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시를 드리다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속에서 생각 한 톨 자라납니다. 마음을 가만히 기울이며 내 생각 한 톨에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올라 잎이 돋고 꽃망울 맺히기까지 기다립니다. 꽃망울에 나비가 찾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모습 지켜본 다음, 꽃이 져서 열매를 맺는 동안 기다립니다. 열매가 톡 하고 떨어져 열매 속에 깃든 씨앗이 다시 흙으로 스며 새롭게 태어나기까지 기다립니다.


  내 글공책에 싯노래 한 자락 적바림합니다. 정갈한 종이에 옮겨적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내밉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 돈을 드리지 못하고, 내 어버이한테 어떤 놀라운 물건을 선물로 드리지 못합니다. 나는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도 돈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재미난 물건을 선물로 베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내 하루인 터라, 즐겁게 웃으며 마주한 이웃 삶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글 한 줄 적바림할 수 있어요. 내 사랑을 담은 싯말 하나를 살며시 건넬 수 있어요.


  작은아버지한테 싯노래 한 자락 선물합니다. 옆지기 외삼촌한테 싯노래 한 자락 선물합니다.


  내 마음밭에서 생각 한 톨 자라나니 즐겁습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생각 한 톨 이야기꽃으로 피어날 수 있어 기쁩니다. 글은 꽃입니다. 글은 사랑입니다. 글은 이야기입니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아라 로켓파크 카르페디엠 32
이시다 이라 지음, 김윤수 옮김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104

 


청소년은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 날아라 로켓파크
 이시다 이라 씀,김윤수 옮김
 양철북 펴냄,2013.1.2./11000원

 


  바람이 붑니다.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붑니다.


  귀를 기울입니다. 내 귀로 스며드는 여러 가지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바람은 철마다 다 다른 소리와 내음과 무늬와 빛깔로 내 몸으로 스밉니다. 바람은 다달이 다 다른 소리로 찾아들고, 나날이 다 다른 내음으로 찾아들며, 아침저녁으로 다 다른 무늬를 선보이다가는, 때마다 늘 다른 빛깔이 눈부십니다.


  바람은 소리로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바람에는 수많은 모습이 서립니다. 시골에서 부는 바람이랑, 숲과 들과 마당과 마을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사뭇 다릅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마주하는 바람이랑, 헛간 곁에서 마주하는 바람이랑, 대문 앞에서 마주하는 바람이랑, 마늘밭이나 무논에서 마주하는 바람이 서로 달라요.


  도시에서도 바람은 노상 다릅니다. 찻길에서 마주하는 바람, 거님길에서 마주하는 바람,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 곁에서 마주하는 바람, 도시 한켠 공원에서 마주하는 바람, 도시 길가 가녀린 나무 옆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 어귀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밭 앞에서 마주하는 바람, ……, 참말 같은 바람이란 없습니다.


.. 고개를 드니 콘크리트 난간 너머로 도쿄의 하늘이 보였다. 크림처럼 하얀 봄 하늘이다. 요지는 요코하마나 여기나 하늘은 똑같구나 생각했다 … “사람한테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른이라도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아이라도 놀랄 ㅁ나큼 믿음직한 사람이 있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바른 사람이라서 부탁한 거란다.” ..  (7, 71쪽)


  햇살이 드리웁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안고 햇살이 드리웁니다.


  눈을 감습니다. 내 살결로 젖어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햇살은 철마다 다 다른 이야기로 나한테 다가옵니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당탕탕 헐레벌떡 거침없이 휘젓듯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햇살이 우당탕탕거릴 수 있느냐고요? 네, 그래요. 햇살을 스물네 시간 바라보셔요. 새벽부터 밤까지 햇살을 찬찬히 느껴 보셔요.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말고, 흙과 나무와 짚과 돌로 지은 집에 깃들어 햇살을 하나하나 느껴 보셔요. 아니,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도 햇살을 느낄 수 있어요. 마음으로 눈을 뜨며 가만히 헤아려 봐요.

