, 외려 가까운 자리 사람들은 ‘언제라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라도 안 오기’ 일쑤이다. 먼 데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 즐겁게 품으며 기쁜 마실을 하며 기쁘게 책을 만지고 쓰다듬을 줄 안다.


  도서관 꾸리는 내 마음을 읽는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책을 읽어야 아름답게 거듭난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문 한 사람이 다문 한 권을 손에 들어 만지작거린다 하더라도,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가고픈 꿈을 사랑스레 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답게 거듭난다고 느낀다. 도서관이란 백만 천만 억만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가슴속 깊이 꿈을 사랑스레 품는 사람뿐이라고 느낀다. (ㅎㄲㅅㄱ)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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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서 책읽기

 


  고단한 날에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드러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으면 책 하나 펼쳐 누워서 읽는다. 누워서 책을 읽다가 마당으로 나와 별바라기를 해 본다. 밤바람을 살짝 쐰다. 고즈넉한 마을을 둘러본다. 어둠이 내려앉아 조용하니 예쁜 시골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불을 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자거나, 때때로 잠투정을 한다. 쉬가 마렵다며 깨어나 아버지를 부른다. 기저귀에 쉬를 누고는 끙끙거린다. 하루는 길면서 짧다. 하루는 사뿐사뿐 찾아와 나긋나긋 저문다. 칭얼거리는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서 다독다독 하다가는, 이제 깊이 잠들었다 싶으면 나도 다시 잠자리에 누워 작은아이를 배에 올려놓고, 배에 올린 뒤 아주 깊이 곯아떨어졌다 싶으면 옆으로 눕힌다. 하루를 되새기면, 누워서 하는 일도 퍽 많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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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중 먹기

 


  봄부터 가을까지 까마중풀이 자란다. 까마중풀은 어디에서고 흐드러지게 잘 자란다. 그러나, 까마중풀을 고운 풀로 여기는 사람은 나날이 줄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쑥쑥 뽑혀서 죽곤 한다. 그런데, 이 까마중풀은 다시금 씩씩하게 돋아 아이들 좋은 주전부리가 된다. 입과 볼이 까매지도록 즐기는 놀이로 다시 태어난다. 하얀 꽃이 피어 푸른 열매가 맺고, 차츰 까맣게 익어 까마중이란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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