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읽기와 ‘책’을 읽기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되도록 ‘베스트셀러’ 아닌 ‘책’을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어요. 그래야 스스로도 ‘책’을 읽고, 둘레에 있는 좋은 이웃과 동무한테도 ‘책’을 읽도록 북돋울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자꾸 ‘베스트셀러’만 다루거나 말한다면, ‘책’이 아닌 ‘베스트셀러’만 읽히거나 팔리면서 우리 삶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겠지요. 어느 모로 보면, 베스트셀러를 제대로 비평하거나 비판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굳이 비평이나 비판 안 해도 좋아요. 우리가 즐겁게 읽을 ‘책’을 즐겁게 읽고서 즐겁게 말하면 돼요. 즐겁게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일이 바로 ‘베스트셀러 비평’이나 ‘베스트셀러 비판’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ㅈㅈㄷ 같은 신문을 굳이 읽고서 비평이나 비판해야 하지 않아요. 우리 둘레 아름다운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아름다운 삶을 눈여겨보고 귀담아들으면서, 이 아름다운 삶을 즐겁게 글로도 쓰고 말로도 나누면 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글로 쓰고 말로 하는 일이 참다운 ‘비평이나 비판’이에요.


  내 삶을 읽고 누리듯 내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 내 삶을 사랑하고 나누듯 내 ‘책’을 사랑하고 나눌 때에 그야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을 찾을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아갈 때에 사랑스럽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아직 ‘책’을 읽을 줄 몰라요. 베스트셀러를 읽거나 스테디셀러를 읽고 말아요. 때로는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나 권장도서를 읽고 말지요. 우리는 이런저런 군더더기 겉이름 붙은 읽을거리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아요. 내 목소리를 헤아려요. 다른 사람 돈벌이에 눈길 사로잡히지 말아요. 내 삶을 바라보고, 내 사랑을 마주하며, 내 사람을 살포시 안아요. 삶을 읽듯이 책을 읽어요.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 Nussbaum 님이 예쁜 댓글을 달아 주셔서, 이 예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내 입으로 내 글을 '예쁘다'고 말하자면 참 남우세스럽지만, 뭐, 귀엽게 읽어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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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04 13:45   좋아요 0 | URL
저는 한때 베스트셀러 책은 빼고 읽은 적이 있어요. 베스트셀러 책에 여러 번 실망한 결과였죠.
그런데 요즘은 베스트셀러 책도 읽어요. 왜 잘 팔리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지금도 궁금해서 읽고 싶어져요. 지금은 참고 있지만... 언젠간 읽을지 몰라요.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가려고 읽는 게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 책에 열광하는지가 아주 궁금하거든요. 대중들의 취향을 알 수 있기도 하고요.

안타까운 것은 제가 읽은 책 중에는 꽤 좋은 책인데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책이 많아요.
그런 걸 사람들이 찾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베스트셀러만 주목하지 말고 말이죠.
그런 뜻에서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

숲노래 2013-07-04 15:09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은 그저 '좋은 책'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요.

베스트셀러 가운데에도 '좋은 책'이 있을 테지만, '많이 팔린 책'이라는 틀에서는 그다지 벗어나지 않아요.

조선일보를 읽으며 조선일보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도 어느 모로 뜻이 있다고 할 텐데, 그러나, 조선일보를 아예 안 보고 생각 안 하는 쪽이 가장 슬기로운 길이에요. 우리가 나누고 함께할 가장 좋은 이야기를 찾아서 누리는 데에 시간과 품을 들여야지요.

우리는 '책'을 읽을 노릇이기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많이 팔렸건 적게 팔렸건 대수롭지 않아요. pek0501 님이 읽고 싶은 '책'은 책 그대로 살펴서 읽으시면 돼요. 그 책이 팔렸건 안 팔렸건 참말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빚기
― 언제 찍으면 좋을까

 