  해가 기운 저녁에도 햇살을 느낄 수 있어요. 지구별 다른 쪽 비추는 햇살을 느껴요. 달에 어리는 햇살을 느껴요. 멀디먼 뭇별에 닿는 햇살을 느껴요. 밤에도 햇살은 우리 마을 우리 집까지 찾아옵니다. 낮에도 아침에도 햇살은 즐겁게 찾아옵니다.


  풀과 나무와 꽃은 햇살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물고기와 들짐승과 풀벌레 모두 햇살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사람 누구나 햇살을 들이켜면서 살아갑니다. 햇살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면 숨결을 잇지 못해요. 햇살 한 조각 먹지 않으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해요. 내 즐거운 삶을 빛내는 반가운 햇살을 고맙게 마주하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립니다.


.. 다들 한눈으로도 간타를 특이한 아이로 여기는 듯했다. 어른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간타를 특별한 아이 취급하는 사람들은 유치원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모두 그랬고, 늘 간타와 함께 있는 요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걱정 안 해도 돼. 아빠가 그랬어. 신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강하게 만드셨대. 곤란하거나 괴로운 일을 견딜 수 있는,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래.” … “사람을 심판한다는 건 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부분까지도 전부 깎아내는 일이야.” ..  (14, 15, 23, 166쪽)


  푸름이는 누구나 즐겁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꿈을 키우는 푸름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푸름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실컷 놀고, 개구지게 달리고 싶습니다. 마음껏 뛰고, 온몸 휘저으며 뒹굴고 싶습니다.


  어느 일터에 몸이 매여 달삯바라기만 하는 푸름이로 살아가는 일은 즐겁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야 할 푸름이가 아닙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푸름이가 아닙니다. 자영업자가 될 푸름이가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라는 이름 그대로 푸른 삶 푸른 꿈 푸른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가슴을 북돋울 때에 푸름이입니다.


  즐겁게 삶을 누리는 어린이가 즐겁게 삶을 빛내는 푸름이가 됩니다. 즐겁게 삶을 빛내는 푸름이가 즐겁게 삶을 일구는 어른이 돼요. 어릴 적 즐겁게 놀지 못하면, 푸른 나날에도 즐겁게 배우지 못해요. 푸른 나날에 즐겁게 배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낳거나 짝꿍과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에 즐거운 삶길을 걷지 못합니다. 어릴 적에 놀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이녁 아이하고 놀 줄 몰라요. 어릴 적에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꿍을 사귀려 할 적에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아름다운가를 몰라요.


  대학입시에 얽매여 즐거운 나날을 누리지 못하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짠 하고 된대서 즐거운 삶을 스스로 일구지 못합니다. 대학입시 공부에 목이 매여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만 가방 가득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푸름이라면,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모두 짓눌린 채 바보가 된 슬픈 넋일 뿐입니다. 가방에 시집 한 권 챙기지 못한다면, 집에서 만화책 한 권 느긋하게 펼치지 못한다면, 동무들과 바다마실 숲마실 들마실 즐기지 못한다면, 어버이와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지 못한다면, 푸름이로서 푸름이다운 한삶을 못 누리는 셈입니다. 푸름이일 때에 푸름이답게 한삶을 못 누린다면, 이웃을 아끼거나 뭇목숨을 소담스레 보살피는 손길을 키우지 못해요.


.. 아이들이 자살하는 첫 번째 원인은 학교생활 때문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는 아이들에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 같았다 … “한 살 많은 얼간이를 왜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데? 난 그런 거 싫어. 운동은 좋아하지만.” … 누가 더 센지 싸우고, 교실에서는 누구 머리가 좋은지 시험 점수로 경쟁한다. 그것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었다 ..  (32, 98, 101쪽)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고, 학교에 안 가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어버이가 아니고,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도 되는 어버이가 아닙니다. 어버이는 누구나 어버이입니다.


  아이들 마음을 읽어요. 어른들 마음을 보여주어요. 아이들 생각을 쓰다듬어요. 어른들 생각을 활짝 열어요. 아이들 사랑을 돌보아요. 어른들 사랑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요.


