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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8
삶이란 하나
― 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2005.2.15.
나는 여섯 살 때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을까 떠올려 봅니다. 음, 잘 안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여섯 살을 누리는 큰아이를 바라보면서 곰곰이 내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나와 옆지기가 서로 여섯 살 적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놀이로 하루를 누렸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작은아이를 마주할 적에는 내가 세 살 적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놀이로 하루를 누렸는가 하고 가만히 되새깁니다. 나는 내 형한테 어떤 동생이 되어 서로 놀이를 누리는 사이였을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내 얼굴을 떠올립니다. 아이 얼굴에 비친 내 얼굴을 헤아리며 내 어버이 얼굴을 그립니다. 내 얼굴에는 우리 아이들 얼굴이 서리고, 내 어버이 얼굴에는 또 내 얼굴이 감돌겠지요.
- “요즘 넌 전화할 때마다 힘들다 소리밖에 안 하잖니. 허구헌 날 그런 소리 듣는 사람도 힘들어.” (8쪽)
- “계속 다른 반이었고, 선택과목 같은 것도 전혀 달랐으니까,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게 돼서 기뻐.” (21쪽)
추운 겨울이라고 하는데, 겨울이니 춥습니다. 더운 여름이라고 하지만, 여름이기에 덥습니다. 추운 겨울날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까만 하늘 그득 채운 별빛이 곱습니다. 더운 여름날 밤하늘 바라봅니다. 캄캄한 하늘 가득 누비는 별무리가 예쁩니다. 추운 겨울에는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잠듭니다. 겨울에는 조그마한 방 한 칸에 넷이 나란히 누워 따스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대청마루에서도 자고 곁방에서도 잡니다. 여름에는 모기그물 사이로 스며드는 밤노래를 들으며 저마다 깊은 밤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겨울이고 여름이고 이리저리 뒤척입니다. 갓난쟁이일 적에는 밤마다 오줌기저귀 가느라 잠들지 못했고, 조금 크니 밤오줌 가리느라 잠들지 못하며, 제법 자라니 뒤척이며 발로 차고 머리로 박느라 자꾸자꾸 잠을 깹니다.
이런 밤잠도 한때일 테지요. 이 아이들이 예닐곱 살이나 열두어 살쯤 되면, 아무 걱정이나 성가심 없이 밤잠을 누리겠지요. 밤잠을 못 자게 하는 아이들 칭얼거림이란 훌쩍 지나갈 테지요.
아이들은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오줌기저귀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못 자는 줄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밤오줌 가리기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이룰 수 없는 줄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잠투정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누리지 못하는 줄 알까요.
아마 알기는 알 테지만, 모르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이런 대목은 모르고 살아도 돼요. 하루하루 즐겁게 놀고 씩씩하게 크면 넉넉합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어떻게 내 어버이를 고달프게 했는지 하나도 못 떠올려요. 우리 아이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저 밤에 달콤하게 자면 되고, 쉬 마려우면 누면 되며, 잠투정이나 잠꼬대 하고 싶으면 실컷 하면 됩니다. 밤별은 아이들 머리카락을 보드라이 쓰다듬어 줍니다.
-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돈벌이를 잘하든 못하든, 그런 건 부모에겐 중요한 게 아니야. 자식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35쪽)
- ‘모르겠어. 난 헤어지고 나서 교류가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걸까.’ (57쪽)
- ‘인연이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 오늘 하루였습니다.’ (67쪽)
나가하라 마리코 님 만화책 《소소한 휴일》(대원씨아이,2005)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처럼 우리 삶은 참으로 작습니다. 참말 작은 우리 삶은 수수합니다. 수수한 우리 삶은 투박합니다. 투박한 우리 삶은 아기자기합니다. 아기자기한 우리 삶은 맛깔납니다. 맛깔나는 우리 삶은 웃음꽃입니다. 웃음꽃 피어나는 우리 삶은 사랑입니다.