  필름사진기를 쓸 적에는 흑백필름을 참 많이 썼다. 이제 필름사진기를 더는 못 쓰면서 흑백필름 또한 안 쓰고, 흑백필름을 안 쓰다 보니, 디지털사진기를 쓸 적에도 흑백사진은 잘 안 찍어 버릇한다. 어쩌면, 굳이 흑백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을 찾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한여름 저녁 일곱 시 반에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나온다. 면소재지 들러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여덟 시 십 분쯤 되고, 우리 시골마을에 어스름 찬찬히 드리운다. 해질녘이라 사진기를 집에 놓고 나오려다가 ‘그래도 사진 한 장 찍을는지 모른다’ 생각하며 목에 걸었다. 논둑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는데, 멧등성이 너머로 해가 넘어간 시골마을 모습이 퍽 애틋하면서 아련하다고 느낀다. 자전거를 세우고는 사진기를 손에 쥔다. 감도 100에 셔터값 1/5초로 찍는다. 안 흔들린다. 그동안 집에서 아이들 사진 찍으며 익숙해졌으니 이만 한 셔터값은 괜찮다. 다시 한 장 더 찍고, 여러 장 더 찍어 본다. 뒤를 돌아 아이들 모습도 찍는다. 그런데 아이들 모습은 감도 100으로는 너무 어둡다. 감도를 400으로 올려서 셔터값은 1/5초로 찍는다. 졸린 아이들 잠을 재울 뜻도 있어 느즈막히 나온 자전거마실이기에 큰아이는 “사진 그만 찍고 얼른 집에 가요.” 하고 말한다. 그래, 이제 그만 찍고 집에 가자.


  집에 닿아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들이려다가, 아직 해가 꼴깍 안 넘어갔구나 싶어 다시 사진 몇 장 찍어 본다. 이제 많이 어둡기에 감도를 800으로 올리고 셔터값은 그대로 1/5초로 찍는다. 아이들 태우고 사십 분 즈음 자전거를 탔더니 힘이 좀 빠졌을까. 사진이 흔들린다. 그래도 나는 좋다고 생각하며 이 사진을 기쁘게 건사한다. 한낮에 마실을 하면서 맑고 밝은 시골마을 짙푸른 빛깔을 무지개빛 사진으로 담아도 고우면서 좋은 한편, 이렇게 땅거미 내려앉는 시골마을 고즈넉한 모습을 디지털사진기로도 흑백으로 담으니 그윽한 맛이 나는구나 싶다.


  곰곰이 생각한다. 사진은 언제 찍으면 좋을까? 그래, 찍고 싶을 때에 찍으면 좋다. 낮이든 밤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스스로 찍고 싶을 때에 찍으면 좋다. 이 사진기로든 저 사진기로든 스스로 찍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때에 기쁘게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찍으면 좋다.


  어떤 모습을 찍든 다 좋다. 어디에서 찍더라도 모두 좋다.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 하든 다 좋다. 스스로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으면, 누구라도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참으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진 하나 빚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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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혼자 자전거수레 타기

 


  날마다 키가 조금씩 자라는구나 싶은 산들보라도 곧잘 자전거수레에 혼자 들어간다. 그러나 으레 아버지가 안아 주어야 하는데, 이제는 산들보라 스스로 들어가도록 지켜보기로 한다. 스스로 해 버릇해야 더 잘 할 수 있고, 몸을 크게 놀려야 몸도 골고루 잘 자랄 테니까. 누나가 자전거를 붙잡아 주기에 네 모습 사진으로 하나 남긴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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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책, 비싼 책

 


  값이 너무 비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선뜻 손이 안 가기도 하지만,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또 선뜻 손이 안 가곤 합니다. 내 주머니가 그닥 넉넉하지 못해 값이 너무 비싸구나 싶으면 선뜻 장만하지 못한다 할 텐데,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한테도 손길이 안 가요. 값이 아주 싸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장만할 수 있을 테지만, 마음이 안 움직입니다.