  우리가 서로서로 할 일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스럽게 말을 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스럽게 밥을 지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빨래를 하고, 사랑스럽게 비질과 걸레질을 하며, 사랑스럽게 웃고 울어요. 사랑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사랑스럽게 들길을 걸으며, 사랑스럽게 나물을 캐고 나무를 어루만져요. 사랑스럽게 책을 읽고, 사랑스럽게 글을 쓰며, 사랑스럽게 사진을 찍어요.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하면 돼요.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든, 집에서 지내며 숲과 바다와 들을 온몸으로 껴안든, 시골에서 시골 아이로 자라든, 도시에서 도시 어른으로 크든, 마음속에 사랑씨앗 한 알 곱게 심으면 돼요.


  무엇이 되겠다거나, 어떤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좋아요. 다만, 어떤 이름값을 떨치거나 얼마쯤 되는 돈을 벌겠다는 뜻을 세우든, 언제나 사랑으로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이름을 떨치고, 사랑스럽게 돈을 벌며, 사랑스럽게 꿈을 이루면 되지요.


  사랑이 없을 때에는 메마릅니다. 사랑이 없으니 차갑습니다. 사랑하고 등을 돌리면 나 스스로 삶이 고단해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다독 자장노래 부를 적에는 목소리만 예쁘게 뽑는대서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지 않아요.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온 사랑 듬뿍 실어 부드러이 부르는 자장노래일 적에 아이는 느긋하게 눈을 감고 즐겁게 웃으며 꿈나라로 날아갑니다.


.. 정말 그럴까? 간타는 생각했다. 요지와 함께 만든 로켓파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주식이 오르고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아파트 단지 공원에 있는 로켓 미끄럼틀을 탄 적도 없을 뿐더러,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 “이상한 건, 모두 노동이 신성하다고 외치면서 실제로 회사에서는 사람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한다는 거야. 말과 행동이 전혀 달라. 노동은 신성하지만 노동자는 한 번 쓰고 필요없어지면 버리는 일회용이라니 모순이야.” ..  (247, 271쪽)


  푸른문학 《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를 읽습니다. 일본사람 이시다 이라 님은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가에 따라 어른이 되며 살아가는 모습이 사뭇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쁜 사랑 예쁘게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예쁜 이야기 꽃피우는 예쁜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슬픈 사랑 슬프게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슬픈 이야기 주섬주섬 줍는 슬픈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어린이인 오늘 즐겁게 살아야, 어른이 된 오늘 즐거운 이야기 나눕니다. 푸름이인 오늘 즐겁게 지내야, 어른이 된 오늘 즐거운 일을 기쁘게 합니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되고 스물대여섯 살에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예순두어 살쯤 정년퇴직을 하고는, 늙어서 죽을 때까지 연금 받으며 조용조용 손자 재롱에 깔깔깔 웃는 삶이 즐거운 삶일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지내는 삶이 즐거울까요. 우리 아이들한테 이런 삶을 물려주어야 즐거울까요.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어깨동무란 무엇이고, 품앗이랑 두레는 무엇일까요. 마을이란 무엇이고, 보금자리란 무엇일까요. 일이란 참말 무엇이며, 놀이란 참말 무엇일까요.


  도시에서는 숱한 등불과 건물에 가려 밤하늘 별을 바라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도시 어디에나 별은 뜹니다. 등불이나 건물에 가릴 뿐, 별은 늘 반짝반짝 빛나요. 아이들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에 시달리거나 들볶인다지만, 이 아이들 가슴에는 사랑을 빛내고픈 작은 씨앗 하나 어김없이 있어요. 작은 씨앗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싶어요. 작은 씨앗은 사랑 어린 손길 받으며 따사로운 마음밭에서 자라고 싶어요.


  아이들이 날게 해 주셔요. 아이들 날개를 보드랍게 쓰다듬어 주셔요. 아이들 마음자리에 사랑이라는 새 날개옷 베풀어 주셔요. 아이들 누구나 스스로 사랑날개 펼쳐 사랑노래 부를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 모두 웃음꽃 피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푸른책과 함께 살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2-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 되겠다거나, 어떤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좋아요. 다만, 어떤 이름값을 떨치거나 얼마쯤 되는 돈을 벌겠다는 뜻을 세우든, 언제나 사랑으로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이름을 떨치고, 사랑스럽게 돈을 벌며, 사랑스럽게 꿈을 이루면 되지요."