- ‘형태가 갖춰진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냐. 여기에 필사적으로 일해 온 4년 반의 내가 있다.’ (82쪽)
- ‘요우코가 츠토무의 인생의 일부인 것처럼, 내 일도 내 인생의 일부야.’ (91쪽)
- ‘길을 잃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는 날도 있을까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작아도 멀리서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싶어. 그리고 그때 내 곁에서 함께 잡초를 뽑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 (98쪽)
정갈하게 차린 밥상 함께 즐기려는 삶입니다. 겨울날 따스한 햇살 함께 즐기고 싶은 삶입니다. 여름날 시원한 바람 함께 즐기며 이야기꾸러미 펼치는 삶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옆구리를 살며시 찌르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지는 아이들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발가락 하나 살포시 누르기만 해도 웃음주머니 터뜨리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하나로 온갖 놀이를 즐깁니다. 나뭇잎 하나로 갖은 이야기 쏟아냅니다. 돌멩이 하나가 우주와 같습니다. 들꽃 한 송이가 하느님과 같습니다.
큰도시 커다란 가게로 찾아가서 장난감을 사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둘레 흙과 모래와 풀과 나무가 모두 놀잇감입니다. 큰도시 커다란 밥집으로 마실을 가서 비싼 밥 사다 먹여야 하지 않습니다. 들풀 한 줌이 밥이요, 아이와 나란히 들판에 앉아 들풀 뜯는 손길이 기쁨입니다. 큰도시 커다란 초·중·고등학교로 아이들을 보내 시험공부 잘 시킨 뒤 큰도시 커다란 대학교에 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학교에 안 다녀도 되고, 아이들은 시골마을 작은 학교에 다녀도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동무랑 꿈을 속삭일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레 살아갈 하루요, 꿈을 이루는 하루입니다.
공 하나 있으면 하루 내내 실컷 놀아요. 공 하나 없이 무등을 태우거나 손 잡고 들길을 걸어도 하루 내내 실컷 놉니다. 하모니카 하나 있으면 하루 내내 마음껏 노래를 불러요. 하모니카 하나 없이 목청 곱게 뽑으며 하루 내내 마음대로 노래를 부릅니다.
자전거를 타면 돼요. 군내버스를 타면 돼요. 두 다리 믿고 씩씩하게 걸으면 돼요. 집부터 면소재지 우체국까지 십 리 길 걸어서 오가도 돼요. 이웃마을 살짝 지나가도 되고, 들길이나 숲길을 살그마니 거쳐 지나가도 돼요. 마을마다 한두 그루씩 있는 오래된 당산나무 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면 돼요. 이백 살 오백 살 팔백 살 먹은 굵직한 나무를 얼싸안으면서 나무 숨결을 만날 수 있으면 돼요.
- ‘진심으로 좋아했던 상대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랑은 찾아오지 않고, 인간관계는 가혹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도 보답은 없고, 상처 주고 상처 입고 잃어버리고, 그런 일들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어.’ (119쪽)
- ‘생각났어. 그의 변화와 나의 변화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5년 전에 깨달았기 때문에 헤어진 거야.’ (179쪽)
날이 밝습니다. 작은아이가 먼저 잠에서 깹니다. 곧 큰아이도 깰 테지요. 나는 일찌감치 쌀을 씻어서 불렸습니다. 쌀을 불리며 국은 어떻게 끓일까 생각해 둡니다.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보다 누그러진 겨울날이니, 여기저기 들판을 살피며 봄풀 몇 줌 뜯을까 싶습니다. 아버지는 봄풀을 뜯고, 아이들은 저희끼리 이리 쏘다니고 저리 달음박질치며 놀면 됩니다.
맑은 바람을 쐽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쬡니다. 시원한 물을 마십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소한 밥을 먹습니다. 하루는 천천히 흐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저마다 천천히 자랍니다.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가 오가고, 마음을 키우면서 이야기빛을 밝힙니다. 434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