  장만하고 싶은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 내놓은 분은 ‘고인돌’을 찍었습니다. 참 좋은 ‘삶과 사람과 사진 이야기’ 들려주리라 생각하며 이 사진책 장만할 꿈을 키우는데, 따로 주문을 받아 사진작가가 손수 원판 사진을 묶어서 팝니다. 이 책은 첫 ‘수제본’은 100만 원이었다 하고, 이내 150만 원이 되었다가, 요즈음은 300만 원쯤 치러야 살 수 있는 듯합니다. 머잖아 500만 원이 넘을 수 있어요. 원판 사진에다가 손수 묶는 아름다운 책이니 틀림없이 ‘소장 값어치’가 있는 사진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10만 원이나 15만 원 즈음, 또는 5만 원이나 7만 원 즈음으로 여느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는 사진책이 나올 수는 없는지 궁금해요. 사진을 좋아하고, 삶을 사랑하며,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값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내놓는 책은 손쉽게 장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인터넷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판다는 책은 누구나 장만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500만 원짜리 사진책을 장만할 엄두를 못 내기도 하지만, 500원짜리 값싼 책 또한 장만할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아주 작고 얇으며 가벼운 책이라면, 헌책으로서 500원이나 1000원이 될 수도 있지만, 200∼300쪽 즈음 되는 여느 판짜임 책이라 할 때에는 헌책방에서도 3000∼4000원은 받아야 마땅하고, 요즈음 물건값을 살피면 5000∼6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느껴요.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깎아내린 값은 달갑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사람’한테 지나치게 깎아내린 책값이 도움이 될까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낸 사람한테 이런 터무니없는 싼값이 이바지할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는 텃밭에서 무 한 뿌리 배추 한 포기 거저로 내어주곤 합니다. 굳이 돈으로 따져서 건네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저로 선물할 수 있다 해서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에 500원이나 1000원을 받을 수 없어요. 제값을 받아야지요.


  책선물은 얼마든지 반갑지만, 선물 아닌 책을 500원이나 1000원에 사고팔도록 한다면, 또는 다른 책하고 견주어 너무 깎아내린 값으로 다룬다면, 이때에는 책이 무엇이 될까요.


  그저 많이 읽히면 되나요. 그저 많이 사들이도록 북돋우면 되나요.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는 소설책 하나를 새책으로 펴낸 커다란 출판사마다 50% 에누리라느니 51% 에누리라느니 66% 에누리라느니 58% 에누리라느니를 하면서 2900원에, 3920원에, 4750원에, 4000원에, 5390원에 팝니다. 갓 나온 책조차 10% 에누리 아닌 40%, 아니 50% 훨씬 넘는 에누리로 사고팔립니다. 헌책 아닌 새책을 이렇게 팔고, 이렇게 파는 책이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 아닌 ‘싸구려 물건’을 사들입니다.


  싸구려 물건 사들인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읽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속에 품겠지요. 비싸게 사든 값싸게 사든, 읽는 이 스스로 즐겁게 읽으면 즐거운 빛이 마음속에서 환하게 샘솟겠지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우리가 읽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깎아내리는 책에서만 얻을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토록 함부로 깎아내려서 사고팔아야 하나요. 게다가 3000∼5000원 사이로 파는 이 책들을 사면 다른 새책을 한두 권씩 끼워서 주고, 다른 선물까지 덤으로 안깁니다. 새책 한 권이 천 원조차 안 되는 꼴입니다.


  책값은 비쌀 수 있고 쌀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읽고픈 책을 사면 될 노릇입니다. 비싸다고 하면, 푼푼이 돈을 모아서 장만하면 되고, 값싸다 싶으면 여러 권 장만해서 이웃한테 선물할 수 있어요. 부디 책이 책답게 되도록 책마을 일꾼이 땀을 쏟기를 빕니다. 책방지기가 맑은 웃음 지으며 따순 손길로 아름다운 책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책으로 삶을 읽으려는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야기가 흐르도록 이끄는 책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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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7-04 21:31   좋아요 0 | URL
출판사 스스로가 저처럼 책 세일을 하고 있으니 책 읽는 이들이 내가 사는 책이 과연 거품이 없나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드네요.그러니 정가에 책을 사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결국 세일해야만 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3-07-04 23:12   좋아요 0 | URL
네. 이번 개츠비 책들은...
사재기 출판사 문제보다 훨씬 크고 나쁜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싶은데에도...
'독자가 바란다'는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터무니없는 깎아팔기가... 이어질 듯해요...
 

자전거쪽지 2013.7.2.
 : 시골을 달리는 자전거

 


- 저녁 일곱 시 반,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아이들아, 우리 저녁마실 다녀와 볼까?

 

- 시골마을 한여름 일곱 시 반은 아직 환하다. 해는 아직 저 멧자락 너머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당에 내놓은 빨래를 걷는다. 오늘 비가 온다 한 듯하지만 마을에서 하늘을 볼 적에는 비 올 낌새는 없다. 다만, 물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 한여름인 데에도 빨래가 잘 안 마른다. 집안으로 빨래를 옮긴다. 나무로 된 평상에 덮개를 씌운다. 오늘은 비가 안 올 테지만, 아마 새벽에 비가 올는지 모르니까.