-이 글을 읽으니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에서‘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는 한 공허한 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으로써 행하기,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깁니다.


숲노래 2013-02-13 07:45   좋아요 0 | URL
삶에는 사랑이 있기에 뜻이 있구나 싶어요.
참 그래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신비한 메시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더난출판사) 1
에모토 마사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26

 


사진빛은 늘 마음속에 있다
― 물의 메시지
 에모토 마사루 사진·글,양억관 옮김
 나무심는사람 펴냄,2003.9.30.

 


  사진으로 찍어서 나눌 모습은 늘 곁에 있습니다. 어떤 시골마을 아이를 찾아나서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골목동네 아이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두멧나라 두멧시골 아이를 찾아내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는 늘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줄 안다면, 우리 집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넉넉히 사진빛을 이룹니다. 이웃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우리 마을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내 마음속에서 피어날 이야기를 가뿐히 나눌 수 있어요.


  내 마음속 사진빛을 느끼지 못하면, 이웃 아이를 바라보건 시골마을 아이를 마주하건 골목동네 아이를 만나건 두멧나라 두멧시골 아이를 들여다보건, 어떠한 사진도 얻지 못합니다. 이때에는 그럴듯한 작품만 빚습니다.


  그럴듯하게 빚은 모습을 놓고 사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을 놓고 그림이라 말하지 않고, 글이라 말하지 않아요.


  루벤스나 피카소를 똑같이 베낄 때에도 그림이라 말하지 않아요. 이때에는 ‘복제품’이라 말합니다. 멋들어지게 그리거나 그럴듯하게 그렸으나, 그림 하나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그림이지만, 이야기 없이 눈가림에 그치거든요. 눈가림은 눈가림이요, 복제품은 복제품입니다. 겉치레는 겉치레요 손재주는 손재주입니다.


  어떤 기교를 부리면 기교입니다. 기교를 부리는 시는 시가 아닌 기교입니다. 기교를 부리는 사진은 사진이 아닌 기교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시라 하고, 사진이라 하며, 문학이 되고, 노래가 돼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건사하지 못하면 시도 사진도 문학도 노래도 못 됩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이 물방울 결정을 사진으로 담아 들려주는 이야기책 《물의 메시지》(나무심는사람,2003)를 읽습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은 “만일 일본민족과 한민족이 싸워야 할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자식들은 과연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요. 그때 나는 맹세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라고(9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 사진은 에모토 마사루 님 생각을 드러냅니다. 스스로 이루고픈 일을 사진 하나로 담고, 스스로 살아내고픈 모습을 사진 하나로 빚습니다.


  “순수한 샘물 결정의 촬영은 참으로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처참한 모습만 드러내는 수돗물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강물은 식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기르며 평야로 흘러들어 상류에서 가져온 영양분을 내려놓습니다.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대부분은 강물의 혜택을 받아 성장한 것입니다(15쪽).” 하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물마다 결정이 다르듯, 물마다 맛이 다릅니다. 물마다 결정이 다른 모양이요 생김새이며 무늬이듯, 물마다 내음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며 숨결이 달라요.


  물 한 잔 받아서 마음속 사랑을 고이 들려주면 물방울 결정은 곱게 거듭납니다. 물 한 잔 아무렇게나 다루거나 함부로 굴리면 물방울 결정은 아무렇게나 망가집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길어올린 물이어야 아름다운 결정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길어올렸다 하지만, 내 마음이 엉망이거나 어수선하다면, 물방울 결정도 그만 엉망이 되거나 어수선하게 뒤틀려요. 내 마음이 따스할 때에 우리 아이들한테 따스한 말을 건네고, 내 마음이 차가울 때에 우리 아이들한테 차가운 말을 건넵니다. 나한테서 태어난 따스한 말은 아이들을 거치고 여러 사람을 거치며 차츰 더 따스한 기운을 뽐냅니다. 나한테서 자라난 차가운 말은 아이들을 거치고 여러 사람을 거치며 자꾸 더 차가운 기운이 짙습니다. 곧, 내 마음자리에 따라 물무늬와 물빛이 바뀌어요. 물은 스스로 맑거나 곱게 빛나기도 하지만, 내 마음결에 따라 한결 맑거나 슬프게 맑을 수 있고, 한껏 곱거나 안쓰러이 고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에모토 마사루 님은 “이 결정이 보다 크고 힘찬 모습의 결정으로 변할 수는 없을까요? 그 열쇠는 아마도 당신의 마음일 것입니다(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물방울 결정이 오롯이 아름답지 못한 까닭은 바로 내 마음 때문이거든요. 물방울 결정이 오롯이 아름답다면 바로 내 마음 때문이에요. 내 사진이 오롯이 아름답지 못하면, 사진 솜씨가 모자라거나 사진 장비가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에요. 내 마음이 모자라거나 내 사랑이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내 마음을 따스히 살찌울 수 있은 다음 사진기를 쥘 노릇입니다. 나는 바로 내 사랑부터 곱게 여미면서 사진기를 붙잡을 노릇입니다.


  마음이 따스하지 않으면서 겉보기에 그럴듯하게 꾸민다면, 작품으로서는 남다르다 싶을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이나 해맑음을 나누지 못해요. 마음이 따스하면서 사진길을 걸어가면, 처음에는 사진 솜씨가 모자라거나 어설플 수 있지만, 솜씨란 차츰 익숙해지면서 거듭납니다. 처음에는 투박하거나 거친 사진이라 하지만, 따스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깃들 때에는, 사진읽기를 즐기는 사람들 모두 활짝 웃을 수 있어요.


  에모토 마사루 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음식이나 식물 속에 포함된 물이 음악이나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사람이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고 힘을 되찾는다면, 사람 몸속의 물이 변화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60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새롭게 보인다거나 예쁘게 보인다면, 왜 새롭게 보이거나 예쁘게 보일까요. 내가 찍은 사진이 틀에 박혀 보이거나 따분해 보인다면, 왜 틀에 박혀 보이거나 따분해 보일까요.

  우리는 어떤 짝꿍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가요. 우리는 어떤 짝꿍하고 어떤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나라 어떤 누리를 물려주고 싶은가요.


  짐승을 귀엽게 여기며 보살피는 사람은 온갖 사랑을 듬뿍 나누어 줍니다. 짐승한테 막말을 일삼거나 막짓을 퍼붓지 않아요. 사진을 어여삐 여기며 보듬는 사람은 온갖 사랑을 듬뿍 담아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서툰 사진쟁이나 풋내기 사진쟁이 작품이라서 깎아내린다든지 얕잡지 않습니다. 삶을 삶대로 바라보고, 사랑을 사랑대로 마주하며, 사진을 사진대로 즐깁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은 물방울 결정을 사진으로 찍으며, 참으로 깊은 한 가지를 스스로 묻습니다. “우리 눈으로 봐도 참 아름다운 사진인데요, 과연 물도 우리와 같은 느낌이었을까요(105쪽)?”


  자, 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내가 바라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사진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다 느끼며 바라볼까요. 내가 아름답다 느끼는 풀잎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게 맞아들일까요. 내가 아름답다 느끼는 햇살이나 무지개나 구름이나 별빛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게 마주할까요.


  사진빛은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랑빛은 언제나 마음밭에 있습니다. 삶빛은 한결같이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사진을 느낍니다. 마음을 아낄 수 있으면 사진을 아낍니다. 마음을 북돋울 수 있으면 사진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포근히 얼싸안으면 사진을 포근히 얼싸안습니다. 마음이 삶이요 삶이 마음입니다. 삶은 사진이고 사진은 삶입니다. 곧, 마음이 사진이요 사진이 마음입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으레 새벽에 글을 써서 띄우는데,

알라딘서재는

꼭 새벽에

시스템이 어질어질 춤추곤 한다.

 

알라딘 책 검색에는 틀림없이

책 목록이 뜨는데,

리뷰쓰기를 하면

책 검색이 안 될 때가 있다.