 

-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밖으로 끌어낸다. 아이들은 벌써 저 밑까지 달려 내려간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서 올라온다. 이렇게 다니기만 해도 좋지?

 

- 늘 다니던 큰길로 가다가 자전거를 돌린다. 오늘은 천천히 다니자. 논둑길로 달리면 어떨까. 마을과 마을 사이에 펼쳐진 넓따란 들판을 가로지른다. 저기 해오라기 두 마리 보인다. 나도 보고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도 본다. “아버지, 저기 해오라기 있어요. 두 마리만 있어요. 많이는 없어요.” 그래, 저녁이니까 다들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두 마리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쟤네들 여기에서 뭐 먹어요? 쟤네들도 바람 먹어요?” “응, 바람도 먹고 개구리도 먹지.”

 

- 장마비 몰려든다고 하는데, 구름빛이 좋다. 온갖 구름 갖은 빛깔로 어우러진다. 시골에는 높다란 건물 없어 하늘을 한껏 누린다. 시골에는 널찍한 찻길 없어 조용히 하늘과 멧자락을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 구름이 앉았어.” 멧봉우리에 구름이 걸린 모습을 본 큰아이가 말한다. “그래, 구름이 멧자락에 앉았네.” 숲에 깃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풀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흙을 누리면 모두 아름다운 생각을 가슴에 품는다.

 

- 논도랑 옆에서 자전거를 살짝 세운다. “벼리야, 소리 들리니? 이 소리가 또랑물 흐르는 소리야.” 비록 흙 아닌 시멘트로 바꾼 논도랑이지만, 도랑물 또는 또랑물 소리를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길 없는 데로 달렸다가 돌아나온다. “아버지, 길 있는 데로 가야지요.” 길 있는 데로 엉금엉금 올라와서 한참 달리니 퍽 넓은 봇도랑 곁을 지난다. “아버지 저건 뭐야?” “응, 냇물. 아니 시냇물.” 봇도랑이라고 해야 할까 시냇물이라 해야 할까 모르겠다. 온통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서 막은 이곳을 참말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흙바닥 아닌 물줄기를 시냇물이나 냇물이라고 해도 좋을까?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이 된 곳을 ‘강’이나 ‘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농약을 치니 농약 기운이 봇도랑물에 퍼지는 모습 보인다. 이런 비닐쓰레기 저런 비료푸대 그런 갖가지 쓰레기가 봇도랑물과 함께 흐른다. 그런데 이런 봇도랑물에도 물고기가 있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아이들 과자 몇 점 산다. 자, 집에 가서 먹자, 알았지?

 

-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른 길로 빠진다.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저녁바람을 마시고 저녁하늘을 바라본다. 어스름 천천히 깔린다. 하늘빛 천천히 바뀐다. 여름해가 지고 여름밤 찾아든다. 개구리 노랫소리 천천히 늘어난다. 이제 우리들 집에 닿을 무렵 온 마을에 개구리 노래잔치 이루어지겠지. 장마철에는 어느 집도 농약을 안 칠 테니까 이 노래잔치 흐뭇하게 누릴 수 있겠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버릴 수 있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똥오줌 거름을 내어 논밭을 일구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도시가 이토록 큰 오늘날에는 안 되리라 본다. 사람들 스스로 도시를 떠나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도시에 앉아서 도시내기 되는데, 시골이 바뀔 수 없다. 생협이나 협동조합이니 모두 좋다만, 도시에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짓지 못하면서 머리만 맞댄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이 늘어난다. 사람들 스스로 아파트를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짓는다. 사람들 스스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 쳇바퀴 삶을 버리지 않으니 시골사람은 시골땅을 농약범벅으로 망가뜨리면서 겉보기 때깔 번드레한 곡식과 열매 거두는 일을 할 뿐이다. 젊은 일꾼이 시골에 있고, 아이들이 시골에서 노래하면, 어떤 사람이 이곳에 농약을 함부로 치겠는가. 저 맑은 하늘과 구름과 햇살과 달빛과 바람이 사람들 모두 먹여살리는 줄 우리 이웃들은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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