 

시스템 검사라도 하는가?

그러면 그런 걸 알리든지.

새벽 너덧 시나 대여섯 시에

시스템을 살피며 지키는 사람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나,

이것저것

다 마무리지었는데

막상 글을 올릴 수 없으면

참 갑갑하다.

 

알라딘책방은

알라딘서재에 글을 쓰는 사람이

이런 번거로움 저런 성가심이 있어도

꿋꿋하거나 씩씩하게

글을 써서 올리는 줄 알기는 알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13-02-12 13:38   좋아요 0 | URL
저는 오래된 책의 글을 인용할 때가 있었는데, 그 책을 알라딘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페이퍼에 넣지 못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인용을 뺀 적도 있고요.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책이 번역만 다르게 나오더라도
(절판된)옛 책의 사진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두 권을 넣을 수가 있잖아요.
어차피 독자들은 판매되는 책을 구입할 텐데 말이죠.(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났음.)

우리는 알라딘을 사랑하는데, 알라딘은 우리를 덜 사랑하는 걸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알라딘도 우리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

숲노래 2013-02-13 07:47   좋아요 0 | URL
사라지는 책들 자료를
오래도록 두기란 쉽지 않으리라 느껴요.
그래도, 그 책과 얽혀
즐겁게 읽고 나누던 넋을 닫지 않기를 빌어요.

절판이나 품절된 책은
그 책에 붙은 느낌글(리뷰)을 아예 못 읽기도 하더군요.

새로 나오는 책만 팔아야 하는 인터넷책방이 아니라,
어떤 소통과 만남이라는 자리로도
무엇인가 스스로 일구는 인터넷책방이 되면
참 아름다울 텐데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949) 가운데 2 : 언급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다룬 내용에서 여러 주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이미 드러나기는 했지만
《에냐 리겔/송순재-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244쪽

 

  ‘지금(只今)까지’는 ‘이제까지’나 ‘여기까지’나 ‘여태까지’로 다듬고, ‘내용(內容)’은 ‘이야기’나 ‘줄거리’로 다듬으며, ‘언급(言及)하는’은 ‘말하는’이나 ‘다루는’으로 다듬습니다. ‘주제(主題)’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글흐름을 살피면 살짝 덜어도 돼요. 또는, “여러 주제”라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라고 할 적에 한결 알맞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보기글은 글짜임이 퍽 엉성합니다. 어딘가 겹말 내음이 나기도 하고, 군더더기 같은 말투가 드러납니다. 이 낱말 저 말투 모두 아울러서 “여기까지 여러 가지를 다루며 이미 드러나기도 했지만”이라든지 “여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다루며 이미 드러나기도 했지만”처럼 단출하게 손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한 다음 ‘가운데’를 살펴봅니다.

 언급하는 가운데
→ 말하는 동안
→ 다루는 사이
→ 살필 적에
→ 살펴보면서
 …

 

  글흐름을 통째로 손볼 때에는 시나브로 사라지는 ‘가운데’입니다. 따로 이 말투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가운데’라는 말투가 엉뚱하게 나타난 자리만 살핀다면, “말하는 동안”이나 “이야기하는 동안”처럼 다듬으면 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일본을 거쳐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가 처음 깃들던 때에는 “言及하는 中에”처럼 글을 쓰던 지식인이고, 나중에는 글꼴만 한글로 고쳐 “언급하는 중에”처럼 글을 쓰던 지식인이에요. 이제는 ‘중’을 뜻새김만 한국말로 바꾸어 “언급하는 가운데”처럼 적는 지식인입니다.


  ‘가운데’는 틀림없이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자리처럼 쓸 때에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고 있다”에 나타나는 ‘있다’도 한국말이지만, “-고 있다” 꼴을 쓰면 한국 말투 아닌 영어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옮겨적은 말투를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끌어들인 말투이듯, ‘가운데’라는 낱말을 넣는 말투도 한국 말투하고 동떨어집니다. 4346.2.1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기까지 다룬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를 말하며 이미 드러나기는 했지만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